고구려 ‘모처혼’ 등 조선중기까지 다양한 형태 존재…역사속 모계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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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들 > 여왕벌과 일벌들 | 2008-11-02 (Sun) 23:17 http://blog.dreamwiz.com/jha007/8629142
고구려 ‘모처혼’ 등 조선중기까지 다양한 형태 존재…역사속 모계사회
  
모계사회란 한 마디로 어머니를 중심으로 혈통이나 상속이 이뤄지는 친족 사회를 뜻한다.
일부에서는 모계사회를 원시사회의 한 형태나 특징으로 여기며 우리 전통과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우리 역사에 대한 오해라고 설명한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우리 역사에서 모계사회의 풍습은 원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다.
고구려 시대에는 신랑이 신부 집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신부 집에서 살다가 아이들 낳으면 본가로 돌아가거나 본가에서 사는 처가살이가 일반적인 혼인 풍속이었다. 이를 모처혼(母處婚)또는 예서제(豫壻制·데릴사위제의 처음형태)라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출가여부와 관계없이 딸들에게도 재산을 배분했고, 여손(女孫)의 계승권도 인정됐으며 이같은 풍습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족보인 안동권씨 성화보(1476년)와 퇴계 이황의 집안인 진성이씨의 족보(1600년)에서도 이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성리학을 주창하는 사대부들의 주자가례 실천과 명분론이 강화되면서 가부장제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일제시대 호주제의 도입으로 가부장제는 그 위치를 공고히 했다. 원시시대에서 모계사회는 출산 자체가 권력의 핵심이었으나 요즘은 경제권에 초점을 맞춰 논의를 진행중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대전일보 禹世榮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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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적접근 그리스 로마신화  조회 : 1709
세상사들 > 여왕벌과 일벌들 | 2008-11-02 (Sun) 23:12 http://blog.dreamwiz.com/jha007/8629065

  도서명: 우리 속에 있는 남신들
  저자명: 진시노다 볼린
  역자명: 조주현, 조명덕
  출판사명: 또 하나의 문화

    차례
  우리 속에 있는 남신들
  서문
  감사의 글
 
    I. 우리 속에 있는 남신들
  제1장 우리 속에는 남신들이 있다
  제2장 아버지와 아들 : 신화는 우리에게 가부장제에 대해 말하고 있다
    II. 아버지 원형 :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
  제3장 제우스 : 하늘의 신 -의지와 권력의 세계
  제4장 포세이돈 : 바다의 신 - 감정과 본능의 세계
  제5장 하데스 .저숭의 신 -영흔과 무의식의 세계
    III. 아들 세대 : 아폴론, 헤르메스, 아레스, 헤파이스토스, 디오니소스
  제6장 아폴론 : 태양의 신 - 궁수, 입법자, 총애받는 아들
  제7장 혜르메스 : 전령의 신과 영혼의 안내자
  - 전달자, 책략가, 여행가
  제8장 아레스 : 전쟁의 신 - 무사, 춤꾼, 연인
  제9장 혜파이스토스 : 대장간의 신 - 장인, 발명가, 외톨이
  제10장 디오니소스 술과 황홀경의 신 -신비주의자,연인, 방랑자
    IV. 우리 자신을 기억해 내기
  제11장 우리의 신화 찾기 -자신을 기억해 내기
  제12장 행방 불명된 남신
  부록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
  남신 원형 도표
  옳긴이 후기

    서문
  나는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Goddesses in Everywoman을 쓰고 나서 남성들
속에 있는 남신들에 관한 질문을 자주 받았다. 여신들에 관한 내 강의를 들은
남성들은 내게 묻곤 했다. "우리는 도대체 뭐죠?" 우리 속에 있는 남신들
Godsin Everyman은 그러니까 내가 앞서 쓴 책의 후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내 직업,내가 살고 있는 시대,그리고 (역설적인 이야기이지만)내가
여성이라는 점이 나로 하여금 남성 속에 있는 원형들에 관한,이 책을 쓰게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남성들을 위해 했던 일을 하는
여성이 되었다. 여성들은 남성들의 내면 생활의 해석자로서 활동하여 왔다.
남성들이 흔히 자기들끼리 공유하지 못하는 것을 여성들과 공유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많은 남성들이 정신과 의사로 여성을 선택한다. 그들은 여성과
얘기를 나누는 것이 좀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동시에 이야기가 더 쉽게 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떤 남성들은 이야기 도중에 자신의 내부에서 또는 남성
정신과 의사에게서 일어날 수도 있는,경쟁적인 감정 및 그것이 야기하는 결과가
두려워 그 상황을 피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니엘 레빈슨이 남자의 일생에서 언급한 대로 때때로 한 의미 있는
여성은 출세한 남성의 인생에서 <꿈의 전달자>라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융 정신 분석을 하는 여성이 종종 떠맡는 역할이기도 하다. 정신 분석
과정에서 남성들은 자기 내면의 삶을 공유하게 되고 자신들의 약점과 강점을
알게 된다. 그들이 자신에 대한 통찰력을 얻는 순간 그들은 나에게 가르침을
준다. 나는 겉에 드러나지 않는 이 남자가 누구인지를 보게 되고 그 속에 있는
원형을 접하게 되고 또 자기 자신이 되는 것,그리고 자신의 감정 그대로를
느끼는 데 따르는 어려움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다. 레빈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남자에게) 특별한 여성은 참스승과도 같다. 그녀의 특별한 자질은 그녀가 젊은
남성의 꿈과 연결되어 있다는 데 있다. 그녀는 꿈을 담고 있는 자아의 일부가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을 돕는다. 그녀는 그로 하여금 성인 세계로 입문케 하고
꿈을 좇게 해준다. 그녀가 수행하는 이 역할은 부분적으로 그녀가
교사,안내자,접대자,비평가,그리고 후원자로서 행하는 실질적인 노력을
통해서이다. 좀더 깊은 심리적 차원에서 보면 그녀는 그로 하여금 영웅적
노력을 유발시키고 지지하는, 자기 내면의 여성적 모습 - 융은 그것을 
'아니마'라고 서술한 바 있다 -을 그녀 자신에게 투사하게 만든다.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남성들은 흔히 다른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에 의해, 더
잘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며 자신의 더 많은 모습을 남성들에게보다는
여성들에게 드러내 놓는다. 남성의 친밀성에 관한 맥길 보고서에서 검증된
바로는,
 
열 명의 남성 가운데 한 명만이 일, 돈, 결혼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는 남자
친구를 갖고 있다. 그리고 스무 명 이상 중의 한 명만이 자기 자신에 판한 감정
또는 자신의 성적 감정을 틸어 놓는 교우 관계를 갖고 있다 ‥‥‥ 가장
공통적인 남성의 친구 관계 유형은 한 남성이 여러 <친구들>을 갖는
것인데,그들 각자는 그 남성의 공적 자아에 관한 어떤 측면을 알고는 있다.
따라서 그에 대해 조금 알게 되는데, 문제는 어느 누구도 그의 전체 가운데
작은 부분 이상으로는 그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맥길은 남성이 스스로를 드러내 놓는다면 그 대상은 아마도 어떤 한 여성,
때때로 자기 아내나 다른 여성이 되리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남성들은 감정,생각,꿈 등을 남성에게보다는
여성들에게 더 많이 말한다.
  또한 진 베이커 밀러가 새로 보는 여성 심리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우세하고 열등한 집단(남성 ·여성,백인 ·흑인,부자 고용주 ·가난한 하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지 힘을 덜 가진 집단이 필요에 의해서 상대를
연구하며 상대에 관해 더 잘 안다. 이러한 이유와 대부분의 여성들이 지닌 사람
지향적 인 성격 때문에도 여성들은 언제나 남성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사람들이 되어 왔다.
  따라서 우리 속에 있는 남신들은 여성들이 오랫동안 해왔던,남성들을
보살피는 일을 하고 있는, 한 여성이 보는 남성 심리학이라고 하겠다. 즉 이
책은 여성이 보고 있는 바를 반추해 보고 그녀가 남성의 결점 ,문제점이라고
묘사하는 것에 민감해져야 하며,자신들의 긍정적인 자질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자는 것이다. 이 책의 관점은 애정 있는 관찰자의
관점이며,내가 직업적,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얻은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정신과 의사이자 융의 이론올 따르는 분석가이자 캘리포니아 대학
샌프란시스코 의대 정신과 교수다. 개인적으로 여성들은 물론 남성들을 분석할
기회가 많았으며 남성적 직업에 있는 여성으로, 남성 스승, 남성 친구,남성
동료들을 갖고 있다. 또한 나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지도하고 가르쳐 왔다.
  게다가 내가 성취한 것을 자랑스러워 하는 확실하게 증명된 <아버지의 딸>,
<아빠의 귀여운 딸>이었다. 그로 인해 나는 가부장제 문화에서 인정받는 법을
다른 여성들보다 더 쉽게 알고 있었다. 나는 또 19년 동안 전통적인 동시에 평
등주의적인 기반을 가진 결흔 생활을 한 아내였다가 3년간의 별거 끝에 이혼
하였다. 그리고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둔 어머니이다. 두 아이 모두 고정
관념들에 관한 문제들 -타고난 것에 대한 길러진 것의 우위성 - 이 가장 크게
제기되었던,여성 운동의 시대인 70년대 초에 태어났다.
 
두 가지 전망을 지닌 심리학
 
우리 속에 있는 남신들은 심리학이 지닌 <두 가지 전망>을 제공한다. 이는
우리가 겪는 갈등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또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더욱더 통합된
인격체가 될 수 있는지를 알려고 할 때 강력한 내부의 원형과, 순응을 요구하는
고정 관념 모두를 염두에 두는 심층적인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내가 겪은 전문의 수련 과정과 개인적 체험에서 나온 것이다.
나의 임상 경험은 남성들과 여성들의 마음과 머리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 자신과 일치될 때 갖게 되는 온
전함 내지 합일감에서 나오는 기쁨의 인식을 경험하게 했다 바꾸어 말한다면
우리의 몸, 꿈, 증세들은 원형적으로 틀림없는 진실이 의식적으로 부정되고
억압될 때 갈등과 고통을 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형들이 무엇인지
또 그것들이 개인의 삶 속에서 어텅게 표현되고 있는지 하는 것은 심리학
분야에서 수년 동안 깊은 연구를 한 이후라야 좀더 분명해진다.
  물론 더 근본적인 것은 여성 운동에서 <의식화>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다. 지난 이십 년간 우리는 고정 관념이 인간의 잠재력을, 특히
여성 의 잠재력을 어떻게 왜곡하고 한계지을 수 있는지를 배위 왔다. 오늘날
많은 여성들은 가부장제 문화에서 산다는 것이 그들에게 개인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의 가치 기준과 신념은 문화에
의해 형성되고,이는 법이나 관습 등에 반영되고, 권력의 배분 방식 및 부와
지위의 결정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은 편히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남성에 대한 고정 관념 또한 남성들을
지배하고 있다. 남성에 대한 관념들 역시 어떤 자질에 대해서는 보상을 내리고
어떤 자질들에 대해서는 거부를 보임으로써 그들이 마음 편하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제한한다.
 
우리 속에 있는 남신과 여신들
 
내가 여신들에 대해 말할 때 남성들이 특정 여신과 자신의 일부를 동일시할
수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성들 속에 있는 남신들에 대해
말할때 여성들 속에 특정 남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여성들이 종종 발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남신들과 여신들은 인간 심성에 있는 상이한 특질들을
나타내고 있다. 대개 남신들이 남성의 인성에 대해 가장 강력하고도 영향력
있는 결정인이며 여신들이 여성에 대해 그렇다고는 할지라도 남신이든 여신이든
간에 그리스 신들 모두는 우리 속에 원형들로 존재하고 있다.
  모든 원형은 특정 <남신이 부여한>또는 <여신이 부여한> 재능과 잠재적인
문제점들과 연관되어 있다. 그령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오만을 부리는 일도
자책감에 사로잡히는 일도 줄어들게 된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원형적 깊이에
서 나오는 일은 우리에게 의미를 갖기 때문에 어느 남신 또는 남신들이 자기
안에서 활약하고 있는가를 아는 남성은 어떤 선택 또는 방향이 개인적으로 좀
더 만족스러운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남신들에 관해 읽는 것은 때때로 우리 자신의 잘려 나간 부분들을 다시
결합시키는 수단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과정은 또한 우리의 무의식 세계를
두드리는 꿈, 기억 그리고 신화들에 의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남성 속에 있는 여러 남신들에 대해 아는 것은 여성들에게도 요하다. 많은
여성들은 남성들(대개는 한 시기에 특정한 남성)을 이해하는 데 대단한 노력을
들인다. 심리학적인 사고를 하는 여성들은 때때로 자신들이 반복적으로 특정
유형의 남성들에게 몰두한다는 것을 깨닫고, <누가>그들을 사로잡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남성 속에 있는 남신들은 그들이 일련의 남성들
속에 있는 특정 남신 또는 원형에 사로잡혀 있으며 이 <남신>이 그들의 기대와
양립되지 않는다고 말해 줄 수 있다. 그들의 관계가 왜 계속해서 불행한 결말을
맺는지를 설명해 준다.
  <남신>들에 대한 통찰력은 소년들을 둔 부모들(특히 홀어머니들)에게 자기
아들이 <누구>인지를 알아보고 평가하는 수단을 제공한다. 그리하여 좀더
훌릉한 부모가 되게 한다. 그녀(또는 그)는 자기 아들이 어떤 녀석인지, 세상이
그를 어떻게 대우하는 것 같은지,그의 강점과 약점이 무엇인지, 그가 어디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남성들과 여성들은 또한 자기 아버지들을 분명하게 볼 필요가 있다. 그
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만큼이나 그들을 용서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남신들과
남신들의 신화를 이해하게 되면 아버지의 객관적인 모습을 볼 수도 있기 때문
이다.
  그리고 여성들 속에도 <남신들>이 있기 때문에 여성들은 남신들을 앎으로써
자기에 대한 인식을 얻을 수 있다. 특별히 이미 <여신들>에 친숙해지고,이제
특정 남신이 그녀 자신의 행동의 일부를 설명한다는 것을 알게 된 여성들은
<아하!> 하면서 그것의 진가를 인정하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우리
모두가 지그재그 퍼즐 조각을 바로 끼워 맞췄을 때 느끼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특히 그것이 그림을 완성시키고 인생의 의미를 이해하는 행방 불명된
조각일 때 더욱 그러하다.
  모든 사람들 속에는 남신들과 여신들이 있다. 그들을 통해 직관적으로 자신
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이 분명한 이미지와 적합한 말들과 연관되는 순간 통찰
력을 얻게 된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또 자신의 모습을 처음 보는 것처럼
이러한 일순간은 남들이 여러분에게서 반응을 하는 것을 드러낼 수 있고 여러
분이 스스로에게 대해 좀더 분명하게 보일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소년들과 남성들을 더 잘 이해하고자 하거나 또는 남성과 여 성
모두 속에 있는 남성적 원형들에 관해 알고 싶어하거나 그것들의 관계에 대해
무엇인가를 발견하려는 이들을 위해 썼다. 나는 특별히 자기 속에 있는
남신들을 발견하려는 남성들, "우리 남자들 속에 있는 남신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는요?" 하고 내게 물었던 남성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감사의 글
 
이 책의 모든 장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분들 -환자, 친구, 동료,
친지, 내 인생의 모든 의미있는 남성 내지 소년들 - 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
그들은 남신 원형의 여러 면들을 몸소 예시하였거나 가부장제 문화에서 소년
또는 남성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여러
해에 걸쳐 여성들은 내게 그들이 가까이 지내고 있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기
보다는 때로 자신을 잘 아는 체하는 남성들 - 특히 성찰을 할 줄 모르는 남성들
-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 책의 중요한 부분은 그들 자신이
처음에는 알지 못한 채로 그로부터 단절되었던 감정, 역사 및 자기 자신의
부분들을 발견하기 위한 융 분석에 나와 함께 깊이 빠져들었던 남성들의
이야기로부터 나왔다.
  이 책에서 언급된 대부분은 따라서 내가 여러 상황에서,특히 25년간의 정신
과 임상 경험을 통해 알았던 많은 남성들을 합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연구는 신뢰, 안전, 비밀의 테메노스 temenos (그리스 말로 '신전'이란 뜻)
안에서 이루어진다. 여기서 무의식적이거나 기억되지 않던 것이 시간을 거치는
동안 드러난다. 마음으로 나를 신뢰한 남성들은 저마다 다른 남성들과 여성들의
심리 - 물론 나를 포함한 - 에 관해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 책에서 나는 남신이 지닌 특별한 양상을 기술하는 데 역사적 인물들,
유명인들, 소설의 인물들을 동원하였다. 나는 그 사람이 지닌 공적 이미지를
도출해 내었다. 그가 어떻게 인용되고 있는가는 사적이거나 직업상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밝혀 둔다. 실제 인물들은 대개 전설적인 이미지보다 더한
면도 있고 덜한 면도 있다.
  이 책과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은 둘 다 융의 발견과 이론들에서 나온
것이다. 집단 무의식 원형과 심리적 형태들에 관한 그의 연구가 내 연구의
기초이다.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관한 서술은 그리스
신화와 정신 간의 연관성을 제시하였는데 융의 이론을 따르는 저자들은 그것을
훨씬 더 발전시켰다. 융이 스프링 출판사를 통해 출판한 이래 원형 심리학에
관해 많은 글들이 쓰여졌는데 대부분은 제임스 힐먼의 편집을 거쳐 이루어졌다.
이들 출판물들의 대다수는 각주와 참고 문헌이 실린 장에 목록으로 정리되어
있다. 머레이 스테인의 작업은 내게 특히 중요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가부장제 문화에 대한 점증하는 깨달음 - 그리고 가부장제
문화가 어떻게 가치 기준,인식, 궁극적으로 우리 각자를 규정짓는가 하는 것 -
이 이 책의 주요 테마다. 내가 또 고마움을 전해야 할 분들이 있는데 대부분이
여성들인, 일군의 활동가, 작가, 학자들이다. 특수 교육에 대해 나는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미즈 재단의 여성 이사들과 임원진에게 특별히 빚을 지고 있다. 진
베이커 밀러 박사, 알렉산드라 시몬즈 박사와 미국 정신 과학회 전문위원 및
여성 위원이었던 여성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수많은 워크숍을 같이
이끌었던 앤시아 프란신은 가족과 문화가 어린아이,특히 자신의 원형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어린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이 느끼도록 해 주었다.
앨리스 밀러의 글들은 심리 분석 사고에 새로운 판점을 제시하였다. 그녀의
연구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아이들 및 피해 부모에 의해 저질러지는 피해의
영향에 대해 확인하게 해주었다.
  이 책이 별다른 산고를 겪지 않고 세상에 나올수 있었던 것은 처음 계약 날
짜에 매이지 않고 여러 해의 고심 끝에 나을 수 있도록 허락되었기 때문이다.
내 연구에 이해와 시간을 내주시고 톰 그래디에게 나와 같이 작업하도록 해주
신 하퍼 앤 로우 출판사 발행인이자 편집인인 클레이톤 칼슨에게 감사드린다.
꼼꼼하게 편집을 해준 톰에게도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나의
저작권 대행인, 죤 브럭맨과 카틴카 맷슨은 각자 맡은 일을 잘해 줌으로써 내가
글을 쓸 수 있게 해주었다.
  아버지 죠셉 시노다는 내가 이 세상에서 일들을 해나갈 수 있도록 후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나는 그분의 열정, 당파 근성, 문학적 역사적 소양, 글을
쓰고말을 하는 능력을 물려받았다. 그분은 내가 정신과 레지던트 1년차였을 때
돌 아가셨기 때문에 내 아이들과 내가 쓴 책들을 보지 못하셨다. 나는 그분을
그 리워하며 우리가 같이 보낸 시간이 짧았긴 하지만 내가 바로 그 아버지의
딸이 라는 점은 행운이었다. 이 책이 따뜻함과 통찰력을 지닐 수 있음은
부분적으로 내가 성공적인 제우스 아버지를 갖고 있었다는 데 기인한다. 나는
내가 중요하 다고 생각하는 것과 아버지가 내게 원하는 것이 달랐을 때는
아버지에게 반대 하고 싸울 수 있었다.

                                                          캘리포니아 밀
밸리에서
                                                                    1988년
ll월에
 
I
  우리 속에 있는 남신들
 
제1장
우리 속에는 남신들이 있다

이 책은 우리 속에 있는 남신들에 관한 것이다. 남신들이란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고 있으면서 내면으로부터 남성을 규정짓는 타고난 유형들 또는 원형들이라
고 할 수 있다 이들 남신들은 강력하면서도 눈에 보이지는 않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성`일`대인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감정적으로 격렬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냉랭한 사람이 있고, 정신적으로 예민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몸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미적 정서에 민감하여 무아경의 몰입 상태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파노라마같이 전개되는
일치감을 맛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이들 남신들과 관계가 있다.
남성들간의 다양성과 남성 내부의 복잡성은 바로 여러 원형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며 남성들(과 소년들)이 쉽게든 어렵게든 간에 자신이 갖고 있는 여러
가능성들을 확인해 보고 그 어떤 대가를 치르면서까지도 자기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진정한 자기를 확인할수 있는 것도 바로 자기 속에 있는 원형과
관련이 있다.
  진정하다는 느낌은 타고난 경향인 특성과 잠재력을 마음껏 활성화하는 것이
라고 하겠다. 진짜 자기가 될 때야 자존심과 진정함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우리가 스스럼없고 믿음직스러울 때, 또는 스스로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라면 무엇에든 빨려들어갈 때, 자신에게 중요한 타자의 반응 때문에 낙담
하기보다는 용기를 얻을 경우에라야 활성화된다. 어릴 적부터 제일차적으로는
가족, 그 다음으로는 문화가, 우리가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보느냐
아니냐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우리가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확인할 필요가
있을 때 만일 우리 속에 있는 것과 우리에게 기대되는 것이 서로 동떨어진 것이
라면 우리는 거짓 얼굴을 한 채로 또 쓸데없는 짓거리를 하다가 끝날지도
모른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순응성
 
가부장제 문화에서 남성에게 요구되는 순응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
스테스의 침대와 같은 것이다. 아테네에 들른 나그네들은 이 침대에 눕혀졌다.
마치 중세의 고문대 위에서처럼 키가 작은사람은 잡아 늘여졌고 키가 큰 사람
은 침대 크기에 맞게 잘려졌다.
  몇몇 남성들은 표준 남성상(또는 외부의 기대)과 원형(또는 내부의 양식)에
잘들어맞는 사람의 경우처럼 자신을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에 정확하게 맞춘다.
그 들은 성공하는 데서 안락함과 기쁨을 찾는다. 그렇지만 표준 남성상에
자신을 맞추는 일은 흔히 자기 유형이 <어떻게 되어야만 한다>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 람에게는 괴로운 일이다. 잘 맞는 듯 보이는 남성도 실제로는 안 맞는
부분인 자기의 중요한 측면을 잘라 버리는 대가를 치르면서 잘 맞는 부분만을
드러내 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남성의 경우는 자신의 여러 특성 가운데 한
차원을 늘 려 사회 기대에 맞추지만 깊이와 복잡성이 없기 때문에 혼히 바깥
세상에서 이 룬 성공이 내적으로는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된다.
  마치 현대 남성들이 목표에 <도달>한 후에 겪게 되는 것처럼 아테네를 들르
기 위해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시험을 통과한 나그네는 그 일이 가치 있는 일이
었는지를 의심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윌리엄 브로일러스 2세는 <에스콰이어>란
책에서 공허한 성공이 어떤 것일 수 있는지 다음과 같이 진절머리나게 묘사하고
있다.
 
매일 아침 나는 허둥대며 옷을 걸치고 서류 가방을 챙겨 들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출근하였다. 그리고는 조금씩 죽어 갔다. 난 <뉴스위크>지의
편집장이었다. 그 자리는 남들 눈에는 아쉬을 게 전혀 없는 자리였다.
그러나그게 나와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거대한 조직을 관리하는 일이 별로
즐겁지 않았다 내가 원한건 내 개인의 성취감이지 위세가 아니었다. 내게
성공은 실패보다 더 위험스런 것이다. 실패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도록 나를 부추길 것이기 때문이다.
  유일한 탈출구는 일을 그만두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육상 팀을
그만둔 후로 나는 어떤 일도 그만두어 본 적이 없다. 난 해병대원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가했었다. 해병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고지를 향해 계속 진격하도록
훈련받는다. 그런데 난 고지에 오르자 고지에 있기가 막 싫어졌다. 난 잘못
산에 올랐고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내려와 다른 산을 오르는
일이었다. 그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글 쓰는 일이 기대 이상으로 늦어졌고
결흔도 실패하고 말았다.
  무언가를 필요로 하고 있었지만 난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난 내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테스트를 받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기준에 따라 그리고 남들의 의견과는 무관하게 성공하고 싶었다. 난
위험이 따르는 사업에 전념하고 싶었고 동료애를 원했다. 좀더 젊었다면 서부나
바다로 갈 수도 있었을 테지만 난 두 아이의 아버지이며 여러 책임을 떠맡고
있었다.

  이 남성은 권력과 명성을 가졌고 뭇 남성들이 더 나은 삶이라 여기며 평생
동안 이루려고 애쓰지만 실제 성공하는 예는 상대적으로 드문 목표를 손에
넣었다. 그러나 그는 많은 중년 남성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주요 질환인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신의 생명력과 기쁨의 원천으로부터 단절될 때
산다는 것은 따분하고 무의미하게 된다.
  이 문화에서 남성들은 지배력을 행사하고 더 나은 배역을 맡은 듯하다. 확실
히 그들은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고 유리하다. 그러면서도 많은 남성들은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이 우울증은 술을 마시거나, 과도하게 일에 열중하고
텔레비전을 보며 시간을 때우는 등 자신을 마비시키는 일로 가장된다. 그리고
더 많은 남성들이 걸핏하면 화를 내는데 남의 운전 습관에서부터 어린아이의
짜증부리는 행동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행동에 의해서든지 적개심과 분노를
드러낸다. 그들은 또한 짧은 평균 수명 때문에 고민한다. 여성 운동은 명백히
여성이  가부장제 속에서 살면서 갖는 문제들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지적했다.
그러나 많은 남성들이 얼마나 불행한가 하는 점에서 본다면 가부장제에서의
삶은 남성에게도 마찬가지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원형이라는 내면 세계
 
산다는 것이 무의미하고 맥빠지게 될 때 또는 사는 방식과 하고 있는 일이 무
언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들은 자기 속에 있는 원형과
눈에 보이는 역할 사이의 불일치를 알아챔으로써 스스로를 구제할 수 있다.
남성들은 종종 원형이라는 내면 세계와 고정 관념이라는 외부 세계 사이에 끼여
살고 있다. 강력한 경향이라고 할 수 있는 원형들은 내가 이 책에서 묘사해 온
그리스 남신의 이미지와 신화의 차림새를 하고 있다. 각각은 인성을 규정하는
나름의 충동`감정`욕구를 가진다. 내면의 활성화즌 원형과 연관된 역할을 할때
그 역할이 갖는 의미와 깊이로 인해 에너지가 발생된다.
  예를 들면 여러분이 아름다운 갑옷`투구`보석을 만드는 장인이자 발명가요,
대장간의 신인 혜파이스토스 같다면 일에 몰두하여 자기 분야의 일인자가 되기
위해 혼자 있는 시간을 작업장`스튜디오`실험실에서 보낼 것이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전령의 신인 헤르메스 같다면 자연스럽게 늘 움직이는 상태에 있는
사람일 것이다. 여러분은 그 직업이 항해중인 선원이든 국제적인 협상가든 간에
자신의 일을 좋아한다. 특히 윤리적 회색 지대에 처하게 되면 더욱 더 자신이
하는 일에 빈틈이 없다. 만일 이들 남신들 중 어느 한 남신을 닮았는데 다른
남신의 일을 해야만 한다면 열심히 일하는 데에서 기쁨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이란 자신의 특별한 원형적 본성 및 재능과 일치될 때라야 만족을
가져다 주는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개인 생활에서의 차이점들도 원형들에 의해서 정해진다. 황홀경의 신 디오
니소스를 닮은 남성은 스스럼 없는 연인이 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없다
고 느낀다면 순간의 육욕에 완전히 빠져들 수 있다. 그는 태양의 신 아폴론처럼
기술에 밝아 사랑하는 일까지도 포함하는 모든 기술 분야의 전문가인 남성과
대비된다.
  원형으로서 <남신>은 감정과 행동을 지배하는 유형으로 존재하는데 그들은
인정받든 못받든 간에 나름의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강력한 힘이다. 사람들
이 자기 속에 있는 남신들을 의식적으로 인정하고 (꼭 거명하지는 않더라도)
존중할 때 이들 남신들은 그가 본연의 모습을 되찾도록 도우며 아주 의미있는
삶 올 살도록 이끈다. 왜냐하면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내면에 존재하는 원형적
바 탕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존경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남신들은
그 럼에도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데 보통은 분열적이며 무의식적인 권리 주장을
한다. 왜곡된 동일시는 또한 남성 자신에게 해를 끼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때때로 어떤 남자가 특정 남신과 자신을 지나치게 동일시하여 <사로잡히게>됨
으로써 자신의 독자성을 잃게 되는 수도 있다.
 
 무엇이 원형인가
 
C. G. 융은 심리학에 원형 개념을 도입하였다. 원형은 선재하는 것이거나 숨어
있거나 내적으로 결정된 존재`행위`인지`반응 유형이다. 이 유형들은 집단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는데 개별적이 아니라 보편적이거나 공유된 무의식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유형들은 남신들과 여신들이란 의인화된 방식으로
기술될 수 있으며 그들의 신화는 바로 원형 이야기라고 하겠다. 그들은 감정과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며 보편적이며 인간 본성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주제들에
영향을 미친다. 그들은 우리가 공유하는 인간의 경험들이 담고 있는 진실을
알려 준다. 그리하여 그것들을 처음 듣는 순간에도 어렴풋하게 전부터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우리가 어떤 남신에 관한 신화를 해석하거나 그
의미를 지적으로 또는 직관적으로 자신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파악하게
되면 그것은 상황과 자기 자신의 성격 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의 성격을
비추는 개인의 희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원형적 인물로서 남신들은 어떤 범주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남성 
(또는 여성, 그 이유는 남신 원형들이 흔히 활동적인 여성의 심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부분을 이루는 근본 뼈대를 나타낸다. 이러한 근본 뼈대는
개별 남성에 의해 <표현되거나> <구체화되거나> <상술되며>
가족`계급`민족`종교`생활 체험`시대 상황`외모 `지성 등에 의해 그의 독자성이
규정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특수한 원형 유형을 따르는 것으로,
즉 특정 남신을 닮은 것으로 여길 수 있다.
  원형의 모습들이 집단적인 인간 본성의 일부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아주
<친숙하다>. 삼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리스 신화는 오늘날에도
살아있어서 여러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 이유는 남신들과 여신들이
인간 본성에 관한 진실을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그리스 남신들을 알아
가 는 것은 남성들로 하여금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
누 구인지 또는 무엇인지 더 잘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다. 또한 여성들은 특정
<남신>이 자신들의 심리를 이루고 있는 일부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자신들의 인생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남성들 속에 어떤 남신들이
활성화되어 있는가를 알게 됨으로써 남성들을 더 잘 알게 될 수 있다. 신화는 
<아하!> 하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진실을 알려 주는 그 무엇 때문에 우리는 직
관적으로 한 인간이 처한 상황의 특성을 보다 깊이 파악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제우스와의 닮은 점은, 비정하며 권력과 부를 쌓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며 일단 지위를 갖게 되면 더 높이 올라가고 싶어하는 남성들에게서 분
명하게 볼 수 있다. 제우스 이야기는 또 자주 스스로를 그와 동일시하는 남성
에게 잘 들어맞는다. 예를 들면 결혼 생활과 성생활이 제우스의 바람둥이 기질
을 닮고 있을 수도 있다. 제우스와 연관이 있는 독수리는 이 원형의 특성을 상
징한다. 드높은 곳에 선 그는 전체를 보면서도 세세한 것을 볼 줄 아는 눈과,
발톱으로 원하는 것을 움켜쥐기 위해 날쌔게 움직이는 능력 등을 가지고 있다.
  전령의 신, 헤르메스는 전달자, 마술사, 저승 사자, 길과 경계의 신이었다.
이러한 원형을 구현하는 남성은 안정되게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어렵다.
그는 활짝 펼쳐진 길과 주위에 널려 있는 기회의 유혹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변덕장이 또는 수은(로마 식 이름이 머큐리다)처럼 이러한 남성은 그를
붙잡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잡히지 않는다.
  제우스와 헤르메스는 아주 다른 유형들이며 각 남신을 닮은 남성들은 서로
다르다. 그렇지만 모든 원형들이 잠재적으로 모든 남성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제우스 원형과 헤르메스 원형 둘 다 같은 남성 속에 활성화되어 있을 수
있다.이처럼 자기 속에서 두 원형이 균형적으로 활성화되어 있는 사람은
제우스에  우위를 두고 헤르메스의 전달 기술과 발명적 사고력에 힘입어
스스로를 확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시일과 입장 표명을
요하는, 권력을 탐하는 자기 속의 제우스와, 자유롭고 싶어하는 헤르메스의
욕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정신적 갈등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이 둘은
여러 남신 원형들 가 운데 가부장제 문화에서 단연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남신
원형들이다.
  격이 낮은 남신들 -거부된 남신들로 그때나 지금이나 그들의 속성들은 별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그리스 신화에서처럼 여전히 남성들 속에
활성화되어 있다. 이들 남신들에 대해서는 편견이 있었다. 서구 문화는 인간
속에 있는 원형으로서 그들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
디오니소스의 호색과 열정, 다른 상황이 되면 아주 쉽사리 춤판으로 바뀌어
버릴 수도 있는 전쟁터에서 아레스가 벌이는 광란, 포세이돈의 격정,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헤파이스토스의 굉장한 창조적 재능, 하데스의 자기 침잠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계속되어 온 부정적 선입관은 개별 남성들의 심리에 영향을
미쳐, 그들은 감정적 거리와 냉정함을 유지하고 권력을 획득하는 것에 보상을
하는 문화적 가치들을 인정하고 이러한 면들을 스스로 억제할 수도 있다.
  일을 하든 전쟁을 일으키든 연애를 하든 간에 남의 기대에 맞추려고 하고 또
그 어떤 원형의 에너지도 영감을 주지 않을 경우 여러분은 너무 많은 정력과
노력을 소비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의 노력이 보상을 받게 될 수도 있겠지만
깊은 만족을 가져다 주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자기를 내면에서부터 긍정하게 되어 기쁨을 얻게 된다. 그것은 본래의
자기 모습과 일치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이 보상을 받고 외부
세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기라도 한다면 진정 행운아라고 할 수 있다.
 
남신을 살려 내기
 
모든 남신들은 모든 남성들 안에 잠재되어 있는 유형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렇지만 개별 인간 차원에서 보면 어떤 유형들은 활성화되어 있고 어떤 유형들
은 그령지 못하다. 융은 (보편적인) 원형 유형들archetypal patterns과 (우리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활성화된 원형들 activated archetypes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유추로서 수정의 구조를 이용하였다. 원형은 수정이
형태를 만들 때 어떤 모양과 구조를 이룰지를 결정짓는 보이지 않는 유형과도
같다. 일단 수정이 실제로 형태를 갖추게 되면, 현재 인정되는 유형은 활성화된
원형에 비유된다.
  원형들은 씨앗 속에 들어 있는 <청사진>에 비유되기도 한다. 씨앗이 자라는
것은 토양과 기후 조건, 특정 양분의 존재 유무, 정원사가 사랑으로 보살피는 
지 아니면 무관심한지, 화분의 크기와 깊이, 변화 자체에 대한 내구력 등에 달
려 있다. 씨앗은 싹을 틔우지 못할 수도 있고 싹을 틔운 뒤 곧 죽어 버릴 수도
있다. 싹을 틔을 경우라도 크게 잘 자랄 수도 있고 (식물의 생장에) 적정
환경이 아니어서 제대로 자라지 못할 수도 있다. 상황이 씨앗에서 자란 것의
특정한 외견에 영향을 미칠 것이지만 식물의 기본형이나 고유성은 -원형처럼 -
여전히 인정될 것이다.
  원형들은 기본적인 인간 유형들로 음악적 재능이나 타고난 시간 감각, 또는
심적인 능력,신체적 조화 같은 인간의 특질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남들에 비해 특정 원형들이 천성적으로 더 강할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우리
모두는 음악적인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가운데는 (모짜르트 같은)
신동도 있고 (나같이) 단순한 곡조도 따라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깃은
원형 유형과 관계가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특정 원형을 드러내면서 생애 내내
이 과정에 있는 남성들도 있는 듯하다 또는 어떤 원형이 중년의 남성에게
나타나는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중년 남성이 돌연하게 사랑에 빠져 갑작스레
디오니소스를 알게 되는 경우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타고난 소양과 가족의 기대
 
  아기들은 저마다 기질을 갖고 태어난다. 원기 왕성하거나 제멋대로인 아이가
있는가 하면 평온한 아기도 있고 호기심이 많은 아이도 있고 혼자서 시간을
보낼 줄을 아는 아기도 있고 남들을 필요로 하는 아기도 있다. 신체적 활동,
정력, 태도는 소년마다 다르다. 갓 태어난 아이가 질러 대는 우렁찬 울음
속에는 지금 당장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달라는, 분명한 힘이 담겨 있다. 두 살
때까지 만사를 몸으로 때우는 아이는, 어린 나이에도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듯이 보이며 쾌활하고 상냥한 걸음마를 하는 아이와는 아주 다르다. 그들은
열정적이고 본능적으로 몸을 쓰기를 좋아하는 아레스와 차분한 성미의 붙임성
있는 헤르메스처럼 다른 것이다.
  유아로서 소년으로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인 남성으로서 천성적인 경향 또는
원형 유형으로 시작하는 행동과 태도가 남들에게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거부되기도 하고 걱정거리가 되는가 하면 자랑거리가 되기도 하고 수치스럽게
여겨지기도 하면서 평가받고 반웅을 얻게 된다. 어린아이 가족의 기대는 어떤
원형들을 지지하기도 하고 또 어떤 원형들에 대해서는 가치를 부여하지 않기도
하는데 그것은 자기 아들 속에 있는 여러 기질들 또는 소년 본인의 성격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뱃속에 든 아이가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야심 만만하며
상승 이동을 꿈꾸는 맞벌이 부부는 아들이 태어나기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그
아들이 하버드 대학에 다닐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들은 자신의 지적
노력을 장기적인 목표에 둘 수 있는 잘난 아들을 바란다. 원형으로 볼 때
아폴론이나 제우스 같은 아들이라면 그러한 요구 조건에 아주 잘 들어맞아
부모를 기쁘게 해줄 것이고 출세할 것이다. 그렇지만 태어난 아들이 원형적으로
다를 경우그들은 아들이 자신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 데 대해 실망하고 화를
낼 것이다. 감정적 성향의 포세이돈이나 순간적인 성격의 디오니소스는 부모가
세운 계획대로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부조화는 아마도 역으로
아이의 자존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종종 가족내 어린아이는 가족의 기대나 스타일에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데스처럼 혼자 있거나 아폴론처럼 감정적 거리감을 두는 것을 좋아하는
어린아이는 *외향적 이고 표현적인 가족들로부터 늘 간섭을 받는 것은 물론
이상한 아이로 여겨질 수 있다. 포세이돈이나 아레스 소년이라면 이런 류의
가족 속에서 분신 편안함을 느낄 것이라 생각되지만, 아주 합리적이고 몸으로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가족 속에서는 마찬가지로 이상한 아이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이 아이의 신체 접촉 욕구는 인정되지 않고 충족되지 않은 채 남아 있게
된다.
  어떤 가족들의 경우는 아들이 아버지를 닳거나 그의 뒤를 이었으면 하는
기대감이 있다. 또 어떤 가족들의 경우는 아버지 자신이 별 볼일이 없는 사람일
경우 아들이 아버지와 공유하는 기질이 무엇이든간에 남들이 아버지에 대해
느끼는 분노와 거부감을 그도 받게 된다. 그럴 때 거기에는 그 아들도 부모의
실패한 꿈을 가지고 살아가리라는 기대가 있다. 그 아들에게 적용되는 기대가
무엇이든지간에 그것은 원형적으로 드러난 것과 앞으로 형성될 가능성이 있는
것과 상호 작용하게 될 것이다.
 
* 외향성 extraversion (extra라는 라틴어는 '바깥의'라는 뜻을 가진다)과
내향성          introversion이란 심리학적 개념과 외향적 extravert, 내성적
introvert이란 말은 융이     도입하였다. 철자나 뜻 모두 일반 용법에서는
약간 바뀌었다. <외향적>은 좀더 일     반적인 철자가 되어 붙임성 있고
사교적인 성격의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되고 있다.     융은 <외향적>이란 말은
외부 세계나 대상, 다시 말해 사건`사람`사물에 대한 관심     과 그것들에
의존하는 것에 이어지는 심적 에너지의 흐름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태     도를
설명하는 데 사용한다. <내성적>이란 말은 심적 에너지의 흐름이 안으로 향하  
  는 것을 말하는데 주관적 요소들과 내적 반응에 초점이 집중된다.
 
  어떤 소년이나 남성이 자신의 진짜 본성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자신에게
기대되는 것을 좇는다고 한다면 그는 출세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자신에게
맞는 것에 충실하지 못했기에 출세란 것이 개인적으로 무의미하며 결국 실패한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반대로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자기에게 필요한 사교술이나 경쟁력을 개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세상사에 적응하는 것이 그의 독자성과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도
가능하게 되며 그를 모나지 않은 성격의 소유자가 되도록 돕는다.
 
남신들을 살아 있게 하는 사람들과 사건들
 
  특정 남신에게 원형적이거나 <전형적인> 반응은 다른 사람이나 어떤 사건에
의해 활성화될 - 융식 표현을 사용한다면 별자리를 이룰 constellated - 수
있다. 예를 들면 친구와 싸워 멍든 눈을 하고 집에 온 아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자기 아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자가 누구든지간에 당장 보복하고
싶어하는, 원한에 사무치고 복수심에 불타는 포세이돈으로 자기 아버지를
변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그 아버지가 제우스가 자기 아들 아레스에게
한 것 같은 반응을 보인다면 똑같이 멍든 눈이라 하더라도 주먹 다짐을 한
사실을 가지고 아들에게 창피를 줄 수도 있다. 아레스가 다쳤을 때 제우스는
측은하게 여긴 것이 아니라 비판적이었다. 그는 우는 소리를 하는 아레스
아들을 호되게 꾸짖으며 그가 얼마나 밉살스럽고 싸움질하기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빈정거렸다.
  배신은 마찬가지로 다양한 반웅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남자가 자기 아내가
부정하다는 것을 알게 되거나 <자기> 여자로 생각해 온 여자가 다른 애인(그가
결혼을 했고 연애 사건이라고 해도)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그
남자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는 제우스처럼 되어 다른 남자를 없애
버리려고 할까? 아니면 아폴론처럼 여자를 죽이고 싶어할까? 아니면
헤르메스처럼 자세한 경위를 알려고 들까? 아니면 헤파이스토스처럼 연놈을
붙잡아 만인이 지켜보는데서 세상의 웃음거리로 만드는 복잡한 방법을 생각해
낼까?
  좀더 포괄적인 역사 상황은 한 남신이 한 세대 남성들 사이에서 활성화되는
상황을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황홀경의 경험을 추구하는 디오니소스
경향의 젊은이들은 60년대 마약으로 실험을 하였다. 많은 이들이 정신 질환을
앓게 되었으며 또 다른 많은 이들은 정신적으로 진보하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개 자신 안에 디오니소스적인 요소를 갖고 있지 않았을 남성들이 그 당시에는
그러했고 그 결과 이제는 그렇지 않았을 경우보다 더 감각적이고 심미적인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남성들은 스스로를 전쟁의 신 아레스와 동일시하였기
때문에 자원했을는지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불행한 징병자였으리라.
어떤 경우에 그러한 상황은 아레스의 측면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 어떤
남성들은 그렇지 않았으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남성들끼리의 끈끈한
유대`충성심`깊은 교제를 경험하게 된다. 또 다른 남성들은 아마도 동료가
지뢰를 밟아 희생당했다면 아레스의 눈먼 분노에 <사로잡혀> 피에 굶주려
날뛰며 아레스 집단 심리에 휩쓸렸을 터이다. 그 결과 일상 생활 속에서는
술집에서 벌어지는 소동도 겪어 보지 못한 남성이 잔악한 행위에 가담하게
되거나 민간인을 죽이게도 되는 것이다.
 
<행함>은 남신들을 살아 있게 한다.
 :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남신들의 발현을 금지시키는 것이다.
 
  목표 지향적이고 명석한 사고력은 문화적으로 볼 때 황금 화살로 먼 거리에
있는 과녁을 맞출 줄 아는 궁수 아폴론 같은 남자들이 타고난 기질로 세상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모든 이들은 이러한 기술들을 습득하도록 교육받는다.
특히 훗날 중요한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지금 잘해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
강조될 경우에 더욱 그렇다.
  반대로 디오니소스 소년은 타고난 재능을 별로 인정받지 못해 왔다. 그는
쉽게 감각적인 세계에 빠져들어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 완전히 사로잡힐 수
있다. 청소년 스타로서 벨벳과 실크의 촉감에 즐거워하거나 음악에 맞추어
온몸을 흔들며 춤을 출 때 그는 아마도 자신 속에서 장려되지도 않고 모든
소년에게 배우도록 권해지지도 않는, 타고난 감수성을 두드리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행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어떤 행동을 하기로
정하느냐에 파라 남신들이 불러내지거나 활성화되는 방법을 아주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흔히 묻는 질문은 "시간이 좀 걸리겠지요?"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업가는 자신이 손수 일하는 것에서 얼마나 많은 기쁨을 얻는지를
깨닫는다 - 그는 기초 작업을 하는 데 열중해 시간 가는 줄 모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헤파이스토스를 위한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면 사무실에서 집으로
밀린 일을 가져올 수 없다. 이와 비슷하게 학교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경기에
즐겁게 참가해 본 적이 있는 남성은 배구나 풋볼 경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나
같이 상대할 동료를 찾을 수 없거나, 동네 경기팀에 끼지 못할 경우 자신 속에
있는 공격적이고 육체적인 아레스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남신들과 인생의 단계
 
개별 남성은 여러 삶의 단계를 거친다. 각 단계는 그 나름의 가장 영향력 있는
한 남신 또는 여러 남신들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면 30대까지는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 끊임없이 활동하는 신인 헤르메스와 결합되어 있을 것이다. 그
순간에 그는 큰 교차로에 서 있는 것이다. 그의 생애에서 여성은 그에게 그녀와
인연을 맺거나 아니면 그녀를 잃거나 태도를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하는 선택권을
부여한다. (어쩌면 놀랍게도) 디오니소스의 또 다른 측면일 수도 있는 여성과
인연을 맺고 그 인연을 이어가겠다는 결정은 그로 하여금 헤르메스의 날개를
찢어 내게 만들며 아폴론에게 직업 세계에서 출세하게 해달라고 청하게 한다.
그 다음의 삼십 년에 걸쳐서는 다른 원형들의 차례가 돌아을 것이다. 아버지
노릇을 하고 출세를 하게 되면 남성 속에 있는 제우스를 치켜세울 수 있다.
아내의 죽음을 맞이하거나 에이즈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자기 속에 있는 하데스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때때로 어떤 특정 유형에 스스로를 강하게 동일시하는 남성들은 한 남신의
여러 측면에 상응하는 여러 단계를 거칠 수도 있다. 각각의 개별 남신들을
다루는 장에는 이러한 발전 유형들이 묘사되어 있다.
 
가부장제의 편애
 
가부장제 - 가치를 강화하고 힘을 부여하는 우리의 문화적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로 기능하는 보이지 않는 위계 체계 - 에는 편애 곧 늘 숭자와 패자,
사랑받는 원형과 그렇지 못한 원형들이 있게 마련이다. 바꾸어 말하면 특정
<남신들>을 드러내는 남성은 보상을 받거나 아니면 거부를 당한다.
  권력의 획득, 합리적 사고, 본성의 억제를 강조하는 가부장제 가치는
소년들과 남성들이 한 행동에 대해 상을 주거나 벌을 내리는 어머니, 아버지,
또래 집단, 학교, 기타 제도들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강화된다.
그 결과 남성들은 감정에 따라 자신의 개별성을 좇고 또 억누를 줄 알게 된다.
그들은 자신의 사회적 계급에 기대되는 <제복>에 걸맞는 모범생다운
페르소나(또는 그들이 보는 세상의 겉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허용되는 태도와
예절)를 내면화하게 된다.
  남들 또는 행동 기준에 <허용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간에 남성에게 죄
또는 수치의 원천이 될 수 있고 그렇기에 그는 심리적으로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에 누워 있을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이 자신을 부적당하거나 부끄럽게
느끼게 하는 원형들 또는 자신의 일부분을 잘라 내거나 억제찬 때는 심리적인
<해체> 현상이 따라온다 은유적으로 표현해서 "오른손이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그것을 잘라 버려라"라는 성서의 경고는 심리적인 자기 절단을 요구하는
것이다.
  남성들이 자주 잘라 버리는 것은 자신의 특성 중 감정적이고 상처를 입기
쉬운 부분,감수성이 예민한 부분이나 본능적인 측면들이다. 그렇지만 심성
속에는 잘라 내거나 묻어 둔 것 모두 여전히 살아 있게 마련이다. 한동안
<심층>으로 들어가거나 의식적 깨달음 바깥에 있지만 (처음부터 또는 어린 시절
이래 처음으로) 이러한 원형이 어떤 관계나 상황 속에서 허용될 때 다시
나타나거나 <기억될> 수 있다. 받아들여질 수 없는 느낌과 행위는 비밀 생활을
하는 남자들에게서는 그림자처럼 존재하며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곳에서
은밀하게 경험될 수도 있다. 마치 육신의 죄에 대해 맹렬히 비난하던 유명한
텔레비전 복음 전도사들이 그들 속에 있는 비열한 디오니소스가 드러날 때
밑으로 끌어내려졌던 것처럼 사실이 폭로되고 스캔들이 따를 때까지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곳에서 은밀하게 경험될 수도 있다.
 
남신 알기 : 우리 자신에게 힘을 부여하기
 
남신들을 알게 되면 스스로 힘을 얻게 된다. 이 책에서 여러분은 우리가
이미지와 신화에서부터 원형으로 옮겨갈 때마다 각각의 남신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각 남신이 인성과 우선 순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보게
될 것이며 그 의미와 특별한 심리적인 문제점들이 어떻게 각각의 남신들과 연결
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남신들을 파악하는 것은 곧 가부장제에 관해 알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사실은 개별 남성들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서로 영향을 주는,
강력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가부장제는 어떤
원형들의 영향을 극대화하고 또 어떤 유형들의 영향은 감소시킨다.
  남신에 관해 안다는 것은 자기를 알고 받아들이는 것을 돕고 남성들이
스스로에 관해 남들과 생각을 나누는 길을 열어 주며 많은 남성과 여성들이
자아를 실현하고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심리학자
롤로 메이는 <창조의 용기>에서 기쁨을 "고양된 의식과 어울리는 감정, 자신의
잠재성을 실현하는 경험에 수반되는 분위기"로 정의내렸다. 원형들은 곧
잠재력이다. 우리 속에는 - 우리의 가부장제 문화 속에는 - 해방될 필요가 있는
남신들과 억제될 필요가 있는 남신들이 있는 것이다.
 
새로운 심리 이론과 시각
 
이 책은 새로운, 전혀 다른 각도에서 남성과 남성 심리학을 말한다. 신화와
신학의 주제들을 추적함으로써 나는 아들에 대해 갖는 적개심이 가부장제
태도를 명백히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은 태도는 또한 심리 분석
이론에도 나타나 있다.
  나는 제2장 <아버지와 아들 : 신화는 우리에게 가부장제에 대해 말하고
있다>에서 부성의 적대감과 거부가 남성 심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장은 오이디푸스 신화가 아들을 죽이려는 아버지의 의도로 시작한다고
지적한 정신 분석가 앨리스 밀러의 통찰력을 구체화하고 있다. 아들이 아버지의
위협 인물로 보이고 그렇게 취급되는 가족과 문화에서는 아들의 심성과 문화
풍토가 적대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제안하는 새로운
심리학 관점이다.
  덧붙인다면 <우리 속에 있는 남신들>은 원형의 활성화에 문화가 미치는
영향을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남성 심리학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융
심리학에서 새롭게 강조되는 부분이다. 제12장 <행방 불명된 남신>에서 나는
새로운 남성 원형의 출현, 루퍼트 쉘드레이크의 형태장 이론에 의해 설명될 수
있는 한 가능성을 추측해 본다.
  끝으로 이 책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남신들을 의인화한 남성 원형(물론
여성에게서도 볼 수 있다)을 통해 남성의 심리를 체계적이고도 일관성 있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내가 이보다 앞서 펴낸 책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은
그리스 여신들과 여성 유형들을 여성 유형 심리학의 기초로 기술한 바 있다. 두
책 모두 우리 사이의 다양성과 우리 내부의 복잡성을 설명하는 남성과 여성에
대한 새로운 체계적인 심리학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스의 판테온
신전에 토대를 둔 이 심리학은 우리 인간 본성의 풍부함을 반영하고 있으며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우리 속에서 나와 우리 삶의 성스런 차원을 느낄 때
경험하게 되는 신성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제2장
아버지와 아들
신화는 우리에게 가부장제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가장 사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가부장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규정짓는다. 관습의 보다 외적인 차원에서 가부장제는 어떤 특성과 가치들이
장려되고 보상받는가를 결정지으며 그에 따라 어떤 원형들이 한 남성 안에서 또
남성들 사이에서 다른 원형들보다 우세하게 될 것인가를 결정한다. 철이 들게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 남성은 자신의 태도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
는 것들을 의식해야만 한다. 즉 그는 가부장제가 무엇이고 그것이 아들들을
어떻게 규정짓는지를 이해해야만 한다.
  한 문화의 신화는 그 문화의 가치와 관계의 유형을 드러낸다. 우리 신화를
파헤치기 시작하는 데 좋은 소재는 영화 <별들의 전쟁 Star wars>에 나오는
루크 스카이워커와 그의 아버지 다쓰 베이더다. 원형적 줄거리와 인물들은
현대의 영화에서든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든 간에 우리에게 인간들의 가족사와
우리 인간들이 해내고 있는 역할들에 관한 진상을 말해 주고 있다. 다쓰
베이더는 자기 아들을 없애려는 강력한 아버지로 그리스 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익숙한 주제를 반복하고 있다.
  루크 스카이워커는 이 시대의 모든 남성들 속에 있는 영웅을 상징화하고
있다. 현대 남성들이 루크 스카이워커가 되기 위해서는 그에게 개인적으로
그리고 또 모든 인간에게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밝힐 필요가 있다.
그는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의미에서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내고 파괴력에
대항하는 싸움에서 자신의 누이(자신에게 부여된 여성적 특성, 안팎의
가능성)와 힘을 합하고 같은 뜻을 지닌 남성들과 그리고 다른 피조물들과
연대하여야만 한다 바로 그 아들만이 (자기 아버지처럼 되지 않고 공포와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음으로써) 다쓰 베이더 속에 오랫동안 갇혀 있던 사랑하는
아버지를 구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다쓰 베이더는 가부장제에서
남성에게 일어났던 것을 상징한다.
  검은 철가면을 한 다쓰 베이더의 거대한 모습은 권력과 지위를 손에 넣는
것이 자기의 삶이 되어버린, 인간적인 모습을 잃어 가는 남성의 이미지다.
흉악한 힘이 그에게서 뿜어 나온다. 그는 성능 좋고 무지막지한 기계를 닮아
상관이 내리는 명령을 수행하고,남들도 자기같이 군소리 없이 일하기를
기대하면서 명령을 내린다. 루크에게는 적대적이고 파괴적인 자기 아버지가
그렇게 보였다. 다쓰 베이더는 가부장제의 어두운 면의 이미지이다.
  다쓰 베이더의 본 모습은 그의 정체성이자 갑옷이며 생명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철가면 속에 숨어 있다. 그는 그것을 벗을 수가 없다. 너무나 많이
다쳐서 철가면이 없다면 곧 죽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신의
페르소나를 그들이 이 세상에서 쓰고 있는 가면이나 겉모양과 동일시하는
남성들에게 좋은 비유가 된다. 중요한 개인적 삶이라곤 없는 그들은 자신들의
페르소나와 지위로 버틴다. 그들은 친밀한 감정적 연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감정적으로 공허하기 때문에 권력과 지위를 상실하고 나면 살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쓰 베이더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천상의 아버지 남신들과 같은 전통에서
볼 수 있는 원형적 아버지상이다. 우라노스, 크로노스 그리고 좀 덜하긴 하지만
제우스는 자식, 특히 아들에게 적대적이었다. 그들은 아들이 자신의 권위에
도전할까봐 두려워했다. 여기서 아들 루크 스카이워커는 한 무용담의 주인공
역을 맡는다. 그것은 또 하나의 원형이라 하겠다.
  그래서 나는 저명한 신화학자이자 <천의 얼굴을 한 영웅>을 쓴 죠셉 캠벨이
<별들의 전쟁>을 영화로 만든 죠지 루카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고는 놀라기도 하고 전혀 놀라지 않기도 했다.
  신화학자 캠벨, 신화 창조자 루카스, 그리고 융 심리학 간의 연계성은 놀라운
일이   
* 영화가 대단한 흥행을 거두고 나서 생긴 됫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굉장한
명성    을 얻고 있었지만 겉모습은 대학원생 같아 보였던 루카스는 융
연구소가 후원하는,     어떤 행사 준비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예술 회관 무대
뒤에 있던 죠셉 캠벨을 만나기    위해 뒷문으로 몰래 들어갔다고 한다.
 
아니다. 융 심리학 이론은 신화가 왜 우리의 상상 속에서 생명력을 갖는가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우리가 의식하든 안하든 신화는 우리를 통해
그리고 우리 속에 살아 있다. 서양에서 고대 그리스 신화는 여전히 가장 많이
기억되고 있고 가장 강력한 힘을 미치고 있다.
  신화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문화사를 보여 주는 고고학적 유적지와도 같다.
어떤 이야기는 산산조각난 파편과도 같아서 우리는 그 조각들을 이어서 (전체
줄거리를) 추측해 내기도 한다. 또 어떤 이야기는 폼페이의 잿더미에 묻혀
있다가 발굴된 프레스꼬 벽화처럼 아주 잘 보존되어 있고 상세하다.
  나는 그리스 신화를 우리 문명의 유년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생각한다.
이들 신화는 우리가 자라면서 갖게 된 태도와 가치 기준에 관해 많은 것을 말해
준다. 개인의 가족 이야기나 신화가 그런 것처럼 그리스 신화는 현 세대에게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에게 기대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것을 전달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의 유전적 기억 속에 있는 것이고 눈에 보이지 않게
우리의 지각과 행위에 영향을 끼치고 우리를 형성시키는 심리학적 유산의
일부이다.
 
올림포스 신들의 가족 이야기
 
제우스 및 올림포스 신들에 관한 신화는 가부장제의 족보와 그것이 우리 인간의
개인적 삶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을 밝혀 주는 <가족 이야기>다. 이 이야기들은
용사신들을 가진 인도 유럽어 족의 후손인 그리스인들로부터 전해 내려 오는
태도와 가치에 관한 것이다. 인도 유럽어 족은 초기 여신을 숭배하던 구유럽과
그리스 반도의 사람들을 정복하기 위해 몰려 들었다. 그들은 우리의 선조
설립자 아버지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그 앞서 존재했던 모계 사회에
대해서는 그 기억을 지우거나 아니면 단지 암시할 뿐이다.
  가족이 흔히 그렇듯이 가계를 세우기 위한 싸움을 여러 해 동안 겪은 후에는
사람들은 일어난 것들을 기록하고 가계를 재구성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호메로스(기원 전 750년경)와 헤시오도스(기원 전
700년경)에게 많은 덕을 본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오디세이아>는 몇 가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서사시 속에 신화적 주제를 잘 보전한 반면
헤시오도스는 남신들의 기원과 계보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신통기>에
수많은 신화적 전통을 처음으로 잘 구성하였다.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태초에는 공허만이 있었다. 공허에서부터 가이아(땅)가
탄생되었다. 가이아는 산과 바다와 우라노스(하늘)를 낳았다. 우라노스는
가이아의 신랑이 되었다. 가이아와 우라노스가 결합하여 열두 명의 티탄 -실제
그리스에서 숭배되었던 고대의, 원시적인 자연의 힘 - 의 부모가 되었다.
헤시오도스의 남신 족보에는 티탄 족이 초기의 지배 왕조이면서 올림피아
신들의 부모요 조부모였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초의 가부장제 인물 또는 최초의 아버지 우라노스는
가이아의 출산을 불쾌하게 여겼다. 그는 아이 낳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막내가 태어나자 그는 아이들을 가이아, 지구의 거대한 몸뚱이 속에
감추어 한낮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하였다. 가이아는 갓난아이에게 이러한 폭력이
자행되는 것에 대해 몹시 고통을 받았다
  그래서 가이아는 어른이 된 자기 자식들인 티탄 족에게 도움을 청했다.
헤시오도스가 기록한 대로 그녀는 고통스러워하면서 다음과 같이 대담하게
말했다. "얘들아, 너희는 잔인한 아비를 두었구나 너회가 내 말을 듣는다고
하면 그가 저지른 극악 무도한 행위에 대해 복수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바로 폭력 사용을 시작한 자다."
  그런 까닭에 헤시오도스의 <신통기>는 우라노스가 자식들에게 저지른 폭력을
이후의 폭력을 낳은 최초의 죄악으로 보고 있다. 그것은 천상의 아버지 남신의
원죄로 다음 세대들에서 되풀이된다.
  막내 크로노스(로마에서는 사투르누스라고 부름)를 제외한 모든 티탄들은
아버지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크로노스만이 가이아의 도와달라는
울부짓음에 다음과 같은 말로 대응하였다. "어머니, 당신 계획을 실행하는 데
기꺼이 동참하겠어요.전 파렴치한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습니다. 그는 폭력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잖아요."
  그는 가이아가 준 낫과 자신이 생각해 낸 방안으로 무장을 하고는 아버지를
기다렸다. 우라노스가 가이아와 부부 관계를 맺으려 자리에 들었을 때
크로노스는 낫을 들어 아버지의 남근을 잘라 그것을 바다에 던져 버렸다. 자기
아버지를 거세하고 나니 이제 크로노스가 가장 힘센 남신이 되었다. 그는 자기
형제들인 티탄들과 함께 세상을 다스리고 새로운 신들을 만들어 냈다.
  크로노스는 누이 레아와 결혼했는데 그녀는 자기 어머니 가이아처럼 대지의
여신이었다. 이들이 결혼하여 올림포스의 첫 세대를 낳았는데
헤스티아,데메테르, 혜라, 하데스, 포세이돈, 제우스가 바로 그들이다.
  그런데 또다시 가부장제의 선조 -이 당시에는 크로노스 - 는 자기 자식들을
없애려 하였다. 자식에 의해 제거될 운명에 처해 있으며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도 없다는 경고를 받은 그는 자식이 태어날 때마다 -갓난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 보려고 하지도 않은 채 - 즉시 삼켜 버렸다. 그는 딸 셋과
아들 둘을 모두 삼켜 버렸다.
  자식을 끊은 슬픔에 잠겨 한번 더 임신을 한 레아는 가이아와 우라노스에게
이번 마지막 아이만은 구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그의 부모는
가이아에게 출산할 때가 되면 크레타 섬으로 가서 돌덩이를 포대기에 싸서
크로노스의 눈을 속이라고 말깼다. 허둥대던 크로노스늘 돌을 자기 아이로
생각하면서 삼켜 버렸다.
  마지막 남은 이 아이가 제우스인데 그는 실제로 아버지를 몰아내고 최고
지배자가 되었다. 성인이 될 때까지 비밀리에 키워진 제우스는, 올림포스 이전
시대의 지혜의 여신이자 첫아내인 메티스의 도움을 받아 크로노스로 하여금
올림포스의 형제신들을 토해 내게 하였다. 그는 자기 편인 그들과 힘을 합해
크로노스와 티탄 족을 무찔렀다. 세 세대 동안 폭력은 폭력을 낳았다.
  이렇게 승리를 거둔 후 남신 삼형제,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는
자기네들끼리 세상을 나누어 가지려고 제비 뽑기를 했다. 제우스는 하늘을,
포세이돈은 바다를, 하데스는 저승을 얻게 되었다. 대지와 올림포스 산은
암묵적으로 공동소유의 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우스는 자기 영역을 너머 이
영역까지 자신의 통치를 확대시키게 되었다. (세 자매들은 아무것도 갖지
못하였는데 이것은 가부장제 전통을 지닌 그리스 문화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
  성관계를 통해 제우스는 차세대 신들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설적인
영웅인 반신 반인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는 자식들을 왕성하게 낳으면서도
이전의 자기 아버지처럼 아들에게 몰려나지 않을까 하는 위협을 느꼈다.
제우스의 일곱 아내 가운데 첫째인 메티스가 아이 둘을 낳으리라는 예언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신들과 인간들을 다스리게 될 아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메티스가 임신을 하자 제우스는 아들을 임신하였을까봐 초조해 하면서
아이를 낙태시키기 위해 그녀의 몸을 작게 만든 다음 삼켜 버렸다. 그런데
사실은 그 아이는 아들이 아니라 딸 아테나였고 결국 그녀는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나게 되었다.
 
아버지들인 하늘의 남신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버지 남신들은 모든 가부장제 문화에 등장하는 신들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미지나 이상으로서의 아버지 신들은 남들을
지배하는 힘이 센 남성신이다. 그들은 그 문화에서 힘있는 남성들의 실제보다
과장된 모습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원형적 인물로 그들의 신화는 비유적으로
그러한 남성의 심리에 관해 많은 것을 말해 준다.
  가부장제 남신들은 천상, 산꼭대기나 하늘에 사는 권위적인 남성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위에서 그리고 먼 데서 지배한다. 그들은 모두가 복종하기를
기대하며 그들이 주요 남신들인 한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할 권리를 갖고 있다.
전사 신으로서 그들은 경쟁자를 무찌름으로써 패권을 장악했고 대권을 가진
이들을 질투하였으며 복종을 요구하였다. 그들은 모든 권력을 갖고 있음에도
자신들의 운명이 한 아들로 인해 거세되리라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었다.
아버지로서 그들은 종종 아버지답지 않게 행동하며 그들의 자식에게 적대감을
나타낸다.
  아들을 <매장>하려 한 우라노스는 자식들이 창조된 대로 자라거나 발전하게
내버려 두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잠재성을 억누르려 애썼다. <삼켜 버리거나>
<먹어 버리는> 식으로 크로노스는 자식들을 자신의 일부로 만들려고 하였다.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아버지가 자식이 자기보다 더 크게 성장하거나 자신의
지위나 신념에 도전하는 것을 막아 버리는 방식이다. 아버지는 그들을 어둠
속에 있게 하면서 그들이 경험을 확장시키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나 교육 그리고
가치에 노출되는 것을 꺼린다. 그는 자식들이 자기와 다르지 않으며 자식들은
자기를 거스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만일 자식이 독립적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못한다면 그 자식은 적수가 못될 것이다. 그래서 자식의 자율성과
성장을 소진시키는 아버지는 내가 이름 붙인 <크로노스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제우스는 임신한 아내를 속여 작게 만들고 그녀를 삼켜 버렸다. 그녀는 몸이
작아지면서 힘을 잃었고 그녀가 지닌 속성도 먹혀 버렸다. 가모장제가
가부장제에 의해 먹히게 되면서, 그 전에 여신들과 연관되었던 속성들이 남신의
전유물이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몰락은 여성들이 일단 결흔을 하고
임신을 하게 되면 변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그들이 권위적인 제우스 유형의
남편들의 의견을 따르게 될 때,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법과 자신들이 예전에
행사하던 권위를 잃게 된다.
 
오이디푸스 - 과연 유죄인가
 
  여러 세대를 건너 뛰면 우리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인 오이디푸스를
만나게 된다. 그는 자신이 하는 짓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였다. 프로이드는 자신이 이름 붙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분석하면서 정신 분석학을 창시하였다. 그는 이러한 살인과 결혼이 모든 아들이
무의식적으로 바라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프로이드는 또한 자신이 지도한
(자신의 것과는 다른 이론을 발전시켜 언젠가는 그 지위가 자기와 필적할지도
모를 융과 아들러 같은)남성들을 버림받아 떠돌아다니는 오이디푸스 아들같이
대했다. 융이 집단 무의식 이론으로 이어지는 것으로써 자신의 꿈 이야기를
프로이드에게 말했을 때 그는 그 꿈을 자신, 프로이드를 죽이려는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프로이드는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라이오스를 아무것도
모르는 희생자로 보았다. 그렇지만 이런 식의 해석은 정신 분석학자 앨리스
밀러에 따르면* 전연 사실과 맞지 않는 것이었다.
  라이오스는 테베의 왕이었다. 그가 어찌하여 아내와 자기 사이에 자식이
없는지를 알아 보기 위해 델피 신전에 갔을 때 신탁의 응답은 다음과 같았다.
"라이오스, 너는 자식을 갖고 싶어하는구나. 너는 아들을 갖게 되리라. 그러나
네가 그의 손에 목숨을 잃게 될 운명이로다 ‥‥‥그것은 네가 자식을 빼앗은
적이 있는 펠롭스의 저주 때문이

* 앨리스 밀러는 현대 심리 분석가로 Thou Shalt Not Be Unaware : Society's  
        Betrayal of the Child에서 오이디푸스가 자기 아버지를 죽이게 되는
맥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화와 다른 증거들로부터 밀러는 종종 엄하게
다루어야 하는 사악한     성격이나 비열한 동기를 순진한 아이에게 돌리는
유형을 기술하고 있다. 여기에서      아동에 대한 학대가 합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 라이오스는 젊은 시절 자기 나라에서 도망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자신을 받아들여준 펠롭스 왕의 도움으로 그곳에 피신하여 있었는데
거기서 이런 잘못을 저질렀다. 라이오스는 펠롭스의 잘생긴 어린 아들을
농락하여 그가 자살하도록 만듦으로써 이 친절을 갚았다.
  라이오스는 먼저 자기 아내와 별거함으로써 운명을 피해 보려 했다. 그런데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관계를 가졌고 이오카스테는 아들을 낳았다.
예언이 두려워 라이오스는 이 갓 태어난 사내애의 발목에 구멍을 뚫어
가죽끈으로 묶은 다음 산 속에 내다버려 죽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이 살인을
수행하기로 한 목동이 죄없는 아기를 가엾게 여긴 나머지 아기를 동료 목동에게
주고는 라이오스에게 돌아와서는 그가 시킨 대로 한 것처럼 행동했다.
라이오스는 자기 자식이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 죽거나 사나운 맹수들에게
갈기갈기 찢기워지겠지라고 확신하고 나니 안심이 되었다. 목동은 이 사내애를
오이디푸스(발목에 난 상처 때문에 <부은 발>이란 뜻)라 부르고 어떤 부부에게
주었다. 양부모는 그를 키우면서 그에게 자기들의 친자식인 것처럼 믿게
만들었다.
  어른이 된 오이디푸스가 보에티아를 향해 여행하는 중에 어떤 갈림길에
이르자 전차를 탄 어떤 늙은이를 수많은 군중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그
늙은이는 가축을 모는 막대기를 그에게 휘두르고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오이디푸스는 이렇게 까닭 없는 시비에 화가 나, 지팡이로 되받아치고는 공격한
늙은이를 쓰러뜨려 죽여버렸다. 이 사건 후에 그는 단지 자기를 해치려 한 어떤
평민에게 복수를 하였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여행을 계속했다. 늙은이의 옷이나
외모는 그에게 귀족이라는 인상을 전혀 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테베의
왕이자 그의 아버지인 라이오스였다.
  앨리스 밀러는 오이디푸스를 비난하는 부당함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에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알을 파냄으로써 스스로에게
벌을 내린다. 그는 라이오스가 자기 아버지라는 것을 알 길이 없었는데도,
라이오스가 어린 아들을 죽이려 했고 그랬기 때문에 오이디푸스가 그를 알아
보지 못한 책임이 있는데도, 라이오스가 길을 가는 오이디푸스의 화를 돋군
장본인임에도, 오이디푸스가 이오카스테에게 욕정을 품은 것이 아니라 그의
지혜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테베를 구해 준 것을 이오카스테가
고마워하였기에 그녀의 남편이 되었음에도, 어머니 이오카스테가 부은 발을
보고도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음에도, 지금까지 오이디푸스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썼다는 사실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 듯하다.
 
  더 나아가 밀러는 "어린아이들 자신이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것이 늘 당연시되었고 그들이 자랐을 때는 자신들 과거가 진짜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의식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라이오스가 아들 오이디푸스를 죽이려고 했으나 결국 죽이지 못한 것은
아들들을 죽이려 했던 그리스의 하늘 아버지 신들의 신화를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각 사례에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관한 심리 분석
이론에서처럼 아버지는 갓 태어난 아기가 자기를 없애고 싶어한다고 믿고
그럼에 따라 아버지는 신생아를 위협적인 경쟁자로 다루게 된다. 크로노스와
제우스는 자신들이 자기 아버지들에게 이미 한 짓을 아들에게 당하게 될까봐
두려워했다. 라이오스는 아들이 보복의 대행자가 될까봐 두려워했다. 신화에서
자식을 죽이려한 아버지들을 합리화하는 것은 늘 <예언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정신과 통설은 <과대 망상 때문>일 것이다. 융 심리학의 통설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억눌린, 또는 자기와는 관계가 없는 감정`동기`행동을
남들의 탓으로 돌릴 때 일어나는) <그림자가 투영된 때문>일 것이다.
  투영과, 투영에서 나오는 행동이 투영되는 사람들을 규정짓는다. 마치 나쁜
아이처럼 취급되고 거부당하고 버려지거나 학대를 당한 어린아이는 죄의식으로
대응한다. 그는 "난 이런 취급을 받는 게 마땅해"하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는
처음에는 잘못 취급당하고 다음에는 죄를 뒤집어쓰는 이중의 고통을 겪는다.)
  제우스와, 라이오스 같은 인간 왕들은 다른 사람들을 다스리는 지상의
통치자였다. 왕들은 제각각 지역과 백성들에 대하여 권력을 강화하였고
주권자로서 지배하였다. 이러한 통치 형태 및 그 속에 내재하는 가치 기준은
가부장적이다. 그것은 곧 남성들의 위계 질서라고 할수 있다. 개별 남성들은
확립된 질서안에서 살아가는데 정상에는 제우스 또는 신이, 그 밑에는 그보다
지위가 낮은 신들이, 그 밑에는 어떤 남신을 아버지로 둔 인간 왕, 그 밑에는
가신과 신하들이 자리한다. 최고 책임자와 대표 이사를 가진 대기업체들은
현대판 제우스이자 올림포스 신들이다. 군대는 로마 카톨릭 교회와 대다수의
우애 단체 조직들과 마찬가지로 위계 질서를 휠씬 더 공식화하고 있다.
 
가부장제 가정의 힘없는 어머니들
 
제우스를 포함하여 모든 올림포스 남신들은 힘이 세고 종종 학대를 하는
아버지에게 종속된, 힘없는 어머니를 두었으며 대다수는 그들의 지배 아래 있는
아내들을 갖고 있었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여신이든 인간이든 간에 여성들은
남신들과의 관계에서 공정치 못하게 대우받았다. 그리고 여성들과 어머니들이
그 가치를 별로 인정받지 못하고 힘도 없으며 자기 아들들(그리고 딸들)을
보호하지도 못할 경우 그 아들들은 그녀들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느끼게 된다.
그들을 낳아 준 어머니는 곧 식량 공급자요 양육자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신생아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경험하는 대상인 동시에 전능한 존재이다.
그녀가 나중에 그를 보호하지 못하거나 그를 떠나거나 또는 누군가에게 첫째
자리를 내주는 것은 아들이 어머니, 그리고 자신이 감정적으로 의지하게 된
여성이 자기를 배반하고 거절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성인이 된 그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에게 느꼈던 말할수 없는 분노를 다른 여성들에 대해 갖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가부장제 문화에서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여성들을 향한 적대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부분적으로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더 복잡한 문제는, 여성들이 힘센 남성, 곧 아버지, 남편, 형제들, 또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제한하는 문화에 의해 억압을 받을 경우 그들
가운데 몇몇은 힘없는 남성들 - 어린 아들들 -에 대해 (종종 무의식적으로)
원한을 품게 되는데 특히 어린 사내애가 자기 아버지를 모방하거나 고집을
부리고 거칠게 굴기 시작할 때 그렇다. 이는 공공연한 학대나 거부라는 형태를
취할 수 도 있고 비꼬거나 창피를 줌으로써 이루어질 수도 있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여자 형제들 또한 남자 형제들이 나이가 적거나 아주
어릴 경우에 비슷하게 남자 형제들을 골탕먹이기도 한다. 이러한 연쇄 반응은
어린 시절에 비롯되는 여성들에 대한 적대감의 또 다른 원천으로, 많은
남성들은 등치가 커지고 힘이 세어지게 되면 어릴 때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적대감을 여성들에게 드러내게 된다.
 
  가정 : 남자의 성
 
가부장제 문화에서 모든 남성들은 집안에서만은 왕에 버금가는 권위를 갖고서
각자의 가족을 다스린다. 보수 우파와 근본주의 기독교 종파들은 집안의
왕으로서 군주이며 주인인 남성의 지위를 훼손하는,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를
침해 하는> 입법 활동이나 사회 복지 시설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낸다. 피난처
및 때리는 남자를 피하는 수단을 제공하는, 매맞는 여성을 위한 집에 대한
반대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살아가면서 자기 몸이나 재산에 대해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며 재생산에 대한 선택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에 대한
<전통적인> 반대는 가부장제로 말미암은 것이다.
  한 왕조의 창시자인 하늘 아버지는 아들들을 출세시키는 데,세상에서
그들에게 알맞는 자리로 여겨지는 것들을 마련하는 데 크나큰 관심을 가진다.
그 과정에서 아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혼자 힘으로 찾기보다는 아버지의
야망에 의해 살아갈 경우 그는 아들의 생명력을 <소모시킬>수도 있다. 소모적인
특성은 아들의 성향이 아버지가 기대하는 바와 다를 경우에 특별히 강하다.
  미국 정치에서 하늘 아버지의 전설적인 한 예는 야망 때문에 자식을
이용했다고들 말하는 죠셉 P. 케네디다. 이민 2세인 케네디는 상류 사회의 속물
근성의 자극을 받았다. 그의 야망은 극에 달해 자신이 그렇지 못하다면 아들을
통해서라도 정상에 오르겠다는 것이었다 부와 권력의 강화,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바람둥이 기질은 그를 현대판 제우스로 만들었다. 외향적인 정치가의
역할이 자연스러웠던 장남 죠 케네디 2세는 미국 대통령에 출마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가 비행기 추락으로 죽자 둘째 아들 죤 F. 케네디가 타고난
성격과 신체적 곤란은 아랑곳없이 이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리고
죤 F.케네디가 암살되자 셋째 아들인 로버트 F. 케네디가 그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하늘 아버지와 아들 : 소외와 경쟁
 
아버지들이 자식들에 대해 아버지답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비단 그리스
신화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정신과 임상 경험을 통해 나는 많은
남성들로부터 그들이 얼마나 아버지 노룻을 못하고 있는지, 자기 아버지들이
그랬던 것처럼 얼마나 감정적으로 소원하며 늘 판단하려고 하고 거부를
일삼으며 폐쇄적이며, 경쟁적이다 못해 학대를 일삼기까지 하는지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또 이것이 아들(그리고 가족)에게 얼마나 많은 슬픔과 고통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는지, 그 유형이 다음 세대들을 통해 어떻게 전수되어
왔는지에 대해 들었다. 또 가까와지고 싶어하고 지원해 주고 싶어하는
아버지들의 의도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아들에 대한 적대감을
누그러뜨리지 않아 곧이어 죄의식을 느끼게 되고 한편으로 아들이 그들에게
얼마나 많이 화를 내는지 어리둥절해 하였던 순간들에 대해 듣는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가 소원하게 된 것은 자식이 경쟁자라는 인식 또는
그로인한 분노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현상은 아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일어나기도 한다. 아내의 임신 사실 자체가 어린 시절의 감정을
불러일으킬수도 있다. 그는 사소한 일을 우울증이나 무력감을 피하는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아내가 임신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임신한 자기 어머니,
임신과 새형제 자매가 어린 그에게 가져다 주었던 고통스런 기억들이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
  (그 당시에는 어린아이였지만) 이제 남편이 된 그는 인생에서 어머니 노룻을
하는 동시에 양육을 하는 여성에게 덜 핵심적이고 덜 중요한 존재가 된다.
인기의 하락은 임신과 더불어 시작된다. 아내는 자기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올 마음을 쓰거나 피곤해 하거나 또는 남편과 함께 하던 일들을 하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에게 좀더 몰두하며 남편에게 덜 관심을 갖게 되고,
남편임을 확인하는 데 중요하며 그와 가까움을 느끼는 주요 수단이었던
성관계에 대한 흥미를 잃기도 한다.
  그가 그 동안 억눌러 온, 갓난아기 시절에 가졌던 분노`적대감`경쟁 의식이
이제 아내의 임신으로 되살아나게 된다. 또한 장차 아버지가 될 사람으로서
이같은 감정을 가진다는 것은 더더욱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기 때물에 그 감정을
전처럼 숨겨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의 아버지 신들처럼 그는 이 경쟁자가
자기를 대신하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아이의 출생, 특히 첫아이의 출생은 남성에게 다음 단계의 인생길로 접어들게
한다. 아이의 출생은 일자리가 불안정하거나 장래의 희망이 없는 많은 남성들로
하여금 자신이 생계 부양자로서 합당한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고
가족을 부양할 책임을 지는 것을 겁내게 만든다. 남성성에 대한 이러한 다음
단계의 시험을 거치면서 자신이 부적당하다고 느끼는 경우 이 아이가 자기
자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비이성적인 두려움을 가질 수도 있다.
  더 나아가 그는 올가미에 걸려 들었다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흔히들
결혼을 하게 되면 무겁고 둥근 쇳덩이가 달린 사슬을 찬다고 하는데 이제
결흔한다는 것과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별개의 결단이자 별개의 인생 단계다.
결혼보다는 아이를 갖는 것이 올가미에 걸렸다는 두려움이 극대화되는
지점이다. 종종 아버지 노룻을 한다는 것은 저당을 잡히고 생명 보험을 들고
한동안 또는 그때부터 유일한 생계 부양자가 되거나 청구서를 지불하기 위해서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는 일이나 부업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남들이 부부에게
축하 인사를 하고 임신한 아내를 두고 야단 법석을 떨어도 남편은 아기의
출생이 기쁘기보다는 두렵고 화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다음에는 갓난아이들이 모든 관심의 대상이 되어 또 다시 아마도 많은
남성들에게 고통스러웠을 어린 시절 경험을 되풀이하게 만든다. 아내는 이제
아내이기보다는 애엄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처럼 아기는 일시적이나마 사실상
그를 밀어내게 된다. (남성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볼 때)자신들이 갖고
있으면서도 드러내 놓지 않은 감정은 아이를 가질 수 있고 아이와 같이 지낼 수
있는 아내를 부러워하거나 아내의 관심을 끌며 아내의 살결을 맞대고 지내는
아기를 부러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부부가 성관계를 갖고 있지 않을 경우에
특히 그렇다. 그가 어루만지던 가슴은 이제 양육받는 아들의  <것이다>. 또한
아이의 출현은 부부 둘만의 배타적인 생활에 종말을 가져온다.
  가부장제 문화에서 아기와 아버지는 연결될 수 있는 기회를 별로 갖고 있지
않다.   "기저귀를 갈아 채워 본 적이 없다"란 말은 일반적으로 남성들에게
자랑 거리가 되곤 했다. 어린아이 -특히 아들 -들은 아버지의 남성성의
증거물이자 자기 세력을 확대하거나 자기의 야망을 지탱하는 수단이었다 하늘
아버지가 아이를 돌보는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에게 있었던 아이를
걱정하고 보살피는 자질을 아기가 감정적으로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것은 분만하기 위해 진통을 하는 순간 내내 그리고 아이와의 친밀한 연결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분만 순간에 자리를 지켰던, 일군의 남성들과 얘기하면서
내가 갖게 된 인상이다. 그러나 유대가 생기지 않는다면, 새로 아버지가 된
남성이 아이와 아내에 대해 애정과 보호 본능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화를
낼는지도 모른다. 그는 아내의 임신과 아이의 출생을 일련의 박탈감으로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가 아들일 경우 갖게 되는, <침입자>에 대한
분노와 자기를 <떠나> 아이에게 가버린 아내에 대한 분노는 의식할 수도 있고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는 감정이다. 치료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을 경우 이러한
분노의 감정이 대개 자포자기의 두려움과 하찮다는 느낌을 짙게 깔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아버지는 훈육이란 이름으로 또는 "아들이 사나이가 되는 것을
돕는다"면서 아이에게 체벌과 폭언과 조롱을 일삼기도 한다. 그는 아이와 같이
놀이를 하면서 매번 아이를 두들겨 패려 든다. 장난으로 시작된 싸움은 늘 어린
소년이 우는 것으로 끝나게 되는데 아이는 울었다는 것 때문에 굴욕감을 느끼게
된다. "아빠가 집에 오지 말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네 살에서 여섯 살
사이의 아이는 아버지의 경쟁심과 분노를 진짜로 두려워할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그것이 오이디푸스 학설을 검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버지 대신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아버지의 질투심을 사는 아들은
아버지의 힘이 약해지는 만큼 성인 남성으로서 자기 힘을 키워 나갈 것이다.
그리스의 하늘 아버지 신에 관한 신화처럼 어떤 식으로든 없애버리지 않는 한,
아들은 언젠가는 아버지의 힘에 도전할 위치에 있게 되어 그의 권위를 전복시킬
것이다
  모든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고 싶어한다는 정신
분석 학설과 원죄 교리는 분노하는 하늘 아버지들이 아들들에 대해 느끼는
적개심을 정당화하는 이론들이다. 훈육에 대한 <필요성>은 더 나아가 <매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 같은 격언으로 뒷받침된다.
  아들들은 유아 시절부터 자신들을 못되거나 버룻없는 애로 보고 그령게
취급한 아버지를 처음에는 믿지 못하다가 다음에는 무서워하며 그 다음에는
적대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들을 키우고 같이 놀아 주고
가르쳐서 아들에게 긍정적인 역할 모델이 되는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럴
경우에는 아들이 어머니보다는 아버지와 더 가까워지거나, 아니면 때에 따라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있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종종 학대하지는 않으나 단지 감정적으로 없는 것이나 다름없고 신체적으로도
같이 있을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 소원한 하늘 아버지를 둔 아들도 있다. 내가
만난 남성 환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러한 아버지를 경험하였다. 그들은
아들이 (오이디프스 학설처럼 적대감보다는) 소원한 아버지의 관심을 끌고
인정을 받았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에 이 아들들은 그들이
이상화한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아들이 아버지가 정말로 자신을 알아보고 자식으로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한,
그에게 갖는 지배적인 감정은 동경과 슬픔인 듯하다. 자기 아버지가 아버지
노룻을 하리라는 회망과 기대를 버린 후에야, 또 아버지가 자기를 사랑하리라는
희망을 버린 후에야 아들은 아버지에 대해 화가 치밀게 된다.
  감정적으로 소원한 하늘 아버지와 젊은 아들의 관계는 형식적이거나 의례적인
성격이 짙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있을 때 그들은 어느 누구도 속마음을
내놓지 않은 채,아마도 "어떻게 지내니?" 같은 정도의 말로 시작하는, 능히
예측할 수 있는 대화나 질문을 나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하늘 아버지와
아들의 그러한 관계는 명백히 차라리 속 편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소외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편안함의 바로 밑에는 실망이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의미하는 전부가 아버지의 자부심의 연장이라고 아들이
느낄 때는 노골적인 적대감이 일어날 수도 있다. 아들이 아버지가 자기를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아들의 성공에 힘입고 있다고 느낄 때
소외의 폭은 커진다. 운동 선수인 아들들은 특히 이런 식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감정을 가지기 쉽다.
  심리학자이자 <문제 운동 선수들>을 쓴 브루스 오길비에는 스포츠 심리학
분야의 최초의 전문가다. 굉장한 유격수로 장차 메이저 리그에서 최우수 선수로
뽑히리라고 예상되었다가 정작 메이저 리그 스카웃 심사에서는 그렇지
못했다면서 자신을 찾아온 한 청년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는 수비를 맡고 있었고 스카웃 심사단에게 자신의 기량을 보여 주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그때 갑자기 잇달아 날아오는 공을 열 개 이상 놓쳤다는 것이다
"잠깐만 난 당신의 모든 체험을 나와 함께 재생시키기를 바라는데요 ‥‥‥‥
그는 "오, 맙소사. 빌어먹을! 오른쪽 관중석에 몰래 들어가 있는 아버지가 보일
게 뭡니까"라고 내게 말하기 전까지만 해도 모든 공을 성공적으로 처리했다면서
말을 순순히 풀어갔다. 그의 아버지는 그의 운동 능력을 제외하고는 아들과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상황을 모두 회상하고 난 후에 그는
만일 자신이 자기 야망을 충족시켰다면 그것은 동시에 아버지의 욕구도
충족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참을 수도 없었다. 나는
이같은 사례를 수천 개 들 수 있다. 나는 미국 전역에 있는 모든 도시의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여기에 인용한 운동 선수는 자기의 기량이 모두 아버지와 관련된다는 것이
싫었고 또 자기의 성공이 아버지의 야망이나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아들 특히 장남이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역할이자
그들이 태어날 때 (딸에 비해) 가치를 부여받는 이유인 것이다. (자식을 두어)
자랑스러워 하는 아버지는 시가를 건네면서, 이제 자기 이름(그리고 야망)을
이을 것으로 기대되는 그리고 아들로 태어났다는 바로 그 사실로 인하여
아버지의 남성성을 입증하는 <아들이자 후계자>를 가졌다는 것을 공표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바로 아들의 탄생은 아들을 갖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욕구를
채워 준다. 바로 그 다음에 그 아들에게는 아버지의 기대대로 살아야만 한다는
욕구가 따라온다. 특별한 재능, 감정적 욕구, 장애나 개인적 특성을 지닌 채,
그리고 가능 하다면 이루고자 하는 자신만의 개인적 목적을 갖고 세상에
나온다기보다는 아버지의 욕구가 그에게 짐지워지는 것이다.
 
자식의 희생
 
  약간 내용이 바뀌어 로마 신화가 된 그리스 신화 말고도 구약 성서과 신약
성서는 서구 문명에서 가족 이야기의 단골 출처다. 둘 사이에는 닳은 점이 많다
그리스 반도를 침입한 인도 유럽어 족과, 이집트에서 약속의 땅으로 간
이스라엘 민족은 각각 침략자와 이주자로서 여신을 숭배하고 있던 정착지로
갔다. 두 침입 민족은 호전적 기질의 하늘 아버지 남신을 섬겼다. 이 남신들은
위에서 통치하며 산 위에서 인간과 소통하였다. 또한 두 민족들에서 모두
자식에 대해 덜 적대적이고 좀더 어버이답게 되는 방향으로 하늘 남신의 특성이
진화하는 것이 보인다. 그리스 신화에서 이 변화는 일련의 하늘 아버지
남신들을 통해 일어나는데 제우스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성서에 나오는 신은
하나의 실재로 여겨지면서도 여러 이름 -구약 성서 원어로는 야훼, 엘로힘
-으로 불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서의 하느님은 모습을 바꾸어 인간
<아들들>에게 벌을 덜 내리는 대신 좀더 그들을 편들게 되었다.
  가족 이야기로 간주하고 또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둘간에 닳은 점이
계속 발견된다. 자식의 탄생이나 성장으로 혹은 이 양자로 위협받는 하늘
아버지 신이라는 그리스 신화의 테마들인, 자식들을 없애거나 자신의 테두리
안에 가두어 두려는 시도는 아들에 대한 적대감 등이 복종과 회생이라는 문제에
감추어져 있긴 하지만 성서에도 역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성서에서 하느님 뜻을 행한다는 것은 아들을 기꺼이 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야훼는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산 위에서
번제물로 바칠 것을 명함으로써 그를 시험하였다. 그가 기꺼이 아들을 죽이려고
한 행위는 그가 시험을 통과하였다는 것을 뜻했다. (이와 비슷하게 트로이에
대항하여 그리스 군대를 이끌었던 아가멤논은 자신의 함대가 아울리스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음을 알개 되었다. 그는 순풍을 얻기 위한 대가로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쳐야만 했는데 그는 기꺼이 그 일을 하고야 말았다.)
  요즈음 아이들은 아버지가 시험을 통과하고 성공할 수 있도록 실제 제단에
바쳐지지는 않는다 해도 비유적으로는 제물로 바쳐지고 있다. 이는 몇 가지
심리학적 측면에서 보면 틀림없는 사실이다. 성공한 남성들은 대개 부재
아버지이다. 그들은 정서적으로 또 물리적으로 자식들의 삶에서 부재한다.
그들은 자신의 일, 역할을 위해 자식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가능성을
희생한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어린애 같은 기질>,곧
놀기 좋아하고, 꾸밈이 없으며, 남을 잘 믿고, 감정적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것과 같 은 자신의 일면을 희생한다.
  가부장제 문화는 순진함을 적대시하고 어린애 같은 기질을 낮게 평가하며,
자식에게 사랑과 관심을 보이기보다 권위와 야망에 순종하는 (아니면 무엇을
요구하는 신에게 순종하는) 아브라함`아가멤논`다쓰 베이더같이 될 수 있는
남성들에게 보상을 내린다.
 
이사악 : 제물이 된 아들
 
  구약 성서에 나오는 아브라함은 모리야 땅으로 가, 그곳 어느 산 중턱에서
아들 이사악을 하느님께 번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나는 어린 이사악을
생각하면서 그가 이런 목적을 모른 채, 아버지와 같이 여행을 가게 되어 몹시
기뻐했으리라 상상해 본다. 떠난 지 사흘 후 그들은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거기서 이사악은 열심히 장작을 주워 모으면서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는 일을
도왔다. 그러다가 그는 어리둥절해 하면서 "아버지, 불써도 있고 장작도 있는데
번제물로 드릴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아버지는 그에 대해
말하기를, "얘야, 번제물로 드릴 어린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신단다. "
  나는 이사악이 이 대답을 받아들이고서 어린양이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의아하게 생각했으리라 상상한다. 어린 소년이 아버지가 자기를 제물로 바치려
한다는 것을 언제 알게 되었을까? 아브라함이 그를 묶을 때였을까? 그가
이사악을 제단에, 장작 위에 눕힐 때였을까? 아니면 아브라함이 그를 죽이려
칼을 든 바로 그때였을까? 이사악은 자신이 곧 회생 제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불신`공포`배반감을 느꼈으리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아마도 아브라함
자신이 외아들의 죽음을 요구하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있다고 설명했으리라.
그러한 설명은 아브라함 자신이 하려고 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겠지만 이사악에게는 아무런 위로가 되었을 것 같지 않다. 그가 아는
것이라 곤 아버지와 같이 있는 한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 아버지가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때 하느님이 아브라함을 불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머리털 하나라도 상하지 말라. 나는
네가 얼마나 나를 공경하는지 알았다. 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도 서슴지
않고 나에게 바쳤다." 아브라함이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보니 뿔이 걸려
허우적거리는 수양 한 마리가 눈에 띄어 그것을 잡아 이사악 대신에 번제물로
드렸다.
  그때 아브라함은 기꺼이 자기 아들을 죽이려 했기 때문에 하느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았다. 그 축복은 "네가 네 아들, 네 외아들마저 서슴지 않고 바쳐
충성을 다하였으니, 나는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같이 불어나게 하리라"는 것이다.
 
이피게네이아 : 제물이 된 딸
 
  아버지가 자식을 기꺼이 제물로 바치기로 한 또 다른 성공담은 <일리아드>에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 이피게네이아 아버지는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 군대를
지휘하던 아가멤논 왕이었다. 군대를 모으고 거대한 함대를 이끌고 트로이로
항해할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바람 한점 불지 않아 출항을 못하고 서있는 배
안에서 사람들은 마음을 잡지 못하고 들떠 있었다. 만약 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그의 군대가 트로이를 정복할 경우 그의 차지가 될 영광`전리품`권세를 다
잃어버릴 판이었다. 아가멤논이 예언자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묻자 그는
아름답고 순진한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면 바람이 불어 배가 트로이로
항해할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아가멤논은 아내에게 이피게네이아를 자기에게 보내라는 전갈을 띄웠다.
그녀는 아킬레우스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다. 아킬레우스는 펠레우스 왕과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아들로, 그리스 영웅들 중의 영옹이었다. 여러분은 이
혼인 소식을 듣고 흥분에 들떠 있을 상황을 상상할 수 있다. 여러분은 젊은
처녀가 결혼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가방에는 예쁜 드레스와 물건들을 하나
가득 담고 마음은 장차 신랑감에 대한 생각에 가득찬 상태에서 어떻게 아버지의
주둔지로 여행을 하였을까를 상상할 수 있다.
  이피게네이아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것은 어떤 점에서였을까? 그녀의
아버지가 이피게네이아가 결혼 때문에 그곳에 왔다고 믿도록 한 것은 얼마
동안이었을까? 아버지가 자기를 제물로 바치기 위해 데려왔다는 것을 언제 알게
되었을까? 그녀는 신부복을 입었을까? 그녀는 자기가 죽임을 당할 곳을
결혼식이 치뤄질 장소로 생각하면서 다가갔을까? 어느 순간 그녀는 아버지가
자기를 속였고 죽음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에 틀림없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순간 그녀는 완전히 배신당했다고 느꼈을 것이고 두려운
나머지 자신을 내팽겨쳤음에 틀림없다.
  아가멤논은 그녀를 제물로 바쳤고 그러자 바람이 불어와 그리스 함대는
10년간 지속될 전쟁을 하기 위해 트로이로 향했다. 또 다른 설에는
이피게네이아가 아르테미스 여신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였는데 아르테미스는
마지막 순간에 그녀 대신 수사슴을 대치하였다고 한다.
  아가멤논은 기꺼이 자식을 죽이거나 죽게 함으로써 보상을 받은 또 다른
아버지였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딸의 믿음을 저버리고 딸의 순진함을 파괴한
아버지는 딸에게 상응되는 자신의 일부를 파괴시킨 것이다. 상징적으로 딸은
아버지의 아니마(융식 표현으로는 한 남성이 지니고 있는 여성적 요소)를
나타낼 수 있다. 그의 아내가 표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여기서 아내는
그의 다른 반쪽(구어체로는 그의 <아내 better half>)을 표상하고 또 그녀는
앞서의 두 이야기에서 전연 의논의 대상이 아니거나 속고 자기 아들`딸을 지킬
힘이 없는 사람이다.
  나는 아브라함이 아들과 모리아 땅으로 떠나면서 사라에게 아들 이사악과
영원한 작별 인사를 나누라고 말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아브라함이 아내에게 자신이 하느님의 명을 받들어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칠
것이라고 말했을 것 같지 않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를
알았더라면 그 일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막으려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그 일을 막을 힘을 가졌더라면 이사악은 집에 그냥 있을 수 있었으리라.
또한 아가멤논이 거짓 구실로 이피게네이아를 아울리스로 불러들였을 때 그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를 그녀의 어머니가 알았더라면 이피게네이아도
마찬가지로 집에 그냥 있어도 되었을 것이다.
  무자비한 군인이나 총사령관, 심지어는 현대의 회사 중역이나 사업가가 되기
위해서 남성 (그리고 요즈음에 그런 역할을 하는 여성)은 대개 자신이 갖고
있는 부드러운 감정을 기꺼이 없애거나 억누르며 가족이란 끈 이전에 남성
세계에서 인정받고 성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한다. 군 주둔지 또는
오늘날 그것에 상당하는 시장에는 상처받기 쉽고, 부드럽고 순진한 것이
자리잡을 여지가 없다. "죽이느냐 아니면 죽느냐" 하는 구조에서는 적에 대해,
또는 한편은 이기고 다른 편은 지게 되어 있는 경쟁자와 상대편에 대해 감정
이입을 하거나 동정할 여유가 없다. 그러한 것들은 단념해야 할 약점으로 보일
뿐이다.
  자식을 기꺼이 죽이려 한 남성들과, 그들이 어떻게 보상을 받았는가에 관한
신화들은 여러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그 신화들은 가부장제 문화에서 무엇이
값어치를 인정받고 있는가를 말해 준다. 권위에 복종해야 하고 이미 확보한
권위를 지탱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 체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직접적이고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권위적인 아버지는 불복종으로 생각되는 것에 대해 몹시 화를 내며,
해야 하거나 하기로 기대되는 것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이유야 어찌되었든간
에 아들(그리고 딸)에게 벌을 내린다.
  권좌를 지키려는 욕구는 <최악의 경우>인 학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상황을
몰고 간다. 그리하여 어떤 남성은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기나 아직 발달 단계에
있지도 않은, 두살 박이 아들에게 화를 내는 수도 있는데 그는 아이들이 자신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거나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이러한 일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제어하는 데 자신이
무력하다고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웅은 편집증으로 간주된다. 그
아버지는 아들을 이제 막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한 두 돌짜리가 하는 짓을 하고
있는 어린애로 보는 대신에 자기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것에 대해 반응하며
자식을 학대한다.
  더 흔하게는 아들이 나중에 나이를 먹게 되면서 권위적인 아버지의 노여움을
사게 되는 것이다. 아들은 하라는 대로 하지 않거나 의문을 제기하거나
동의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아버지의 권위에 맞서 대들게 될 수도 있다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배우고 사물의 진상을 밝혀 내는 정상적인 과정이라고 하겠다.
 
공격자와 동일시하기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아버지가 권위를 가지고 그것을 행사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자식들은 분명하고 적절한 한계를 지우는 권위자가 있을 때 자신감을
얻고 안심을 한다. 그렇지만 만일 아버지다운 권위로 가장한 채 아버지가
아들이 자기를 대신하는 것을 감정적으로 시기하거나 아들에게 누가
우두머리인지를 과시하기 위한 욕구에 따라 행동한다면 확고한 아버지상을
갈구하는 어린아이의 바람은 충족되지 않는다.
  그때 아버지는 냉담하고 화난 하늘 아버지 역을 하고 있는 것인데 그는
아들을 자기 자리를 노리는 위협 인물로 본다. 아버지의 분노가 비합리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아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점차 서로간의 원망과 불화로 변하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상황은
아들이 자라 아버지처럼 행동하도록 만들어 간다.
  심리학적으로 이러한 모순은 아들이 실제의 자기 모습인 피해자와 동일시하는
대신 <공격자와 동일시하고 있기>때문에 발생한다. 그는 나쁜 기질이
아니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화를 돋구었다는 사실 때문에 자기 속에 있는
기질들을 거부하고 싫어하게 된다.
  아들은 자기를 비난하고 들볶고 화를 내는 아버지를 싫어하기도 하지만 그는
약하고 무능력하고 두렵고 스스로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창피스런 자기 감정까지
점점 미워하게 된다. 그는 아버지의 처벌적인 판단과 분노의 표적이 되는
자신의 취약점을 혐오하게 된다. 여기서 나쁘게 느껴진다는 것과 <나쁨>그
자체에 대한 생각이 한데 뒤섞이게 되고 가부장제 문화는 심약함에 대한 인식을
낙약함, 소심함, 그리고 <덜 떨어짐>과 동일시하면서 이러한 혼동을 강요한다.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사랑, 감각적인 면, 감정적 발흥은 비남성적인 것으로
규정되어 시야에서 감추어지거나 인식 바깥에 깊숙이 묻혀야 할 것으로 금지
된다.
  소년들이나 남성들은 피해자를 향해 동정을 보이는 것이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위험한 것이고 만일 그러한 동정을 보인다면 수용할 수 있는 자기 입장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위험은 특히 집단으로 남성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권력을 행사하고, 약한 사람을 괴롭히거나 때리거나 집단
강간을 하거나 동물을 학대할 때 더욱 높다 내 임상 환자 가운데 한 사람은
어린 시절 자기 또래의 다른 소년들이 새끼 고양이를 고문하는 것을 반대하고
그만두었을 때 자신이 견뎌야 했던 조롱과 비웃음을 생각해 냈다 비난을 받는
행위가 그가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치른 대가였다.
  다른 남성들은 목소리를 높여 중재하고 나설 용기가 없었던 탓에 가져야 했던
자신들의 죄의식과 수치심에 대해 내게 말해 주었다. 그들은 "난 아무일도 하지
않았습니 다"라고 말한다. 그들과 한편인 남성 집단이 한 여성에게, 또는 동성
연애를 하는 남성에게, 유태인에게, 아시아인에게, 멕시코인들에게 흑인들에게
저지른 일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고 말한다. 이러한 남성들은 희생을 당해 보지
않은 가정 출신으로, 학대를 받은 소년이 훗날 하는 식으로 공격자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았다. 그렇긴 하지만 집단에 속해 있는 남자들이 대개 그런
것처럼 그들은 사태에 동조하였다.
  들볶임을 당하던 소년이 자라 힘을 갖게 되어 자기보다 더 작고 힘이
없는자를 협박할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되면 그는 (운좋게도 예외들도 있긴
하다지만) 대개 그렇게 한다. 남학생 사교 클럽에서 몽둥이 찜질과 더 심하게
못살게 구는 짓들, 비인간적이고 어렵다고 소문난 의료계의 인턴 제도에
잔존하는 고된 체험들과, 미육군 사관 학교에서 <최하급생>이 받는 대우는
학대를 받은 앞선 세대들에 의해 행해지는 새 세대에 대한 호의적이지 않은
입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주도권 잡기 의례에 대한 구호는 혼히 <내가 당한 것을 이제 네가
당할 차례다>로 언급되는데 이것은 명백히 공격자와 자기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남자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구타 행위는 많은 남성들이 화가 난, 자기보다
몸집이 더 크고 나이도 많은 형들에게서 아우로서 겪은 경험을 반복하고 있다.
어린 동생들은 아버지에 대해 자기 형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이 형들의
적대감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며 패배자이자 희생자의 관계에 똑같이 처해 있음을
알게 된다. 이처럼 밑바탕에 자리잡고 있는 <과거에 내게 행해진 것을 이제
내가 너에게 할 차례>라는 유형의 반복은 대개 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다른 남성들과의 동일시
 
남성들간의 소외와 경쟁을 조장하는 문화에서 뭇 남성들이 사랑을 하고 서로를
신뢰한다면 그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 된다. 남성의 심리 상태에 관한
보고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남성들은 그령지 못하다.
  몇 가지 예외적인 경우들이 있는데 남성들이 진짜 친밀할 때이다. 하지만
대개는 <모두 한 배를 타고> 있을 때와 사적인 하위 문화에서인데 거기서는
잠시 나마 권위적이기보다는 평등하다. 그리고 또한 한 조건이 있는데 모두
남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전문직에 있는 몇몇 남성들로부터 나는 그들이
소년 시절에 노동자 거주 지역에서 자라면서 가졌던 황금 같은 시절, 한명도
빠지지 않고 같이 여름을 보낸 일에 대해 듣곤 한다. 잠잘 때만 빼놓고는 친구
패거리가 늘 같이 붙어다녔을 정도다. 소녀들이 그들에게 중요하게 되기
이전이며 그들이 승자와 패자로 갈라지기 전의 일이다 나중에 그들은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자신들을 보게 되는데 그래도 이러한 경험이 훗날 남자들이
우정을 추구하는 원형으로 간주된다. 비슷하게 사춘기에 학교를 다니기 위해
집을 떠나 온 상류 사회 남성들은 친구들로 이루어진 결속 집단의 일원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것을 통하여 그들은 여생 동안 지속되는 우정을 키웠던
것이다. 전쟁터의 부대에서 서로 의지하게 된 사병들도 서로에 대한 밀접한
연계가 있었음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상황들은 모두 다르지만 소년들이나 남성들은 강하게 <우리는
한 배를 타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었다. 공유된 상황과 유사성은 그들로 하여금
서로를 동일시하는 것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같은 형제>라는 상황 속에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보이지 않으면서 분열적으로 위계적인
가부장제의 영향을 일시적으로나마 벗어나게 했던 것이다 -가부장제는
일반적으로 남성들을 서로서로 분리시키고 고립시키는 제도인 것이다.
 
루크 스카이워커와 <그의 운명>
 
영화 <별들의 전쟁> 시리즈 3편 <제다이의 귀환>을 보면 클라이막스 직전에
다쓰 베이더가 자기 주인인 황제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는 그에게
"젊은 스카이워커는 우리 편이 될 것이다"고 말한다. 또 이어지는 루크
스카이워커와 다쓰 베이더 간의 사생 결단에서 루크는 두려움과 미움으로
대응하고 살인적인 분노에 몸을 내맡기도록 유혹받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공격자와 자기를 동일시하게 되는데 이는 황제가 그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말한 것이다.
  루크 스카이워커는 <황제와 죽음의 별>에 관해 전혀 환상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지도자적 역할이 약속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모든 사람들을
지배하는 힘을 얻으려 하고 자유를 억누르며 맹목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이러한
것들은 가부장제의 과장된 가치들이라 할 수 있다- 제국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았다.
  루크는 권력을 주겠다는 약속의 꾀임에 빠지지도 않았고 자신이 천성적으로
어리석고 자신의 지위가 별볼일이 없다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저항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그는 굴하지 않았고
자기 아버지처럼 명령을 내리고 명령을 따르는 감정 없는 남성이 되지도
않았다. 그는 보다 탄탄한 지위나 명백하게 어쩔 도리가 없는 현 상황에서도
다른 체계에 대한 믿음 때문에 사랑을 권력이나 남들에 대한 충성심과 바꾸지
않았다. 또한 자기가 믿는 것을 실행에 옮기는 용기를 가졌기에 그는 또 하나의
다쓰 베이더가 되는 것에 저항할 수 있었고 결국에는 승리했다.
  가부장제 문화에서 살고 있는 모든 남성들과 많은 여성들은 같은 유혹에
직면한다 그들은 공격자와 자기를 동일시하여 공격자 편에 가담할 것인가?
진리의 순간과 결단의 시간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루크 스카이워커 - 또는 그의
여성 상대자인 리아 공주 - 의 생존 문제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걸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은 이런 선택의 순간들로 이루어진 끝이 없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두려워할 이유가 있을 때조차도 우리에게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변함없이 남아 있기로 결정할 수 있다. 변함없이 남아 있기
위해서는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필요가 있다. 심리학적 관점, 활발한
원형에 - 우리 속에 살아 있고 우리를 가장 의미있는 것과 연결짓는 - 우리를
대입해 보라. 원형들이 의미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심층적인
본성에 관해 중요한 것을 말해 주며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입장을 굽히지
않도록 도와준다. 우리는 이러한 지식을 통해 힘을 얻는다.
  다음 장들에서 우리는 남신들, 모든 남성들 안에 살고 있고 모든
여성들에게도 낯익은 원형들을 만난다 먼저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를 만나게
되는데 이들은 아버지 원형들로 이 부분은 각각의 남신들을 다룬 별도의 장들로
구성 되어 있다. 다음으로 계속해서 아들 세대 - 아폴론, 헤르메스,
헤파이스토스, 아레스, 디오니소스 - 를 만나게 된다. 각각은 두드러진 개성을
지닌 유형들을 드러내는데 이 유형들은 가부장제와 인간 아버지들의 총애를
받거나 아니면 버림을 받는 유형이다.
II
아버지 원형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는 제1세대 올림피아 남신들이다 그들은 세 가지
모습의 아버지 남신들을 나타낸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세계를 나누어 가진 다음
각자 고유 영역을 다스렸다. 원형과 은유로서 남신과 그들의 영역은 함께 고려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곧 제우스와 하늘, 포세이돈과 바다, 하데스와 저승 등
지상은 제우스가 다스렸으나 그의 것으로 인정되지는 않았다.
  제우스는 모든 것을 다스렸다. 최고신으로서 그의 인간적 속성은 완고한
아버지 왕`기업이나 군대의 최고 실무 책임자 수뇌`우두머리와 동일시된다.
포세이돈과 하데스는 별개의 두 유형일 뿐 아니라 제우스의 숨겨진 모습들로
세력가가 억누르거나 무시하는 아버지 원형의 부분들이다.
  생물학적 아버지 노룻과 아버지 원형은 전연 상관이 없다. 여러분들은 이 세
아버지 남신들을 사례로 읽을지도 모르며 그들 가운데 아무한테서도 자기
아버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는 이유로 그를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신에 올림포스 아들 남신들에게서 자기 아버지의 유형을 찾게 될 수도 있다
그들도 나름대로 아버지가 되는 독특한 방식을 갖고 있다. 제우스 유형은 보통
개별 인간 가족의 가장에게서 나타나는 것이라기보다는 모든 가부장제 사회에서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제우스는 가부장제 문화의 지배 원형으로, 심리 특히 남성의 심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신화의 세계에서처럼 남성 심리는 몇 갈래로 나뉘어
있다. 첫째는 권력 `의지`사고 같은 의식과 정신의 세계(제우스)이며, 둘째는
억압되어 있고 그 가치를 별로 인정받지 못하며 때로는 의식의 깨달음과
분리되어 있는 감정과 본능의 세계(포세이돈), 셋째는 오직 꿈을 통해서만
회미하게 보일 뿐이며 뚜렷하지 않아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보이지 않는 유형과
비인간적인 원형의 세계(하데스)다.
  고정된 원형 유형을 대표하며 각각 고유의 영역을 가지는 세 남신과는 달리
인간은 이들 모든 영역에 접근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지며 그들을 통해 고의로
행동할 수도 있으며 그들의 측면들을 자신의 의식적인 인성에 통합시킬 수도
있다.
  이 주요 세 남신들이 태어난 상황은 여전히 많은 남성들의 삶에서 한
본보기로 존재하고 있다.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는 결국에 가서 자기를
무너뜨리거나 뛰어넘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들을 증오하는 냉혹한
아버지와, 자식들을 보호하거나 키울 수 없기 때문에 괴로와하는 아무런 권한을
가지지 못한 어머니를 두었다. 우리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그런 가정 출신이다.
더욱이 특수한 가족 상황과는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권력 획득에 가치를
부여하고 이러한 목표를 이룬 남성들을 선호하는 가부장제 사회에 살고 있다.
이러한 본보기는 우리가 앞으로 볼 것처럼 남성의 심리를 규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나선형 방식으로 알아 가기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에 관한 장은 나선형을 따르고 있다 처음에 우리는
남신과 그에 관한 신화를 듣는다. 다음으로 원형적 유형이 나온다. 세번째로
남신이나 원형이 한 남성의 일생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살펴본다. 그
다음으로는 특징적인 심리적 문제점들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며, 마지막으로 특정
남신의 본보기대로 살아가는 남성이 성장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말한다.
  음악 작품이나 시처럼 나선형은 주제가 되는 화음이나 테마가 각기 다른
악장의 전편에 흐르듯이 바뀌는 지점이 화대되는 동시에 읽는이로 하여금 남신
원형의 의미를 짙게 전달한다. 각 주기마다 같은 남신이 재도입되고 각각은
반복되면서 남신의 이미지가 더욱 참신해지고 보다 여러 차원에서 보이게 된다.
  나선형은 우리 두뇌의 양쪽을 모두 쓰게 만든다. 뇌의 왼쪽을 주로 사용하는
이해력은 우리의 직선 같은 정신에서 나오는데 말이나 논리를 통해 정보를
받아들인다. 오른쪽 뇌는 개인적인 동시에 집단적이며, 시간의 제약을 받는
동시에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이미지`감정`기억`느낌 등과 관련이 있으며
그것들에 대해 아무런 질서나 논리를 부여하지 않는다. <아하!> 하고 느끼는
순간은 오른쪽 뇌에서 왼쪽 뇌로 또는 왼쪽 뇌에서 오른쪽 뇌로 이어지는
연결점에 있을 때이다. 갑자기 모든 경험이 자기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제서야 다차원적으로 어떤 것을 알게 되며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의
영향을 받아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제3장
제우스 : 하늘의 신
의지와 권력의 세계
 
  그는 하늘의 지배자요, 비의 신이자 구름을 모으는 신으로 무시무시한 벼락을
좌지우    지하였다. 그가 지닌 힘은 다른 모든 남신들을 다 합한 것보다 더
세었다.
  그렇다고 해도 전지전능하지는 못했다.
  - 에디스 헤밀톤, <신화>
 
  절정의 순간에 빛으로 나타나 인간에게 지력과 의식을 가져다 주는 제우스
신은 자    기 틀 속에 갇혀, 변화와 현 상태를 위협하는 그 어떤 조짐들을
두려워하고 그에 저    항하는, 어둠 속에 있는, 생명력의 적이기도 하다.
  - 아리아나 스타시노풀로스, <그리스의 신들>
 
  제우스는 올림포스의 우두머리로 최고의 권력을 지닌 남신이었다. 그는
올림포스에서 하늘을 지배하는 신으로, 울퉁불퉁하고 험한 산세가 구름에
둘러싸여 가려져 있는, 높고 드넓은 올림포스 산을 다스렸다. 그와 형제
포세이돈과 하데스는 제비를 뽑아 세계를 나누어 가졌는데 제우스는 하늘을,
포세이돈은 바다를, 하데스는 지하 세계를 맡게 되었다. 지상과 을림포스 산은
같이 소유하게 되었지만 하늘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제우스가 풍경을
지배하고 전체를 통치하게 되었다.
  각 세계를 다스리는 신의 성격이 다른 것처럼, 하늘은 바다나 지하 세계와는
크게 다르다. 과감히 하늘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지상을 떠나야 하며 지상을
널리 조망하기 위해서는 현실 세계와 인연을 끊어야 한다. 이런 유리한
위치에서 우리는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제우스는 벼락의 신이며 천둥은 그를 상징하였다. 오늘날에도 가부장적인
금기에 맞서 싸우는 우리는 "우리를 죽음에 처넣을지도 모르는 벼락을 맞을
태세를 하고 있는 것이며," 벼락이 치지 않는다면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제우스는 또한 비를 내리는 신으로서 생명이 자라는 데 필요한 것을
제공하였다. 제우스가 벌을 내리는 신이든 관대한 신이든 간에 그의 힘은 대개
위에서 그리고 먼 데서 행사된다.
  성공을 거둔 모든 통치자들처럼 그는 전략을 세우고 동맹을 이루어 티탄을
무찔렀다. 그는 자기의 권력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제우스의
특징은 그가 남들에게 자기 의지를 강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남들을 누르거나 아니면 세상에서 원하는 일을 이루기 위해 고위직에 있기를
바라고 권력을 가지고 싶어한다면 우리는 제우스처럼 된다. 하늘은 전설적인
아더 왕과 역사상의 로마 황제 시저로부터 마가렛 대처 영국 수상 -그녀는
하늘의 세계가 전적으로 남성적인 영역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지향과 결정적
행동 능력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을 포함하는 현대 정치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정치력과 경제력을 가진 힘센 남성들의 세계다.
  심리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특별히 포세이돈과 하데스의 영역과
대조적으로 -하늘은 모든 다른 자질들 위에 존재하는 의식적인 태도, 곧
통제력`이성`의지 등을 치켜세우는 시각을 나타낸다.
 
제우스 남신
 
로마인들에게는 유피테르 또는 요브라고 알려진 제우스는 그리스 올림포스
신들의 우두머리였다. 그는 올림포스를 다스리고 벼락을 내리쳤던 하늘의
신이었다. 그의 상징물은 독수리였다. 제우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그들의
아버지가 여러 신들을 형제 자매로 두었고 인간을 창조하지도 않았지만) 신과
인간의 아버지로서 뿐만 아니라 구름을 모으는 신, 순풍을 보내는 신으로
불려졌다. 그는 군주들에게 권한을 부여하였고 그들의 권리와 권력을
보호하였고 법을 수호하였으며 죄인들을 벌하였다.
  제우스는 턱수염을 기르고 권좌에 앉아 있는 세력가나 벼락으로 그려졌다.
그의 신상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에 있는, 피디아스가
금과 상아로 만들었다는 신상이며 고대 칠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가 지닌 위풍 당당한 풍채와 수많은 애정 편력을 가진 바람등이의 모습은
예술가들의 단골 주제였다.
  그의 이름은 <빛나다>는 뜻을 지닌 인도 유럽어의 듀 dyu에서 파생된 것이다.
빛과 힘은 그를 가장 잘 요약하는 속성인 것이다.
 
계보와 신화
 
  제우스의 출생 이야기는 이 책의 제2장 아버지와 아들에서 이미 다루어진 바
있다. 그는 크로노스와 레아의 막내 아들이었다. 그는 위로 누이 셋과 형 둘을
두었는데 크로노스는 그들을 모두 삼켜 버렸다.
  레아는 크로노스에게 포대기로 싼 돌을 아이로 잘못 알게 속여 제우스를 구해
냈다. 그런 까닭에 크로노스는 그를 삼키지 못했다. 제우스는 당시 크레타 섬에
있는 어떤 동굴에 피신하여 있었는데 요정이 그를 키웠다고도 하고 염소가
키웠다고도 한다.
  어른이 된 그는 지혜로운 메티스를 설득하여 크로노스에게 구토제를 먹여
그의 형과 누이들, 그리고 돌을 토해 내게 하였다. 그런 다음 형 포세이돈과
하데스, 다른 인척들과 힘을 합하여 제우스는 올림포스를 지배해 왔던
크로노스와 티탄들을 쫓아내기 위해 싸웠다. 그는 10년 동안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싸웠다. 제우스는 전략가이면서 동맹을 건설해 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자였다. 제우스는 키클로페스와 백 개의 팔을 가진 거인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 냈다. 그들은 자신들을 풀어 준 제우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키클로페스는 제우스에게 천둥과 번개를 주었고 백 개의
팔을 가진 거인들은 그에게 백 명의 군대에 맞먹는 특별난 화력을 주었다.
 
제우스와 그의 배우자
 
  아버지 크로노스와 티탄들을 물리친 다음, 제우스는 신성을 지닌 이들 - 그들
대다수는 제2세대 올림피아 신들과 반신 반인들이었다 - 의 아버지로
행세함으로써 여신 `요정`인간 여성들과 일련의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헤시오도스는 일곱 명의 정실 부인과, 헤라로 끝을 맺는 일련의 혼인들을
나열하고 있다. 메티스, 테미스, 에우리노메, 데메테르, 므네모시네, 레토,
헤라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구세대> 여신들이다. 다시 말해
제우스가 패권을 차지하기 이전 시대에 숭배를 받았던 신들로 그들을 추종하던
사람들이 싸움에 패하고 난 뒤부터 제우스에게 복종하게 되었다
  첫째는 메티스로 지혜와 아테나 여신의 어머니로 알려진 여신이었다. 티탄
신족인 테미스는 정의와 질서의 여신이자 제우스의 두번째 아내였다. 그녀는
운명`계절`시간을 자식으로 두었다. 에우리노메는 세번째 아내로 카리스들을
낳았다. 제우스는 올림피아 신인 누이 데메테르와 결혼하여 페르세포네의
아버지가 되었고, 므네모시네('기억'의 뜻)와의 사이에 아홉 명의 뮤즈를
낳았다. 여섯번째 아내 레토는 티탄 신족으로 그에게 쌍둥이,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낳아 주었다
 
제우스와 헤라

  레아와 크로노스의 딸인 헤라의 출생 서열은 제우스와 같았다. 그녀는
두리번거리던 제우스의 눈에 띄었다. 그녀를 유혹하기로 마음 먹은 제우스는
추위에 떠는 뻐꾸기로 변신하였다. 헤라는 애처롭고 어린 생물을 보고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 따뜻하게 해주려 새를 품에 안았다. 바로 그때 제우스는 변장을
벗어 버리고 그녀를 농락하려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제우스가 자기와 결혼을
약속할 때까지 그를 멀리하였다. 결혼하고 나서 3백 년 동안 밀월기를 가졌다.
그리고 나자 제우스는 성관계가 난잡한 본래 상태로 되돌아갔다 그리스 신화는
그의 연애 편력과 그로 인한 헤라의 수치심과 질투에 찬 분노를 담고 있다.
  호메로스 덕분에 제우스-헤라의 결혼 이야기 가운데 <밀월의 끝>부분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긴 하지만 그녀는 결혼의 여신으로 크게 추앙받았다. 의례에서
헤라는 봄에는 처녀 헤라로 숭배받았다. 완성, 충족의 상태에 이르게 하는 신
제우스와 성스런 혼인을 치르는 여름이나 가을에는 온전한 여성 헤라로
숭배받았다. 겨울에는 과부가 되어 해마다 자기 몸을 숨겼다(불면의 존재인
제우스는 결코 죽는 일이 없었긴 하지만).봄에 나타나는 헤라의 이미지는
연못에 몸을 담그고 목욕을 하는 것이었으며 그녀는 다시금 처녀 여신 헤라로
돌아왔던 것이다.

바람둥이 제우스
 
  제우스는 적어도 스물세 건의 연애를 통해 두 명의 올림피아 신 -마이아와
낳은, 전령의 신 헤르메스와, 인간 세멜레와 낳은, 술과 황홀경의 신
디오니소스를 포함하여 여러 유명한 자손들을 갖게 되었다. 또 호메로스에
따르면 제우스는 아프로디테의 아버지이기도 했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바다의
요정 디오네다.
  인간 여성과의 연애 사건은 제우스가 종종 인간이 아닌 모습으로 변신하여
그들을 유혹한 것이었다. 그는 황금비가 되어 다나에를 임신시켰는데 그 아들이
페르세우스이며 사티로스로 변하여 안티오페와 연애를 했고, 백조로 변하여
레다를 유혹하였고 하얀 황소로 변하여 에우로페를 납치하였다.
  다른 여성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영원히 헤라의 노여움을 샀다. 제우스는 대개
연애 사건을 숨기는 데 실패했다. 이오를 암소로 만들고 칼리스토를 곰으로
만들었을 때조차도 그러했다. 그는 연애를 하여 얻은 자식들을 반드시 구해
냈지만 때때로 헤라의 노여움에 정면으로 맞선 여성을 구해 내지는 못했다.
 
제우스와 가니메데스

  제우스는 - 그로 대표되는 그리스 문화처럼 - 호색을 여자들에 국한하지
않았다. 가니메데스는 미모의 트로이 청년이었는데 제우스의 술 심부름꾼으로,
또 대개의 경우처럼 그의 연애 상대자로 올림포스에 불려갔다. 전해지는 말로는
회오리 바람이 그를 나꿨챘다고도 하고 제우스의 독수리가 그랬다고도 한다.
제우스는 그때 헤르메스를 보내 그 소식을 전하게 하고 소년의 아버지를
위로하고 보상한다는 의미에서 그에게 (황금 포도 나무라고도 전해지는) 준마
한쌍을 주었다. 로마에서는 가니메데스가 우리가 쓰고 있는 까따미테
catamite('미소년'이라는 뜻)의 어원인 까타미뚜스 Catamitus라 불리웠다 그는
별자리 가운데 물병자리가 되어 영원히 죽지 않게 되었다.
 
제우스와 자식들
 
  제우스는 여러 자식을 두었다. 그의 자식들은 남신과 여신, 그리고
반인반신들로 여신 및 인간 여성들과 수많은 관계를 맺은 결과였다.
  그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하늘의 신들 가운데 제일인자로 여러 아들과
딸에게 관대하고 믿음직스런 보호자였다. 디오니소스의 어머니가 임신중에
죽었을 때 제우스는 태아를 자신의 허벅지에 꿰매어 붙여 태어날 수 있을
때까지 그 아이를 데리고 다녔다. 그는 어린 딸 아르테미스에게 사냥의 신이
되는 데 필요한 모든 것 - 활과 화살, 말, 동반자를 선택할 권리 - 을 주었다.
그는 또 다른 딸 아테나에게 힘의 상징들을 맡겼다. 그는 헤르메스가
이복형에게서 빼앗은 소들을 돌려주어 서로 친구가 되게 함으로써 아폴론와
헤르메스 간의 싸움을 중재하였다.
  그는 또한 파탄자 아버지라는 어두운 모숩도 갖고 있었다. 그는 자기 딸
페르세포네를 범한, 근친 강간을 한 아버지였거나, 하데스가 딸을 유괴하여
강간하도록 내버려 둔 아버지였다. 하데스가 그녀를 유괴할 때 아버지를
부르면서 도움을 청하는 외침에 답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신화에서는
헤파이스토스의기형적인 발이 제우스 탓이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헤파이스토스가 제 어머니 편을 들자 그는 어린 소년을 올림포스에서
끌어내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어린아이를 학대하였다는 것이다. 또 다른
아들인 아레스는 아버지의 미움을 사 마음 속으로부터 아들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대로 메티스가 제우스 자신을 밀어낼 가능성이 있는 아들을
임신한 것이 두려운 나머지 그애를 낙태시키기 위해 그녀를 삼켜 버렸다.
  그러나 자식들을 어떻게 다루었든간에 여러 아이를 둔 아버지 제우스가 지닌
생식력은 그의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제우스 원형
 
권력과 권위, 그리고 일정 영옅에 대한 통치권을 가진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제우스의 처지다. 현실 세계에서 <(올림포스)산의 왕> 노룻을 하고 그것을
계승하는 인간은 제우스와 같다. 그들은 독특한 인간적 기질과 감수성을
공유하고 있는데 그 바탕에는 제우스 원형이 자리잡고 있다.
 
왕의 원형으로서의 제우스
 
  제우스는 최고신으로서 자신이 다스리는 왕국을 건설하려는 야망과 능력을
지녔다. 자기 영토를 관장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러한 원형이 야기하는
욕구인데, 제우스처럼 되고 싶어하고 행동하는 모든 남성들(과 여성들)을
특징짓는 것이라고 하겠다.
  제우스가 원형일 때 <왕국을 세우려는> 욕구는 추진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그는 <가정은 곧 남성의 성이다>는 말에 공감을 느끼며 결국에 가서
그는 집과 가정을 이루고 싶어하게 된다. 따라서 이 원형은 남성들이 결혼하여
자기 분신으로 자식을 갖고 싶어하게 만든다. 그는 집안일에 최소한도로
참여하는 한편 아내가 살림을 잘 꾸려 나가고 날마다 아이 보살피는 일을
만족스럽게 하기를 바란다.
  가족이라는 것은 자신의 왕국을 세우겠다는, 보다 큰 포부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제우스 원형을 가진 남성은 권위와 권력을 갖고 싶어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기꺼이 위험을 감수한다. 그는 고용되어 일하기보다는 스스로
주인이 되려 한다. 그리고 앞을 내다보는 제우스라면 첫 사업을 시작할 때
그것을 단지 시작에 불과한 것으로 본다.
  아더 왕은 바로 이러한 원형을 지닌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깃발
아래 전쟁중에 있는 봉토를 통일하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그러나 누구의
인정도 받지 못한 채 전쟁을 시작했다. 현대판 전쟁터는 대개 경제 분야라고
말할 수 있는데 왕의 원형의 본보기로는 대실업가가 된 매우 진취적이면서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젊은이 -텍사스의 중소 사업체를 다국적
기업체 일렉트로닉 데이타 시스템으로 키워 낸 장본인 로스 페로 같은 -를 들
수 있다.
  이 원형은 또한 <세습 왕권>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세도 있는 명문가의
자식으로 태어난 남성들, 말하자면 권력이란 망토를 물려받은 남자에게서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원형과 물려받은 역할이 일치를 이루는 남성은
자기 왕국를 넓히고 점점 더 많은 경제력과 특권을 얻는 데 자신의 온 힘을
쏟게 마련이다.
  대저택과 사령관저 등은 이 원형의 표현물들이다. 일단 권력이 공고해지면 
밀롯(영국 전설에 아더왕의 궁전이 있었다는 곳, 옳긴이 주)이 세워지게
마련이다.
 
단호한 조처를 취하는 원형 제우스
 
  벼락과 독수리는 제우스를 나타내는 주요 상징물이다. 그것들은 제우스
원형을 특징짓는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그가 내리는 재빠른 결단력을 아주
적절히 표현하는 것이다.
  독수리는 지평선의 한 끝에서 다른 지평선을 바라보면서 땅 위를 아주 높이
날아 오른다. 그러면서도 독수리는 아득히 보이는 아래에 있는 작은 먹이감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으며 날쌔게 하강하여 발톱으로 쥐나 토끼를 움켜잡을
수도 있다. 이와 비슷하게 제우스도 자신이 얻고 싶어하거나 얻을 필요가 있는
것을 늘 주시하고 있다. 그것은 특별한 제품이 될 수도 있고, 자기 일꾼으로
쓸모가 있을 만한 인물일 수도 있고 또는 회사일 수도 있다. 그는 원하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오직 한마음으로 그것을 찾아 쫓아다닌다. 그는 전체를 보는 눈
- 큰 안목 -과 특별히 중요한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눈을 다 가졌다. 그런
까닭에 그가 세부적인 것에 초점을 맞출 경우라도 총체적인 관심을 함께 갖고
있어서 전체를 파악하지 않은 채로 내버려 둘 리가 없다. 그렇긴 하지만
먹이감이 갑자기 시야 밖으로 사라져 또 다른 육식 동물의 손에 넘어가 버린
독수리처럼,각별하게 쏟는 정력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쉽게 방향을 바꾸어
손실을 줄이고 자신의 갈 길을 계속 갈 수 있는 것이다
  제우스의 벼락은 징벌의 힘을 상징하였다. 그것 또한 멀리서 단호하게 들이
친다. 그러나 어두컴컴한 폭풍우를 동반하는 구름이 끼고 천등이 치고 난
뒤라야 벼락이 떨어지는데 그러한 전조는 감정이 쌓이고 화가 거듭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질투심에 불타는 제우스는 삼모작을 하는
들판에서 여신 데메테르와 잠자리에 든 이아시온에게 벼락을 떨어뜨려 죽였다.
또 한번은 파에톤이 태양의 전차를 잘못 몰았을 때 그에게 벼락을 내리쳤다
  벼락은 독수리가 단호하게 자기의 목표물을 획득하거나 또는 나꿔채는 능력을
나타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관리 능력 firing power>의 상징일 수 있다. 도산
직전의 크라이슬러 자동차 회사를 구해 낸 리 아이아코카 같은 주요 실력자의
경우처럼 직원을 해고하고 고용하는 능력은 성공에 필수적이다. 해고는 출세를
가로막는 치명적인 것이며 충실했던 직원의 직장 생활을 끝내게 할 수도 있으며
분명히 그 가족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임에 틀림없다 마피아 두목에게 있어서
<놈을 처치하라>는 명령은 물리적인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제우스의 고려 사항은 아니며 이 원형을 내면화한 남성들이 그러한 문제들로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다
  또 다른 한편으로 보면 전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아무도 직접 해고
하지는 않은 듯하다. 그는 제우스의 자리에 앉아 있긴 했지만 그 원형을
증명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단호하게 행동한 것으로 알려지지는
않았다.
 
사업적 연계를 통한 동맹
 
  성공한 제우스 남성은 권력을 가진 다른 남성들과 힘을 합쳐 일을 도모할 수
있다. 그는 동맹을 제의하고 각자의 영역을 정하여 보상 협정을 체결하는 <정상
회담>에 강하다. 그는 언변이 좋다. 그는 권위 있고 단호한 사람들을 상대하고
싶어한다 그는 자기처럼 남들도 자신의 최대 이익을 추구하리라 기대한다.
권력의 토대를 굳건히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권세를 확장하려는 것은 제우스
원형에게는 자연스러운 목표이기도 한데 그 경우에 동맹은 필수적이다.
  오늘날 제우스 남성은 봉건 영주나 군주 대신에 은행가, 수출업자, 배급업자,
심지어는 경쟁자들 또는 관계 당국이나 관료나 제공자들과 동맹 관계를 맺는다.
이름과 영역은 다르지만 그 형식은 같다.
  제우스 신은 백 개의 팔을 가진 거인과 키클로페스의 도움을 받아 올림포스를
평정하였다. 만약 그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는 티탄 신족을 물리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제우스가 자기들을 풀어 주었기 때문에 그를 도왔던 것이다.
사업 세계에서 제우스 남성은 언제 <자금을 회수할> 것인지를 생각한다. 지금이
반환을 요구해도 좋을 때인가? 만일 그렇다면 성공한 제우스는 교묘하고도
섬세하게 그 일을 해낼 것이다. 마론 브란도가 열연한 마리오 푸조의
<대부>에서 잘 나타나는 것처럼 제우스 남성은 그런 거래를 하면서 동맹을
제의하고 자신의 지위를 강화한다. 이 영화에서 제우스 원형은 마피아 두목으로
분장 하였던 것이다.
 
결혼을 통한 동맹
 
  영역을 확립하는 것을 제일로 치는 제우스 원형에게는 결혼도 동맹을 이루고
권력을 공고화하는 데 쓰이는 수단이다. 왕가의 결혼은 수상들이 주선하였다.
모든 문화에서 가부장제 결혼은 가족들간에 맺는 동맹이다. 거기에서는 재산과
자손이 주요 관심사다. 제우스의 일곱 번의 공식적인 결혼은 이같은 본보기를
반영하고 있다.
  제우스에게 적합한 아내를 찾는 일은 마음 또는 정신이 결합하는 문제가
아니라 신분의 문제, 영역을 확립하거나 공고히 하려는 목표에 기여하는 동맹의
문제이다. 다른 원형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가 인간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열정이나 우정, 또는 기타 다른 요소들을 포함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
  제우스와 헤라의 결혼이 갈등의 모델로 판명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두 힘센 원형들이 바탕이 되어 결혼이 이루어질 때 실은 저마다의
전연 다른 의도가 맞아떨어져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헤라에게
있어서 결혼이란 그녀 자신의 행복에 필수적이라고 할 만한 일부 일처제와
정절을 지키겠다는 성스러운 언약이자 최우선권을 갖는 중요한 일이다. 헤라가
중요한 원형인 여성은 인간적인 자아 실현과 완성의 수단으로 결혼을 찾는다.
 
바람둥이 제우스
 
  앞서 언급한 대로 제우스는 바람등이 원형이었다. 그는 요정`인간`여신들을
유혹하여 여러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여성들을
유혹하여 정을 통하기 위해 자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신하였다. 레다에게는
백조, 다나에게는 황금 소나기,에우로페에게는 황소, 이오에게는 구름이 되어
나타났다.
  그는 <독수리> 같은 성격에서 보이는 특징대로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여성을 쫓아다녔다. 마음에 드는 여성을 보기만 하면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다 한다. 모습을 바꾸고 좀더 약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하고 격정적인 연인이 되기도 한다. 일단 연애에
성공을 하면 그는 관심을 바꿔 다시금 자기 일에 열중하게 된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임신을 않으려고 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선조가 되려는
강한 의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형적으로 그는 자식에게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자기가 아버지임을 인정하면서 <자기 자식들을 돌볼>
것이다.
 
하늘의 아버지 제우스
 
  아이를 가지려는 욕구는 제우스 원형의 일부다. 자식에 대한 그의 기대는
그가 자기 부하들에게 기대하는 것과 유사하다. 고분고분하고 그의 의지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그가 총애하는 자식은 감정을 잘 다스릴 줄 아는
공정하고 뛰어난 사람으로 그의 이상을 몸소 실천에 옮긴다. 이러한 자질을
갖고 있는 자식들로는 아폴론과 아테나가 있다. 학교에서나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내는,성취 지향적이며 합리적인 아들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이심
전심으로 통하는 딸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에게는 서로 격려를 주고
받을 수 있는, 특별난 <아버지의 딸>이 있다. 그는 스승 아버지로, 종종
사업이나 직업 세계에서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것처럼 자식의
교육과 진로의 길잡이 역을 한다. 그는 그 대가로 충성심을 기대하며 부하나
자식이 <성장하여> 자신과 다르게 되면 배반감을 느긴다.
  제우스는 왕가의 아버지 원형으로 한 가문을 일으켜 세운다. 그는 자기 뒤를
잇도록 많은 자녀와 손주들을 원하며 마침내는 살아서 뿐만 아니라 죽은 후에도
자기의 의지를 부여하여 자식들이 세상에서 그것을 실행에 옮기도록 애쓴다.
부양자 아버지라는 본성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이러한 왕조의 필요성에 의해서
자극받은 억만장자 제우스 남성은 자기 사업의 조직적 뼈대를 만들고 다음
세대들이 계숭하여 자기의 의지를 실행에 옳기리라는 확신을 갖는다. 다스릴
영토가 적으며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한 제우스는 그만큼 더 적은 규모로
행한다.
  어떤 남성이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주는 아버지가 되려 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그런 일을 한 것에 대해 자랑하려 든다면 그것은 바로 제우스의 특성 때문이다.
자기 집의 크기는 일정 영역에 대한 그의 필요를 표현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부양자로서 아버지는 대개 관대하지만 그 관대함은
자식들을 마음대로 하려는 욕구에서 생기는 것이며 그가 그들에게 거는 기대와
연관되어 있다. 제우스 가정의 가계비를 책정함에 있어서 누가 무엇을 가질
것인가 하는 것은 정부 예산을 세울 때처럼 최고 정상에 있는 남성의 뜻을
반영하고 있다.
  제우스는 원형상 결정적인 발언을 하는 권위적인 아버지다. 그는 자녀들과
대화를 하지만 가족과 사업상의 결정은 리 아이아코카가 말하는 것처럼
이루어진다. "내 지론은 결정을 내리는 그 순간까지 민주적인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지요.그 다음부터 나는 몰인정한 명령자가 되어버립니다. 난 이렇게
말합니다. '좋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잘 들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가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
 
제우스 남성
 
제우스 남성의 삶은 제우스의 원형 유형이 나타내는 것과 같은 것을 보여 준다.
그것은 제우스 남성이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의 역할로, 여러
사례들에서 직관적으로 끄집어 낸, 하나의 혼성 사진 같은 것이라 하겠다. 이
유형이 유아기로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보면서
제우스를 알아 갈 수도 있다.
  제우스를 닮은 대부분의 남성들은 또 여러 다른 면들을 갖고 있기도 하다.
보통 남성들 속에는 하나 이상의 남신들이 존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제우스
남성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다는 의미이지 몽땅 다 들어맞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한 제우스 유형은 다른 모든 유형들과 마찬가지로 생애 전반에 걸쳐
주요한 내적인 영향으로 남아 있기보다는 생애의 일정 기간 동안 지배적이게
된다. 그 기간에 제우스는 분명 겉으로 드러나 있지만 다른 시기들에는 배경에
남아 있다. 예를 들면 아버지 노룻 자체는 어떤 남성에게 제우스 단계가 도래
했음을 알리는 것일 수 있다. 입신 출세를 하기 위해 기어를 바꾸어 넣는다면,
또 전에는 이런 야망을 결코 지지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령지 않으면 한
남성(또는 한 여성)이 그의 생애의 오직 한 분야에서 또는 개인 관계의
영역에서만 제우스를 닳을 수도 있다.

유년기
 
  제우스 아기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존재를 남에게 알리고 싶어한다. 그는 강한
의지력을 내보인다. 마음을 굳히고 있을 때, 손에 무엇인가를 움켜쥐고 있거나
움켜쥔 것을 빼앗기고 싶어하지 않을 때 그의 관심을 돌려놓기란 쉽지 않다.
제우스 아기는 <무서운 두살박이>라는 고정 관념을 형성하는 데 자기 몫
이상으로 크게 공헌한 아이다. 그는 아주 권위적으로 <안돼!>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우스 아기가 독재하려 드는 성질을 누그러뜨리고 타고난 재질을
키우기 위해서는 가정과 학교에서 공평과 정의를 배우고 실행할 수 있는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가 다루거나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나
물건 같은 것을 갖는 실제적인 일들이 주어지는 것이 좋다. 전형적으로 그가
혼자 있을 경우 제우스 아이는 모형 세계를 만들어 그 안에서 일들이 벌어지게
만들 것이다. 그는 책을 읽거나 공상에 잠기기보다는 자동차들이 다닐 길을
닦거나 장난감 병정들로 이루어진 부대를 전쟁터에 보내거나 또는 도시를
세운다. 그에게 어떤 선택권이 있다면 그는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늘 놀이터에서 대장 노룻을 하는 아이이거나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아이이며 그렇게 될 수 없을 때 심하게 좌절감을 느낀다.
 
부모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제우스 소년은 그의 의지력으로 권위적인 남성의
지배를 받고 있는 어머니들을 위협하기도 한다. 그는 타고난 두목감으로 어떤
아버지는 자식의 그러한 자질 때문에 화를 내는 수도 있다. 특히 권위적인
아버지라면 제우스 아이를 학대함으로써 두목의 진면목을 보여 주기도 한다.
부모가 이 아이와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제우스 부모는 그의 말을 플어
주지 않고, 그가 두세 살 나이에 어린 폭군이 되게 내버려 두지도 않으며, 또
정통 권력 투쟁에 빠져 힘이 정의를 만든다는 것을 배우게 내버려 두지도
않으려는데서 도전을 받는다.
  제우스 부모는 다른 유형의 아이들 이상으로 자기 아이가 루이 14세나 헨리
8세처럼 행동한다고 할지라도 이제 막 걸음마를 걷는 아기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이와 힘을 겨루려고 하기보다는 그에게 적절한 선택권을 주는
부모는 아이가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제우스의 타고난 긍정적인 능력을
발휘하도록 격려할 수 있다. "이것을 갖고 싶러, 저것을 갖고 싶니? 이것을
할래, 저것을 할래? 여기로 갈까, 저기로 갈까?" 하고 묻는 것이 "안돼!"라고
말하고 최종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들과 의지력을 겨루는 것보다 더 낫다.
신체적으로 힘이 더 센 사람에게 기대어 결정을 내리는 것보다도 더 낫다. 힘이
정의를 만든다는 법칙은 어린 제우스에게는 너무나도 쉽게 받아들여진다.
한계를 분명히 정하고 그것이 검증되기를 기대하라. 그는 자기 부모가 권위를
갖고 있고 그것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판단을 내릴 정도만큼 부모의 힘을
체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단 만사가 그의 마음에 들게 되면 이 아이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지간에 폭 빠져든다. 그는 대개 외향적이며 적극적인 기질의 소유자다.
문제가 해결된 뒤에야 평화가 찾아온다.
  제우스 아들이 성장하는 데 있어서 최악의 상황은 약하고 수동적인 어머니와
권력을 휘두르고 포악한 아버지 사이에서 자랄 경우다. 이 아이는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을 때마다 공격자와 자신을 동일시할 것이며 때가 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자신에게 <두목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아버지에게서 얼마나
푸대접을 받고 있는지에 따라 그리고 어머니가 자기를 보호해 주지 못한다면
그는 보다 큰 권위를 가진 사람들에게 복종하도록 강요당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그는 기회를 만나면 더 약한 사람들에게 군림하려 든다. (어머니가 학대하는
부모일 수도 있음을 기억하라.)
  성공을 거두었으면서 감정적으로 소원한 아버지를 둔 제우스 아들은 그가
찬사를 보내마지 않는, 그러면서도 확실히 그가 출세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
모델을 갖고 있는 셈이다. 제우스 아들이 사랑으로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를
두었다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자격이 있다는 자신감, 곧 자신이 출세를
하리라는 확신을 갖고 자란다. 천성과 양육 모두 자신이 <중요한 인물>이라는
제우스 아들의 느낌을 강화시킨다.
 
사춘기와 청년기
 
  사춘기에 그는 권위적인 인물들과 맺고 있는 관계가 자주 주요 문제 거리가
된다. 제우스 청년은 권위적인 남성들에게 <두목의 진면목>을 보여주게 만드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또한 그가 그들로 인해 안달이 날 수도 있지만 때를
기다리고 협력할 줄도 안다. 전략가인 그는 자기가 이길 수 없는 권력 싸움에는
가담하지 않는다.
  대개 같은 또래 남자 아이들은 고등학교와 대학 또는 그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지 그를 자연스런 지도자로 인정한다. 그는 인기 있는 여자 아이들과
데이트를 하며 성적으로 적극적이다. 그는 실용주의자이지 이상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세상의 일부를 자기 것으로
가지고 싶어한다. 그가 제아무리 영리하다고 해도 지적인 사람은 못된다. 그는
각별히 자기 분석을 하는 사람이 못된다. 그는 과거를 생각하거나 또는
자신이나 남의 감정을 깊이 생각하느라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그에 관한 한
그는 괜찮은 녀석이며 인생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직업
 
  학교를 갓 졸업하고 쥐꼬리만한 첫봉급을 탈 때부터 그는 자기에게 맡겨진
일들을 해내는 방법들을 잘 관찰하고 곰곰이 생각해 왔다. 그 또래의 많은 다른
소년들이 직장을 단지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고 자기가 해야 할 것만 하고 그
이상은 하지 않는 데 비해 제우스 청년은 사업 자체에 대해 생생한 호기심을
갖고 있으며 자기 직장의 경영주들을 평하며 대개 자기 나름대로 직장의 운영
방식을 체득하게 된다. 만일 그가 농촌이나 빈민 지역에서 자란다면 그는
현금과 맞바꿀 수 있는 농작물로부터 마약 거래 또는 다른 부정한돈벌이에
이르는, 다양한 직거래에 관심을 쏟았을 것이다. 과연 그답게 더 큰 그림을
보면서 자신이 해낼 수 있는 것에 생각을 늘 맞추어 나간다. 그는 자기보다
나이 많은 책임자가, 만일 자신이 그 위치에 있다고 한다면 능히 보았을 것을
왜 보
지 못하는지 의아해 한다. 누구도 그에게 솔선 수범하라고, 열심히 일하라고
가르치거나 그에게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때때로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특별한 관심사를 갖고 있다 -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제우스식의 시각은 선택한 분야에서 출세하도록 돕는다. 예를
들면 그는 <동창 모임>의 성격을 잘 이해하여 이용하는 요령을 알고 있으며
자본주의가 그에게 출세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좋게
받아들인다. 또한 그는 자신을 단련시키는 몇 가지 타고난 심리적 장점을 갖고
있다. 권력과 돈 또는 재산을 획득하는 것은 그가 아주 자연스럽게 하는 게임인
셈이다. 그이유는 그가 현실적이고 자신만만하여 남들이 하는 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사업을 하다가 남들을 재정 파탄에 이르게 하거나 일하는
사람들을 해고해야 하거나 어떤 이를 본보기로 징계해야 하는 등의 커다란 갈등
상황에 부딪힌다면 그는 내리치는 벼락과도 같은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바로
그런 식으로 미 국방성이나 범죄 집단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제우스는 죽이라는
명령을 냉정하게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감정적인 냉랭함은 그가 그러한 상황
때문에 잠을 못 자는 일이 없도록 해준다.
 
여성들과의 관계
 
  전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권력은 최음제>라고 말했다. 제우스 남성의
<요인>이 풍기는 분위기는 몇몇 여성들을 사로잡는데 그가 성공하였다는 것을
보여 주는 일부분이기도 하다. 그도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 어떤 여성에게 열을
올리는 것은 아니다. 여성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는 일에서처럼 전략가다 그가
어떤 여성과 데이트를 하거나 같이 일을 하거나 아내로 삼고 싶어한다면 그는
형식이야 어찌되었든 거의 대부분 그 여성을 유혹하거나 이기려 든다.
  그는 돈과 권력을 자기 매력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생각한다. 재클린
케네디에게 구혼한 아리스토틀 오나시스처럼 그런 점이 제우스 남성들로 하여금
특정 여성들을 따라다닐 자격이 있는 것으로 느끼게 만든다. 그는 한 여성이
오직 자신만을 사랑하리라거나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으며
그러한 것들이 심사 숙고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어떤 여성이나 아내 또는 친구와 평등한 관계를 갖는 것에 관심이 없다.
그는 또한 감정을 논하는 것에 흥미가 없거나 익숙하지 않다. 그리고 여성이
자기의 기대에 맞추기를 바라며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자기를 귀찮게 하지
않기를 바란다.
 
남성들과의 관계
 
남성들은 그와 같이 <게임>을 하는 경기자다. 어떤 선수들은 그의 경쟁자이고
그의 편이며 오늘의 경쟁자가 내일은 자기 편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 다른 선수들은 체스 게임에서 룩이나 나이트와도
같다. 그가 하나를 앞으로 내보내고 다른 것은 죽게 할 것이다. 그의 편이거나
그를 위하여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그와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그들은 언제든지 내버려질
여지가 있다. 제우스의 견지에서는 모든 사람은 소모품이며 남들이 자기와
같은식으로 느끼고 그에 따라 행동해 주기를 기대한다. 인정머리라곤 없는
그이지만 자기 적들을 만드는 것이 별로 이익이 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남들 눈에는 흔히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또 그는 자신들이 내버려질

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는> 남성들에 대해 일말의
동정심도 갖고 있지 않다. 그 이유는 그가 상처받기 쉬운 모습이나 궁색한
모습을 보이거나 또는 감정적이게 되는 것을 어리석거나 약하다는 신호로 받아
들이기 때문이다. -그들 자신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만일
그가 그런 문제를 곱씹어 보는 자기 성찰적인 사람이었더라면 -그답지 못할
터이지만 - 그것이 자신을 개인적으로 얼마나 불편하게 만드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고 왜 그런지 의아해 할 것이다.)
  그가 성공할 수 있는 원천의 하나는 협상하고 동의를 이끌어 내는 능력이며
언제 어느 때라도 그 일을 해낸다. 그는 남성들을 연구해 왔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며 무엇에 만족할 것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협상을 잘한다. 특별히 능력
있는 제우스 남성은 종종 아주 세심하기 때문에 어느 지점까지는 다른 남성의
(언급되지 않은) 욕구 - 체면을 차리고 싶어하는 욕구를 포함하여 - 를 잘 살펴
주기도 한다.
  남자들이 점심을 하거나 또는 골프를 치거나 오리 사냥을 하러 다니는 상류
클럽들은 여러 목적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제우스의 권력과 명예의 요새다.
회원권은 한 남성이 정상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해 주는 중요한 지표다.
여기에다 결혼도 가족과 사업상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클럽은 제우스 남성이 자신과 같은 남자들, 자신의 정력을
오로지 권력을 잡는 데만 쓰고 그 결과로 정신적으로는 미성숙하거나 덜 자란
상태로 남아 있는 남자들 틈에 있을 수 있는 피난처다. 그들이 생각하는
재미있는 일이라는 것은 기업 최고 경영자로부터 전`현직 미국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미국 전역에서 최고 권력자라고 할 만한 남성들이 모여 있는
보헤미아 그로브 캠프에서 볼 수 있다. 그곳에서 그들은 술에 취할 수 있고
<잠을 잘 수>(보헤미아 그로브는 여성을 회원이나 직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매음의 소굴로 알려져 있다)도 있고, 날뛸 수도, 욕지거리를 할 수도, 남자가
여자의 역할을 하는 말도 안되는 놀이를 일삼을 수도 있다.
 
성생활
 
  성공한 제우스 남성은 위계 서열을 가진 종인 영장류 동물에 관한 연구들에서
보이는 <일등 수컷 alpha male>과도 같다. 일등 수컷은 성공을 바라며
공격적이고 낮은 서열의 수컷들을 협박하고 (적어도 영장류 동물들에서는) 가장
좋은 암컷을 고르며 성적으로 하위의 수컷보다 더 활동적이다. 제우스 남신은
권력을 잡고 강화하는 데, 여러 여성들에게 임신을 시켜 여러 자식들의 아비가
된다는 점에서 일등 수컷처럼 행동했다. 제우스 남성이 성적인 만용을 부린다는
것은 자신과 남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치력 또는 경제력을 갖는 것과 같은 것일 수 있다. 바람둥이 제우스는 얻고
싶은 여성을 자신의 지위를 나타내 보이는 잣대로 가질 수 있는  <부수입>으로
볼지도 모른다. 아니면 여성을 노획물로 갖고 싶어하거나 성적으로 원하거나,
또는 세 측면 모두에서 원할지도 모른다.
  제우스 남성은 여성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손아귀에 넣었다고 평판이 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공공연한 비밀은 그가 좋은 연애 상대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좋은 연인이 되려면 다른 원형들이 그 남성 안에 있어야만 한다.
제우스는 감정적으로 냉랭하며 지상의 특성을, 세속적인 기질을 갖고 있지 않아
여성들을 즐겁게 해주려 애쓰지 않으며 열정적이지도 않다. 그의
본능(리비도)이 오랜 시간 동안 자기 일에 전적으로 쏠려 있다고 해도
성적으로는 공격적이며 남을 유혹하는 매력을 갖고 있다.
  제우스 남성이 권력을 잡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가
갖고 있는 또 다른 측면의 인성은 성장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특히 감정적
교류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고통을 겪기 쉬운데 그러한 면은 성적인 표현에
영향을 미친다. 성적 상대의 선택은 바로 이러한 감정적 결핍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자기보다 훨씬 어린 사람을 상대로
고른다면 나이 꽤나 먹은 제우스가 어린 요정들과 같이 있는 고전적인 그림을
흉내내는 것이다.
  그가 어린 요정들과 교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힘센 여자에 의해
이끌려지는 성적인 공상을 할지도 모르며 권력을 가진 남성들을 주고객으로
하는 매매춘 여성이 말하는 것처럼 그들은 이러한 공상을 실제 해보지
않겠느냐는 요청을 공통적으로 받는다고 한다. 그렇긴 하지만 그가 딸이나 손녀
뻘되는 어린 여성들과 성생활을 즐기려고 하거나 힘없고 약한 소년들과 있기를
좋아하는 경우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은 미성숙한 채로 머물러 있거나
아니면 권력과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동성 연애를 하는 제우스도 형태는 마찬가지나 좀더 과장되어 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더 많은 상대들이 있는 것이다. 또 가니메데스를 올림포스에
데려다 놓은 제우스처럼 그도 한 미소년 - 또는 여러 명의 미소년 - 과 동거할
수도 있다.
 
결혼
 
  제우스의 배우자의 목록에 오른 사람은 늘 제우스와 결혼을 했거나 결혼
비슷한 것을 했음을 나타낸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결혼은 한때 힘센 여신들과
그녀들이 지녔던 속성들이 무사 남신의 것이 되어버리면서 생겨난 권력의
이양을 반영하였다. 실제에도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야심 만만한
남성이 상류층 출신의 여성과 결혼을 함으로써 그 여성이 갖고 있는 것들 -
지위와 부 -을 얻게 되는 경우를 한 예로 들 수 있다. 자기 상관의 딸과
결혼하여 그 때문에 그렇지 않았더라면 갖지 못했을 이익을 얻은, 야심에 찬
남성이라면 누구라도 제우스가 한 일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상향 이동을
가능하게 할 아내를 선택하는 일은 계산된 것이거나 제우스 원형에 의해
<이루어지는>무의식적 선택일 수 있다. 후자의 경우 그는 그 여성을 통하여
중요한 사람이 되는  그의 신화를 실현할 수 있는 여성에게 강하게 이끌린다.
  대부분의 제우스 남성은 자리를 잡는 시기에 결혼을 한다. (그의 생에서 다른
면들이 활성화되지 않는다면) 제우스 원형에 의해 삶이 규정될, 그러한 젊은
남성의 경우 이러한 조혼은 중요하다. 이 남성이 사랑하는 여성과 결혼을
하였다면 제우스는 결정적인 원형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제우스 편에서 보면
그녀는 썩 어울리는 배우자는 못되지만 그녀가 드러내는 것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만큼 그가 지닌 비합리적이고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세속적이거나
또는 정신적인 측면을 그로 하여금 접하게 할 사람이다. 반대로 똑같이 지극히
중요한 측면인 다른 면들을 지닌 인생을 시작한 그에게 제우스가 되라는 여성의
요구는 결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아내가 그가 성장하는 데 얼마나 잠재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지만 관계에서 그가 갖고 있는 실제 능력은 아내가 자기 일을 잘 해냈으면
하는 그의 바람과 욕구 주위를 맴돌고 있는 전통적인 가부장제 결혼을 하게
만들기가 훨씬 쉽다 그녀가 그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는 갈등을 일으킬 정도로
강하지 않다면 그녀는 친밀성에 대한욕구나 그들이 함께 갖고 있는 것을 넘어선
그녀만의 꿈을 포기할 것이다.
  만일 그가 바람둥이 제우스이고 결혼 생활이 자기 영역을 차지하기 위한 것
뿐이라면 그리고 그녀가 원형적으로 헤라라면 그들의 결합은 가장 내면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결혼을 통해 완성을 볼 수 있을 그녀의 잠재력을 파괴해
버린다. 대신에 그녀는 결국에 가서 복수심과 질투심에 불타는 헤라의 어두운
면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 그가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리하여
바람둥이 같은 자신의 행동이 그녀에게 가져다 준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게
된다면 감정적으로 성숙해질 수도 있다.
  대부분의 제우스 남성들은 - 일단 구혼 기간과 신혼 기간이 끝나면 - 결혼
생활이나 아내들에게 별로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그러한 남성은 자신이 일에
쏟는 모든 시간이 아내와 자식을 위한 것이라는 거짓 주장을 할지도 모른다.
결혼이 오직 그에게 달려 있는 경우 - 또 그가 모든 권력을 갖게 된 결혼에서
그것은 그에게 달려 있다 - 결혼은 인간적인 것이 아니며 실제로 친밀성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니며 그의 관심을 많이 끄는 것도 아니다. 또한 제우스
남성과 결혼한 대부분의 여성들은그의 결혼관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렇지만
이것은 변하고 있으며 여성들은 - 특히 그들이 헤라 원형을 따르지 않을 경우 -
제우스 식의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딴 남성과 연애를
한다면, 그는 제우스가 데메테르의 애인 이아시온을 벼락을 맞아 죽게 했던 것 
처럼 어떤 식으로든 자기의 경쟁자를 없애버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일은
다 할 것이다.

자식
 
  제우스 남성은 꼭 <아이를 갖지>는 않는다. 많은 이들이 가정을 이루고
일가를 이루고 싶어하는데 그것은 자기 스스로 갖는 미래 모습의 일부다.
성공한 제우스 남성은 자식들이 자립할 뿐만 아니라 출세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도 있다. 그는 감정적으로 냉랭한 아버지이며 별 쓸모 없는 아버지일지도
모른다. 집을 비우는 일이 잦긴 해도 권세를 부리는 아버지다.
  제우스 아버지는 자녀의 삶을 규정하고 교육 및 그가 제공할 수 있는 기회에
접근함으로써 타고난 능력을 십분 발휘하도록 어린아이의 성장을 가속화시킬
뿐만 아니라 아이에게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생활을 마련해 줄 수 있다. 그의
인성과 권위가 미치는 힘이 자식에 대해 내리는 판단을 특별히 강력하게
만든다. 그가 갖고 있는 편견이나 가치 기준뿐만 아니라 그들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은 정확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굉장한 위력을 지닌다. 아이가 (자기의
생명을) 얻으려고 애쓰거나 아니면 받을 가능성조차 없을 수 있는 그의 승락을
받고 싶어할 때 그런 것처럼 말이다.
  제2세대 올림포스 신들은 제우스를 아버지로 여겼다. 그의 총애를 받았던
자식이 있는가 하면 학대를 당한 자식도 있고 그가 키운 자식이 있는가 하면
거부당하거나 미움을 산 자식도 있다. 우리 자신은 실제 아버지들이 어떤
원형이든 상관없이 제우스의 가치 기준이 널리 스며 있는 가부장제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특정한 아이가 제우스형의 아버지와 어떻게 지내느냐 하는 것은 그
아이의 원형 유형과, 그 원형을 드러내는 아이의 자아가 지닌 힘에 달려 있다.
 
중년기
 
  때때로 중년에 접어든 제우스 남성은 자기 점검을 하게 되면서, 자기가
얼마나 승진하여 왔는지, 최정상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 특별히
이 산을 오르고 싶어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의문이
의식 밖으로 나오게 되면 그는 일시적으로 평상시의 의욕을 상실한 채 의기
소침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지금이 바로 오래 전에 약속된 휴가
또는 안식을 취해야 하는 때라고 외쳐 대거나 아니면 큰 변화를 일으키면
어떨까 이리저리 궁리해 볼지도 모른다. 그가 자신과 나름의 행위의 원인들을
돌아보는 것은 그다운 일이 아니지만, 그가 일편 단심으로 전념하고
남들(그리고 남들의 욕구)을 억누르면서 이렇듯 상층부까지 올라온 개인적인
역정이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어쩐지에 관해 성가신 의구심을 느낄
수도 있다.
  중년기는 성공을 거둔 또 다른 제우스 남성들이 그들 나름의 정상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게 되는 때이다 그는 시야를 자기 소유의 소규모 사업장
또는 농장을 갖거나 아니면 자기 분야의 최고 책임자가 되거나 특별한 부서의
장이 되는 것에 한정짓고 그것을 이루어간다 -그것은 또 다른 제우스 남성이 그
나름의 정상에 이르는 동안 거치는 한 정거장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목표일 수 있다. 출세한 제우스가 된다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어마어마하게 성공한 억만 장자 개발자)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자신이 정한, 의미 있는 목표를 이루고 그것이 만족감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어야 한다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중년이란 시기는 <전망을 즐기기 위해
휴식을 취하는> 때일 수도 있다.
  제우스 남성에게 중년기는 큰 감정적 난관을 맞는 시기일 수도 있다.
무시했던 자신의 일부분들 또는 무시되었던 대인 관계들이 극적으로 나타나는
때인 것이다. 그의 사춘기 아이들이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되고 아내가 그의 곁을
떠날 수도 있다. 그는 심장 마비를 일으킬 수도 있고 추잡한 공상을 행동으로
옮길 수도 있다. 그의 오만 방자한 태도는 그를 자기 한계를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어 어렵사리 이룬 성공에도 불구하고 무리를 하여 결국 실패하고 말지도
모른다. 결국 그가 친밀한 대인 관계를 전혀 맺지 않는다면 버림을 받고 한충
더 비참하게 되거나 초라하게 되어 고통스러운 교훈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자기 여생을 다르게 재구성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중년은 또한 남성에게 있어서 강조점이 옮겨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인생
전반기에 제우스를 눈에 띄게 닮았던 반면 그들이 맺고 있는 대인 관계를
통해서도 성장하게 된다. 그는 이제 좀더 많은 시간을 그가 관심을 갖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싶어하며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거나 우정을 돈독히 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경우에 그와 가까운 사람 - 배우자이거나 자식 또는 부모 - 에게 닥친 위기를
통해 그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다. 

노년기
 
  제우스 남성이 자기 분석적이 되면 자기의 의지를 부여하고 또 자제하려는
욕구가 인생의 매주기마다 나타났다는 데 주목할 것이다. 말년에 그는 이런
욕구를 다시 한번 마주하게 된다. 특히 그가 성공을 거둔 제우스라면 말이다.
그는 과연 스스로를 놓아 줄 수 있을까? 그가 이 원형을 극복하고 현명해지지
않는다면 가족들이 운영하는 식품점이 되었든 콜럼비아 방송국 - 빌 팔레이에게
그런 것처럼 - 이 되었든 간에 그가 통제권을 포기한 것이냐 아니면 그것을
그로부터 빼앗은 것이냐 하는 것이 대개 문제가 된다.
  아들이 자기 자리를 빼앗을까봐 두려워한, 그리스 아버지 남신들처럼
자제력이 강한 제우스는 불가피한 상황을 피하려고 싸운다. 그는 아들을
애초부터 경쟁자로 봄으로써 자신에게 도전하지 못하도록 막았을 수도 있다.
  그는 너무나 자식들의 근본을 뒤흔들어 놓아 적절한 후계자를 갖지 못할 수
도 있다. 그럼에도 그가 쥔 왕권이 무엇이 되었든간에 그의 지배력이 약화될
때를 기다려 그것을 인계받을 태세를 갖추고 있는 남성들이 있다. 또한 그는
어쩌면 유언장을 통해 그의 재산을 죽어서도 통제하려 들 것이다. 이렇듯
지배를 유지하려는 승산없는 싸움은 그의 전인생을 제우스 원형에 종속시키는
남성의 운명이다
 
심리적인 문제점들
 
모든 남신 또는 원형은 나름의 고유한 심리적인 문제들을 일으킬 소지를 갖고
있다 올림포스 산의 제우스 같은 남성에게 특수한 문제점들과 한계는 하늘의
세계라는 <영역과 잘 어울린다>.그가 정상에 오르는 과정에서 자신과 남들에게
감정적 대가를 치르게 하는데, 일단 정상에 오르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권력을 갖게 되는 순간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말만 하는 상관은 불완전한 사람이다
 
제우스의 영역은 하늘이었고 제우스 원형은 남성에게 선두에서 살아가면서
자신의 말과 권력으로 사물을 생겨나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드러낼 소지를 심어
준다. 그는 가부장제 산업 문화에서 천부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다. 가부장제
산업 문화의 상급자는   <말만 하는 상관>으로 기대된다. 그는 손이나 몸이
아니라 (돈과 투자, 법이나 권력 같은)아이디어와 추상적 개념을 가지고 일한다
- 어떤 남성은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며 동정심에 의해
움직여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러한 동정 심 리가 그를 <가슴
아파하는 사람 a bleeding heart>이나 (무능력자 a weak sister>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남성은 말로써 그들을 믿게 하고
복종하게 만드는 권력을 부여하는 상급자의 위치에 있다. 그러한 권력이란
전화를 걸거나 방문을 하여 자신의 의지를 펼칠 수 있게 되는 것 - 그의 말은
집이나 회사 또는 전쟁터에서는 곧 법이며 그의 생각을 실현시키거나 "거기
빛이 있으라 하니 거기에 빛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 - 과 같이 진부한 것이다.
  (우리 문화의 지배적 원형이기도 한)제우스 원형의 지배를 받는 남성은 종종
자기 몸이 얼마나 감수성이 애민하면서도 탄력성이 있는지를 전연 느껴 보지
못한다. 그는 자기가 얼마나 먼 거리를 달릴 수 있는지, 또는 자신의 몸매가
얼마나 괜찮은지 또는 정력이 얼마나 센지를 자랑한다. 그러한 자신감은 자기
몸을 얼마나 잘 다스리는가 하는 것이지 그것을 즐기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그는 또한 마음을, 감정을 주고 받는 기관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제우스 남성은
자주 자신의 감수성과 감정적 반응에 무심하다. 이것은 그로 하여금 남들과
교감을 나눌 수 없게 하거나 자신의 이러한 측면을 알 수 없게 만든다. 이러한
정서적 미성숙은 쉽사리 왜곡된 감정적 표현과 성적인 표현, 수줍음과 죄의식,
자기와는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업신여기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는 대개
자기가 눈치조차 채고 있지 못한 정도로 미발달 상태에 있는 불완전한 인간이
다.
 
<숲은 보되 그 안의 나무들은 보지 못한다>
 
  제우스 남성은 좀더 큰 그림을 보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전체를 볼 수
있는 쟁점들을 파악한다. 그는 빈곤과의 전쟁을 주도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가 가난한 사람과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만일 그가 자신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면, 곧   <땅콩>이란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이 말하는 대로
"난 인류는 좋아해, 내가 견딜 수 없는 것은 바로 사람이야"라는 것을 안다면
쓴 웃음을 지으리라.) 아니면 그는 한 아이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거나
전심을 기울여 사랑해 본 적도 없으면서 일류 가는 자녀 양육 전문가가
될는지도 모른다. 그는 자기 시각이 더 우월하다고 여기고 권위자란 얘기를
듣게 되면 자기의 지위를 의심하는 법이 없다. 그가 직접적인 체험을 하고 또
감정적으로도 안정적인 사람의 도전을 받게 되면 "그 여자(또는 그 남자)는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해"라고 평하면서 그 사람을 무시해 버린다. 그는
대신에 자기 스스로 "숲 속의 나무를 보지 못한다"고, 즉 구체적인 한 인간을
훨씬 덜 사랑한다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베트남에서 제우스의 전문성은 무참하게 깨졌다. 정살의 자리에
너무나 빨리 올라 한때 <젊은 수재들>이라고 일컬어진 적이 있는 남성들은
워싱턴에서 전쟁을 조정하면서 우수한 미국의 화력이 결정적 역할을 하리라고
자신했다. 그들은 베트남 전쟁에서 개개인들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왜 이
전쟁을 이길 수 없게 만드는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들이 가져다 준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다. 핵전쟁의 단추가 인간의 마음을 벗어난
곳에 있어야 하며 대통령이 날이 무딘 칼을 쥐고 있다가누군가 단추를 누르려고
하면 그자를 직접 죽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제우스
남성은 <숲에 있는 나무들을 보지> 못하므로 멀리서 내리는 명령이 가져올 수
있는 재해와 살인 만행을 의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 었다.
 
<힘이 정의를 만든다>는 생각
 
  제우스는 권력을 지향하고 이용할 소지를 모든 남성(과 여성)에게 주는
원형이다. 권력이 획득되었을 순간에 위험이 닥친다. 교황 무오류설에 강력히
반대하였던 19세기의 역사가 액톤 경은 "권력은 부패되기 쉽고 절대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고 썼다. 그의 선언은 경구인 동시에 우리가 진리라고 여기는
원리를 표현하는 압축적인 선언이며 종종 제우스 남성들은 그 선언의 내용이
정당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권력을 쥔 남성은 자신들이 신성한 권리로 다스린다고 믿어
왔는데 놀랄 것도 없이 그들의 기본 원형은 제우스였다. 법은 권력자의
지나침을 방지하는 반대 세력으로서 발전되어 왔는데 지금까지도 제우스
남성들은 종종 <법 위에> 있는 것으로 느끼고 행동하고 있다.
  남들에게 학대를 자행하는 남성은 <힘은 정의를 만든다>는 생각에 의해 더
한층 부패되어 있다고 하겠다. 자기 망상적인 정당화 - 그것을 행할 수 있는
권리 - 는 최악의 경우 아내를 때리고 자녀를 학대하고 가족 내에서 근친
강간을 저지르는 행위를 수반하기도 한다.
 
<불안은 군주를 따라다닌다> : 찬탈자의 두려움
 
  권력과 과대 망상증은 종종 공존한다 최고층에 있는 남성은 타도당할까봐
두려워하며 부하들의 동기와 충절을 의심하게 되며 남들이 너무 강해지지나
않을까 하고 남들의 성장을 방해하고 그들이 두려워하는 적들을 만드는 것을
돕는다. 이것은 우라노스,크로노스, 제우스의 이야기이며 아버지 유형이 지닌
어두운 부분이다.
 
과장과 당당함 : 임금님의 새옷
 
  자신이 목표로 한 고지를 점령하여 권위와 권력을 거머쥔 남성은 자칫 어떤
분야에서 권위자가 되면 곧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예를 들면 의사들이 심리적으로 우쭐해지기 쉬운데 그것은 그들이 일상적으로
생사를 결정하기 때문이며 남들 또한 의사들이 아무 것도 모르는 분야들임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자기
과장의 회생이 된 의사들은 비록 그들이 투자에 거의 신경을 쏟지 않아 손해를
보는 실수를 저지른다고 해도 자신을 통찰력 있고 전문적인 투자자로 생각한다
  제우스 남성이 스스로를 보는 과장된 견해는 그로 하여금 자신에게 아첨하는
이들에 의해 조정을 당하고 입바른 소리를 하는 이들을 억압하게 만들기 쉽다.
이것은 물론 <임금님의 새옷> 이야기애서 일어난 일이었다. 만일 그가
아첨이라고 느끼면서 그것을 믿는다면 정직한 사람과 진실을 거절하고 그로
인해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말한 그레샴의
법칙처럼 아첨은 진리를 몰아낸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권력을 행사하고
"진리에 귀기울이려 하지 않는" 남성들은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이다
 
남들이 겪는 심리적인 어려움
 
  남들과 감정적 거리감이 있고 정서적으로 성숙되지 않은 데다가 제우스
남성이 가진 권력이 더해지면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낳는다. 그러한 남성과
친해지고 싶어하고 정을 나누고 싶어하는 아내는 절망에 빠진다. 그는 일단
확실하게 관계를 맺었다고 생각하면 다음에는 관계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관계를 유지하고 깊게 하기 위해서는 다른 원형들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의 아내가 헤라와 같고 그가 바람둥이 제우스라고 한다면 그녀는 배신감으로
매우 고통스러워할 것이다. 그녀가 질투심과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
성격마저 병이 들지도 모른다.
  어린아이도 이러한 아버지의 부재와 그의 늘 판단하려 드는 성질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그들은 감정적으로 버림을 받았거나 거부되었다고
느끼며 그의 기대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경우에는자존심 때문에 몹시 힘들어한다
  학대를 일삼는 제우스의 회생양들은 분명히 고통을 받으며 그들 자신을
학대하거나 (아들의 경우 그렇게 되기가 쉽다) 또 다른 학대 상황에 놓일
소지가 있는 감정적 상처를 갖게 된다.
 
성장하는 길
 
제우스 남성은 혼히 자신이 무슨 문제를 갖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으며 큰
위기가 닥쳐 남의 것이든 자기의 것이든 감정을 무시할 수 없게 될 때까지 성숙
할 필요가 있다. 제우스 남성은 흔히 자신이 겸손해지고 약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연후에야 성숙하기 시작한다.
 
나머지 나는 어디에 있지?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메시지가 제우스 남성에게 전달될 필요가 있다. 레이건
전대통령이 출연했던 유명한 영화에서처럼 잠자리에서 깨어 보니 자기 몸뚱이
일부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머지 나는 어디에 있냐며 괴로워해 볼
필요가 있다. (레이건은 영화 <너트 로큰 Knute Rockne : All-American>에서
병원에서 깨어나 보니 자기 다리가 잘려 나간 것을 알고는 "나머지 나는 어디에
있지"라고 말하는 풋볼스타 죠지 깁 역을 맡았다. )
  자기를 돌아볼 줄 모르며(자기 분석은 하데스의 영역이기 때문에) 감정이
없는 그는 극렬한 사건이 터져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고통스럽게 깨닫게 될
때까지는 자신 또는 남들과 지독하리만치 의절하고 산다는 것을 상상할 것 같지
않다. 그가 마침내 깨어났을 때 그 메시지는 대개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나오게
된다. 여자 문제로 배신을 했거나 일 때문에 돌보지 않았던 아내는 그의 곁을
떠나며, 별로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자식들이 그에게 맞서거나 인연을 끊게 될
것이다. 그들이 그와 관계를 끊은 연후에라야 이제 잃어버리게 된 것으로 인해
고통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감정 및 남들의 감정과 관계를 단절하고 살았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
점차로 정신 치료 거리가 된다. 그렇지만 제우스 남성은 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달린 것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에 대개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심리적인 고통에 대한 좀더 통상적인 그의 반응은 스스로 일에
미쳐 버림으로써 그 상황을 벗어나려고 한다. 대개 제우스 남성은 단지 아내가
가라고 하니까 가끔 <아내>를 위해서 정신과 의사를 보러 온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아이를 치료하는 의사가 부모들도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온다.
 
심장 마비가 주는 메시지
 
  제우스 남성이 중병을 앓고 있다면 심장 마비가 자주 그를 쓰러뜨리는 병일
것이다. 심장 마비는 그에게 적합한 만성 질환이며 그로 하여금 생활에 른
변화를 일으킬 것을요구하는 병이다. 여기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는데
전통적으로 감정 기관인 "심장을 무시하는 것은" 그를 거의 죽음으로 몰고
간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는 정상에서 내려와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심장이
필요로 하는 산소가 그곳에는 아주 희박하기 때문이다. 이 남성은 결국 그것이
단지 신체적 문제만이 아니라 감정적 문제가 몸을 통해 드러난 것이라는 교훈을
얻는다고 할 수 있다.

사랑에 빠지기
 
  그의 심장은 또 다른 방식으로 그의 생을 갑작스럽게 무너뜨릴 수 있다.
에로스의 사랑의 화살에 맞은 것처럼 불가항력으로 열정적으로 여성에게
사로잡혀 그 여자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정도가 될 수도 있다. 이성을
잃고 책임감도 버린다. 지나치게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 있는 위치는 반대쪽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 융은 이를 가리켜 에난티오드로미아 enantiodromia라
불렀다. 그가 무시하고 억눌러 온 본능과 감정의 영역이 이제 살아나서 이성을
전복시키는 것이다. 위기는 그의 심리 상태를 깨뜨리고 결혼 생활을 파경으로
몰고 가게 되어 갑갑한 심장에 원기와 생명력을 불러일으킨다. 그 동안
인정되지 않았던 감정적 영역에 머물려는 욕구 자체가 이제는 의식적으로
운명으로서 등장하는 것이다.
 
머리로부터 벗어나기
 
  그가 갖고 있는 감정의 장벽을 깨뜨리고 그를 머리에서 끄집어냄으로써
생기는 큰 상실감이 제우스 남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는 잠시 <슬픔에 못
이겨 제정신을 잃고>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든다. 슬픔이 제아무리 고통스럽고
돌연한 상황이 제아무리 나쁘다해도 그는 더 이상 고통을 겪는 인간의 속성에서
떨어져 있지 않으며 정상에서 내려와 <좀더 인간답게> 된다.
  그러한 경험은 포세이돈이 지배하는 감정의 영역을 열어 보임으로써 그를
변화시키기도 하는데 그로 하여금 자신이 감정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으며 또
남들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시적으로 쫓겨난
국왕과도 같이 제우스다운 면모가 그 자체로 거듭 드러나게 되고 그에게 일어난
일이 굴욕적인 것이라 판단하고 그리하여 이제 그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
자신의 감정을 더욱 심하게 억압할까봐 걱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
 
그를 괴롭히는 것을 치유하기
 
  성배에 관한 전설에는 치료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왕 - 제우스 같은 인물 -
이 나온다. 상처가 아물지 않는 한 그의 왕국은 폐허가 된 채로 버려져 있을
것이다. 그의 성안에는 그를 치료할 수 있는 성배가 있는데 순진 무구한
어릿광대인 젊은이가 성배와 상처입은 왕을 보고 어떤 질문을 할 경우에만
치료가 된다는 것이다. 어떤 책에서는 그 질문이 "어디가 아프십니까?"라고
전해진다. 뭔가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치료 과정 이전에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지?"하는 질문이 주어지고 대답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전설에서는 아물지 않을 상징적인 상처는 생식기 가까운 곳에 난, 왕의
허벅지에 나거나 생식기 자체에 난 상처이다. 그러한 상처는 본능과 열정
표현에 영향을 미치고 성관계, 생식 능력, 창조력에 손상을 입힌다. 그의
왕국이 황무지라고 해도 놀랄 것이 없다. 왜냐하면 이런 상처를 갖고서는
새로운 생명이 탄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처 투성이 왕은 제우스 원형이나 가부장제의 통치 원리로서의 권력을
대표한다. 상처 입은 왕은 또한 역기능을 하는, 가정의 가부장적인 아버지나
남성 속에 있는 지배적인 원형을 대표할 수도 있다. 상처 입은 제우스가 다스릴
때마다 자라지 못하게 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짓누르는 통제를 유지
하려는 억압적 욕구가 있는 것이다. 감정적으로 무미 건조하게 되고 창조적
재능이 없어지고 우울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왕국 - 그것은 문화일 수도,
가족일 수도 남자의 마음일 수도 있다 - 은 아무 것도 자라지 못하는 사막과
같은 불모지가 되어버린다.
  치유가 되려면 순진한 어릿광대가 그의 심성이나 환경에 들어가야 한다.
제우스의 관점에서 보면 천진 난만하게 행동하거나 무지스럽게 되는 것은
바보가 되는 것이다. 자기의 지위를 권위로 치장해 온 제우스 남성이 어리석게
보이는 것을 무릅쓰거나 자신의 약점을 드러낸 채 남들에게 의지하거나 또는
어린아이처럼 열린 마음과 아마추어처럼 어눌하게 새로운 경험과 마주하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제4잗
포세이돈 : 바다의 신
감정과 본능의 세계
 
여러 마리의 말들이 끄는 전차를 몰고 바다를 가로지르는 포세이돈은 대양의
신이자 말들의 신으로, 두 세대에 걸친 무의식 세계의 상징물인 말과 물을
구현하고 있다. 물은 늘 남성 안에서 유동적인 무의식이 지닌 무한한 신비감,
무한한 가능성,무한한 위험적 요소를 부추겨 왔다. 나름의 어떤 정해진 형태도
없이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두 번 연이어 움직이는 동안에도 결코 똑같이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말은 우리 자신의 원초적 본성이 갖고 있는 본능적인 욕구를
원시적인 잠재된 형태로 의인화한다 ‥‥‥ 포세이돈은 가장 원시적인 남신이자
대지를 흔드는 자이며 폭풍우와 지진, 갑작스런 참화를 가져오는 해일, 곧 의식
밑에 잠자고 있는 힘이 폭발할 때 터져나오는 위험들의 신이었다.
- 아리아나 스타시노풀로스, <그리스의 신들>
 
대지와 팅 빈 바다를 움직이는 이
위대한 대양의 신이며 ‥‥‥ 대지를 뒤흔드는 이여
신들로부터 두 배의 존경을 받는 이여
당신은
말을 다루는 기수이자
배를 구조하는 이시오.
포세이돈이여 안부 올리나이다.
지구를 나르는 이시며 검은 머리카락의 행목에 넘친 신
마음씨도 좋으셔라.
- 호메로스, (포세이돈 찬가) 찰스 보어 옮김
 
  포세이돈은 그의 형제 제우스와 하데스와 세상을 나누어 가지기 위해 제비를
뽑은 결과 자기 차지가 된 왕국인 바다 밑에서 살았다. 그가 의인화하는 감정,
그가 다스리는 심리적 영역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거친 바다를 생각하면 된다.
엄청난 파괴력으로 제길을 가고 있는 것을 모두 닥치는 대로 때려부수는,
포효하는 파도가 넘실대는 사나운 바다를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에게
밀려들어 합리성을 잊게 만드는 강렬한 감정의 격랑과도 같이 포세이돈은
자신이 살고 있는 깊은 바다 속에서 나타나 사납게 날뛰다가 다시 바다 밑
세계로 물러나곤 했다. 그는 자연과 인간 본성이 지닌 굉장히 혼란스럽고
파괴적인 힘을 나타내는 홍수를 가져오는 자, 대지를 흔드는 자로도 불리웠다.
  꿈과 은유의 세계에서 바다는 무의식을 나타낸다. 표면 바로 밑에는 언제든지
생각나는 개인적인 감정과 기억들이 있고 심연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원초적인
것들과 가지 각색의 형태들, 집단 무의식이 있다 물과 감정은 상징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바다는,화가 나면 감정적이며 강렬하게 반응하는 포세이돈에게
적합한 영역이 된다. 그를 상징하는 동물은 말인데 신체적 본능이 지닌 힘과
아름다움을 나타내며, 말은 포세이돈이 올림포스 신이 되기 전에 대지의 아버지
신이었음을 입증하는 육상 동물이다.
  우리가 하데스를 만나면 분명해질 저승 역시 개인과 집단의 무의식을
나타낸다. 바다 밑은 억압된 인간의 감정과 본능, 그리고 우리가 집단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감정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포세이돈 남성들의 가족은 가장
무서운 아버지 원형이 지니고 있는 면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집안에서
주기적으로 거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격앙된다. 가부장제 문화는 아버지를
가정의 군주이자 주인으로 섬겨 다른 곳에서와는 달리 집안에서만은 크게 화를
내는 것을 용인한다.
  우리가 아버지의 포세이돈다운 기질(특히 술주정뱅이 아버지)을 받아주는
사람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런 기질이 우리 안에도 있을 수,있다.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격렬한 감정에 예기치 않게 휩싸여 보았거나 슬픔이나 격노 또는
원한으로 전율감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포세이돈을 직접 체험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제우스가 다스리는 이승에서 자기 감정과 본능을 낮게 평가하고
드러내지 않도록, 또 될 수 있으면 그것을 숨기도록 훈련받고 있다. 또한
우리는 합리적인 아폴론이나 냉정한 사고를 하는 아테나(제우스가 가장
사랑하는 자식들)와 닮았다면 감정을 끝까지 잘 억누르게 된다. 포세이돈의
세계가 우리의 감정을 느끼고 그것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제우스, 아테나, 아폴론의 경향 때문에 생긴) 방어 기재를 돌파하도록
위협할 때 우리는 자주 해일이나 홍수 또는 지진의 공포를 연상하게 된다.
  그렇지만 제우스가 지배하는 세계에서조차 포세이돈의 영역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바다가 아닌 곳에서 산다는 것을 감히 생각하지 못하는
뱃사람과도 같다. 이 사람들은 감정과 본능의 물결대로 살아가고 일한다. 예를
들면 나는 딜란 토마스의 힘있고 격정적인 시와 몹시 거친 삶과, "그 멋진 밤을
점잖게 맞이하다니 ‥‥‥ 분노하라, 빛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 보이지도
않느냐"는 시구를 떠올리면서 포세이돈의 세계와 친숙함을 느낀다. 베토벤의
음악에서 또 유진 오닐과 테네시 윌리암스의 희곡에서 이러한 기질을 경험할 수
있다. 이들은 포세이돈의 짙은 감정이 지닌 공포, 아름다움, 힘을 표현하는
방법을 발견하여 거기에다 형식을 부여한 사람들이다.
 
포세이돈 남신
 
포세이돈(로마에서는 넵투누스라 불렸다)은 바다를 다스리는 그리스 신이었다.
그는 턱수염을 기르고 제우스와 같은 모습을 하고 삼지창을 쥔 힘센 남성으로
그려졌다.
  그가 바다의 세계와 같은 것으로 여겨짐에도 불구하고 포세이돈이라는 이름은
대지의 또 다른 이름인 다 Da의 남편(포시스 다스 posis Das)을 뜻했다. 그는
지진과 연결되어 대지를 흔드는 자로 불리웠다. 그를 상징하는 주요 동물은
황소와 말이었다.
  포세이돈의 격한 기질은 그의 특징을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내는 것이다. 그는
성질이 나쁘고 폭력적이며 원한을 품고 있으며 파괴적이고 위험스러우혀
폭풍우와 소란을 동반하는 남신이다. 그령지만 그는 또한 바다를 잠잠하게 할
수도 있다. 포세이돈이 황금 갈기의 백마들이 끄는 황금 전차를 몰면서
파도위를 가고 바다 괴물이 그 주위를 맴돌라치면 폭풍우는 금세 그쳤다.
 
계보와 신화
 
  제우스를 제외한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크로노스와 레아의 아들인
포세이돈은 아들이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까봐 두려워하던 아버지에 의해
삼켜졌다.
  몇몇 출생 설화에서는 포세이돈이 제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러한 운명을
피했다고 전해진다. 어떤 설에는 망아지가 그를 대신하여 크로노스에게
삼켜졌다고 전한다. 또 다른 설은 크로노스가 그를 삼키는 대신 갓 태어난 그를
물에 빠져 죽도록 바다에 던져 넣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는 아버지가
없애려 했던 아들이며 제우스가 메티스의 도움을 받아 크로노스에게 도전하여
세 자매와 두 형제를 도로 토해 내게 한 이후에야 풀려났다. 그후 올림포스의
형제들과 동료들이 크로노스와 티탄들과 싸워 이겼다. 그들은 세상을 나누기
위해 제비를 뽑았는데 포세이돈의 몫으로 바다가 돌아갔다.
  포세이돈은 자기 몫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아테네와 트로이젠의 도시들을
갖기 위해 아테나와, 아르고를 갖기 위해 헤라와 겨루었다. 아테네를 얻기 위한
싸움에서 포세이돈과 아테나는 서로 경쟁하는 와중에 시민들에게 선물을 가져다
준 셈이 되었다. 아테나가 그들에게 올리브 나무를 선사하자 포세이돈은 자신이
갖고 있던 삼지창을 아크로폴리스 산 정상에 있는 바위에 던져 소금물이 나오는
샘을 만들어 주었다. 아테나의 선물이 좀더 쓸모있는 것으로 판단되면서 그가
경쟁에서 지자 포세이돈은 주변의 평야에 홍수를 퍼부었다. 그는 또한
트로이젠에도 홍수를 내렸다. 그는 아르고를 갖기 위한 헤라와의 싸움에서도 별
볼일이 없었는데 싸움에서 지자복수로 모든 강을 말라붙게 만들었다. 그는
아이기나를 둘러싸고 제우스와, 낙소스를 둘러싸고 디오니소스와 겨루었 으나
이기지 못했다. 코린토스를 둘러싸고 헬리오스와 벌인 싸움에서는 약간의
진전을 보였는데 포세이돈은 양쪽이 바다에 면한 지협을 차지하고 헬리오스는
아크로폴리스를 차지하게 되었다. 포세이돈은 또 제우스에게 반대하는 폭동을
일으키고 그를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몄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포세이돈파 여성
 
  포세이돈은 처음에 바다의 요정, 또는 바다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는 테티스와
결혼하려고 마음 먹고 역시 그녀를 탐내던 제우스와 겨루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가 테티스는 아버지보다 더 위대한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폭로하자
두 신은 모두 그녀를 버렸고 그녀가 인간과 혼인하게 만들었다.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스가 바로 그 아들이었다.)     다음으로 그의 구애를 불쾌하게 여겼던,
또 다른 바다의 요정인 암피트리테에게 접근하였다. 그가 힘으로 그녀를
쓰러뜨린 다음 강간하려 하자그녀는 그를 피해 아틀라스 산으로 달아났다. 결국
돌고래 한 마리(델피노스)가 그럴 듯하게 편을 들어주어 그녀가 포세이돈과
결혼하는 데 동의하게 만들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포세이돈은 돌고래의
이미지를 별자리로 새겨 놓았다.
  포세이돈과 암피트리테의 결혼은 제우스와 헤라의 결혼과 같은 유형을
따랐다. 포세이돈도 바람둥이었기 때문이다 질투에 불타는 암피트리테의 원한은
헤라처럼 다른 여성에게로 향했다. 포세이돈이 스킬라에게 반하자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암피트리테가 마술 풀잎을 스킬라 욕조에 넣자 아름다운 여성이 여섯
개의 머리에 각 머리는 삼중의 이빨과 열두 개의 다리를 가지고 짖어 대는
괴물로 변한 사건이었다. 스킬라는 메시나 해협에 살면서 지나가는 배의 갑판을
잡아채어 선원들을 삼켜 버리곤 했다.
  메두사도 포세이돈 때문에 비슷하게 무시무시한 운명을 맞았다. 포세이돈은
아테나를 모시는 신전에서 메두사와 정을 통했다. 이 때문에 여신들은 메두사를
머리에 뱀이 달린 무서운 괴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녀를
쳐다보기만 해도 모두 돌덩이로 변하게 만들었다.
  데메테르가 납치당한 딸을 찾아 온세상을 뒤지고 다닐 때 포세이돈은 그녀를
발견하고는 손아귀에 넣으려 했다. 그를 피하려 데메테르는 암말로 변하여 말떼
속으로 숨었다. 그러나 포세이돈은 계속 쫓아가, 자신도 숫말로 변하여 그녀를
강간하였다.
 
포세이돈과 그의 자식들
 
  암피트리테는 포세이돈의 세 아이,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낳았다. 포세이돈은
그 외에도 여러 다른 자식들을 가졌으며 그들 가운데 많은 자식들이 신화에서
괴물로 나타났다 포세이돈은 파괴력을 지닌 거인과, 표준 체격에 잔인한 성격을
가진 아들의 아버지였다. 아들들은 그의 파괴력을 이어받았으며 아버지가
그들에게 보여준 모진 애정에 기댔을 것이다.
  오디세우스가 포세이돈의 외눈박이 아들 폴리페모스 키클로페스의 눈을 멀게
만들었을 때 포세이돈은 마음 속 깊이 맺힌 미움으로 오디세우스를 뒤쫓아 그를
도와준 이들을 벌하였다. 예를 들면 포세이돈은 오디세우스를 도와준
뱃사람들의 항구를 가로막았고 피난민선을 바위로 변하게 하였다. 오디세우스는
포세이돈의 원한 때문에 그만큼 길고도 험난한 삶을 살아야 했다.
 
트로이 군에 대한 포세이돈의 적개심
 
  원한을 품은 포세이돈에 필적할 만한 것은 없었다. 트로이 군에게 느끼는
분노가 너무나도 커서 제우스의 특명을 거스르면서까지 그리스인들을 대신하여
싸움에 참가하였다. 그의 미움은 아주 일찍이 시작되었다. 포세이돈과 아폴론은
일정한 비용을 지불할 테니 트로이 시의 성벽을 세워달라는 (프리아모스의
아버지이자 파리스와 헥토르의 할아버지로 트로이 전쟁 초기에 죽었던)
라오메돈 왕의 제안에 동의하였다 그런데 그들이 그 일을 끝냈을 때 그는
비용을 주지 않았다. 그러자 포세이돈은 (구약 성서에서도 복수의 기준으로
삼았던) <2세대 3세대에 이르도록> 복수를 하였다.
 
포세이돈과 크레타 섬 : 바다의 황소
 
  크레타 섬의 미노스 왕은 포세이돈에게 희생 제물로 바칠 황소를 보내달라고
청하였다. 미노스는 바다에서 나온 황소가 하도 좋아서 약속대로 그것을 제물로
바치는 대신 갖고 있기로 마음 먹었다. 포세이돈은 미노스 왕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몹시 화가 나서 미노스의 아내 파시파에가 황소와 열렬한 연애를
하게 만들었다. 이때 태어난 아이가 왕궁 지하에 난 미로의 한복판에 살았던
인신 우두의 괴물인 미노타우로스였다.
 
포세이돈의 온화한 면
 
  포세이돈이 분노, 파괴, 달리 말해 폭풍우 같은 성질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덜 알려져서 그렇지 평화스럽고 자비로운 면도 갖고 있다. 한 예로 좀더 평온한
분위기에서 믿음이 가는 이디오피아 사람들을 방문하였는데 그들은 그에게
풍성한 제물을 갖다 바쳤으며 잠시 오디세우스를 추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었다. 자비를 베풀고 지진을 일으켜 큰 호수였던 테살리아를 육지로 바꾸어
놓았다. 그는 또한 이노와 그녀의 아들이 바다에 투신하였을 때 그들을 바다의
신으로 만들어 주었고 카스토르와 폴룩스를 폭풍우를 잠재울 수 있는 뱃사람의
수호자로 지명하였다.
 
포세이돈 원형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면서 바다 바로 밑에 감정적이고 성을 잘 내는 신이 살고
있어서 만사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길길이 날뛰며 때려부술지도 모른다고
상상해 보라.그렇다면 여러분은 즉시 포세이돈 원형의 몇 가지 주요 특징들을
파악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원형은 제우스에게 <패배한>아버지 원형의 일부로,
제우스를 닮았으면서 매사 통제하려 드는 남성들의 내면에 억제되어 있다.
  감정의 영역이 억제되어 있을 때 이러한 원형은 지하로 숨으며 남성의 인성
속에 융화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감정을 그 즉시 드러내는 것이 허용되지
않고 억제된다. 그렇지만 결국에 가서는 포세이돈 원형을 더 이상 안으로
억누를 수 없게 되고, 상황이 어떻든지간에 고통을 일으키는 이에 대해서는
격노와 슬픔에 가득차 파괴를 일삼는 원초적인 충동으로 이어진다
  포세이돈은 그로 인해 아주 깊이가 있고 아름다운 심리의 세계로 알려질 수
있는 원형이기도 하다 포세이돈의 바다 밑 세계는 올림포스 산에서는 볼 수가
없으며 그리스 신화에 묘사되어 있지도 않았다. 감정적 깊이에 가까이 간다는
것은 아직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인간의 심리 세계의 일면이며 가부장제
문화에서 낮게 평가되고 억압되어 온 부분이다. 예를 들어 영국 상류층
사람들이 잘 움직이지 않는 윗입술을 갖고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통의 미국 중산층 남성들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도록 기대된다.
  포세이돈의 덜 알려진 측면은 지하수로 상징되고 있다. 땅밑에 깊숙이
감추어져 드러나지도 보이지도 않으나 그럼에도 결국 알려지도륵 건드려지거나
드러낼 필요가 있는 아주 내성적인 상태로 존재하는 감정적 깊이라고 하겠다.
 
깊은 바다의 잠수부 원형
 
  포세이돈은 물 속을 헤치고 다니는 유일한 올림포스 신이었다. 그는 깊은
곳에 뛰어들어 원하는 만큼 오랫동안 바다 속에 머무르거나 자신의 전차를 끄는
황금 갈기의 말에게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날쌔게 표면으로 올라을 수 있었고,
그의 주변을 맴도는 바다 괴물들 - 스쿠버 다이버들의 꿈이기도 하다 - 을 가질
수도 있었다. 포세이돈은 또한 감성의 세계에 깊이 빠지거나 그 밑바닥에 있는
것에 접근할 수 있는 남성 또는 여성을 상징한다 다시 말해 영혼`슬픔`최고의
아름다움`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괴물적 요소가 너무나 깊고 어두워서 더 이상
분명하게 볼 수도 없고 단지 거기에 무엇이 있다는 정도의 감만을 잡을 수 있을
뿐이다. 여기에는 보통 사람이 이해하거나 완전히 알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광대함, 심오함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포세이돈다운 기질을 거세당한 남성은 술을 마시고 취해서 눈물을 흘리거나
또는 슬픔과 분노에 빠지게 될 때 포세이돈의 영역에 진입하여 일시적으로나마
그것에 압도당하여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댄다.
  반대로 포세이돈 유형이 지닌 깊은 바다의 잠수부 같은 면은 시인`희곡
작가`소설가 `작곡가`음악가`정신과 의사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러한
사람들은 감정의 세계로 점점 깊이 빠져들어 집단적인 인간의 심연을 두드리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수난을 겪고 그 예술성과 문학성을
인정받으면서도 좀더 감정적인 국민 정서를 갖고 있는 민족들(예를 들면,
러시아와 아일랜드)은 이러한 영역을 더 존중하고 자기 민족 남성들이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이며 표현적이도록 내버려 두는 듯하다.
 
왕의 원형
 
  제우스와 그보다는 덜하긴 하지만 하데스처럼 포세이돈도 왕이 되는 것과
관련이 있는, 일정 영역에 대한 지배권, 존경과 통제력을 얻고 싶어한다.
포세이돈 남성은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고 싶다"는 욕구를 느낀다. 그렇지만
원형적으로 포세이돈인 남성은 하늘의 남신이 지배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성공을 하고 <왕국>을 세우는 데 필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개인사에 무심한
면, 전략적 사고, 의지력이 부족하다. 그가 사업에 들인 노력은 남신
포세이돈의 노력을 닮을 수 있다. 그는 다른 신들과 땅을 차지하려는 싸움에
계속 패해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고서는 화로 맞선 남신 포세이돈을 닮을 수
있다.
  이 남신과 연관된 격정이 있다고 한다면 이 원형대로 사는 남성은 대개
지고도 태연해 할 사람은 아니다. 제우스의 견지에서 보면 각각의 다툼은 적정
심판자들에 의해  <정정당당하고 공정하게> 판결이 내려졌다 그들에게서 재산과
존경을 얻어 내는 규칙을 이해하지 못한 남성들처럼 포세이돈은 분노로 맞섰다.
특징을 가장 잘 살려서 말한다면 포세이돈 원형이 남성의 마음을 감정에
휩싸이게 만들어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처럼 포세이돈은 홍수를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남성이 출새를 하지 못할 경우 그는 유일하게 집안에서 왕 노릇을 하게
된다.
 
삼지창을 지닌 자
 
  포세이돈의 상징은 삼지창이었다. 삼지창은 대지의 남편이라는 그의 이름이
지닌 의미에 걸맞게 그를 역사적으로 올림포스 이전 시대의 남신, 위대한
여신의 배우자로 위치짓는 남근 숭배의 상징이다. 위대한 여신은 세 가지
모습을 지녔는데 하녀, 어머니, 그리고 쭈그렁 할멈의 모습들이다. 포세이돈의
삼지창은 세 갈래로 된 남근을 상징하고 세 여신의 짝으로서의 그의 직능을
의미하였다. 그를 상징하는 두 동물인 말과 황소처럼 삼지창은 좀 추상적이긴
하지만 그의 성욕, 출산력을 나타낸다.
  삼지창을 갖고 다니는 이는 성적 능력, 곧 임신을 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임신은 특별히 여성들이 아이를 임신하는 것(어머니
여신)에 한정되지 않으며 처녀이자 순진 무구한 여성(하녀 여신)과 현명한
여성(쭈그렁 할멈 여신)에까지 넓혀진다. 말 그대로 원형에 가장 가깝게 산다고
할 때 이렇 듯 닥치는 대로 난잡하며 성욕이 넘치는 정신병적인 남성성은 젊은
여성 늙은 여성을 가리지 않는 남성들 속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인간
관계에 얽혀 산다고 할 때 삼지창을 갖고 다니는 이는 자기 아내 속에 공존하는
처녀, 어머니, 현명한 여성의 남편이 되는 남성이다. 일생 동안 그녀의
짝으로서 처음에는 그와 결혼한 처녀, 다음에는 그의 아이의 어머니, 늙어서는
나이 든 여성의 남편이 된다.
  가장 추상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포세이돈은 대지의 남편이다. 곧 대지가
기름지는 데 필요로 하는 생명력을 주는 습기다. 그는 지하수를 나타내며
포세이돈 남신이 땅을 쳐서 물을 솟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삼지창은 이러한
원천을 두드리는 힘을 상징하고 있다.
 
적에게 가차 없는 포세이돈
 
  포세이돈이 십 년 동안 오디세우스를 추격했던, 냉혹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는
그의 외눈박이 괴물 아들을 장님으로 만들어 버린 것을 노여워한 아버지의
이야기다. 폴리페모스가 오디세우스와 그 수하의 남성들을 잡아먹으려 했으며
오직 오디세우스의 계략과 용기만이 이러한 일을 물리쳤다는 것에 개의치 말라.
이 이야기는 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는, 눈에는 눈이라는 식의 응보다.
그러한 <응보>는 사실상 복수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나 자신의 것에 행해진
해악을 되갚는 것이다. 포세이돈은 시간이 지나도 사그러들지 않는 원한을
품고서 묵은 셈을 치루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트로이 군과 벌인 싸움처럼 세
세대가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가 앙갚음을 하게 될 것이다.
  수많은 이야기와 수많은 남성들이 이 원형을 따르고 있다. <죽음의 욕망
Death Wish> 시리즈에 나오는 찰스 브론슨이라든지 <고집 불통 Hardcore>에
나오는 죠지 C. 스코트 같은 영화 스타들은 자기 손으로 직접 원수를 갚는,
개인적인 복수를 하는 포세이돈 아버지 역을 하였는데 영화 전편에 폭력적인
장면이 난무한다. 비슷하게 제2차 세계 대전 때 태평양 함대 사령관이었던
윌리엄 불 흘씨 William 'Bul' Halsey는 배신자 오디세우스를 추적해서 잡는
포세이돈이 가졌던 용서할 수 없는 미움으로 가득 차서 너른 대양을 떠다니는
일본 전함을 추격했다. 그에게 <유일하게 선량한 쪽바리는 죽은 쪽바리였다>.
또 <복수는 내 몫이다)라고 외쳐대는 구약의 하느님 야훼도 마찬가지로
포세이돈 원형의 이러한 면을 드러내고 있었다고 하겠다.
 
야성적인 남성 원형, 포세이돈
 
  미국의 일류 시인이면서 남성 운동 지도자였던 로버트 블라이는 남성들, 특히
1960년대에 성장한 남성들이 되찾아야 하는 남성성, <웅덩이 바닥에 있는
야성적인 남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러한 상상은 <그림 동화집>에 나오는
바보 한스 이야기에서 취한 것이다. 옛날에 모든 남성들이 피해 다니는 숲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 들어간 사냥꾼들은 결코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두려움을 모르는 이상한 사냥꾼 하나가 개를 데리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 개는 깊은 웅덩이 부근에 있는 사나운 사냥감을 좇았는데 맨
팔이 물 속에서 나타나 개를 잡아당겨 물 속에 빠지게 되었다. 사냥꾼이 이것을
보고는 사람 셋에게 양동이를 들고 와서 웅덩이의 물을 퍼내게 하였다. 그들이
바닥에 이르자 야만스런 남성 하나를 찾아냈다. 그의 몸은 녹슨 쇠처럼
갈색빛을 띠었고 얼굴을 덮은 머리카락은 무릎에 닿을 정도였다.
  블라이는 야상적인 남성을 본능적이고 여성들에 의해 길들여지지 않으며
자연과 화합하는 남성성의 상징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 남성들이 이러한 힘과
근원을 알려고 들고 의식 세계 속으로, 그리고 문화 속으로 끌어들일 때까지는
존경도 못 받고 무시되고 심지어는 두려움에 떨게 될 남성성의 상징인 것이다.
  나는 웅덩이 바닥에 있는 야성적인 남성을 거부당하고 인정받지 못한
포세이돈의 이미지, 또 다른 이름으로 알려진 무의식 세계에 있는 억압된
원형이라고 생각한다. 동화책에서 야성적인 남성은 어린 소년에 의해 감금
상태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역으로 야성적인 남성은 소년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한다 그가 크게 필요로 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소년은 숲으로 가서 그를
부르면 된다. 야성적인 남성은 힘과 권력의 근원, 소년이 시험을 당할 때
구원을 요청하는 원형이다. 그 과정에서 소년은 용기 있고 사랑에 넘치는
남성이 되고 야성적인 남성은 당당한 왕으로 등장한다.
 
포세이돈 남성
 
포세이돈이 지배하는 영역은 감정의 세계이며 포세이돈이 원형인 남성은 자신의
본능과 감정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하고 있는데 그가 외향적이라면 자연스럽게
즉시 표출이 되고 내성적이라면 내부에 숨어 있게 된다. 어느 경우가 되었든
그는 깊고 강렬하게 느긴다. 또 그는 감정적이지 않은 사내 아이와 남성들을
선호하는 문화에서 자란다.
 
유년기
 
  포세이돈 아이는 자신에게 문제가 되는 모든 것을 강렬하게 느낀다. 특히
외향적인 어린아이의 경우는 그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면 무엇이든지간에
감정이나 행동으로 즉각 반응을 보인다. 그는 자기 마음이 끌리는 것을 갖고
싶어하며 지금 당장 갖고 싶다는 욕구를 드러내기 바쁘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것에 대해 욕망을 갖고 있으며 지금 당장 그것을 가질 수 없을 때 좌절감과
분노에 차서 울부짖는다. 만일 그가 이후에 그것을 얻는다면 원하는 것을
얻었다는 것에 대해 온몸으로 목청껏 크게 기뻐한다. 더 나중에 그것을 얻을
경우에는 더 이상 같은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 순간의 욕망이 사라지면 자기
감정을 쏟아부었던 것에 사로잡혀 있지 않게 된다. 그가 어떤 특정
욕구만큼이나 강렬하게 자기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 그의 초점은 딴 데로
돌려지고 전해질 수 있다. 순간의 범람이 치수 과정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제우스 형제들과는 달리 포세이돈은 자기 자신에게 그토록 중요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보지 못하다가 무언가 다른 것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부모가 벌을 내릴까봐 두려운 나머지 자기 감정을 억눌러야만 하는 아이는
감정을 숨기는 것을 배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러한 감정은 여전히 강력하며
단지 억제되어 있을 뿐이다. 그는 이제 내성적인 포세이돈의 기질, 말 없는
사람일수록 생각이 깊은 기질을 같이 갖고 있어서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강렬하고 격앙된 감정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포세이돈 소년이 자기 집에서 스스럼없이 행동하고 감정적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면 학교를 다니면서 비난을 듣게 될 것이
확실하다. 운다면 놀림을 받을 것이고 제자리에 가만 앉아 있지를 못하고 펄쩍
뛴다면 조용히 앉아 있으란 소리를 들을 것이고 저지른 난장판을 정리하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자신이 어떠해야 한다는 남들의 아주 협소한 기대치
안에서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비난을 당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감정, 자질이 넘쳐 흘러 남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듯하다.
 
포세이돈의 부모
 
운좋은 포세이돈은 기질적으로 그를 환영할 만한 집안 - 감정`연극`눈물`웃음을
좋아하고 몸으로 보여 주는 것을 좋아하는 집안에 태어난다. 이러한 집안은
여러 개인들이 서로 다른 상태에 놓여 있는 여러 다른 일들을 할 때 벌어지는
소동을 너그럽게 보아넘기며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다. (저녁 식사시간과
사람들이 집에 다녀가는 시간을 잘 맞추지 못한다.) 이러한 것이 그의 가족과
친척들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포세이돈은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그 정당성을 인정해 주는 집안 분위기에서 자라게 된다. 그렇지만 그가
대부분의 학교들에 입학하자마자 알게 되는 것처럼 그러한 집안 분위기가
오히려 바깥 세상의 요구대로 적응하는 것을 돕지 못할 수 있다.
  감정적으로 표현이 풍부하고 꾸밈이 없으며 남에게 드러내 보이기 좋아하는
대신 태도, 지능, 복종심, 말쑥함, 업무의 완수를 강조하고 모든 것을 정돈해
놓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가정에서 태어난 포세이돈 아이들도 있다. 그러한
아이는 기질적으로 부적임자다. (또는 왼쪽 두뇌를 쓰는 세상에서 오른쪽
두뇌를 가진 사람이다.) 그는 집안에서 계속해서 자기가 하고 있는 것(또는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야단을 맞을 수 있다. 그는 자기가 치우기로 되어 있는
방은 물론이고 집안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어지럽혀 놓는 것이 다반사다. (그는
모든 것이 난장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자기가 방을 치운 다음에도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의 감정적인 면도 비난을 만나기
쉽다. 그링다면 그는 "사내 자식은 울지 않는 거야." 또 (그가 행복해 할 때)
"바보같이 굴지 마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그가 자주 듣는 말들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라면 그는 본래의 자기를 억누르고 부모들이 원하는 것에 맞출
것이다.
  이상적인 상황이라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보여지고 받아들여지고 가치를
인정받으며, 부모의 인내와 노력으로 그도 좀더 정돈되고 시간과 앞뒤 순서를
챙기는 법을 배우게 된다 - 미리 계획을 짜는 일은 그에게는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다.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포스터의 문구가
벽에 붙어 있는 방은 포세이돈 소년의 방이다. (우리를 내부 세계 또는 감정의
세계로 꾀어들이는 남신들 가운데 아무도 일차원적 시간에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문구에 주의를 기울인다. )
  최악의 경우 포세이돈 아들은 과도하게 벌을 내리는 부모를 극단으로 몰고
간다. 포세이돈 부모는 순종할 것을 요구하며, 아들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고집하고 제때 준비를 하지 않으며 말쑥하지 않으며 업무를 완수하지 않을 때
화를 내게 된다. 부모는 고분고분하지 않은 그의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타고난 감정적인 특성 때문에
벌을 받거나 경멸스런 취급을 받기 쉽다. 이러한 행동에다가 더한층 그를
곤란하게 하는 것은 그가 일종의 권위 의식을 갖는 것이다. 그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황, 곧 "너에게 두목의 진면목을 보여 주겠어"라는 상황을 유발한다.
(제우스 소년은 그러한 감정을 감추기를 잘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세이돈
소년은 숨기고 억제하는 법을 -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분노를 나중에
터뜨리는 법을 배을 수도 있다.
 
사춘기와 청년기
 
  포세이돈 십대는 대개 감정적이고 격정적인 청년으로, 변화하는 호르몬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으며 성적으로 매력이 있는 젊은 여성들을 열렬하게 쫓아
다닌다. 젊은 혈기펄 난봉 부리는 것은 그가 마음 속에 한결같이 생각하는
소녀를 갖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중산충의 포세이돈 청년이라면 이 시기에
대학에 다닐 것으로 예상되는데 학교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
그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그 외에도 포세이돈 기질과 재능은 대부분의 학교에 적합하지 않다. 그는
감정적으로 반웅하고 느끼는 대로 결정을 내리는 탓에 지성적인 학문 세계에서
본다면 물 밖에 나와 있는 물고기 같은 꼴이다. 논리가 지닌 장점은 그의
주의를 끌지 못한다. 그는 분석적이거나 반복적인 일을 싫어하고 시험을 보고
싶어하지 않으며 필수 교육 과정 대부분이 지루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학교
생활을 잘하려면 다른 원형들이 필요하다.
  운동을 잘하는 포세이돈이라면 실제로 물에서 수상 폴로나 수영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니면 그는 연극 제작에서 자기 자리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감정을 두드려 깨울 수도, 자신의 감정을 맡은 역할에
돌려 진가를 인정받게 될 수도 있다.
  남들이 포세이돈 청년에게 이 일은 필요한 일이며 너는 머리가 좋아라고
일깨운다면 부지런히 일을 하고 또 끝을 잘 마무리하긴 하지만 좋은 점수를
받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그가 제아무리 잘해 낸다고 하더라도 학문적
성취는 그다지 의미를 갖지 못한다. 또한 대개 그는 자라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잘 모른다.
  고등학교 시절에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그에 뒤이은 대학 입학
시험이나 취업 시험에 떨어지기 마련인데 그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취직하지 못한 데 대해 한을 품게 된다. 이런 유형은 다른 인생 시기에도
반복될는지도 모른다. 목표 지향적인 자기 또래들이 재산을 거두어들이기
시작할 때에도 그는 점점 자기 몫에 불만을 품고 있게 된다.
 
직업
 
  그에게 중요하면서도 수입도 좋고 자존심도 세워 주며 남들로부터의 존경도
받는 일을 찾기란 우리나라처럼 산업 자치 국가에서는 종종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포세이돈 남성은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자기답지 않게 처신한다.
이러한 영역에서 잘한다는 것은 그에게 자신의 감정적인 본성을 억누르고 다른
남신이 지닌 부분들을 개발하고 그것대로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그가 이에
적응하고 성공한다면, 곧 또 다른 형의 남성에게 개인적인 만족을 줄 수도 있을
일을 한다면, 최고 수준의 권력와 위세를 부린다 해도 꼭 봉급 때문에 일하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일터에서 요구되는, 왼쪽 두뇌를 사용하는 기술을 전혀
개발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권위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감정적 기질을 갖고
있다면 - 그는 자기 감정을 속으로 삭이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 주변적인
직업을 갖게 될 것이며 일에서 기쁨을 얻지도 물질적인 의미의 <행복한
생활>이라는 몫도 얻지 못할 것이며 이것은 그를 몹시 화나게 할 것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일은 그가 지닌 능력을 개발하고 감정에서
우러나오는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둠으로써 그의 본성을 충족시키게 한다.
포세이돈의 적성은 종종 주기, 절기, 계절이 있는 자연(물론 인간의 본성을
포함하는 것이다)을 일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자기의 본능 및
식물`생명체`흐름`인간에 관련된 경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운다.
 
여성들과의 관계
 
  포세이돈 남성이 지닌 두 가지 모습은 그가 여성들을 지배하기 쉽게 만든다.
가부장적인 태도와그만의 감정적 열정이 지니는 힘이 바로 그의 두 모습이다 이
때문에 그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적으로든 간에 그녀의 감정을 무시하고 그녀의
영역을 침해한다. 사춘기 때부터 그가 성적 흥분 상태에서 신체 접촉을 하려고
든다면 아니오라는 거절의 답을 용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런 태도는 그녀가
<그를 애무하고> 키스를 하게 내버려 둔다거나 그녀를 애무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좀 천천히 하자는 그녀의 요구를 무시하는 것에서부터 강제로
성교를 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여러 수준의 데이트 중 강간을 초래한다.
  그는 대개 직장 생활을 하는 현대 여성들과는 잘 지내지 못한다. 그는 도시의
젊은 전문 직업인으로 잘 지내지 못하긴 하지만 종종 남성으로서 직업 여성들에
대해 군림할 자격이 있다는 식으로 행동한다. 이러한 남녀의 결합은 경쟁적
상황으로 이어지는데 결국 여성이 우세하여 승리를 거두기 십상이다. 아테네를
두고 남신 포세이돈파 경쟁한 아테나처럼 그녀는 상황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어림할 수 있는 반면 그는 이러한 점을 고려하지 않아서 지고 만다.
 
남성들과의 관계
 
  포세이돈은 서구 산업 문화라는 제우스 세계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다. 그는
자기 행동이 부정적으로 보이는 문화에서 합리적이라기보다는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그는 어떤 권위를 갖고 행동하기 때문에 보통 <비난을 받지>는
않는다고 해도 자신이 성취와 지위를 위한 경쟁에서 밀려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그는 <다른 언어로 말하며>, 아주 잘 적응하여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직선적이고 목적 지향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경우 초연한
자세와 전략을 가진 사람만이 성공을 거두는 세상에서 잘 지내지 못한다.
  때로 오래 지속되는 연계가 포세이돈 남성과 그와는 정반대 성격의 남성
사이에 발전하는 수도 있다. 각자는 자기 속에 있는 무의식적인 부분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서로에게 끌릴 수 있다. 포세이돈
남성들은 충정과 감정적 깊이를 갖고 있다. 그 어느 것도 상승 가도를 달리는
남성이 활약하는, 경쟁적이며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제쳐 두는 제우스
세계에서 장려되는 자질이 아니다.
 
성생활
 
포세이돈의 성생활은 자연의 힘처럼 시작된다. 포세이돈의 강력한 본능적
성격과 결합된 감정의 열정이 그의 성생활을 그렇게 만든다. 황소와 씨말은
포세이돈 남신의 상징물이자 타고난, 난잡한 성생활을 표현하는 이미지들이다.
그는 언제든지 성관계를 가질 자세가 되어 있고 능히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
종마를 의인화한다.
  포세이돈 남성은 데메테르를 발견했을 당시에 납치된 딸을 찾아 헤매느라
거의 미쳐 있는 그녀를 따라다니면서 강제로 성교를 한 포세이돈 남신만큼이나
감각이 둔한 사람일 수 있다. 포세이돈 남성과 결혼한 많은 여성들은 그녀의
심리 상태라든지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성욕이 먼저라는 것을 알고 있다 데메테르처럼 그녀는 성에 관한 한 금욕적인
생활을 함으로써 자신을 숨기고 그를 피하려고 애쓸지도 모른다.
  포세이돈 원형에게 잡혀 있고 성적으로 자연의 힘처럼 행동하는 한 그는
심리적으로 상대와 관계를 맺지 못하는 <비인간>이다. 반대로 그가 다른 사람을
붙잡게 되면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자기 속에 있는 힘에 사로잡히게 된다.
  포세이돈이 특히 에이즈에 일차적으로 감염되기 쉬운 동성애자 남성이라면
자신의 이성 상대 이상으로, 언제라도 상대가 되어 줄 수 있는 사람들 가운데
성적인 씨말의 역할을 해낼 수 있다. 나이가 더 많은 동성애자 포세이돈은
포세이돈 남신과 펠롭스의 신화를 다시 행할 수도 있다. 포세이돈은 펠롭스라
불리우는 청년과 성관계를 맺었다. 포세이돈 남신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를
올림포스 산에다 데려다 놓았다. 나이 들고 힘센 그러면서도 안정된 동성애자가
청년의 후원자이면서 연인이 될 때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는 청년을 자기
세계로 끌어올리게 된다.
  제우스와 포세이돈 모두 많은 여성들에게 욕정을 품다가 결혼하여 여러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 힘 있는 남성들로 그려졌다. 그러나 둘 다 고대
그리스에서 자주 그랬던 것처럼 미소년들에게 끌리는 대로 행동하였다. 나이가
들어감을 느끼는 현대의 이성애자인 제우스들과 포세이돈들은 때때로 젊은
남성들에 대한 꿈과 매력으로 인해 혼란을 겪으며 위협을 받는다.
 


  포세이돈과 암피트리테의 구혼 및 결혼 이야기는 포세이돈 남성이 여성과
결혼하기 전에 필요한 세부 사항을 은유적으로 말해 준다. 포세이돈은
암피트리테가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 (그는 사랑에
빠졌는데 그것은 성적 욕구 이상의 것이었다. 그녀는 융이 <아니마>라고 부른,
그의 내면의 사랑스런 이미지에 끌렸다.) 그가 구혼하자 - 그녀를 강간하자 -
그녀는 겁을 먹고 그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피신하였다. 그는 늘 하는
버릇처럼 그녀를 대했다. 그녀에게 자신의 욕구를 강제하며 짓누르고 폭력을
자행하였다. 그 런 다음 그가 통상적인 방식으로는 차지할 수 없었을, 이
특별난 여성을 잃게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포세이돈 남성은 너무 늦게서야
연인이 자기에게서 달 아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를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포세이돈은, 그녀가 숨어 있는 장
소를 알고 있고 그녀에게 바다의 신과 결혼하도록 설득하였던 돌고래의 도움을
필요로 하였다. 포세이돈 남성은 다정 다감하며 남을 돌보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맞출 수 있는, (그녀가 숨어 있더라도  
<그녀를 찾아낼> 수 있는) 자신 속에 있는 <돌고래>를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
다. 그는 사랑하는 여성이 제발로 돌아오도록 설득하려고 한다면 그렇게 해야
만 한다. 그녀는 그의 곁에 머물러 있지도 않고 지배를 당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포세이돈 남성에게 이러한 일이 일어나 변화를 체험하고 그에게 이런 효과를
미칠 수 있는 여성과 결혼한다면 그들은 <아름다운 바다 속의 용궁에서 살게
될> 것이다 - 속 감정을 서로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포세이돈 남성이 변화를 체험하지 못하고 여성에게 (일 때문에 또는
일이 없다는 구실로) 성질을 부린다면 많은 경우 포세이돈의 결혼은 결코 깊이
가 있다거나 아름다울 수가 없다. 포세이돈 남성이 자기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
기 때문에, 권력을 가졌거나 권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부부간의
성관계를 일종의 권리라고 느끼기 때문에, 특히 술 또는 그 외의 것들과 연결이
되었을 경우 성질 나쁜 포세이돈의 결혼은 최악의 상태가 되기 쉽다.
  제우스와 하데스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포세이돈 남성도 결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세 가지 원형들은 남성이 가장인 가부장적인 가정 확립을 촉
진하는 듯하다.

자식
 
  감정의 동요가 심한 포세이돈 남성의 자식들은 아주 잘 살아갈 수도 있고
아니면 끔찍하게 살아갈 수도 있다. 스스로가 어린아이 취급을 받으며, 자신
속에 있는 다른 모습들을 기를 수 있었고 세상에서 안락한 지위를 차지한
포세이돈은 훌륭한 아버지가 될 수 있다. 그는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몸으로
보여줄 수도 있다. 그는 냉정하거나 부재 상태의 아버지가 아니라 웃고
울면서도 강한 남성형이자 자식 곁에 있는 아버지 형이다.
  그렇지만 그는 아버지로서 또 남편으로서 무서운 사람일 수 있다. 아내에게
가하는 감정적이고 신체적인 모욕은 자식들에게도 행해진다. 아들들은 그가 화
를 폭발하게 되면 신체상의 상처를 입게 되며 그 앞에서 움츠러들며 나중에 힘
을 가지게 되면 그가 한 것과 똑같이 행동하기 쉽다. 대다수의 포세이돈 아들
들은 가장 나쁜 성격을 가진 자식이었다. 어떤 아들은 강간범, <바다의
호색가>로 언급되었는가 하면 또 어떤 아들은 파괴적인 괴물이나 거인, 그리고
무뢰한 이었다.
  포세이돈의 딸들은 대개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다. 어린 시절에 그들은
으뜸가는 골목대장 노릇을 한다. 또한 그들은 아버지의 행동 밑바탕에 깔려
있는 고통을 잘 알기 때문에 구조자 역을 자청하기도 한다.
 
중년기
 
  중년에 접어든 대부분의 이성 연애를 하는 포세이돈 남성들은 결혼하여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는데 가정 생활이 최선의 경우인지 아니면 최악의
경우인지가 밝혀진다. 아주 행복하든 아니면 아주 끔찍하든 간에 그의 가정은
대개 포세이돈 남성의 감정적인 생활의 중심지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아내가
이 시기에 그의 곁을 떠나기라도 하는 날에는 대개가 중년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런 일이 불가피하다면 그의 감정의 격랑이 남들과 자신에게 몰려들어
이제껏 무의식 상태에 잠잠히 있었던 감정적안 강박 관념들을 휘저어 놓는다.
  자신의 포세이돈다운 기질을 억누르고 출세하는 데 정신이 팔려 감정을
억제해야 한다는 기대에 잘 맞추어 살던 남성들이 중년이 되어 우울증이나
극적인 전이를 일으키기도 한다. 문제는, 단지 권력이 개인에게는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지위와 권력을
가진 자리에 오를 수도 있다는 데 있다. 그들은 자신이 아니라 딴 사람처럼
살았다. 그래서 그들은 중년에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내가 부사장이 되어서 내 시간의 절반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보내게 된다면 어떡하지? 내 아이들은 어쨌거나 나 없이도 자라고 있을 테지"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어떤가? 그에 걸맞는 생활 수준을 보장하는 일
자리를 그만둘 건가? 몇몇 포세이돈 남성들은 그렇게 한다 - 그런데 그들이
재정적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여성들과 결혼하였다면 위기를 맞게 된다.
  자신의 타고난 감정의 심연에 다시 이르려는 포세이돈의 무의식적인 노력은
여성으로 하여금 어찌한 수 없을 정도로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는 무시를 당한 소년의 모습 또는 억압된 성욕을 나타내는 청년에게 끌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또 그가 자기 감정대로 행동하지 않았더라도
이러한 동성애는 그에게 내적인 위기를 가져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지
결국에 그 동안 억눌러 온 감정들이 격렬하게 폭발하게 되고 그가 그렇게
어렵사리 이룬 사회 적응은 와르르 무너지게 될지도 모른다. 포세이돈의 강한
성격이 인생 전반기에 억압되어 온 경우 인생 후반기에 - 지독하리만치 -
극적인 전이가 일어나 이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하게 된다.
 
노년기
 
  포세이돈 남성이 말년에 가정으로 돌아갈 때 그를 상징하는 씨말의 이미지가
한번 더 나타나게 된다. 앞을 내다보고 전략을 고려할 줄 아는 능력을 개발하는
한편 자기의 본능과 느낌들에 연결된 채로 머물러 있었는가? 그가 말 - 자신의
본능적인 성격 - 과 하나가 되었는가, 그러면서도 여전히 생각하고 관찰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었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는 진정하게 그리고 온전하게
인생을 살아왔다고 하겠다.
  아니면 남들이 그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해서 또 그가 감정적이라는
이유로 얕본다고 해서 <말>을 학대하고 죽였을 것인가? 아니면 (피터 쉐퍼의
연극 <에쿠우스>에 나오는 주인공 청년처럼)자기 내면으로부터 행동하였고
그것이 그에게 문제가 되었다는 이유로 억압받아 말이 죽게 되었다고 할
것인가? 말년에 그는 깊이와 의미라는 자기의 근원과 단절하여 소외되고 깊이
없는 남성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결코 판단력과 자제력을 활성화시킬 수 없도록 <말> 같은 성질이 그
를 압제하였던가? 인생이 좀더 복잡해질수록 본능적으로 또 욕구대로 반웅을
한다면 실패, 보복, 고통을 자초하게 된다 그런 사람이 나이가 들게 되면
인생에서 자기 고유의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잠재력을 보다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포세이돈 남성과는 달리, 점점 덜 매력적이고 덜 인간적이게 된다.
  이 원형에 가장 충실하게 산다는 것은 백색 갈기를 휘날리는 말들이 끄는
전차를 타고 그를 호위하는 수하 세력을 거느린 포세이돈의 이미지로 대변된다.
이러한 포세이돈 남성(또는 여성)은 그가 편히 쉴 수 있는, 깊은 바다 속으로
내려갈 수 있으며 남들이 생각하는 어두운 바다 속에 숨어 있는 괴물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바다의 아름다움과 고요함을 경험할 수 있다
  공포는 집단적인 인간 심리 내면에 있는 어슴푸레하게 인지되는 요소들로부
터 <괴물들>을 만들어 낸다. 그리하여 그런 요소들이 겉으로 드러나 눈에 보이
기도 하고 변형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내면 깊은 곳에 분명하진 않아도 아직 계발되지 않은 아주
강력한 힘이 자리잡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포세이돈
시인`작가`음악가`심리학자`무용가`예술가들이 그것들을 겉으로 끄집어낼
때까지는 그것들을 두려워한다. 자신의 본능적인 성격과 감정적인 자질을
펼치는 그런 이들은 우리가 갖고 있는 두려움을 의식적인 인간의 속성으로
변형시킨다.
 
심리적인 문제점들

포세이돈의 감정과 본능적 충동이 남성의 인성에 흘러넘쳐 감당 못하고 중재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 심리적인 문제들이 생긴다. 또한 포세이돈의
특성들이 낮게 평가되고 <그의 존재>가 결과적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게 될
때도 어려움이 생긴다.
  포세이돈은 제우스의 그림자와도 같다 - 제우스와 의식의 동일시가 이루어
지는 남성 속에 억제되고 묻혀 있어 활성화되지 않고 가까이 하기 어려운
아버지 원형이 지닌 감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넘치는 유동성 : 정서 불안
 
  어린아이에게는 자연스러운 즉각적인 감정 반웅이 성인에게는 심리적인
문제로 나타난다. 아기는 아프거나 배고프거나 불편하거나 무섭거나 어떤
이유로 곤란을 겪고 있을 때 울어 버린다. 만사가 괜찮을 때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방글거리고 순간적으로 감정 상태가 바필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을
돌아볼 자아나 인내력, 이해심도 갖고 있지 않다 곤란은 곤란이며 필요는
필요이며 편안함은 편안함일 뿐이며 그 누구도 개의치 않는다. 아기는 양수라는
물의 세계에서 자신이 세상의 중심인, 감정적으로 반웅하는 존재로서 세상에
나온다 그는 안락, 필요 또는 고통 같은 자신만의 주관적인 경험 이상의 다른
실제를 인지하지 못한다. 또한 아기라면 능히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성인이 그 같은 기질을 갖고 있다면 문제는 전혀 다르다. 끊임없이 동요하는,
주관적인 감정을 계속 갖고 있는 남성(또는 여성)은 어떤 상황도 고려하지
않으며 자기 중심적이며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며 균형 감각이 없다. 남들은
그를 감정적으로 미성숙하거나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여긴다. 그렇지만 남성답게
행동한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기준은 감정의 억제를 요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 선두를 달리는 대통령 후보였던 에드먼드 머스키 상원 의원이
눈물을 좀 흘린 것이 계기가 되어 예비 선거의 주역 자리를 잃게 된 것이 그
경우에 해당된다.
  감정을 드러내 보이는 순간 <견뎌내지 못하는> 것은 심리적인 판단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인 판단이라고 할 수 있으며 문화적인 고정 관념이 상당
히 강하다고 보겠다. 감정이 <변하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면 포세이돈 남성들
은 감정 표현에서 일탈해 버리는 수가 있다. 어떤 남성이 그런 비합리적인 정
도까지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고 할 때 확실히 그는 <제 정신이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해일과 지진 : 파괴적인 감정과 대격변
 
  포세이돈은 신화에서 해일을 일으키는 자였으며 대지를 흔드는 자로도 불리
웠다. 심리 차원에서 보면 그것은 어마어마한 정도로 복합적인 감정 상태에
해당되며 평범한 인성을 압도하고 파괴하는 힘으로 나타난다. 합리성은
흔들리며진실은 삼켜 버려지거나 침수되며 그는 - 폭풍우 속으로 나가버린 리어
왕처럼 - 미쳐 버린다. 물이 빠지거나 땅이 다시 한번 안정된 후라야 새로운
건설이나 재건이 시작될 수 있다. 그 다음에는 주의 깊은 사람이라면 어떤
정적이 감돈다. 그는 경험을 이해하고 자신이 일시적으로라도 파괴한 것이
틀림없는 대인 관계들을 되살려 낼 수 있게 된다.
  <해일>은 그의 일상적인 감정적 본성이 증폭된 것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어
떤 남성(또는 여성)은 전에 느껴보지 못한 슬픔과 분노가 밀려들도록 수문을
열어 놓음으로써 당장의 손해나 배반 행위에 대응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감정은
새로와지지 않으며 단지 커질 뿐이다.
  <지진>은 자기 감정을 숨겨 온 남성의 상태를 기술한다. 내성적인 감정은
지하 동굴 속에 흐르는 물처럼 존재한다. 그러한 감정은 깊은 곳에 흐른다.
한번 도 빛에 노출된 적이 없는 눈먼 괴물은 깊은 동굴 속에서 살아간다.
그것은 억 압당한 탓에 활성화되지 않은 원시적인 감정의 이상 심리 상태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하수는 지층을 흐르며 압력이 가해지면 약한 진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큰 진동이 일어나기 전에는 대개 무시된다. 큰 진동이
있고 나서 야 우리는 표면 밑의 불안정성과 감정 상태를 알려주는 전조인
<굉음>을 기억 해 낸다. 만일 그의 삶이 특별히 상처를 받기 쉬운 지점이나
단층선 부근에서 악화된다면 지진이 일어나게 되며, 어린 시절, 심지어는 유아
시절로부터 억압 되어 온 감정이 그의 심리를 온통 뒤덮게 된다. 남들에게 분별
없이 터뜨리는 원초적인 분노는 남들뿐 아니라 (더 심하게는) 남성 자신을
황폐화시킬 수도 있 다.
  거친 바다 근처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진이 심한 나라
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다. 둘 다 기상 통보 또는 지진 통보를 읽을 줄 알아야
하며 경험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파괴를 초래할 수
있는 파도나 지진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위해 무엇을 건설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포세이돈의 감정이 자아를 압도할 가능성이 있는 남성들(또는 여성들)은
자기 감정을 의식해야 하며 어떤 상황에서 그렇게 되는지 또 그런 상태가 되면
어떤 경고가 내려지는지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이 배워야만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와 같은 강력한 부분을 가지고 살아갈 방도를 개발시켜야 한다.
이와 비슷하게 남들 속에 있는 포세이돈의 파괴력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경고의 표시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앞으로 닥칠 대지진을 맞고 싶지
않다면 캘리포니아를 떠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떠나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

눈에는 눈
 
  포세이돈에 관한 신화는 그의 원한과 보복을 강조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포세이돈의 아들 외눈박이 키클로페스의 눈을 멀게 한
오디세우스를 향한 포세이돈의 가차 없는 증오에 대한 이야기가 뼈대를 이루고
있다. 포세이돈은 오디세우스의 귀향길을 길게 만들고 험난하게 만들었다.
아버지 원형의 이런 어두운 면은 <눈에는 눈> 식의 복수 기회를 노린다. 종종
그는 감정적인 판단을 내릴 때 중립적인 태도를 용납하지 않는다. "나와 같이
있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 " 보복은 정의나 공정함에 근거하지
않으며 순진무구한 자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 자식과 자식의 자식까지도
아버지의 죄로 인해 비슷한 고통을 겪는다.
  부정적 감정 콤플렉스라고 할 수 있는 포세이돈의 복수심은 적대감을 품게
되는 사람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남성 자신의 인성에 대해 아주 소비적이고
파괴적이 될 수 있다. 그런 감정을 갖고 있는 남성이라면 폭탄을 떨어뜨리거나
어떤 이를 재정적으로 파멸시키려 하거나 다른 남성의 명성을 파괴하는 데
전력을 쏟는다 - 아니면 그렇게 하는 것을 강박적으로만 상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면의 상황도 마찬가지여서 포세이돈의 강력한 부정적인 면에 사로잡혀
있다.
 
약한 자존심
 
  타고난 자질이 제우스를 본받는 표준 <남성성>과 맞지 않을 때마다 그 남성
은 자존심을 상한다. 포세이돈 남성들은 <너무 감정적>이라든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는다. 그런 남성은 비난을 내면화하여 사람들이 그
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그만둔 후에도 오래도록 자신을 그렇게 여긴다. 또한
이러한 이상에 <맞는> 남성들의 생득권이라고 할 만한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그것을 쉽게 뛰어넘지 못하는 경우 그에 대해 비난의 화살이 돌려지며 그의 자
존심은 더한층 고통을 받는다. 그는 자기에게 맞는 일을 하게 되지 않을 수도
있고 자신이 아닌 남이 되려 애쓸지도 모른다 그가 성공을 거둔다면 이런
억압은 자신을 가짜라고 느끼게 하거나 무의미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 이 모든 것은 자존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원한의 감정을
감추어야만 하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해 좋게 느낄 수가 없다. 우리가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차 있을 때 그것이 역으로 우리 자신의 행복감과 가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남들이 겪는 어려움
 
  포세이돈 남성은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 남성 모두가 그런 것처럼)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부류>다. 제우스처럼 그는 염문을 가질 수도 있다. 다정
다감한 아내를 질투심 많은 암피트리테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암피트리테의
복수심은 헤라의 그것과 비슷하였다.
  그를 드러내게 하는 것이 무엇이든지간에 전연 균형이 안잡히게 반웅하는,
원한에 사무치고 화가 난 포세이돈이라면 같이 살기 끔찍한 사람일 수 있다.
좌절감과 분노에다 자기 감정과 본능을 숨기지 못하는 포세이돈 남성은 술이
들어가 자제력이 더 풀리는 날에는 남을 학대하는 남편이나 부모가 되기도 한다
 
성장하는 길
 
포세이돈 남성의 타고난 감정적인 면이 일`대인 관계`창조 행위를 통해 그 표현
수단을 발견할 때 포세이돈은 심리적으로 성숙할 뿐만 아니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포세이돈 남성은 격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기 쉽기 때문에
관찰하고 반성하고 객관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관찰력이 뛰어난 <나>를 개발하기
 
  우리 가운데 대부분은 <자신의 모습>과 <자신을 벗어나 있는 상태> 또는  
<제 정신이 아닌 상태>를 분별할 줄 안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아닌> 때를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융 심리학 용어로 이러한 표현들은 감정 콤플렉스가
사람을 움직여, 보통 상태의 자아를 일시적으로 가라앉힐 때 일어나는 상태를
기술한다. 자아는 일관되고 관찰하고 기억하고 결정하는, 마음 속에 있는
요소로당신이 <나>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바로 그것이다. 콤플렉스는 감정과
관계가 있는 원형 유형이다. 일시적으로 자아 이상의 힘이나 에너지를 갖고
있을 때 한동안 사람을 <움직이거나> <사로잡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아버지는 자식이 폭행을 당할 때 복수심에 불타 <미친
사람처럼> 되는 수도 있다. 그는 인정 사정 없이 오디세우스를 쫓아다녔던
포세이 돈처럼 된다. 분노와 복수심 외에는 눈에 보이는 게 없다. 그는 자식의
행동을 지지하거나 위로할 줄 모르며 또 그의 행동을 고치도록 도울 줄도
모른다 이와 똑같은 콤플렉스가 같은 상황에 처한 다른 남성에게서
활성화되기도 하지만 그 남성의 자아가 콤플렉스를 누를 정도로 더 세기 때문에
힘을 별로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한 남성은 <새터데이 나이트
스페셜>이라는 권총을 차고 거리로 나가 보복을 하는 생생한 환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위협하는 혐오감과 싸워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가 진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자식이 무엇을 느끼고 있고 그에게서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라는 점이다. 약간의 자극이 주어지기만 해도 이같은
콤플렉스가 다른 남성을 <사로잡을> 수 있다.
  감정 콤플렉스를 받아들일 때 <나>는 쓸모 없게 된다. 주위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대응을 하는 반면에 당사자인 사람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을 의식하
지 못하거나 깜깜할 수 있다. 그는 기분이 좋을 수도 사람들을 피하거나 두려
워할 수도 있다. 아니면 그의 콤플렉스가 남들도 가지고 있는 똑같은
무의식의콤플렉스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아니면 콤플렉스와 맞서 싸우기도
하는데 스스로 과잉 반응을 보인다거나 자기답지 않게 행동한다고 느끼는
순간이 바로 그때이다. 인생에서는 물론 정신과 치료에서 콤플렉스카
불러일으켜지고 잘 알려지게 되었다. 콤플렉스를 관찰하는 행동은 에너지를
자아로 옳겨 놓으며 점차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내>가 보면서
콤플렉스로 인해 움직여지는 것에 저항을 할 때 콤플렉스는 에너지와 영향력을
잃고 물러난다. 자신과 콤플렉스의 영향을 받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동정이
이러한 과정을 동반할 때 당사자 개인과 그가 맺고 있는 관계들은 깊이를
더해간다.
  포세이돈이 다스리는 물의 세계에 살면서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남성(또는
여성)은 상황을 냉정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제우스의 시각)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그는 또한 자기의 감정이 종종 원형의 이미지(다음 장에서
보게 될 것이지만 하데스가 다스리는 영역의 일부인 집단 무의식 세계에
존재하는 유형들)와 연관되어 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돌고래에게서 배우기 : 지배욕을 버리기
 
  포세이돈이 암피트리테와사랑에 빠졌을 때 그녀를 누르고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에게서 달아났고 설득력 있는 돌고래의 중재가 없었다면
결혼을 못했을지도 모른다. 감사의 표시로 포세이돈은 그를 별자리로 만들었다.
  포세이돈 남성이 돌고래 - 그가 다스리는 영역에 정통한 생물 - 에게서
배운다면 남들의 영역을 지배하고 압도하거나 경쟁하려 애쓰지 않는다. 대신에
남들과 협력하는 데 관심을 쏟게 될는지도 모른다. 감정과 정서가 사람이
헤엄치는 자연의 생활 환경일 때, 대인 관계와 감정 이입적인 이해를
증진시키는 기술들을 활성화시키기 쉽다. 게다가 그런 남성은 풍부한 감정
표현의 잠재 능력을 타고 났는데 그것 역시 장려되고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예술적 기교나 머리를 쓰는 기술이 장려되고 활성화되는 기회를 필요로 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감정에 대한 재능도 장려되고 활성화되어야 한다
 
창조적인 표현력
 
  연극`시`문예 활동을 통해 표현되는 포세이돈의 깊이와 열정과 관련하여
헤르메스 원형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헤르메스는 전령의 신으로, 이
차원에서 저 차원으로 말을 전한다. (또 영혼을 인도한다.)음악적 재능이나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 포세이돈이라면 풍부한 감정 표현을 드러내는 음악이나
예술을 창조할 수 있다. 분열 상태에 이를지도 모르는 포세이돈 남성의 감정이
창조적인 출구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개체가 무엇이 되었든간에 그러한
재능은 특유의 강하고 격앙된 감정을 자극한다.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는 포세이돈의 감정을 창조적인 작업으로
변형시키는 것을 도울 수 있는 또 다른 원형이다. 포세이돈 이상으로
헤파이스토스는 거부당한 남신이었다. 그러나 그는 화를 폭발하는 대신
아름답고 쓸모있는 물건들을 만들어 냈다. 그의 화는 파괴적으로 되지 않고
(창조적으로) 변화되었다.
 
포세이돈의 효과를 약하게 하기
 
  다른 원형들이 활동적이면 포세이돈은 대개 감정에 휩싸인 자신의 힘을
잃어버리고 만다. 따라서 다른 남신들(과 여신들)을 활성화시킴으로써 크게
성장 할 수 있다. 특히 태양의 신 아폴론, 지혜의 신 아테나, 그리고 제우스는
큰 도움이 된다. 이 세 신들은 결과를 미리 생각하고 객관적이고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둘 줄 아는 대표적인 신들이다 이러한 특성들은 포세이돈 남성이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는 것들이다.

제5장
하데스 : 저승의 신
영혼과 무의식의 세계
 
  하데스가 죽은 자들을 다스리기는 하여도 악마나 사탄과 혼동되지는 않는다.
죽음의 신인 하데스는 엄격하고 냉혹하며 공명 정대하고 취소란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원칙주의자다. 그는 악하지도 않고 인류의 적도 아니며 악마도 아니다. 
 - 필립 메이어슨, <문학, 예술, 음악으로 보는 고전 신화>

하데스의 다른 이름은 플루톤으로 그리스 말로 부를 뜻하였다. 그가 지닌 눈에
보이지 않는 풍요로움은 그가 손에 쥐고 있는, 과일, 야채 또는 금은 보화를 가
득히 담은 풍요의 뿔(어린 제우스 신에게 젖을 먹였다고 전해지는 염소의 뿔,
옮긴이 주)의 이미지로 상징되었다.
  하데스는 우리의 가계를 주재하며 우리 삶, 우울, 분노, 감정적 격동, 그리고
슬픔에 드리운 어두움에 빛과 소생을 가져오는 힘을 쏟아붓는 신이다.
- 아리아나 스타시노풀로스, <그리스의 신들)
 
  사람들은 저승의 신, 그리고 저승의 신이 다스리는 곳을 하데스라 불렀다.
남신들 가운데 가장 덜 인간적이며 사람들에게 가장 덜 알려진 하데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 영계의 신>이었다.
  그가 다스리는 세계와 익숙해지려면 하강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신비가들이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고 말하는 것, 좀더 심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일상 세계와 단절되어 일상 생활의 <햇빛> 속에서는 느끼거나 가질 수
없는 심각한 우울증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지닌 어스름, 차가움, 암흑 속에
풍요로움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죽음의 망령은 인간을 저승으로 데려간다. 관계의 단절, 존재 방식의 단절,
목적`희망`의미의 상실이 인간을 그곳으로 데려갈 수 있다. 육신의 사망 자체는
있음직한 일이거나 확실히 있는 일로서 인간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승으로 들어가거나 하데스를
만나게 된다. 트로이의 아킬레스처럼 영웅 - 인간의 자아와 가치가 성공과
동일시되는 남성(또는 여성) - 이라면 경쟁적인 전쟁터에서 크게 패함으로써
죽기도 한다. 이 일은 그의 영웅적인 태도와 불멸성의 사망을 알리는 징조다.
또는 희생을 자처함으로써 비자발적으로 하계로 내려갈 수도 있다. 어떤
여성(또는 남성)은 강간을 당하거나 매를 맞고, 폭행을 당하고 무력감을 느끼고
테러를 당하고서 마비가 될 정도로 춥고 세상과 단절된 저승으로 들어가게
된다. 페르세포네의 운명처럼 속임수에 넘어감으로써 <납치>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발적으로 하데스의 세계로 들어가거나 하데스와 만나기도 한
다. 프시케의 경우, 저승으로 가는 것은 그녀가 해낸 여러 여장부다운 과업 가
운데 맨마지막으로 해낸 일이었다. 그 일은 에로스와 재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였기 때문이다. 아내를 찾으러 하데스에게 간 오르페우스에게서도 사랑은
자극제의 구실을 하였다. 디오니소스도 자기 어머니 세멜레를 찾으러 나섰다.
수메르 신화에서도 아이난나-이쉬타르가 자진해서 여동생 에레쉬키갈을 찾아서
저승으로 가는 것이 나온다 사랑 말고도 지혜가 동기가 되기도 했는데
오디세우스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장님 예언가
테이레시아스로부터 얻으러 저승으로 가는 모험을 감행해야 했다. 제발로
저승으로 들어가는 것은 안전하게 귀환할수 있는 것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커다란 위험이 따른다.
  하데스가 다스리는 세계는 무의식의 세계인데, 개인적인 것과 집단적인 것
모두를 포함한다. 거기에는 우리가 억누르고 있던 기억`사고`느낌, 다시 말해
너무 고통스럽거나 수치스럽거나 남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기 때문에
이승에서는 볼 수 없는 모든 것, 우리가 결코 구체화해 보지 못한 열망, 희미한
윤곽으로 남아 있는 가능성들이 존재한다. 집단 무의식의 저승 세계에는
되었으면 하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 과거에 있었던 모든 것들이 존재한다.
로마의 시인 테렌스가  "내게 생소하게 느껴지는 사람의 일이란 없답니다"고
말하기 위해서 잘 알고 있어야 했던 영역도 바로 이 영역이다.
  전길의 남신 헤르메스는 혼령들을 저승으로 안내하기도 하고 페르세포네를
데려오기도 하였다 좀 덜 알려진 전령의 여신인 이리스도 마음대로 저승을
들락거렸다 페르세포네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갔으나 (저승에서) 석류 열매를
먹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저승으로 돌아와 저승의 여왕으로서 자발적으로
저승을 모험하려는 이들을 받아들이고 안내하는 자리에 있었다. 또한 하데스가
저승을 떠날 수 있었고 실제 떠나기도 하였음에도 - 그에 관한 신화를 보면 단
두 번 그런 적이 있다 - 저승은 하데스에게 할당된 영역이었고 그는 그곳에서
지냈다.
  신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실제 삶에서도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곤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영혼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안내하는 이들도
있고 저승 세계 자체를 잘 알고 있는 이들도 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아예 그곳에서 살고 있거나 주기적으로 그곳에 머물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정신 분석가들은 하데스와 친숙하다. 본래적인 의미의 심리학
psychology('영혼'을 뜻하 는 그리스어 프시케 psyche 에서 나온 말)과 사망
심리 연구 thanatology(그리스의 죽음의 신 타나토스에서 나온 말)는 모두
하데스의 영역과 관련된 분야들이다.
  정신과 의사들은 심층적인 정신 분석을 하기 위해서는 원형적으로 헤르메스 
`페르세포네`디오니소스`하데스와 연관되어 있을 필요가 있다. 이들 원형은
무의식과, 정신 질환을 포함하여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과 관련되어 있는 것을
편안한 상태에 있게 만든다. 이같은 원형들은 죽음과 관련하여 일하게 만들고
의미 있는 죽음을 하게 만든다. 융은 분석 심리학에서, 그리고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사망 심리 연구에서 각각 남들의 안내자 노릇을 하였지만 그들이
죽고 나서야 그런 인정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우울증과 거의 죽음에 가까운
경험은 하데스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상적인 입문식이다. 엘리우시스
제전(곡식의 신 데메테르를 받드는 제전, 옮긴이 주)의 입문자들에 대해
말해지는 것처럼 그런 경험을 한 연후에는 누구도 죽음을 더 이상 두려워하자
않게 된다.
  그렇지만 제우스가 왕으로 있는 올림포스 산에서 하데스는 굉장한 공포의
대상이었다. 가부장제와 가부장적 종교들은 하데스가 사는 곳을 사탄이
지배하는 악마들의 소굴, 산 사람들에게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피해야 하는 곳으로 여긴다. 문화와 개인이 제우스와 하늘의
신들과만 자기를 동일시하는 한, 저승은 풍요로움의 원천이라기보다는
공포스러운 곳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온전하게 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들은 뭐든지 저승에 존재하고 있다. 집단 무의식과 같은 것으로 그곳에
사는 망령들은 생명력, 곧 출생을 기다리는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잠재력을
필요로 하는 원형, 형태 같은 것이다.
  가장 부정적인 기독교 식의 저승을 지옥 hell이라 부르는데 불과 천벌과
연관되어 있다. 헬 Hel은 스칸디나비아어로저승의 여왕이었는데 그 이름이 영어
<헬 hell>이 되었다. 켈트어로 죽음의 왕은 헬만 Helman이라 불렸다.
하데스처럼 신의 이름과 장소의 이름이 같아진 것이다. 바바라 G. 워커의
연구에 따르면 기독교 이전에 <헬 hell>은 스칸디나비아어 헬리어 hellir가
뜻하는, 자궁을 모셔둔 곳 또는 부활을 위한 성스런 동굴이었다. 헬 Hel의 원래
뜻은 정화의 불로 가득찬 큰 솥 - 자궁으로 알려졌다. 원래는 모계의
영역이었던 저승이 나중에 부계의 영역이 되었다. 또한 하늘 신의 가치 기준이
점점 지배적이 될 수록 저승 영역 자체는 점점 더 부정적이 되고 공포스럽게
되었다.
  하데스는 아버지 원형의 억압되어 있는 면이기도 하다 올림포스 산에서처럼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제우스가 지배를 한다 아버지 원형에 대하여는 제우스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개인과 문화 속에서 하데스는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고 죽음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세력으로
존재 한다.
 
하데스 남신
 
하데스는 죽은 사람들의 망령이 살고 있고 신화에 나오는 몇몇 불멸의 존재들
이 제우스와 올림포스 신들과 패권을 다투는 싸움에서 패한 결과로 감금되었던
곳인 저승, 지하 왕국의 통치자다.
  그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이 불길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여러 다른 이름들로
불리워졌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아이데스) 또는 <부자>였다. 나중
이름 (부자)은 그리스어로 <플루톤>(라틴어의 플루토 Pluto에서 파생된 말)이며
라틴어로는 디스 Dis (디베스 dives, '풍부한'에서 나온 말)였다. 덜 인기가
있는 또 다른 이름은 좋은 조언자, 유명한 자, 후히 대접하는 자, 문을 닫는
자, 가증스러운 자였다. 그는 또 지하의 제우스, 저승의 제우스로도 알려져
있다.
  그리스 사람들이 하데스를 무자비하고 냉랭하고 잔인한 자로 여겼긴 하지만
결코 그를 악마나 사탄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제우스와 포세이돈처럼 하데스는
턱수염을 기른 성인 남성으로 그려졌다. 그는 키클로페스에게 받은, 눈에 보이
지 않는 모자를 가졌으며 풍요의 신으로 보일 때는 제우스에게 젖을 빨렸다는
염소의 뿔 또는 풍요의 뿔을 가진 것으로 그려졌다.
 
계보와 신화
 
  하데스는 크로노스와 레아의 아들인데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삼켜 버렸다
제우스와 메티스가 크로노스로 하여금 삼킨 아이들을 도로 토해 내게 하자 그
형제들 - 하데스와 포세이돈 - 은 제우스와 힘을 합해 크로노스와 티탄들과
싸워 이겼다. 승리를 거둔 후 그들은 세상을 나누어 갖기 위해 제비를 뽑았는데
하데스는 저승을 자기 몫으로 갖게 되었다.
  하데스는 자식을 전혀 갖지 않았고 변변한 신화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대
부분의 시간을 저숭에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보냈는데 딱 두 번 그곳을 떠난
적이 있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한번은 헤라클레스가 쏜 화살에 부상을 당해 도
움을 청하러 올림포스 산에 올라갔다는 것인데 별로 상세하게 언급되지 않는
사건이다. 또 한번은 페르세포네를 납치하기 위해 저승을 떠난 적이 있다.
 
페르세포네 강간
 
  페르세포네를 강간한 이야기는 하데스에 관해 말해지는 유일한, 의미가 깊은
신화다. 하데스는 페르세포네를 신부감으로 탐하여서 그녀의 아버지인 제우스의
동의하에 그녀를 납치하였다. 그녀는 친구들과 들판에서 꽃을 줍고 있다가
친구들 곁을 떠나 아름답게 피어 있는 수백 송이 수선화에 다가갔다. 그것은
그녀를 유혹하기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녀가 수선화를 잡으려
다가가자 그 앞에서 땅이 열리고 깜깜한 틈에처 하데스가 힘센 검은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나왔다. 하데스는 겁에 질린 처녀를 붙잡았다. 그녀가 아버지
제우스에게 도와달라 소리쳤지만 제우스는 이미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알고
있었던 터라 울부짖음을 무시해 버렸다.
  하데스의 말들은 곧 땅밑으로 뛰어들어가`하데스와 페르세포네를 저승 깊은
곳으로 데려갔다. 그러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갈라졌던 땅이 닫혔다.
  페르세포네가 저승에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어머니 데메테르는
그녀가 없어진 것을 알고 애통해 하고 분노하였다. 마침내 데메테르는 자기
신전을 떠나 버렸다. 그 때문에 농작물도 자라지 않게 되었고, 아무 것도
태어나지 않게 되었고 어떤 종류의 새 생명도 생기지 않게 되었다. 기근이 온
땅을 뒤덮어 생명체들을 위협하였다. 그제서야 제우스는 데메테르에게 신경을
쓰게 되었고 페르세포네를 데려오도록 헤르메스를 파견하였다.
  헤르메스는 저승으로 내려가서, 자신의 운명을 단념하지 않은 채 하데스와
같이 침상에 앉아 있는, 수심에 잠긴 페르세포네를 발견하였다. 헤르메스가
자기를 데리러 왔다는 것을 알고는 몹시 기뻐했다. 그러나 그녀를 이승으로
데려 가기 위해 온 마차로 걸음을 채 옮기기 전에 하데스는 그녀에게 석류씨 몇
알을 먹으라고 주었다.
  그렇게 하여 페르세포네는 어머니 품으로 되돌아가게 되었고 봄이 돌아와
땅에 새 생명과 푸르름을 가져다 주었다. 페르세포네가 저승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더라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어머니 곁으로 되돌아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데스가 준 석류씨를 먹었기 때문에 페르세포네는 이제 일 년
중 일부분 - 땅이 묵고 있는 겨울철 - 을 저승에서 하데스와 함께 보내게
되었다. 이렇게 그녀는 저승의 여왕이 되었던 것이다.
 
하데스와 디오니소스
 
  하데스와 황홀경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잇는, 거의 보이지 않는 끈이 저명한
신화학자 월터 오토의 <디오니소스의 신화와 숭배>에서 나온다. 그는 "하데스
와 디오니소스는 한 인물이다"는 헤라클리투스의 한 귀절을 인용하고
디오니소스가 자기 어머니 세멜레를 찾아 저승으로 갈 때 도금양(협죽도과의
식물, 옮긴이 주)으로 변하여 하데스에게 갔다고 쓰고 있다. 이렇게 해서
도금양은 디오니소스와 죽은 자 둘 다와 연관을 갖게 되었다. 칼 케렌니는
<엘리우시스, 어머니와 딸의 원형적 이미지>에서 디오니소스와 하데스에 관한
이야기들이 중복되어 나타난다고 보고 두 남신들이 서로 교체되었거나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거듭 밝히고 있다.
  디오니소스는 본래 생장과 출산의 신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에 대한 숭배
는 계절을 고려했을 것이고 페르세포네처럼 그도 일 년 중 얼마간은 저승에서
생활하였을 터이다. 그렇다면 그와 하데스는 연관이 있었을 것이다.
디오니소스는 광란의 시기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고통, 해체, 부활에 대해서도
잘 알았다. 이렇게 그는 저승으로, 하데스의 세계로 내려갔던 것이다.
 
저승
 
  저승에 있는 죽은 자들, 영원히 그곳에서 살 수밖에 없는 이들은 살아 생전
의 자아의 망령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곳은 황량하며 죽은 자들
대부분이 아스포델 평원에서 살았다. 몇 되지 않는 선택된 자들만이 이상향,
<축복받은 자들의 섬>에서 살았다. 저승의 맨 밑바닥에는 사악한 자들이 고통
받고 있고 티탄들이 갇혀 있는, 영원한 암흑의 세계인 타르타로스가 자리잡고
있다.
  지하에 있는 것 말고도 하데스는 서쪽 끝과 연관되었다. 오디세우스는 하데
스에게 가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세상 끝에 있는 햇빛도 없고 황량한 해변가,
페르세포네가 사는 작은 숲을 향해 서쪽으로 항해하였다.
  죽은 자는 헤르메스의 안내를 받아 저승으로 갔다. 그들은 스틱스 강을
건네다 주는 나루지기 카론에게 동전 몇 잎을 주어야만 케르베로스 - 그는
몸집이 크며 머리가 세 개 달렸으며 죽은 자들이 저승에 기꺼이 들어가게
하도록 하였 으나 죽은 자가 그곳을 떠나는 것을 막았다 - 가 지키는 문을
통과할 수 있었 다. 저승으로 가는 길목에 그들은 세 재판관, 미노스,
라다만티스, 아이아코스를 만나야 했다.
  저승에 들어갔다가 되돌아온 사람들도 있다. 헤라클레스는 그가 해야 할 여
러 일 중 하나 때문에 케르베로스를 불러왔다. 프시케는 페르세포네로부터 받
은 미용 연고가 가득 든 상자를 찾으러 갔고, 오디세우스는 예언자 라이레시아
스의 망령과 얘기하러 갔다. 아에네아스는 자기 아버지의 망령을 찾으려고 하
였다. 그러나 저승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테세우스와
페이리토오스는 페르세포네를 꾀어 내러 왔다가 하데스에 의해 망각의 사슬에
묶여 버렸다.
 하데스 원헝
 
앞서 언급한 대로 하데스는 저승의 신을 일컫는 이름이자 저승 자체를 일컫는
이름이기도 하였다. 하데스에는 두 가지 원형이 있다. 하나는 원형적인 인성
유형이고 다른 하나는 원형적인 세계다.
  두 가지 원형적 하데스를 정의내리는 데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다. 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모자를 쓰고 있어서 그의 모습을 아무도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저승 밖으로 나오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승에서 또는
올림포스 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몰랐다. 색깔이 없는
홀로그램처럼 생생하며 상상을 불러일으킬 때 보이는 메아리와도 같이,
어렴풋하고 비실체적 이미지인 망령들과 함께 자기 세계 안에서만 살았다
그러나 하데스는 <부자>로도 불리워졌고 그의 세계는 지하 자원의 원천이었다.
 
은둔자 원형 하데스
 
  속세에서 일어나는 일이 무엇인지에 개의치 않고 언급하지도 않는, 속세를
떠난 은둔자는 하데스라는 존재로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세상에서
그에게 의미를 주었던 것들을 잃어버리고 이제 저승의 망령처럼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지 못해 움직거리며 특히 우울증에라도 걸려 있다면 생명력을
잃어버린 채로. 억만 장자인 하워드 휴즈가 말년에 그랬던 것처럼 그는 외롭고
편집증에 시달리는 하데스가 되어버린다. 휴즈의 재산은 라스베가스에 있는
자신의 호텔 한 층을 전부 차지하고 살 수 있을 정도였는데 그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그곳에 들어갈 수 없었으며 경호원이 늘 그의 안전을 지켰다 - 어쩌면
그는 자기 세계에 갇힌 죄수처럼 살았다.
  젊은 시절의 휴즈는 훗날 그랬던 것처럼 사회적으로 어리석지도 않았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페르소나대로 살 수 없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는 큰 스튜디
오와 항공사를 운영하였고 항공기를 만들었고 아름다운 영화 배우들과 팔짱을
끼고 나타나곤 했다. 그랬기 때문에 휴즈는 "무슨 일을 하시죠?"라고 남성들이
받곤 하는 기본적인 질문에 답변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흔히 받을 수
있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고 지위와 부를 갖지 못한 하데스 남성은 페르소나가
없는 남성이다. 페르소나는 그를 남성 세계에서 보이지 않게 만든다. 만일
그에게 가족이 없다면 저승 같은, 대도시 한구석에 있는 호텔 방에서 혼자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곳은 포르노 잡지 가게`매춘부`마약 거래상들이 들끓고
집없는 떠돌이들, 밑바닥 인생들이 (남의 집) 문간에서 잠을 자는 곳이다.
하데스 자신이 보이지 않는 저승인 것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하데스, 곧 저승과
같은 곳이다
  인간이 자기 인성 유형과 상황 때문에 하데스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떤 그의 운명은 비참하게 보인다. 그러나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육신이 살아
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필수품을 갖고 있다면 그는 상대적으로 자기 운명에
만족할 수도 있다. 그는 천성적으로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남의 눈에 띄지
않거나 남의 성가심을 받지 않는 것을 좋아할 수도 있다.
 
플루톤으로서의 하데스, 부자의 원형
 
  또 다른 형태의 은둔자 하데스는 바깥 세상의 견본이 되어 왔으며 사람들이
자기 내면의 주관적인 측면과 풍요로움 - 하데스의 플루톤 또는 <부자>다운면 -
을 선호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생산성을 중요시하는 외향적인 우리
문화에서는 사람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혼자 지내는 것을 별로 장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성적인 은둔자는 부정적으로 판단되거나 너무 많은
시간을 혼자서 보내는 별종으로 치부된다. 이러한 거부는 바깥 세상의 사람,
사물, 사건들에 대한 그의 주관적인 반웅과 얽혀 있는데 그것들 역시 너무나
주관적이기 때문에 별날 소지가 있다.
  그런데 은둔자 하데스는 많은 사람들 속에 있는 <행방 불명된> 부분으로 그
들은 이 원형처럼 내성적인 상태가 되어볼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내성적
인 사람들은 외부 세계 경험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인 반응과 맞닿아 있는 내면
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내성의 형태 (융의 심리 유형론을 따르면 내성적
감각)는 내적 대화, 비전, 육감으로 경험되기도 한다.
  하데스를 자신의 심리적 특성의 일부로 갖고 있다면 아주 풍요로와질 수가
있다. 은둔자 하데스는 예술, 흔히 시각 예술을 통해 표현될 수 있는 창조성의
원천이다. 펠리니의 영화, 특히 <쥴리엣 Juliet of the Spirits>과 <8과 1/2>은
이같은 내면 세계의 풍요로움과 주관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하데스는 또한 사람이나 사물, 또는 상황에 대한 어떤 사람의 주관적인 반응
을 스스로에게 알려주는 인간 정신의 일부일 수도 있다. 꿈이 그러한 기능을
해낼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떤 하데스 남성이 2년 전에 자신을 배신하고 상처를
준 여성을 예기치 못하게 만났을 때 마음 속에는 한 장의 총천연색 사진이
갑자기 나타났다. 그는 몸에 비수가 꽃혀 있는 그녀를 보았다. 그 이미지는
마치 가슴에 구멍이 뻥 뜰린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였다. 적대감, 분노,
감정적 고통을 느끼는 대신 이령게 감각적인 체험을 하였는데 그것은 꿈이지만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 같았다.
  바깥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같은 사람, 사물 또는 상황을 이렇게 내성적인
다른 방식으로 보는 방법은 실재에 대한 왜곡으로 판단된다. 아주 어릴 적부터
이런 경향을 자연스럽게 정상적으로 인지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인식을 믿지
말도록 배운다. 왜냐하면 그들은 남들로부터 그 어떤 정당성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이와 같은 면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 또는
얼빠진 짓으로 잘라 낸다면 풍요로움과 깊이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것에 더 이상
가까이 갈 수 없다. 하데스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 생활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객관적인 실제에 대한 제우스의 관점과 포세이돈의 정서적 반웅 -
그것들은 하데스의 주관적인 인식 바깥에서 느껴지는 것으로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는 것들이다 - 에 접근하지 않고서는 정서적 고립과 자신만의 세계로
움츠러드는 위험에 빠진다.
 
좋은 조언자
 
  좋은 조언자는 하데스 원형이 갖고 있는 잠재적인 면을 설명하는 하데스의
여러 이름 중의 하나였다. 주관적 인지의 원천으로 하데스는 사실 좋은
조언자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마음 속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자신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경험이 지닌 주관적인
가치가 무엇인지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객관적이고도 현명한 선택이란
무의미한 것으로, 남에게도 좋아 보이는 피상적인 선택 외에 다름 아닐 수
있다. 어떠한 선택이 참으로 중요한 것인지를 아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하데스는 우리의 신체 감각을 통해, 내장의 반응을 통해, 내면의 소리를 통해,
눈에 보이는 빛을 통해, 우리가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어떤 주관적인 반응을
보이는가를 알 수 있게 도와준다. 우리 생애에서 참으로 중요한 개인적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오면 하데스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주관적인 요소는 굉장히
중요하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 부족한 페르소나
 
  하데스가 눈에 보이지 않는 모자를 쓰게 되면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땅위를
돌아다닐 때에도 남들 눈에 띄지 않았다. 그 모자는 페르소나가 별로 없는 신
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다. (페르소나는 우리의 인성을 감싸고 있는 외양, 다시
말해 우리가 어떻게 생겼고 어떤 차림새를 했으며 우리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행동하는지 하는 것들의 혼합물로 첫인상을 이루고 있다.) 게다가 자기 고유의
세계를 다스리는 주인인 그는 아무에게나 장막을 드리울 수도 있다.
  하데스는 깊은 내면 생활을 다스리며 감정이나 말로 표현되지 않는 원형이
다. 이 원형이 지배 원형일 때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원형이 지배 원형이 아닌 남성들은 저승의 풍요로움을 보지 못하며 종종 하
데스의 면전에서 안절부절한다.
 
<저승의 제우스> 하데스 : 지배자 - 왕 원형
 
  하데스, 제우스, 포세이돈은 각기 자신 몫의 세계를 다스렸고 각각은 왕의
원형의 예다. 성격과 영역은 달랐지만 이 남신들은 근본적인 유사성을 공유하고
있다. 각자는 고유의 영토를 다스렸고 조강지처를 가졌으며 가부장적인
인물이었다. (하데스는 자식을 갖지 못했다.)
 
납치자 원형 하데스
 : 근친 강간의 죄를 저지른, 제우스의 그림자
 
  하데스는 페르세포네를 가져야겠다고 결심하면서도 그녀에게 구혼을 하지
않았다 - 그는 제우스의 허락 아래 그녀를 납치하여 강간하였다. 또한
페르세포네가 아버지인 제우스에게 도와달라고 애원하였을 때 그로부터 외면을
당하였다. 근친 강간의 죄를 저지른 많은 아버지들 가운데 제우스와 하데스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변형들이다. 제우스 같은 남성은 공동체의 큰 대들보이자
가족을 부양하는 권위주의적(이고 혼히 청교도적인) 아버지이다. 동시에 그는
<그녀의 애원을 외면하고 무시한> 아버지, (하데스가) 딸을 강간을 하거나
농락할 때 그것을 허락한 아버지이다.
  이런 심리 상태에서 하데스는 아버지 원형의 그림자다. 그의 내부에는 악한
요소가 있어서 도망갈 수 없는 딸에게 비밀리에 몹쓸 짓을 했던 것이다. 그는
몸소 자기 딸을 저승으로 납치하여 강간한 아버지다. 한번 강간을 당하면 자신
의 순결을 팔아버린 꼴이 되어서 그녀는 더 이상 태양이 비추이는 안전한
세계의 처녀가 아니며 하데스의 비밀스럽고 어두운 세계에 포로가 되어 그
후로도 그녀 자신의 지옥 속에 갇혀 지내게 된다.
 
상상 속의 연인으로서의 납치자 하데스
 
  납치자 하데스는 전적으로 영혼 세계의 연인으로 남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다. 이 원형은 한 여성의 심리 속에 그 나름의 <생명>을 가진 스스럼없는
원형이다. 어린 시절에 그와 비슷한 것으로 쉽게 이해되는 것이 상상의 놀이
친구 다. 이제 성인 여성의 삶 속에서 그는 상상의 연인인 것이다. 그는 그녀와
다정하게 지내며 대화를 나누며 시를 쓰고 충고를 하며 약속을 한다. 그는
그녀에 게 유일한 막역한 친구가 되어 그의 말 한마디에 세상사에서 손을
떼게도 되며 점차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교제하지 못하게도 한다.
  (융 심리학의 표현을 빌면) 내성적인 감각 유형의 보통 사람들이 자기
내면의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흔한 일이다. 예를 들어 많은 음악가들은
일상적으 로는 <환각을 일으키게> 하는 음악을 만들며, 많은 사람들은 내면의
목소리를 갖거나 환상을 본다. 상상 속의 연인 같은 류의 생생한내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는 것은 대인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사람들의 개인
생활과 함께 나타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녀는 어쩌면 육체적 매력이 없는
탓에, 사교술이나 공포심이 없는 탓에 사회적으로 연금 상태의 생활을 하는
사람일 수 있다.
  <하데스에 의한 납치>는 이러한 사적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곳에서
그녀는 이러한 유령 같은 연인과 내적인 관계를 갖는다. 현실로 존재하지만
비밀스러운 관계가 그녀의 삶에 미치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갖고 있다. 비록
그녀가 평범한 직업을 갖고 계속 일을 하면서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
도, 그러한 관계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녀를 떼어놓는다.
  은둔자 하데스로 살아가는 남성은 상상 속의 페르세포네를 가질 수도 있다.
그녀는 그의 내면 세계에 <스스럼없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는, 멀리서 매력을
느꼈던 실제 인물일 수도 있다. 만일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리고 상상의 여
성과 실제 여성 사이의 경계가 마음 속에서 희미해진다면, 그는 실제 여성에게
온당치 못하게 또는 무모하게 간섭을 하기도 한다.
 
지하 세계의 원헝 하데스

하데스는 영혼들이 죽은 뒤 가는 지하 세계, 하계, 저승으로, 몇몇 남신들 및
인간들은 그곳을 방문하였다가 되돌아나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하데스는
인성의 유형일 뿐만 아니라 장소의 원형이기도 하다.
 
우울증의 원형적 이미지 하데스
 
  저승으로 납치당하여 그곳에 사로잡혀 있을 당시 페르세포네는 임상적으로 볼
때 울증에 가까운 상태였을 것이다. 그녀는 앉아서 아무 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고 다시는 결코 대낮의 햇빛을 보거나 꽃을 꺾거나 어머니를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한편 그녀가 없는 동안 온 땅은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는
불모지로 변해 갔다.
  풀이 죽은 사람들은 페르세포네가 납치당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행동하고
느낀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의미를 부여했던 모든 것과 단절되어 있다고
느낀다. 모든 것이 감정적으로 불분명하다. 때때로 생생함, 색깔에 대한
인지마저도 없어지고 세상은 글자 그대로 불분명하게 보인다. 이런 형의
우울중은 조안나 그린버그(한나 그린으로 불리기도 한다)가 자전적 소설 <나는
너에게 결코 장미 정원을 약속하지 않았다>에서 잘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이미지와 목소리의 내면 세계로 침잠하는 것과 연관될 수 있다. 이 책은 한
사춘기 소녀의 현실 세계로부터의 도피에 관한 이야기다.
  저승에 잠깐씩 내려갔다 오는 것은 일상 생활의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나는 지금 형편없는 처지에 있다>고 말하는 순간들로, 우울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림자의 세계
 
  융 심리학에서는 <그림자>의 내용이 이중적이다. 그림자는 우리 자신에게,
또는 남들이 안다면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생각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우리
자신의 일부분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남예게뿐만 아니라
자신에게조차 숨겨진 생각, 행동, 태도, 감정을 간직하고 있다. 그림자의 이런
부분은 프로이드의 이드 id개념과 어두운 타르타로스에 해당하는 것이다.
타르타로스는 싸움에 패한 티탄들과, 올림포스 신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 자들이
갇혀 있던 저승 (하데스)의 일부분이다.
  그렇지만 그림자에 대한 융의 생각은 또한 의식되려고 하는 <긍정적인> 그
림자의 요소, 긍정적인 잠재력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래도 여전히 빛 속에가 아
니라 그림자 속에 있다. 이러한 요소는 하데스와 연관된 저승 세계가 갖고 있
는 풍요로움에 해당하는 것이다.
 
내세 : 죽은 이들의 세계
 
  그리스인들에게 하데스는 죽은 이들의 세계였다. 이곳은 영혼들이 죽어서
가는 영원히 혼령으로 존재하는 곳이거나 아니면 그들이 망각의 강물 (레테)을
마시고 전생을 잊어버리고 다시 태어날 수도 있는 곳이다. 원형의 장소로 하데
스는 내세, 죽은 영혼들이 사는 곳으로 생각되는 개념이다.
  죽은 이들과 접촉한다고 믿는 무당, 죽어가는 이들을 대상으로 일을 하는
간병인들, 영흔이 옳겨갈 수 있도록 도을 필요가 있다는 가정에 기반을 둔 종교
의식 모두는 각 차원을 넘나들고 영혼을 하데스에게 인도하였던 전령의 남신
헤르메스가 했던 일을 해낸다.
 
개인과 집단의 무의식
 
  저승은 또한 개인의 무의식과 집단의 무의식에 대해 상징적으로 반웅한다.
우리가 잊어버린 모든 것은 개인의 무의식 상태에 있다. 어떤 기억들을 살려
내기 위해서는 약간의 의식적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좀더 고통스러운
기억들은 적극적으로 망각 속에 묻혀지고 억제될 수도 있다. 우리가 기억해
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것들은 이러한 영역에서 <존재 근거>를 갖는다.
  집단 무의식은 원형의 영역 또는 보편적인 인간 유형으로, 그것을 불러일으
키는 상황에 따라 무수히 많거나 촉진될 수 있다. 이러한 유형들은 오래 전부
터 있어 왔으며 죽은 지 오래된 사람들이 살아가는 유형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그림자> - 사실상 반복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원형들 - 로 존재한다.
 
 하데스 남성
 
하데스 남성의 주된 문제는 어떻게 순응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가 자신에게 진
실하면서 동시에 바깥 세상에 맞추어 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의 타고난
주관적 성향은 장려되지 않는다. 도리어 인성 기준에 어긋나는 것으로
판단되는데 그 기준은 본래 자신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보통 그에게 낮선
문화 안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한다면 이 원형의 범위를 넘어서 성장하도록
요구받는다.
 
유년기
 
  하데스처럼 내성적인 아이는 대개 강한 인상을 주지 못한다. 그는 자기
형제들처럼 강한 의지를 갖지도 소란을 피우지도 않기 때문에 하데스는
일찍부터 눈에 띄지 않게 된다. 이따금 눈에 띄기도 하는데 그것은 그가
<별나게> 반응 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볼 때 그는 특히 모르는 사람과 상황에
가끔 예기치 않게 반웅하는 것 같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것은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하는 것과는 다르다. 주관적으로 그에게...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것은 그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예를 들면 새 보모가 집에 들어오거나 할머니를 처음 만나고 있다고 가정해
보라. 반백의 여성에게 미소를 짓는 대신 그는 놀라 움츠려들면서 운다.
왜냐하면 그 여성이 별로 상쾌한 느낌을 주지 않거나 그가 평범한 모습 대신에
그녀의 얼굴에서 놀라운 것을 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가 일상적인 것에서 벗어난 짓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한걸음 물러서서,
몸소 경험하기보다는 경험을 이해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
서는 부끄러움을 잘 타고 조금 크면서부터는 진지해지고 모든 것을 속으로 삭
이게 된다. 이러한 과묵함은 소년기에는 특히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처음부터
하데스 아이는 대개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아이들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자존심을 키우기가 어려우며 기껏해야 상하기 일쑤여서 그는 부정적인 자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부모
 
  하데스 아들과 그 부모 사이에 몇 가지 아주 어려운 점들이 있다. 하데스는
남들이 생각하는 소년상에 들어맞지 않으며 그와 그의 부모 모두 자기들이 거
부당하고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긴다.
  어릴 적부터 보이는 하데스의 인성은 자폐적인 데가 있다. 그가 괴로울 때
느끼는 감각이나 체험하는 인상들은 순전히 주관적일 수 있기 때문에 남들이
헤아리지 못한다. 이 때문에 특별히 많은 어머니들이 처음에는 무력감을
느끼다가 다음에는 화를 내게 된다.
  하데스 아들과 아버지의 만남은 상당히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지독히 어을
리지 않는 어떤 만남 (특히 그가 내성적이란 말이 <계집애 같다>는 것을
의미하는 남성일 경우)은 갓 태어난 아들에게 시가를 건네주고 장난감 야구공과
방망이를 사주는 외향적이고 다정 다감한 아버지와 신중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아들의 만남이다. 그는 아들이 아버지를 꼭 닮은 아들, 자랑할 만한 소년,
자신의 친구, 자기가 코치 노릇을 하고 운동 경기에 입하는 사내 녀석이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는 하데스 아들이 본래 타고난 성격이 아니다. 게다가 그가
자기 자존심 때문에 아들을 필요로 하였다면 다정 다감한 성격의 이면에는
분노가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며 그 분노는 자기 기대에 맞게 살지 못하는
아들을 향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하데스 소년은 세상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게 되며 자기 내
면 세계는 그 반대로 도피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쨌거나 하데스 소년은 제
또래들하고는 즐겁게 지내면서도 혼자 - 또는 상상력이 풍부한 친구와 함께
있고 싶어한다 유아원 시절부터 그는 좀더 사회성이 있었으면 하는, 남들의
바람 때문에 간섭을 받게 되며 아마도 의존적이고 반응하는 아이가 되도록
키우려는 어머니의 양육 욕구를 계속해서 좌절시킨다. 대개 그는 나름대로
살아간다는 것 때문에 뭔가 잘못된 점이 있다는 메시지를 (남들로부터)받게
된다.
  그는 부모가 자기 독자성을 존중해 주고 혼자 지내는 것도 이상하지 않고
강점이라는 것을 알아줄 때 잘 살아갈 수 있다. 그렇긴 해도 그가 보통 사물을
감지하는 주관적인 방식으로는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 그는 어쨌거나
자신의 경험을 해석하거나 주관적인 반응을 억제해야만 한다.
  예를 들면 사람 주위에서 피어오르는 영기를 보는 어린아이는 남들이 자기와
같지 않음을 깨달을 때 매우 이상한 느낌을 가지며 그가 그 사람에 관해 알고
있는 것과 보고 있는 색깔을 연관시키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와 유사하게 어떤
상황에서 태양계의 중력을 느긴다면 자신이 웬지 잘 지내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러한 느낌이 말 그대로 그를 불안하게 만드는 어떤 특별한 것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을 모르는 수도 있다.
  부모들이 이러한 주관적인 체험들을 한 적이 없어 도와줄 능력이 되지 않는
다고 해도 그들은 하데스 아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적응하도록 도울 수 있다.
그들은 인내력을 갖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특별 지도를 할 수 있다 - 해외
입양아나 지각 장애자를 키우는 데 사용하는 것과 유사한 접근이다. 사랑에
넘친 지지를 받는다면 그는 어린 시절의 감정에서 벗어나 세상은 살 만하며
안전한 곳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만 그가 주관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이유로 또 아는 것이 없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는다면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그렇다면 그는 정말 침묵을 지킬 것이다. 교육 또한
그의 정신을 개발하는 데 유용하다. 객관적인 지각과 이성은 내면의 주관적인
면에 대한 균형으로서 활성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만일 그가 있는 그대로
사랑을 받고 자리가 주어진다면 대인 관계에 대한 신뢰감을 키워간다. 그는
표준형의 아이가 아니며 약간은 특별한 고려를 필요로 한다.
 
사춘기와 청년기
 
  하데스 청년은 전혀 다른 고수를 따르므로 그가 일반적인 청년이라는 틀에
장단을 맞추려 든다면 곤란을 겪게 된다. 그는 유행이 뭔지 모르며 초대를
받는다고 해도 <정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대부분의 <정식> 파티를
놓쳐 버리는 수도 있다. 만일 그가 <아무쪼록> 그럭저럭 지낼 수 있도록
외향적인 면을 활성화시킨다면, 그리고 본래의 자기 자신이 되는, 내적
안정감을 갖는다면 이제 자신이 독특한 개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충분한 대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보다는 몇몇 친구들을 더 좋아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제 그는 한두 명의 친구를 사귀게 되는데 그가 바라는 수의 친구인 것이다.
  그가 대학이나 직업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다른 원형들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교육은 아폴론의 합리적인 사고 방식과 객관적인 인지 능력을 증진시키고
헤르메스의 자질인 쓰고 말하는 것을 가르친다. 두 남신 모두 그가 좀더
외향적인 사람이 되도록 돕는다. 남들이 기대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쓴다면 위험
- 적성에는 맞지만 의미가 별로 없는 직업을 갖게 되는 위험 - 에 처하게 된다.
 
직업
 
  그의 내면 세계와 외부 세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요소는 자기 속의 경험에서
나온 관심을 직업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관심은 그에게 이승
세계의 정체감과,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함으로써 생계를 이어갈 수단을
제공한다.
  이 원형은 야망이 없고 의사 소통을 제대로 못하며 페르소나가 부족하기 때
문에 (그에게) 힘이 되지 못한다. 그가 다른 원형들을 활성화시키지 않는다면
고등학교 시절에, 또 그 이후에 어느 때라도 <탈락될>수 있다. 그는 최저
임금올 받고 미숙련공으로 일하거나 아니면 실업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그는 종종 어떤 도전도 허용하지 않는 반복적인 일에 머물러 있게 된다.
왜냐하면 그의 <실제>생활이 내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하데스 남성이 잘 활성화된 헤르메스(원형적인 의사 소통자 - 그는 세계를 넘
나들며 그들 사이에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 이며 저승으로 영혼들을 안내하는
자)를 가진다면 자기가 접하는 심층 차원을 세상 속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다.
이 두 원형은 영화, 심층 심리학, 문학, 임종을 지키는 간병 사업, 신학 그밖의
분 야에서 함께 기능을 발휘한다. 여기서 그는 자신이 그 자체로 하기
좋아하는, 의미 깊은 작업을 하는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될 수도
있다.
 
여성들과의 관계
 
  하데스는 사교 모임에서 여성들을 잘 사귀지 못한다. 그는 이런 상황하에서
일어나는 열기와 반응에도 불구하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남성이나 다름
없다.데이트와 연애는 그의 성격에 전연 맞지 않기 때문에 아주 서투르다.
여성들을사귄 경험이 없거나 그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던 기억은 하데스
남성들에게는 공통된 경험이다.
  베아트리체를 한번 보고는 그녀와의 내면적 관계의 영감을 받아 <신곡>를 쓴
단테처럼 하데스 남성들은 자신이 거의 알지 못하는 어떤 실제 여성에 대해
주관적인 내적 체험을 합으로써 깊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하데스 남성은 또
여성과 깊은 친구 관계를 가질 수 있다. 그녀는 그의 내면 세계의 풍요로움을
공유할 수 있다. 운명은 이 두 영혼에게 함께 다가가는 듯하다. 기회란 좀처럼
있는 것이 아니어서 서로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사교적이지 못한 그는 여성과 전연 접촉하지 않는 은둔자적 생활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남성들과의 관계
 
  은둔자 같고 비밀스럽기까지 한 하데스는 다른 남성들과의 우정을 즐기는
법을 잘 모른다. 그는 (남들과) 떨어져 있다고 느끼며 세상에서 외톨이로 잘
살아갈 방도를 찾는다. 다른 남성들은 그를 그렇게 있도록 내버려둔다 그의
어떤 면은 괴롭힘을 받지 않게 해주기도 하고 또 어떤 면은 남성들 틈에 끼지
못하게 한다. 소년들의 일원이 되는 것은 그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일원이
된다고 해서 어떤 권력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며, 그의 내면적 지향에 관한
어떤 것이 힘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그는 <별종>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희생을
부르지는 않는다. 인생살이에서 사귄 친구들이 그의 세계로 들어가, 어쩌면
그의 지각 (작용)에 대해 토론을 벌이게 될지도 모른다.
 
성생활
 
하데스의 성생활은 아주 복잡하다. 그는 다른 어떤 원형보다도 더 쉽게 수도
자의 독신 생활을 해나갈 수 있으며 속세를 떠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
여성과의 정신적 결합이 성의 결합으로 발전된다면 굉장한 첫경험이 된다. 몸을
섞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만감이 교차되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그는 무아경의 디오니소스의 잠재력에 관계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잠재적 유사성 또한 하데스 남신의 성 내력과 함께 생겨난다. 그는
페르세포네를 납치하여 강간하였다. 그는 또한 민타에게 음탕한 눈길을
던졌지만 그녀는 희롱을 당하기 전에 박하 나무로 변신하였다. 같은 이야기가
레우스에게서도 반복되었다. 그녀는 횐색 포플러 나무가 되었다. 따라서 그가
맺은 유일한 성관계는 납치하여 결혼했던 페르세포네와였다. 제우스와 포세이돈
모두 여러 여성들을 성폭행하였는데 악명이 드높았던 이는 하데스였다. 삶은
신화를 따른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혼인중과 데이트중 폭행, 근친 강간,
힘센 남자에 의한 성적 학대가 보기 드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이
의존적이거나 그들보다 신뢰와 힘을 갖고 있지 못할 경우 그들은 그런 일을
저지르고 달아나 버린다. 그러나 하데스 남성이 그같은 일을 저지를 때 쉽게
노출되고 낙인이 찍힌다. 왜냐하면 그는 권력의 배경 안에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의 행동이 실제 여성, 곧 그가 나중에 접근하려는 여성과
연루된 풍부한 공상적 삶 - 잘못하다가는 그녀가 그와 성관계를 갖기
원한다고까지 생각 하는 - 에서 비롯될 수 있다. 이러한 오해 속에서는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간에 온당치 않을 것이고 해당 여성 또는 남들이 그 일을
공개할지도 모른다.
 
결혼
 
  남성이 자기를 사랑하는 여성을 만나게 되면 곧 결혼을 할 것이다.
제우스와포세이돈처럼 하데스 남성들도 가정을 통해 안정과 질서를 갖고
싶어한다. 결 혼은 그의 인생을 좌우한다.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독신,
국외자, 어쩌면은은둔자로 지낼 것이다. 아내와 자식들을 갖는다면 그들을 통해
가족과 공동체 의 일원이 된다 그의 아내는 흔히 남들에게 잘 다가가지 못하는
내성적인 남편과 남들 사이를 중재한다. 종종 그녀는 그를 자식들에게
이해시키기도 한다.
  만일 그가 폐쇄적인 민족 또는 종교 공동체 내의 전통적인 가부장적
확대가족의 일원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훨씰 나이 어리고 성적으로도 경험이
없는 여성과의 결혼을 <주선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그녀는 도저히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구혼을 거쳐 결혼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자식
 
  남신 하데스가 자식을 갖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는 자식을 갖지 않은 유일한
신이었다) 하데스 남성은 생물학적 아버지가 될 수도 있다. 전형적인 경우는 어
쩌면 엄하고 재미없는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될 것인데 그는 규율과 의무를 당
연한 것으로 기대하고 정서적으로는 표현을 할 줄 모르며 자식에게 출세하라고
말할 줄도 모른다.
  스스로가 어린 시절 사랑을 받았던 하데스 남성이라면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아도 애정이 깊은 아버지다. 자식들은 그의 영향을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는 또한 어린 자식들에게 그림책과 이야기책을
골라줌으로써 더 나중에는 그가 사물을 바라보는 법을 일러줌으로써 자기 내면
세계의 풍요를 자식들과 나누고 그들의 상상력을 키워줄 것이다. 그는 아이와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다. 내성적인 아이라면 같은 물리적 공간 안에서,
편안하고 조용하게 같이 지낸다. 좀 외향적인 아이라면 수용적인 하데스
아버지와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자신을 드러내 보인다.
 
중년기
 
  하데스 남성의 중년의 모습은 아주 다양하다. 그 어느 원형보다 훨씬 더 자
기 생을 외부 환경에 의존하며 더욱 중요한 것은 다른 원형적 유형들을 활성화
시키는 데 의존한다는 점이다.
  순수한 하데스는 자신의 내부 세계에 파묻혀 사는 고독한 사람이다. 중년에
바깥 세상에서 잘 지낼 능력도 가족도 없는 그는 자신만의 지하 세계에 내내
파묻혀 살 것이다. 그는 값싼 호텔 방에서 사는 은둔자이거나 자신만의 세계
속에 움츠러든 만성적인 정신병자, 또는 침묵을 유지하는 트라피스트 같은
수도회의 수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가족, 공동체, 직장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면 그는 한 가정의 안정적이고
가부장적인 가장이 되어 있기 쉽다. 그가 지적인 세계를 개발하였다면 풍요로운
내부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관심 분야에 몰두해 있는 학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가 예술 또는 문학 분야에서 표현력을 발전시켰다면 그의 작품은
굉장히 주관적일 것이다.
  자신에게 중요하고 지속적인 관계와 일을 통해 다른 원형들을 활성화하여 그
유형대로 살아갔다면 그는 내면 세계 뿐만 아니라 정서적 영역과 정신과 의지의
세계로 진입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일차적인 원형 또는 주요 원형으로서의
하데스가 아니었더라면 그 남성은 자연스럽게 내면의 세계와 친해질 수
없을는지도 모른다. 많은 남성들, 특히 인생의 전반기에 바깥 세상의 일을
편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내면의 세계와 친해지지 못한다. 그래서 바깥 생활에
적응해야 했던 하데스 남성은 중년에 들어서면서 종종 대부분의 남성들보다
이러한 세 분야, 내면 세계, 정서적 세계, 정신과 의지의 세계에 더 완전하게
통합되는 것이다.
 
노년기
 
  하데스 남성이 중년기에 확립하게 되는 유형은 노년기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꿈과 이미지 같은 내면 세계와의 친숙함과, 집단 무의식과의 연관성은
종종 자기가 곧 죽으리라는 사실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든다. 융 분석가 제인
휠라이트는 <어떤 여자의 죽음>에서 죽어가는 어떤 여성을 분석하는 글을
썼는데 꿈꾸는 영혼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죽음을 맞이할 때
꾸는 꿈에 바탕을 둔 집중적인 심리적 활동이 지니는 가치를 보여 주고 있다.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죽는데 그때는 누구나 예외없이 외부 세계에서 벗어나게
된다. 다시 말해 사건, 사람, 사물과의 감정적 연계를 해체하고 자기 내부로
침잠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이제 하데스라는 남성(또는 여성)또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는 자연스럽게 초연해지며, 외부 세계보다 저승에서 더 편안해
한다. 아마도 이같은 과정은 깊어진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사람들이나 혼수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서 일어난다. 그들은 내면 세계, 하데스의 세계에서
이미지들을 보고 듣고 느끼는가? 죽음을 맞이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는 얘기처럼
그들은 자기네들보다 앞서 죽어간 사람들의 <그림자>를 만나기까지 한다.
 
심리적인 문제점들

하데스의 기질을 가진 남성(또는 여성)을 괴롭히는 심리적인 문제들은 내성적
이고 주관적인 관점을 가졌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들이다.
 
페르소나가 지닌 문제점 : 보이지 않는 남자
 
  혼히 자신의 세계를 떠나는 일이 거의 없고 자기 세계를 떠날 때는 눈에 보
이지 않는 모자를 쓴 남신처럼 하데스 남성은 사람들을 피하기 때문에 또는 사
람들을 피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남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게 된다. 그는 운동, 유행하는 취미, 정치 소식, 칵테일 파티나 야외
바베큐 파티에서 이루어지는 잡담에 밝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별 관심이 없다. 그리고 어쨌거나 그가 보이는 반응이
주관적이어서 남들에게는 색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그는 부조화된 존재로
있기보다는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있게 되는 것이다.

외톨이 인생 : 정신분열증 환자
 
  하데스 남성은 외톨이가 될 소질이 다분하다 상황과 사람이, 남들을 믿지
못하고 경쟁 사회에 자기는 맞지 않는 존재라고 느끼는 그의 성향을
강화한다면,그는 자기 내부로 움츠러들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인식 내용과 반응
양식을 고수한다. 그의 삶은 정서면에서 불모 상태라고 할 만하며, 대인 관계
및 정서적인 자발성이 부족하다. 그는 말이나 행동으로 <날좀 내버려 둬>
달라고 하기 때문에 남들은 그가 은둔한 채로 있도록 내버려 둔다. 외톨이인
그는 배타적인 자기만의 세계에서 갇혀 살며 안정적이긴 하지만 결국에는
갑갑한 심리적 혼란에 기초한 정신 분열 증세를 보이게 된다.
 
열등감
 
  제우스 세계에서 하데스 남성은 백인 사회에서 혹인이 겪는 것과 같은 어려
움을 갖고 있다. 백인 사회에서 혹인 남성은 스스로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보지 못한다. 그래서 열등한 존재로 취급받고 늘 이방인이며, 부정적이거나 어
두운 그림자 같은 투사를 받는 사람이다. 정신 세계도 이와 비슷한 역학을 따
른다. 우리가 융의 심리 유형론을 받아들이고 <열등>기능을, 보통 낮게 평가하
고 가장 의식적이고 유용한 <우등>기능의 반대되는 것이라는 그의 관찰 결과 를
받아들인다면 하데스는 서구의 가부장제 산업 사회에서 열등 기능을 대표 한다.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확고 부동의 사실이거나 객관적 실재 또 논리적
사고이다. 보상을 받는 것은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능력, 곧 지위, 권력, 부를
얻기 위해 성공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래서 하데스는 열등감, 낮은
자존심, 자신감 부족으로 고통받기 쉽다. 왜냐하면 그는 보통 남성의 <기준>에
못미치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 속에서 열등감은 또한 낮은 자존심의 원천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외래 문화에서 살아남기란 힘들며 이러한 상황은 똑같다. 외향적이고 경쟁적인
지배 문화는 하데스 남성에게는 생소하다 그렇지만 보상을 받을 수도, 제2의
언어를 개발시킬 수도, 상이한 문화에 잘 적응할 수도, 심지어는 그것을 능가
할 수도 있다. 여전히 그는 기본적으로 열등감에 시달리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관찰하며, 성공할 경우 그것이 가짜가 아닐까 하는 느낌을 갖곤 한다.
 
우울증 : 정서적 무미 건조함
 
  하데스는 감정의 영역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 모두는 기초 교육을 통해 객관
적 실재와 사고 방식의 세계로 다가가야 하며 이러한 외부 세계의 언어를 익혀
야 한다고 해도, 정서적인 문맹자로 머물러 있을 수 있다. 우리 자신의 감정을
느끼거나 또는 남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데 문제가 있다고 해도 우리는 남들이
어떻게 또 왜 그렇게 느끼는지를 배우지 않아도 되며, 검사를 받거나 특별한
교육을 받을 필요는 없다. 이러한 기술은 자연스럽게 나타나거나 강한 정서적
집착을 통해 개발되는데 이것은 하데스가 가진 천성적인 기질은 아니다. 따라서
정서적 무미 건조함의 문제는 (대체로 많은 남성이 이에 해당되지만 특히
하데스 남성에게는) 만성적인 경증의 우울증을 일으킨다. 하데스의 내면의
주관성은 또한 대뇌의 반쪽에 해당하는 오른쪽 뇌 - 좀 염세적인 분위기를 띤다
- 에서 연유되는 것이라고들 한다.
 
실재의 왜곡
 
  내성적인 인지는 주관적인 영향들로 채색되는데 이것이 바로 그 특성이다.
누구에게나 최상의 상황은 객관적인 인식과 주관적인 인식을 모두 하는 것,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인식하고 난 뒤 경험을 고양시키는 내적인 주관적
반응을 가지는 것이다. (정확성과 객관성은 <실재>로서 합의하에 집단적으로
인지 되고 정해지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렇지만 은둔적 경향과 불신과 더불어 주관적 인식은 병리적으로 왜곡되어
실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게 될 수 있다. <횐 가운을 걸친 남성들(의사)>에게
정신과 검진을 받게 하려는 것은 그의 인식상의 왜곡의 정도가 아니라 그가 그
러한 인식 상태에서 무엇을 하는지(그가 말하는 내용, 그의 행동 방식, 그리고
누가 영향을 받는지 하는 것)와 그의 삶에 끼여들 만한 충분한 관심이나 힘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 있는지의 여부다.
 
불면증과 그림자의 세계
 
  기면 발작 Narcolepsy은 안구를 빠르게 굴리면서 잠을 자게 되는, 의식적
인식을 방해하는 비정상적인 상태다. 때로 깨어 있을 수도 있고 꿈을 꾸고 있을
때도 있는데 불안한 상태이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감정의 격동이 심할
때조차도 잠에 취해 있는 것이 보통이다. 마치 잠(또는 하데스)이 살금살금
들어와 자아를 잠의 세계로 납치해 가는 것처럼 말이다.
  기면 발작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춘기 소년 또는 성인은 꿈이 생시에도
찾아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대화 중간에 점차 시각과
청각뿐 아니라 후각과 촉각도 포함하는, 생생한 꿈의 상태로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잠이 들어 꿈을 꾸고 있을 때 경험하는 것이긴 하지만
우리가 깨어 있고 어느 누구도 그같은 경험을 하고 있지 않는다면 환각으로
아주 흔란스러운 것이다.
  백일몽과 생생한 상상은 저승을 마음대로 드나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
약 복용은 또 다르게 자발적으로 그러한 상태에 들어가도록 하는 선택적 행위
다. 그리고 잠자리에 드는 매일 밤마다 깬 채로 꿈을 꾸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림자의 세계로 들어간다. 꿈을 생생하게 꾸는 사람들은 꿈들을 기억
할 뿐 아니라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깨어나는 것까지를
포함해서 꿈의 내용을 바꾸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우리가 명상을 하고 성찰을
하고 바깥 세상에 있는 어떤 것을 자유롭게 연상할 때도 이러한 영역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내성적인 사람이 하는 것처럼 그 안에서 모든 경험을 하는
것이 우리의 본성인 것마냥 하데스의 세계는 아주 친숙할 수도 있다. 우리가
하데스의 세계에서 여러 문제점들을 경험할 것인지 아닌지를 정하는 것은 바로
언제 어디서 얼마만큼 깊숙하게 그런 세계로 빠져드는가, 우리가 의식을 차리고
있는지 아닌지, 또 만일 거기에 있을 선택권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 하는
문제이다.
 
남들이 겪는 어려움
 
  하데스가 혼자 있음으로써 남들에게 일으키는 어려움은 자기 내부에 숨어사는
그와는 달리 세상의 나머지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정신적 에너지나 리비도의 방향은 내향적이다. 그러면서도 그에게
의미있는 타자는 에너지의 일부가 그들 사이의 관계 또는 세상으로
뻗어나오기를 바란다. 최소한 그들은 하데스가 세상사에 대해 서로 의사를
교류하기를 바란다. 은둔자적인 성격을 가진 이를 사랑하는 것은 외향적인
사람들에게는 특별히 어려운 일이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본인 스스로 은둔자적
성격의 사람을 배척하기 때문에 내성적인 상대나 어린아이가 움츠러들 때 뭔가
잘못되게 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바로 그러한 긴장과 상대의 관심을 끄는
경향은 하데스로 하여금 밖으로 나오게 하거나 아니면 더욱 내성적이거나
외롭게 만들 수 도 있다.
 
성장하는 길
 
하데스 남성이 자신의 다른 면들을 활성화하지 않는다면 고립된 인간이 되어
버릴 것이다. 그는 가까이하기 쉽고 뚜렷한 페르소나를 개발하고 자기 내면의
경험을 드러낼 방도를 찾을 필요가 있다.
 
페르소나 개발하기
 
  페르소나는 우리가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얼굴이다. 라틴어로 페르소나는
<가면>을 뜻하며 배우가 맡은 역할이 무엇인지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게
무대에서 쓰는 가면을 일컬었다. 페르소나는 우리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
우리가 드러내는 첫인상이다. 바깥 세계에서보다는 내면 세계에서 살고 있는
하데스 남성은 어떻게 하면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의식적으로
스스로에게 적절한 페르소나를 다듬어야 한다. 낯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 편해질
수 있게 하는 몇 마디 대화가 그에게는 자연스럽게 다가오지 않으므로 그는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또 어떤 식으로 사람들과 마주치고 싶은지를 잘
생각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제 구실을 잘 하는 페르소나라면 - 우리가 입고
있는 옷과도 같이 - 그 사람을 반영할 뿐 아니라 상황과도 잘 들어맞아야 한다.
다른 말로 한다면 하데스는 뚜렷하고도 가까이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페르세포네 찾기
 
  하데스 남성은 세상과 그를 중개해 줄 수 있는 수용적인 여성을 운좋게도
찾을 것이다. 하데스 남성은 점차로 마음을 열고 자신의 생각과 내면에 지니고
있는 풍요로움을 나누게 될 것이지만 먼저 그는 가까이하기 쉬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페르세포네>는 실제 여성으로서 또는 그의 아니마 - 융이 남성이 지닌
무의식적인 여성적 측면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온화함, 정서적임, 다정 다감함을
드러내는 통로 - 로서 그를 위해 이러한 일을 한다. 이러한 드러냄은 그가 지닌
가까이하기 어려운 측면을 부드럽게 하여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든다.
 
헤르메스를 살려 내기
 
  혜르메스는 하데스의 세계를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었던 유일한 신이었다.
전령의 남신이자 싸이코폼프 psychopomp (영흔의 안내자를 뜻하는 말)로서
헤르메스는 전령을 전달하고 영혼을 하데스에게 안내하였으며 페르세포네를
찾아 갔다. 그는 생각과 재능을 재빨리 말로 표현하는 것 말고도 신출 귀몰하는
것 - 직관적 통찰력을 나타내는 것 - 으로 유명했다. 하데스와 헤르메스가 함께
있을 때 헤르메스는 하데스가 지배하는 저승의 이미지나 망령들이 이해받고
남들과 교류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융이 집단 무의식의
원형들을 기술하면서 했던 것이다. 융과 그외 융을 따르는 분석 심리학자들의
연구물과 엘리옷 같은 시인들의 작품을 읽음으로써 하데스 남성이 풍부한 자기
내면의 경험을 전달할 어휘를 발견한다면 근에게 헤르메스가 살아났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신들을 불러내기, 세상으로 나가기
 
  유난히 그리고 천성적으로 내성적인 하데스 남성은 대개 다른 원형들을
활성화시킬 충분한 기회를 갖는데 그것이 성장하는 길이다. 의무 교육을 받는
기간 내내 아폴론의 자질에 가까이 한다. 직선형 생활, 모임 일정, 과학적 사고
방식, 원인과 결과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 등은 이러한 원형을 활성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도 헤르메스를 개발하는 학교 교육의
일부분이다. 또 누군가의 사랑을 받거나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정서의 영역 또한
그가 성장하는 장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자신을 인정하고 자신의 가족이 역기능적이어서 자기 속으로
너무 많이 움츠러들었다는 것을 깨닫는 남성은 심리적으로 하데스를 극복하고
성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다. 그것은 그렇게 하겠다는 결정과 그것을 실행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다음에 안전과 고립을 찾았던 자신만의 세계 밖으로 위험
을 무릅쓰고 나가는 용기를 내는 것이다. 금주 모임 Adult Children of
Alcoholics (술은 순탄치 못한 가정들에서 가장 흔히 발견되는 원인이다)에
나가서, 남들이 말하는 체험들을 듣고 몇몇 사람들과 접촉을 하게 될 때까지
한동안 단지 듣기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는 직장에서 다른
동료들이 그에게 제안한 것에 따르기로 결정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임상 의사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그가 자기 내부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는 자기 시간을 좀더 바깥 세상에 초점을
맞추어 관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느끼기에 잘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칠 강좌를 듣거나 기술을 배워 그것에 집중할 수도 있을 것이다.
 
III
아들 세대
아폴론, 헤르메스,
아레스, 헤파이스토스,
디오니소스

올림포스의 아들신은 다음과 같다. 태양의 신 아폴론, 전령의 신
헤르메스(로마에서는 머큐리로 불리운다), 전쟁의 신 아레스(로마식 이름
마르스),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불카누스), 황홀경과 술의 신
디오니소스(바코스)가 그들이다. 이들 제2세대 올림포스 남신들은 아들
세대였다. 그들은 세상을 다스리지는 않았어도 자기 고유의 위치, 상황, 장소
같은 것들과 연관이 있다. 나그네들은 길거리에서 또 지역을 가르는 경계
지점에서 헤르메스의 존재를 느꼈고 전쟁터에서는 아레스를, 산에서 한창 술
잔치가 벌어질 때는 디오니소스의 존재를 느꼈다. 헤파이스토스는 화산 밑에
있는 대장간에서 열심히 일했고 아폴론은 거의 일 년 내내 델피 신전에서
지냈다. 아들들은 자기들이 한 일에 의해 규정을 받았는데 역으로 그들이 한
일은 그들의 속성 및 기질과 관계가 있었다.
  제우스는 이 세대의 아버지였다. 그는 아폴론, 헤르메스, 아레스와 디오니소
스를 아들로 두었고 자신의 아내인 헤라를 유일한 부모로 둔
헤파이스토스에게는 이름뿐인 아버지였다. 제우스는 아폴론과 헤르메스를
좋아하였고 아레스와 헤파이스토스는 멀리했으며 디오니소스에게는 아버지일 뿐
아니라 대리 어머니이기도 했다.
 
총애받는 아들들 : 아폴론와 헤르메스
 
제우스가 총애한 아들들은 남성들로 하여금 가부장제 사회에서 출세하도록 돕
는 두 원형이다. 신화를 보면 아폴론와 헤르메스는 제우스가 다스리는 하늘 나
라에서 잘 지냈다. 태양의 신인 아폴론은 하늘을 가로지르며 자신의 전차를 몰
았다. 제우스의 전령이었던 헤르메스는 자유로이 그리고 쉽게 올림포스 산꼭대
기까지 여행할 수 있었다. 두 남신들은 제우스처럼 감정적으로 냉랭하며 정신
적인 활동과 관련되어 있다. 원형으로서 그들은 정신 세계에서 가장 편안해 한
남신들이다.
  둘은 논쟁, 협상, 교섭과 관련이 있었으며 제우스에게 분쟁을 중재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둘은 물리적 충돌을 피하였다. 아내도 배우자도 갖지 않았다.

박대당한 아들들 : 아레스와 헤파이스토스
 
아폴론과 헤르메스와는 대조적으로 제우스가 박대한 아들 아레스와
헤파이스토스는 머리를 쓰거나 대화를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 둘은
육체 활동을 통해 자신들을 표현했다. 둘은 어떤 의미에서 정신적이라기보다는
육체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 둘은 감정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아레스는
화가 나서 또는 충성심에서 싸움을 걸었고 파괴적인 목적을 위해 무기를
사용하기도 했다. 아버지에게 박대당하고 배신당한 헤파이스토스는 창조적인
목적을 위해 도구를 만들면서 자신이 만든 물건에 자기 감정을 불어넣었다.
제우스는 헤파이스토스를 버렸고 아레스를 혐오했다. 두 남신 모두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거나 욕을 먹었으며 그들과 비슷한 남성들은 자존심이 상해
고통을 겪기 쉽다 두 남신 모두 낮게 평가되었으며 화를 잘 내고 무력한 헤라의
아들이었다.
  원형들로서 그들의 성격은 가부장제에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남신들을 닮은 남성들은 성공하는 데 어려움을 갖고 있다.
 
양가 감정이 병존하는 것으로 보이는 아들 : 디오니소스
 
디오니소스는 인간을 어머니로 두었고 제우스가 아버지 노릇뿐만 아니라 어머
니 노릇까지 해낸, 유일한 올림포스 신으로서 그만의 독자적인 범주에 들어 있
다. 디오니소스는 몇 개월 되지 않은 태아여서 혼자 힘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처지였다. 제우스는 그를 자기 허벅지 속에 꿰매 넣었는데 그의 허벅지는 아이
가 충분히 자라 태어날 수 있을 때까지 인큐베이터 내지 제2의 자궁 구실을 하
였다.
  디오니소스는 여성들과 같이 지내는 것을 좋아했던 유일한 남신이었다.
여성들은 그의 신화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디오니소스가 어머니를
저승에서 올림포스로 데려왔으며 그곳에서 그녀는 예우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버림받은 아리아드네에게 다가가 그녀와 결혼을 한, 믿음이 가는 올림포스의
남편 이었다.
  올림포스 산의 막내 남신인 디오니소스는 제우스를 냉혹한 아버지에서 양육
하는 아버지로 바꾸어 놓은 아들이었다. 디오니소스는 불안정하게 보인다.
권력을 쥔 남성은 디오니소스를 문화나 그들의 심성에서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외래적인 영향으로 대한 반면에 여성들과 여성적인 요소를 갖고 있는
남성들에게서는 쉽게 받아들여진 듯하다. 이 남신을 닮은 남성들은 남들이
굉장히 모호한 (심지어는 공평하지 못한) 감정을 가지고 자신들을 대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총애받거나 박대당하거나 불안정하게 받아들여진
우리 자신의 모습들로서의 남신들
 
미국의 가부장제 문화는 그리스인들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고전에
나오는그리스인들은 청교도들이 아니며 따라서 우리 문화와 심성에서처럼 어떤
금욕 적인 신화의 아버지를 갖고 있지 않다. 제우스에게 성욕은 권력의
표현이자 자신이 충족시킬 수 있는 본능이었다. 그는 그렇게 할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은 성을 음란하고 더러운 것이라 여기지 않았다.
디오니소스를 양육함으로써 은유적인 차원에서 볼 때 제우스는 자기 성욕을
황홀경의 차원에서 충족시키거나 또는 여성적인 것과 여성들에 대한 관계가
변할 수 있는 여지를 두었다. 이 때문에 제우스는 디오니소스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가졌고 그리스인들은 그를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모두 갖고
보았다. 반면에 미국식의 가부장제는 디오니소스를 부정적으로 판단한다.
  우리는 총아들이 활개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살고 있으며 그 편견은 우리의
심성 속에 뒤섞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자신의 부분들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식의 태도는 문화와 가족에 의해 규정된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누구>를 가장 많이 닮았는지, 또는 이들 원형 가운데 어떤 원형이 가장 <우리
다운> 것인지는 환영하든 말든 타고나는 것이다
  이런 유형들의 이름을 알아갈 때 그리고 다음 장들에서 그들이 살아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심성 속에 자리잡고 있는 각각의 특별한 신의 현재 또는 부재
상태를 인정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상상하는 것처럼 이미 앞서 살펴본 세 명의
아버지 남신들에게서 일어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추리 소설을 읽으면서
이야기속에 나오는 주인공이 실제와 똑같은 것을 발견하는 순간에 <아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진짜 모습과, 이제 <기억해 둘>
수 있는 자신의 중요한모습을 발견할 때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아하!>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제6장
아폴론 : 태양의 신
궁수, 입법자, 총애받는 아들
 
예술, 음악, 시, 젊음, 건강, 절제 등 모든 아름다움은 아폴론으로 집약된다.
  그의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모습에는 그를 법과 질서와 연계시키는
모든것이 포함될 수 있다. 일차적으로 그는 <공상적이고 모호하며 형태 없는
것과 반대되는 지적이고 단호하고, 측정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편애를 나타냈다.
  - W.K.C. 구드리에, <그리스인들과 그리스 신들>
 
아폴론은 너무 가까운 것은 무엇이든지 거부한다. 사물에의 연루, 애수를
자아내 는 시선, 그리고 마찬가지로 영혼의 합일, 신비적인 명정과 무아경의
환상등.
  - 월터 F. 오토, <호메로스의 신들>
 
  아폴론은 멀리서 지켜보고 행동하는 남성적인 태도를 구현한다. 남신, 원형,
인간 남성으로서 그는 <빛난다>. 그는 제우스가 가장 아끼는 아들이었으며 그
의 속성을 가져야 가부장제 사회에서 출세할 수 있다. 그는
지성`의지`정신이라는 하늘의 세계에서 아주 편히 지낼 수 있다. 그렇지만 그가
명석함과 형식으로 알려져 있다고 해도 아폴론에게도 숨은 면과 어두운 면이 둘
다 있다.
 
아폴론 남신
 
아폴론은 그리스의 최고신인 제우스 다음가는 신이었다. 그는 태양의 신이자,
예술(특히 음악)의 신이자 예언의 신이자 궁수의 신이었다. 그는 입법가였고
악을 벌하였으며 전염병을 돌릴 수도 있는 의술의 후원자이자 양치기의
수호자였다. 그는 아폴론 또는 포이보스('빛나는,''찬란한,''순수한')
아폴론으로 그리스인들뿐 아니라 로마인들에게도 잘 알려졌다.
  그는 사내다운 힘을 지녔으며 멋지게 늘어진 금발의, 잘생기고 수염이 없는
젊은이로 서 있거나 활보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를 모시는 델피 신전
에는 <네 자신을 알라>와 <중도를 지키라>는 유명한 두 경구가 적혀 있다. 활
과 수금은 그가 아끼던 물건이며 월계수는 그를 기리는 성스런 나무였다.
  태양 같은 명석함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상징들에서 보이는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한, 덜 알려져 있는 좀더 어두운 구석을 갖고 있었다.
아폴론은 순수하고 성스럽고 정화하는 남신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그가 지닌
속성들은 태양에 비유되었다. 태양은 그의 가장 중요한 상징이었다. 그의
탄생이 임박했을 때 아폴론에게 바쳐진 새인 백조가 델로스 섬 주위를 일곱
바퀴나 돌았으며 그가 태어나자 제우스는 백조가 끄는 전차를 그에게 주었다.
그렇긴 하지만 갈가마귀와 까마귀 - 흉조 - 도 뱀과 늑대와 마찬가지로
아폴론과 연관되어 있었다. 그가 내리는 벌은 잔인했을 수도 있으며 그는
앙심을 품고 행동했을 수 있다.
 
계보와 신화
 
  아폴론은 레토와 제우스의 아들로 사냥과 달의 신 아르테미스의 쌍둥이 남자
형제였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임신한 레토(올림포스 신들보다 앞선 시대를
지배했던 세대인 티탄 신족의 하나)는 아기를 낳을 곳을 찾으러 온 땅을 여기
저기 돌아다녔다. 그녀를 받아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사람들은 바로
제우스의 질투심 많은 아내 헤라의 노여움을 살까봐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진통을 하면서 델로스라 불리는 불모지 섬으로 갔다. 아흐레 낮과
밤 동안 레토는 아폴론을 낳느라 심한 진통을 겪었다. (헤라가 출산의 여신이
그녀를 도우려는 것을 막았던 것이다.) 아폴론은 마침내 그 달 7일에 종려 나무
밑에서 태어났다. 칠이라는 숫자가 그에게 바쳐졌고 종려 나무는 가장 유명한
고대의 구경거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아폴론와 아르테미스 : 쌍둥이
 
  아폴론과 그의 쌍둥이 여자 형제 아르테미스는 둘 다 궁수였다. 아폴론의 활
과 화살대는 황금으로 만들어졌으며 그는 황금빛 태양의 신이었다. 아르테미스
의 무기는 그녀의 은빛 달처럼 은으로 만들어졌다. 아르테미스가 먼저 태어난
쌍둥이였으며 호메로스에 따르면 아폴론에게 궁술을 가르쳐준 이도 그녀였다.
둘은 먼 거리에서 활을 쏘아 목표물에 명중시켰다. 그들이 쏘는 화살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 화살을 맞으면 고통이 따르지 않는 갑작스런 죽음을 
  맞게 된다. 둘은 그들이 지닌 청순함 때문에 숭배를 받았다. 또한 멀리
떨어져 있으며, 접근하기 어렵고 자취를 잘 감추는 것(그녀는 숲 속으로, 그는
북방 정토라는 신비의 영역으로 사라졌다)으로 유명하다.
  아르테미스와 아폴론은 둘 다 이제 막 성숙의 문턱에 선, 자라나는 젊은이를 
지켜보면서 신속하고도 냉혹한 벌을 주었다. 예를 들면 바보 같은 여자
니오베가, 레토가 아르테미스와 아폴론, 단 둘을 자식으로 둔 데 반해 자기는
아름다   운 딸 여섯과 잘생긴 아들 여섯을 두었다고 자랑함으로써 자기 어머니
레토에   게 창피를 주었던 적이 있다. 레토는 그녀의 성스런 자식들에게
도움을 청했    다. 아폴론은 그녀의 아들 여섯 모두를 죽였고 아르테미스는
그녀의 딸 여섯을  모두 죽여 버렸다. 니오베는 눈물을 흘리는 소금 기둥으로
변해 버렸다.
  아르테미스는 한때 오리온이라는 사냥꾼을 사랑한 적이 있다. 질투심에 불  
타는 아폴론은 그녀에게 먼 바다에 점같이 보이는 것을 맞힐 수 없을 거라면서 
그것을 쏘아 맞추어 보라고 부추겼다. 경쟁심 많은 아르테미스는 도전에 응하
여 일어서서 정확하게 겨냥하여 목표물을 맞추었다. 아주 뒤늦게서야 그녀는
머리만 물 위에 내놓고 바다를 걸어서 건너고 있었던 오리온을 죽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리아드>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 동안 신들의 전투담을 보면 포세이돈이
아폴론에게 결투를 신청하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폴론은 하찮은 인간들과
싸우지 않기로 정중히 거절하였으며, 화가 난 아르테미스가 그를 겁장이라고
몰아 세워도 꿈쩍하지 않았다.
 
아폴론과 그의 실연
 
  다프네는 아폴론의 첫사랑이었고 에로스(아모르 또는 쿠피드라고도 함)는 그
를 곤란에 빠뜨린 장본인이었다. 아폴론이 에로스의 힘을 우습게 여기자 에로
스는 황금으로 된, 사랑의 화살을 아폴론의 심장에, 납으로 된, 사랑을 퇴짜놓
는 화살을 다프네의 심장에 쏘았다. 그러자 열정에 불탄 아폴론은 다프네를 뒤
쫓아다니게 되었고 그녀를 막 따라잡으려고 하자 그녀는 아버지인 강의 신에게
도와달라고 빌었다. 아버지는 그녀를 월계수 나무로 변모시켰다. 아폴론은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다. 월계수는 그의 성수가 되었으며 그녀의 잎사귀는 그의
머리를 장식한 관이 되었다.
  카산드라는 아폴론을 버린 대가를 톡톡히 지불한 것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여성이다. 그녀는 트로이의 왕과 왕후인 프리아토스와 헤카베의 딸이었다.
아폴론은 카산드라의 애인이 되는 조건으로 그녀에게 예언술을 가르쳐 주었다
카산드라는 약속해 놓고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아폴론은 그녀에게 준
예언의 재능을 철회할 수 없었길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못하게
함으로써 보복하였다.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면서 카산드라는 끊임없이 수많은
비운을 목격하였는데 그것들을 믿기 어려운 나머지 미쳐 버렸다.
  아폴론은 코로니스와의 연애에서는 좀 성공한 편에 속했다. 그녀는 아름다운
젊은 여성으로 그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 남신은 횐 까마귀에게 자기를
위해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말라는 임무를 주었다 까마귀는 돌아와서 그녀가
그를 속이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이 말을 들은 아폴론은 본디 하얗던 까마귀의
날개를 검게 바꾸어 버리고 코로니스를 죽여 버렸다. 그는 허둥지둥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는 곧 후회하였다. 그러나 그가 그녀를 살려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녀가 장례식의 화장용 장작더미 위에 놓여 있을 때
아폴론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그의 아들을 구해 내어 켄타우로스 족인
케이론에게 맡겨 키우도록 하였다. 이 아들이 아스클레피오스로 치료와 의술의
신이 되었다.
  아폴론은 또 한 남성을 사랑하면서 고통을 받았다. 그는 스파르타 왕의 아들
인 히아킨토스라는 젊은이를 좋아했는데 어찌나 좋아했던지 내내 같이 지내느
라 델피 신전을 버려둘 정도였다. 어느 날 둘은 원반 던지기 경기에서 경쟁하
게 되었는데 아폴론의 원반이 돌을 스쳐 나는 바람에 히아킨토스는 돌에 맞아
죽었다. 사랑하는 남성의 죽음 앞에서 괴로와하던 아폴론은 히아킨토스가 기려
질 것을 맹세하였다. 히아킨토스가 흘린 피에서 그의 이름을 가진 꽃,
히야신스가 피어났다.
 
아폴론과 예언
 
아폴론은 자기 신화에서 스스로 예언한 바는 없지만, 예언의 신이었다. 이는
그가 전유한 속성이었다. 그는 오랜 예언의 역사를 지닌 장소인 델피의 신탁을
이어받았다. 아폴론 이전에 델피는 헬레니즘 이전의 여신 - 아마 뱀의 여신 -
을 모시는 신전이었다. 그의 신화에서 아폴론은 피톤이라 불리우는 큰 암컷용
또는 뱀을 죽이고 델피를 손아귀에 넣었다. 그 후에 그는 피티아의 아폴론이라
불리웠으며 그의 여사제를 피티아라고 불렀다.
  아폴론의 매개체는 그의 통제권 아래에 있는 모든 여성들이었으며 그들의
예언은 그들이 그와 교류하는 탓이었다. 실제 여사제를 수행하였던 주석가,
사제는그녀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는 그녀의 말들을 적어 놓았다. 그
응답이 다음에는 또 다른 사제에게 넘어가게 되는데 그는 신탁을 보통 운문의
형태로 만든다. 신탁의 의미는 종종 모호하였으며 정치적인 목적에 자주
이용되었다.

델피

  파르나소스 산 밑자락에 보리, 삼, 월계수 잎을 피우는 연기로 가득차 있는
가장 깊은 방안에는 나이 든 피티아가 삼각대 위에 앉아 몽환의 경지에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 깊숙한 곳에 위치한 방안에 옴팔로스 또는 중심을 잡고 있는 돌이
있다(delphys란 말은 "자궁"을 뜻한다). 델피는 제우스가 - 과학적 탐구의
정신으로 - 세상의 중심을 표시하기로 정한 이전에도 대지의 배꼽 또는 자궁,
세계의 중심으로 여겨졌다. 그는 두 마리의 독수리를 풀어 주어 한 마리는
세상의 동쪽 끝에서 다른 한 마리는 서쪽 끝에서부터 날도록 하였다. 같은
시각에 풀어 놓고 같은 속도로 날았던 독수리들이 델피에서 서로 만났던
것이다.
  아폴론의 신전 안에는 디오니소스의 무덤이 있었다. 겨울 석달 동안 아폴론은
그의 신전을 디오니소스에게 넘겨 주는 한편 북방인들이 산다는 가공의 땅을
향해 북쪽 멀리 갔다.
  사람들은 (아폴론 신을 숭배하는 것 이상의 다른) 두 가지 커다란 이유
때문에 아폴론의 신전에 갔다. 하나는 그의 신탁을 들으러, 또 하나는 범죄를
저지른 후에 죄의 사함을 받기 위해서였다. 입법자들은 법률의 증여자이면서
해석자인아폴론에게서 자문을 받고자 하였다. 또한 그리스 국가들은 그들의
헌법을 그 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아래와 같은 가장 유명한 격언 말고 다른 것들도 그의 신전에 적혀 있었는데
그것은 절제와 권위에 대한 아폴론의 가치 기준을 전하고 있다.
 
정신을 가다듬거라.
분수를 지켜라.
자랑을 증오하라.
겸손한 말씨를 쓰도록 하여라.
권위를 두려워하라.
신에 굴복하라.
힘을 자랑하지 마라.
여자들을 지배하에 두어라.
 
  아폴론은 범헬레니즘 남신이었다. 그의 영향은 그리스 전체를 통해 제우스
다음 가는 것이었다 도시들은 밀사를 델피로 보내 자문을 구했을 뿐 아니라
아폴론의 부하들은 민법과 종교법의 해석자의 자격으로 델피에서 그리스
도시들로 보내졌다.
 
아폴론 원형
 
아폴론은 멀리서도 환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고 인생 전체를 보는 눈으로 세부
적인 사항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는 목표물을 겨냥하여 활과 화살로 그것을
맞출 수 있었고 음악으로 하모니를 만들어 냈다. 아폴론 원형은 분명한 정의를
원하는 인물의 모습을 의인화하고 있으며 기술에 정통하고 질서와 조화를
존중하며 외양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 보기보다는
겉모습을 보기를 좋아한다.
  아폴론 원형은 느낌보다는 생각을, 친밀하게 지내기보다는 거리감을 두기를,
주관적인 직관보다는 객관적인 평가를 좋아한다. 아폴론 원형과 가장 가깜다고
인정받는 남성은 세상을 사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속성을 지니고 있는 셈이
다. 그는 일로 성공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쉽게 고전 예술 형식
에 정통할 수 있다.
 
궁수
 
  궁수가 된다는 것은 의지, 기술, 그리고 기량을 필요로 한다. 기예를 갖춘
궁수는 먼 거리에서도 목표물을 겨냥할 수 있으며 그것을 맞출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은유적으로 이것은 아폴론 남성이 원형적으로 하는 일에
자연스럽 게 몰두하는 것을 가리킨다.
  아폴론의 기질은 논리적이며 객관적인 실재와 쉽게 관련을 맺는다. 그에게
있어 인과 법칙이란 경험과 부모의 권고로 배워지는 교훈이 아니며 애초부터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원리인 것이다. 그러한 사전 프로그래밍이 바로 이
원형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고 그 목표를 달성할 의지를
갖고 있는 어린 소년은 아폴론다운 본성에 충실하고 있는 것이다.
  목표물을 겨냥하는 것은 미래를 내다보는 시간 감각을 가질 것을 요구하는데
그것은 바로 아폴론 남성이 갖고 있는 자질이다. 다른 남성 유형들은 목표를
세우는 데 어려움을 갖는데 아폴론은 그렇지 않다. 그는 자기가 도달하고 싶은
곳이 어딘지, 또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으며, 자신이 성공하고
싶어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는 몽상가가 아니다. 그가 목표로 하는
것들은 노력을 요구하는 현실적인 것들이다. 그것들은 보통 남들의 눈에 보이는
목표물이기도 하다. 어떤 소년은 독수리 소년 단원이 되는 것을, 또는 시합에서
1등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도 한다. 조금 지나서 그는 하버드, MIT, 또는
옥스포드 대학에 가기로 정하고 그 다음에는 자기가 선택한 분야에서 권위자가
될 수도 있다. 아폴론의 특질들은 인정을 얻기를 좋아한다.
  아폴론 원형이 가장 손상되지 않은 형태로, 성공이 분명히 예정되어 있고 감
정적으로 상처받은 적이 아직 없으며 겸손을 배울 기회도 많지 않았던 청년으
로 존재하는 시기가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이 아닌가 한다. 여러분은 아마도 다
재 다능한 아폴론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잘생기고 점잖고 깔끔한 청년에다
성적이 뛰어나며 악기도 잘 연주하며 운동 경기도 잘하며 어쩌면 학급 임원 -
아이비 리그의 대학 입학 허가 담당관이 원하는 바로 그 학생이었다 - 이었을
것이다.
  저 유명한 아폴로 우주선 탐사 계획에 참여한 우주 비행사 대부분은 아폴론
을 닮았다. 나는 죤 글랜이나 에드가 미첼, 닐 암스트롱에게서 남신 아폴론을
본다. 그들과 우주선 탐사 계획은 남신 아폴론이 아버지 제우스를 대하는 것,
곧 아버지의 의지를 실행에 옮기는 것과 같았다. 우주선 탐사 계획은 대통령의
의지가 확장된 것이었으며 그 의지의 집행을 가장 멋지게 반영한 것이었다.
 
사랑받는 아들
 
  아폴론은 제우스가 사랑하는 아들이자 그리스에서 제우스 다음 가는, 가장
중요한 남신이었다.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는 아폴론은
실제로는 아버지의 의지를 실행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금발 머리의
아들이었다
  미국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가부장적 가치를 신봉하는 정당이다. 1988년
공화당의 대통령과 부대통령 후보였던 죠지 부시와 던 퀘일은 아폴론 역을
맡았다.막강한 상원 의원을 아버지로 둔 아들 부시와 고향인 인디아나 주를
좌지우지 했던 신문 재벌 출신의 퀘일은 기득권자였으며 외모가 잘생긴
남성들이자 유리한 상황들에 익숙해 있었다. 부시가 제우스의 자리에 이르고자
한다면 영원한 부사령관 아폴론이 갖고 있는 이미지를 극복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퀘일처럼 원형적으로 금발의 소년이 대통령직을 승계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유권자들에게는 거의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랑하는 아들은 대개
아주 멀리서만 나타난다. 그 이유는 그들은 비중이 적은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고 제우스같이 무자비한 인물로 권력과 지배를 강화하려는 정력적인 야망과
능력이 없는, 아들이나 형제 같은 원형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총애받는 아들 원형은 고통과 갈등을 려지 않는 듯하다. 그는 정신적으로
자신을 남들의 고통으로부터 떼어놓으며 자신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경향
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남들이 어떤 남성을 아폴론으로 인식하는 경
우 이 원형의 속성들이 그 남성에게 투사되어 그를 아폴론이 아닌 다른 원형으
로 보기는 힘들다.
 
음악가
 
  아폴론은 두 줄로 된 현악기, 활과 수금을 연상시켰다. 그가 활을 잡으면
화살을 쏘게 만든다. 그가 수금을 뜯으면 음악이 나온다. <호메로스의 신들>의
지은이 오토에 따르면 그리스인들은 둘 사이에 서로 유사한 점이 있다고
보았다. "둘 다에서, 그들은 목표를 향해 속도를 내며 날아가는 창을 보았다.
하나는 적중하는 화살이고 다른 하나는 적중하는 노래인 것이다." 모든 남신들
가운데 가장 날쌘 신이 부르는 노래는 도취된 영혼에게서 나오는 꿈같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보이는 진리를 향해 직접 날아간다.
  음악에서도 아폴론은 또 다시 명료함과 순수함과 연관되었다. 혼돈과 황홀경,
소란, 감정의 갈등, 그리고 열정을 드러내는 디오니소스의 음악과 대조적으로
아폴론의 음악은 깨끗한 선율, 고등 수학과도 비슷한 순수성에 가치를 둠으로
박자로 하모니를 이루어 사기를 높인다. 바하의 고전 음악은 아폴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20세기의 거장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와 요요마의 연주를 들은
적이 있는 사람들은 종종 그러한 경험을 영원의 현현으로, 마치 신이 음악을
통해 나타난 것처럼 묘사한다.
  절제와 아름다움이 아폴론 음악의 정수이자 효과이다. 그것은 육식
동물마저도 길들일 정도로 사나운 것들을 모두 억제한다. 성경을 보면,
괴로와하는 사울 왕이 젊은 양치기 다윗에게 고통을 덜 수 있도록 자기를 위해
현을 타라고 명했을 때 다윗은 아폴론이 이런 효과를 가지도록 연주하던 음악을
연주했었을 것이다.
 
법과 질서의 수호자
 
  아폴론은 도시들에 법적 장치들을 부여하였고, 법률을 해석해 주었으며
질서와 절제를 주창하였고 공동체가 함께 일할 수 있는 구조와, 다툼을
진정시킬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였다. 입법자와 음악가는 둘 다 이 원형이 갖고
있는, 질서와 형식에 대한 본능을 표현한다. 아폴론은 흔돈이나 소란 상태,
음악에서뿐만 아니라 행동에서도 불협화음을 내는 선율이나 정열적인 열정
상태를 거북해 한다. 아폴론은 박자와 템포를 통해서처럼 규칙과 법칙을 통해
형식과 질서를 마련하려 한다.
  아폴론이 지닌 안녕 질서의 면은 당위성을 분명히 하고 있다. 법령을 통해
아폴론은 허락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정하였다. 따라서 아폴론
법률가는 동기나 특수한 상황을 이유로 내세우기보다는 헌법이나 원칙들과
선례들을 적용할 수 있는 판례들을 내보이기를 좋아한다. 미국 연방 대법원
판사후보 추천인들이 자신들이 지명한 남`여성들이 지니고 있는 아폴론 기질을
강조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정의와 공정함이 보장되는 법규 아래서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갈 때 를
마음 속에 그리는 이상주의자와, 무엇이 모든 이들에게 옳으며 좋은 것인가를
알고 있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현대의 <법과 질서>의 옹호자는 이러한
권위 의식을 아폴론 원형에서부터 이어받고 있는 것이다.
  권위뿐만 아니라 의미는 원형에 밑바탕을 둔 일을 하는 것에서 나온다.
법률가나 법 집행자는 - 음악가나 우주 비행사와 똑같이 - 이러한 것을
내면에서 느끼며 자신의 일에 아폴론이 성스런 차원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냉혹하기 그지 없는 자
 
  아폴론 원형은 여러 가지로 남성에게 감정적으로 냉정하게 될 수 있게 해준
다. 그는 목표 지향적인 궁수 또는 예지자로 미래에 살 수 있으며 개인적인 감
정에 매달려 있기보다는 상황을 뛰어넘어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아니면 모든 경험을 영적인 교훈으로 여김으로써 자기의 감정적인 문제점과
대인 관계의 문제점을 넘겨 버릴 수 있다.
  사물을 자신의 즉각적인 감정적 반응과 거리를 두고서 합리적이고 영적으로
보는 능력은 그러므로 아폴론 원형의 일부인 것이다. 이러한 재능은 아폴론 같
은 사람이 지적인 이해와, 영성적 실천을 통해 스스로를 이런 감정으로부터 멀
찌감치 떼어놓고, <하늘 쪽으로 감>으로써 또는 스스로에게 자신들의 교훈을
반복함으로써 자기만의 감정적 고통에 대응할 수 있게 해준다.
  신비의 북방 정토에 사는 사람들과 연관을 맺지 않을 수 없는 아폴론 남신에
관해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 딴 세상 사람인 듯한 요소가 있었다. 신화
학자 오토에 따르면 아폴론이 태어났을 때 제우스는 그에게 델피를 향해서가
아니라 전생애 동안 그가 같이 지낸 북방 정토인들을 향해 달리는, 백조가 끄는
마차를 주었다고 한다. 그 후로 그는 주기적으로 일 년 중 얼마간은 <이
축복받은 빛의 나라>에 가서 지냈다. 요즈음 빛의 세계를 강조하는 새로운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아폴론과 북방 정토인의 이미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오늘날 그리스인들에 의해 북방 정토에 사는 사람들의 땅으로
마음 속에 그려지는 <산 너머에 있는 북녘 땅>은 황소 자리 또는 다른 자리로
알려져 있다. 아폴론이 지닌 북방 정토적인 면은 하데스가 지닌 저승 세계의
요소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심리적인 차원에서 보면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은신처가 별들의 세계인지, 저승 세계인지, 아니면 고등 수학의 세계인지 그
결과는 마찬가지다. 결국 남들로부터 고립되어 있다는 감정을 갖게 되고
시기적으로 보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형제들
 
  형제로서 아폴론의 역할은 전령의 신인 남동생 헤르메스와 사냥과 달의 신인
누이 아르테미스와의 관계에서 강조되는, 형제간의 다툼과 우정이 공존하는
가정을 나타낸다.
  신화에 나오는 여러 사건들은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연결하고 있다. 먼저
태어난 아르테미스는 아폴론을 출산하느라 고생하는 어머니 레토를 도왔다.
나중에 레토는 니오베에게 받은 모욕을 앙갚음하느라 둘을 불러냈다. 앞서
말한대로 아르테미스가 사냥꾼 오리온을 사랑하는 것을 질투한 아폴론은
그녀에게 약을 올려서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를 죽게 하였다. 아폴론과 남동생
헤르메스 사이의 경쟁심도 만만치 않았다. 헤르메스가 먼저 아폴론의 소떼를
훔쳤는데 그 대가로 아폴론은 그에게서 수금을 건네받았다.
  형제 및 사랑받는 맏형 원형으로서 아폴론은 남성들로 하여금 집단을 위해
노력하는 일원이 되게 한다. 그는 협력적인 남성의 역할을 잘해 낸다. 그는
원형상자신의 왕국을 필요로 하는 아버지 또는 왕인 남성처럼 원한을 품거나
안달하지 않는 부사령관이 될 수 있다. 그는 또 경쟁 상대인 여성들과 같이
일하거나 그들에 대항하여 경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경쟁자로서 아폴론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정치에서 타협에 참여하며 대개 원한을
품지 않는다. 그는 감정적으로 흔들림이 없기 때문에 게임을 하듯이 책략을
부릴 수 있으며 감정적으로 게임에 휩쓸리는 남들을 점잖게 대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는 최정상 자리를 차지하지는 못한다. 그는 신중하게 보여서 남들이
그를 최고 책임자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아폴론은 제우스 다음으로 중요한
남신이었다.
 
비영웅
 
  사내답고 기품 있는 풍모로 영웅처럼 보이는 아폴론은 실제는 그러한 것과는
정반대되는 인물이었다. 특히 그는 트로이 전쟁에서부터 서부 카우보이 영화에
나오는 총격전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화 속에 등장한 영웅들과는 달리 싸움에
말려들지 않았다. 화를 내는 포세이돈에 대해 아폴론은 조용하게 다음의 말로
응수하였다. "나무잎처럼 지금은 우거져 있지만 곧 시들어 죽어 버릴, 하찮은
인간들을 위해 만일 내가 싸울 것 같으면 나를 사리 분별도 못하는 자가 되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 또한 누이 아르테미스가 그를 겁장이라고 놀려댔을
때도 그는 여전히 싸움에 말려들지 않았다.
  게다가 아폴론은 영웅들에게 적대적이었다. 아폴론은 피티아의 신탁을 내려
영웅 헤라클레스의 도와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였다. 또한 그는 가장 유명하고
사랑을 받았던 그리스 영웅인 아킬레우스와 맞섰다. 아킬레우스는 발뒤꿈치에
화살을 맞아 죽었다. 발뒤꿈치는 스틱스 강물에 씻지 않았던 부분이어서 가장
상처를 입기 쉬웠던 것이다. 몇몇 설화에서 그를 죽인 것은 아폴론이었는데
파리스로 가장하였다는 설도 있고 자기 모습을 하고서 그를 죽였다는 설도
있다.
  아폴론은 분별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신체적인 위험을 피하며 감정 때문에
짜증을 내지 않으며 관찰자가 되기를 좋아한다.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나가야
할 때 어쩌면 군사령관 중에는 아폴론 같은 이들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
마도 수많은 아폴론 사령관들이 국방성에서처럼 성공했다는 조직 남성들 사이
에서 지금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요즈음처럼 전쟁 게임들을 생각
해 내고 여러 선택권과 계획들을 고려하고 궁극 무기가 컴퓨터에 붙어 있는 단
추 몇 개를 누름으로써 원거리에서 쏘아지는 세상에, 머리를 쓰는 사령관은
아폴론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는 사람들을 선동하는 열정과 충절 대신에 통계적
인 확률을 고려한다. 이는 베트남 전쟁 때 로버트 맥나마나 장관과 일찍이 <젊
은 수재>라고 일컬어졌던 똑똑한 참모들이 지휘한 국방성에서 벌어진 일이었
다.
 
아폴론 살려 내기
 
  우리 문화에서 아폴론의 기질은 어린 소년 시절부터 강력하게 키워진다. 유
치원 시절부터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말로, 논리적으로 스스로 사고하
고 표현하도록 기대된다. 인과의 교훈은 과학에서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반복된
다. 장차 더 나은 계층에 이르기 위해서는 오늘 좋은 성적을 거두고 좋은 인상
을 가져야 한다. 대안 학교들을 제외한 모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보통
아폴론의 가치와 특성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아폴론의 자질을 활성화시키는 것에 많은 강조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
하고 다른 원형이 그 사람을 지배한다면 의식적으로 아폴론의 특성을 활성화
해야겠다는 필요성은 성인이 되어서야 일어날 수 있다. 아폴론의 특성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시간을 편성하거나, 예산을 세우거나 또는 조직적으로
일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도움이 필요하다. 필요로 하는 도움은 이력서를 쓰는
것과 같은 좀더 특수한 것일 수 있다 아폴론의 영역에서는 어떤 업무든간에
교육과 훈련이 성공으로 이어지기 쉽다. 전문가라고 한다면 늘 어떤 것을
체계적으로 배우는 법을 가르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폴론 남성
 
아폴론을 닮은 남성은 대개 출세가 별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남
들로부터 인정을 받아내고 성공을 거두게 하는 특질들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가 맺는 관계들과 내면 생활에서 여러 문제점과 결함이 생기기도 한다.

유년기
 
  아폴론 어린 아이는 대개 (신화에서 그런 것처럼) 성격이 명랑하다. 전형적으
로 그는 태도면에서 외향적이어서 호기심이 많고 캐묻기를 좋아하며 세상을
둘러보기를 좋아한다. 그는 등에 업힌 아기처럼 높이 들어올려지는 것을 좋아
한다.
  아폴론은 자기 주변에 관한 정보를 수집한다. 그는 사물이 어떻게 존재하는
지 또는 누가 무엇을 하는지에 관심이 많다. 그는 사물의 이름을 알고 싶어한
다. 그는 결코 몽상가가 아니기 때문에 환상이나 상상 속의 놀이 친구 또는 상
상된 괴물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유아원와 유치원에서 그는 소년들 가운데 하나이거나 무리 중의 하나이며
형제애가 두터운 사귐성이 좋은 아이로 사이좋게 지내며 리더가 되기도 한다.
남들은 자주 그가 제일 좋은 친구이기를 바라지만 그는 사랑스럽고 각별한
친구를 갖지 못하기 일쑤다.
  그는 여러 리틀 리그 경기에서 재능을 보인다. 그가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
다떤 훈련을 통해 그것을 향상시킬 것이다. 그의 재능이 다른 곳에 있다고 해
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는 시계처럼 정확하여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그래서 숙제를 하
고 음악 레슨을 받고 신문 배달을 하고 (보이 스카우트의) 유년부원이나
(성당의) 복사일 모두 제각각 그의 관심을 끈다.
  그가 겉에서 보이는 것처럼 실제로도 품행이 좋은 녀석이라고 해도 - 그는
흔히 <곧장 날아가는 화살>로 생각된다 - 말썽을 피우지는 않는다고 해도
그에게 말썽을 일으키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른
소년들은 거칠고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나쁜 짓을 일삼고 분수를 지키지
못했을 때 고생을 자초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폴론 소년은 다르다. 그는 그런 결과를 생각하고 스스로를 경계한다.
 
부모
 
  아폴론 남신은 나중에 태어난 쌍둥이였으며 레토는 그를 낳느라 아흐레 낮과
아흐레 밤 동안 산고를 겪어야 했다. 큰 힘을 들인 뒤에야 그가 태어났고
"레토는 그가 만든 아들이 힘이 센 궁수였기에 행복해 하였다."델로스 섬의
아폴론에게 보내는 호메로스의 찬가에 나오는 그녀의 말은 아들이자 상주를
<출산하는 데 성공>하고 나중에는 아폴론 아들들의 공로로 정당함을 인정받은
여성들의 말을 반향하고 있다.
  여신은 그러한 호된 시련을 치르면서 지친 나머지 그를 돌볼 수 없게 되었
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아폴론은 "어머니의 젖을 먹지 못했다. 그 대신에 테미
스가 손수 (그에게) 신주와 사랑에 넘치는 신찬을 아낌 없이 주었다." 아폴론이
아주 어렸을 적에 먹은 음식물은 테미스가 그에게 준, 신들의 음식이었다.
테미스는 올림포스 이전 시대의 예언의 여신으로 나중에 아폴론이 신탁을 내릴
수 있게 된 것은 그녀의 덕분이었다. 아폴론 남성에 비견되는 것은 몸으로
표현을 하지 않는 어머니를 가진 일이었다. 그녀는 젖먹이 갓난애가 <대지의
어머니>에게서 경험하는 어머니와 하나가 되는 느낌을 주지 못하였다.
  애초부터 아폴론은 자기 생의 임무를 다음과 같이 밝힌 적이 있다. "나는 제
우스의 정확한 뜻을 인간들에게 알려줄 것이다." 부모의 인정을 받으면서
자라게 될, 아버지의 아들이 바로 그였던 것이다. "또한 명석한 두뇌, 번개같이
빠르게 이곳 저곳 안 가는 곳이 없는 발, 정성을 기울여 짠 겉옷들은 그에게 잘
어울리는 것들이다. 황금 머리칼을 가진 레토와 현명한 제우스는 불사신들과
같이 뛰노는 사랑스런 아들을 바라보면서 기뻐 어쩔 줄 몰라 한다."
  아폴론 소년은 특히 전통적인 아버지에 의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받기
쉽다. 아폴론 소년은 부모의 긍정적인 반영물이자 성공작이며 성취에 가치를
두는 문화에서 업적을 달성한 자이다. 부모의 기대와 사랑을 한몸에 받는 그는
"명석한 두뇌를 타고 났다." 이것은 아폴론 소년, 특히 가문의 전통을
계승하기로 기대되는 가부장제 문화에서 맏아들의 전통적인 위치다. 곧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아폴론 소년이 승자가 되는 것 그리고 그가 행하는 것에 대해 사랑과 인정을
받는 것은 유별날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인생(또는 경쟁)의 단계마다 역시
일을 아주 잘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때 그는 남을 앞지르는 데서 큰 기쁨을
느낀다. 또 그는 더 이상 자기 반에서 선두 자리를 지키지 못할 수도 있고 팀의
스타 쿼터백이 아닐 수도 있다.
  이제 심리적인 문제점들이 나타난다. 부모는 그가 자기들을 위하여 잘해
내기를 얼마나 바라는가? 그는 사랑을 받고 있는가, 아니면 그가 얻은 사랑은
실제로 성취와 연결되어 있는 것인가? 자신의 가치 기준이 오로지 최후의
성취에 달려 있는가? 패배는 그를 황폐시키는가? 만일 그렇다면 보통은
명랑하게 웃고 있는 표정을 지으면서 위협받고 있다는 느낌과 그 때문에 생겨난
적개심을 감출 것이지만 속으로는 미심쩍게 여기거나 이의를 제기한다.
  때로 아폴론 소년은 사실상 그를 자기 분신이기를 바라는, 자기애가 강한 부
모를 둔다. 그들은 그가 <승리를 거둘> 때 기분이 좋아지며 그가 자신들을 잘
나타내기를 요구한다. 그러한 소년은 아주 무거운 부담을 안고 있다. 이기고자
하는 그의 의지는 그를 경쟁자로 만들며 부모의 조건적인 사랑을 얻기 위해 이
겨야 하는 필요성은 생산적이지 못한 걱정거리를 그 상황에 보태 줄 수도 있
다. 연습할 때는 잘하다가도 실전에서는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
게 된다.
  예외적인 능력과 아폴론적 인간성 모두 청소년에게서 보일 때 그가 자신이 될
수 있는 인물 - 체스 선수, 음악가, 수학의 천재, 의사, 법률가, 궁수, 과학자,
그리고 인간 - 이 될 것인가 여부는 부모와 선생에게 크게 달려 있을 것이다.
예외적인 재능과 굉장한 열의를 가진 아폴론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은
학습이 일종의 마스터해야 되는 경기일 때, 자신이 하는 일의 전문가가 되고 그
일을 사람하는 것이 큰 만족을 줄 때다.
 
사춘기와 청년기
 
  그가 얼마나 훌릉한 <궁수>인지 하는 것은 성인으로 접어드는 시기에 주제
거리다 그가 능력이 있고 불안 때문에 방해를 받지 않는다면 그는 계속적으로
자기가 지향하는 목표물에 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좋은 성
적, 학급의 직책, 명예, 상, 장학금 등은 토두 청년 아폴론들에게 돌아갈
상이다. 만일 그가 하층민 출신이라면 그는 호레이쇼 앨저(남자 신데렐라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 호레이쇼 앨저는 19세기의 미국 소설가로 Rags-to-riches
story, 즉 누더기를 두른 소년이 입신 출세하는 대중 소설을 썼다, 옮긴이
주)란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그는 열심히 일하며 자기 시간을 잘 관리하며
좋은 성적을 거둘 줄도 알고 특별 활동에 강하며 아르바이트 자리를 가지고
있다.
  실제 아버지가 제우스 같지 않다면 그는 아버지 제우스를 찾고 싶어한다. 그
는 원형적인 친화력, 사랑받는 아들이 되고 싶은 바람, 그가 세상에서 출세하는
데 도움을 줄 제우스 남성들의 인정을 이끌어 내는, 남보다 뛰어나려 애쓰고
남들을 기쁘게 해주려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
  남성들의 경우 생애 전반기의 과제라고 할 수 있는, 직업 세계에서의 성공은
아폴론의 성취 욕구와 부합한다. 인생의 이러한 단계는 아폴론에게는 대단히
순조롭다고 하겠다. 사춘기는 대부분의 아폴론들에게 혼란, 반권위주의적 반란,
또는 신비적, 성적, 내적 열중의 시기가 아니다 - 적어도 남들이 보기에는
말이다.
  이 시기에 큰 문제점은 아폴론 남성이 심리적, 사회적, 지적 문제나 장애 때
문에 성공하지 못할 때 일어난다 학습 능력이 부족한, 난독증에 걸린 아폴론은
소망을 이루지 못해 크게 좌절하게 된다. 그는 체계적으로 일을 할 것이기
때문에 장애를 이겨 내는 데 성공할 수도 있다. 하고 싶은 것을 능력이 미치지
못하여 해내지 못할 경우에 그는 너무나 큰 내적인 분노와 좌절감을 겪게 된다.
단번에 한 가지 목표에 초점을 맞출 수 없게 되고 그렇게 해서 장애를 극복할
수 없게 된다.
 
작업
 
  아폴론 남성은 일할 때 두드러진 장점을 갖고 있다. 일을 잘해 내는 것은 그
에게는 쉬운 일이다. 그는 업무에 열중하고 정통할 때까지는 연습을 게을리하
지 않으며 자신이 하는 일이 최종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내다보
는 안목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자신과 외부 세계를 객관적으로 보게 만드는,
그가 세운 목표는 현실적인 것이어서, 계획에 따라 차근차근 진척시키면 된다.
  아폴론 남성들은 종종 교육 기간이 길고 장기적인 목표를 정하는 능력을 요
하는 직업 세계로 진출한다 의학계나 법조계가 아폴론적인 사고를 하는
남성들의 매력을 끈다. 법조계는 특히 잘 맞는다. 어머니(그녀가 오레스테스의
아버지, 아가멤논을 죽였다고 아폴론이 선동하자 오레스테스는 그녀를
죽였다)를 죽인 오레스테스에 대한 재판에서 아폴론은 분명한 피고측
변호인이었다.
  아폴론 남성은 공공 기관이나 기업 일에 잘 적응한다. 그는 동년배 집단과
경쟁적인 형제 관계를 키워 나가며 동년배 집단 내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해낸다. 그는 권위 있는 자리에 있는 남성들의 인정을 받으려 애쓰며 그들의
지시를 잘 수행한다. 덧붙인다면 여성들과 대등한 위치에 있는 요즈음 같으면
유능한 여성들과 원만한 대인 관계를 맺어 일을 잘해 낸다. 그는 목적
지향적이고 경쟁적인 아르테미스나 아테나 같은 여성들과 동맹을 이루기도
한다. 그는 이상적인 조직 남성인 것이다.
  아폴론 남성은 종종 정상의 자리에 오르거나 사업가로 성공하지는 못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권력이나 재화를 긁어모으는 추진력과, 제우스가 지닌 비전,
결정력, 무자비함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가부장제에서 원형적인
아들이다. 그가 정상에 오르는 열망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또 그에 이르는
도중에 성공이 이끄는 듯 보일지라도 대개 정상에 이르지 못하거나 일단 정상의
자리에 오른다 해도 권력을 강화하고 권위를 확장하지 못하여 쫓겨나고 만다.
  아폴론 남성이 지배적이지 않고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닐 때 일은 더 이상
전처럼 만족의 원천이 되지 못하며 그 대신 문젯거리가 된다. 아폴론 남성이
자신의 경쟁 수준 이상에 오르게 되어 더 이상 빛나는 스타가 아닐 때 문제가
발생한다. 그는 실패하거나 머뭇거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는 자기의
정력을 일에 쏟았고 다른 관심사를 키우는 일을 희생하면서 가족들 또한
자기들의 욕구를 그의 일에 맡겨 버리기를 기대하였다. 그에게 의미를 줄, 그가
의지할 기성의 대안이 없을지도 모른다.
 
여성들과의 관계
 
  아폴론 남성은 자주 독립적이고 경쟁심 많고 매력적인 여성에게 끌리는데
그녀는 굉장히 보완적인 상대이다 - 그래서 그들은 데이트를 하러 나가면
원형적인 맞벌이 부부, 도시의 젊은 전문직 부부처럼 보인다. 그는 또한 자기와
비슷한 여성과 같이 일하기를 좋아한다.
  종종 관계는 경쟁의 묘미를 가지고 있어서 그들은 운동 경기를 하거나 기술이
가미된 일을 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가지는 듯하다. 또 그들은 예술이나 음악
분야에 대한 관심사를 공유할 수도 있다. 일과 연루된 관계는 그들이 서로에게
탁월함을 보이도록 도전하게 하고 지지하기 때문에 제 기능을 잘 발휘할 수
있다.
  몸이나 감정보다 머리로 살아가는 아폴론 남성은 연애꾼은 아니다. 과연
그답게 여성들과의 관계에서 열정이 없다. 또한 그와의 관계는 감정적 깊이가
별로 없다. 그 이유는 그가 일상적으로 감정적 거리감을 유지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생애에서 여성은 그들의 관계를 형제-자매 관계라고
규정하고 직접적으로 또는 다른 누군가에 끌림으로써 그를 연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남신 아폴론의 운명이었다.
  누이 경쟁자는 아폴론 남성이 지닌 한 가지 가능성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정도를 벗어난, 적개심에 불타는 잠재력이 그의 숨겨진 모습일 수 있다.
우호적인 경쟁자적 자세를 유지하는 한편 그는 아주 치졸한 짓을 할 수 있다.
마치 아폴론이 아르테미스를 속여 그녀의 연인 오리온의 머리로 밝혀진
먼거리에 있는 표적을 맞추게 한 것처럼 말이다.
  시빌레와 카산드라를 사랑한 남신처럼 - 아폴론 남성이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비실재적이고 종종 그에게 깊은 감명을 받지도 않은 무녀
여성에게 이끌릴 때 적대자의 매력은 자석같이 끌어당기는 힘을 지닌 듯하다.
그는 그녀가 매혹적이며 욕구 불만에 차 있고 예언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많은 아폴론 남성들이 그들이 통제하려 애쓰는 그런 여성들에게
빠져든다.
 
남성들과의 관계
 
  아폴론 남성들은 대개 다른 남성들과 아주 잘 지낸다. 그들은 권위를 지닌
나이 많은 남성들을 우러러보며 그들과 맺는 관계에 가치를 둔다. 대등한 교환
관계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 그들은 협상을 잘하며 그들이 약속한 것을
잘전한다.
  그들의 경쟁심은 어떤 위치에서 남들과 관계를 맺는가를 스스로 평가하게
만든다. 가장 안락한 그들의 위치는 또래 집단에서 첫째 자리이거나 사랑받는
장남의 위치이며 이러한 위치에 이르려 애쓴다. 아폴론 남성은 외톨이보다는
팀의 스타가 되고 싶어한다 그는 기꺼이 남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며
자신보다는 덜 완벽한, 일군의 남섬들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즐긴다. 그렇긴
하지만 그는 보통 정규적으로 술을 같이 마실 친구는 못된다.
 
성생활
 
아폴론 남성은 애인이 별로 없다. 그는 쉽게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자기
중심이 강하기 때문에 매력적인 여성들에 의해 쉽게 정신을 못 차리게 되지도
않는다. 일상 생활에서 아폴론 남성은 에로틱한 생각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머리 속으로 그가 보는 여자들의 옷을 벗기거나 수음을 하면서
환상에 빠져 시간을 보내지도 않는다. 본능적이고도 성적이고 감성적인 차원은
흔히 그가 의식적으로 가장 덜 활성화한 면이며 대개 마음에 두지도 않는다.
  삽화적인 사건과도 같이 그가 별로 염두에 두지 않는 성욕이 생기는 수도
있다. 잠시 목표를 추구하는 능력이 성적 욕구와 결합되면 여성을 열렬하게
쫓아다닐 수도 있다. 만일 그녀 자신이 사랑에 빠져 있지 않다면 열렬한 그는
그녀와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공유된 깊은 교류의
친밀함이나 비언어적인 관능적 대화가 전제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쫓김을 당하던 다프네같이 느낄 수도 있으며 구혼을 받는 여성이라기보다 그가
소유하고 싶어하는 물건 같은 느낌을 가지기 때문에 그에게서 달아날지도
모른다
  몸이나 상상으로보다는 머리로 사는 아폴론 남성은 에로스의 영역에서는
풋나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성적인 매력이 밀려들었다 빠져나가는 것, 또는
몸과 몸이 부딪치면서 대화를 나눈다는 것(또는 마음 속에 있는 말을 주고 받는
것조차)에 대해 경험적으로 별로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를 일깨운 여성을 손에
넣은 뒤 애인으로서 <달아난다면>(아폴론 남성에게 전형적인 경우다) 그녀는
그가 <없을> 때 부정을 저지를 수 있다. 이런 유형은 갈가마귀가 코로니스의
부정을 아폴론에게 고해바친 것을 생각나게 한다.
  아폴론 남신은 또한 히아킨토스에 반하였는데 아폴론이 그와 함께 지내느라
델피를 버려두었으리만치 매력적인 청년이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함께 한 따
로 떨어질 수 업는 짝이자 연인이었다. 커플의 관계가 서로를 <비추는> - 한
사람이 연인에게서 자신을 보고 그를 사랑하는 것 - 전형적인 경우다. 나르킨
토스도 연못에 반사된 자신의 이미지와 사랑에 라졌다. 그렇지만 나르킨토스는
이미지와 가까와질 수가 없었기에 몸이 몹시 수척해졌는 데 반해 아폴론과 히
아킨토스는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그들의 관계는 아폴론이 시합에서 뜻밖에
히아킨토스를 죽이는 바람에 끝이 났다. 아폴론이 던진 원반이 스쳐가면서
히아킨토스의 머리를 쳤던 것이다.
  에로스는 아폴론 남성을 동성애 관계에 빠지게 만들었는데 초기의 관계는
아폴론-히아킨토스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서로에게 비추인 자아는 바로 자기
수용의 첫 표현이다. 합일감에는 자기 도취와, 남을 욕구 대상으로 제한하려는
노력이 있다. 경쟁심 때문에 또는 아폴론의 이기고자 하는 욕구와 자신의
우수성을 과시하려는 욕구가 다른 남성 안에 있는 감정들을 죽여 버린다면
<히아킨토스>는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그 관계가 깨질 수 있다).
 
결혼
 
  아폴론 남성은 분명히 <훌륭한 신랑감>이다. 남성들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어김없이 성경험이 없는, 수수한 젊은 여성들과 결혼을 하였다. 아폴론 남성은
대개 자기가 선택하는 신부를 얻는 데 성공하였다. 결혼은 대학과 첫 직장을
선택할 때와 똑같은 고려 속에서 이루어진, 인생의 한 단계였다. 열정과 충동이
결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좋은 결혼 상대인가가 중요하였다.
  역할을 고정시킴으로써 지탱되는 전통적인 결혼을 한 아폴론은 결혼 기간
동안 또는 전생애에 걸쳐 원만하고 안정된 생활을할 수도 있다. 특히 어머니
(원형적으로는 데메테르)가 됨으로써 자신의 가능성을 개인적으로 완수하는
동시에 지속적인 관계를 갖고 싶어하는 여성과 결혼한다면 말이다. 대법원 판사
스칼리아의 경우가 그러할 수 있겠다. 판사가 된다는 것은 힘든 일을 한다는 것
,정치적으로 연관이 된다는 것, 법의 이행과 동시에 감동을 주는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판결 등을 요구하며 아홉 아이들을 키우는 데는 별로 시간을 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폴론 남성들은 또한 전문직에 종사하는 도시의 젊은 맞벌이 부부들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의 아내는 논리적이고 이지적인 아테나를 닮았다. 그녀는
그와 마찬가지로 본능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의 결혼 생활은 그들
모두에게 아주 잘 <맞는다>. 각자는 상대방의 일정에 맞춘다. 그들은 집안을
사무실처럼 잘 꾸려나간다. 건강하고 규칙적으로 성관계를 갖는다. (흔히
성공적인 만찬회나 체육관에서의 좋은 연습 시합을 가질 때같이 긴장하고
만족한다.)
  그러나 아폴론 남성이, 형식보다는 실질을 원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감정적인 깊이를 바라는 여성과 결혼한다면 결혼 생활은 결코
원만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여성이 지닌 아프로디테 성격은 열정적이고
격렬하고 순간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살아갈 때 요구되는 장기적인
목표에는 별 가치를 두지 않는다. 그러한 결혼은 성장으로 이어지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불행으로 이어진다. 아폴론 남성은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면서 열정이
없는 결혼 생활에서 아주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이것이 그의 아내를 불행하게
만든다면 결혼을 지속하느냐 여부는 아내에게, 그리고 현실적이든 인지된
것이든 간에 그녀가 내리는 선택에 달려 있다.
 
자식
 
  아폴론 남성들은 대개 자식들의 인생에서 좋은 아버지이거나 중도를 지키는
아버지다. 그들 행동은 일관성이 있으며 공정하다. 그들은 공정한 기준을 세워
놓는데 그것들은 모토 같은 것으로 아이들이 그것에 따라 살아가게 한다.
  아폴론 남성이 자기 일에 몰두하기 쉬운 것처럼 거리감이 가장 흔한 문제점
이며 아내가 그의 참여를 요구하지 않는 이상 가정과 아이들 세계를 아내에게
맡겨 버릴 것이다. 그는 자식들을 품에 안고 귀여워하지 않는다. 그가 결국에는
아이를 안게 된다면(또 그렇게 하고 싶어한다면) 그것은 아내가 그와 아기가
유대를 맺을 때까지 (그에게 아기를 품에 안고 있도록)그의 팔에 아기를 넘겨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식들의 관심사가 그와 비슷하다면 또 자식들이 나이가 들어 그와 자기들
또는 그의 계획에 관해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거나 전문적인 관심사를 나누는
것과 같이 일을 함께 하게 되거나 실내악단에서 연주를 하게 된다면 아주
편안하고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만일 자식들이 겉에서는 볼 수 없는, 속
깊이 숨은 감정을 갖고 있다 해도 그는 그 사실을 모를 것이다. 또한 그들이
자기들  의 열망과 열정을 그가 이해하기를 바란다면 절망하기 십상이다. 다른
한편으 로 보면 그들은 그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보고 있고 일거수
일투족을 지 켜보기 때문에 만족해 할 수도 있다.
 
중년기
 
  아폴론 남성은 중년의 위기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멋지게 성공하리라는
문화와 가족들의 기대는 자신의 목표 지향성과 꼭 들어맞는 것이어서 그는
자기일에 헌신적이기 쉽다. 어쩌면 그가 깨닫지 못하는 상당한 심리적인 대가를
치르면서 말이다. 그는 밀어 제쳐 둔, 자신의 살아보지 못한 많은 부분들,
감정적으로 거리감이 있는 가족을 가지고 있다.
  중년이 되면 억압과 일의 페이스가 완화될 수도 있고 아폴론 원형의 지배도
종종 누그러진다. 또한 무시되고 거부되며 활성화되지 않은 다른 심성이 처음
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시기는 아폴론 남성이 자신의 한계에 부딪칠 때다. 그는 자신이 정상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그는 더 이상 금발 소년이
아닌 것이다. 또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
  또한 자식들은 이제 부재하는 아폴론 아버지에 대해 그를 또는 그의 가치를
거부하고 전연 다른 방식으로 살아감으로써 반항하기도 한다. 그들은 반항적이
되거나 성적으로 적극적이 되거나 분열적이거나 우울해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는 부모 노릇을 제대로 못한 실패자라는 현실에 직면할 수 있다.
  그가 감정적으로 소원하기 때문에 아내가 바람을 피우거나 (다른 남자와 연애
를 하거나) 그를 떠나 다른 사람에게 가버리게 되면 겉보기에 번듯하던 결혼 생
활이 깨지기도 한다. 죠지 부시에 관해 자주 언급되곤 하는 발언은 그가 여성
들로 하여금 그들의 첫남편을 생각나게 한다는 것인데 이는 실제로 일반적인
아폴론 남성들에 해당되는 말이다. 성 잘내는 모성적인 아내는 혼자 힘으로
자식들을 키우면서 무엇을 희생하였는지를 깨닫게 될 때 결혼을 위기 상태로
몰아가기도 한다. 번듯한 결혼 생활은 아내가 빈 둥지 우울증에 걸릴 때
중단되기도 한다. 결국 아폴론 쪽에서 볼 때 중년의 바람은 결혼의 위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심한 우울증이나 결혼 생활의 불화 같은 중년의 대 위기가 일어날지라도 이
시기에 별 변화를 려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배를 흔들어 댈 수도 있지만 아
폴론은 대개 아주 인습적인 용골을 가진 배 안에 있다. 그는 아주 깊숙이 빠져
있고 성적으로 전에 없이 흥미롭고 만족스러운 혼외 관계를 갖는다고 하더라도
대개 결흔을 본래 상태로 유지하라는 안팎의 압력을 느낀다.
  그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직장을 그만두거나 이직하거나 아니면 전혀 다른
일을 하도록 위협받을 수도 있다. 할일이 주어지지 않는데도 이상하게도 그가
격렬한 동요를 일으키기보다는 잠자코 있으면서 불만에 가득차, 만성 우울증에
걸린 채로 버틸 것이라는 점이다 그는 겉모습에 가치를 두는, 습관과 질서의
산물이다. 좀더 인간적인 완성을 이루는 일을 하기 위해 더 이상 애정을 갖고
있지 않은 직업에 딸린 위신이 손상되고, 좋은 이웃이 있는 집을 잃어버리는 것
또한 그냥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것들이다
 
노년기
 
  일상적인 선견 지명을 가진 아폴론 남성은 경제적 기반을 갖춘 상태에서 퇴
직을 맞는다. 만일 그가 사업체를 가진 아폴론이라면 그는 연금을 투자함으로
써 늘린다. 또 그가 노동자라면 퇴직할 무렵에 자기 집을 마련하게 된다.
  퇴직을 한 그는 정규적인 일거리를 찾을 것이다. 그는 활동적인 로타리 클럽
회원 또는 교회의 열성 신도가 되어 대개 퇴직 전만큼 바쁘게 지낼 것이다.
  그가 아폴론 본성을 유지하고 있다면 아마'자신을 불편하게 하지만 더 현명
해지게 만들 수 있는, 노년기의 심리적인 성장에 필수적인 부분인 자기 분석을
하지 않을 것이다.
 
심리적인 문제점들
 
아폴론을 닮은 사람들은 의사 소통의 문제, 친해지지 못함, 거부와 같은 감정적
소원함과 연관된 문제점들을 갖는다. 문제는 아폴론의 오만한 태도와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그것은 그가 감추고 있던, 적대적이거나 은밀한 것뿐만 아니라
자기 도취와 건방짐의 원인이 된다.
 
감정적으로 냉랭함
 
  태양의 신 아폴론은 멀리 떨어져서 지상을 내려다볼 때면 <모든 것을
초월하여> 있었다. 특징적으로 아폴론 남성은 연루되는 것을 피함으로써 멀리
떨어져 있는 자세를 유지한다. 감정이 갈등하게 될 때 그는 물러난다. 그것은
<싸울 만한 일이 못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트로이 전쟁 동안 포세이돈의
싸우자는 도전에 대응하지 않을 때 취한 태도이다.
  그의 간접적인 감정에 대한 교감은 또한 특징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그가 명
백하게 이해하지 못한 일에 관해 자문을 구할 때 신은 델피 신탁으로 말하였
다. 신탁의 모호한 메시지는 해석을 요하였다. 아폴론 남성과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또는 그가 그들에게 가깝게 있는 것을 허용한 사람들)은 자주 그가
드물게감정을 넌즈시 내비추는 비밀에 쌓인 언설을 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의미를 잘못 해석하면 그는 더 멀리 물러난다. 그에게서 뭔가를 알아내기
위해 애쓸수록 그는 더 냉담해진다. 명료함의 신과 비인격적 주체에 대해 아주
정확 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남성(예를 들면 아폴론 변호사)이
자기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며 자신에 관해 말한다고 해도 분명하지 않고
해석하기 어렵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는 감정적인 갈등을 겪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들과 영적인 합일을 이
루려 하지 않는다. 아폴론 남성은 남들과 친분을 돈독히 하기 힘들어 한다. 그
는 멀찌감치 서서 상황 또는 사람을 평가(또는 판단)하기를 좋아한다 그는 진
짜 누군가를 알기 위해서는 <친해져야> - 상처를 입을 수도 하고 감정을 줄수도
있어야 - 한다는 것을 잘 모른다. 남성으로서 그가 냉혹한 남신을 넘어서서,
본래의 자신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아폴론 원형을 극복해야 한다.
 
버림받은 연인
 
  아폴론은 남신들 가운데 책임감도 있고 믿음직스러울 뿐 아니라 가장 잘생긴
남신이었다. 태양은 언제나 때가 되면 떠올랐다가 저물곤 했다 그는 덕행을
강조하였으며 경구들을 자신을 모시는 신전 벽에 새겨 넣게 함으로써 살아있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그는 연애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카산드라, 시빌라, 다프네,
마르페사에게 채였다. 아폴론 남신이 갖고 싶어했으나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여성들은 아폴론 남성을 거절할 수 있는 부류였다.
  잘생기고 덕망 있고 믿음직한 아폴론 남성을 거부한 여성은 보통 그가 그녀
에게 필수적인, 깊이와 열정 또는 감정적인 친밀함이나 성적인 자연스러움과
같은 자질들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거부하는 것이다. 때때로 어떤 여성은
이렇듯 별난 아폴론 남성은 외모나 미모에 너무 집착하기 때문에 그녀가
늙게되면 같이 지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느낀다.
  마르페사는 인간 이다스와 아폴론의 사랑을 받았다. 제우스는 그녀에게
둘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하였다. 마르페사는 남신이, 나이가 들면 머리가
하얗게 될 그녀를 버릴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현명하게도 아폴론이
아니라 이다스를 선택했다. 은유적으로 말한다면 그녀는 현명하게도 변하지
않는 아폴론과의 관계보다는 시간에 따라 성장하고 변화하는 잠재성을 가진
<인간적인> 관계를 선택하였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아폴론은 카산드라에게 그의 사랑을 받아들인다는 조건으
로 예언술을 가르쳤으나 그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시빌라(시빌라의 신탁으
로 유명하다)도 아폴론이 준 예언 재능은 받아들였지만 그를 애인으로 받아들
이지는 않았다. 아폴론은 사랑을 자기가 제공할 수 있던 것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였던 것이다.
  아폴론 남성들은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감정이
풍부한, 보다 깊은 연계를 원하는 여성들에 의해 거절당한다. 아폴론 남성이
그의 경구대로 살거나 협정대로 살아가는 성실한 모습은 사랑이나 열정보다는
찬사나 존경을 끌어낸다. 이러한 사항을 알게 된 여성들은 그를 애초부터
선택하지 않거나 또는 무엇이 부족한가를 알고 나서는 애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자기 도취
 
  아폴론 남성은 천성적으로 가장 드러나지 않아서 가장 많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는 감정의 영역에 관여하기보다는 뒤로 물러나서 생각과 사물의 형태에 관해
추상적으로 생각하기를 더 좋아한다.
  그가 태어난 가계뿐만 아니라 타고난 성격과 문화가 그의 인성을 특징지운다.
이지적이고 감정이 없는 아폴론 남성은, 길들여지기를 바라지 않으며 상처 받기
쉬운 감정을 표현하는 남성들을 비난하며 경쟁을 장려하고 권력 획득으로
보상하는 가부장제 문화에서 살고 있다. 만일 집안에서 남자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문화의 통념을 강조할 뿐 아니라 진짜 자기 감정을 표현하고 인정하는
것을 저지당한다면,특히 그가 지적이고 잘생긴 경우 자기 도취적이 되는 것은
정해진 이치다.

잔인과 처벌
 
  아폴론은 음악 경연 대회에서 그에게 도전하는 실수를 저지른, 플루웃 연주
자 사티로스와 맞서게 되었다. 아폴론은 심판, 심사원인 데다가 수금을 거꾸로
든 채 연주할 수 있었다. 그는 마르시아스라는 사티로스가 플루웃를 그렇게
연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을 승자로 판정하였다. 대회의 협정은 승자가
패자 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폴론은 마르시아스를 산
채로 가죽을 벗겼다. 그것은 잔인하고 비인간적이었다.
  법적 권리 내에서 행해지는 이렇게 잔인한 성미는 남들에 의해 창피를 당하
고 지배를 당한 적이 있으며 이제는 공격자와 동일시되는 아폴론 남성의 비열
한 면이 될 수 있다. 그는 패한 경쟁자에게 자비를 베풀기는 커녕 냉혹하게 그
를 산 채로 가죽을 벗겨 낸다. 비슷하게도 아폴론은 카산드라에게 앞일을 내다
보는 재능을 주었으면서도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도록 명함으로써
카산드라를 벌하였다. 이러한 벌은 창조적인 구석이 있으면서도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그녀의 힘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일련의 비극을 예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중으로, 곧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언함으로써, 그
다음에는 그대로 살아감으로써 고통을 받았다.
 
독설
 
  아폴론이 태양의 밝기와 황금 절제의 예가 되는 한편으로 훨씬 덜 알려진
어두운 면도 갖고 있다 이러한 아폴론은 밤과 잘이 나타나서 죽음의 화살을
쏜다. 호메로스는 이러한 화살을 <날개 달린 뱀>이라고 불렀으며 케레니는 그의
독화살을 독뱀과 같다고 했다. "임상 의사는 이러한 독액을, 상처를 입힐
의도가 담긴 <독>설로 받아들인다. 그가 사랑하거나 대단히 존경하는 인물에게
그런 말들이 퍼부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들은 그에게 상처를 입혔거나
창피를 주었거나 또는 그의 기대대로 생활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절제를 하고 합리적인 아폴론 남성이 늘 억눌러 온 감정들을 풀어 내고
자기의 격정을 날려 버리게 되면 원초적(즉, 활성화되지 않은)이고 비합리적인
모 습이 드러난다. 그는 독액을 내뿜는 독뱀이 된다 적개심에 불타 누군가를
해치게 되는 경우에도 그의 긍정적 자아가 그 일을 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인
것이다.

거만
 
성공에 찬 인생을 사는 금발 소년인 아폴론 남성이 자기 능력을 훨씬 넘어서는,
비참한 결과를 낳는 일을 하겠다고 자처하기도 한다. 자신감에 넘친 나머지
자기를 신의 원형과 동일시한다. 그는 자기가 인간이라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폴론의 아들, 파에톤의 신화를 행하기도 한다.
  파에톤은 어머니에게서 자신이 아폴론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는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다녔으나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그는
아폴론을 찾아 나섰다. 아폴론은 자기가 아버지라는 것을 인정하고 파에톤에게
그 점을 더욱 분명히 해주려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겠다는 거역할 수 없는
약속을 하고 말았다. 파에톤은 하늘을 달리는 태양의 전차를 하루만 몰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동이 틀 무렵 파에톤은 자기 아버지의 왕관을 쓰고 전차에 올라탔다. 말들은
고삐를 잡은 익숙치 못하고 경험 엄는 그의 손길이 닿자 태양 궤도를 벗어나고
말았다. 파에톤은 날뛰는 그들을 제어할 힘이나 경험이 없었고 태양의 타오르
는 열기가 대지를 태웠다. 제우스가 벼락을 내려 그를 죽이지 않았다면 피해가
더 막심했을 것이다. 아들을 잃어버리고는 미칠 지경에 이른 아폴론은 태양의
전차가 제 궤도에 오르기 전에 하루 온종일 지구에 빛이 들지 않도록 하였다
  파에톤을 떠올릴 때면 나는 <국지>전을 치르는 데 원자력을 이용할 수 있다
고 여기는 남성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한 만심이 지구를 초토화시킬 수 있   
다. 대기 중에 떠다니는 재들은 태양빛을 가리우고 핵겨울의 어두움을 가져을
수 있다. 성공이 거듭될 때 사람들은 그러한오만에 운명을 건다 그가 어떤 분  
야의 전문가라는 이유로 다른 분야에서도 권위자가 될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
거나 또는 자기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자격이 있고 해낼 능력이 있 
다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
  아폴론의 전차를 몰 수 있다는 파에톤의 억지는 오늘날 인기 있는 심리학적
통용어로 말한다면 남들을 해치고 자신을 죽게 만든, <환각 상태의
자아>였다.이러한 문제는 형태가 좀 덜할 뿐 흔한 일이기도 하다.

남들이 겪는 어려움
 
아폴론 남성들을 사랑하는 여성들에게 문제가 발생한다. 대개 그에게는 관계의
형태나 외양이 깊이나 친밀감 이상으로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실 부인이 아닌 자>에 대한 무시
 
  아폴론 남성에 휘말려들어 있는 여성들은 그가 여성을 두 부류, 곧 조강지처
가 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조강지처>부류에 어울리지 않는 여성들에게 매료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유형 이상으로 그는 당위성의 지배를 자주 받는다.
  그는 자신을 길러 준 사람과의 관계에서조차도 인생의 감정적이고 본능적인
부분에 대해 낮게 평가하기 때문에 스스로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려 할 것이
다. 결과적으로 그는 여성을 업신여긴다. 마음으로 최종적인 선택을 내려야 하
는 순간에 있을지라도 그의 가치 기준이 형성되는 머리 속에 파묻혀 살아가는
남성에게는 온전한 마음의 선택이란 없다. 아내를 택할 경우 그는 여성을 그냥
보지 않으며 자신들이 부부로서 어떻게 보일까를 생각한다. 그에게 결혼이란
문화와 문명에 본질적인 하나의 제도다. 자신의 세계와 전체 세계에 질서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
  중년기에 접어 든 아폴론 남성은 (혼히 처음이자 유일한 사건인)혼외
관계를가지기도 한다. 그가 아내보다 그녀에게 더 마음이 가며 전에 없이
성적으로 열정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는 아내, 가정,
자기의 일상생활로 돌아가기 쉽다.
  아폴론 남성을 사랑하고 누구보다도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아는 여성이,
그가 일단 더 좋은 생활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자기 아내와 텅빈 결혼
생활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기와의 생활을 갑자기 청산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아폴론 유형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그는
그녀의 곁을 떠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가 남기고 떠난 여성은 그들이 맺은
관계를 슬퍼한다. 그러나 특징적으로 아폴론인 그는 자기의 상실감을 먼데다
두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체할 수 있다.
 
관계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
 
  객관적으로 아폴론 남성과 결혼한 여성은 별 불만이 없어 보인다. 그는
침착하며 믿음직하며 정확하다. 또 그는 모르긴 몰라도 열심이어서 집에 있을
경우 에는 집안일을 도울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좋게 본다. 그는 그들의
눈에는 성 공한 사람이며 성격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 아폴론과 결혼한 많은
여성들은 자 신이 아주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여성이 좀더 깊이 있고 인간적인 관계를 원한다면 문제가 된다.
그녀는 외롭다고 불평할지도 모른다. 그가 감정적으로도 소원할 뿐더러 일을
해야 하고 또 일에 전념하다 보면 자주 그녀와 같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스스럼 없는 행위 또는 열정을 원한다면 이런 남성은 그것을 제공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남성은 그의 내면얘서 다른 원형이 활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자 원하는 그녀는 실망하게 된다.
 
가감 저항기 효과 : 강도를 올리거나 내리기
 
  아폴론 남성과 결혼한 여성이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갈 때, 특히 그녀 또한
감정보다는 사고에 가치를 두고 목표 지향적이라면 점점 그를 닮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 모두 점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각자의 분리된 생활에
쏟게 됨에 따라 관계의 형태는 지속되는 한편, 감정적 간격은 커진다. 그녀가
점차 자신의 감정을 말하지 않게 될수록 자기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모르게
된다.
  그녀가 쉽사리 웃고 우는 여성이고 종종 자기의 감정을 잘 드러내는 사람이
라면 정반대의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무표정한 아폴론과 결혼한 여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더 극단적으로 되어감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그가 더 멀리
물러나면 날수록 비합리적이거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다. 그녀의 노력
은 자극적이고 대개는 성공하지 못한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거나 화를 내고 또
는 으름장을 놓거나 고발을 함으로써 그가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만들려고 애   
쓴다. 그러나 결과는 그가 더 냉정해지고 합리적이게 되고 더 멀어져 가는 것
이어서 그녀는 점차 자제력을 잃게 된다.
 
성장하는 길
 
아폴론 남성의 과제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정신의 경계를 넘어 성장하는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 완전해지려면 그는 마음의 문제들을 알고 자기 몸 속에
들어가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디오니소스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 주기
 
  아폴론 남신은 디오니소스를 위해 델피 신전에 방을 마련해 주었다. 겨울 석
달 동안 디오니소스는 그곳에서 숭배를 받고 의례를 받았다. 그리하여 아폴론
은 자기와 정반대 성격의 남신과 자기 신전의 경내를 공유하였다. 아폴론 남성
이 아폴론 원형을 극복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의 내면에 디오니소스를
위하여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분명한 사고를 하고 현실을 볼 줄 하는 아폴론은 왼쪽 두뇌의 작용을
신화적으로 표현한 것인 반면, 영혼의 합일, 신비적인 명정, 무아경의 환상의
신인 디오니소스는 오른쪽 두뇌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아폴론 남성은
의식상으로 자신의 두뇌의 왼쪽 절반만으로 산다.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뜨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격언은 아폴론 남성의 자기
정체감을 요약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사고 능력 외에 어떤 것이 인간을
정의하거나 또는 그에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델피에서처럼 아폴론은 디오니소스가 존중받을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한다.
아폴론 남성은 대개 디오니소스에게 자기 인생과 심성에 시간과 공간을
허락하기 전에 의식적으로 그러한 욕구를 붙잡을 필요가 있다. 그는 순간을
살아가고 감각, 느낌, 내면의 상상 또는 외적인 경험에 빠져드는 기회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디오니소스가 출현하게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아폴론 남성들이 디오니소스에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디
오니소스의 음악과 춤을 통해서이다. 아폴론은 이미 고전 음악을 통해 영적인
절정에 도달하였고 머리에서 맴도는 황홀경의 경지로 그를 몰아가는 음악의
힘을 알고 있다 대조적으로 디오니소스 음악은 신체 경험으로 인지되어 그로
하여금 자신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춤을 추게 하며, 본능적으로 반응하게
한다. 자기 몸이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며 음악이 그를 춤추게 하는
대로 느끼게 해준다.
  아폴론과 달리 디오니소스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처럼 연애를 한다. 아폴론
남성은 인생의 모든 다른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연애를 할 때도 목표
지향적이며 기교에 신경을 쓴다. 각별한 사이인 여성으로 하여금 오르가즘에
이르게 하는 법을 알고 있다면 그는 오르가즘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이
성감대에서 저 성감대로 곧장 옮겨다닌다. 연인으로서 아폴론은, 음악가가
자기가 좋아하는 악기로 특별곡 연주를 마스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행위를
마스터한다. 연습을 거듭하여 개선을 하고 심지어는 기교를 부릴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하나의 연기이기도 하다. 아폴론이 이 세계에서
디오니소스를 옆으로 제쳐 놓지 않는다면 아폴론 식의 성행위가 (규칙적인
오르가즘을 경험하기 좋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긴 하지만 부부의 성생활
경험은 어쩌면 영혼의 결합이나 감정적인 합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폴론이 시간을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든가, 소란을 피워서는 안된다거나
여러 다른 방식으로 스스로를 의식하게 된다면 디오니소스에게 성행위를 맡겨
둘 수가 없다. 남성이 자기의 연애법을 관찰하고 평가한다면 아폴론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연유에서 성전문의는 <즐기기>를 강조한다. 기쁨을 주는 것이란 자기
내면에서 또 스스로 감각적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서서히 발견해 가는 것
이라고 하겠다.
 
자기 속에 있는 여성을 풀어 주기
 
  아폴론의 격언 가운데 하나인 <여성을 지배하에 두라>는 말은 아폴론 남성 이
자기 <내면의 여성>에 대해 그러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융의 심리학
에서 아니마로 불리우는데 남성 속에 있는 여성성의 원형 - 그것은 또한 여신
으로 의인화될 수도 있다. 예일 대학교(아폴론 남성들의 보루) 전 교목 ,윌리엄
슬로얀 코핀은 <가장 해방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여성은 모든 남성 속에 있는
여성>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니마(여성적인 요소)또는 자기 속에 있는 여성은 융에게 있어서는 감정 및
상관성의 영역 같은 것으로 남성들 속에 있는, 대부분 무의식적인 여성적인 모
습이다. 아니마는 남성의 감수성과 친밀함, 이해력(남들에게 다가가고 그들을
받 아들일 줄 아는 능력)과 연관되어 있다. 나는 이것이 사고보다 감정의
작용이 더
많이 개발된 남성들에게는 그렇지 않지만, 상당수의 남성들에게 들어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성적인>감정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고려함으로써 아니마를 자유롭게 풀어 
주는 것은 아폴론 남성으로 하여금 자기 감정과 남들의 감정을 존중할 수 있게
해준다. 대지 및 모든 생명체와 연관되어 있다고 느끼도록 그의 마음 속을 털어
놓게 한다. 그것은 아주 냉정한 아폴론 남성으로 하여금 자기 머리에서 벗어나
가슴 또는 몸을 생각하게 한다.
  대부분의 아폴론 남성들에게 자기 속에 있는 여성적 요소 - 그의 아니마 - 는
머리로 살아가지 않으며 자신의 감정의 진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랑에
넘치는 여성들을 통하여 발전한다. 그들은 어머니, 누이, 친구, 연인, 또는
아내일 수 있다. 아폴론 남성은 자주 무의식적이거나 자기 중심적으로
처신함으로써 남들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 그렇지만 그가 그들에게 고통을
가져다 주거나 그들을 화나게 하지 않도록 충분히 마음을 쓴다면 감정에 귀를
기울이고 감정 상태를 알게 됨으로써 이같은 가치들을 말하는 ,자기 속에 있는
여성을 자유롭게 풀어줄 것이다.
 
겸손을 배우기
 
  햇빛 찬란한 아폴론인 남성은 집안에서는 총애받는 아들이며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가장 장래가 촉망되는 인성의 소유자라는 특유의 장점을 가지고
인생을 시작한다. 출세한 아폴론 남성은 특징적으로 자기가 성취하리라는
신뢰감을 갖고 있으며 자기가 성공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자신감은 이렇듯
자신의 업적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는 또 처한 상황, 성,
인성, 또는 지적인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출세하지 못한 남들을 탓할 수
있다 - 이것은 아폴론 남성들에게 전형적이다 그들은 남의 처지에 있는
자신들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 대법원장
윌리엄 렌키스트와 대법관 안토닌 스칼리아는 <낙오자들의 우는 소리를 못
참아하는, 자수 성가한 사람들>로 일컬어진다.
  아폴론 남성은 짝이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있다는 느낌을 실제로 느낄
필요가 있다. 상실감으로 괴로워해 보고 슬픔을 느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비로소 자신이 예전에 얼마나 거만했는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
진가를 인정하지 못했는지를 알게 된다 그가 겸손함을 경험으로 알기 위해서는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고 그 잘못에 대해 용서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그는 더욱
현명해지기 위해서는 나이가 들어야 한다. 그런 연후라야 인생이 그에게 자신과
남의 인성에 관해 가르침을 주는, 오만한 콧대를 꺾는 체험을 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야 아폴론 남성은 "모든 것이 과분한 환경이나 내가 받은
총애 덕이었어"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그 일이 내게 일어났다면 잘해 낼 수
있었을까?"라고 의아심을 품을 수 있게 된다.
 
동인으로서의 사랑
 
  아폴론 남성은 늘 그에게 기대되는 것을 해내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자신
이 실제로 그것을 하고 싶은지 아닌지 의문을 품어 보지도 않고서 말이다. 어
린 소년 시절부터 그는 규칙을 잘 따른 덕분에 사랑과 인정을 받았다. 원형의
특성 때문에 그가 규칙을 받아들이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아폴론 남성이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 자기가 되고 싶어하는 위치에 있는지
또는 자기 아내를 사랑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 의문을 품기까지는 인생의 절반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물론 중년의 우울증에 걸리게 되면 그러한 의심을 품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아폴론 남성이 사랑에 바탕을 둔 결정을 내릴 때 자신을 제한하는 원형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것을 극복하고 성장하게 된다 그는 모든 결정이 논리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아폴론을 넘어서게 된다. 이제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영역으로 나아간다. 그렇지만 아폴론이 가진 분별하고 평가하고 시일을 요하는
능력 그로 하여금 얼빠진 것과 사랑은 다르다는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다.
  아폴론 남성이 자기 마음을 좇을 때 사람이 된다. 그는 자기가 실패할 수도 
있고 상처를 입기 쉽다는 것을 알게 되긴 하지만 자기에게 <알려진> (합리적인)
세계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게 된다. 그는 위험을 감행할 수 있다. 그는 그를
가로 막았던 그리고 그를 외톨이로 지내게 하였던 감정작인 냉랭함을 내버리 게
된다.

제7장
헤르메스 : 전령의 신과 영혼의 안내자
          전달자, 책략가, 여행가
 
  그는 예기치 않은 것, 행운, 우연의 일치, 동시성의 신이다. 갑작스런 침묵이 
   방안에 감돌고 대화가 처지고 모입에 또 다른 차원이 끼어들 때 <헤르메스가 
  우리 가운데에 들어와 있다>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말했음 직하다. 사물이 고 
  정되어 있고, 완고하며, <움직이지 않는> 듯이 보일 적마다 헤르메스는 유동 
  성, 움직임, 새로운 시작, 그리고 거의 불가피하게 새로운 시작에 선행하는
혼    동을 끌어 들인다.
  - 아리아나 스타시노풀러스, <그리스의 신들>
 
  우리에게는 발명의 재주꾼, 무리의 인도자, 님프와 밤`잠`꿈의 요정인 그레이 
  스들의 친구이자 애인이 있다. 수금이나 플루웃의 신비롭고 달콤한 선율만큼 
  동성애자들을 더 잘 표현하는 것도 없으며 동시에 헤르메스가 갖고 있는, 막 
  연히 신비스럽고 매혹적이고 부드러운 요소를 잘 드러내는 것도 없다.
  - 월터 W.F. 오토, <호메로스의 신들>
 
  남신, 원형, 남성으로서의 헤르메스는 날랜 몸 동작, 경쾌한 마음가짐,
유창한 말 솜씨를 구현한다. 남성적 이미지나 은유로 날쌔게 움직이는 그는
경계를 가로지르며 평원을 쉽게 넘나든다.
 
헤르메스 남신
 
헤르메스(로마 이름 메르쿠리우스로 더 잘 알려졌다)는 신들의 전령이자 유창한
말 솜씨를 가진 남신이자 저승길로 영혼들을 인도하는 안내자이다. 운동 선수,
여행자, 도둑, 사업가의 수호자이다. 수금, 수, 알파벳의 발명가라 일컬어진다.
그는 <남신들 가운데 남성들과 가장 우정이 돈독한 신>이자 행운을 가져다 주는
신으로 알려졌다.
  헤르메스는 대개 청년으로 그려지곤 했다. 호메로스는 턱수염이 자라기
시작할 무렴의 그를 젊은 왕자처럼 생긴 것으로 묘사하였다. 신들의
전령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할 때 그는 때때로 양쪽에 작은 날개가 달린, 챙 넓은
여행용 모자를 썼다. 그는 샌들이나 신발에 날개를 달고는 카드케우스를
들었다. 대개 카드케우스는 두 개의 횐색 띠(또는 뱀)가 감긴 구부러진 단순한
지팡이, 곧 신들의 전령이 지닌 권위와 신성 불가침의 상징인 일종의 마술
지팡이를 나타냈다.
   헤르메스는 - 그의 이름은 <돌무덤>를 뜻한다 - 나그네들을 위한 이정표인
케른(원추형 돌무덤)으로 일컬어지는데 지나가는 사람마다 돌을 하나씩 얹여
놓았던 것이다 때때로 이 돌무덤은 고대에 길가에 흔히 있는 무덤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나중에 <헤르마>라 불리운 돌기등은 그리스인들의 집 앞에 서 있거나
재산의 경계를 표시하였다.
 
계보와 신화
 
  헤르메스는 제우스와 마이아의 아들이었다. 마이아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여신이었다. 그녀는 산 속에 있는 동굴에서 살았는데 제우스가 밤에 (헤라가 잠
을 자고 있는 사이 기분 전환을 위해 제우스가 바람을 피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동안) 그녀를 방문하였다. 마이아는 자기 어깨 위에 하늘을
이고 있던 티탄인 아틀라스의 딸이었다. 그녀는 밤 하늘에 떠 있는 자매 별자리
플레이아데스의 하나였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만히 있지를 못한 헤르메스는 아침에 태어나 정오에는
수금을 발명하여 연주하였으며 저녁에는 아폴론의 젖소들을 훔쳤고 밤에는 요
람으로 돌아가 천진 난만하게 놀았다. 헤르메스가 맞은 인생의 첫날은 그를 특
징짓는 핵심 테마가 드러난 서곡이라 하겠다. 갓 태어난 그는 대담하게 요람에
서 나와 세상으로 나가다가 자기 어머니의 동굴 바로 바깥에서 느릿느릿 기어
다니는 거북이를 발견했다 거북이를 가지고 무엇을 할까 궁리하다가 떠오른
생각을 행동으로 바로 옮기는 재주를 가진 그는 거북이를 난도질하고
겉껍데기를 가지고 두 개의 잗대 파이프를 붙들어매고 일곱 개의 줄을 잡아
매어 수금을 발명하였던 것이다. 헤르메스는 수금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기쁨과 사랑과 달콤한 잠을 부르는 음악을 만들었다.
  수금을 요람에 놓은 갓난아이인 헤르메스는 이제 고기가 먹고 싶어졌다. 또
다시 동굴 밖으로 나와 먹이를 찾아 헤매다가 이복 형제 아폴론의 소를 몇 마
리 훔쳤다. 어린 소 도둑은 풀을 뜯고 있는, 아폴론의 소떼를 발견하고 그 중
50마리를 떼어 놓고는 뒷걸음질치게 하여 뒤쪽으로 몰아 갔다. 그는 나뭇가지
모양의 신발을 신어 자기 흔적이 남지 않게 하였다. 그는 소떼를 몰아 그들을
숨길 만한 곳에 이르자 큰 불을 지피고(부싯 막대를 가지고 나뭇가지를 비벼
불을 피웠으므로 처음으로 불을 발명하었던 것이다) 소 두 마리를 통째로 불에
구웠다. 고기를 다 굽자 강에다 신발을 던져 버리고 재를 여기저기 뿌리고 자기
어머니 동굴로 소리없이 되돌아갔다.
  소떼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된 아폴론은 반대 방향으로 나 있는 듯이 보이는
자국을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화가 나서
마이아의 동굴로 가서 헤르메스에게 소들을 감추어 둔 곳을 대라고 하였다.
어린 헤르메스는 천연덕스럽게 행방 불명된 소떼에 대해 자기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잡아떼면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내가 소를 훔칠 정도로 강한
남자같이 보이나요? 난 아무일도 하지 않았어요. 난 잠을 자다가 어머니 젖을
빨다가 포대기에 싸여 있다가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고 있었을 뿐이예요.난
어제 태어났단 말이예요. 내 발은 물러서 다치기가 아주 십상인데다가 땅은
딱딱하잖아요." 또 헤르메스는 자기 아버지의 머리를 두고 자기는 소떼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다고 맹세를 했다.
  아폴론은 순진한 척하는 헤르메스를 보고 미소를 지으면서 헤르메스를
<숙달된 도둑같이 말하는 '간교한사기꾼'>이라고 불렀다. 나중에 제우스가
나타나자 아폴론과 헤르메스는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제우스는 진실을
가려 내고는 헤르메스로 하여금 아폴론에게 소를 어디에다 감추었는지 밝히라고
하였는데 그러한 헤르메스의 행동은 사실 제우스를 즐겁게 해주었다.
  아폴론은 수금을 갖고 싶은 나머지 어떤 것과 교환하기로 약속하였다. 이러
한 교활함 덕분에 헤르메스는 50마리의 소, 소몰이에 쓰는 손잡이가 구부러진
지팡이와 그에 걸맞는 신분, 부`금수에 대한 지배권, 사소한 예언술을 부여하는
세 잎사귀로 마무리된 황금 지팡이, 저승 영흔을 안내하는 사자임을 알리는 두
개의 흰색 띠 또는 뱀이 감긴 날개 달린 지팡이를 받았다.
  헤르메스는 전령의 신이자 다른 올림포스 신들에게 여러 유용한 서비스를한
남신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제우스의 분부대로 페르세포네를 그녀의
어머니에게 데려다 주기 위해 저승으로 갔다. 또 청동 항아리에 갇힌 아레스를
구해 냈고 제우스가 그의 허벅지에서 디오니소스를 출산하는 것을 도왔으며
아프로디테, 아테나, 헤라를 파리스의 심판대(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선택했다)까지 바래다 주었다.
 
헤르메스의 아들
 
  헤르메스의 여러 아들은 그의 성격을 이어받은 자식들이었다. 아우톨리코스
와 미르틸로스에게서 그의 가장 못된 기질들이 강화되었다. 아우톨리코스는 첫
째 가는 도둑이자 위증자로 젊은 헤르메스의 매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미르틸로스의 발명술과 반사회성은 전차 경주에서 그의 주인의 죽음을 가져왔
다. 경쟁자에 매수당한그는 전차 굴대에 있는 쐐기에 왁스를 발랐다
  도덕적이지 못한 판은 헤르메스의 유명한 여러 아들 중 하나로 염소 다리와
염소 뿔을 가진 데다 턱수염을 달고서 뛰어돌아다니며 변덕이 심하고 음탕한
성격을 가졌다. 판은 숲, 목초, 양떼와 목동의 신이었다 아들 에우도로스('잘
생긴 중여자')는 헤르메스의 친절한 면 - 즉 소떼를 모는 목동, 남을 돌보고
양육하는면의 확장이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믿음직스럽고 까다롭지 않은
목동 - 을 닮았다. 그의 가장 유명한 아들인 헤르마프로디토스는 헤르메스의
자웅 동체적이고 양성적인 특성을 반영하고 있으며 자기 부모 아프로디테와
헤르메스의 이름과 성적 특성을 가졌다.
  헤르메스는 숱한 염문을 뿌렸다. 아프로디테와의 만남만 빼고는 상대가
누구인지 상세하게 언급된 것이 없으며 헤르마프로디토스 말고는 다른 아들의
어머니들은 아무도 신화에서 주목받을 만하지 못하다. 헤르메스는 독신 남성의
신으로 생각될 수 있다.

헤르메스와 연금술
 
  연금술에서 헤르메스-메르쿠리우스는 <수은>, 사물 속에 슴어 있는 기질이
었다. 그는 모든 반대되는 것들을 통합하는 상징이었다. 금속이지만 액체이기도
하며, 물짙이지만 기운이기도 하고, 차가운 것이지만 불길 같은 것이기도 하며,
독이지만 치료제이기도 하다. "실제로 수은은 값비싼 금속에만 들러붙는다.
은유적으로 말해서 헤르메스는 여러분에게 영적인 금을 발견하는 길을 보여 줄
수 있다.
  연금술은 중세의 종교 재판소 시절에 번창하였다. 그 시절에는 로마 카톨릭
교회 밖에서 영적 진리와 신비적 체험을 찾는 노력은 낙인이 찍혀 이단으로 처
벌을 받았다. 헤르메스가 연금술을 발명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그
는 또 양성체와 마찬가지로 연금술로 표현한 성적인 은유의 주체이기도 했다
융이 <심리학과 연금술>에서 기술한 것처럼 연금술에 관한 기록 속에 숨어 있는
헤르메스는 의사 소통자였다 은유를 통해 그는 남성적인 요소와 여성적일
요소가 결합하려 애쓰는 신비롭고 심리적인 여행으로 영혼들을 인도하였다
 
카드케우스 : 헤르메스의 지팡이
 
  헤르메스는 끝에 날개가 달리고 두 마리 뱀이 감겨 있는 지팡이를 들고
다녔는데 이 지팡이는 그를 신들의 사자이자 영혼들의 인도자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헤르메스의 지팡이에 감겨 있는 쌍둥이 뱀은 여러 의미를 지녔다.
연금술사들은 뱀을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간주하였다. 헤르메스의 신비주의를
통해 남성적인 정신과 여성적인 영혼이 결합되는 것으로 보았다. 두 마리 뱀은
또 죽음과 부활이라는 쌍둥이 같은 실마리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가장 최근에는
그것들이 DNA 사슬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유전 정보는 DNA사슬을
통해 생명체에 전달된다 새로운 상징이든 고대의 은유이든 간에 헤르메스는
확실히 영역들을 넘나드는 전령의 역을 맡고 있다.
  헤르메스의 지팡이는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와는 달랐다. 아
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에는 뱀 한 마리가 감겨 있었다.

헤르메스 원형
 
헤르메스 남신처럼 헤르메스 원형은 긍정적인 가능성과 부정적인 가능성을 둘
다 갖고 있다. 발명의 재주, 원만한 대인 관계, 민첩한 사고력과 행동력은 일을
완수하거나 또는 속이는 데 창조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특질들이다. 헤르메스
는 의미의 전달자이자 어린아이의 구조자로서 분명히 긍정적인 원형이기도 하
다.
 
전령
 
  헤르메스는 올림포스와 저승 사이를, 올림포스와 이승 사이를, 이승과 저승
사이를 빈번하게 또 날쌔게 돌아다녔다. 그는 경계를 쉽게 넘나들면서 이
차원에서 저 차원으로 거리낌 없이 오갔다.
  이러한 이동성을 공유한 남성들(그리고 여성들)은 외교 분야, 공중 매체,
상업 분야에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들은 세계적인 교역자이자
전달자로 상 품`정보`문화를 이곳에서 저곳으로 전한다. 헤르메스에게는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또는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가는 일, 철의 장막을 뚫고
들어가는 일, 어느 외딴 곳을 처음 방문하는 일 등은 하루의 일과일 따름이다.
헤르메스는 사람, 또는 라디오`텔레비전`문학 작품을 통해 여행을 하기도 한다.
거래를 하고 돈을 벌고 결연을 맺는 것은 헤르메스형 사람들이 도전해볼 만한
일이다.
  유명한 옛 여행가들 가운데 (유럽에서 중국, 인도에 이르는 무역로를
개척한)마르코 폴로와 (여러 번의 변장을 거듭하면서 이슬람 지역의 국가들을
모험하다가 마침내는 메카에 이른) 리차드 버튼 경은 모험에서 즐거움을 찾고
여행가이자 문필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헤르메스처럼 될 필요가 있었다. 이는
위험을 무릅 쓰고 티벳에 가 그곳에서 신비에 대한 여행담을 쓴 알렉산드라
데이빗-닐에게도 해당되었다. 비일상적인 현실 세계를 탐험한 것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이는 문필가 카를로스 카스타네다와 린 앤드류로 각각은 체험담과 위험
천만했 던 일들, 또 의술을 행하는 아메리카 원주민 남성들과 여성들에게
도제살이를 하면서 얻은 지식들에 관한 책을 썼다. 헤르메스처럼 카스타네다와
앤드류는 일상 세계에서 영혼과 권능의 세계로 넘나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차원 저 차원을 넘나들었다.
  오늘날의 헤르메스는 국제 업무, 곧 다국적 기업체의 대표, 국제적으로 알려
진 순회 강연자나 여행 안내자의 일을 하기도 한다. 조약을 협상하든 자질구레
한 장신구를 거래하든 간에 헤르메스를 닮으면 닮을수록 설득하고 <기발한 자
금 조달 방안>을 생각해 내는 데 더욱 뛰어난 힘을 발휘한다.
  어떤 일이 불법 또는 잘못인지 아닌지를 걱정하는 것은 헤르메스에게는 주요
관심사가 못된다. 그는 잘잘못을 고민하느라 잠 못드는 일이 거의 없다.
그리하여 그는 마피아의 법률 고문이 되어 합법적 세계와 범죄가 들끓는 지하
세계를 쉽게 넘나들 수도 있다. 그는 일이든 협상이든 오직 성사시키는 것에
관심이 있을 따름이다. 창조적인 사고력은 그를 최고의 문제 해결사로 만든다.
 
책략가
 
  태어난 첫날 헤르메스는 자기 형 아폴론의 소들을 훔쳤고 발에 나뭇가지를
묶어 발자취를 교묘하계 숨기고 소들을 뒷걸음질치게 함으로써 거짓 흔적을
남겨 놓았다. 그리고는 짐짓 순진한 신생아인 척하면서 교활하게 속여 넘기려
하였다. 이러한 헤르메스는 영리하고 간교하며 변신 능력으로 특징되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책략가의 원형이다.
  책략가는 아메리카 인디언에게는 이리로 알려져 있다. 에스키모에게는 까마
귀로, 일본 사람에게는 잔꾀를 부리는 오소리로 알려져 있다. 그는 발명의
재능이 있으며 속임수나 도둑질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 자주 그는
총명하다는 것에 대해 비난을 받기보다는 찬사를 받는데 그것은 그가 무엇을
훔쳤는지 또 누구에게서 훔쳤는지에 달려 있다. 가난한 이들에게 주기 위해,
압제를 행하는 부자의 재물을 훔친 로빈 훗이라면 또는 인류에게 주기 위해
신에게서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라면 책략가는 영웅 대접을 받는다. 예를 들면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텔레비전 연속극 <도둑을 잡아라 To Catch a Thief>를
보면 로버트와그너가 근대적인 헤르메스의 역을 해내고 있다. 그의 역은
<상대를 알면 상대를 이긴다>는 원칙을 따른다. 와그너는 전과가 있는 매력적인
도둑으로 나오는데 자유 자재로 날쌔면서도 조용하게 몰래 들어가는 침입술파
카멜레온 같은 변장술을 좋은 데에 사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의 책략가는 있을 것 같지 않은 영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사
기꾼>에 가깝다 그는 훌륭한 말 솜씨로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구매를 하게 만
드는 파렴치한 장사꾼이거나 사람들을 속이는 대표적인 야바위꾼일 수 있다.
책략가 헤르메스는 매력적인 반사회인을 구현하는 원형이다. 그는 거짓말을
하거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갖는 데 대해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그렇지만 헤르메스의 책략가 같은 면이 꼭 부정적으로 사용되라는 법은 없다.
책략가 같은 사고력은 치료사로 하여금 남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으며 또한 직장에서 능력을 십분 발휘하거나
독특한 방식으로 또는 창조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울 수도 있다
 
경쟁하는 아우
 
  태어난 순서가 헤르메스 원형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 남신 헤르메스가
형 아폴론에 대해 갖는 관계는 이 원형이 갖고 있는 경쟁적이고 탐욕스런 면을
이해하는 열쇠다. 헤르메스는 세상에 태어나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자기
처지를 알아차리고 막바로 형의 물건을 훔친다. 헤르메스에 대응한 아폴론은
반대로 속임을 당해 화가 났다가 회유를 당하고 술수에 걸려 들었다. 두 형제
모두 결국에 가서는 물물 교환을 통해 서로에게서 기술이나 권력을 얻어 내긴
하지만 무에서 시작하여 많은 것을 획득해 낸 것은 헤르메스다.
  형보다 나중에 태어난 아우는 처음에는 아기가 지니는 매력을 이용하여
경쟁을 벌인다. 나이를 먹어서도 키가 더 작고 경험 면에서 어린 채로 남아
있게 된 그는 자기의 기지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린 그는 형을
힘으로 이길 수는 없다. 헤르메스를 원형으로 하는 아우는 자기가 불리할 때 몸
싸움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그는 전략을
써서 자기가 원하는 것, 형의 물건이든 특권이든 간에 그것을 얻어 낸다.
  <아우>는 스스로를 자리 싸움을 해야 하는 희생자로 여긴다. 케네디 가의
맏형, 죠셉 케네디 2세가 제2차 세계 대전 때 비행기에서 전사할 때까지 희생자
헤르메스의 역할은 바로 밑의 동생이었던 죤 F. 케네디의 몫이었다. 허약한 건
강 상태와 체력을 가졌던 죤 F. 케네디가 불리하였던 것이다. 그는 뛰어난
말솜씨를 얻으려고 노력함으로써 또 자기가 경쟁 활동의 장소를 세심하게
선정함으로써 불리한 점을 보완하였다.
 
안내자
 
  신화에서 헤르메스는 자주 남들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안내하는 일을 하였다.
헤르메스 프시폼포스로서 그는 죽은 영혼들을 저승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는 또
페르세포네를 저승에서부터 호위하여 그녀의 어머니 데메테르에게 데려다
주었다
  헤르메스는 <헤르마>짧은 기둥, 재산의 경계, 도로, 무덤, 모든 가정의 현관
에 서 있는 돌기등으로 상징되었다. 그리하여 헤르메스는 모든 경계를 넘나드
는 신일 뿐 아니라 경계를 표시하는 신이기도 했다.
  융 본석가인 머레이 스테인은 헤르메스를 중요한 행로의 신이라 부른다. 헤
르메스는 <이도 저도 아닌>심리적인 단계 - 특히 중년의 파도기 - 에 나타나는
원형이다. 그는 과도기의 공간에 출현하는 경계의 신이다(그리스어 limen 에서
나온 말로 문틀 또눈 문지방 밑의 공간을 말한다).
  종종 정신과 의사는 중요한 행로에 서 있는 영혼의 안내자 헤르메스의 역을
한단. 사람들은 중요한 사람이나 역할을 잃어버린 뒤에 따라오는 우울증에 걸려
있을 동안 또는 새로운 것과 마주할 때 갖게 되는 불확실성과 근심의 시기에,
또는 인생의 한 단계와 다음 단계 사이의 과도기에 도움을 찾는다. 일시적으로
정신과 의사는 헤르메스가 여행자들에게 했던 것처럼 여행 길에 있는 사람을
동반한다. 남자들을 돼지로 바꾸어 놓았던 마법가 키르케를 오디세우스가
만나려 했을 때 헤르메스가 했던 것처럼 정신과 의사는 때때로 사람들이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위험을 알아차리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는다. 헤르메스는
오디세우스에게 통찰력을 주어 키르케의 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해주었다.
  헤르메스 유형은 또한 정신(올림포스), 인간 생활(지상), 영혼(지하) 세계
각각의 의미와 그것들을 통합하려는 개인을 안내하며 그(또는 그녀)가 지금
무엇을 알고 있는지 나누고 가르쳐 준다. 각 차원들을 오가는 여행자
헤르메스는 지성 이라는 의식, 정신 세계(올림포스), 자아가 결정을 내리고
행동을 하는 세계(지 상), 그리고 집단 무의식 세계(지하 세계) 사이에서
이해하고 통합하고 교류하려 고 노력한다.

연금술사
 
  헤르메스는 납을 황금으로 둔갑시키는 것에 관심이 있는 비밀 기술, 곧 마음
밑바닥에 있는 것을 황금으로 변형시키고자 하는 정신적 심리적 탐구인
연금술의 아버지로 생각되었다. <연금술사>는 경험상의 의미(또는 '황금')를
찾으려 하며 변형적 체험들을 하려 애쓴다. 융은 헤르메스 원형의 이런 면을
남신의로마식 이름인 메르쿠리우스를 따서 메르쿠리우스 기질 Spirit
Mercuries이라고 부른다.
 
어린이 구조자
 
  헤르메스는 데메테르의 납치된 딸을 데려오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갔다. 그는
어린 신 디오니소스를 두 번 이상 구해 냈는데 생명을 구해 주고 해를 당하지
않도록 그를 보호하였다. 어린 소년 아레스도 헤르메스 덕분에 생명을 건졌다.
헤르메스가 구해 내지 않았더라면 겪었을 끔찍한 경험에 대해 의미를
제공함으로써 순진하고 상처 입기 쉬운, 또는 성스런 것을 구해 내는 원형 또는
은유다.
  나는 성인 환자들이 학대받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거나, 길을 끊어버렸거
나 또는 여러 시간 동안 물에 빠진 아이들이 공포나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헤르메스의 구원의 손길을 느꼈다. 설명의
메시지가 그들에게 당도하여 버틸 마음을 주었던 것이다. 학대받는 아이에게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예를 들면 "이 사람들은 내 부모가 아니야. 난 시험을
당하고 있는 거야." 포기하지 않는 아이에게 메시지는 "누군가가 올
거야"라거나 "난 (이대로) 죽을 순 없어. 난 쓸 만한 놈이잖아" 호된 시련을
겪으면서 아이는 메시지에 매달리게 된다. 메시지는 포기 상태에 있는 아이의
영혼을 구해준다.
   헤르메스 역시 우울증에 걸린 어른에게서 아이를 구해 낸다. 바로 헤르메스
는 지하 세계에 사로잡혀 있는 어른(또 다른 비유는 감옥 같은 항아리인데,
아레스의 청동 항아리, 또는 시인이자 소설가인 실비아 플라스가 말하는 종
모양의 유리 덮개같이 생긴 항아리)의 놀기 좋아하거나 믿기 잘하거나 상처받기
쉬운 부분을 풀어 주는 해방적인 체험 또는 통찰력을 제공하는 (내면의
자기뿐만 아니라)사람의 일부이기도 하다. 끝으로 헤르메스는 (어린
디오니소스가 나타내는) 신동 원형을 활성화하거나 내면화하고 있는데 그러한
면은 우리 각자 속에 숨어 있다. (디오니소스에 관한 장에서 좀더 충분히
논의될 것이다).
 
헤르메스 살려 내기
 
  외국 여행을 하거나 독서를 할 때 갖게 되는 정신과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세계를 향해 모험을 감행할 때마다 우리는 헤르메스에게 함께 있어 달라고
청한다. 이 원형은 우리가 만나는 사람과 사물 - 장소, 물질, 사람 - 사이를
스스럼없게 해준다. 헤르메스는 발견의 계기들을 열어 주고 동시적인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게 해준다 - 의미 있는 것으로 판명되는 <(우연의) 일치>, 우리를
가본 적이 없는 어던가로 데려가며 초자연적인 것임에 틀림없는, 뜻하지 않은
<우연한>사건들이 그것이다. 사람들의 사고가 특별한 여행 일정에 고정되어
있다면 헤르메스를 찾게 되는데 헤르메스는 그들이 언제 무엇을 보게 될지를
미리 정하며, 또 알고 있다. 그리하여 모험을 하는 태도로 무엇을 발견할지
모르는 채 매일매일을 내버려둔 채로 휴가를 가거나 심지어는 아무런 계획이
없는 날을 별볼일 없이 보내게 될 때 우리는 헤르메스에게 함께 가자고 -
우리의 일부가 되어 달라고 - 청한다.
  우리는 또 말할 기회가 있을 때 전달자, 전령 헤르메스와 접촉하게 되며 기
꺼이 <날개를 단다>. 헤르메스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깊은 또는
원대한 경험을 하게 할 수 있으며 사람들을 이 차원에서 저 차원으로 옮겨 놓
는, 전연 계획적이지 않은 말 솜씨이자 순간적으로 생기는 친분 관계와도 같다.
잘 짜이고 주석이 달린 연설문을 그대로 베끼기보다는 마음 속에 대강의
윤곽만을 갖고서 자연스럽게 말할 때 날개 달린 헤르메스가 우리와 함께 있어
주리라고 믿는다. 날개짓을 하면서 우리는 헤르메스의 창의력을 개빌하고, 주도
면밀하고 세련된 아폴론의 발표에서는 나오지 못하는 유동적인 방식으로 사물을
인도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하게 된다. 처음에는 용기를 필요로 하지만 자연스러워지는 연습을 여러 번
하고 나면 헤르메스게 대한 신뢰감이 싹트게 된다.
 
헤르메스 남성
 
헤르메스 남성은 약삭빠르다. 그는 어떤 생각이나 상황의 의미를 파악하고는
직관대로 잽싸게 행동한다. 종종 그는 이 사람에서 저 사람에게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또는 이 생각에서 저 생각으로 기품 있으면서도 활동적으로 옮겨
다니는,  <늘 활동중인> 신체적 특징을 갖고 있다. 그를 속박하려 드는 것은
수은을 붙잡으려 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일 수 있다.
 
유년기
 
  헤르메스 남신은 가장 조숙한 남신이었다. 태어나던 첫날부터 그는
활동적이었고 창조적 재능을 보였으며 속임수를 썼다. 유사한 특징들이
헤르메스 아이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그는 일찍 말을 하고 일찍 걸으며
일찍 사람이 된다. 아기 침대의 난간을 넘어 세상 바깥으로 나간다. 그는 모든
것을 탐색해보고 만져 보며 손이 닿는 대로 물건을 분해하며 잠기지 않은
문이란 문은 다열고 샅샅이 뒤진다. <과자가 든 단지에 손을 넣고 있는> 그의
모습은 아주 천진 난만하며 매력적으로 보인다. 알고 싶은 것어 많고 상냥하며
만사 만인에 대해 정말 관심이 많은 그는 나이와 성격을 막론하고 온갖 종류의
사람들과 잘어울린다. 본래 모습대로 호기심 많은 어린이로서 세상이 흥미
진진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학령 전 그리고 국민학교 1학년 시절은 어린 헤르메스에게 별 부담이 되지
않는다. 학교에서 그는 쉽게 배우며 자리에 조용히 앉아 좋은 공부 습관을
들여야 하기 전까지는 학교가 자기에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가 갖고 있는 문제점들 가운데 몇 가지는 유년 시절에 이미 천진난만하게
시작된다. 그는 이야기를 꾸며 내고 변명 거리를 만들어 내며 진실이
받아들여질 때조차도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다. 그는 <남의 물건>에
관해 배우 지 못하고, <손버룻이 나쁘고>, 갖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가질 수도
있다. 이렇듯 멋모르는 어린 시절의 행동은 점차 좀도둑이 되게 할 수도 있다.
그가 하는짓은 보통 악의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저지른 비행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으며 그가 하는 변명을 재미있어 하는데 이것이 그의 성격에 이롭지
못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역으로 그는 몹시 가혹한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데
그렇 게 되면 어릴 적부터 불공평하게도 나쁜 놈이라는 딱지를 달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부모
 
  헤르메스 소년이 순간적으로 꾸며 낸 이야기들과 못보던 물건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 부모가 어떤 반응을 보이냐는 중요하다. 훗날에 그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거나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행동을 하도록 그냥 내버려두기보다는
거짓말이나 거짓 행동을 들킬 필요가 있으며, 진실과 가장의 차이를 배을
필요가 있다. (그는 경계를 살피지도 않은 채 실제에서 상상으로 금방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 남의 재산과 사생활의 존중도 그가 배울 필요가 있는
가르침이다.
  헤르메스 아들이 홀어머니를 두었다면 헤르메스와 그의 어머니 마이아의 신
화가 실제 삶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 영리하고 남보다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소년이 일찍부터 자기와 어머니가 뭐든지 가지려고 한다면 그것을 얻는 법을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호메로스의 헤르메스 찬가>에는 헤르메스와 그의 어머니가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나오는데 헤르메스는 그들의 비천한 상황을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고
그녀가 정한 행동의 규범을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라고 어머니에게 분명하게
말한다. 인습적인 규율에 집착하는 어머니처럼 살지 않으려는 똑똑하고 야심만
만한 아들, 여전히 더 좋은 생활품들을 그녀에게 제공하려 애쓰는 아들과의 관
계의 본질을 포착하고 있다. 헤르메스는 아폴론의 소들을 훔치고는 밤이 되자
발끝으로 걸어서 마이아의 동굴로 되돌아왔다. 그리고는 살그머니 요람 속으로
들어가서는 순진한 아기인 척하였다.
 
그러나 헤르메스는
어머니를 속일 수 없었다.
여신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체 무슨 짓을 했느냐, 이 녀석아?
어디에 있다가
이 늦은 시간에야
뻔뻔스러운 낮짝을 하고 들어오는 거냐?......
헤르메스가 그녀 말에 현명하게 대꾸하기를
"어머니 이게 왜 제 탓이죠?
마치 머리로 그 많은 규칙들을
다 알고 있는 신동 취급을 하시는군요.
자기 어머니의 말을
그대로 좇는 신동 말예요.
어째서 제가
- 가장 간특하게 -
늘 당신은 물론이고
제 자신을 걱정하느라 바뻐야 하죠
우리는
당신이 바라는 대로
이대로 머물러 있지는 않을 겁니다.
모든 불멸의 신들 가운데
아무런 재능도 없고 기도도 받지 못한 것은
우리 둘뿐이잖아요!
 
  헤르메스 아들은 자기 어머니(와 자기 자신)의 인생을 더 낫게 만들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는 스스로에 대한 신뢰와 어떻게 하면 인생에서 가고자 하는
곳 에 이를 수 있는지 - 종종 비인숱적인 통로로 -를 볼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군데 얽매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헤르메스는 흔히 안정적이지 못하다.
그렇기에 집은 그의 어머니가 있는 곳이다. 그가 보기에 가장 적절한 상황은
그에게 오가는 자유를 주는 상황이다. 마이아(원형적으로 화로의 신인
헤스티아인 여성)처럼 내성적이고 소유욕이 없고 자부심이 강한 살림꾼이
헤르메스 아들에게 가장 편한 어머니다. 헤르메스 아들이 소유욕이 강하거나
애착이 강한 어머니를 두었다면 그녀 자신이 많은 어려움을 갖게 될 것이다.
특히 죄의식을 통해 그를 그녀에게 묶어 두려는 노력은 대개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헤르메스 남성은 나름대로 헌신적인 아들이며 어머니는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여성이다. 그가 결혼을 하지 않았을 경우 특히 그러하지만 결혼을
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헤르메스가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사실과 아폴론에게서 훔친 소들에 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척한다는 것을 제우스가 알아챘다고는 하지만 헤르메스를
몹시 사랑한 나머지 판단력을 잃어버릴 정도였다. 헤르메스가 자기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맹세하는 것을 듣고 제우스는 "더 이상 장난치지 말고 억센
소떼들을 감춘 장소가 어디인지 댈 것을"명하였을 뿐이다. 그러자 헤르메스는
군소리 없이 하라는 대로 했다.
  이렇게 확고하고 근엄한 제우스 같은 태도는 대부분의 어린 헤르메스
아들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운 좋은 그리고 보살핌을 받는 헤르메스
소년들의 예로 물건을 훔쳤다가 가게 관리인에게 사과를 하고 배상을 해야 했던
아이들을 들 수 있다. (마이아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마찬가지로 이들 아버지의
제우스 같은 태도는, 남성과 여성 모두가 <어머니 노릇>을 하거나 <아버지
노릇>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성을 막론하고 부모들에게 나타날 수 있다. )
  제우스가 처음에 헤르메스에게 했던 것처럼 비행 청소년 헤르메스 아들들의
부모는 <이중적인 의미>를 줌으로써 아들의 반사회적 행동을 독려하고 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기도 한다. 소들을 훔친 것에 대해 헤르메스의 거짓말을
듣고는,
 
제우스는
소떼에 관해
아무 것도 모른다고
시치미를 뚝 떼면서
나쁜 일을 꾸미고 있는
이 아이를 보고는
껄껄대고 웃었다.
 
  제우스의 흥겨운 웃음 소리는 헤르메스가 한 터무니 없는 거짓말과 거짓 맹
세를 인정한다는 반응이었다. 마치 그가 그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그런 일을
한 것처럼 말이다. 제우스는 나중에야 좀 단호해졌다.
  부모가 아이에게 <이중적인 메시지>를 줄 때 아이는 공공연한 메시지와는
다른 숨은 메시지를 받는다. 소아 정신 분석가 아델라이드 M. 죤슨의 비행
청소년들의 부모에 관한 연구를 보면 이런 예는 흔한 일이다. 부모는 행동을
나쁘다고 낙인 찍고 벌을 내리기까지 하지만(공공연한 메시지), 이루어진 일의
상세한 내용에 대해 어울리지 않게 웃거나 명명백백하게 끌리는 모습은
기뻐한다는 것을 암암리에 전군게 된다. 제멋대로인 어린아이는 분명히 부모를
위해 <연기를 한다>.그는 부모가 감히 하지 못하나 속으로는 칭찬해 마지 않는
흥분 또는 어쩌면 성적 혼란 또는 반사회적 행위를 대리 체험하게 된다.
 
사춘기와 청년기
 
  <잔가지가 휘어지면 큰 가지도 따라서 휘어진다>는 속담은 확실히 헤르메스
소년의 성장과 발달에 들어맞는 말이다. 사춘기와 청년기의 헤르메스 남성은
출세에 대한 인습적인 규범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생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에 관심을 갖지만 가고 싶은 곳에 무엇을 타고 가느냐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게다가 여러 관심사는 그의 길을 꾸불꾸불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그는 <한계를 테스트한다>. 그것은 경계를 쉽게 넘나드는 헤르메스를
따르는인간형의 젊은이에게 어울리는 경향이다. 이러한 한계들은 <세상 만물의
이치>일 수도 있고 통행 금지 시간일 수도 있고 아니면 <출입이 금지된>특정
파일 에 접근하기 위해 컴퓨터를 이용하는 법을 배우는 도전일 수도 있다.
  그는 혁신적인 사업이나 새로운 발명에, 또는 록 음악 그룹에서 연주를
하거나 메니저 일을 하거나 프로 야구 선수나 프로 골프 선수가 되는 데 좀더
많은 시간을 쏟기 위해서 고등학교나 대학을 중퇴하기도 한다. 헤르메스 남성은
성 적을 잘 받기 위해서 또는 남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이 경우라면
아폴론이나제우스의 기질이 필요하다) 일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가
성공한다면 일 자체가 그를 열광시켜 그의 발명 재주를 끄집어 낸 때문이다.
그가 해결한 문제 는 순전히 지적이거나 심미적인 것이 아닌 대신 상업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대학을 중퇴한 경력이 있는 스티브 에니악은 애플
컴퓨터를 발명한 사람으로 헤르메스의 여러 기질들을 갖고 있다. 자신이 창업한
신생 혁신 기업이 성장을 하고 협력 정신을 발휘하는 관리 기법이 도입되면서
에니악은 자신의 발명 재주와 새로운 투자를 다른 분야에 쏟아부어 코어
Core라고 불리는 세계적인 원격 조종 장치를 개발했다. 재능, 운, 창업 능력은
성공적인 헤르메스에게 전형적인 것이다.
  사춘기와 청년기의 또 다른 헤르메스 남성은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거나
이,직장 저 직장을 옮겨다니는 표본을 보이기 시작한다. 관심이 지속되지 않고
잠재적인 재능이나 능력이 기술로 발전되지 않는다면 최저 고용 상태에 머물러
있거나 영원한 떠돌이가 되어버린다.
  헤르메스 남성이 청년 시절에 보이는 사업가적 소질이나 범죄자적 소양과는
대조적으로 어떤 헤르메스 남성들은 이 기간 동안 영적, 철학적, 심리적
관심사를 깊이 파고든다. 이는 인도 힌두교의 정신적 지도자를 찾기 위해
화려한 직장을 떠났던 하버드 대학의 영민하고 젊은 심리학 교수 리차드
알퍼트가 취한 길이었다. 요즈음 람 다스란 이름으로 불리는 그는 영적 스승,
영혼의 안내자 헤르메스와 동일시될 수 있는 남성인 것이다.
 
직업
 
  헤르메스는 신들의 전령이자 저승 사자, 여행객들의 안내자, 말
솜씨`도둑`사업가`운동 선수의 신이었으며 수`알파벳`수금과 판 피리 등의 악기
발명가였다. 직업을 선택하고 또 일에 임할 때 헤르메스 남성은 남신과 닮은
점들을 드러낸다 헤르메스 남성은 대기업에서 한 분야에만 전념하는 옹색 한
전문가나 부품처럼 일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그의 독자성과 다양한 관심
사는 둘 다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그는 <원칙대로> 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약삭빠른 머리는 대안적인 방도와 해결책 또는 지름길을 찾는다. 어떤
분야에서 일하든지간에 그는 십중 팔구 기업가적인 태도를 가진, 창의력이
풍부한 만능 선수일 것이다. 그는 가장 중립적인 의미에서 기회주의자다. 어떤
사람이나 아이디어의 의미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주어진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이다. 여기에다가 그가 지닌 전달자로서의 능력은 그를 아주 유능한
세일즈맨이나 협상가로 만든다. 그는 여러 분야에서 나온 생각들을 교배시키는
자발적인 혁신자며 자기가 바라는 것을 완수하는 데 있어서 일상적인 한계들을
뛰어넘기도 한다.
  스팅으로 널리 알려진 고든 섬너는 현대판 헤르메스다. 그는 학교 선생에서
부터 록 스타, 작곡가, 폴리스 그룹의 리드 싱어에 이르는, 여러 일들을 아주
성 공적으로 잘해 낸다. 그의 앨범은 수백만 장이나 팔렸다.('동시성
Synchronicity'
은 심리학자 칼 융의 저작에서 따온 말이며, '기계 유령 The Ghost in the
Machine'은 철학자 아더 쾌슬러의 저작에서 따온 이름이다.)스팅은 록 스타에서
영화 배우로 변신하였는가 하면, 폴리스와 같이 그룹 활동을 하다가 <푸른
거북이의 꿈 The Dream of the Blue Turtles>이란 앨범을 내놓고 솔로로
전향하기도 했다.
  어떤 신문 기자는 스팅을 가리켜 "그는 늘 분주한 사람이다. 그는 가뿐한 차
림으로 여행을 하며 잠깐 잠깐 머물 뿐이다 ‥‥‥석달에 걸쳐 전연 다른 세 나
라에서 그와 마주치게 된다." 전형적으로 헤르메스는 분류 정돈되어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언제든지 그가 돌아다닐 수 있는, <밝고 어두운> 면을 모두
포함하는, 심신의 모든 영역을 자유로이 쏘다닐 수 있는 자유를 소중하게
여긴다. 나이가 많이 들었을 때 융 학파 분석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진
남성이라는 점에서 그는 융을 굉장히 따르는 사람처럼 보인다.
  <레코드>란 잡지에 실린 스팅의 말을 인용해 보자.
 
  여러분이 영국 신문에 난 내 아야기를 본다면 처음에는 금발의, 재주가 많은 
  잘생긴 미소년으로 알려졌다. 다음에는 학교 교사로, 아름답고 재능 많은
아내    와 아이 하나를 둔 사나이로서였다. 나는 운동 선수였고 마약을 하지
않았다.    그 다음 언론은 내가 사람들의 몸을 비틀리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다. 난 마    약을 했다. 그 다음에는 이런 악역을 하기 시작했고 갑자기
영국 언론에서 나    쁜 소년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내게는 대단한 일이었다.
내가 자유롭게 좋아하    는 일을 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영국의 언론들은 이제 완전    히 내가 누구인지 혼동하고 있다. 그것은 내게
썩 잘 어울리는 일이다. 어떤     때는 착한 아이이고 어떤 때는 나쁜
아이이다. 그게 바로 나다.
 
  <착한 아이, 나쁜 아이>란 식의 명명 또한 명백하게 헤르메스답다.
  헤르메스 원형은 훌륭한 정신 분석의가 되는 데 알맞는 기질을 제공한다. 여
행자의 동료 및 안내자인 헤르메스처럼 정신과 의사도 사람들의 심리 여행길을,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중년의 위기 같은 어려운 과도기를, 정신 질환 또는
아슬아슬한 상태를 내내 그들과 동행한다. 헤르메스가 어떤 사람 속에 있을때
그 남성 또는 여성은 스스로를 포함하여 사람 속에 있는 이타적이기도 하고
신비적이기도 하고 계몽적이기도 하며 평범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어둡기도
하고 적대적이기도 하고 정신 착란적이기도 하고 본능적이기도 하고
관능적이기도 하고 공격적이기도 한 모습들을 아무런 편견 없이 보게 된다.
이러한 재능은 헤르메스가 지닌 <붙임성 있는> 모습의 한 표현이다.
<헤르메스와 그의 자식들>에서 정신 분석가이자 저자인 라파엘
로페즈-페드라자는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헤르메스의 붙임성 있는 면을
내면화한다면 우리 속에 있는 헤르메스를 통해 다른 남신들에서 기인한
심리적인 콤플렉스를 잘 알게 된다"
  가장 특징적으로 말해서 어떤 남성 속에 헤르메스가 존재한다면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재능과, 쉽게 출세하는 데 도움이 되는 불임성 있는 태도, 그에게
크게 도움이 되는 자발적이고 적절한 반웅을 보일 잠재력 등을 가진다
헤르메스는 상업의 신이었다. 헤르메스를 닮는다는 것은 뛰어난 세일즈맨,
혁신적인 사업가, 멋진 섭외 전문가, 그리고 적절하다면 뛰어난 여행 안내자가
되는 데 도움이 된다.
 
여성들과의 관계
 
  매력적인 헤르메스 남성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한 여성의 삶에 나타나는 것처 
럼 보인다. 그는 비행기 옆좌석에 앉아 있기도 하고 파티에 참석한 전혀 예기
치 못한, 교외에 사는 주인의 옛 친구일 수도 있다. 또는 그녀의 차의 타이어가 
펑크나는 바람에 차를 도로 한켠으로 붙일 때 구조자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 
도움이 되는 사람이며 친절하다. 그의 말솜씨는 그녀를 사로잡는다. 그는
그녀가 책에서 막 읽었던 장소에 있다. 그에게는 모험적인 분위기와 불량기가
감돈다. 그녀가 결국에 가서는 좋은 남자를 만났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사실
그는 붙잡기 힘든 사람이다.
  전형적으로 헤르메스는 그녀의 인생에 언제 정착할지 예측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갑자기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그는 출장을 떠나
그녀에게 일이 길어져서 더 오래 있게 될 텐데 지금은 확실히 언제 돌아가게
될지 모르겠다는 전화를 한다. 아마도 그녀는 엽서를 받을 수도 있겠다. 그런
연후에 그는 사과 한마디 없이 다시 나타날 때까지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사라져 버린다. 헤르메스 남성들에게는 <안 보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해당된다.
  어쩌면 그는 제트기를 타고 유람다니는 부유층 헤르메스가 아니라 고향
도시의 헤르메스다. 그 유형은 같다. 그를 불러내는 심심치 않은 사건은 연구
과제일 수도 있고 프로젝트 또는 저녁과 주말 게임 계획으로 가득 찬 아마추어
리그 야구 시즌에 참가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전연 생각하지 않고 헤르메스 남성은 여자의 감정에 책임지지도 않고
그녀에게 충실하지도 않은 채 그녀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나가고 싶어한다.
  헤르메스 남성은 그에게 넋이 빠진 여자가 자신을 끄는 대로 사랑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에게는 그 일이 새로운 나라를 방문하는 것과 같은 것일 수 있다.
새로운 여성은 탐험하고 즐길 새로운 영토인 셈이다. 그는 얼른 여행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많은 헤르메스 남성들을 돈 주앙처럼 행동하게 만
들고,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날아다니는 꿀벌같이 보이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러
한 기질 덕분이다. 배우이자 미녀들의 유명한 연인인 워렌 비티는 헤르메스의
이러한 면을 구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헤르메스 남성은 자신에 대해 비현실적인 기대 또는 채울 수 없는 욕구를
갖지 않는 여성들과 잘 지낸다. 그가 와 있으면 그를 보는 것이 즐겁고 그가
다음에 나타날 때까지 소식을 들으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여자 친구들을 두었다.
그들은 서로 <가볍게 만나는> 관계로 지낸다. 그들이 가끔씩 주고 받는 전화,
쪽지나 공개 초대장이 헤르메스가 다시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친구 관계는 곧장 성관계를 나누는 단계를 흔히
거치게 되며 때에 따라서 재연되기도 한다.
  헤르메스 남성에게는 좀더 어둡고 이기적인 구석이 있다.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갖고 싶을 때 가져 버리는 행위는 부정적인
헤르메스의 특징들이다. 그가 원하는 것이 여자라면 그는 적극적으로 추행을
하거나 속이게 될 수 있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 나머지,
그녀에게, 만일 그녀와 결혼을 한다면 어떤 결과가 닥칠지 전연 생각하지도
않고, 그녀를 쫓아다닐 때 자기가 한 약속을 지킬 용의도 없으면서 거짓말을
일삼고 사람을 유혹하고 생각하기에 될 .성싶은 일은 뭐든지 다 해본다.
 
남성들과의 관계
 
  헤르메스는 가장 친절한 남신이자 운동 선수`장사꾼`여행자`도둑`음악가의
신이었다. 그는 다양한 부류의 남성들 무리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러한
점은 헤르메스 남성에게도 해당된다 그는 수많은 남성들과 일을 도모하며
모르긴 몰라도 어느 다른 형의 남성보다도 친구로 생각하는, 친분이 있는
사람이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많은 남자 친구들을 만난다. 그는 그들과
카드나 골프를 같이 하기도 하고, 그가 음악가라면 때때로 즉흥 재즈 연주회에
나타나 악기를 연주할 것이다. 사업 분야에서 그는 <친구들과 절교하면서까지>
자신이 원하는  <거래>를 트려 할지도 모른다. 묘책을 가지고 있을 때 그는
관대해진다 유리한 위치에 있게 되면 그는 친구들과 그 사실을 같이 나누어
가져 친구들은 그것이 가져다 주는 예기치 못한 이익을 고맙게 여기게 된다.
  헤르메스는 내심으로는 집단 가운데 있는 외톨이다. 그는 붙임성이 있어서
여러 사람들을 쉽게 사귀고 그들과 같이 일하기가 수월하다. 대부분의 남자들
사이의 우정은 점차 상처받기 쉬운 면과 친밀성을 갖는 자기 드러내기보다는
활동을 같이 하는 점을 밑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에 헤르메스 남성은 그
누구보다도 폭넓은 교우 관계를 갖고 있다. 전형적으로 그들은 헤르메스 남성이
가지기 쉬운 다양한 이해 관계를 나타낸다.
 
성생활
 
  다른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성의 영역에서도 헤르메스 남성은 인간적이고
경험적인 것을 좋아한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탐험의 경계를 넘어선다. 그
결과 그는 다양한 상황에서 여러 사람들과 다양한 성적 경험을 했을 수 있다.
다시금 그가 감정에 끌려 결과나 남의 감정과 욕구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되는
대로 행동할 것인지 여부는 다른 원형의 영향력의 강도, 가족, 교회, 그의
사회적 배경의 영향력에 달려 있다.
  그는 "우리 병원 놀이 하자"거나 "네 것을 보여 주면, 내 것도 보여 줄께"라
면서 어린 시절부터 성적 실험을 하였을 수 있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
는 데 자기 놀이 친구들을 끌어들이는 재주가 있다. 여덟 살 때 그는 이웃에
사는 소녀에게 팬티를 벗게 하여 그가 보고 만지게 내버려 두도록 했을 수
있다. 열세 살에는 아마도 그는 몇몇 다른 소년들과 비밀 서클에 들어가 <자지
쳐들기>(사정을 할 때까지 다함께 자위를 하는 것)를 하거나 각자 자기 오줌
줄기 가 얼마나 멀리 뻗치는지를 보았을 것이다. 그는 또래 집단에서는
처음으로 젖 가슴을 만질 수 있는 소녀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직관`전략`설득력을 지니고 있고 <괜찮은 녀석> 기질을 가진 청년 헤르메스는
여자 다루는 법을 알고 있어서 자기 식대로 성행위를 한다.
  가장 친숙한 음담 패설 가운데 몇몇은 여행하는 상인파 농부의 딸에 관한
것이다. 그들은 여행자와 상업의 신, 방랑자의 신이자 딸의 순결을 훔쳐서 성난
농부로부터 값진 것을 취한 도둑인 헤르메스를 현대식으로 표현한 일화이다.
농부의 딸은 그로 인해 이제 (가부장제의 맥락에서) 값어치가 없게 된다.
  그는 이성애자일 수도 있고 동성애자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이든간에, 그가
이성 연애자인 경우 한 남성과 또는 여러 남성들과, 만일 그가 동성 연애자라
면 어떤 다른 유형의 남성보다는 여성과 성교를 시도했기(적어도 몰입했기) 더
쉽다. 그의 성적 지향과 관계 없이 헤르메스 남성은 양성애적 태도를 가지기
쉽다-자신 내부에 있는 어떤 경향들에 의해 판단되지도 위협받지도 않는다.
이런 태도는 신화와 잘 들어맞는다. 헤르메스가 양성 신, 헤르마프로디토스의
아버지가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결혼
 
  헤르메스가 정서적으로 영원히 사춘기 소년으로 남아 있다면 - 원형이 갖고
있는 한 잠재성이기도 하다 - 그는 가장 붙잡기 어려운 독신 남성일 것이다.
끊임없이 활동중이면서도 어느 것에도 구속되지 않은 그의 태도는 여성들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일단 연애가 시들해지면 그는 춤추며 사라진다. 여성
속에 있는 소유 심리 또는 의존 심리는 헤르메스를 도망치게 만든다.
  성숙한 헤르메스라면 일과 주요 대인 관계에 깊이 연루되어 있을 수 있다.
여전히 두 영역 모두에서 그는 외톨이로 지내기 십상이다. 그가 결혼하였다면
아내에게 자기가 없더라도 집안을 잘 꾸려기가 자기가 돌아을 때까지 집안이 잘
돌아가도록 해주기를 바란다. 그는 들락거리며 자기 일을 아내와 의논하지
않거나 아내가 그의 출세를 도우리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헤르메스 남성에게 결혼이란 두 독립적인 영혼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 가정에서 <헤르마> - 헤르메스를 상징하는 기둥 - 가 문간 밖에 서 있고
문간 안에는 가운데에 화로의 여신 헤스티아를 나타내는 불이 활활 타오르는
등근 화로가 있다. 집을 가정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헤스티아의 불이었다.
이 원형을 나타내는 여성들은 흔자 있는 것을 즐기는, 독립적이고 내면적으로
중심이 잡힌 여성이다. 헤르메스-헤스티아의 결혼은 둘 다에게 화목한 결합일
수 있다. 그녀는 전통적인 아내상을 많이 닮아 있을 수도 있지만 아내가 되는
것이 그녀에게 의미를 주는 원천도 아니고 질투심이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헤스티아는 처녀 여신이었다. 헤르메스와 관계를 맺은 여성은 누구라도 자기
심성의 일부로 헤스티아나 또 다른 처녀 여신을 갖고 있는 것이 좋다. 그
이유는 그가 왔다가 가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정치와 대통령직
수행에 정신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남자 친구들을 중시하고 여자들과 수많은
염문을 뿌린 죤 F. 케네디와 같이 살았던 재클린 케네디의 독립성과 남다른
능력은 어쩌면 그녀 내부에 주요 원형 유형으로 처녀 여신 아테나를 가진
탓이었다.
  아프로디테와 헤르메스는 신화에서 연인이었으며 이들의 결합은 실제
생활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헤르메스와 헤스티아처럼 양립될 수 있는
상대들이라기보다는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닮은 여성들은 헤르메스
남성들의 성격들을 공유하고 있다. 사랑의 영역에서 둘은 소유하려 들지 않으며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 둘은 또한 자신들이 현재 하고 있는
일에 격렬하게 몰두할 수 있다. 그녀에게는 창조적 작업의 세계가, 그에게는
최신의 도전 사업이 그에 해당한다. 그 누구도 어쨌거나 일정에 얽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파격적인 인생을 산다. 그들은 흔히 결혼보다는
동거를 선호한다.
 
자식
 
  헤르메스 남신은 상식적으로 허용되는 한계를 넘어서는 행동을 하는 아들을
여럿 두었다. 아우톨리코스는 당대의 가장 뛰어난 거짓말장이이자 도둑이었다.
그렇긴 하지만 밀랍으로 바퀴 멈추개를 만들어 그의 솜씨 좋은 전차 몰이꾼을
죽게 만든 미르틸로스보다는 비난을 훨씬 덜 받았을 만하다. 판(숲`초원`양`떼
`양치기의 신)은 낮잠을 즐겼는데 낮잠을 방해하는 자는 누구든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는 자기 이름을 딴 패닉 Panic, 비이성적인 공포의
상태를 불러일으켜 사람들을 혼비 백산하게 하였다. 혼자 또는 한적한 곳을
두려운 마음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영향을 받기 쉬웠다. 판은 외모와
육욕 면에서 음란하였다. 남신의 자식들은 원형의 것으로 판정되는 기질들에
대한 은유로서 신화도 실생활과 비슷할 수 있다. 헤르메스 남성의 아들들은
사실 (아버지를 닮은 아들처럼) 반사회적이거나 성적인 충동으로 어려움을 갖고
있다.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타고난 기질 - 현재의
생활과 관계가 있는 "일단 가고 보자, 계산은 나중에 하지 뭐" 하는 식의 사고
방식 - 일 때 헤르메스 소년이 성숙하려고 하고 세상의 기대치에 맞추려고
한다면 결과를 고려하고 남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고 한계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을 배우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교훈은 전통적으로 바깥 세계와의
다리역을 하는 것이 아버지인 상황에서 <좋은 아버지 노릇>을 하는 것과 맞먹는
일이다. 불행하게도 헤르메스 남성들은 (몇몇 가부장적 원형들이 나타나지
않거나 그들 자체가 아버지 노릇을 잘하지 않을 경우) 자식들의 아버지이긴
하지만 심리적으로 자기 자식들에게 좋은 아버지는 못된다.
  부모로서 헤르메스는 한계를 짓거나 그 한계들을 고수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의 자식들은 특히 자신들이 설득력 있게 보일 수만 있다면 늦게
자든 학교를 쉬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또한 충동적인
행동을 덮기 위해 변명을 늘어 놓거나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이 헤르메스
아버지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안다. 결과적으로 헤르메스의 자식들
모두는 규  칙들을 무시해도 되며 그들이 하리라고 기대되는 과제들을 변명을
대면 그냥 넘어갈 수 있고 무죄 방면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기회가 많다
그들은 권위를 존중할 줄 모르며 사리 분별력이 부족하다.
  헤르메스의 자식은 학교나 직업 세계에 나갈 차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원칙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은 벌을 받지 않고 기대 수준을
채우지 못해도 넘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나중에 가서야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다.
  긍정적인 면에서 본다면 헤르메스 아버지는 아이들과 노는 법을 알고 있으며
그들과 같이 모험을 감행하는 것을 즐기며 상상력의 진가를 인정하며 상상을
자극하며 그들과 같인 있을 때 아이처럼 군다. 헤르메스 아버지들은 1960년대
히피 세대 - 또는 히피족 - 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었다. 아이로 하여금 세상에
적응하고 일을 완수하고 생산을 하도록 준비시키는 전통적인 아버지들과는 달리
헤르메스 아버지는 자기 자식들에게 인생을 일련의 모험의 연속으로 보도록
영향을 미친다.
  한계를 설정하지 않으며 일관성을 유지하지 않는 것 말고도 헤르메스
아버지는 부재하기 일쑤다. 그는 실제로 자식들을 포기하고 늘 떠돌아다녔을
수도 있다. 아니면 세일즈맨이나 장사꾼처럼 오래 머무는 적 없이 들락거리며
늘 <여행중>일 수도 있다. 그가 집에 있을 경우라도 자식에 대해 갖는
아버지답지 못하고 놀이 친구 같은 태도 때문에 또는 집에 있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는 흔히 아이의 양육을 어머니에게 떠맡겨 버린다.
 
중년기
 
  도전적이고 물질적으로도 충분한 보상을 받는 일을 하는 조숙한 헤르메스
남성은 중년이란 시기가 전에 없던 선택의 자유를 제공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성장의 기회, 여행의 기회, 변화의 기회를 찾게 된다. 대부분의 남성
유형들 이상으로 헤르메스는 외적 생활의 보상을 찾을 뿐 아니라내면의 세계를
탐구하기 시작하여 쉽게 이러한 인생 단계에 적응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중년의 헤르메스 남성이 여전히 장소와 직업과 여자를 바꾸어 가며
사는 영원한 청년이라면 중년은 예기치 않게 가혹할 수 있다. 매력은 더 이상
텅 빈 그의 속을 덮어 주지 않는다. 그가 실패자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시기에 어떤 헤르메스 남성들은 치명적인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또 어떤
헤르메스 남성들은 중증의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
  반사회적인 헤르메스가 중년에 맞이할 운명은 다양하다. 그는 경제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었으되 개전의 정이 전혀 없는 인물일 수 있다. 아니면 그가 저지
른 행동의 결과로 망신살이 뻗치거나 감옥에 들어가 있거나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노년기
 
  노년의 헤르메스 남성은 유별나서, 시골 농장에서 은퇴 시절을 보내지는 않
을 것이다. 그가 노년에 이르러서도 영원한 청년으로 머물러 있거나 자신을 주
변적인 도둑 신세와 동일시하게 된다면 날씨 또는 기회가 닿는 대로 이곳 저곳
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방랑자가 되어 여기저기서 얼마간의 돈을 손에 쥐
고 재치와 말 솜씨로 생명을 유지하면서 지내는, 떠돌이 방랑자로 생을 마칠
것이다. 현대판 헤르메스들은 재향 군인회 병원 정신과 담당 의사들의 단골
환자들이다 그러한 헤르메스 환자들은 출입 방법, 대피 방법 그리고 이동
방법등을 배웠을 터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긍정적으로 발전한 헤르메스라면 그가 어떤 길을 여행
하든지간에 그 길을 가는 다른 <여행자>들을 위한 현명한 안내자가 되기도 한
다. 그는 깊은 경험과 그것의 의미를 개관할 줄 아는 눈을 지녔다. 그는
가르칠교훈을 갖고 있는 빈틈 없는 사업가, 남들을 위해 약도를 그릴 줄 아는
심리 세계의 탐험가나 중견 정치가가 되기도 한다. 영역이 무엇이든지간에 이제
그가  <여행>에서 배운 것을 서로 나누는 성공을 거둔 연사나 저자가 되기도
한다. 전형적으로 헤르메스는 그가 죽는 날까지 새로운 땅을 탐험하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생각으로 음모를 꾸미고 있을 것이다. 또한 그는
아마도 죽음을 앞으로 닥쳐올 모험 정도로 볼 것이다.
 
심리적인 문제점들
 
헤르메스가 남성의 인성에 주요한 원형적 영향일 때 그가 어텅게 행동하는가 -
그가 무엇을 하며, 얼마나 충동적으로 행동하는지, 그 결과가 어떨지에 대해
생각을 하는지 안하는지 - 하는 것이 문젯거리다. 헤르메스가 지닌 어두운
그림자는 성격상의 결함들이다.
 
충동적인 면자 한계를 짓지 못함
 
  헤르메스는 태어나던 첫날부터 자신이 영리한 도둑이자 설득력 있는 거짓말
쟁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아주 일찌감치 또 충분히 유사한 문제점들이 헤르
메스 소년들에게 발생한다. 남의 물건, 감정, 권리 등을 존중하고, 갖고 싶거나
하고 싶다고 해서 모두 팔거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또 그 결과를 책임지
는 것을 배우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그의 성장에 매우 중요하다 헤르메스
소년이 자기 행동에 대한 생각을 고쳐 줄 사리 분별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한계
- 받아들여질 수 있는 행동과 받아들여지지 않는 행동이 무엇이며 왜 그런가 -
에 대해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전형적인 헤르메스는
충동에 따라 즉각적으로 행동할 것이며 바라는 것을 어떻게 하면 얻을 것인가에
그의 발명적 사고를 다 쏟아부을 것이다. 그는 상상력이 풍부하기 때문에
중요한 대인 관계를 갖고 있는 어른일 때도 여전히 그러한 가르침을 배우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러한 재능을 이용하지만 그가 한
부정적인 행위로 인해 상처를 입은 주요 인물들 자신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드러내고 그들의 한계점을 밝힌다면 감정 이입이나 이해력을 키울 수도 있다.
 
반사회적인 헤르메스 : 사기꾼
 
  영향력이 있는 어른이 자기에 대해 충동적으로 또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상황에서 학대를 받으면서 자란 헤르메스 소년이라면 잘잘못을 가릴 줄도
모르고 자제력을 배울 수도 없을 것이다. 도둑질, 절도, 사기 행각을 쉽게
벌이게 되며 이는 반사회적인 행동 및 반사회적 인간 유형으로 이어진다.
  그 자신과 그의 행위를 인정하지 않거나 그의 행위의 영향을 받는 남들
사이에는 갈등이 일어난다. 나이가 들면서 그가 한 짓이 불법적인 것이라면
머리가 제아무리 영민하고 언변이 좋다고 해도 붙들려 들어갈 수 있다. 그는
완력이나 폭력을 쓰지는 않는다. 헤르메스가 아폴론의 소떼를 훔쳤을 때처럼
그는 영리한 방법으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댄다. 책략가로서 그는 피해자의
신뢰를 얻은 다음 도망쳐 버리는 <전문 사기꾼>이든가 상상력이 풍부한 도둑
또는 협잡꾼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의사로 가장하고 탄로날 때까지 한동안
병원 직원들을 바보로 만드는 헤르메스 남성들에 관한 기사를 읽는다.
  그런데 헤르메스 남성들은 때때로 수사망에 걸려 든다. 하지만 투옥되어 있
기란 그러한 남성에게는 몹시 힘든 일이다. 그는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있게 된
다. 날개를 잘리운 채로 그가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상태 - 감금, 판에 박힌
일과 부자유 - 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영원한 청년, 영원히 자라지 않는 남성
 
  헤르메스 남성은 정착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가능성과 새
로운 기회들을 찾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방성은 그것이 활성화될
때까지 그리고 그가 자랄 때까지 어떤 것에 머무는 것을 방해한다. 그는 늘 새
잔디는 더 푸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그를 어떤 상황이나 사람으로부터
다른 상황이나 사람에게로 옮겨가게 만든다.
  그에게는 시작은 쉽다. 매력적인 그는 쉽게 친구들을 사귄다. 잘 돌아가는
머리로 상황을 재빠르게 감지하는 그는 남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그
스스로나 상황이 그를 깊이 있게 어떤 것을 배울 때까지 머물러 있게 하지
않는다면 그는 겉핥기 식의 이해나 기술을 가지게 될 것이다."주워 들은 것은
많은데 제대로 아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러한 피상성은 뿌에르 에테르누스
Puer Eternus, 영원한 청년의 면모다.
  영원한 청년은 가능성의 세계에서 살면서 다른 일이나 사람들에게 간섭하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그는 앞으로 다가올 가능성을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아주 늦게까지도 자신이 세상에서 영원한 삶을 사는 불사신이
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다른 남성들은 경력을 쌓아가고 가정
을 이루는 동안에 그는 모험을 좇거나 이곳 저곳을 다니다가 중년에 이르러서
야 인생이 그의 곁을 지나가고 있으며 나이를 먹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는 마흔 살을 먹도록 네버네버 랜드에 사는 피터팬으로 살다가 어느 날 문득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과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을 때는 너무 늦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중년의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감정적 구속력과 친밀감의 부족
 
  헤르메스 남성들은 대부분의 남성들에 비해 무엇에 강렬하게 빠져드는 법이
없는 듯하다. 여러 성 상대자들에게서도 열정보다는 다양함과 새로움에 대한
취향이 그를 관계로 끌어들이게도 하고 빠져나오게도 한다. 연애를 한다면 어느
정도 오랫동안 그러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만일 돌아갈 가정을 갖고
싶어하고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을 것이라고 느끼면 결혼을 할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 그 관계가 깊어진다는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구속력과
친밀감이 쉽게 생기지는 않는다. 그는 너무 바빠서 안정을 이루지 못하며, 다른
사물에 대해 생각이 많기 때문에 한번 맺은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지
못하며 그가 받아들여질 수 있으리라고 느끼는 순간 떠나버린다.
 
남들이 겪는 어려움
 
헤르메스 남성은 역으로 관여하지 않거나 떠남으로써 또는 성장함으로써 그들
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붙잡기 어려운 애인
 
  헤르메스 남성들은 그들과 사랑에 빠진 여성들에게 큰 슬픔을 안겨줄 수 있
다. 전형적으로 헤르메스 남성은 매력적이고 말을 잘하며 설득력이 뛰어나다.
그는 저항은 곧 도전이라고 보고 일단 그녀의 마음과 침실 속으로 몰래 들어간
다음에는 곧 떠나 버린다.
  여성이 헤르메스 남성을 제대로 알기란 종종 어려운 일이다. 그는 그녀가 생
각하는 사람이 아닐 수 있다. 왜냐하면 그녀는 성격의 여러 면 가운데 오직 한
면을 보게 되고 또한 그 면만을 볼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헤르메
스 남성은 자신의 일부를 꾸미고 남들에게 접근하지 못할 때 흔히 여러 모습으
로 위장하는 수가 있다. 그것은 그를 카멜레온처럼 만들어 준다.
  요리조리 잘 빠져 나가고 구속받기 싫어하는 그의 성격은 결혼과 안정을 바
라는 여성에게 문젯거리로 등장한다. 그에게 결혼이라는 구속은 속담에 있는
무겁고 등근 쇠덩이가 달린 사슬, 곧 아내처럼 느껴지며 여자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를 바라고 그에게 매달리게 되면 될수록 더 멀리 도망치려 한다.
그는 오가는 것을 좋아하며 미리 계획해서 행동하기보다는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더 좋아하고 밖에 나가 뛰노는 것을 좋아한다. 많은 여성들에게 헤르메스
남성은 원형적인 쥐새끼 같은 인간, 사기를 치는, 매력적으로 보이는 남성이다.
처음에 그녀가 자기에게 아주 중요한 것처럼 믿게 한 다음 (그녀가 결국에 가서
그를 제대로 알아보거나 그녀의 인생에서 사라져 버리게 될 때까지) 그녀가
자신에게 기대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서 매번 변명 거리를 갖고 있어서 실망을
안겨 주기를 밥 먹듯이 한다.
 
무력한 아버지
 
  부모 노릇은 대부분의 헤르메스 남성이 잘해 내지 못하는 일이다. 만일 그가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일관성이 없다면 자식들은 그를 신용하지 않고 원망하면
서 자라게 되어 이런 감정들이 다른 관계들을 오염시킨다. 특히 딸이 남성들과
맺는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만일 그가 자제력과 위신을 지키지 못해 직장 생
활에 실패하는 경우 자식들의 사회 진출에 불리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보통이
다. 아들들은 특히 자기들이 아버지의 못한 점들을 닮을까봐 두려워한다. 헤르
메스 남성이 아버지 노릇을 잘하고 언행이 일치하는 부모로서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역할 모델로 기여하기 위해서는 헤르메스, 영원한 사춘기 소년과
자기를 동일시하는 차원을 극복하고 성숙해야만 한다.
 
성장하는 길
 
신화에는 헤르메스에게 중요한 두 명의 다른 남신들이 나오는데 그들은 그가
성장하도록 도와주었다. 형 아폴론과 아버지 제우스가 바로 그들이었다. 이들
원형들은 또한 헤르메스 남성에게 가장 중요한 두 원형이기도 하다. 바깥
세계에서 직능을 효과적으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아폴론와 제우스가 대표하는
특성들을 활성화시킴으로써 헤르메스를 넘어서 성숙해야 한다. 아폴론과 제우스
둘다처럼 헤르메스는 정신의 영역에서 활동한다. 그들처럼 그는 자기의 감정과
정서적 삶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헤르메스에게 <아니오>라고 말하기
 
  자기를 헤르메스와 동일시하는 것을 넘어서 성장하는 남성은 이 원형이 지닌
장점과 한계를 앎으로써 그렇게 한다. 그는 특히 헤르메스가 지닌 부정적인
책략가 기질을 잘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그는 남들과 자신에 대해 결과를
생각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
 
아폴론의 도움
 
  태양의 신, 아폴론은 식견을 확실히 갖고 있기 때문에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다. 그는 헤르메스의 거짓말을 금방 알아차렸다. 아폴론의 혜안과 추리력을
활성화시키는 남성이라면 남들에게뿐만 아니라 스스로에 대해 합리화하려는
헤르메스의 경향을 갖고 도망칠 수 없다. 아폴론 역시 직선적인 사고와 원거리
표적에 초점을 두는 능력을 대표하고 있다. 그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명확한
감각을 갖고 있으며 원칙에 입각한 일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단계적인 접근
감각을 갖고 있다. 아폴론은 또한 윤리적 가르침, 사리 분별에 관계하고 있다.
만일 이러한 특질들이 세상 일을 완수하기 위한 것이라면 헤르메스 남성에게
몹시 필요한 것들이다.
  운좋게도 대부분의 헤르메스 남성들이 특히 중산층 미국인일 경우, 아폴론
유형을 피할 수 없다. 이러한 유형이 문화를 지배하고 있다. 모든 주요 기관 -
교회, 학교, 보이스카웃 - 은 그가 알아야 할 것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성인 헤르메스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자수 성가한 아폴론이 되는 길을
찾을 필요가 있으며 과제를 완수해야 출세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가 시작한 일을 마치고 필요 조건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들과 겨루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야 성공할 수 있다
 
아버지이자 교사인 제우스 찾기
 
  제우스는 분명 헤르메스에게 거짓말을 그만두고 훔친 소들을 되돌려 주라고
말할 수 있는 권위를 지녔다. 그는 모호한 태도를 용납하지 않으며 변명의 여
지가 없다. 헤르메스는 이러한 권위를 인정하였고 별 군소리 없이 제우스가 그
에게 말한 대로 행했다. 헤르메스 남성은 보통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으며 자신이 하기로 기대되는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간섭을 흔히
받게 된다. 왜냐하면 외부의 어떤 인물, 제우스의 권위를 수반하고 헤르메스에
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어떤 인물이 아버지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만일 세상
에서 그를 가르치는 제우스 남성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면 헤르메스도
동창 모임의 이점을 얻는다 이러한 스승과의 관계에서 헤르메스 남성은 도제
훈련을 쌓아 자신의 사교적이고 지적인 재능을 활용하고 출세하도록
격려받는다. 가부장제의 가치는 제우스와 아폴론의 가치이며 대개 그것들은
헤르메스를 굴려서 도제로 삼는다. 가부장제에서 헤르메스 남성은 제우스와
아폴론 외의 다른 어떤 원형보다도 지지를 받고 보상을 받고 더 발전하도록
격려를 받는다. 셋은 정신 세계에서 친화력을 공유하고 있으며 제우스와 아폴론
남성들은 헤르메스의 지력과 사교술에 찬사를 보낸다.
  자기 안에 있는 영원한 소년이 너무 오랫동안 자기 생활을 관리해 왔음을
알게 된 헤르메스 남성은 때때로 적극적으로 스승을 찾고, 심사 숙고해서 일을
하기로 결정함으로써 행로에 변화를 줄 수 있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자기 내부의 영원찬 철부지 기질을 통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 때
그는 자기 내부에 있는 제우스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아프로디테 찾기
 
  헤르메스는 결혼을 하거나 아내를 맞아들인 적이 없다. 그의 주요 연인은 아
프로디테였다. 헤파이스토스와 결혼한 그녀는 열정적으로 매력을 느끼는 연인
들을 따로 가지고 있었다. 헤르메스는 그녀를 사모했는데 그녀는 처음에는 그
와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았다. 제우스는 그를 불쌍히 여겨 자기의 독수리를
보내 그녀가 목욕을 하고 있는 동안 황금 신발 한 짝을 훔쳐 오게 하였다. 그런
연후에 헤르메스가 애정의 표시로 신발을 다시 돌려주자 그녀는 그에게 홀딱
반해 버렸다.
  헤르메스가 성장하는 주요 방법은 그의 아프로디테가 되는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통해서이다. 전형적으로 그녀는 하나의 도전일 필요가 있다. 사랑
하지만 금방 가질 수 없는 여성, 그로 하여금 정신적 풍모로부터 나와 육체의
감각으로 옮겨다 주는 사람일뿐만 아니라 그녀에 대해 그가 갖고 있는 약점을
알게 만듦으로써 정서적 생활에 빠져 들게 만드는 사람일 펄요가 있다.
(디오니소스를 활성화시킴으로써 성장하는 아폴론의 방법도 헤르메스에게
해당된다. 아폴론처럼 그의 아니마 또는 내부의 여성적 요소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성장할 수 있다.)
 
영적 발전
 
  헤르메스는 영혼의 안내자와 의미의 추구자가 될 천부적인 소질을 갖고 있다.
영혼의 영감을 받아 또 영혼에 몰두하여 영혼의 진리에 접근하고자 하며
하데스의 세계에 깊이 내려갈 모험을 무릅쓴다. 헤르메스의 이러한 측면과
관계있는 남성(또는 여성)은 성스러운 것, 죽음의 신비와 내세를 가까이하며
오직한 길만을 좇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리고 헤르메스는 전달자로서
자기가 배운 것을 가르치고 전해 줄 수 있는 듯하다.
  <호메로스의 데메테르 찬가>에 나오는 페르세포네 강간 신화에서 헤르메스 는
처녀 페르세포네를 이승으로 ,어머니에게로 데려오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간 다.
이 신화는 엘레우시스 제전의 배경이었는데 이 제전의 입문자들은 <죽음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엘레우시스 제전은 기독교보다 앞선 것이 며
페르세포네가 저승에서 돌아온 것을 기념하였다. 예수처럼 페르세포네는 죽
음의 세계에서 되돌아왔다. 디오니소스 신화에서 헤르메스는 유사한 중요한 역
할을 하는데 이때도 어린 디오니소스를 구해 냈다. 디오니소스가 성스러운 어
린아이를 상징하는 한편 페르세포네는 대부분의 남성들 속에 또 많은 여성들
속에 여성적인 부분으로 의인화되어 있는 영흔을 상징할 수 있다. 헤르메스
원형은 자기 내부에 있는 이러한 측면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또 자기
생에서 영적인 의미를 찾으려는 이들 안에 존재한다.

제8장
아레스 : 전쟁의 신
무사, 춤꾼, 연인
 
  공격의 화신 아레스는 인간 역사를 통해 그 힘을 발휘했던 가장 강력한 세력
중의 하나였다. 그는 올림포스의 <활동가>이자 전쟁과 싸움의 신이었다.
침착하지 못하고 난폭한 연인이었으며 싸움을 하면서 살아가고 전투를 위한
전투를 즐긴다. 아레스에게서 우리는 문명이 누그러뜨리고 억제하기 전에 우리
자신이 갖고 있던 원색적이고 잔인한 공격성을 본다.
  - 아리아나 스타시노풀로스, <그리스의 신들>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 아레스는 호메로스가 준 두 역할, 즉 전사와 연인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마르스라는 그의 로마식 이름은 실제로 전쟁,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상황에서 쾌락을 얻는 사람과 같은 뜻으로 쓰였다.
  - 필립 메이어슨, <문학, 예술, 음악에 나타난 고전 신화>
 
  남신, 원형, 남성으로서 아레스는 남성적인 체력, 격정, 즉각적 행동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의 마음과 본능은 글자 그대로 그로 하여금 결과에
아랑곳없이 몸으로 행동하고 반응하게 했다. 마치 가부장제가 그의 속성들을
낮게 평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버지 제우스는 그를 미워하고 따돌렸다.
 
아레스 남신
 
로마인들이 마르스라고 불렀던 아레스는 전쟁의 신이었다. 비합리성과 전쟁의
광란 때문에 올림포스의 열두 신 가운데 그리스인들의 존경을 가장 받지 못한
신이 었다. 대조적으로 로마인들은 마르스를 대단한 신으로, 유피테르(제우스)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겼다. 로마인에게 그는 공동체의 신이자 로마를 세운 쌍
동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아버지였다.
  그는 늘은 아니지만 가끔 턱수염을 기르고 대개 투구와 방패, 칼, 창, 때로는
갑옷을 걸친 난폭하고 사내답게 보이는 남성으로 그려진다. 아주 드물게 완전
무장을 한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계보와 신화
 
  아레스는 헤라와 제우스의 외아들이었다. 그런데 어떤 로마 신화(오비드
편)에서는 헤라의 다른 올림포스 아들인 헤파이스토스처럼 그녀가 성관계를
갖지 않고 혼자서 아레스를 임신하였다고도 전한다 우리는 그의 출생에 관해서
자세히 아는 게 없다.
  알로아다이라 불리는 거인 쌍동이가 아레스를 때려잡는 데 성공하였다. 아마
그때가 아레스가 그들과 마찬가지로 소년이었던 때였을 것이다. 그들은 그를
잡은 다음 청동 항아리에 집어 넣었다. 아레스는 열세 달 동안 감금되었으며
그들의 의붓 어미가 이 사실을 헤르메스에게 말하지 않았더라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남신이었고 그러므로 죽지 못하는 운명에 있는데 그가 죽는다는
것은 묘한 일이다.) 헤르메스가 그를 풀어 주었을 때 그는 고통으로 거의 죽을
지경이었다.
  헤라가 아레스의 후견인으로 선택한 이는 기형적인 남근을 가진 신
프리아포스였다. 프리아포스는 먼저 소년을 완벽한 춤꾼으로, 나중에서야
무사로 훈련시켰다.
 
전쟁터에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나오는 아레스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아레스
는 그리스에 대항하여 싸우는 트로이 군대를 편들었다. 호메로스는 아레스를
이복 누이 아테나에게 계속 패배하거나 부상당하거나 모욕당하거나 망신을
당하는, 피로 얼룩지고 경멸스럽고 흐느껴 우는 허풍선이로 그렸다. 그는
아들이 죽임을 당하자 제우스의 명령을 어기고 전쟁터로 나갔다. 그때 아테나는
이성과 자제력(그녀의 미덕이자 그리스인들의 이상)을 잃은 그를 두고
<얼간이>, <미치광이>라고 부르면서 호되게 꾸짖었다. 그는 <이랬다
저랬다>하기 때문에 개
성이 없는, <무엇이 옳은지>를 알지 못하는 신으로 그려졌다. 아레스는 감정적
으로 반응했다 그는 감정에 사로잡혀 자기가 관계가 있다고 느끼는, 종종 혈연
관계에 있는 남성들 편에 서서 전쟁을 하였다. 충성심이나 보복심의 포로가
되어버린 그에게 다른 고려 사항들은 안중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른 올림포스
신들에게 트로이 전쟁은 종종 구경꾼이 두 패로 갈라져 절반은 그리스 편을,
절반은 트로이 편을 웅원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경기처럼 보였다 올림포스
신들이 때때로 몸소 전쟁에 참가한 적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들은 제우스의
규칙을 따랐다. 아레스는 정반대로 이것을 결코 <게임>으로 보지 않았다.
  남신들과 남성들이 또 다른 전쟁을 벌이자 아테나는 자기가 아끼는 영웅들
가운데 하나인 디오메데스를 시켜 아레스를 창으로 찔러 상처를 입게 만들었다.
아레스는 고함을 치며 제우스에게 아테나의 소행에 대해 불평을 늘어 놓았다.
제우스는 아테나 편이어서 그에게 "나한테 오지도 말고 우는 소리도 하지
말아라. 불평하고 싸우는 만큼 네가 즐기는 일은 없지 않느냐. 내가 너를
올림포스에 있는 어느 남신보다도 더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잖니"라고
말함으로써 그를 몰아냈고 더욱 창피를 주었다.
  그렇지만 호메로스는 아레스가 아들 <공포>와 <낭패>를 대동하고 계속해서
트로이 군대를 격려하였다는 점을 인정했다.
 
아프로디테의 연인
 
  아레스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연인 사이로 알려졌다. 그녀는
아레스와의 사이에 여러 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아버지를 수행하여 전쟁터에
나간 아들들 데이모스(공포)와 포보스(낭패), 딸 하르모니아 - 그녀의 이름은
사랑과 전쟁 이 두 가지 위대한 열정 사이에 장차 조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 가 그들이다. 또 사랑의 남신인 에로스가 그들의
자식이라고도 한다. 에로스는 두 가지 신화적 기원을 갖고 있는데 하나는
아레스와 아프로디테의 아들이라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태초부터 있었던
원초적인 생식력이라는 설이다.
  올림포스 신들이 대부분 연루되었던 연애 사건에 이들 두 연인에 관한 이야
기가 많이 나온다. <일리아드>에는 아테나가 던진 돌을 맞은 아레스를 아프로
디테가 전쟁터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돕다가 아테나의 주먹을 얻어 맞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둘 다 여러 다른 애인들을 두었다. 아프로디테가
아도니스에게 반하자 아레스는 복수심에 불타 수돼지로 변신하여 잘생긴
젊은이를 살해했다.
  아프로디테의 남편이자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는 이 연애 사건을 듣고는
간통 현장에 있는 연인들을 함정에 빠뜨릴 궁리를 했다. 그는 보이지 않고 찢
어지지 않는 그물을 쳤다. 침대 기둥에 그물을 드리워 서까래에 대롱대롱 매달
리게 하였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기 대장간으로 떠난 것처럼 위장하였다. 그가
대장간으로 떠난 것으로 보이자 아레스는 그의 집, 그의 침대로 들어 갔다.
헤파이스토스는 자기가 놓은 덫을 연인들에게 덮치게 하고서는 그들의 배신을
지켜볼 수 있도록 신들을 불렀다. 그런데 신들은 그 광경을 보고
헤파이스토스편에 서서 격분을 하기는커녕 크게 웃어 댔다.
 
여러 자식을 둔 아버지
 
  아레스는 적어도 아프로디테의 아이들 가운데 서너 명의 아버지였음에 틀림
없다. (또 로마신 마르스로서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이
이들
말고도 그는 수많은 여성들과의 정을 통해 스무 명에 가까운 다른 아이들을 가
졌다. 여성들 가운데 몇은 그의 아이를 하나 이상 낳은 이도 있었다. 적어도 아
들 가운데 셋은 아르고나우타이였고 딸들 가운데 하나는 아마존의 여왕 펜테
실레이아였다.
  아레스는 자식들 편에서 느끼고 행동한 아버지였다. 포세이돈의 아들 하나가
자기 딸 알키페를 강간하자 아레스는 그를 그 자리에서 쳐 죽였다. 이번에는
포세이돈이 그를 살인 행위로 신들 앞에 소환하였다. 그는 사건이 벌어진
장소인 아크로폴리스 근처 아테네 언덕에서 재판을 받고 풀려났다 - 이 일이
있고 나서부터 그 언덕은 아레이로스 파고스(아레스의 언덕)로 불리웠다.
트로이 전쟁 기간 동안 아들의 죽음은 아레스를 화나게 만들었다. 아들
아스칼라포스가 전쟁에서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아레스는 제우스가 남신들이
전쟁에 참가하는 것을 금지하였는데도 원수를 갚기 위해 싸움을 일으켰다.
  헤라클레스가 델포이로 선물을 전달하려 가던 여행객들을 덮친 노상 강도이
자 아레스의 아들인 킥노스의 도전을 받았을 때 아레스는 킥노스의 편에서 싸
웠다. 아테나는 헤라클레스를 도왔고 그녀의 도움으로 헤라클레스는 아레스에
게 상처를 입히고 킥노스를 죽였다.
  이밖에도 테베에 봄을 가져오는 신령스런 뱀을 자식으로 두었다. 이 뱀을 죽
인 인간 카드모스는 8년 동안 아레스의 시중을 들어야만 했다. 그는 그 뒤 아
레스와 아프로디테의 딸 하르모니아와 결혼하여 테베를 세웠다.
 
엇갈린 견해들
 
  아레스에 대해 널리 알려진 부정적인 견해는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견해
다. 아레스는 전쟁에 패배하여 자신의 역사를 쓸 권리를 잃어버린 트로이 편을
든 신들 가운데 가장 만만찮은 신이었다. 신화학자 월터 오토는 아레스에 대해
말하기를 "이러한 살육과 유혈로 얼룩진 무자비한 기질에 대항하는 아테나의
영리한 모습은 감탄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대조적이다. 이러한 대비에는 시인의
의도가 엿보인다."
  그런데 호메로스의 <아레스 찬가>에서는 <아레스, 강건한 심장을 가진 이
여>, <아레스 정의의 사자>, <아레스 가장 공명 정대한 남성들의 지도자, 아레
스, 아레스는 사내의 표본>등의 말로 아레스의 장점들이 칭송되고 있다. 그는 
<인류의 조력자, 젊은이들의 달콤한 용기를 나누어 주는 이>로 불리운다.
"아레스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그리스 전통의 일부이기도 한데 마르스라
불리웠던
전쟁의 신에 대한 로마인들의 긍정적인 시각과 일치한다.
  합리성과 아테나에 대비되는 아레스는 광분된 상태에서 저질러지는 살육처럼
적대적이고 부정적으로 보인다. 그가 긍정적으로 보일 경우 그것은 애정
heart과 용기 courage (이 말은 '애정 heart'을 뜻하는 불어의 coeur에서 나온
말이다)라는 자질 때문이다. 그는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남신이다. 제우스가
이끄는 집안에서 총애를 받는 자식들은 정반대로 감정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알려졌다.

아레스 원형
 
남신처럼 아레스 원형은 열정적이고 격렬한 반응을 보일 때 나타난다. 아레스
와 함께 감정의 격랑은 즉각적인 신체적 행동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이 원
형은 반사적이며 즉각적인 원형이다. 아레스 원형은 의심할 나위도 없이 남성
(또는 여성)에게 자기 감정과 몸에 충실할 소지를 심어 준다. 구애를 할 때 이
점은 아주 긍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화가 날 때 그는 본능적으로 반응을 하며
가끔은 그에게 이롭지 못하고 남들에게 해가 되는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그가 상대하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 그리고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고
려하지 않아 문제를 초래하기도 한다.
 
영웅 무사 또는 수선 떠는 이
 
  아레스는 공격의 화신이자 전쟁에 대한 충동적인 반응이며, 몇몇 남성들로
하여금 갈등의 한복판을 공격하고 생각도 안해 보고 무기나 주먹을 휘두르게
만드는 본능이다. 그 남성이 만일 군인이라면 "위 사람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라고 쓰인 표창장과 함께 굉장히 많은 훈장을 받은 영웅이 될
가능성이 있다.
  영화나 텔레비전은 아레스 원형이 활성화된 남자 주인공이 화가 나 멈출 수
없는 강력한 세력이 되는 순간을 극화한다. 텔레비전 연속물에서 우리는 온화
한 성격의 과학자가 화가 나면 근육이 튀어나오고 푸른 피부의 거인 헐크로 변
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초인적인 힘을 가졌으며 아무도 그를 멈추게 할 수도
없었고 비이성적으로 행동하였다. 실베스타 스텔론의 영화 <록키>와 그 속편에
서 권투 선수가 탈진하여 피투성이가 되는 장면과 그가 순전히 본능으로 싸워
이기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헐크보다 훨씬 덜 극적인 아레스를 의인화하고 있
으나 마찬가지로 분별없이 공격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얼다. <람보> 류의
영화들도 아레스 영웅을 크게 다루고 있는데 주인공은 아레스 남신처림 충성
심, 난폭성, 복수심에 의해 움직인다.
  신화에서 아레스는 통제되지 않고 비합리적인 광란의 전쟁 상태를 나타냈다.
그는 소란이 일면 금방 흥분되었다. 실제 생활에서 흥분 상태는 너무 자주
아레스를 풀어 주는 역할을 한다. 술집을 한바탕 뒤엎는 대소동은 아레스가
화가 날 때 일어난다. 아레스는 경쟁적인 다툼이나 전략적인 이유에서 싸움을
시작하지 않으며 그가 싸움을 벌이는 것은 어떤 자극에 대한 반발심에서 나오는
감정적 대응인 것이다.
  아레스 원형은 전쟁 욕망을 대표한다. 호메로스는 아레스를 전쟁을 위한
전쟁을 좋아했던 남신으로 그렸다. 그는 떠들썩하고 으르렁거리며 싸우고 또
살육을 일삼고 파괴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레스의 이런 면은 술집에서 대소동을
일으키는 이와 훈장을 많이 탄 전쟁 영웅의 기분을 돋구어 주는 싸움을 하게
한다.
  불멸의 올림포스 신들에게 트로이 전쟁과 같은 싸움은 운동 경기 같은 것이
었다. 이 전쟁에서 - 신들은 대부분 구경꾼이었다. 그리스 편을 드는 신들도
있었고 트로이 편을 드는 신들도 있었다 - 때에 따라 개별 신들은 싸움에
가담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현대판 아레스는 군중들의 함성에 에워싸여 운동
경기하는 것을 즐겨 한다. 관중석에 앉아 있거나 승부에 내기를 하는 데서가
아니라 원초적인 공격성을 몸으로 나타내는 것을 즐겨한다 아레스 원형에 의해
움직이는 미식 축구의 공격수나 하키 선수는 너무 거친 경기를 하는 데 대해,
또는 반칙 행위나 지나치게 흥분하여 소동을 일으키는 데 대해 벌칙을 받기
십상이다. 이러한 것들은 아레스가 인정을 받고 있는, 접촉이 잦은 운동들이다.
경기 중에 그는 벌칙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의 기질이 모독당하지는 않는다.
경기 방식과 게임즈맨쉽(반칙은 안되지만 치사한 수법)이 엄격한 테니스 같은
점잖은 운동에서는 화가 나서 행동하는 것은 결정적으로 나쁜 경기 태도다.
테니스 챔피온은 아폴론처럼 행동할 것으로 기대되며, 아레스처럼 반응한다면
죤 맥켄로처럼 관중석으로부터 야유를 받을 것이다.
 
연인
 
  아레스와 아프로디테는 아프로디테의 남편 헤파이스토스가 친 올가미에
걸려든 연인들이었다. 헤파이스토스는 자신이 일터로 떠나자마자 아레스가 자기
침대에 들었다고 의심하였다. 이들의 관계는 동등한 이들 사이에 맺어질 수
있는 상호적이고 지속적인 관계였다. 아레스는 아프로디테와 네 아이를 낳았다.
그의 다른 여자 친구들도 그의 아이를 하나 이상 낳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올림포스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연애 사건들은 대개 남신과 인간 사이에 벌어진
일회적인 염문이었다. 남신과 여신 사이에서조차 농락이나 강간이 비일
비재하였고 인간 여성은 공통적으로 힘으로 제압당하거나 덫에 걸려 들거나
납치당하였다. 그녀가 같이 사랑을 나눈 일은 좀처럼 없었다.
  아레스의 열정적인 성격, 단단한 체격, 순간의 감정에의 몰입은 아레스 연인
의 특징이다. 이 연인은 성적으로 가장 경험이 많은 여신과 사랑을 나누면서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황홀경에 빠져 인간적인 것을 초월한 디오니소스적인
차원이 없이도 원기 왕성하면서도 인간적인 성관계를 가진다. <채텔리 부인의
사랑>에서 D. H. 로오렌스는 아레스 애인의 허구적 인물로 멜로즈를 만들어
냈다. 그는 현세와 직업 세계에서 아레스처럼 열등한 존재로 생각되었다.
 
무용가
 
  그리스 신화에서 아레스는 무사가 되는 훈련을 받기 전에 스승
프리아포스에게서 처음에는 무용가가 되는 훈련을 받았다. 아레스의 이런 면은
그렇게 많이 묘사되지 않았음에도 정신적인 남성보다는 감정과 신체가 함에
움직이는, 육체적인 남성이 지닌 원형 유형에 잘 들어맞는다. 그는 무용가가
충분히 되고도 남았으며 기교보다는 열정과 격정으로 더 잘 알려졌을 것이다.
예를 들면 청중들이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춤을 관람할 때 갖는 경험은 그가
미와 형식을 모두 갖추었다고 해도 단지 그것을 냉정하게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독보적인 볼쇼이 발레단의 스타로 서방으로 망명하여 연애꾼이란
명성을 갖고 있기도 한 그는 청중들에게 강한 감정적, 신체적 영향을 미쳤다.
  세계 헤비급 권투 챔피언이 된 젊은 카시어스 클레이(나중에 무하마드 알리로
이름을 바꾸었다)도 아레스의 공격적 천성(본능)뿐만 아니라 무용가 아레스의
매력과 자태를 지녔다.
  부족 문화에서 무사는 무용가다. 전투에 앞서 남성들은 춤을 춘다. 북과
음악은 무사로 하여금 아레스가 되도록 용기를 북돋아 준다.
 
하늘 아버지의 박대를 받은 아들
 
  아레스 원형은 남신과 마찬가지로, 냉정한 전략가이자 때로는 (권력 브로커들
과 연인들처럼) 믿지 못할 책략가이며 원격지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남성들로부
터 업신여김을 받는다. 아레스가 전쟁터에서 싸우는 군인의 수준으로 내려오는
동안 제우스는 높은 곳에 있으면서 벼락을 떨어뜨리기를 더 좋아했고,
헤르메스는 경쟁 상대인 형 아폴론에게 경쟁심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그의 소떼를 훔쳤다. 그리스 인들은 사고, 합리성을 이상화하였다. 그때부터
역사에서 이러한 것들이 가부장제의 가치가 되어왔다. 제우스는 아레스를
미워했다. 심리적으로 아레스는 제우스의 그림자, 그가 깔보았던 자신의
일부분을 드러내고 있다. 그 이유는 그가 스스로에 대해 가졌던 이상적인
이미지를 개발하지 못하고 그와 반대되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문화에서 아레스는 마찬가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박대를 당하고
있다. 흑인은 아레스의 속성들을 지녀 왔으며 아레스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모
독과 치욕을 받아 왔다. 아레스가 지닌 성욕, 폭력, 심지어는 춤꾼의 면모 -
이러한 것들은 인종 차별주의가 갖고 있는 고정 관념이다 - 는 <열등한> 아들이
갖고 있는 속성들이다.
  백인 가정에서 이와 같은 가치 기준 및 판단들이 영속되고 있다. 나는 종종
정신 분석을 받는 남성들로부터 이상화된 또는 성공한 아버지가, 말을 더 잘하
고 머리가 더 잘 돌아가는 형제나 자매를 좋아했기 때문에 자기들이 얼마나 눈
에 띄지 않고 하찮은 존재로 느껴졌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는다. 단 한번
도 운동 경기를 관전한 적이 없고 심지어는 그가 잘하는 운동 경기에 대해 관 
심 있게 물어 본 적이 없는 아버지가 그를 대화에 끼게 하려고 손님를 앞에서
그에게 질문을 던지는 순간, 혀가 잘 돌아가지 않고 뻣뻣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전혀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해도 그는 최소한 이런 아레스 원형의
모습을 지닌 채 살아가는 데 깊이 만족해 한다. 많은 남성들은 순응하기 위해
또는 성공하기 위해 아레스 나름의 의미 있는 기질들을 남들이 낮게 평가하는
대로 받아들이거나 또는 그러한 기질들을 내버린다. 그들은 원형적으로
자신들의 몫을 잘해 내는 기쁨을 결코 맛보지 못한다.
 
수호자 아레스
 
  조심성 있는 사람이라면 아레스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에게 공격을 가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 대한 공격은 즉각적인 보복을 자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들뿐만 아니라, 딸, 자기 자신을 돌보았다. 실제로 아레스는
그렇게 행동한, 일한 남신이었다 마르스로서 그는 나중에 그처럼 모진 방식으로
로마 시민들을 수호하였다.
  미 법무 장관 보비 케네디는 마피아단과 부패한 노동 조합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아레스 기질을 가졌다. 그 이유는 그가 그들에게 행한 보복이 합법
적인 게임 아니라 격렬한 전투였기 때문이다. 충성심과 당파 근성, 속으로부터
끓어나오는 반발심으로 잘 알려진 그는 여러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케네디 집안
형제들 가운데 가장 아레스다운 사람이었다.
  아레스는 자신이 마음을 쓰는 중요한 사람이 공격을 받을 때 특히 그 사람이
최악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면 싸움에 가담한다. (격노한 포세이돈과는
대조적으로)아레스는 추격하는 데 여러 해가 걸리더라도 원한을 풀고야 마는,
원한을 늘 품고 다니는 자는 아니다. 굴욕을 당하더라도 아레스는 상처를 훨훨
틸어 버리고 살아갈 수 있다.
 
아레스 살려 내기
 
  오늘날 제우스가 앞장을 서고 그의 뒤를 따르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레스는
여전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원형으로, 활성화되기보다는 억압되기 쉬운
원형이다. 성공을 좇는 남성들에게 있어서 특히 그러하다.
  그러나 남성의 심리 속에 아레스 원형이 억압되어 있다면 구체화된 느낌들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러한 전체적인 모습은 활성화되지 않고 갇혀 있는
상태로 남아 있는데 바로 청동 항아리에 갇혀 있는 소년 아레스의 이미지다.
  남성이 스스럼없이 신체적으로 자기를 맘껏 표현하였던, 자기 속에 있는 소
년의 활발한 기운을 느낄 때라야 구제가 가능하다. 항아리 속에 갇힌 아레스
소년은 자기와 장난스레 몸을 부대끼거나 자기를 꼭 껴안아 준 적이 없는
아버지와 신체적인 접촉을 하고 싶은 열망이라고 볼 수 있다. 절친한 친군
사이가 되자고 친구의 팔을 끌어안으려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겨질 수 없는
충동이다. 음악에 맞추어 빙빙 돌거나 그렇게 하고 싶어했던 것은 바로 자기
속에 있는 아이, 예전에 길거리에서 야구 경기를 한 적이 있는 소년인 것이다.
원기 왕성함,세속성, 달짝지근함이라고나 할까. 그것은 자의식적인 것이
아니다. 그가 아레스를 드러내고 싶다고 느끼는 순간이나 기회가 올 것이다.
그는 그 순간에 소년을 놓아 줄 것인가 아니면 항아리 속에 가두어 둘 것인가?
  아레스가 너무 오랫동안 억눌려 왔다면, 사람들이나 사건들에 대한 신체적
반발 - 구체적으로 표현된 감정적 반응 - 은 전적으로 의식적인 인식 바깥에
놓여 있을 수 있다. 남성(또는 여성)은 오직 머리로만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몸은 여전히 신체적 긴장 또는 이완 반응을 보인다. 예를 들면 그는 분노나
공포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자기도 모르게 근육이 당기거나 아니면 주먹을
꽉 쥐게 될 수 있다. 그는 누군가가 지적하기 전까지는 이러한 신체적 반응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심지어는 혈압이 높다거나 변비나 설사 같은
장의 이상 증세를 갖고 있어도 아레스 본인은 그 사실을 의식하지도 못하고
드러내지도 못한다.
  제우스가 아레스를 몹시 싫어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미움을 산다면 이 원형은
활성화되지 않거나 억압된 채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아레스가 주요 원형이
아니라면 특히 그러하다. 감금된 아레스가 구출되고 해방되기 전에 상황을
알아차려야 한다. 도움은 남들을 통해 올 수 있다. 의미 있는 타자가 실제로
어떤 남성(또는 여성)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의 몸의
언어를 읽거나 그 자신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느낌들을 직관으로 알 수 있다면,
그리고 그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가치를 인정하다면 그는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또한 자기만의 몸의 언어를 알아차릴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그는 곧 남들과의 신체적 접촉을 통해 또는 자기의
몸속에 있는 아레스를 살려 내고 해방시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을 통해
세상 경험을 할 필요가 있다.
 
아레스 남성
 
아레스 남성은 확신에 차 있고 활동적이며 굉장히 감정적이며 구체적인
사람이다. 그는 행동하기에 앞서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타고난 기질은 그를
곤경에 처하게 하며 남들이 보이는 반응이 그의 삶을 규정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유년기
 
아레스 소년은 활동적이면서도 감정적이며 표현이 풍부하다. 아마도 첫울음을
터뜨리면서 자기의 인물됨을 예고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활기찬 울음 소리에 곧
익숙해지게 된다. 뭔가 잘못되어 있으니, 또 배가 고프거나 오줌을 쌌거나
어디가 다쳤으니 <지금 날 좀 어떻게 해!>달라는 외침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얼굴이 빨개지고 팔 다리가 빳빳해지도록 울어대면서 온몸으로 항의한다.
그것이 전하는 분명한 메시지는 <나 아파>라든가 아니면 <나 화났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유병이나 젖을 물게 되거나 트림을 하여 공기 방울이 나오게
되면 상황이 극적으로 변한다. 전형적인 아레스 아기는 식욕이 왕성하며 만사가
괜찮으면 애교를 부리고 감동을 잘하는 성격이다. 그는 자극을 좋아하며
어려서부터 장난감을 갖고 놀면서 즐겁게 웃거나 온몸을 던져 가며 거칠게
뒹굴거나 하면서 논다. 그가 다쳤거나 갑자기 놀랐다면 아주 강렬하게 저항할
것이다.
  나이를 더 먹게 되면서 매력을 끄는 물건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 감탄 어린
눈길이 닿는 순간 그의 손은 그 물건에 가 있다. 집안에서 유아 안전 사고 예
방이 이제 특히 중요하게 된다. 왜냐하면 아레스 아기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
거나 손가락을 소켓에다 집어 넣어 전기 쇼크를 받거나 꽃병을 뒤집어엎거나
깜짝 놀란 애완 동물에 긁히거나 물리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관심을 끄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용감하게 달겨든다. 그는 평균적인 아이보다
일회용 반창고를 더 많이 붙이고 다닌다. 그는 늘 직접적인 경험을 함으로써
배우는 것 같다. 그래서 몸이 성할 날이 없이 부딪쳐 멍이 들고 허물이
벗겨지고 긁힌 자국이 남게 된다.
  막 피기 시작한 자존심도 부딪쳐 멍이 들게 된다. 그의 충동적 행동은 그를
곤경에 빠뜨리고 비난과 처벌을 받게 하기 때문이다. 부모와 교사의 인내심,
일관성이 그가 꾸밈이 없고 충동적룩고 감정적인 소년 - 과잉 반응을 하는
열정적인 아이 - 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능력에 많은 것이 달려 있다.
 
부모
 
  아레스 어린이는 에너지가 넘치며 요구하는 게 많고 다루기 힘든 조심성이
없는 아이인데다가 행동하기 전에 생각을 해보지 않기 때문에 그리 순한 아이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특별히 엄하면서도 사랑이 넘치고 인내심이
강한 부모가 필요하다. 그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은 지도 편달을 필요로 하긴
하지만 종종 그와 정반대인 경우도 있다. 그는 순간에 정신이 팔려 전에 들은
것들을 잘 잊어버린다. 그의 건망증은 부모, 특히 권위적이고 형식주의적인
부모의 화를 돋군다. 그들은 그의 건망증을 불복종 또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한다. 그는 만사에 신중하지 못하며 입을 다물고 있을 때가 많다.
또 입을 여는 때가 있기도 한데 한창 화가 난 상태에서 입을 열기 때문에
매질을 잘하는 아버지의 화를 돋군다.
  역으로 불평을 늘어놓는 성격의 어머니들은 때때로 요구하는 것이 많고 화를
잘 내고 자신들에게 협박을 가하는 아레스 아들에 대해 자기 주장을 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레스가 아장아장 걷는 아이보다 좀더 큰
아이일지라도 말이다. 화가 난 네살박이 아레스 소년이 엄마들에게 폭군 행세를
할 수 있다. 강하고 사랑에 넘치는 자연의 여성이 그의 이상적인 어머니다.
그녀는 그가 본연의 모습대로 있도록 충분한 여지를 제공하면서도 그 한계를
분명히 한다. 그녀는 자주 그를 꼭 끌어안아 주며 그의 에너지를 정복감을
증가시키는 신체적 활동으로 발산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인내심과 원칙을
배우도록 돕는다.
  때때로 인생은 신화를 닮는다. 아레스 소년은 화가 난 헤라와 자식을
박대하는 제우스를 부모로 둔다. 현대판 아레스 아버지는 굉장한 힘을 가진
출세한 남성일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인정하는 아들들에게는 기껏해야 소원한
아버지일 뿐이며 지적이기보다 감정적이고 반동적이며 육체적이라는 이유로
아레스 아들을 박대한다. 아니면 그가 화를 잘 내는 남성이라면, 그런데 그가
정작 화를 내야 할 경우에는 화를 내지 않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 화를 내는 등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면 충동적인 아들은 자신이 신체적 언어적 학대의
목표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그러한 아버지의 학대는 그가 절제를 배우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이런 상태의 전형적인 유형은 학대를 당한 소년이
자라서 학대하는 남성이 된다는 것이다.
  헤라를 어머니로 둔다는 것은 어머니의 주요한 결속이 아버지에게 가 있다. 
것을 의미한다. 그녀는 감정적으로나 원형적으로나 <어머니>이기보다는 오히려
<아내>에 가깝다. 그녀의 아레스 아들은 자주 어머니 없는 아이가 된다. 그녀는
아레스 아들의 감수성파 상처 입기 쉬운 성격을 싫어하며 그가 <아기>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자주 말이나 신체로 학대를 하는 이는 바로 아레스 아들을 둔
화 잘 내는 어머니다. 그녀가 창피스러워하고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남편과 강하게 묶여 있다고 느낄 경우 남괸에 대해 내는 그녀의 화를 아레스
소년이 받아 주게 된다. 좀더 내성적인 소년이라면 아레스 소년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부모를 두었어도 전연 아랑곳하지 않고 출세를 하는 수도 있다. 그가 어떤
식으로 크게 변할 것인지 하는 것은 부모 자질에 달려 있다.
 
사춘기과 청년기
 
  사춘기는 중요한 시기다. 사춘기에 일어나는 남성 호르몬의 분비는 충동성,
공격성, 감정, 성욕 같은 특질을 증대시킨다. 또래 집단들은 아레스에게 특별히
중요하다. 그가 미식 축구를 하러 나갈지 그냥 축구를 하러 나갈지, 아니면
럭비를 하러 나갈 것인지, 경쟁적인 스포츠를 하면서 원칙, 방향, 아니면
공격성을 배울 것인지, 그리고 그 결과로 인정과 찬사를 받을지 아니면
깡패들과 어울려 패싸움질을 할 것인지, 학교를 그만둘 것인지, 권위를
무시하고 반사회적이 되어 진짜 말썽을 일으킬 것인지, 아니면 독단적이고
찰나에 몰두하는 에너지를 자동차 경주나 암벽 등반에 대한 관심에 쏟아부을
것인지, 음악과 춤과 로맨스가 대단한 발견물들이자 기쁨의 원천이 될 것인지,
아니면 성욕이 공격성을 발산할 수 있는 경로일 것인지 등이 그의 주요
관심거리이다.
  고등학교와 대학은 아레스에게 일찌감치 실패와 잠재적 성공의 가능성을 제
공한다. 먼저 생각해 보지도 않고 어떤 기회나 즉각적인 감정적 상황에 반응한
다면 그는 학교를 일찍 그만둘지도 모른다. 변화를 부르거나 행동을 일으키는
일이 생긴다고 할지라도 아레스 남성은 자신의 학문, 음악, 스포츠 생활을
갑자기 끝내 버림으로써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직업

  기질적으로 아레스는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기를 좋아하며 연장을 사용하기를
좋아하며 돌아다니는 것을 즐긴다. 그는 탁상 사무와 장기 목표를 가진 일을
지루해 하고 못견디며 조직의 위계 질서를 맞추지 못한다. 약간의 모험이
뒤따르는 직업들이 그의 관심을 끌며, 한 번에 한 가지씩 일을 수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기량이 향상된다. 그는 남들과 같이 부대끼며 일하는 것을 좋아하며
동료애가 깊다.
  무사 아레스처럼 그는 육군이나 해군에 입대하기도 하고 오점 투성이의 훈련
전과를 가지기도 한다. 그는 하사관이 되거나 전투에서 공훈을 쌓아 특진을
하기도 한다. 또한 다른 원형들이 그의 내부에서 활성화된다면 전투하지 못해
안달하는 것으로 소문난 장교가 될 수도 있다. 모험 군인, 외국인 용병 - 예전
같으면 프랑스 외인 부대에 입대했을 것이다 - 들 또한 무사 아레스와 같은
삶을 살아가기 쉽다
  만일 직업 운동 선수가 된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운동에 쏟을 것이며 열을
받는 상황에 처할 경우 자신의 공격성을 드러내기 어려울 수도 있다. 판정에
불복하거나 화를 내는 식의 즉각적인 반응(패널티 박스 또는 선수 대기소에
있게 만든다)을 억누르는 법을 배운다면 인생살이에 크게 도움이 된다. 그가
자기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하키 선수나 미식 축구 선수라면 반칙 -
불필요할 정도의 거친 행동, 스포츠인답지 않은 행동, 또는 심판과의
말다툼으로 -을 자주 범해 자기 팀과 자신에게 손해를 끼칠 것이다 (그는
감정적 기복이 심하며 때때로 무대 위와 무대 밖에서 괴띠한 퍼포먼스를 하는
것으로 알려진 연극 배우, 무용가, 음악가 등의 공연인이 되기도 한다.)
  건설업과 석유 시장은 몸을 움직이기 좋아하고 모험을 즐기는, 아레스 성격
의 남성들이 매료되는 분야다. 벌이가 좋을 경우 그들은 충동적인 낭비가가 되
기 쉽다.
  아레스 남성은 장기 계획을 수행하지 못하므로 그가 성공하느냐 못하느냐는
운이 크게 좌우한다. 잇달아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있기도 한데 계획적인 실행
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가 하고 싶어한 일을 계속하기 때문에 닦이는 천성적인
능력, 재주를 개발해 냈느냐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의 성공은 종종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당국과 문제를
일으키고 자기 성질을 죽이지 못해 또는 자기의 본성을 드러내지 못해 해고당
하기 일쑤다. 직장 생활이 원만하다면 그것은 훈련을 받고 능력을 키운 결과다.
 
여성들과의 관계
 
  신화에서 아레스와 아프로디테는 애인 사이였으며 그들의 관계는 아레스 성
격의 남성에게 가장 적합한 유형이다. 그와, 미와 사랑의 여신을 닮은 여성들은
열정이나 성적 본능 면에서 기질이 비슷하다. 둘 다 성질이 몹시 급한
사람들이다. 정염의 불꽃과 순간 순간의 분노에서 비롯되는 흥분의 가능성은
금방 싸웠다가도 금방 화해하는 격정적인 관계로 만든다. 그 어떤 경우에 찾을
수 있는 것보다 더 서로를 참고 받아들인다면 서로를 강하게 드러낸다고
할지라도 매우 조화로운 관계를 이룰 수 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상처를 입어
화가 난, 신체적 인 학대를 받은 아레스 남성이 자존심이 약하고 어린 시절에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는 여성과 만난다면 둘 다에게 가장 파괴적인 결합이 될
수 있다.
  아테나는 뛰어난 전략가 다운 사고를 하는 여신으로 아레스의 감수성과 충동
적인 반응을 경멸하였는데 그녀를 닮은 여성들은 아레스 남성들을 평가한다.
그리고 남성의 경제 능력을 재보고 그들의 지위에 매력을 느끼며 안정과 안전을
바라는 여성들은 아레스 남성을 미래 신랑감에서 제외시킨다. 아레스 남성이
만사를 너무나 개인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달아나는 여성들도 있다. 그리하여
아레스 남성들은 자주 자신이 여성들에 의해 부족한 사람으로 판단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원한을 품다가 마침내는 화를 폭발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되면
그들 사이는 더욱 벌어지게 된다.
  아레스 남성들은 종종 연령에 관계없이 얼굴 표정과 말 한 마디라도 따뜻하
게 대해 주는 여성들과는 친구처럼 지낸다. 그러나 대개 그들은 여성들을 최고
의 친구로 치지는 않는다. 그들은 보통 여성들과는 관심사를 공유하거나 일을
같이 하지는 않는다.
  아레스 납성은 진정으로 같이 있고 싶고 자신이 거리낌 없이 애정 표시도
하고 행동할 수 있는 여성들에게 마음이 끌린다. 같이 성관계를 가지든 춤을
추든 음식을 즐기든 게임을 하든 간에 자신이 하는 일에 완전히 빠져 들며
자기처럼 하는 일에 빠져들 수 있는 여성들을 가장 편안해 한다.
 
남성들과의 관계
 
  아레스 남성은 남자 친구들과 일을 하고 놀고 모의 결투를 하고 경기를
관전하거나 경기를 하면서 같이 지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깊이 있는 대화를
하거나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는 데는 흥미가 없다. 그는 친구들과 무슨 짓을
하고 있든 여자, 스포츠를 화젯거리로 삼는다. 그는 친구들과 깊은 결속을
맺으며 그들이 위험에 처하게 되면 언제라도 몸으로 막아 줄 수 있는 친구가
된다.
  그는 자주 전투나 싸움을 하는, 같은 유니폼을 걸친 남성들과 가장 깊은
연관을 맺어 왔다-군인으로서 또는 팀의 일원으로 또는 갱단의 일원으로서 그는
신체적인 공격을 가하며 이기기 위해 남들과 싸워 왔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그의 공격성은 인정을 받으며 풍부한 감정도 인정을 받게 된다. 여기서는 그가
엉엉 운다고 해도 계집애라고 불리우는 일은 없으며 남자를 꼭 껴안으면서도
동성애자가 되면 어쩌나 하는 감정을 품지 않아도 된다.
  동료들이 그를 피하든 그들로 인해 희생자가 되든 - 아레스 소년이나
남성에게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 크게 고통스럽고 견딜 수 없는 상황인
것은 마찬가지다. 상처를 입는 것은 물론 그가 특별히 바라는 동지애를
박탈당했다고 느끼게 된다.
 
성생활
 
  아레스 남성이 여성들을 좋아하느냐 그녀들을 때리느냐 하는 것은 그가 어린
시절에 어떤 경험을 하였느냐에 달려 있다. 아레스 속에 있는 연인이
활성화되기에 충분할 정도로 괜찮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그는 성관계를 갖는
것을 좋아하는 남성, 여성들의 몸을 사랑하는 남성, 성관계를 가지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남성, 자기만큼이나 성을 즐기는 성숙한, 성적으로 해방된 여성을
좋아하는 남성일 것이다. 그는 신비적 지향을 가진, 황홀경을 추구하는
디오니소스 같은 연인도 아니고 정복하려는 생각을 가진 남성도 아니다. 그는
신체적 쾌락 때문에 원기 왕성하게 성관계를 가진다. 헨리 피일딩의 영어
소설을 영화화한 <톰 존스>에서 알버트 핀니는 세속적이면서 도덕을 초월하고
쾌락에 탐닉하고 욕망에 가득찬 연인 아레스 기질의 주인공 역을 해냈다.
  아레스 남성은 청교도적이면서도 위선적인 문화에서는 잘 살아가지 못한다.
특히 금욕적인 여성과 결혼한 경우, 또 자신이 부정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그런 느낌을 가지고 행동하는 경우 자신의 욕정을 죄스러운
것으로 판단하고 비난받고 억눌러야 하는 것으로 느낄 수도 있다. 이런 감정
상태에서 행동한다면 흔히 종적을 감추어 버리거나 앞으로 벌어질 문제를
예견하는 뛰어난 전략가는 못된다. 아레스 남신과 마찬가지로 현장에서 붙들려
세상 사람의 웃음거리가 된다.
  동성애자 아레스라면 연인으로서 - 적어도 에이즈에 감염되기 전까지는 -
훨씬 더 방탕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는 충동적이고 순간에 완전히
몰입하고 도덕을 초월하며 술집과 목욕탕에서 언제든지 상대가 되어 줄 태세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부 일처주의가 아닌 관계를 받아들이는 게이
문화에서는 아프로디테와 아레스가 가졌던 식의 관계가 허용된다. 또 다른
애인들을 갖고 있던 그들은 서로 오랫동안 지속적인 성관계를 가졌다. 게이
아레스라면 아레스처럼 보이기 위해 근육을 키울 뿐 아리라 현대판 전사의
복장이라고 할 만 한 가죽옷을 입기도 한다.
 
결혼
 
  아레스 남성은 결혼 계획을 세우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결혼을 피하지도
않는다. 그는 격렬하게 여자에게 빠져들지만 장기적으로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여자가 좋은 상대가 될 수 있을까?" "그녀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그녀가 내 신분을 상승시킬 것인가?" "그녀와 결혼하면
어떨까?"하고 생각해 보지 않는다.
  남들 - 여자 및 그녀의 가족 또는 그의 가족 - 이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그는 결혼을 하게 된다. 특히 육체 노동을 하는 사회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하기도 한다. 이 세계에서는 흔한 일이다. 관능의 만족을
구하는 그는 결혼하자마자 곧 아이를 갖게 된다. 그가 아내를 사랑하고 서로
만족스러운 성관계를 가진다면, 또 직업을 갖고 있고 단짝 친구들과 같이
야구나 농구를 할 수 있다면, 그리고 아내가 그와의 생활에 만족해 한다면,
그는 행복한 삶을 누린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가족에 기반을 내리고 있으며
생활의 안정감에서 오는 자존심과 남들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다.
  사태가 좀 복잡하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한편으로 보면 반동적이고 충동적인
성격은 직장 생활을 불안정하고 믿음직하지 못하게 만들어 결혼 생활에 긴장을
가져오거나 아니면 결혼 생활을 끝내게 만든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젊어서
결혼을 하고 그 뒤에 야망을 키우거나 지적 능력을 발견하거나 그가 열망을
품도록 만든 남성들과 여성들을 만나 아레스답지 않은 면의 영향을 받은
아레스는 자신의 육체에 매혹된 여자가 이제는 그에게 한계로 다가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처음 같은 육체적 매력이 그들간에 없어지게 되거나 그의 구애
열정에 대한 아내의 반응이 진실되지 않거나 강하지 않다면 또 시들하게 되거나
그녀가 좀더 야심 만만하거나 질투심이 많다면 그가 무슨 일을 하든지간에 그것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가 부부 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식
 
  아레스 남성들은 종종 우연하게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데 아이는 <순간적이 고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 성격이 육욕과 결합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이
산아 제한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아버지가 되고 안되고는 확률의 문제가 되어버
린다.
  자식의 삶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는 대개 크게 확대된 모습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가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고 인생에서 가족이 아주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면 그는 자식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낸다. 그는 아들들에게 야구와 축구를
가르치고 그들을 경기장에 데려가고 함께 뒹굴며 아이들을 자기 주위에 데리고
있기를 좋아한다. 그는 어린 딸과 춤을 추고 친구들이 볼 수 있게 딸을 무등
태워 데리고 다닌다. 그는 어린 자식들에게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만일 자식들이 내성적이거나 지적이어서 그의 관심사를 공유하지
못하거나 주제넘게 나서는 성격을 지녔다고 느끼면 자식들이 나이를 좀더 먹게
되면 갈등이 자주 생긴다. 노동 계급 가정의 자식들이 계급 상승을 꿈꾼다면
갈등이나 감정이 다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박대를 받고 분노에 찬 아레스 남성 - 직장과 대인 관계가 불안정하다 - 의
자식들 또한 학대 때문에 고통을 겪을지도 모른다. 약간만 약이 올라도
자식에게 화를 내기 때문에.자식들은 두려움에 떨 수도 있다. 특히 그가 술을
마셨을 때는 신체적인 학대를 당할 수 있다.
  어떤 아레스 남성의 자식들은 무시를 당하기도 한다. 감정이 넘치는 사춘기에
아이 아버지가 되었을 경우 특히 그러하다. 아레스 남성은 젊은 혈기로 수없이
난봉을 부렸을 수 있다. 결혼중에 낳은 자식이든 혼외 자식이든 간에 그들
모두를 기질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돌볼 능력이 안된다. 그리고 그는 부재
아버지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가 자기 자식들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대개는 돌볼 것이다. 줄 것이 있다면 후한 것이 그의 성격이다.
 
중년기
 
  중년기 아레스 남성의 생활 신분은 그가 태어난 사회 계급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면 상승 욕구가 강한 야심에 찬 집안에서, 감정적
소원함이나 냉정, 지적 능력, 남들을 다루고 권력과 돈을 획득하는 능력에
가치를 두는 중상층 계급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아레스 남성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비극적인 일이다. 그러한 남성의 운명은, 제우스의 경멸 대상이었으며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박대를 당한 것으로 알려진 아레스 남신의 운명을
흥내내고 있다. 제우스 같은 아버지를 두었고 현대판 올림포스 사회 계급
출신의 수많은 아레스 남성들은 조직이라는 전쟁터에서 실패자로서 창피를
당하고 모독을 당한 아레스 남신의 운명을 따른다.
  중년기에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업가 집안 또는 전문직 집안 출신의
아레스 남성이라면 인생 초기에 자기가 아버지나 자신의 사획 계급과는 다른
북에 장단을 맞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만 했다. 그는 자기 기질을 고상
하다고 느끼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관심사와 재능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감정적인 지지를 받아야 했다. 본래의 자기가 되기 위한 감정적 지지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때때로 정신과 치료를 통해 또 어떤 때는 중요한
사람에게서, 대부분은 그를 사랑하고 그가 성공할 수 있도록 보아 주는
부모로부터 지지를 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중년기까지 안정을 찾기 위해서
그는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한 싸움을 해야만 했다. 그의 성공은 굉장히
개인주의적인 것이어서 얻어 내기 힘들다.
  만일 아레스 남성이 계급 이동이 없는 지역의 노동 계급 집안 출신이라면
중년기에 안정되고 만족스런 상황에 이르기가 더 쉽다. 자기 기질과 신체적
특성을 직업적으로나 쉴 때나 여러 방도로 드러내는 것이 허용된다. 남자 동료,
스포츠, 심지어는 가끔씩 하는 싸움질이 그의 공격성의 배출구로 기능하며 그는
남들이 자기의 육욕을 고려해 주고 심지어는 인정해 주는 것을 필요로 한다 -
이 모든 것은 상승 욕구가 강한 도시 남성들에게는 별 쓸모가 없는 것이다.
노동 계급에서는 육체를 쓰는 직업이 존경을 받기 때문에 그 일을 기꺼이 받아
들이고 그 일에 자부심을 갖게 된다.
  몇몇 다른 원형들 이상으로 아레스 남성의 운명은 중년에 결정되는 것 같다.
사회 계급과 집안 같은 외부 요인들에 의해 좀더 미리 정해진다. 그 이유는
문화 자체가 그가 누구인가 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노년기
 
  중년까지는 아레스 남성의 삶의 방식이 크게 정해진다. 그때 얻은 안정감과
자존심(또는 그것의 결핍)이 노년의 모든 차이들을 만들어 낸다.
  많은 아레스 남성들이 노년까지 살지 못한다. 폭력이나 사고 또는 전쟁은
그들에게 일찍 죽음을 가져올 수 있다 기질과 직업 때문에 그들은 육체적으로
더 위험한 삶을 산다. 그리고 전쟁 중인 나라에 산다면 일찍 죽을 가능성은
더욱 크다. 아레스 남성들이 베트남 전쟁에 군인으로서 그리고 면제와
대안책으로 어쩔 수 없이 과다하게 참전하였다. 흔히 있는 일이지마는 분노와
무력감이 공존할 경우 스트레스와 관련된 신체적 조건도 아레스의 생명을
요구한다. 경기가 침체되어 공장들이 문을 닫게 되면 안정이 깨지게 되고 가정
폭력과 가정 불화가 생기게 된다.
  그러나 노년에 들어선 몇몇 아레스 남성은 만족스러운 삶을 산다. 인생의
어느 때보다도 더 그러하다. 이제 가족에 둘러싸여 순조롭게 예상된 퇴직을
맞는 노동 계급 가정의 남성은 운이 좋은 편이다. 운동 종목에 관심도 보이고
소일 거리도 하고 단짝 친구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며 손주들에게 잔소리를
해대면서 아마 호숫가에 집을 짓고 천성대로 순간 순간을 열심히 살 것이다.
  시류와 싸워야 했던 아레스 남성들이 갖는 만족감은 좀체로 얻기 힘든 것이
다. 지역 사회 조직에 의해 또 고도로 개인주의적인 해결책이 그들의 생활을
떠받쳐 주지 못한다. 그들이 어디에서 사는지 또 누구와 같이 사는지 무엇을
하는지는 자신 내부에서 우러나온 반응에 기초하여 내린 개인적 선택의 결과다.
그들은 세상에 적응하는 법파 자신이 되는 법을 배운, 가장 개성이 뚜렷해지고
성숙된 남성들이다. 그들에게 노년은 가장 풍요로운 수확기인 셈이다.
 
심리적인 문제점들
 
아레스 남신이 올림포스 신들 가운데 가장 지쳐 있었고 수치심과 상처로 고통
을 받았던 것처럼 많은 아레스 남성들도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과 사춘기 시절
에 학대를 받고 버림을 받는다. 이런 인성적 기질과 나쁜 대우의 결과 많은 문
제점들이 아레스 남성들을 괴롭히고 있다.
 
전쟁의 신과의 자기 동일시
 
  <순수한 아레스>남성은 이 원형과 자기를 동일시하여서 스스로를 관찰하고
행동을 반성하는 능력을 개발하는 법이 없다. 그는 선택이라는 것을 모르며 충
동적인 반응 덩어리이다. 극단적인 예가 자극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는 거리
의 싸움꾼이다. 이따금 헐리웃의 영화 배우들이 이런 류의 행동 때문에 기사
거리가 되곤 한다. 사진사가 괜히 사진을 찍거나 누군가가 놀려댈 경우 -
누군가가 그를 약올림으로써 <그의 화를 부를>때 신문 기사로 다루어지고
체포되어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이 일어나게 됨에도 불구하고 - 미친 듯이 날뛰며
행패를 부리는 전쟁의 신을 건드리게 되어 그의 주먹이 날아가는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
 
학대를 받으며 자란 학대자
 
  여자들과 아이들에게 주먹질과 분풀이를 하는 아레스 남성은 대개 어린
시절에 매를 맞고 수치심을 느낀 적이 있는, 학대를 받으며 자란 학대자다.
그의 감정은 신체적 대응을 야기한다. 학대를 받았거나 공포에 떨거나 수치심을
느꼈던 어린이들이 그런 남성의 몸 속에 살고 있다. 이게 아니야라고 느끼는
순간 그는 이제 누군가에게 욕을 퍼붓고 매질을 해댄다. 이런 식으로 아버지의
죄는 여러 세대에 걸쳐 영속된다. 학대를 자행하는 남성들의 단체- 알콜 중독자
모임 Alcholics Anonymous을 본뜬 단체들 -에 가보면 이들 모두가 어린 시절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린 시절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자기의 공포감과 무력감을 억
누르며 지냈다. 그 결과 그는 희생자의 위치에 있지는 않게 된다. 그는 자제심
을 잃어버린 사람으로부터 얻어맞는 것이 어떤 것일까를 누구보다도 훨씬 더 잘
상상할 수 있고 신체적으로 커다란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 그 이유는 그가
그런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가 희생자라는 사실을 드러내
놓는 위험을 감수하기 전까지는 자기의 감정을 이입하지 못한다.
  가정은 그래서 아레스에게는 전쟁터가 된다. 이게 아니다 싶을 때 가족 성원
들에게 학대를 자행할 수 있는 곳이 된다. 격노한 남신 원형은 자기 내부의 어
린이를 대신하여, 수치심을 느끼고 학대를 받았으나 이제는 주먹을 휘두를 수
있는 자기 속의 소년을 대신하여 행동한다.
 
속죄양
 
  어린 아레스와 청년 아레스는 학교 마당에서 어떤 집단 때문에 화가 난
아이일 수도 있고 <냉정>하고 침착한 것이 더 나을 뻔한 상황임에도 상처를
입히 고 화를 내는 반응을 보이는 아이일지도 모른다. (거인 쌍둥이가 아레스를
항아리 속에 포로로 잡고 있을 때처럼) 그가 신체적으로 집단적인 습격을 받아
부상을 당한다면 인생은 신화와 같을 수 있다. 그가 버림을 받아 집단 밖으로
내다버려진다면 감정적으로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아레스는 생각 없이
행동하고 자기 감정을 감추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박대가 실제로 일어난다.
또한 그가 가정에서 이미 학대나 모욕의 희생자라면 학교에서 쫓겨날 소지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 크다.
  집에서 그는 부모와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형제간의 경쟁(아레스가 끊임없
이 아테나에 대하여 했던 것 같은)에서 진 형제로서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종종 그는 곤란을 겪으며, 스스로 또는 남들로부터 놀림을 받고 자극을 받아 함
정에 빠진 탓에 언짢아하며, 권위적인 부모로부터는 <꾸지람을 듣는다>. 부모
는 이 별난 아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기질을 가졌다는 이유로 업신여긴다.
  교실에서 아레스 소년은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속죄양의 역할을 맡는다.
장난을 치다가 붙잡혀 교장실로 불려간다. 선생이 그에 대해 편견을 가졌을
때도 속죄양이 된다. 그가 맡은 역을 알고 있는 다른 아이들은 그가 허물을
뒤집어 쓰도록 내버려둔다.
  일단 속죄양이 되어버리면 성인이 되어서도 그 역을 하게 된다. 여전히 화를
벌컥 내고 불량스럽게 굴어서 남들이 그를 제쳐 놓게 만든다. 다음에는 그가
자기가 입은 상처를 가족에게 입힐 확률이 높다.
 
일과 실업 자
 
  화를 잘 내는 남성은 직장에서도 문제가 많다. 그는 불끈 성을 내고 격해진
다. 아레스는 또 <원칙을 준수하는 데>에 대해 실질적인 어려움을 갖고 있어서
자신이 느끼기에 당장 필요로 하는 것 대신에 규칙이나 원칙을 따르는 데 어려
움을 겪는다. 그는 진실을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그것이 외교적
이지도 못하고 조심성도 없었을 때는 말이다. 아니면 그는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또 규칙에도 없는 예외적인 행동을 했을 수 있다. 그리하여 화를 내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아레스는 흔히 관료 제도나 사업에서 오래 견디지 못한다.
  승진 역시 문젯거리다. 아레스는 전략가가 아니며 장기적인 안목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직업 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는 너무 일찍
학교를 그만두어 버리거나 학교 생활을 잘해 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가 앞날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술과 아레스
 
  아레스는 성질 급한 연인, 춘꾼, 무사로서 방해와 억압을 받으며 다른 원형
들, 그리고 남성이 몸이 아니라 머리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문화와 대비된다.
종종 술은 아레스를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자유롭게 해준다. 때때로 술은
억제된 무의식과 감정을 풀어 준다. 싸움을 함께 한 연후에 같이 술을 마시는
팀 동료들 또는 군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동료애 같은 것이 그것이다. 학대를
일삼는 남성을 풀어 줄 수 있는 것도 술이다. 술에 취해 있을 때 훨씬 더 쉽게
폭력을 자행한다.
 
충족되지 않는 기대
 
  아레스 남신은 연인이지 남편은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 제우스(최고 업무
집행자 형)는 아레스의 행동 방식을 싫어했다. 아레스 원형은 책임감 있는 결혼
생활이나 성공적인 직장 생활을 영위해 나갈 자질과 의욕을 갖고 있지 못하다.
종종 아레스 남성은 남의 기대를 맞추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기대에 치지
못할 때 스스로를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런 일이 너무 자주 생긴다면 그는
영원히 좌절하게 되어 스스로를 패배자로 여기게 된다. 처음에는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사랑을 받다가 그 다음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를 기대받을 때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여성이 그의 감수성과 원기 왕성한
모습 또는 그의 열정과 성적 매력에 매료될 수도 있다. 아니면 그녀가 그 속에
상처 입고 버림받은 소년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를 동정하게 되는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일단 그와 관계를 맺은 그녀는 그를 신분 상승이 가능한
도시의 전문직 기혼 남성으로 개조하려 애쓰고 그렇지 못한 그에게 화를 내게
될지도 모른다.
 
남들이 겪는 어려움
 
질투심이 아레스 남성의 상대에게 문제가 된다면 그들의 관계는 아주
소란스러울 것이다. 아레스 남성에게 정절은 쉽게 오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그의
사랑과 충절에서 나오는 달성하기 어려운 위업이다 그는 순간적인 유혹에 대해
아니오 하고 말하는 것과 자신의 비도덕적이고 순전히 본능적인 성욕에 대해
아니오 하고 말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남근이 그의 행동을
결정하게 된다. 상황이 반복된다고 해도 당장의 상황과 비교할 때 나중의
결과는 그에게 희미하다. 그의 상대는 상처를 입을지도 모르며 비난 - "네가
감히 그럴 수가!" -이 쏟아진다. 특징적으로 아레스는 경험에서 배워야 하는데
여러 번 반복되기 전에는 교훈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이유 없는 질투심이 여성의 문제라면 아레스가 자기의 시간을 잘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성에게 질투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아마도 그는 술집에 들러
얘기를 하거나 게임을 하는 데 정신이 팔렸거나 아니면 뭔가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질투심이 문제라면 여성을 아레스 파트너가 자기를
위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녀와
다투는 과정에서 그녀가 경험한 고통과 겨루는 가운데 그는 아니오 하고 말할
줄 알게 되거나 자기가 좀 늦어진다면 전화를 걸 줄 알게 된다. 이같은 식으로
행동하는 또 다른 남성 유형은 간접적으로 적대감이나 원한을 드러내고 있을
수도 있다. 그가 시간을 기억하고 있고 그녀를 안심시키지 않기로 마음 먹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체로 보아 아레스는 순간적인 데가 있는 사람이다

혼외 자녀
 
  아레스 남신이 많은 여성들과 사이에 여러 아이를 두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레스 남성도 이 유형을 그대로 반복할 수 있다. 순간의 성욕과 성애를 좇아
사는 아레스는 가족 계획을 생각하지 않는 데다가 아이들을 좋아한다. 결혼을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아이들을 갖고 싶어한다. 아레스 남성과 성관계를 가진
여성은 가족 계획과 미혼모가 될 가능성에 대해 책임 있고 현실성 있는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아기를 갖게 되면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은
잘못된 것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그가 결혼하는 유일한 이유는 아이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학대하는 아레스
 
  신체적 학대는 아레스 남성과 사는 여성과 어린아이들에게는 최악의 상황이
다. 그는 화가 나면 그 화를 여자와 아이에게 푼다. 때리도록 내버려 둔다면
신체적 학대가 그치지 않을 것이며 그녀와 아이들이 신체적으로 학대받는
상황에 머무는 것이 지금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그녀는 학대의 징조가 보이거나 학대가 실제로 자행될 때
자신과 아이들을 보호하고 그가 그 짓을 못하도록 돕기 위해 그 장소를
떠나거나 경찰을 불러야만 한다. 만일 그녀가 애초에 그곳을 떠나거나 경찰을
부르는 식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그녀는 매맞는 여성이 될 것이다. 그녀는
외부의 도움을 곧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성장하는 길
 
아레스 남성이 어떤 자극에 대응을 할 것인지 아닌지 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을 때, 시 말해 순전히 반동적인 인간이기를 그만둘 때
심리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 경우에 그는 다른 원형들뿐만 아니라 자제심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자제심 배우기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잘하는 아레스 성격은 어떤 자극이 들어오면 화를 참지
못하고 공격적으로 반웅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제심을 배우는 일은
아레스에게는 남들에 비해 더 어려운 과제다. 일관되고 인내심이 있으며 사랑에
넘치는 부모가 있다면 어려서부터 자제심을 가장 잘 배웠을 것이다. 그것은
익힐 때까지 계속 출석해야 하는 수업과 같은 것이다.
  수년 전의 헐리웃 남자 배우 씬 펜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는 폭력적인 싸움
을 벌이고 계속해서 법정에 섰다. 스물여덟 살 때 재판을 받고 60일 구류를 언
도받았다. 그의 변호사 하워드 웨이츠먼은 그가 자제심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그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그는 사람들이 그를 자극하여
부적절하게 반응하는 상황에 이르게 하려 한다는 것을 배워야만 합니다. 그는
이와 같은 사고들(그가 생각하기에 펜의 아내, 록스타 마돈나와 키스하려 했던
남자를 때렸다)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이해해야 합니다."
  아레스 기질을 가진 전 테니스 챔피언 죤 맥켄로는 같은 수업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경기장 안팎에서 난폭하게 구는 것으로 유명한 맥켄로는 언론에 의해
어린애같이 구는 돼먹지 못한 선수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중요한 교훈을 배우기 위해서는 변화의 동기를 부여받아야 하며 그
다음에는 실행하면서 보복 또는 반동하려는 충동을 억제해야 한다. 억제된 아
레스가 지닌 폭발성은 자아가 이때 다른 반응을 선택할 수 있다면 즉 다른
원형으로부터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면 제거될 수 있다.
 
구조하러 간 헤르메스, 동맹 아폴론
 
  다행스럽게도 모든 원형들은 잠재되어 있으며 어느 하나가 두드러진다고 해
도 -특히 그것이 아레스라면 -다른 원형들이 활성화될 수 있다. 신화에서
헤르메스는 큰 항아리에 갇혀 있는 어린 아레스를 구조해 주었다. 이와 비슷하
게 헤르메스 원형은 사람을 구조할 수 있다. 그는 만일 헤르메스가 구해 주지
않았더라면 아레스처럼 반응하여 본능적으로 보복을 하였을 테고 그런 다음
속죄양이 되고 낙인이 찍혀 박대를 당하게 된다. 죤 맥켄로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헤르메스는 의사 소통 능력과 독립적이고 기발난 사고력을 나타낸다.
헤르메스는 파괴적인 상황으로부터 아레스를 구해 낼 수 있다. 거칠게 구는
그의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프리랜서 사진 작가 말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는 성인 아레스 또는 학교 마당에서 시비를 거는 다른 소년들에게 일부러
떠밀리고 있는 아레스 소년은 앙갚음을 하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말썽을 피울
것이다. 이미 말썽꾼이란 딱지가 붙어 버린 그는 또 책임을 뒤집어쓰게 될
것이고 속죄양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헤르메스가 그로 하여금 싸우는 대신 큰
소리로 말하는 것, 싸움을 피하게 하는 어떤 말을 하는 것을 배우도록 돕는다면
이런 경향은 변화한다.
  때때로 가족이 그가 자제력을 개발하도록, 행동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도록,
신체를 쓰는 대신 말로 해결하도록 도울 수 있다. 만일 가족이 그를 돕지
않는다면 늦게서야 코치나 정신과 의사 또는 그 누군가로부터 자제력을 배우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들은 그를 보살펴 주며 그가 죄를 뒤집어쓰거나 두려워
떨기보다는 오히려 자제심과 효과적인 표현 수단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
한다.
  학문 활동을 하고, 운동을 하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려면 아폴론 원형의 도움
이 필요하다. 아폴론은 아레스의 또 다른 주요 잠재 동맹이다. 아폴론은 원칙,
을 감정적 소원함, 자제심, 장기적인 목표 설정의 원형이다. 그는 헤르메스와
더불어 사태를 바로 보고 결과를 염두에 둘 줄 아는데다 의지와 지적 능력을
효과 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이 두드러진다.
  아레스 성격 때문에 스스로를 본래 모습대로 열정적인 투사로 만든 보비 케
네디는 암살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것이다. 케네디는
아이디어의 교류가 만찬의 필수적인 부분이며 스포츠 경쟁이 실제적으로
일상사이며 대학과 법대가 공식 경력을 쌓기 위한 준비인 정치 가문에서 사랑을
받던 아들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케네디의 아레스다운 격정은 헤르메스와
아폴론에 의해 부드러워졌다. 그리하여 그는 남들의 눈에 띄었고 긍정적으로
주목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심사 숙고를 위한 중단과 선택, 아테나의 영향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의 영웅이었던 아킬레스는 기질적으로는 아테나보다
아레스를 닮았긴 하지만 아테나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다. 그리스 군대의 사령
관 아가멤논이 전쟁터에서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여 아킬레스의 연인을 빼앗아
가자 아킬레스는 손을 칼에 갖다대고 칼집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아테나가 침
착하게 간섭하지 않았다면 폭동을 일으키고 살인을 저지를 뻔했다. 남들 눈에
는 보이지 않는 그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의 금발을 잡고서 다음과 같이 말했
다.
 
  내가 네 분노를 막으러 왔다. 그런데 넌 나에게 복종하겠느냐? ‥‥‥ 자 네 
  손에 쥔 칼을 놓아라. 그리고 네가 말로 그를 학대하더라도 싸움질일랑 그만 
  두거라 ‥‥‥ 언젠가 세 배 이상 뛰어난 재능이 너에게 주어지리라.

  아테나는 감정적 반응을 행동의 선택으로 바꾸어 놓는 심사 숙고의 순간, 내
면의 목소리, 중단을 나타냈다. 아레스 남성이 느끼는 사고라는 것은 자기
내부에 존재하는 <남>, 그가 방문할 수 있게 된 상담가 같은 것이다. 어떤
남성들 에게는 자기 내부의 다른 납성적인 면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합리적이고
사랑에 넘치는 어머니가 불어 넣는 여성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적극적인 상상, 원형 부르기
 
   적극적인 상상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가 생각하지 않고 반웅을 해버리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정신적으로 아테나를 <불러들일> 수
있다. 그녀를 상상하거나 직관함으로써 그는 대화를 상상할 수 있다. 그녀는
그에게 감정적인 상황 속에서 냉정을 찾도록,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그 결과를
충분히 생각하도록 조언한다. (아킬레스가 아테나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그리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패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일리아드>는 22장 대신에
1장으로 이루어졌을 뻔했다.) 유사하게 아폴론이나 헤르메스도 상상으로
활성화되고 불러들여 질 수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고통 되찾기
 
  어떤 남성이 어린 시절에 학대를 많이 받고 흔히 그런 것처럼 감정적 고통
때문에 그 경험을 <잊었거나> 억눌러 왔다면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남성 단체
활동을 하는 것이 그를 도울 수 있다. 점차적으로 그는 기억과 오랫동안 묻어
둔 분노, 슬픔, 무력감을 생각해 낼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러한 것들은
무의식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서 여전히 그의 행동에 강력하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억압되었던 것을 생각해 낼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신뢰감과
동정심을 발견하는 누군가에 의해 그 경향이 멈추어질 때까지 학대와 함께
부모가 저지른 죄가 다음 세대들까지 특징짓는다. 이러한 과제는 아레스
남성들에게 나타나는데 그들은 스스로가 전에 취급받던 것과 똑같이 학대하는
식으로 행동하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한다.
 
아레스에서 마르스로 발전하기
 
  전쟁욕이 강한 그리스인들의 전쟁의 신인 아레스가 시대와 상이한 문화와
더불어 로마의 마르스로 발전하며 그러한 변화 과정에서 공동체의 수호자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남성의 아레스적 면은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다. 청년
아레스는 미식 축구나 하키 경기에서 거칠고 비열한 경기를 벌이고 연애를
수없이 했을 것이고 자신을 안정된 남성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레스 남성들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또한 만일
학대를 받아 보지도 않았고 버림을 받지도 않았다면 그가 가장이 되었을 때
자기 아이의 친구들과 같이 놀고 그들 일에 일일이 관심을 갖고 관여하는
대지의 아버지일 수 있다. 그는 천성적인 수호자다. 그의 아이들을 들볶는 자는
누구든지 아레스 아버지를 대면하게 된다. 그는 필요하다면 몸으로 싸울 태세가
되어 있다. 나이가 먹게 되면 다른 사람들의 안전과 권리를 위해 기꺼이
투쟁하는, 공동체의 지도자가 될 수도 있다
 
제9장
헤파이스토스 : 대장간의 신
장인, 발명가, 외톨이
 
  헤파이스토스의 창조적 재능은 확고하게 대지에 근거를 둔 것이며 그가 생산 
  한 것에는 장대함은 물론 마력이 있다. 그는 자기 분야에서는 일인자이며 그 
  를 따를자가 없으나 자신을 전적으로 자기 일과 동일시하는 현대 남성처럼 그 
  외의 분야에서는 어쩔 줄 몰라 한다.
  - 아리아나 스타시노풀로스, <그리스의 신들>
 
  헤파이스토스의 환상은 이렇다. 노동과 땀으로 일구어진 문명이 자라나는
대지에서 거부당한 존재, 계급 의식에 불타고 불을 지르고 싶을 만큼 깊은
원한과 적의로 끓어오르며, 끊임없이 창조적이어서 전 세계의 비상한 재주란
재주는 다 갖고 있으며, 쉬지 않고 화산처럼 폭발적이면서 정복 군주에
대항하여 무장을 늦추지 않으나 전쟁과 다툼을 좋아하지 않고 오히려 평화를
일구며 천성적인 인도주의자들, 간단히 말해 불 그 자체이자 불처럼
정열적이라고 하겠다.
  - 머레이 스테인, <헤파이스토스 : 내향성의 한 유형>
 
  남신, 원형, 남성 헤파이스토스는 물건을 만들고 싶어하는, 곧 기능적이면서
도 아름다운 물건들을 창조하려는 인간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충동을 의인화한
다. 올림포스 산에서 박대당하고 내팽겨쳐진 헤파이스토스는 권력과 외모를 중
시하는, 제우스가 다스리는 고상한 세계에서는 그 진가를 인정받지 못했다. 대
신에 그는 땅 밑에 자리한 자신의 대장간에서 혼자 작업을 했다. 그의 속성도
마찬가지로 가부장제에서 그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 남신을 닮은 남성
들은 출세를 하는 데 어려움을 갖고 있다.
 
헤파이스토스 남신
 
헤파이스토스(로마에서는 불카누스로 불리웠음)는 대장간의 신, 화산의 불을 이
용하여 쇠달굼질을 했던 올림포스의 장인이자 금속 세공장이었다. 그를 숭배하
는 이들은 헤파이스토스에게 화산의 파괴력을 조절해 달라고 빌었다. 그는 지
옥불의 신으로 여겨졌으며, 그의 그리스 식 이름도 일반적인 의미로는 <불>을
뜻하였다.
  그는 튼튼한 목을 가졌고 가슴에 털이 많이 났으며 발이 기형이어서 뒤뚱거
리면서 걷는, 큰 체구에 건장한 남성으로 그려졌다. 축복을 가장 덜 받았고, 아
마도 가장 덜 행복했던 남신이었던 그는 불구였으며,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
며 신들의 박대를 받았으며 실연을 당했다. 그렇지만 그는 또한 창조적인 재능
의 소유자이자 노동을 한 유일한 남신이었다.
 
계보와 신화
 
  가장 널리 알려진 그의 출생설에는 제우스가 자기 머리에서 아테나를 낳고서
그녀의 유일한 부모로 인정된 후 성이 난 헤라가 "나는 못할 줄 알고"라며
맞받아 쏘아붙이면서 남자와 성관계를 갖지 않고 혼자서 헤파이스토스를
낳았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아테나는 완벽한 몸을 타고난 데 반해
헤파이스토스는 기형의 발을 갖고 태어났다. 이러한 결함은 헤라를 창피하게
하였다. 결함을 보자마자 그녀는 갓 태어난 아이를 버릴 생각으로 올림포스 산
아래로 내동댕이쳤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화가-난 제우스가 -어린
헤파이스토스가 집안 싸움을 할 때 헤라의 편을 든 것에 화가 치밀어 -올림포스
산에선 헤파이스토스를 집어던졌는데 그가 렘노스란 섬에 떨어졌을 때
절름발이가 되었다고 한다. 버림받은 아들은 두 바다 요정, 테티스와
에우리노메에 의해 구조되어 열아홉 살이 될 때까지 그들 손에서 자랐다.
그들과 함께 살면서 헤파이스토스는 장인의 일을 배워, 양어머니들에게
아름다운 보석을 만들어 주었다.
 
장인 헤파이스토스
 
  헤파이스토스는 올림포스에서 발명을 잘하기로 소문난 장인이다. 예를 들면
헤파이스토스는 금으로 된 멋진 옥좌를 만들어 헤라에게 주었는데 그녀는
기쁘게 그 위에 앉았다. 그러나 그 옥좌는 정교하게 공들여 세공한 올가미였다.
일단 그녀가 그 위에 앉기만 하면 보이지 않는 끈에 묶여 공중에 뜨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헤라는 약오르지만 스스로 어찌해 볼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어서 모든 이들이 보는 공중의 한가운데 있는 옥좌에 앉아 떠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다른 설에는 헤파이스토스가 자기 태생에 관해서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헤라를 묶어 두려 금옥좌를 만들었다고 전한다. 그는 그녀로부터
정보를 캐내기 위한 수단으로 이 올가미를 고안해 냈다는 것이다. 다른 설에는
헤파이스토스가 헤라를 풀어 주기 전에 아프로디테나 아테나에게 신부가 되어
줄 것을 요구했다고도 전한다.
  헤파이스토스 말고는 아무도 그녀를 풀어 줄 수 없었는데 그는 두 명의
대모들과 함께 살고 있었던 바다 속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의 형이자 전쟁의
신 아레스가 힘으로 밀쳐 내어도 보았지만 헤파이스토스는 그에게 불을
던짐으로써 그를 몰아 냈다. 이번에는 술과 황홀경의 신 디오니소스가 그를
술에 취하게 만들어 그를 이겼다. 헤파이스토스는 포도주를 전혀 본 적도 없고
맛본 적도 없었던 탓에 성급하게 들이마셔 버렸다. 그는 술이 몹시 취한
상태에서 당나귀 등에 태워져 디오니소스와 함께 올림포스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또한 혜시오도스의 <신통기>를 보면 헤파이스토스가 제우스의 복수의 도구 로
최초의 인간 여성 판도라를 창조했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리스의 가부장제
설화에 나오는 인간은 원래 남성들로만 이루어졌으며 제우스는 그들에게 불을
주지 않았다. 그 후 프로메테우스가 불씨를 훔쳐 남성들에게 주었다. 이러한
행위는 제우스를 진노하게 하였고 제우스는 남성들에게 불행과 혼란을 가져다
주도록 헤파이스토스를 시켜 불멸의 여신들을 본따 아름다운 여성을 창조하도록
했다. 그녀는 멋있게 차려 입고 부끄러움을 모르며 사람을 잘 속이라고
가르침을 받았으며 성적인 매력을 부여받았으며, 단지인지 상자인지를 하나
받았는데 그것을 열자 고통과 죄악과 질병이 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헤파이스토스는 또 올림포스 신들을 위해 궁전을 건립했으며 제우스의 벼락
과 왕권을 만들었고 태양의 신 아폴론을 위해서 하늘을 가로지르며 여행할 수
있는, 날개 달린 전차를 만들어 주었고,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에게는 활을,
데메테르에게는 낫을, 아테나에게는 무기를, 아킬레스에게는 갑옷과 투구를,
하르모니아에게는 결혼 목걸이를 만들어 주었다. 그는 또 금으로 된 하녀를
만들었는 데 아리따운 여인의 외모를 하였고 말을 할 수도 있고 그가 시키는
것을 능숙 하게 해낼 수 있었던 그의 천재성이 발휘된 작품이었다.
 
배신당하고 박대당한 연인
 
  헤파이스토스는 사랑과 미의 신인 아프로디테를 부정한 아내로 둔 남편이었
다. 그녀는 남신들, 인간 남성들과 많은 염문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자기가
일터로 나간 사이 아프로디테의 정부가 방문했다는 의심을 품은 헤파이스토스
는 보이지 않는 그물을 침대 기둥에 매달아 서까래에서부터 길게 늘어뜨려 놓
았다. 그런 다음 그는 아레스와 함제 침대에 누워 있는 아프로디테를 불시에
습격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간통 현장을 목격하라고 헤파이스토스가 불러들인
남신들은 그 광경을 보고는 분노를 느끼기보다는 웃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헤파이스토스는 전에 처녀 여신인 지혜의 신 아테나와 사랑에 빠진 적이
있었다. 당시 그는 열정에 차서 그녀와 정을 통하려고 하였다. 그가 그녀를
임신 시키려고 하자 그녀가 그를 옆으로 밀치는 바람에 그의 정액이 땅에
떨어져 대신 가이아(어머니 대지)를 기름지게 하였다. 그때 생긴 아이가
에릭토니오스였다. 그는 아테네 왕실의 창시자로 아테나의 손에서 자랐다.
 
헤파이스토스 원형
 
헤파이스토스 남신이 을림포스에선 내쫓긴 것과 마찬가지로 이 원형은 영웅적
태도`지적이고 고상한 정신적 가치`권력`적응력`예견력에 가치를 두는
문화에서는 그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고 박대당하는 원형이다. 가부장제
사회들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늘의 남신 문화에서는 <지상>의 것, 곧 어머니
대지`열정적인 감정 `본능`육체`여성`헤파이스토스를 닮은 남성들은 그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하며 억압을 받는다.
  유아 때 헤파이스토스는 올림포스 산에서 벼락을 가지고 군림했던 아버지
제우스와, 하늘의 여왕이었던 어머니 헤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헤파이스토스
가 어른이 되었어도 올림포스란 곳이 그에게 불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신화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올림포스 산에 간 그는 우스워 보이는 익살꾼, 취객
또는 부정한 아내를 둔 남편으로 취급당했다. 그렇지만 자신만의 활동
영역이었던 대장간에서 일하는 장인 헤파이스토스는 대장간의 불과 도구들을
이용하여 원재료를 아름다운 물건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러한 생활형은 창작 원형이다 창작이란 곧 화산불과 대장간의 비유에서
나오는 작업, 올림포스에서 내던져진 존재로부터 나오는 작업, 부상당한
창조자를 회복시키고 드러내는 작업이다. 헤파이스토스 원형은 <영혼의 대장간>
-제임스 조이스가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사용한 은유다 -으로부터 나오는
창작욕에 불타고 있다.
  이 원형이 출현하면 -그렇지 않았더라면 남성 (또는 여성)내부에 묻힌 채
남아 있을 -미적 감각과 풍부한 표현력이 자유롭게 펼쳐져 형태를 부여하게
된다. 이러한 의식화 방법은 외적인 경험이 내적인 의미로 바꿔는 통찰력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대신에 내면의 요소가 글자 그대로 눈에 보일 수 있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게 된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위대한 조각 작품들을 그들이 <갇혀 지내온>대리석
덩어리에서부터 자유롭게 풀어 주었다고 생각했다. 그가 몇 걸음 뒤로 물러서서
새로이 끝낸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는지 그리고 자기 내면을 얼마간이 나마
드러내 보였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어쩐지 궁금하다. 헤파이스토스 원형을 가진
남성(또는 여성)은 자기 속에서 깊게 느껴지면서도 뭔가 분명하지 않은 것에
형태를 부여하여 작품을 만들어 낸다.
 
지하 동굴의 불과 대장간
 
  헤파이스토스와 연관된 불은 땅 아래, 곧 뜨거워진 중심부의 불길로 땅 속
깊은 곳에서 치솟는 화산의 용암이다. 땅속의 불은 열정적인 감정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것이 표현될 때까지는 육체에 담긴 격렬한 욕정의 불길, 또는
붙들고는 있으나 풀이 죽어 있는 원한과 분노, 또는 몸(또는 인간 세상)속에서
꿈틀 거리고 느껴지는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이 그것이다.
  아주 내성적인 사람에게는 속 깊은 곳에 있는 이런 감정들이 갑자기 예기치
않게 튀어나을 수도 있다. 처음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 다른 사람에게 나타나서
는 거의 변함 없이 그 사람이 "난 당신이 이토록 강하게 느끼고 있었는지 몰랐
습니다" 하고 놀라게 된다.
  헤파이스토스 원형은 남성 (또는 여성)으로 하여금 자기 느낌에 관해 말하거
나 드러내지 않게 한다. 그는 대장간 같은 자신만의 공간에 가서 혼자 일하기
를 좋아한다. 거기서 그는 자기 느낌을 순화하거나 일을 하는 가운데에 그것들
을 표현한다. 예를 들면 평화롭고 질서가 잡힌 가정을 갖고 싶어하는 건축가는
(자기 가족에게 자기가 무질서를 얼마나 강하게 느끼고 있는지를
드러내기보다는) 그러한 느낌들을 자기가 고안하는 집 설계로 펴보일 수도
있다. 표현주의 계열의 추상화가는 자기의 화폭에 그가 동경하는 분위기를
표현하거나 (말해지지 않거나, 기껏해야 대충 말해진)욕구들이 너무나 무시되고
있다는 느낌이 주는 분노와 고통을 표현할 수도 있다.
  대장간은 그가 깊이 느끼고 있는 것을 자기 밖에 있는 어떤 것으로
변형시키거나 풀어 내는 작업을 하는 곳이다. 여러 예술가들의 스튜디오나 지하
작업실이 실제로 남성들이 헤파이스토스 원형을 가지고 혼자 있기 위해 가는
곳이자, 지하 대장간에 있는 헤파이스토스가 되는 장소인 것이다.
  헤파이스토스가 활동적인 원형일 때 이루지 못한 사랑, 손에 넣을 수 없는
여성 또는 불필요한 사랑이 용광로의 불을 지필 수 있다. 대장간의 불은 창조적
작업에 영감을 주는 표현되지 않은 열정인 것이다.
 
절름발이 장인
 
  언급한 대로 헤파이스토스는 올림포스의 주요 신으로는 유일하게 신체 장애
를 겪고 있고 유일하게 불완전한 신이었다. 그는 올림포스에서 버림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가 내반족을 가지고 태어나 어머니 헤라의 기분을 상하게 하였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제우스 꼭 분노를 사서 산 밖으로 내던져 절름발이가 되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헤파이스토스의 신체 결함은 그의 부모가 준 감정의 상처와 따로 메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가 절름발이가 되고 버림을 받았기에 헤파이스토스는
대장간의 신 - 발전하고 감정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방도로서 일하고 싶은
본능의 원형 - 이 되었다. 헤파이스토스는 그의 창조성이 그(또는 그녀)의
감정의 상처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절름발이 장인(또는 부상당한 예술가,
작가, 치료사, 발명가, 제작자)의 원형이다.
  장인 헤파이스토스는 치유할 동기가 상처를 입은 자신에게서 나오며 그가
다른 이들을 치유할 때 자신의 상처도 치유되는, 상처 입은 치유가와 아주
흡사하다. 헤파이스토스는 기형적인 발을 가졌기에 다른 올림포스 신들을
웃기는 뒤뚱 걸음을 걸었고 그것을 보고 올림포스 신들은 놀려댔다. 그는
아름다울 수 가 없었기에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었다. 그의 발은 마음대로
움직여 주질 않았지만 그가 만든 것은 완벽하게 움직였다. 그의 작업을 통해
헤파이스토스와 그를 닮은 남성(과 여성)들은 스스로 본래의 모습과 역할을
되돌아볼 수 있다. 이러한 반성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뿐만 아니라
자존심을 살린다. 그리하여 일을 하게 만든 상처들이 치유되는 것이다.
  융 학파의 저술가 제임스 힐맨은 논평하기를, "우리 부모는 우리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들이다. 모든 이는 어버이로부터 받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신화에
나오는, 상처를 입거나 상처를 입힌 부모의 모습은 <부모는 상처다>는 심리적인
선언이 된다." 글자 그대로 우리는 부모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부모가
상처다> 같은 말은 상처가 또한 우리의 부모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뜻할 수 있다. 우리의 상처는 우리 운명의 아버지이자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헤파이스토스 원형이 어떤 남성의 인격의 주요 요소일 때 그는 절름발이
장인의 유형을 따를 수도 있다. 박대와 상처가 그의 창조력의 <어버이>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은 (두 명의 양 어머니를 가졌던)헤파이스토스처럼 그가
누군가에 의해 키워지고 자기의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어떤 매개물을
발견하고 기술을 발전시켜 나갈 기회를 가질 정도로 충분한 행운이 있을
경우에만 생길 수 있다.
  올림포스 산에서 좇겨라 <지상에 내려>왔다는 것은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
산에서 쫓겨난 것과도 같다. 두 신화에서 고통과 일을 해야 하는 필요성이 <인
간의 타락>에서 비롯된다.
 
가정 평화의 수호자
 
  헤파이스토스는 올림포스 산에서 좇겨나 영원한 불구가 되었을 때 아이로서
학대를 받았다. 갈등으로 고통받는 가족 속에서 아이는 종종 평화의 수호자 노
릇을 한다. 흔히 절박한 갈등의 첫 표시에 과도하게 민감한 것은 상처를 입기
쉬운 어린아이다. 올림포스에서 이 아이는 헤파이스토스였다. <일리아드>앞
부분에 나오는 사건들에 대한묘사는 저녁 밥상머리에서 벌어지는 부모들의
말다툼에 대한 것이다. 가정 평화의 수호자, 헤파이스토스가 재빨리 끼어들지
않았다면 확대되었올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많은 가정에서 모두
너무나 공통된 것이다. "아빠가 우리 모두에게 분풀이를 할 테니 아빠를 화나게
해서는 안돼"가 헤파이스토스가 취하는 방침이다.
 
  통치자들은 반대를 했다. 하늘의 군주는 테티스에게 아들에게 작위를 수여하 
  고 그를 모욕한 이들의 콧대를 꺽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하여 하늘에서  
  싸움이 시작된다. 헤라는 자기 남편에게 달겨들고 그의 비난을 심하게
받는다.    그녀는 잘못 억제된 분노를 삭이면서 조용히 앉아 있고 폭동은
신들의 서열을    뒤흔든다. 그러자 그녀의 아들 헤파이스토스가 평화를
수호하기 후해 나선다.    그는 남신들이 남성들을 위하여 다투고 올림포스
신전에서 벌어지는 잔치의     즐거움을 망치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한다.
아버지가 화내지 않고 모두가 그의    권위를 느끼게 하도록 자기 어머니만
단념하고 아버지에게 상냥하게 말하면     만사가 잘될 것이었다. 그러자
헤라가 웃는다. 그녀는 아들이 건네주는 술잔을    받는다.
 
헤파이스토스와 아프로디테 : 일을 사랑과 미와 결합
 
  <오디세이아>에서는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헤파이스토스와 결혼한
상태에서 수없이 연애 행각을 벌였다. 연애할 때마다 아이를 낳았다. 헤파이스
토스와의 사이에서만 아이가 없었는데 대신에 그들의 결혼은 아름다운 물건들
을 탄생시키는, 장인 기술과 미의 결합이 의인화한 것으로 보였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 헤파이스토스는 카리스와 결혼하였고,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서는 아프로디테의 하녀인 (또는 그녀의 축소판)카리스들의 막내
아글라이아 가 그의 아내였다. 각각은 미 또는 우아가 장인 정신과 결합하는
이야기다.
  헤파이스토스는 여러 모로 아프로디테와 결합하려 애쓰고 있다. 일에서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에서도 헤파이스토스 원형은 미와 사랑에 빠진다 -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으나 가지고 싶어하는 것이다. 헤파이스토스 안에 있는 깊고도
열정적인 느낌은 아프로디테처럼 격정과 관능미를 가진 아름다운 여성에 의해
흥분될 수 있다. 그녀는 그의 작업에 영감을 불어 넣어 주고 감정을 자극할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뒤바뀐다. 그녀가 심리적으로 그에게  
<수태를 하게 하여>그의 창조적 재능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어 새로운 작업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헤파이스토스와 아테나 : 창조적 작업과 지성의 결합
 
  앞서 언급한 테로 헤파이스토스는 전에 지혜와 수공예의 여신, 아테나를 따
라다리다가 겁탈한 적이 있다. 그녀가 원치 않는 성관계를 거부하자 그의 정액
이 바닥에 떨어져 대지, 가이아를 수태시켰다. 그때로부터 <대지의 아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에릭토니오스가 태어났고 그 아이를 키우는 일이 아테나에게
맡겨졌다. 나중에 그는 전설에 나오는 아테네 왕가의 조상이 되었다.
  헤파이스토스를 아버지로 둔 아이를 기른 아테나는 사물의 이치를 아는
지혜를 대표한다. 그녀의 지혜는 성공적인 전략을 세운 야전 사령관의 지혜,
또는 타피스트리를 마음 속에 디자인하여 한줄 한줄 짜낼 수 있는 직공의
지혜다. 현대의 아테나들은 전투 계획 대신에 사업 계획에 관한 얘기를 나누며
시장에서 승리를 거둔다.
  남성의 마음 속에서 아테나와 헤파이스토스가 결합하였다면 작품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알게 해준다. 헤파이스토스 원형이 아테나를 추구하는 것은
남성으로 하여금 이러한 특질을 가진 여성과 만나도록 해준다. 남편의 창작을
독려하거나 그것으로 돈을 버는 길을 찾게 하는 과제는 (만일 그가 자신의
이러한 측면을 개발시키지 못할 경우)당연히 그녀의 몫이 된다. 아테나 식의
헤파이스토스 창조성의 양육은 동성 상대자에 의해서도 행해진다.
 
헤파이스토스 살려 내기
 
  이 원형을 살려 내는 유일한 길은 시간을 쏟는 것이다. 남들과 어울리지 말
며, 자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여러분 속에 가두어진 무언가를 직관적으
로 알아채고 바꾸고 표현하고 변형시킬 수 있는 것에, 일하는 과정에 물두하게
하라.
  헤파이스토스의 내성을 살려 내는 일은 외향적인 아이들, 어른들이 내내 자
기와 놀아 주기를 바라며 매달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데 의의가 있
다. 조용히 지내는 것, (수동적인 오락인 텔레비전 없이도)혼자서 재미있게
지내 는 법을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함으로써 부모들은 어린아이
속에 있는 헤파이스토스를 살려낼 수 있다. 벽돌과 찰흙 쌓기 놀이는 시작이며,
상상력과 손작업이 따르는 일이 수없이 많다 부모 자신이 대장간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헤파이스토스가 되면서 어린아이에게 그들과 똑같이 조용하고
창조적인 활동에 낄 수 있게 하는 특권을 주는 것은 이런 류의 시간의 가치를
아이에게 전하는 것이다. 창조적인 시간에 빠져 있는 것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다. 헤파이스토스의 이런 면을 개발시키고 싶은 어른들은
자녀들에게 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스스로를 격려하도록 애쓸 필요가 있다.
  융이 프로이드에 의해 자기와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버림을 받고는 계승자의
위치에 있던 심리 분석학계의 정상에서 밀려났을 때 그는 가장 암울한 시기로
접어들었다. 그는 내적인 불확실성과 계속되는 내적 압력의 시기 내내 고립되어
있었고 그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 - 비웃음과 버림의 대상이 된 헤파이스토스의
모습이다. 그렇지만 그는 헤파이스토스가 그랬던 것처럼 자기 고유의 창조적
재능을 살릴 길을 찾아냈다.
  융은 다음과 같이 썼다.
 
  처음 겉으로 나타난 것은 아마 열 살 때인지 열한살 때인지 모를 어린 시절의 
  기억이었다. 그 당시 나는 블럭 쌓기 놀이에 빠져 있었다. 병들을 대문과
등근    천장의 면들을 만드는 데 이용하면서 어떻게 하면 작은 집들과 성들을
잘 쌓    을 수 있을까를 골똘하게 생각했다. 얼마쯤 후에 나는 흙을 회반죽
대신으로    쓰고 돌을 이용하였다. 나는 오랜 동안 이런 구조물들에 얼을
빼았겼다. 놀랍    게도 이러한 기억이 상당한 감정을 동반하였다. "아하,
이러한 것들에도 아직    생명이 있구나. 어린 소년이 여전히 주변을 서성이고
있고 내가 갖고 있지 못    한 창조적인 생명을 갖고 있구나, 그런데 난 어떻게
하면 될까?" 하고 혼자말    을 하였다 그것은 성인 남성으로서 현재에서 열한
살까지의 간격을 잇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만약
내가 그 시기와 어떻게든 연결    해 보려고 한다면 그때로 돌아가 어린아이
같은 놀이를 하면서 한번 이상 어    린아이가 되어 보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 순간이 내 운명의 전환점    이 되었지만 나는 끊임없는 저항과
체념 끝에야 항복했다. 왜냐하면 어린애     같은 놀이를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굉장히 비참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호숫가에서, 물 속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돌들을 주워모아
쌓아두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쌓기 시작했다. 오두막, 성, 마을 ‥‥‥
  난 매일 점심 식사가 끝나고 쌓기 놀이를 했다 ‥‥‥ (난) 이런 놀이를
하면서 정신이 명료해졌고 ghs자서 어렴풋하게 느쪘던 존재의 환상을 붙잡을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생각했고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물
었다. "지금 진짜 넌 무엇을 하려고 하지? 넌 작은 도시를 짓고 있고 마치 그게
의례라도 되는 것처럼 하고 있단 말이야!" 나는 내 질문에, 다만 내 자신의
신화를 발견해 가고 있다는 내적 확신에 대해 어떠한 답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쌓기 놀이는 단지 시작에 지나지 않았기 력문이다. 그것은 내가
나중에 주의깊게 기술한 바 있는 일련의 공상을 풀어 주었다.
  이런 류의 일이 나와 일치를 이루었다. 여하튼 내가 난관을 뚫었던 인생
말년에 나는 그림을 그렸거나 돌을 새겼다. 그러한 경험이 그것에 바싹 뒤쫓는
생각과 일에 대한 입문식임을 입증했다.
 
헤파이스토스 남성
 
헤파이스토스 남성은 격렬하면서도 내성적인 사람이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
는지 남들이 알기 힘들거나 또는 그 자신도 자기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힘들어 한다. 그는 감정적인 절름발이,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화산, 또는 고도
로 창조적인 생산을 하는 남성이 될 수 있다.
 
유년기
 
  헤파이스토스 아이는 어머니가 돌보기 쉽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격
렬한 에너지와, 자기 속에서 이루어지는 신체적인 움직임에 대한 감수성을 갖
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고통과 분노로 값자기 몸부림칠 수도 있는 뚤뚤 말려
있는 스프링 같은 고요함을 갖고 있다. 그는 보통 그의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
는 일들에 도취되었다가도 쉽게 관심을 딴 데로 돌리는, 침착하고 꼭
껴안아주고 싶은 아기가 아니다. 그는 자신만의 생각을 갖고 있으며 마음을
끄는 것에 몰두하며 남이 그에게 관심을 가져주기 원하는 것에는 몰두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이 어렵고 헤파이스토스 남신처럼 아기에 대한 기대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어머니로부터 버림을 받은 경우 또는 학대하는 가정에서 태어나는
불운을 가진 경우 이러한 인성 기질들이 강화된다. 그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명랑한 성격을 천성적으로 타고난 아이가 아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수줍고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아이가
될 수 있다.
  학교에서 그는 외톨이, 주변에서 판찰하는 아이, 어울리지 못하고 활동의 중
심에 있지 못하는 아이일 수 있다. 사람에게보다는 사물과 기계에 더 관심이
있고 남들이 그가 만들거나 하는 일을 통해 그와 관계를 맺는 것이 필요하다.
그를 꾀어서 말하게 한 선생님이나 어머니는 대개 그의 관심사를 격려하거나
그가 자신이 만든 것을 보여 주고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또는 그것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설명할 때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그렇게 한다.
  그는 자기의 개성을 존중받는다면,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다면, (대중과 어울
리지 못하는 사람이 되도록 강제받기보다는)자기의 관심사를 따르도록 적극적으
로 격려받는다면 자존심을 살릴 수 있다. 이러한 지지는 그가 방해받지 않고
살고 자신의 창조적 능력을 나이가 들어 개발할 수 있게 한다.
 
부모
 
  신화에 나오는 헤파이스토스는 버림받은 아들이었고 버림은 헤파이스토스
소년의 운명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헤라같이 자기의 자존심을 높이기 위해 -
완성이나 경쟁적인 행동,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라>는 식의 위업으로서
- 아기를 원한다면 또 그녀가 자기 기대대로 살아 주지 않는 아기를 낳는다면
(거의 늘 이런 형의 비모성적이고 자기애가 강한 여성의 경우)그녀는 그를
완전하 지 못하다는 이유로 버릴 것이다.
  신생아가 어떤 점에서 기형이라는 신화를 삶이 모방한다면 전적으로 버림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자기 고양의 수단으로 자식을 필요로 하는 어머니의
경우결함이 있는 아이는 그녀의 자아에 심한 타격을 가져다주며 굴욕의 원천이
된 다. 그녀는 가형이라는 사실 자체에 과잉 반응을 보이며 그에게 골을 내고
그 를 전적으로 무시해 버림으로써 감정적인 절름발이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아 이를 공공 시설에 수용할 수 있다면 그녀는 금세라도 그에게서 벗어날
것이고 그런 연후에는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와는 대치되는 신화에서처럼) 아버지의 버림과 학대가 불구의 원인이 되기
도 한다. 헤파이스토스 소년은 남들이 자기에게 바라는 것을 눈치채지도 못하
고 외교적이지도 못하며 격한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권위적인 아버지(특히
술주정뱅이기도 한 아버지)의 화를 부르기도 한다. 그런 아버지는 아마 어머니
편을 든다는 이유로 그에게 매질을 하기도 할 텐데 이는 제우스의 화를 돋구었
던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학대는 감정적인 상처뿐만 아니라 영구한 신체적 손
상을 가져올 수 있다.
  평범한 가족 내에서조차도 헤파이스토스 아들은 사랑을 제일 받지 못하는
아이, <지나치게 심각>하다든지 <지나치게 격렬하고 성미가 까다롭다>든지 <지
나치게 움츠러든다>거나 <지나치게 비사회적>이어서 남다른 아이일 수 있다.
성취욕과 야망이 없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으며 다른 아이들과 불리하게 비교를
당한다. 헤파이스토스 소년은 이러한 박대와 경멸 때문에 두 번이나 고통을
당한다. 처음에는 부정적인 경험 때문에 두번째는 그런 경험을 받아들여서
신경을 쓰기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성장하는 데 이상적인 상황이라면 헤파이스토스 소년은 그의
손과 정신이 일하는 방식을 기뻐하는 부모를 갖고 있다. 그의 가치를 인정하고
천성대로 자라도록 격려하며 자신의 내성적인 성격의 정당함을 인정하면서도
사회적으로도 좀더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돕는다.
 
사춘기와 청년기
 
  헤파이스토스 청년이 창조적인 수단을 발견할 정도로 운이 좋아, 자기의 기
술 및 예술가의 안목을 지우게 된다면 사춘기와 청년기는 그만의 창조적인 작
업에 착수하는 시기다. 그의 재능을 인정하고 그가 발전시켜 나갈 도구와 기술
을 제공하는 장인에 힘입어 재능을 키움으로써 일찌감치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그는 전연 다른 세계에 들어가기도 한다. 대도시에 있른 예술 공예 학교가 그
예가 될 수 있다. 그는 학교에 자신의 활동 공간을 갖게 되며 작업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하고 남들을 사귀는 수단을 갖게 된다.
  내성적인 헤파이스토스 아이는 가족에 속하지 못챘다는 느낌을 강하게 가졌
을 수도 있다. 이제 청년 남성이 된 그는 <진짜>부모 - 그를 좀더 많이 닮은
사람들로 땅에 발을 딛고 손수 일하는 사람들, 곧 장인이나 예술가들 - 를 찾
으려 집을 떠날 수도 있다. 만일 그가 버림을 받고 학대를 받았다면 그는 골똘
히 생각에 잠겨 화를 내고 우울증에 걸린 십대가 되어 복수를 꿈꾼다. 헤파이
스토스는 주먹으로 되받아치는 대신 학대자를 굴복시키려는 정교한 계획을 세
운다. 또는 지하철이나 빌딩 벽에 그림을 그리는 낙서 화가가 될 것이다. 외톨
이인 그는 갱단이 되지는 않는 게 일반적이다
  젊은 헤파이스토스가 격분을 거듭하게 되면, 또 그가 불행하고 화를 낸다면
보통 의도적이지는 않더라도 (특히 그가 남들보다 뛰어나다면) 사람들을
협박하려 들 수도 있다. 격렬한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탓에 무뚝뚝하고 분노에
차 있 을 수 있다. 이런 화를 알아채는 사람들이 그에게 주의를 기울이지만
누군가에 게 폭언을 퍼붓기보다는 화를 참거나 스스로를 혐오하는 게 더
특징적이다.
  헤파이스토스 남성들이 품고 있을 수 있는 소외와 분노의 정도가 어떻든간에
버림받은 경험이 있는 대부분의 헤파이스토스 남성들을 중증의 우울증에서 처음
구해 내는 일은 힘들고 육체를 쓰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자동차를
운전 또는 정비하거나 또는 몰두할 수 있는 기술을 발견함으로써 이러한 구원을
찾기도 한다. 그런 다음에는 보상적인 작업 - 그들의 창조력과 화까지도
포함하는 심리적 에너지를 이용하는 작업을 한다면 그들은 성장할 수 있게
된다.
 
직업

  헤파이스토스는 유일하게 일을 한 남신이었다. 스튜디오, 작업장, 실험실에
해당하는 대장간에서 그는 열정적으로 일했다. 아름답고 기능적인 물건들,
무기, 탈것, 살아 있는 듯이 보이는 금으로 된 하녀와 판도라도 만들어 내었다.
  인생은 곧 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헤파이스토스 남성처럼 일에 몰두하고
헌신한 남성은 없다. 의사가 되기 위해 병원에서 수련을 받던 시절에 나는 일에
대한 열정과 특수 기술 면에서 헤파이스토스를 닮은 많은 남성들을 만났다. 그
중에는 20년 이상 나이 어린 인턴과 레지던트를 나카떨어지게 할 정도의
정력으로뿐만 아니라 외과적인 자질과 연구로 레지던트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외과 의사들이 있었다.
  의대생이었던 우리는 이런 남성들이 과연 보통 사람들과 비슷하게 보이는
생활을 해나갈 수 있을까 하고 궁금해 했다. 6시간 걸리는 수술을 일상적으로
해내는 신경 외과 의사가 하나 있는데 한번은 교대 근무를 하던 보조원 전원을
녹초로 만드는 20시간 걸리는 대수술을 해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특히
이제는 아주 흔해 빠진 일이 되어버린 완전 처치 perfecting procedures를 하던
초창기 심장 외과 의사 중에는 병원에서 거의 살다시피하는 이들도 있었다.
수술이나 환자 회진을 하지 않을 때 그들은 동물 외과에서 새로운 기술을
실험하거나 환자가 죽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배우는 검시실에 있었다.
그들은 쉽게 추론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표현되지 않았을, 일에 대한
열정적인 집중력을 지니고 있었다.
  판도라와 살아 있는 듯 보이는 황금 하녀를 만든 남신처럼 외과 의사는
사람의 몸이 제 기능을 하도록 다룬다. 그(또는 그녀)는 숙련된 장인이자
고도의 기술을 가진 기능공이다. 헤파이스토스를 닮은 외과 의사의 수술을
보조하는 것은 예술가를 지켜보는 일인 셈이다. 성격이 헤파이스토스를 닮은
남성이라면 사회성이나 정치성이 별로 없는, 내적인 열정을 가진 남성이다.
그는 오로지 일에 대해서만 인정을 받을 뿐이다 (아폴론은 진단 의학과 이론
의학 분야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내과 의사 속에 머무는 또 다른 의술의
남신이다 아폴론은 위계적인 의료 체계 안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원형이다. 그가 없다면 일에서 헤파이스토스적인 기술과 열정을 온전히 드러낼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다.)
  자신을 <국외자>로 여기는 많은 남성들이 일에 대한 격렬한 열정을 가지고
격렬한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을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는 창조적인 분야에서
좀더 전형적인 헤파이스토스 모습을 볼 수 있다. 화가`건축가`금속 공예가가,
내가 정신과 의사로서 같이 작업했던 헤파이스토스 남성의 전형적인 예로
떠오른다. 그들 모두는 나름대로 갖고 있는 고민들 때문에 또 너무나도 강하게
느끼고 있으나 분명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을 더욱 의식하게 되는 충동 때문에 내
사무실에 들렸다. 헤파이스토스 외과 의사처럼 그들은 열정적으로 자신의 일에
매진하며 거의 초인적인, 그렇지만 예고된 적이 없는 일정을 좇아 일했다. 이들
남성들은 자신들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어떻게 하면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데 골몰하였으며, 동물 실험실에서 여러 시간을 보내는 외과 의사와 한가지로
건축을 하고 실험을 하면서, 곧 이미지에서 발전된 일들을 <손수>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헤파이스토스 남성에게 일은 직업이나 지위의 원천, 생계 이상의 것이다. 그 
온통 사로잡아, 끊임없이 창조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역작을 내도록 몰아가는
본능을 충족시키는 수단이다. 일은 그의 인생에 깊이와 의미를 준다. 그가
창조력을 발휘하는 순간에 체험하게 되는 자기 속에 있는 남신을 아는 것과도
같다.
  평생의 작업, 곧 그에게 계속 도전을 하고 일의 중요 대목을 끝마칠 때마다
기쁨을 가져다 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헤파이스토스 남성은 자기
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그는 자신이 발전하
고 있으며 자기 심리를 분명하게 표현하게 되었음을 느낀다. 게다가 그 일이
유복한 생활 수단이자 인정을 받는 수단이 된다면 그는 진짜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겠다.
  상당수의 헤파이스토스 남성들은 그렇게 운이 좋지 않다. 일에 대한 간절한
본능을 충족시키려는 남성은 먼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발견해야 한다. 곧 필
요로 하는 기술을 개발할 기회를 가져야 하며 그 다음에 일을 할 기회를 가져
야 한다. 또한 그는 이윤 때문에도 아니고 경쟁심이 발동해서도 아니고 혼자서
있을 때 일을 제일 잘한다. 조직 세계는 그에게 생소하며 무의미하다 그는 스
스로 자기의 생산품을 팔 수도 없다. 그가 성공한다면 작업 자체가 그를 말하
기 때문에, 그리고 누군가가 또는 그 속에 있는 다른 원형이 사업 감각을 가졌
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모든 필요 조건이 갖추어진 일이라고 해도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니라면 헤파이스토스 남성들 -그는 직업 관련 우울증이나
실업으로 깊은 고통을 받는다 - 의 사기를 저하시키리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성들과의 관계
 
  여성들은 헤파이스토스 남성에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들은 그를 <길들이거나
망치는> 힘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인격적 안녕을 보살피고 창조적인
영감의 원천이 되며 사교술을 가르치고 남들에게 그의 작업을 설명해 줄 여성을
필요로 할 수도 있다. 그의 인생에서 권력을 쥔 중요 인물은 여성들일 경우가
많은데 어머니, 교사, 교장, 화랑 주인, 상사 등이다. 그는 지성, 단호함,
아름다움 등을 갖춘 여성들에게 충심에서 우러난 찬사를 보내며 매력을 느끼며
그들로 하여금 그에게 힘을 행사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의 깊이와 예민한 감수성을 알아차리고 그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여성을 만난다면 일대 사건이 될 수 있다. 기간이 길든 짧든 간에 그 관계는
그의 내부에서 수년 동안 (아마도 영원히)살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헤파이스토스 남성들이 여자와 중요한 관계를 맺는 일은 굉장히 드물다.
  격렬함과 내성적인 성격은 그를 쉽게 아프게 만든다. 그의 행동은 어색하기
이를 데 없으며 칵테일 파티 같은 사교 모임에 나가는 데 익숙하지 않다. 데이
트 게임 같은 것은 그가 꺼리는 것의 하나다.
  헤파이스토스 남성(또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헤파이스토스적 측면)은 인간의
집단 무의식에서 나오는 이미지와 감정을 자아내는, 내면 깊은 데서 우러나오는
영감을 받은 작업을 할 수 있다. 특히 일상의 관계를 맺을 수 없고 그런 탓에
평범한 여성으로 여길 수도 없는 여성들에 대해 갖는 강렬한 감정은 영혼의 깊
은 곳에서 나오는 창조적인 작업을 하도록 그를 움직일 수 있다. 저명한 화가
로 연구 대상감인 은둔자, 앤드류 위스가 1986년에 ,<타임>지가 <멋진 비밀>로
묘사한 것을 발표한 것이 그와 같은 사례라고 할 만했다. 그가 헬가라고만 밝
힌 여성을 주제로 하여 15년에 걸쳐 246개의 작품을 그렸다. 그녀는 가장
값나가는 작품뿐만 아니라 가장 좋은 작품을 그리는 데 영감을 준 것이
분명하였 다.
 
남성들과의 관계
 
  헤파이스토스 남성은 우애가 넘치는 부류의 형제는 아니다. 그는 피상적인
외향적 동료들에게 퇴짜를 맞으며 형제애가 넘치는 남성들(나중에 기업이나
전문 조직체의 일원이 된다)은 그가 너무나 자신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만일 다른 원형들, 그를 단체에 낄 수 있게 하는 아폴론이나 헤르메스
같은 원형을 또한 가졌다면 그의 헤파이스토스다운 본성은 자신이 단체에 속해
있다는 것조차 느낄 수 없게 만든다.
  사업상의 이유로 어울리는 남성들과의 관계는 그에게 힘지 되지 않는다. 그
가 칵테일 파티장에서 이루어지는 피상적인 모임에서 갖는 어려움은 여기에도
해당된다. 그리하여 그는 국외자라고 느끼거나 또는 국외자가 된다. 대개 그는
<동창 모임>에서 제외되는데 그렇게 본다면 국외자의 역할은 선택될 뿐만 아
니라 그에게 흔히 주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권위적인 위치에 있는 남성들에게 특별한 어려움을 갖는 경우가 흔하
다. 그 남성은 아버지, 교사, 상관일 수 있다. 그를 틀지우려 애쓰는 이들은 -
미 해군이 신병을 <사내로 만드는>식으로 - 대개 그 일에 실패하여 화가 나
그를 내쫓아 버린다 헤파이스토스는 맞추어 주었으면 하는 외부 요구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남들의 기준대로 살아가지도 않는다. 너무나 내성적이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그를 틀에 맞추어 넣기 위해서 그에게 퍼부어지는 분노와 단정이
강렬한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그는 그러한 분노의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두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노는 그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이든지간에 그것을 해내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권위주의적인 사람들은 복종적이지 않거나 무례한 듯
보이는 것에 과잉 반응을 보여 사태를 악화시킨다.
  전쟁의 신 아레스가 한번은 헤파이스토스를 무력으로 올림포스까지
끌어올리려 했다가 성공하지 못했다. 헤파이스토스는 화인을 던져 그를
쫓아버렸다. 신처럼 헤파이스토스 남성은 무력에 저항한다. 그에게 무력이
행사되면 그를 적개심에 <불타게>만든다. 무절제된 힘과 전쟁의 광란으로
알려진 남신 조차도 헤파이스토스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도록 움직이게 할 수도
없고 이런 접근법은 헤파이스토스 남성, 그들이 어린 경우에조차도 통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대조적으로 디오니소스는 헤파이스토스에게 포도주를 자꾸 권하면서 노새를
타고 같이 가자고 설득했다. 디오니소스는 힘에 의지하지 않았고 헤파이스토스
의 완강한 태도를 누그러뜨렸으며 아레스가 실패한 바로 그곳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자기의 영토 안에서 그와 관계를 맺었으며 술에 대한 그의
완강한 태도를 바꾸어 놓아 헤파이스토스를 호전적이기보다는 유순하게
만들었다.
  인생은 헤파이스토스-디오니소스의 우정 부분에서는 신화와 닮아 있다.
헤파이스토스 남성을 알려고 노력을 기울이는 또 다른 강력한 국외자만이
성공하는 일이 흔하다.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은 남성적인 결속을 다지는 의례가
될 수 있다. 헤파이스토스에게는 집단에 들어가는 것이 통하지 않지만
디오니소스 남성처럼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고통을 알며, 자기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또 다른 남성과 어울리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좀더
외향적이고 표현이 풍부한 디오니소스는 헤파이스토스 안에 모호하게 감추어진
것을 분명하게 하고 감정을 나타내거나 몸짓을 섞어 가며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보완은 헤파이스토스 남성이 가질 수 있는, 좀처럼 드문 깊고 지속적인
우정의 공통 기반을 제공한다.
 
성생활
 
  집중과 은둔이 헤파이스토스 남성의 삶의 모든 면, 특히 그의 성생활을
특징짓는다. 그는 일부 일처를 고집하며 신뢰가 가는 인물이며 상대에게 보답을
해 주기를 기대한다. 종종 그는 남신과 같은 운명으로 고통스러워하는데 여성이 
그를 배신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늘 그녀의 이미지를 자기 속에 간직
하고 있을지라도 그녀를 소홀하게 대함으로써 그녀가 배신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전형적인 헤파이스토스는 자기 일에 지나치게 몰두해 있어서 그녀와 같이
보낼 시간을 갖지 않으며 서로 대화를 하지 않으며 그리하여 오랫동안 성생활을
하지 않고 지내기도 한다.
  그는 성욕을 일로 승화시킬 수 있고 한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조차도 관계
를 한참 갖지 않고도 지낼 수 있다. 일이 그의 시간과 성생활을 요구하는 여주
인처럼 된다.
  성행위를 하는 헤파이스토스 남성은 행위 자체에서 성적으로 느끼는 것
이상으로 내면의 체험을 하게 된다. 그가 상대와 교류하고 있다거나 합일되어
있다는 체험을 공유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긴 하지만 그의 상대는
내적인 경험의 원천이며 그는 진정으로 그녀를 소중히 한다
  그는 흔히 그의 강렬함에 빠져 들고 그의 창조적 활동에 매료된 아프로디테
여성들을, 남자 관계가 복잡한 매력적인 여성으로서 바로 보지 못한다. 그녀가
다른 애인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전형적으로 혼자만의 억측을 하였다
고 해도 그녀로부터 굉장한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 보통이다.
  동성애자 디오니소스는 유사하게 동성애자 헤파이스토스를 유혹하여 배신할
수도 있고 술이 그 상황에서 제 몫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헤파이스토스는 게
이의 사교 문화를 잘 대표하는 인물은 아니다. 형제애와 단체 생활이 그에게
별로 매력적이지 않게 만드는 피상적인 결속과 집단 동질감 때문에 그는 잘
어울리지 못한다. 이번에는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는 게이 집단에서도
버림을 받는다.

결혼
 
  헤파이스토스 남성에게 결혼은 예외적으로 중요하면서도 문제가 되는 일이
다. 사적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바깥 세상에서의 행복이 누구와 결혼하는가와
결혼 생활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을 수 있다. 그가 행복하지 못하다면
감정적으로 외로워할 것이다. 전통적으로(또 전형적으로)대부분의 남성들,
그러나 특히 내성적인 헤파이스토스에게 있어서 대인 관계는 아내가 신경쓰는
부분이다. 그녀는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며 휴일과 휴가 기간의 계획을 짜며
친척들을 만나고 중요한 날짜들을 기억한다.
  헤파이스토스 남성의 아내는 또 세상에서 그의 작업을 확립하고 유지하는데
중요할 수 있다. 혼자서 작품을 창조하는 예술가나 장인 헤파이스토스는 대개
자신을 대행할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의 아내가 그의 작품을 팔거나 그 일을
할 대행인이나 화랑, 판로를 찾는 일이 흔하다.
  신화에서 헤파이스토스는 아프로디테와 결혼을 하고 그녀는 간통을 저질렀
다. 그도 그에게 반항했던 아테나를 임신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으며 그는
(황금으로 된 하녀뿐만 아니라) 판도라를 창조하였다. 이러한 세 가지 신화에서
나오는 관계들은 헤파이스토스의 세 가지 결혼 유형을 반영하고 있다.
 
헤파이스토스와 아프로디테
 
  사랑의 여신과 닮은 여성들은 관계에 맹렬하게 빠지는데 헤파이스토스는 바
로 그런 점을 지니고 있다 만일 그가 아름다운 물건이나 예술 작품을
창조한다면 그녀의 미적 감각은 그의 작품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외에도
그는 그녀를 인간 아프로디테로 보며 그녀에게 이러한 이미지를 투사한다.
그녀는 그의 속에 있는 여신처럼 느낀다.
  그들 둘 다 순간적인 열정을 가지고 있다. 그는 움츠러들어 자신과의 관계를
내면적 경험으로 여길 수 있는데 그녀는 대개 그렇지 않다. 전형적으로 헤파이
스토스 남성은 이런 경향에서 <떠나>자신의 일에 전념하면서 그녀가 그 동안
일편 단심으로 남아 있기를 기대한다. 그녀가 자신의 에너지를 창조적인 작업
으로 돌리지 않거나 헤라라는 아내 원형을 그녀의 심리의 중요한 면으로 갖고
있지 않다면 그녀는 그가 일하는 동안 연애 사건을 저지를 것이다.
 
헤파이스토스와 아테나
 
  모든 올림포스 신들 가운데 지혜와 수공예의 여신 아테나는 가장 명석한 머
리를 가졌다. 그녀는 도시를 에워싸는 계획을 고안하거나 타피스트리를 짜는 일
모두를 쉽게 해낼 수 있다. 아테나 여성은 상황을 아주 잘 평가하거나 성공한
남성들을 좋아하거나 그들의 도움을 얻어 성공할 것이다. 질투심은 그들에게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헤파이스토스 남성들은 아테나 여성들이 약혼자나
동료들을 얼마나 잘 돌보는지 - 그것은 헤파이스토스 남성들이 성공하는 데
필요한 것이다 - 에 대해 신비스러울 정도로 찬사를 보내며 그 진가를 인정하고
신비스럽게 보기조차 한다.
  앤드류와 베씨 위스는 이런 류의 결합을 한 듯하다. 베씨는 앤드류의 업무
관리자다. 헬가라는 그림에 담긴 위스의 비밀과 분명한 강박 관념이 폭로되자
베씨의 반응은 전형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아테나의 그것이었다. "그는 아주
비밀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는 내 생활을 꼬치꼬치 캐지 않고 나도
마찬가지구요. 그리고 그럴 만한 가치도 있구요. 그림들을 보세요. 오! 이
얼마나 멋진 그림 입니까! 또 얼마나 많습니까!"
  보도에 따르면 그녀는 천만 달러를 넘게 받고 소장품을 팔았다고 한다.
 
헤파이스토스와 판도라
 
  헤파이스토스는 제우스의 명으로 최초의 인간 여성, 판도라를 만든, 최종적인
창조자였다. 호메로스는 헤파이스토스가 진짜 여성처럼 보이며 말을 하고
수족을 쓸 줄도 알 뿐만 아니라 지성을 타고났으며 손재주를 훈련받은 황금
하녀들을 창조함으로써 가사 노동의 문제를 해결하였다고 말했다.
  유사하게 나이 들은 위협적인 헤파이스토스가 처녀의 여신 페르세포네와 닮
은 수용적이며 고분고분한 나이 어린 여성과 결혼하게 되면 그는 그녀를 황금
하녀처럼 행동하는 아내로 만든다.
  또는 그녀가 덜 의로적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페르세포네에게 전형적인)그녀
의 분명하지 못한 성격과 외모는 그의 <투사된>이미지가 닿는 <스크린>이 된
다. 그녀는 의식적으로도(그를 즐겁게 해주고 싶어하는 그녀는 그의 총애하는
것들에 신경을 쓸 것이다) 무의식적으로도(심리적 감수성이 풍부한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그에게 향하게 하여 그녀에 대한 그의 이미지에 가장 가깝게
맞춘다)그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이 되려 한다.
  그녀는 그가 혼신을 다한 <발명품>일 수도 있는데 그를 짓누르고 있는 온갖
고뇌를 터뜨리게 할 것이다. 그가 여성에게 접근해 본 경험이 별로 없는, 내성
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그녀에 대해 느끼는 것만큼 강하게 그녀가 그를 느낀다
고 생각하는 것은 물론 자신이 그녀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를 사랑하게 될
수도 있다. 그가 전에 결코 가져본 적이 없는 친근함과 수용에 대한 갈망이
그의 열정과 일부 일처주의와 결합하게 되면, 그녀를 그녀에 대한 그의
이미지와 동일시하는 억측은 개인적인 재앙을 초래하게 된다. 그녀는 그가 원래
의도한 모습들 - 애교, 성적 매력, 파렴치함, 간교한 언사, 거짓말, 속임수 등
- 을 타고난 판도라로 변할지도 모른다.
 
자식
 
  헤파이스토스 남신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특히 어린 시절을 불행하게 보낸
많은 헤파이스토스 남성들은 차라리 자식들을 가지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헤파이스토스 남성의 자식에 대한 반응은 예측하기 쉽지 않다. 그가 어린
자식과 결속을 가지느냐 여부가 결정적이다. (결속이란 그가 분만실에 나타나
출생 순간 부터 참여하고 있는 경우에 더 이루어지기 쉬울 것이다.) 그가
인연을 맺을 경우 그의 애착은 깊어서 거의 내장을 꺼내 줄 정도다. 그가
아이와 많이 놀거나 얘 기를 하지는 않지만 아이를 자기 주변에 두고 싶어할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그를 방해할 때 흥분하기 쉬우며 그들이 데드는 소리에 화를
내며 그의 기대가 그들의 나이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냉랭하며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기 좋아하는 남성으로 아이들이 그를 느낄지도 모른다.
그런 딸은 여섯 살밖에 안되었을 때 아버지가 커피를 타 달라고 했는데 그녀가
타는 법을 모르자 화를 냈다는 것을 관련시켜 설명한다.
  헤파이스토스 아버지와 자녀들 사이에 예측할 수 있는 문제점들도 있는데
그것들은 그의 만성적인 분노와 우을증, 또 통제의 필요성으로 악화된다.
예를들면 그의 의사 표현은 좀처럼 직접적이지도 분명하지도 않다. 아이들은
혼히 발소리를 죽이며 걷고 직관으로 알며 그의 반응이 어떨지를 넘겨짚는다.
  행동 근거가 주관적이고 의사 소통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흔히 자식들은
그의 권위에 뒷걸음질칠 것이다. 또한 그는 흔히 변화를 싫어하는데 성장기에
있는 아이나 사춘기 자녀들은 내내 변화한다. 불화가 생기게 된다.
  유순한 딸들을 가진 헤파이스토스 아버지들을 다스리는 분노는 그들을 시키
는 대로 하는 <황금으로 된 하녀>로 만들 수 있다. 그들은 그가 시키는 대로 할
것이다. 그는 그들의 자율성을 억누르며 복종을 요구하며 그들을 위축시키며 또
다른 남성에 의해 더욱 그럴 듯하게 희생양이 되거나 지배를 받게 만든다.
아들들은 화가 나 통제하려 드는 헤파이스토스 아버지에 대해 직접 반항하는
것을 좀더 흔히 볼 수 있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딸들 또한 보통 그의 영역
밖에서 반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아들과 딸 모두 헤파이스토스 아버지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다.
헤파이스토스 아버지는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고 내성적이어서 아이들이 세파를
헤치고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헤파이스토스 자신은 보통 세상
사람들과 보조를 잘 맞추지 못한다. 그리하여 <동창 모임>이 그의 자녀들에게
별로 자원이 되지 못하며 그는 출세 방법에 대한 역할 모델이 되지 못한다.
  여러 아이들이 헤파이스토스 아버지와 어려움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아버지
가 화를 잘 내는 남성이 아닐 경우, 또 그가 자식들파 결속을 가지고 있었다면
아주 특수한 긍정적 관계도 이루어질 수 있다. 아이들이 자신들만의 창조성을
개발하고 그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안락한 성역이라고 할 수 있는 스튜디오를 집
뒤에 갖고 있는 장인 아버지처럼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아이들은
헤파이스토스 아버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들의 창조적 재능, 신뢰감,
자존심은 그와 함께 있으면서 함께 물건을 만들고 그들에게 물건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보여 주고 그리하여 자신의 것을 만들어 보게 하는 경험에서
싹튼다
 
중년기
 
  인생 전반기는 대개 사회가 남성에게 무엇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을 수
락하지 않기 때문에 고달프다. 그는 출세하는 것과 같은 도전을 즐기는,
경쟁적이며 논리적이며 외향적인 남성이 못된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인생
전반기에 직업과 가정을 갖는 데서 기대되는 것을 하고 인생 후반기에 내면의
여행을 떠난다는데 헤파이스토스 남성은 시작부터 내면 세계를 지향하였고
자신의 부적절하고 격렬한 감정을 표현할 필요가 있었다.
  어울리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직업과 가정을 가질 수 있었다면 인생의
후반기는 대개 인생 전반기보다 더 행복할 것이다 처음으로 자기와 같은 또래의
남성들과 비교할 때 헤파이스토스 남성은 모험하는 기분으로 새로운 인생기에
들어서기도 한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되기 위해 싸우면서도 외부의
과제들을 해내야 했는데 둘 다를 하는 데 성공을 거뒀다. (좀더 외향적인
남성이라면 인생 전반기에 기대된 대로 하는 데 별다른 갈등 없이 적응한다.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어 그의 개성 때문에 고통을 받으며 그를 갈등과 우울에
빠지게 된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적대시하거나 협박하거나 또는 그들로부터 움츠러드는,
화내고 만성 우울증에 시달리는 헤파이스토스 남성은 친분도 보상을 주는
일거리도 없이 인생 중반에 이를 수도 있다. 유형이 너무나 고정되어 있어서
악화되는 것을 빼면 변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가 스스로를 뜯어보고 남들과
자기를 비교한다면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중년의 위기가 가져다 주는
고통을 겪게 될 수 있다. (뒤에 나오는 심리적인 문제점들과 성장하는 길에
관한 항목을 보라.)
 
노년기
 
  <인생사가 어떻게 판명날지>가 분명해지는 인생 말년에 접어든 헤파이스토 스
남성들은 만족하지 않고 자기가 선택한 <대장간>에서 창조적인 작업에 몰
두하기도 하는데 그들은 장인으로서 이 시기에 이르면 기술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게 되며 평생 동안 연마해 온 기술은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나
헤파이스토스 남성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낙오자들 사이에서 많이 나타나기도
한다.

심리적인 문제점들
 
대부분의 헤파이스토스 남성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감정에 대처해야만 했는데
처음에는 소년으로서 다음에는 한 남자로서 표준 남성형(또는 기대)에 맞추지
못하였다. 그가 문제가 있거나 학대하는 집안에서 살아온 탓에 버림을 받은 소
년이라면 그러한 기대는 대개 그를 기대 이상의 외톨이로 만든다. 꽉 막힌 듯
한 내성적인 태도를 가진 그는 학교에서 유명해지거나 성공한다 해도 집안에서
사랑이나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이 보상되지는 않는다.
  한 남자로서 그는 계속해서 적응에 어려움을 발견할 것이다. 일을 통해 그는
자신이 생산적이며 가치 있고 창조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는 정치력, 사교술, 의사 소통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길이
쉽사리 열려 있지는 않다 따라서 심리적인 문제점들이 예상될 수 있다.
 
감정적인 불구 : 박대의 결과
 
  헤파이스토스는 태어나면서부터 불구라는 것을 알게 된, 모성적이지 않은
어머니 헤라의 버림을 받았다. 그의 외모를 창피하게 여긴 그녀는 그를
내다버렸고 말 그대로 쓰레기통에서 발견되는 신생아들이 공유하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의 어머니는 그들을 버려야 할 수치스러운
실수처럼 대한다. 은유적으로도 굉장히 많은 아이들이 이러한 운명을 공유하고
있다. 그들은 제명대로 살지 못하며 감정적으로 버림을 받는다.
  아낌을 받지 못하고 사람들의 감촉을 접하지 못한 아기들은 잘 자라지 못하
며 (전쟁중 영국에서 발견되었던 아이들처럼)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사람의
감촉을 접하지 못한 아이는 규칙적인 수유와 깨끗한 환경을 갖추어 주었다고
해도 곧 죽어 버린다. 체중이 미달되고 감각이 없으며 <성장 부진>상태에 있는
많 은 아기들이 내가 수련의로 있던 두 주립 병원의 응급실로 실려 왔다.
그들이 가진 큰 문제점은 어머니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돌봄을 전혀 받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버림받은 아기가 육체적으로 소생한다고 해도 심리적인 상처는 여전히 감정
적인 절름발이 상태를 낳는다. 그런 아이는 세상이 좋은 곳이라는 기본적인 신
뢰를 갖고 있지 않으며 화가 나 있으며 모든 것을 믿지 않는다. 그는 인생을
외톨이로 시작한다. 그는 연계를 맺을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버림설에서는-헤파이스토스가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서 헤라 편을
들자 성이 난 제우스가 헤파이스토스를 올림포스 산에서 던져 상처를 입혔다고
한다. 이때 아이의 행동이야말로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었으며 아버지의 버림을
받은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헤파이스토스는 아동 학대의 결과로
불구가 되었다. 다시금 인생은 글자 그대로 이 신화를 모방하고 있다. 어린
아들을 둔, 한 여성이 아이의 아버지가 아닌 남자와 같이 살 때 그 남자가
경쟁심이든 초조함이든 간에 아이의 존재를 달가와하지 않고 소년을 학대하는
것이 그러한 경우다. 어머니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로 남아 아버지란 작자의
학대를 받는 어린 소년은 신체적인 학대는 견뎌 낼 수 있을지 모르나
감정적으로는 자기 내부에 깊이 쌓이는 공포와 분노로 불구가 될 것이다.
  감정적인 불구 상태가 되어버린 헤파이스토스 소년은 어머니의 포기 또는
아버지의 학대라는 극단으로부터 어머니의 거리감과 아버지의 판단이라는 좀 더
미묘하고 심리적인 효과에 이르기까지 자기 부모들과의 여러 경험들에 반응을
보인다. 그가 영향을 받은 정도는 당면한 어려움의 정도와 직접적으로 관련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관적 경험과 관련을 갖는다. 훨씬 나중에
객관적으로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의
타고난 내향성과 결합된 버림받았다는 느낌은 강한 반응과 고통스런 감정을
낳는다. 그러한 소년은 쉽게 <상처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만들어 내게 된다.
  그의 기질은 고통스런 경험들에서 나온 결과를 격렬하게 한다. 좀더 외향적
이거나 충동적인 아이가 학대를 당한 경우에 그 아이는 남들을 때리거나 못살
게 구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아니면 그는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그가 처한
곤경에 관심을 기울일 수도 있다. 그도 저도 아닌 경우에 헤파이스토스는
물러나서 자신이 얼마나 상처받고 화나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지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는 어느 누구와도 그 문제에 관해 얘기하지 않으며 감정적으로 불구
상태가 되고 표현을 억제하며 남들로부터 소외당할 수 있다. 한 남성으로서
그는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반복할지도 모른다. 그가 애정을 갈구한 여성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권력에 있는 남성들에 의해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이다.
 
실제의 왜곡 : 내성적인 감정이 지닌 문제점들
 
  자기 감정을 감추고 상처를 입기 쉬운 그의 성격은 그로 하여금 <실제로 일
어난 일>을 헤파이스토스 남성들과 그 주변 사람들 모두의 문제로 왜곡하게 만
들기 쉽다. 남의 의도나 실제 상황보다는 그에게 미친 감정적 효과가 그의 시
각을 결정짓는다.
  남들이 미처 알아채지 못한 작은 상처가 그를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다. 그
리고 그가 그러한사 실을 말하지 않거나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는 그
에게 닥친 사건은 무엇이든지간에 <우연한 일>이 되고 만다. 여러 달 또는 여
러 해가 흐른 뒤 그가 마침내 그것을 말한다면 남들은 그 일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그가 느낀 대로 느끼고 슬퍼하며 섬ㅉ해 하며 화를 낼지도 모른다.
  작은 몸짓으로도 긍정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작은 몸짓이란 여러
해 동안 그의 마음을 움직이고 따뜻하게 하는 부드러움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러한 몸짓은 또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온 의미 있는 표현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내성적인 느낌을 가지게 되면 외부의 사건에 대한 내적인 반응이란 유보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기억은 사실적이지 않으며 감정에 의해 채색 된
사건인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다소 이런 요소가 있긴 하지만 헤파이스토스는
훨씬 더 그러하다
 
출세하지 못함
 
  헤파이스토스는 권세의 절정을 상징하는 올림포스에서 버림을 받았다. 또
그가 올림포스를 찾았을 때 그는 분명하게 최정상에 있는 부유하고 아름다운
사람들 축에 끼지 못했다. 헤파이스토스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대장간에서
일하는 헤파이스토스의 이미지는 용광로에서 일하는 강철 공장 직공`유리 붓는
직공`대장장이 등 축재가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더 이상 특권을 가질 수 없게 된
육체 노동자 계급을 떠을리게 한다. 숙련공이든 반숙련공이든 미숙련공이든지
간에 정신보다는 손을 가지고 일하는 남성들 또는 육체 노동자들에게는 별로
존엄성이 부여되지 않는다. 자기 손으로 유형의 물건들을 만들지 않는 남성들이
올림포스의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바로 장사꾼과 투자가들인 것이다.
  <이름난 인물이 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십대 나이에 깨달은 수많은 헤파이
스토스 남성들 속에는 분노가 쌓여 있다. 그가 노동 계급이라는 이유로 여성이
그를 미래의 신랑감으로 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될 때, 또는 그가 자식들
이 필요로 하지만 그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어서 줄 수 없을 때 똑같은 분노
를 느낄 것이다. 만일 그가 만족스런 직업을 결코 찾지 못하고 (그의
헤파이스토스 성격에 맞게)나름의 방식대로 그 분노를 안으로 억누른다면
우울해지고 견 디기 힘들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는 유사한 상황 하에서
남들에게 분노 를 터뜨리는 아레스와 포세이돈을 닮지 않았다.
 
익살부리기 : 낮은 자존심과 부적당의 문제점
 
  작업장 밖에서 헤파이스토스 남신은 익살꾼이 되었다. 올림포스의 남신들은
어색한 걸음걸이의 헤파이스토스가 궁전의 홀을 부산을 떨며 다니면서 큰
그릇에 담긴 신주를 대접하는 것을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또한 그가
아레스와 같이 있는 자기 아내 아프로디테를 보이지 않는 덫으로 사로잡고서는
그 광경을 보게 하려 그들을 초대하였을 때 그들은 화를 내기보다는 웃었다.
  <헤라의 영광>의 지은이 필립 스레이터는 그리스 신화와 그리스 가계에 관 한
심리학적 분석에서 익살꾼 노릇을 하는 헤파이스토스가 <사내다움을 포기>한
것으로 보았다.
 
  헤파이스토스는 사람간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여러분은 나를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당신의 시기나 원한을 살 만한 것이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나는 단지 나를 희생하여 농담으로 여러분을 웃길 준비가 늘 되어
있는 불쌍    한 절름발이 익살 광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유형을 따르는 헤파이스토스 남성은 대개 우연하게 익살꾼이 된다. <잘
어울리지 못하는>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그는 계속해서 부적절한 일을 하여 웃
음이나 조롱을 산다. 그의 교복 차림새가 남들로 하여금 그의 위신을 손상시키
는 익살스러운 평을 하게 만들거나 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녀에게 어떻게 말
할지를 몰라 남의 말을 인용하거나 우스개 소리를 하는 아이다. 누가 그를 괴
롭힐라치면 과잉 반응을 보여 무자비하게 주먹질을 하는 소년이다. 아마도 불
평을 품는다면 수치실이 더 악화되며 익살꾼으로 행동한다면 상황을 모면한다
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혹인들을 <니거 nigger>라고 부르며 제재를 가하는
미국 서남부 지방의 흑인이라면 얼버무리며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페스터스
Festus>(헤파이스토스는 he fes'tuts로 발음된다)가 됨으로써 학대로부터
자신을 구해 낸다. 그런 행동을 하는 헤파이스토스 남성은 그를 후원하는 이가
아무도 없는 채 버림받은 외톨이 같은 심리 상태에 놓여 있다.
  그렇지만 이런 식의 정상에 오르는 방법은 대개 자기 파괴적이다. 각 사건은
자존심과 남들에 대한 존경심을 희생하는 대가로 일어난다. 그것은 흔히 남들
에게 창피주는 것을 즐기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괴롭히게 만든다.
  몇몇 헤파이스토스 남성들이 갖고 있는 훨씬 더 미세하면서도 관계 지향적
(익살꾼다운) 페르소나나 <공적인 얼굴>은 붙임성 있는 모습이다. <인정 넘치는
사나이>라는 가면 아래에는 분노와 우울증이 숨어 있다. 왜냐면 그는
결정적으로 자기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헤파이스토스가 제우스와
헤라와 맺고 있는 관계와 비슷한 유형을 공통적으로 띠고 있다. 그는
부재하거나 냉랭한 아버지의 <아비 없는 아들>로 또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도취적인 어머니로 인해 <어미 없이> 자랐다.
 
속으로 사그라든 분노 : 우울증과 결부된 문제점
 
  우울증은 상처와 분노 같은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기보다 억누르게 하는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헤파이스토스 남성들에게 심각찬 만성적인
문젯거리일 수 있다. 버림, 수용되지 못함, 성공하지 못함 -이런 유형의
감수성-은 고통뿐만 아니라 분노의 명백한 원천들이다. 그가 이러한 감정들을
갖고 있으면서 그것을 자기 내부로 돌리고 있다면 우울증이 생긴다.
 
중독증
 
  헤파이스토스 남성들은 감정을 마비시키고 덜 강렬하게 느끼기 위해 술을
먹을 수도 있다. 술은 더 부드러워지는 수단으로서, 그들이 남들에게
친절해지기 쉽게 해줄 수도 있다. 육체 노동을 해야 하며 감성적 느낌이
부적절하게 머물러 있으며 본성, 문화 둘 다에 의해 묻힌 순많은 노동 계급
남성들은 고통스런 일을 잊으려 일부러 술에 취한다. 숙취로 이어지는 과음은
감각이 마비되고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이런 식으로 어떤 일을
잊기 위해 한주일을 보내는 것이 또한 남자다운 것으로 간주된다.
  일과 후나 할일이 없을 때 남과 함께 나누지 못하거나 표현되지 못한 감정적
고통을 마비시키기 위한 음주는 감정적 마취제로 작용한다. 술을 약처럼
사용하게 되면 그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 텔레비전도 마찬가지로 그 앞에서
시간을 떼움으로써 감정을 마비시키고 사람 사귀는 일에서 움츠러드는 남성들이
이용하는 것이다.
 
큰 대가를 치르고 얻는 평화
 
  학대를 받은, 감정적으로 상처를 입은 어린아이가 가정의 평화 수호자 -
전생애에 걸칠 수도 있는 역할 -가 될 경우에 긴장감이 생기는 것을 느끼는
순간, 무서운 부모의 화를 피하기 위해 그 상황을 모면하는 일을 한다. 흔히
어린아이나 남성은 의식적으로 그러한 인식을 깨닫지도 못하며 그가 다음 순간
하는 일이 무엇이든지간에 의식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그 상황에서 단지
폭발이 일어나는 것뿐이며 그가 강제로 진정될 때까지 점차적으로 마음을
조이게 된다.
  두려움의 대상인 부모를 진정시키기 위해 상처를 입은 헤파이스토스 아이는
자신을 위험에 처하게 만드는, 자신의 일부분을 희생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이
느끼는 것을 억누르며 분노와 적개심을 자기 내부에 더욱 깊숙히 몰아
넣는다.그가 무마하고 진정시키느라 지불한 대가는 아주 값비싼 것이다. 그는
자기가 실제로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며 남들에게서 느끼는 화를 참을
수도 없게 된다. 성인이 된 그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희생하게 되고 남들의
감정 표현을 참지 못하게 되는데 그것은 중요한 대인 관계를 희생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남들이 겪는 어려움
 
  만일 여성이 그가 느끼고 있는 것이나 하려고 계획하는 일에 관해 얘기하기
를 바라거나 필요로 한다면 헤파이스토스 남성과의 교류가 문제가 될 수
있다.그는 강하고 과묵한 표준 남성상에 맞는다. 그가 사물에 대해 강력하게
느끼기 때문에 그를 둘러싼 분위기가 아주 무거울 수 있으며 그녀가 그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자고 해도 아무일도 안 일어난다.
  또한 그녀가 자신에 대해 그에게 이야기할 때 그녀는 그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결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수 년이 흐른 뒤 그녀는 그가 어떤
대화 때문에 아주 방해를 받았거나 움직였다는 것을 알 수도 있는데 그
당시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 듯했다.
  그를 변화시키거나 좀더 말을 많이 하게 만들려는 시도는 이루어질 수도 이
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대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헤파이스토스와 결혼한
여성은 흔히 부족한 의사 소통 능력을 그냥 보아넘길 수 있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학대적인 관계들
 
  무기력하다고 느끼며 지나치게 술을 먹으며 그와 가장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에게 화를 버럭 내는, 강하고 과묵하며 화를 잘 내는 남성은 성숙한
자식들을 여럿 둔 술주정뱅이 아버지다. 헤파이스토스가 보통 자신의 분노를
속에 쌓아둔다고 해도 그가 병을 깨뜨리는 순간 그 분노를 막고 있던 병뚜껑이
헐거워질 수 있다. 딸들은 흔히 자기 아버지 속에 있는 감수성과 고통을 흘끗
보게 되거나 아니면 결코 개발되지 않거나 보상을 받지 못한 기술들에 대해
알게 된다. 그들은 그러한 남성들의 마음 한가운데 아련한 점으로, 곧 그러한
남성에게 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희망이자 학대를 참는 자로 자라게 된다.
이러한 여성들은 그들보다 앞서 그들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학대적 관계에
있기가 쉽다.
 
역할 전환
 
  헤파이스토스 남성이 무보수 장인이기 때문에 또는 고용주가 그의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거나 그의 인품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돈을 버는 데
어려움을 갖고 있다면 그를 사랑하는 여성은 식구를 먹여 살리는 사람이
되어야만 할 수도 있다. 그들 가운데 누군가 협상을 해야만 하는 일이 생긴다면
역할이 뒤바뀔 수도 있다. 그녀가 좀더 논리적인 사고와 사교적 기술을
가졌다면 그녀는 세상 일에서 그들을 대표한다.
  역할 전환에 있어서 그녀는 자신의 능력에서 기쁨을 얻고 그 상황을 받아들
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상황과 그를 원망할 수도 있다. 반대로 그는 진가를
인정받거나 성을 잘 내게 될 수도 있다. <당위성>이 지닌 힘 때문에 전통에
위배되는 관계는 보통 둘 다에게 스트레스를 주게 된다.

성장하는 길

헤파이스토스 남성이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버림을 받거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결과로 그에게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 있다고 느낄 경우 그가
받는 대접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가질 때 성장이 시작된다 스스로 권위를
가진 존재가 되어 자신이 지닌 다른 면들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헤파이스토스
원형을 넘어 성장할 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이러한 마지막의 두 과제는 모든
헤파이스토스 남성(또는 여성)이 할 필요가 있는 일이다
 
<네 자신을 알라>
 
  헤파이스토스 남성은 <네 자신을 알라>는 아폴론의 격언을 진심으로 새겨들
을 필요가 있다. 그는 헤파이스토스를 얼마나 많이 닮았는지 그리고 그것이 무
엇을 의미하는지를 앎으로써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남들의 기대에 맞
는지 또는 맞지 않는지, 말 잘하고 사교적이고 레크리에이션적 사고 방식의
<올림포스 신>처럼 행동하려 애썼을 때 그가 느끼기에 자신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어리석은 익살꾼인가를 알아야 하며 반대로 그가 만든 것, 대개는
손으로 만드는 일에 전념하고 그것에 뛰어난 재주가 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원형에 대한 객관적 지식과 자신에 대한 주관적인 지식은 무엇이 자신에게
일종의 적성자 의미를 부여하는가를 발견하도록 도울 수 있다.
  상처나 학대를 받은 적이 있을 경우 정신과 치료가 필수적일 수 있다. 성격
상 모든 것을 스스로에게 붙들어 두고 사람들을 피하며 자기 속에 쌓인 분노가
억눌려져 있기 때문이다. 정화의 필요성 말고도 그는 남의 감정 이입이나 시선
을 필요로 한다. 이런 과정에서 그도 의사 소통을 하는 능력과 말로 표현하는
능력을 좀더 개발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 알기
 
  아주 내성적인 헤파이스토스라 할지라도 대개는 자기 인생에서 의미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편안하게 은둔해 있는 하데스와 달리 헤파이스토스는
그에게 감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람들을 깊이 느끼고 그들에게 강하게 반응을
한다. 그리하여 그는 덜 주관적인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는 특히 "이게 바로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이야"라는 게 반드시 "이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야"가 아니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그의 주관적인 반응이
지닌 힘과 강렬함은 남이 실제로 그에게 행하고 말한 것의 실제를 왜곡한다.
그가 흔히 피하고 있는 대화를 통해서만이 오해와 오인을 씻을 수 있다. 대화는
서로에게 중요한 사람들간의 차이점들을 인정하게 하는 수단을 제공한다.
이러한 객관성은 특히 헤파이스토스에게 중요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자신의
주관적인 모습을 실제로 잘못 전할지도 모른다. 좀더 외향적인 사람은 대개
좀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시작하기 때문에 상황적 맥락이 보통 그나 그녀의
그림의 일부가 된다. 그렇지만 주관적으로 내성적인 감정은 남에게서 그림을
얻을 필요가 있으며 대화만이 그러한 그림을 제공할 수 있다.
 
다른 원형을 조력자로 활성화시키기
 
  헤파이스토스 소년이 대학까지 교육 제도 안에 머물러 있다면 그는 아마도
의사 소통하는 기술(헤르메스), 객관적 접근(아폴론), 그리고 전략적
사고(아테나), 어쩌면 야망(제우스)까지도 활성화시킬 것이다. 자신 속에서
이러한 면들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타고난 헤파이스토스로 하여금 직업 세계에서
효과적으로 동기를 부여받아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크게 돕는다. 그들은 그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보수를 제대로 받을 수 있게 협상할 수 있도록,
인정을 받고 제자리를 찾거나 그가 창조한 것을 팔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배우고 개발할 수 있게 해준다. 간단히 말해서 그들은 헤파이스토스다운 소질을
드러내는 창조적인 수작업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그렇지만 흔히 세상은
헤파이스토스를 존경하지 않으며 다른, 보상을 더 받는 원형들을 키우지도
않는다. 남성(또는 여성)은 그가 제아무리 발전을 거듭한다고 해도 깊은 만족을
주지 못하거나 충분히 창조적이 아니거나 개인적으로 무의미하기 때문에 한
가지 직업밖에는 되지 않을 일을 평생 동안 할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고도로
숙련된 장인이 된다는 것은 시내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성취감이 있는
일이다. 실험실에서 연구 작업을 하는 것은 영업 부서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운 일이다. 외과 수술을 하는 것이 외과 과장직에 앉아 있는 것보다
휠씬 더 열중하기 쉬운 일이다.
 
헤파이스토스 넘어서기
 
  헤파이스토스 남성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을 때 일에 너무나 빠져 있게
되어 그가 지니고 있는 다른 측면을 활성화시키지 못하거나 다른 것들이 존재
할 여지를 만들지 않는 것은 문제가 된다. 그의 안에 있는 다른 가능성들을 가
두어 두는 것인데 그가 이 원형의 긍정적인 자질과 자신을 동일시한다고 해도
그것이 그를 제한한다 이제 시간과 에너지를 풀어 주기 위해서 헤파이스토스
이상가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깨닫고 그가 성장하도록 해줄 여러 선택을 해야
한다.
 
아프로디테의 택함을 받기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헤파이스토스를 남편으로 선택했다. 그는
그녀를 얻으려 경쟁을 하거나 설득하거나 환심을 사지도 않았다. 유추해서
말한다면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마음은 일하는 사람의 정신 안에 반드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노력이나 연구 또는 아름다운 것들에 노출되어 있는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과 미의 여신으로부터 받은 선물인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그를 <선택할>것이다. 그래서 그가 물건을 만들 때
제아무리 기능적이라 할지라도 그의 솜씨가 미와 사랑과 결합되는 것이며 형태,
균형, 재료 면에서 나타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장인 정신과 미학의
통합에 반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이러한 내적 기준에 충실하고 작품이
성숙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결합을 존중해야만 한다. 남들이 그의 장인
정신이나 작업의 미학적 요소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그 또한
억압을 받거나 이것을 낮게 평가하려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그렇지 않을 경우 그가 맛볼 수 있는 기쁨과 만족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일이
헤파이스토스-아프로디테 결합을 통해 이루어질 때 그는 만들 때마다 접신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그는 영감에 찬 매개자로 바로 그를 통해
아름다움이 사물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헤파이스토스 부모 갖기
 
  인생이 신화를 닮는 것이라면 헤파이스토스 남성은 자신을 인정해 주고
진가를 알아주고 자기 길을 찾으려 할 때 후원해 주는 <양부모>나부모 노릇을
대신해 줄 인물을 찾을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기대대로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부모가 그를 제쳐 놓았다거나 한다면 그가 받은 상처가 깊을 테지만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모성과 부성을 가진 사람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치유될 수 있다. 그에게 성취를 강조하고 입신 출세의 사다리를 오르기를
바라면서 그를 거부했던 <천상의> 부모를 대치하는 기술과 물리적인 노력을
요하는 확실한 일을 하는 법을 그에게 보여 주는 <지상의> 부모를 필요로 한다
  궁극적으로 그는 자기 내부에서 그를 지지하고 정당함을 인정하는 마음가짐을
발견하고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창조적인 재능을 개발하는 일을 하게
된다면 헤파이스토스 신화에서처럼 그는 틀림없이 역경과 굴욕과 장애를 딛고
일어설 것이다.
 
제10장
디오니소스 : 술과 황홀경의 신
신비주의자, 연인, 방랑자
 
  디오니소스 추종자임을 확인하는 것은 삶 가운데 고통과 죽음의 장이 있음을 
  인정하고 알아차리는 것이며 문화적이고 가족적인 기대에 무조건 순응하는 따 
  분함에서 <해방되는>상처를 포함하는, 죽음에서부터 삶에 이르는, 또 고통에 
  서부터 황홀경에 이르는 전 범위를 담담히 지켜보는 것이다.
  - 톰 무어, <백지>, 제임스 힐남 엮음
 
  디오니소스는 가장 축복받은 황홀경의 신이자 가장 도취된 사랑의 신이었다. 
  그렇지만 그 역시 박해를 받은 남신이자 고통받고 죽어간 남신이었으며 그의 
  사랑을 받은 이, 그를 보살핀 이는 모두 그의 비극적 운명을 나누어 가져야만 
  했다.
  - 월터 F. 오토, <디오니소스 신화와 숭배>
 
  남신, 원형, 남성으로서 디오니소스는 자연과 여성에 가깝다. 신비의 세계와
여성의 세계는 그에게 친숙하였다. 신화에 나오는 디오니소스는, 남성의
심리에서와 꼭 마찬가지로 종종 환영받지 못하는 방해 요소, 곧 갈등과 광란의
원인이었다.
 
디오니소스 남신
 
디오니소스(로마인들은 바코스라고 불렀다)는 술의 수호신이자 <황홀경과
공포의 신이자 야성의 신이자 가장 축복받은 구출의 신>이었다. "그는
올림포스의 막내 신이면서 유일하게 인간을 어머니로 둔 남신이었다
포도나무`담쟁이덩굴 `무화과나무`소나무는 그의 성수였다. 그를 나타내는 동물
상징들은 황소`염소`표범`새끼 사슴`사자`호랑이`당나귀 돌고래`뱀이었다. 그는
"모든 자연, 그리고 특히 생명의 원천인 씨눈`정액, 나무에서 솟아오르는 수액,
혈관 속을 쿵쾅거리며 흐르는 피, 포도의 액화, 자연에 넘실대는 모든 신비롭고
절제되지 않은 기운에까지 그 영역을 확대하였다."
  신화와 의식에 나타난 디오니소스는 여성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은
신동인 어린 디오니소스의 어머니들과 유모들 또는 격앙된 연인들, 곧
디오니소스의 여자가 되어버린 광란 상태의 마이나데스 또는 바케였다. 그는
어린아이로 그려지기도 하고 보통은 담쟁이덩굴 또는 포도덩굴로 만든 관을
머리에 쓰고, 짐승 가죽으로 된 옷을 걸치고, 끝에 솔방울이 달리고 흔히
포도덩굴 또는 담쟁이덩굴이 감긴 티르소스라 불리우는 지팡이를 든 젊은이로
그려졌다.
 
계보와 신화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테베의 왕 카드모스의 딸인 인간 여성, 세멜레의 아
들이었다. 세멜레에 반한 제우스는 인간 남성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녀를 임신
시켰다. 질투심 많은 헤라가 그 사실을 알고 세멜레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어
린아이에게 복수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세멜레의 늙은 유모 베로에로 변
장하고 세멜레에게 나타났다. 그녀는 아무런 눈치를 채지 못한 소녀에게 애인
이 신이라는 증거를 볼 수 있도록, 제우스더러 헤라에게 나타날 때와 같은 광
채를 보이면서 나타나 보라고 말하도록 설득했다.
  제우스가 그녀와 함께 지내게 된 날 밤, 세멜레는 그에게 애걸하였고 제우스
는 스틱스 강을 두고 그녀가 부탁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 그의
맹세를 취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헤라의 계략예 말려든 세멜레는 그에게
올림포스의 최고신으로 온갖 위엄을 갖추고 나타나 보여 달라고 애원 하였다.
그녀는 이 때문에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맹세한 대로 제우스는
벼락의 신으로 변신하였는데 그 앞에서는 어떤 생물체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제우스의 벼락불은 세멜레를 죽였지만 그녀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들을
불사신으로 만들었다. 그녀가 죽자마자 제우스는 디오니소스를 그녀의 자궁에서
끄집어내어 자신의 허벅지 속에 집어 넣고 꿰매었다. 제우스의 허벅지는
디오니소스가 태어날 준비가 될 때까지 인큐베이터의 구실을 하였다.
('디오니소스'란 말은 '제우스의 손발'이란 의미도 있는데 이 말은 제우스가
그를 허벅지 속에 넣고서 어떻게 걸어다녔올까를 나타내는 이름이다.)
  그 후에 디오니소스는 세멜레의 언니 부부에게 보내져 여자 아이로 키워졌
다. 그러나 이런 위장에도 불구하고 헤라로부터 그를 보호하지 못했다. 그녀가
그를 돌보던 이들을 미치게 만들자 그들은 그를 죽이려 들었다. 디오니소스는
다시금 제우스 덕에 죽음을 모면했는데 제우스는 그를 산양으로 변신시켜 니사
산(성스럽고 신비스런 산악 지대로 아름다운 요정들이 사는 나라)의 요정들에
게 데려갔다. 그들은 그를 동굴에서 키웠다. (이같은 사실은 그의 이름
'디오-니 소스 Dio-nysus' 또는 '성스러운 니소스 divine Nysus'가 지닌 또
다른 의미를 설명해 준다.)
  그곳에서 스승 실레노스가 그에게 자연의 비밀과 술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
었다 실레노스는 늙고 친절한, 때때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노인으로 보통
그려졌는데 몸의 일부가 말이기도 했다.
 
정신 착란과 폭력
 
  청년 디오니소스는 이집트를 거쳐 인디아에서 소아시아까지, 헬레스폰토스를
가로질러 트라키아까지, 거기서부터 그가 출생한 곳인 그리스의 테베에 이르는
지역을 여행하였다. 가는 곳마다 그는 포도 재배법을 가르쳐 주었다. 정신
착란과 폭력은 그를 따라다녔다. 그가 헤라 때문에 미쳐 버려 살인을
저질렀다는 설도 있고, 그를 박대한 사람들이 미쳐 버려 폭력을 자행하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예를 들면 디오니소스를 박대하고 미쳐 버린 리쿠르고스
왕은 도끼로 아들을 쳐죽이면서 포도나무를 자르고 있다고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디오니소스를 박대한 여성들도 마찬가지로 괴로움을 당했다. 그를
박대하고 미쳐 버린 프로이토스 왕과 미니아스 왕의 딸들은 광란 상태에서 자기
아들들을 갈기 갈기 찢여 죽였다.
  그가 인도로 돌아오자 시빌레 여신 또는 리아 여신(둘 다 올림포스 이전 시대
의 위대한 어머니 여신들)이 그가 미친 상태에서 저지른 살인으로부터 그를 정
화시켜 주었고 의미 심장하게도 그에게 자기들의 비법과 비의를 전수시켰다.
그리하여 디오니소스는 남신 자체일뿐 아니라 위대한 여신들의 사제가 되었던
것이다.
 
아리아드네와의 결혼
 
  크레타 섬의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는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와 사랑에
빠졌다. 그녀의 도움으로 테세우스는 그 유명한 미궁에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자기 발자국을 따라 미궁을 빠져나왔다.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는 그 뒤
아테네로 가는 배를 탔다. 그러나 그는 무정하게도 낙소스 섬에 그녀를 버렸다.
거기서 디오니소스가 그녀를 구해 내어 아내로 삼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아마도
자살하였을 것이다. 디오니소스를 위해 제우스는 아리아드네를 죽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그녀는 사랑과 미의 신인 아프로디테와 가장 밀접한 관련을
맺었고 키프로스에서 아리아드네 아프로디테로 숭앙을 받았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그리스인들은 예전에 크레타 섬의 달의 여신이었던 아리아드네를 희생된
인간으로 만들었고 디오니소스를 통해 그녀는 다시 신으로 모셔졌다.
 
어머니 세멜레의 부활
 
  디오니소스는 어머니 세멜레를 이승으로 데려오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갔다.
그들은 함께 올림포스 산으로 을라왔는데 그 뒤로 그녀는 죽지 않게 되었다.
아리아드네처럼 인간 세멜레도 처음에는 헬레니즘 문명 이전의 시대초에
달`대지와 관련된 여신으로 숭배되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디오니소스는 소멸해
가는 초창기 여신들을 대표한는 여성들을 지배하거나 강간하는 대신, 구출해
내고 되살려 놓은 유일한 남신이다 그녀들을 따르던 민족들 및 그녀들에 대한
신앙은 정복을 당하고 말았다.
 
디오니소스 숭배
 
  디오니소스 숭배자들, 유난히 고대 그리스 여성들은 팡활하게 펼쳐진 산악
지대에서 이 남신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서 그들은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인 세계에 빠져 들어가 고도로 감성을 뒤흔드는 음악이 이끄는 대로
춤을 추었으며 신에게 사로잡혔다. 수라장 상태와 죽음의 빛이 감도는 침묵의
상태를 오가는 것이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표시였다.
  디오니소스를 모시는 의식은 신의 <오르기아 Orgia>(이 말에서 유흥 orgy이란
말이 파생되었다)라고 불리웠다. 포도주나 다른 성스런 예식 때 마시는 술을
마시고, 갈대피리, 북, 심벌즈가 울려 퍼지는 광란의 음악에 맞추어 흥겨운
춤을추면서 사제들은 황홀경에 빠져 신과 <자신이 하나가> 됨을 느꼈다.
  오르기아는 신이 육화한 것으로 믿은, 회생물로 바친 짐승을 갈기갈기 찢어
날고기를 먹음으로 절정에 다달았다. 이러한 성사 예식을 통해 디오니소스의
신성이 사제들에게 들어갔다.
  아폴론은 겨울 석 달 동안 디오니소스에게 델피 신전을 넘겨 주었다. 델피의
디오니소스 축제는 부어라 마셔라 법석이었지만 그리스 도시들에서 온 공식
여성 대표자들에 한정되었고 2년에 한 번 의식을 거행할 수 있게 하였다.
디오니소스는 그곳에서 억압당하는 일이 없었고 오히려 인정되었고
온건해졌으며 제도화되었다. 델피에서는 여성 사제들도 마찬가지로 해마다
의례를 전개하면서 성스런 춤을 추어 요람에서 잠자고 있는 아기 디오니소스를
흔들어 깨웠다.
  지중해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꽃(안테스테리아) 축제에서는 커다란 디오니소
스 가면 앞에서 새로 꺼낸 포도주가 격식을 갖추어 축성되었다. 가면의 두 눈
은 숭배자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는데 신 자신이 가면을 하고 그의 앞에 있다
는 것을 나타냈다.
  디오니소스는 신화에 나오는 시인 오르페우스의 이름을 딴, (기원전 6세기경)
오르페우스교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오르페우스교 신학에서는
어린아이 디오니소스가 갈기갈기 찢겨져 질투심에 불타는 두 티탄에게 먹혔으나
아테나가 그의 심장을 구해 냈다고 전해지는데 (어떤 설에는) 제우스를 통해
세멜레의 아들로 다시 태어났다고 전해졌다. 그는 저승의 디오니소스를 일컫는
오르페우스교의 이름, 자그레우스로 숭배되었다.
 
디오니소스의 운명
 
  디오니소스 신화와 숭배에는 생과사가 뒤얽혀 있다. 그의 무덤은 델피에 있
는 아폴론 신전에 있었는데 그곳은 그가 해마다 새로 깨어난 어린아이로 숭배
받던 곳이었다. 그는 죽음을 겪은 어른 남신, 저승에서 지낸 남신이자 갓난 아
기였던 남신이기도 했다.

디오니소스 원형
 
디오니소스 원형은 강력한 긍정적인 잠재력과 부정적인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
며 감정이 지닌 가장 고상한 부분과 가장 천박한 부분을 건드리며 마음 속의
갈등과 사회와의 갈등을 야기시킨다. 신비주의자 남성들과 살인자 남성들에게
나타나는 원형이다. 황홀경의 순간들과 굉장히 모순적인 충동을 경험하는 남성
(또는 여성) 속에 있는 원형이다.
 
신동
 
  디오니소스를 대표하는 이미지 가운데 하나는 신동의 이미지였다 신동 원형은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갖춘 특이성을 나타냈다. 현대인의 꿈에는 이 원형이
종종 몽상가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어떤 식으로든 분명히 보통 아이가 아닌,
조숙한 어린아이로 나타난다. 어떤 개인이 신동 원형을 접하게 될 때 <내>
인생은 성스런 의미를 가진다거나 <내> 영혼 안에는 인간적인 요소와 신적인
요소가 모두 있다는 개인적 느낌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흔히 성인이 한 개별적인
존재로 살아가기 시작하는 정신적 여정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격렬한 본능적 삶을 사는 디오니소스 원형 때문에 어떤 자아는 압
도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 그가 신동 원형과 자기를 동일시할 경우
그는(또는 그녀는)종종 일상적인 생활에 적응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는 특별하게 다루어지고 인정을 받고 싶어할 것이다. 또 자기의
특이성이 존중되지 않을 때 또 세속 생활을 하도록 기대될 때 원한을 품게 될
것이다. 심리적으로 말한다면 그는 오만하고 과분할 정도로 우쭐해 있게 된다.
  디오니소스 원형이 억압되고 그와 함께 신동의 측면도 억압된다면 다른
어려움들이 생긴다. 진정하지 못하다는 느낌 또는 중요한 어떤 것을 무시하거나
무의미한 생활을 영위하게 만드는, 모호한 느낌을 접하는 데서 오는 감정이
바로 그것이다. 디오니소스 원형은 남성 속에서 적극적으로 억제된다. 어린
시절부터 소년들은 <계집애 같은>기질을 가져서는 안된다거나
<몽상가>(디오니소스의 신비적인 면)가 되어서는 안된다거나 감각적이 되어서는
안된다거나 <손대지 마!> 하는 말을 듣게 된다.
 
영원한 사춘기 소년
 
  디오니소스와 헤르메스는 남성이 자기의 실제 나이와는 상관없이 영원한 소
년(또는 융은 그러한 사람을 가리켜 뿌에르 에메르누스 Puer Eternus라고
불렀다)으로 머물 소지를 가장 강하게 심어 주는 두 원형이다. 디오니소스
원형을 지닌 사춘기 소년은 현재 열중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간에 그 일에
빠져 버려 자신의 의무나 임무 또는 약속을 저버리는, 격렬하고 감정적인
사람이다. 따라서 그는 장기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꾸준하게 일하는 성격은
아니다. 또 지속 적인 관계를 갖지도 못한다. 규칙성과 지속성은 그에게는
생소한 것이다. 디오니소스 남신처럼 그는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며 여성들을
매료시키고 그들의 정상적 삶을 방해하는 식으로 계속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는 아주 변덕스럽다. 깊은 절망에 빠져 있다가도 곧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
에 의해 신바람이 나서 격렬한 모습으로 변해 버린다. 그는 자신을 강렬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간에 거기에 빠져든다. 그가 음악에 끌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분을 전환시키거나 환각제를 먹는 따위에 강하게 끌린다.
  1960년대 히피 운동은 디오니소스의 이런 면이 드러난 한 예였다. LSD와 마
리화나를 복용하고 밝은 빛깔과 관능성을 드러내 보이는 재질의 옷을 입고 <히
피족)이 되어 사랑의 모임을 갖고 성혁명을 기념하며 학교와 직장을 그만둠으
로써 자기의 모습을 드러냈다. 이처럼 디오니소스와의 동일시는 대부분의 사람
들에게는 인생에서 거치는 한 단계일 수도 있지만 영원한 청년으로 남았던 이
들에게는 생활 양식이었다. 그들은 이제 희끗회끗한 수염을 기른 모숩을 한
<늙어가는 히피>다. 여러 명의 자식을 두었을 나이가 되었어도 그 유형은 계속
되고 있다.
  디오니소스의 영원한 청년 원형은 록 스타와 록 문화로 구체화되었다. 도어
스 그룹의 짐 모리슨과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는 1960년대의 원형을 구체적으
로 표현하였는가 하면 데이빗 보위는 그 후부터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까지의 유형을 나타내며, 프린스와 마이클 잭슨은 1980년대에 그 뒤를
잇고 있다. 대부분의 이들 스타들은 양성적인 차림을 했으며, 또한 펑크
록커들에 의해 강조된 바 있는, 좀더 어두운 면을 갖고 있기도 했다.
 
어머니의 아들
 
  디오니소스의 어머니는 그가 아직 태아였을 시절에 죽었다. 그의 신화와 숭배
의식에서는 그가 양어머니와 유모에 둘러싸여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그들은
양육에 일관성이 없었고 불안정하였다. 후에 디오니소스는 자기 어머니를
찾으러 지하 세계로 내려갔다. 종종 이 원형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남성들도
어머니이자 애인인 이상화된 여성을 찾고 있는 듯하다. 일련의 관계에서
<그녀>를 찾으려 애쓰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는 듯 보인다. 어머니와
아들간의 신체적이거나 감정적인 분리가 이루어졌을 때 특히 그러하다.
  원형은 또 위대한 어머니와 내면적인 정신적 관계를 가질 소지를 심어주기도
한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모성적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며 아마도
전통적으로 더 여성적인 일로 간주되는, 남을 돌보는 직업을 갖고 집안일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모성 본능>을드러내게 된다. 아니면 위대한 어머니와의
연계가 (특히 지금 여신들이 하나의 영성 원리로 우리 문화 속으로 돌아옴에
따라) 영적인 성격을 띨 수도 있다. 아마도 카리스마적인 여성 종교 지도자의
추종자가 됨으로써 드러날 수도 있겠다.
  그 결과 그는 여성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느끼며 여성들로 이루어진
단체를 훨씬 좋아하는 남성이며, 성관계 속에서 황홀경에 빠져 하나가 되는,
여성들의 연인이며, 여성들의 경험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남성이 될 수도
있다. <채텔리 부인의 사랑>, <아들과 연인들>, <사랑에 빠진 여성들>을 쓴 D.
H. 로오렌스가 한 예이다.
  종종 디오니소스 남성이 여성들에게 모성애를 불러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들은 그를 돌보게 된다. 필요하다면 그는 모성적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어머니 없는 소년>처럼 보인다. 만일 이 <어머니의 아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예를 들어 그가 성직자이거나 호모이어서 -그때 그는 디오니소스가
그랬던 것처럼 서너 명의 모성적 여성들에 둘러싸여 있을지도 모른다.
 
샤만 : 두 세계의 중재자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부족 사회에서 샤만은 보이지 않는 세계와 눈에 보이는
세계 사이를 오가는 중재자, 조정자로서 아주 중요하다. 샤만이 된 남성은 흔히
어린 시절부터 소년 사회 또래들과는 다른 아이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종종
여성들과 함께 지내게 되고 나중에는 여자옷을 입었다 - 어린 시절에 소녀로
키워졌던 디오니소스가 갖고 있는 경험인 것이다.
  샤만의 심리는 흔히 양성적이다. 디오니소스가 <여자 같은 남자>로 그려지고
<여자다운 사람>이라고 일컬어졌던 것처럼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가졌다는
말이다. 성사를 거행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 간을 중재하는
카톨릭 성직자들은 오늘날까지도 종종 드레스를 입는다. 명백하게 심리적인
양성성, 곧 남성적인 지각 작용과 여성적인 지각 작용이라는 내면의 경험이 이
세계로 들어가는 단서이다.
  샤만의 비전은 비일상적인 실재, 곧 카를로스 카스텐네다와 린 앤드류가 샤
만 또는 주술을 행하는 여성들의 비법을 다룬 책에서 쓴 적이 있는 의식의 전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남성 속에 있는 여성적 요소외 개발에 가치를 두는 융
심리학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는 원형, 꿈, 생생한 상상력의 세계다.
  디오니소스는 여성들에게 그들의 일상적인 삶에서 나와 자연을 즐기고 자기
안에 있는 황홀경적인 요소를 발견하라고 외쳤다. 본질적으로 그는 그들에게
샤만적인 경험을 전수시켰다. 디오니소스 남신은 위대한 여신의 전수자이자
사제였다. 현대 여성들의 영성 운동에서 디오니소스는 두 세계 사이의 중재자로
서 사제 원형을 구현하고 있는 여성들 안에 살아 있다. 예를 들어 마리온
짐머브래들리의 <아발롱의 안개>에 나오는 모르게인처럼 은유적으로 제 역할을
수행하는 여신의 남사제나 여사제는 아발롱의 안개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영적인 여정의 세계로, 여신의 섬으로 인도할 수 있다.
  <출세>를 강조하는 문화에서 샤만적 인성을 가진 남성이 된다는 것은 낙오
자가 된다는-것으로 볼 수 있다. 열광하는 마돈나를 본 사춘기의 종교적 신비
주의자는 환각제 복용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
을 안다. 둘 다 -디오니소스처럼 - 남들 눈에는 미친 것으로 보인다.
  디오니소스가 남성 속에 있는 여러 강력한 원형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면
그는 자신을 이러한 샤만적 측면과 전적으로 동일시하지 않을 것이고 의식의
전이 상태로 옮아갈 가능성을 가질 것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영역은
그에게는 익숙한 것이며 매력적인 것으로 느껴지며 깊은 통찰력을 주기도 한다.
그는 세상사에 잘 적응하면서도 이러한 디오니소스의 요소가 자신에게 의미의
감추 어진 원천을 제공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비실제적 신비주의자>이기도
하다.
 
이중 성격
 
  모든 남성적인 원형들 가운데 디오니소스는 아주 반대되는 요소들을 같이
갖고 있는 원형이다. 월터 오토라는 학자는 그를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의 이중성은 우리에게 황홀경과 공포, 무한한 생명력과 야만스런 파괴력이 
  라는 정반대의 것들로, 죽음과 같은 침묵이 내재하는 아수라장으로, 절대적으 
  로 멀리 떨어져 있는 동시에 즉각적으로 현재하는 모습으로 나타나 왔다.
 
  디오니소스의 이러한 면이 극복될 때 사람은 급속도로 이러한 대립 요소들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를 넘을 수 있다. 커다란 감정의 변화는 사소한 사건에
의해 촉발된다. 왔다갔다 하는 남성(또는 여성)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어떤
때는 굉장히 귀중하고 값진 사람처럼 대접받다가도 다음에는 무시무시한 괴물
취급을 받을 것이다. 동시에 그는 정열에 불타는 연인과 냉정한 타인 사이를
왔다갔다 할 수도 있다. 여러분에게 애걸복걸하다가도 갈기갈기 짖어발겨
버리는 남성과 열렬히 교제를 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디오니소스의 이러한
이중적인 면을 접하면서 그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하겠다.
  여성들도 이러한 원형에 사로잡힐 수 있다. 마이나데스 -산꼭대기에서 신을
찾았던 여성 숭배자들 -는 사랑에 넘치는 모성적 여성에서 가차 없는, 화난
마이나데스로 변신할 수 있었다.
  아름다움과 숙명적 위험은 이 이중성의 표시였다. 퓨마, 표범, 시라소니는 디
오니소스에게 바쳐진 돌물들로 남신의 이러한 면을 반영한다. 이렇게 큰 고양
이과 동물들은 가장 우아하면서도 매력적인 동물이지만 또한 가장 사납고 피에
굶주려 있는 동물이기도 하다.
  디오니소스의 극단적이고 격렬한 감정의 경향이 그의 일생을 계속 방해하고
남들에게 상처를 주느냐 않느냐는 원형이 얼마나 강한가 또 자아가 얼마나 안
정되어 있고 강한가에 달려 있다.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이라면 예컨대 "널
죽이고 싶다거나 내 손목을 잘라 버리고 싶다는 기분이 든다고 해서 실제로 내
가 그 일을 저지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할 수 있다. 만일
자아가 불안정하고 심한 감정적 충격을 경험하였다면 신비주의자이자 연인이자
살인자였던 찰스 맨슨처럼 대량 학살자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강하고 안정된
자아 앞에서는 디오니소스 원형이 감정의 폭과 깊이를 더하며 고조된 감정적
체험을 할 가능성을 높여 주어 에로틱한 영육의 반응의 도를 더해 준다.
 
박해받는 떠돌이
 
  극심한 박해와 도주라는 주제는 디오니소스와 그의 여성 추종자들에 관한
신화의 일부다. 예를 들면 리쿠르고스 왕이 품은 적개심 때문에 디오니소스는
매를 맞고 바다 속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안되었다. 한편 그를 섬겼던 여성들은
겁에 질려 도망다니면서 무자비하게 매를 맞았다.
  디오니소스는 신화 속에서 그리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세계를 두루 돌아
다녔는데, 종종 집을 나온 여성들을 외딴 산중에서 벌어지는 황홀경의 잔치에
초대하였을 때 반대에 부딪쳤다. 그의 생각에 결혼의 여신, 헤라는 용서할 수
없는 적이었다. 두 신들이 나타내는 가치의 충돌을 생각해 본다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헤라는 사회적 의무와 지속성, 정절을 다하는 영속적인 결혼을
존중한다. 디오니소스는 분열적인 정열을 불러일으켜 여성들로 하여금 일상적인
역할을 잊어버리라고 한다.
 
해체된 원형
 
  해체라는 주제는 디오니소스 신화와 얽혀 있는데 그는 초기 이집트의 남신인
오시리스와 같은 운명을 지녔다. 나중에 십자가 처형을 받았던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의 고통을 겪고 부활한 신의 아들의 역할을 해냈다. 디오니소스 원형은
남성(또는 여성)에게 자기 내면의, 강한 반대 세력과 화해할 줄 모름으로 인해
야기되는 심리적인 해체나 정신적 시련을 겪을 가능성을 준다. 두 개의
반대되는 경향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게 되는 상황은>디오니소스 남성에게
공통된 역경이다. 예를 들면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가 되고 싶어하다가도
그녀를 떠나고 싶어하기도 한다. <해체> - 은유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 또는 산산 조각나는 기분 - 는 그러한 남성들에게서 공통적이다.
  해체라는 주제는 특히 디오니소스 원형이 "네 왼손이 너에게 죄를 저지르게
하거든 그 손을 잘라 버려라"고 말하는 유대 기독교처럼 죄의식을 강조하는
종교와 함께 나타날 때 특히 강력하다. 신비주의와 관능성은 디오니소스가 지닌
두 가지 면이기 때문에 젊은 남성은 카톨릭의 신비주의에 빠질 수도 있지만 그
의 육욕적인 느낌이나 에로틱한 이미지 때문에 자신을 무서운 죄인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검, 식칼, 자기 절단을 수반하는 해체의 꿈들은 자신의 종교와
화해할 수 없는 내적 갈등을 지닌 남성들(과 여성들)에게 일어난다.
 
디오니소스 살려 내기
 
  여러 디오니소스적이지 않은 남성들은 감정이 메말라 있는 탓에 고통을 받고
있으며 자기 내면의 좀더 깊은 감정들을 어루만지지 못한다. 어떤 이들은 자주
성교를 하면서도 (황홀경은 말할 것도 없고) 육욕을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디오니소스를 살려내는 일은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될 수 있다.
디오니소스의 관심은 방법을 수반하는 어떤 목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에
있다. 일련의 사건들에 대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또는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대로 그는 움직인다. 춤을 추고 사랑을 하는 행위는 디오니소스가 특별히
중시되는 영역이다. 디오니소스는 격렬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음악이나 연인과
하나가 될 수 있게 한다. 머리 속으로 춤의 순서나 성교 설명서에서 지시하는
단계를 좇는 <기술>을 갖는 것은 진실로 <그 상태에 머물러 있지> 못하게 방해
한다. 시간을 의식하는 순간 디오니소스는 이미 거기에 있지 않다. 당장의 순간
밖으로 끌어내는, 딴 생각이 갑자기 떠오를 때마다 디오니소스는 떠나 버린다.
신체를 가진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할 때마다 남성들은 디오니소스와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다.
  디오니소스의 모습을드러내도록 청하는 것은 일상적 환경, 일상적인 옷차림,
습관적인 페르소나나 역할들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디오니소스의
포도나무 재배 재능과 춤추는 이를 흥분시켜 자연스러운 관능성에로 나아가게
만드는 음악, 사육제 마지막 날이나 환상의 가장 무도회 -마음과 시간을 붙들고
있는 것을 느슨하게 하는 일들은 디오니소스와 더욱 가까워지는 것을 돕는다.
  도시와, 일`책임감에 대한 우리의 관심사를 떠나 어머니 자연과 교감을
찾으려 한다면 우리는 디오니소스와 연결될 수 있다. 디오니소스는 우리가
자연에 있으면서 자연과 하나가 될 때 올 수 있다. 우리가 시간과 거리에 대한
일상적인 의식적 깨달음에서 벗어나 경험에 충실할 때 또 다른 주관적인
황홀경의 세계에 빠지게 된다.
 
디오니소스 남성
 
앞장들에서처럼 이 항목은 특정 남신과 자기를 동일시하는 남성의 삶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디오니소스 원형이
정반대의 경향과 극단성으로 특징지워지기 때문에 여러 가지의 요소를 함유하여
한 가지 느낌으로 디오니소스를 설명하는 것은 다른 신들과 마찬가지로 잘 맞지
않는다.
  디오니소스가 어떻다는 것을 확실하게 묘사하기는 어렵지만 다른 남성들이
대개 신용하지 않고 거절하는 몇 가지 기질을 갖고 있다. <동창생>의 기준에서
본다면 디오니소스 남성은 지나치게 여성적이거나 신비적이거나 반문화적이거
나 위험하거나 매력적이거나 매혹적이어서 사람들이 그와 함께 있는 것이
편안하지 않기 쉽다. 디오니소스는 사람들을 술잔치에 불러낼 뿐만 아니라
세속적인 삶을 잘 살아 내지 못하게 함으로써 혼란을 가져온다.
 
유년기
 
  디오니소스 남신은 일짝이 두 가지의 흔하지 않은 경험을 했다. 그것은 디오
니소스와 동일시되는 남성들이 겪는 심리적으로 비슷한 경험들에 대한 통찰력
을 준다. 남신은 여자아이로 키워졌고 그의 양어머니는 미쳐 살인을 저질렀다.
  부모가 아들은 이러저러한 흥미 -대강 대강하는 집 정돈, 기계에 대한 흥미,
그리고 스포츠 - 를 가져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자기 관심사를 좇는
디오니소스 소년은 아마도 어쨌든간에 <계집애처럼> 군다늘 소리를 들을
것이다. 어린 디오니소스는 오감을 사용하길 좋아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하는
일에 끌린다. 그는 자기 세계를 감각적 경험으로 꽉 채우고 싶어한다. 그는
실크와모피의 촉감을 좋아하며 색깔에 관심이 많으며 음악에 빠져 버릴 수 도
있다. 향기로운 냄새가 나고 맛있는 음식이 있는 부엌은 차고보다 훨씬 더 그의
흥미를 끄는 곳이다. 극장은 야구장보다 더 매혹적인 곳이며 옷들이 컴퓨터보다
더 넋을 빼앗는다. 이러한 관심사를 타고난 사내애들은 대개 여자애처럼
행동한다는 이유로 남들이 그를 <계집애>라고 부른다.
  그의 관심사가 남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관심사>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그의 정서도 그러할 것이다. 젊은 디오니소스는 남들이 제아무리 기대를 갖고
있다 해도 금욕적인 삶을 살 수가 없다. 그는 <사내자식이 울면 쓰나>란 말을
자주 듣는다. 그렇지만 그는 쉽게 울기도 하고 또 아주 유쾌하게 웃기도 한다.
그가 자기 감정을 <다스리기란>더 어려운 일이다. 마치 대부분의 소년들에게
입을 다무는 법을 배우라고 하는 것과 같은 얘기다. 이는 또다시 그를 <더욱
계집애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를 돌본 이들이 미쳐 살인을 저지른 일은 디오니소스의 어린 시절의 또
다른 특징이었다. 정신 분석가 앨리스 밀러는 <어린 시절의 포로>란 책에서 똑
똑하고 명민한 아들이 어떻게 자기 도취적인 부모, 대개는 어머니 -그가 그녀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을 경우 그에게 적대적으로 변한다 -의 좋은 면을
유지하는 법을 배우는가를 보여 준다. 그는 감정적인 실마리를 잡아 내는 데
관심을 쏟으며 기분을 즐겁게 하는 법('소녀로 키워지는' 것의 일면)을 배운다.
그의 어머니(또는 아버지)의 감정적 반응이 이도저도 아닌 마음의 심리적 상태
때문에 극단을 치달을 경우그는 한 순간에 그녀의 <값진 사랑>이 되었다가도
다음 순간 원색적인 적대감 -살인적인 분노 -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앨리스 밀러의 환자 가운데 이렇게 행동하는 부모를 둔 대부분의 환자들은
소년 시절에 자신들의 감정적 대응(활성화되어 본 적이 없다)을 억누르는 대신
머리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디오니소스가 주요 원형인 소년은 종종
이런 식으로 살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도망쳐서 비행 청소년이 되거나 극에서
보는 듯한 으름장을 놓거나 신체적 증상을 보일지도 모른다.
 
부모
 
  디오니소스 소년이 긍정적인 자기 이미지를 갖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그
또래의 대부분의 다른 유형의 소년들에 비해 훨씬 더 부모들에게 달려 있다. 그
이유는 그가 <소년>형에 잘 들어맞지 않기 때문에 가족 바깥의 세상에서는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이
디오니소스 소년의 공통된 경험이다. 그는 자기 본래 모습대로 살아가기 때문에
아버지를 즐겁게 해주지 못하는 형이다. 아버지가 바라는 출세한 아들이 되려고
애쓰는 것이 전형적인 경험이다.
  디오니소스 남신 자신은 그를 보살폈던 강한 아버지를 두었다. 신화에서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의 여러 다른 아들들보다 훨씬 더 많은-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았다. 제우스는 그에게 어머니이자 아버지였으며 그가 태어난 후로도 그의
보호는 계속되었다. 나중에 제우스는 디오니소스의 인간 아내인 아리아드네를
영원히 죽지 않게 만들었다. 디오니소스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가 내리는
선택을 지지하는, 사랑에 넘치는 지지자 제우스 아버지를 두는 것이 디오니소스
소년에게 이상적이다. 그래야 그의 인성과 남성성에 지장이 없게 된다.
  더욱이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의 막내 아들이었는데 실제 태어난 순서와는
상관없이 디오니소스 소년은 막내 아들처럼 행동한다. 그는 놀기 좋아하고
순간적으로 살아가며 출세에 전연 관심이 없다.
  대부분의 디오니소스 소년들은 <어머니의 아들들>로 보인다. 그들은 관심사나
성격 모두에서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더 닮았다. 그들이 감정적으로 냉혹
하거나 박대하는 아버지를 두었거나 홀어머니 손에서 자랐다면 흔히 지나칠
정도로 어머니와 자기를 동일시하고 다른 남성들로부터 또 자신의 남성성으로
부터 소외되어 있다고 느끼게 된다.
  아들이, 사내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기대대로 살지 않을 때 어머니와 아들
사이가 소원해질 수 있다. 어머니가 가장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신이자 영웅
남성의 수호신인 아테나 원형일 때 특히 그러하다. 그녀는 세파에 시달리는
아들을 도울 수 있는 스승 어머니이지만 특별히 모성적인 여성은 아니다.
그녀는 야망이 없는 아들 때문에 실망을 하고 좌절을 하며, 아들은 모성에
넘치는 어머니를 갖고 싶어한다. 그는 다른 여성들 속에서 모성을 찾으려 한다.
 
사춘기와 청년기
 
  사춘기는 보통 위기의 시기다. 이 시기에는 만사가 디오니소스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의 감정적 분위기는 다른 십대들보다 기복이 더 심하다. 자기의 성적
정체감에 대한 의문이 더 커서 소녀들 또는 소년들 -또는 둘 다 -과
걱정되리만큼 열렬한 사랑에 빠져 든다. 마약 복용은 결정적으로 위험한
일이다. 튀게 보이는 옷을 입기 쉽다. 그는 점수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만큼 더 무관심해질 뿐이다
  부모는 전형적으로 놀라게 되고 학교 당국도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순응하지 못하거나 주류에 끼지 못하는 일이 늘 있었지만
그렇게 뚜렷하지는 않았는데 이제는 심하게 눈에 띄게 된다.
  때때로 그런 갈등은 남들과의 관계에 있기보다는 디오니소스 소년 내부에
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디오니소스적인 면을 따르려 노력하기와 억제하기가
이제 더욱 어려워진다. 소년이 자기 자신과 싸울 때 감정이 손상되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우게 될 것이다. 심한 정신 착란이 일어날 수
있다. 억압적인 종교와 가족이 <불순한 생각>을 가지는 것을 단죄하는 경우
깊은 죄의식을 가지게 될 수 있다.
  사춘기에서 성년이 되기 전 기간에 일어나는 가출은 십대의 감정적 소란과
실험으로 이어진다. 영적, 성적 영역에서나 술이나 마약에 취함으로써 황홀경의
경험을 추구하는 것은 흔히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고 직업을 갖지 못하게 한다.
이 시기는 종종 굉장히 위험스러울 수 있는, 극단적인 경험을 하는 때다.
  그렇지만 위험 천만의 극단 상황까지 가지 않고서도 인간이 갖고 있는 디오
니소스적인 요소를 활성화하고 드러낼 수 있는데 성장기에 스스로를 드러내고
가치를 인정받거나 어떤 조력자를 만날 경우에 그러하다. 예를 들면 디오니소
스는 바로 지금을 살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그렇지 않았더라면 얻을 수 없
을 교훈들)으로부터 무엇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 하는 것뿐만 아니라 오늘은 내
일로 이어진다는 것을 참을성 있게 배울 필요가 있다.
 
직업
 
  황홀경의 상태에 이르고자 하는 욕구가 그로 하여금 신비적이고 종교적인
것으로 향하게 되면 젊은 디오니소스는 성직자가 되어 의례, 성사와 의식의
신비에 빠져 들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북을 치거나 노래를 하는 것이
능히 의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아슈람(아슈람은 힌두교의 은둔자의 암자,
히피의 부락을 뜻한다, 옳긴이 주)에 들어갈 수도 있다. 탄트라 요가의
관능적인 신비 체험이나 바그반 스리 라즈니쉬 추종자들의 성적인 훈련은 좀더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디오니소스 남성은 개인의 야망으로 불타는, 경쟁적인 직업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며 학문 세계에도 흥미를 갖지 못한다 연구와 훈련을 여러 해 거듭하여
어떤 일에서 적성을 개발한다는 것은 그의 기질과는 반대된다. 또한 권력과
위신을 얻는 것도 그에게 개인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 그렇기에 직업 세계가
많은 디오니소스 남성들에게 문젯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직업 세계에는 실업 상태에 있는 수준 이하의 다수와 눈에 띄게 성공한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몇몇 디오니소스 남성들은 그들이 지닌 어두운 면이나
디오니소스적인 갈등과 씨름하는 재능과 경험이 그들의 일터에서 함께 하여,
창조력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성공하기도 한다. 유진 오닐의 희곡 <얼음 장수
돌아오다>는 작가가 무절제하게 음주를 일삼던 시절을 반영한다. 또 다른 희곡
작가이자 퓰리처 상 수상자인 샘 쉐퍼드는 남자 형제 부부들을 통해 자기
성격이 지닌 극단적인 면을 묘사한다. 또한 디오니소스 남성들은 록 스타들과
배우들, 알코올과 마약 중독을 이겨 내야 했던 사람들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다.
 
여성들과의 관계
 
  디오니소스 남신은 여성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디오니소스 남성도 대개는 그
러하다. 모성적인 여성들은 대개 그를 양육하기 어렵고 상처 입기 쉬운 남성으
로 본다. 청년이든 중년 남성이든 간에 그가 지니고 있는 소년다운 모습은 어
떤 여성들에게는 보살피고 싶게 만든다. 그는 가혹하게 다루어지고 박대당해
왔을 수 있다. 또한 그가 자신의 감정적 상처를 추스리는 것을 보는 것은 몇몇
여성들 속에 있는 모성을 건드린다.
  그의 미적 감각과 안목은 여성들을 사로잡는다. 그녀들은 그의 친구일 수도
있고 장래 연인일 수도 있다. 그가 어떤 여성과 사랑에 빠질 때 특히 그녀가
이제껏 남성과 황홀하고 열정적인 성애를 경험해 보지 못하였다고 한다면
그녀를 깊이 감동시킨다. 그녀의 성욕을 일깨워 준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그에게 빠져 버리는 여성도 있고, 굉장한 질투심을 느끼는
여성도 있을 것이다. 그가 어떤 여성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람으로 받아
들여질 때 그의 등장은 종종 그녀의 삶에 극적 사건이나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
이제 그녀는 그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급격한 감정 기복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디오니소스 남성은 여성들을 진짜 좋아한다. 유아원 시절부터 그는 어쩌면
친하게 지내는 여자 친구들을 여러 명 가졌을 것이다. 그는 그녀들과 자기
관심사,신뢰감, 대부분의 남성들이 여성들과는 갖지 못하는 깊은 우정을
나누었을 것이다.
 
남성들과의 관계
 
  디오니소스 남성은 대개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그는 탈의실이나
회의실에 있는 것이 편치 못하다. 그 이유는 이러한 장에서 맺어지는
남성들간의 관계는 너무나 비인격적이며 목적 지향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너무나 개인적이기 때문에 팀의 일원이 될 수 없으며 경쟁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운영 방침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사내자식>이 될 수도 없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잘 어울려 지내는 여러 남자 동료들보다는 절친하게
지내는 남자 친구를 가지기 쉽다. 여러 남자 친구들이 그에게는 여러 모로
굉장히 중요할 수 있다. 헤르메스 친구를 가졌다면 그는 깊은 대화를 나눌
것이고 헤파이스토스 친구는 디오니소스가 자신의 작품을 정말로 제대로 평가해
주고 헤파이스토스가 예술 작품들을 만들었을 때 느꼈던 것과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그것들을 어루만지고 있는 것을 안다. 아폴론도 자신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디오니소스에게 빠져 든다.
  디오니소스는 디오니소스 남성과 마찬가지로 친구 때문에 울 수 있었던
남신이었다. 친구 암펠로스가 죽자 디오니소스는 그의 무덤가에서 눈물을
흘렸는데 그 눈물이 떨어진 곳에서 자란 포도덩굴과 포도주 때문에 어느 정도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성생활
 
  타고난 강렬한 성욕의 표현은 디오니소스에게는 본질적인 문젯거리다.
디오니소스 남성은 이성애자일 수도 동성애자일 수도 또는 양성애자일 수도
있다. 그가 굉장히 난잡한 록 음악가이든 독신 성직자이든 간에 성욕은 중요
관심사이다. 나면서부터 관능적인 그의 에로틱한 성격은 쉽사리
불러일으켜진다. 그는 남들이 일에 쏟아붓는 것만큼의 상당한 정신적 에너지를
성적인 영역에 쏟아붓는다. 그는 황홀한 성적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때때로
깊은 육체적 관계에 있지 않고서도 음악이나 술, 마약 등으로 흥분 상태에
다다르기도 한다. 예민한 상대라면 그가 너무나 깊이 성교에 빠져 들어 의식의
전이 상태로 옮아가며, 그의 성행위에는 비육체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그는 계속해서 여러 여성들과 관계를 맺을 수도 있고 만일 그녀 역시 그처럼
순간적인 사랑을 할 수 있다면 같은 여성과도 반복적인 경험을 하게 될 수
있다. 정복이 동기가 아니며 경험 그 자체가 동기가 된다.
 
결혼
 
  전통적인 여성은 디오니소스 남성을 <좋은 남편감>으로 여기지 않는데 그것
은 정확한 평가다. 그는 출퇴근 시간이 분명한 평생 직장을 가진 가장이 되거
나 사업 또는 전문 분야에서 정상에 올라 그녀에게 지위와 안전을 보장하리라
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가 경제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아
무도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디오니소스 남성과 사랑에 빠져 그와 결혼하게 된 여성이 그에게 다른 사람 -
그녀가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그러나 이제는 그가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착실하고 예측 가능한 남성 -이 되기를 기대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그는 순간순간 살아가며 생애 전체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결혼도 어쩌면
그녀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또다시 역설적이게도 그리고 남신과 마찬가지로 생애 어느 순간에
그는 결혼을 하게 되고 결혼을 받아들이고 자기 아내를 사랑하고 아끼게 될지도
모른다. 그가 마음 깊이 알고 있는 여성과 말이다
 
자식
 
  디오니소스 남성 자신은 흔히 <큰애>로 남의 아이들에게 호평을 받는다. 그
렇지만 자기 자식들에게 찢어지는 감정을 남겨 준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가
놀기 좋아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관대하며 그의 행복스런 분위기가 전염되기
쉬울 때) 그는 놀라우리만치 흥분하거나 (그가 그들과 특별한 것을 하기로
약속하였는 데 기억하지 못하거나 공통된 경험이 되었던 어떤 것에 대해
이전처럼 열중하지 못할 때)굉장히 절망할 수 있다. 순간적으로 내뱉은 말을
진지하게 말하는 매력적인 남성이다가도 끝까지 철저하게 해내리라고 기대할 수
없는 사람을 아버지로 두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만일 그가 이혼하였거나
이혼할 가능성이 큰 아버지라면 그는 더욱 일관성 없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디오니소스 남성은 대개 전통적인 아버지 - 가장, 원칙주의자, 가족과
외부세계 사이의 중재자, 스승의 역할들과 출세하는 비결의 역할 모델 -로서의
책임을 잘 수행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자식들이 태어났을 때 그는 자기 아내의
노동과 출산 과정에, 감정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모든 면에 깊숙이 관여해 왔을
수도 있다. 출산 과정은 그를 자기 자식과 아내와 묶는, 공통된 신비스럽거나
황홀한 경험이었을 수 있다. 디오니소스 남성은 기질적으로 볼 때 전통적이고
냉철한 이 세상을 사는 하늘의 아버지가 결코 될 수 없을지라도 가정적인 면이
있고 본능적으로 자식에게 친밀한 대지의 아버지는 될 수 있다.
 
중년기
 
  중년의 디오니소스 남성은 커다란 감정의 위기를 한창 겪고 있을 수 있다.
지나치게 원칙적이거나 또는 아무런 원칙이 없어 사고를 친다면 그는 알콜
중독이나 마약 중독에 걸리거나, 또는 직장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대인
관계를 잘 맺지 못할 수 있다. 교육을 받지 못하였거나 직업을 갖지 못했거나
또는 불규칙한 직장 생활 경력이 이제 눈에 띄게 분명해진다. 그의 결혼 상황도
종종 그보다 더 낫지 않다. 수많은 공인 디오니소스는 중년을 버티지 못한다.
한 예로 약을 과다 복용하여 죽은 록 스타 도어스 그룹의 짐 모리슨과 죤
벨러쉬를 들 수 있다.
  좀더 공통적으로 중년의 위기는 가장 눈에 띄는 문제인 알콜 중독과 더불어
수년 동안 지속된다. 시인 딜런 토마스와 배우 리차드 버튼는 알콜 중독,
창조적인 표현, 여성들과의 어려운 관계들과 씨름을 해야만 했다. 이러한
것들은 고전적인 디오니소스 중년이 겪는 갈등들이다. 토마스와 버튼은 그 모든
것을 겪었다. 디오니소스 남성 역시 그러하거나 그 가운데 단지 한 가지만을
겪을 수도 있다.
  그렇긴 하지만 의미있는 작업을 하면서 지내고 친교와 관여라는 관계의
문제에 천착하는 초인적인 노력을 통해 디오니소스 남성은 긴장을 유지하고
황홀경의 창조적인 순간을 그의 생에 통합시키는 깊이와 성숙을 지닌 남성으로
발전할 수 있다.
 
노년기
 
  디오니소스 남성이 어떤 중년기를 보냈느냐 하는 것이 노년기에 세 가지 유
형 가운데 어떤 것을 취할지를 결정한다.
  한 가지 공통된 유형은 중년의 갈등(알코올, 직장 문제 또는 관계의 문제)이
죽을 때까지 해결되지 않고 지속되는 것인데 그런 경우 종종 일찍 죽음을 맞게
된다.
  두번째 유형은 디오니소스 원형이 물려받은 재산과 어우러져 있는 상태인데
물려받은 재산은 노년이 되도록 어울리지 않게 영원한 젊은이로 머물러 있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의 성적인 지향이 무엇이든지간에 그는 대개 성적 상대로
젊은 상대를 고르며 안해 본 일이 없는 탓에 삶은 몹시 지쳐 있게 마련이다.
  깊이와 의미를 지니면서도 굉장히 개인적인 삶을 사는 것은 얻기 어려운 세
번째 가능성이다. 디오니소스적인 사람이 성숙한 인성을 갖춘다면 그는
순간을,타피스트리의 한 가닥이 되는 순간을, 지속적이고 관계 지향적인
감정적으로 풍부한 인생을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황홀경의 체험은
실제의 기저에 놓여 있는, 어떤 의미에서 영적인 것, 자연의 일부와 인간
본성의 일부를 제공한다. 이러한 영적인 완성은 죽음을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맞아들이는 장차의 체험이 되게 한다.
 
심리적인 문제점들
 
디오니소스 원형이 남성의 감정과 행동을 결정할때 그가 지닐 수 있는 커다란
심리적인 문제점들은 다른 어느 원형들보다 더욱 크다. 얼마 만큼의 손해가 날
지는 원형의 힘에 달려 있다 -그것이 얼마나 강한가 하는 것은 남성의 자아가
지닌 약점과 상관이 있다. 강하고 건강한 자아를 가진 남성만이 적절하게
원형의 영향을 견제하고 어떻게 언제 누구와 어떤 상황에서 자기 속에 있는
디오니소스를 살려 낼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
  더욱이 도덕적이고 청교도적인 사회는 다른 어느 원형보다 더욱 강력한
부정적 메시지를 디오니소스에게 돌린다 - 이 점은 디오니소스가 심리적인
문제점을 낳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원형을 억압하는 것에서 역효과가
날뿐만 아니라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다.
 
자기 인식의 왜곡 : 약한 자존심과 과장
 
  사내 아이나 남자에 대한 우리 문화의 표준 남성상은 젊은 디오니소스에게
뭔가 잘못된 것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아주 일찍부터 자신이 너무
감정적이라거나 너무 격렬하다거나 계집아이들이나 관심을 가지는 것들에 흥미
있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자존심은 자연히 고통을 받는다.
  다른 한편으로 이 원형이 지닌 신동의 측면은 그에게 비현실적인 일종의 특
별함과 특권을 준다. 자주 그는 양 극단을 오르내린다. 주어진 일에
부적합하다고 느끼다가도 곧 착수하려는 일이 그를 일약 유명인으로 만들리라고
느끼는 것이다.
  자기를 일관성 있게 인식하지 못하는 데다 순전히 주관적인 느낌에 기초하여
긍정적인 자존심을 갖는 것은 현실적인 의미의 자기 자신이나 그의 값어치를
갖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그에 대한 남들의 반웅은 종종 일관성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사람들은 그에 대해 부정적인 반웅과 긍정적인 반응을 다 보이는
데 중립적인 반옹은 거의 없다.
 
영원한 청년으로 남기
 
  디오니소스 남신은 청년 남신이었다. 그는 어깨까지 늘어뜨린 긴 머리에 자 
주빛 옷을 걸친, 우아한 젊은 남성으로 묘사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신화에서
그는 그를 왕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몸값을 받아내려 한 해적들에게
납치되었다. 이 이미지는 전형적으로 특권층의 영원한 젊은이의 이미지다. 또한
이러한 원형이 부와 손을 맞잡게 될 때 그 결과는 보나마나 감각적인 플레이
보이 - 예를 들면 청년 알리 칸 - 이다. 자기를 영원한 청춘 디오니소스와
동일시하게 된 많은 남성들은 실제로 그들의 부와 유명세에 버금가는 것들을
갖고 있으며 이 다음 파티 내지 염문 때문에 살아간다. 영원한 청년으로 남을
가능성은 디오니소스가 지배적인 원형일 때마다 나타난다.
 
상대방과의 싸움
 
  디오니소스 같은 성격의 남성들은 내부에 나란히 존재하는 모순 그리고
대립적인 요소들과 싸운다. 그들 내부에 - 남신들 내부처럼 - 황홀과 파괴력,
열정과 냉정함, 긴박함과 거리감이 모두 공존할 수 있다.
  희곡 작가이자 방송 작가인 샘 쉐피드 -그 자신이 디오니소스 남성의 예이다.
- 는 이러한 반대되는 요소들을 수용하는 일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늑대와 양에 얽힌 신화가 있다 ‥‥‥ 그리고 살아가는 과정은 이러한 둘의  
  동거 상태에 있고자 애쓰는 것이자 이 두 부분들 사이에 균형을 이루려 애쓰 
  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편이 늘 다른 편을 먹어 치우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이 
  다 먹어 치우려는 것 - 늑대 - 은 충동을 지배하며 매우 광기가 어려 있다.  
  결정적으로 한판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그것은 여러 방식으로 해결된다. 
  어떤 사람들은 술을 마시거나 마약을 복용함으로써 그것을 해결한다 어려움은 
  이러한 것이 당신이 살아 가고 있는 상황, 곧 이 두 부분들이 서로 부딪치는 
  상황이자, 한편에 의해 다른 편이 무너지는 부단한 위협이라는 것을 받아들이 
  는 데 있다.
 
정신 이상이 될 가능성
 
  디오니소스는 미친 남신이자 추종자들을 미치게 만든 남신으로 알려졌다.
그는 정신을 산란하게 만들었다. 그가 갑자기 나타나자 그의 마이나데스들은
황홀경에 빠져 환희와 열광적인 춤 그리고 타오르는 분노에 사로잡혔다
  록 콘서트, 특히 스타가 갑자기 무대 위에 나타날 때 디오니소스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으며 청중은 미쳐 버린다. 열광과 마약과 춤이 있고 청중들 앞에
황홀을 드러내는 표현들이 있게 마련이다. 알타몬트에서 있은 롤링 스톤스 콘
서트에서처럼 이따금 폭력과 테러가 행해진다.
  디오니소스 남신이 그의 추종자들에게 나타났을 때 대소란이 일어났는데 그
가 갑자기 사라진 다음에는 얼어 붙은 침묵이나 슬픈 우울증이 이어졌다.
황홀경의 상태가 고조되고 신과의 합일이 이루어졌다가도 우울증으로 치닫는
이같 은 변덕은 격렬하게 퍼져나가다가도 다음 순간 갑자기 의기 소침해지거나
또는 환상과 망상적인 행동에 사로잡혀 있다가도 다음 순간 지독한 공포와
죄의식 환상에 사로잡혀 있게 되는 현상을 말해 준다.
  <짜라투스트라는 이ㄹ게 말했다>쓴, 독일의 철학자 프레데릭 니체는 11년
동안 퇴행성 정신 질환을 앓았다. 그의 광기와 정신의 분열을 디오니소스의
해체와 동일시하면서 니체는 황홀하고 과도하고 야만적이며 티탄적인 죄스럽기
조차한 디오니소스의 면모를 강조하였다.
 
포도나무 선물이 지니는 부대 효과 : 물질 남용의 문제점
 
  디오니소스의 숭배는 신과의 합일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포도주를 마시거나
다른 성찬식에 마약을 복용하는 것을 수반하였다. 그의 추종자들은 그들이 자
기들 속에 신을 모시고 있고 신의 소유물이 되었다고 느꼈다.
  만일 그가 마약을 복용함으로써 황홀하거나 의식의 전이 상태를 추구한다면
현대의 디오니소스는 물질 남용의 문제점을 느끼기 쉽다 그가 환각제를
복용한다면 심신의 건강을 위태롭게 할지도 모른다.
  내가 1960년대에 샌프란시스코 종합 병원의 정신과 레지던트로 응급실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구입한 환각제와 흥분제를 먹고 실려
들어오는 일이 잦았다. 그들이 기분이 좋다고 느꼈던 약들은 그들을 편집증과
공포심에 사로잡히거나 교통이나 높이를 무시하여 신체적 위협에 처하게 하거나
또는 망상이나 환상을 좇아 행동하여 남들의 안전을 위협하기도 한다. 10여년이
지난 지금에는 처방된 약제와 분자 하나가 다른 환각 <조제> 약이, 약아 빠지고
이익에 눈이 먼 화학자에 의해 불법 목록보다 한발 앞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제
위험은 도시의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있다. <신의 경험>을 약속하면서 팔린
약은 어떤 경우에는 죽음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현대의 복용자들은 일시적으로 고양된 기분을 느끼려고 먹은 약이 부작용,
절망,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들이 디오니소스와의
합일을 추구했을 때 그는 우울증과 절망으로 이어지는 황홀한 기분이나 공포와
죄의식으로 이어지는 환상을 불러 들였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남신과의 합일은 알콜 중독으로 이어지는 음주의 무의식적인 주요 동기일 수
있다. 알콜 중독자 모임 Alcohol Anonymous의 공동 설립자인 빌 W.은 알콜
중독과 영성 사이의 이러한 연관성을 밝힌 융과 편지 교환을 하였다. 빌은
융에게 그가, 1930년대 AA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롤랜드 H.와 가진 대화가
얼마나 중요했었는지에 대해 썼다. (롤랜드는 알콜 중독자이자 융의 예전
환자로 융은 그와 가진 대화에서 그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롤랜드)가 이제 어떤 다른 회망이 있는지에 대해서 물었을 때 당신은 그
에게 영적이거나 종교적인 체험의 주체가 된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했죠."
  (융의 말을 가슴에 새긴 롤랜드는 그 후 그를 도왔던 영적 체험을 추구하였고
찾았다. )
  융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의 알콜에 대한 갈망은 가히 낮은 수준에서의
우리의 존재가 전체를 향하는 영적인 갈증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중세식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할 만합니다. "
  "알다시피 라틴어로 알콜이란 말은 스삐리뚜스 spiritus죠. 당신은 가장 타락
한 폐해(독약,술)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가장 고상한 종교적 체험에 대해서도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참고가 되는 공식은 영은 영으로
맞선다 spiritus contra spiritum는 것이지요."
  영은 영으로 맞선다는 구절은 알콜 중독 상태에 대항하는 데는 영적인 합일
을 사용한다는 원칙으로 번역된다. 곧 알콜을 신(개개인마다 의미 있는 형태가
무엇이든지간에)과 대치시킴으로써. 알콜이나 그밖의 다른 물질을 이용하는 것
이 디오니소스의 의해 일어날 때 남성 또는 여성은 이러한 수단을 통해 영적인
합일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신과의 관계가 절주를 가져오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심신 상관 증후군
 
  디오니소스는 혈관을 통해 알콜이 흡수되는 만큼 자기 숭배자들의 몸 속으로
들어가, 감각에 영향을 미치고 몸과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디오니소스를 강력한 원형으로 하는 남성을 통해 디오니소스가 구현된다 - 곧
그에게는 감각 기관이 되는, 자기 몸으로 반응을 보이며 자기 몸에서 감정을
느낀다. 춤을 추거나 성행위를 할 때 그의 몸의 전체 상태는 이러한 구현을
긍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의 몸이 심신 상관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부정적인 측면이다. 그는 전향의 징후를 보이는데 - 예를 들면 신경질적인 마비
상태나 무분별, 식욕 감퇴는 그가 신경성 질환에 걸렸다는 것을 드러내는 또
다른 표현인 것이다
  그는 또 자기 몸이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두려워할 수 있다. 몸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몸의 감각을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머리로
사는 남성이 깨닫지조차 못할지도 모르는 아픔이나 고통 때문에 불안해 할 것
이다.
 
남들이 겪는 어려움
 
  디오니소스 남성이 여성의 삶에 중요한 사람이 될 경우 그녀의 삶이 따분하
지 않으리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얼마나 소란스러운지, 또는 얼마나
신나는지 아니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는 그에게 또 그녀가 누구냐 어떤
관계냐에 달려 있다 - 비일상적인 우정이냐 아니면 새로운 연애 사건인가?
동거냐, 결혼이냐? 똑같이 중요하게 그녀가 그 관계에 어떤 희망을 품고
있는가?
  결국 영속적이고 일부 일처제 결혼이 될 열렬한 연애를 기대하는, 희망에 찬
헤라(결혼의 신, 원형적 아내)가 그녀 속에 있다면 그 관계는 그녀에게 재앙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복수심 질투심 같은, 그녀의 가장 좋지 않은 어두운
면이그대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디오니소스는 종종 대전환기에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여성의
인생에 들어가 "술잔치에 가도록 집안에 있는 그녀를 불러내며" 그렇게 하면서
그녀의 가정과 결혼 생활을 파경으로 몰고 그녀가 살아오면서 -처음에는 착한
소녀로, 그 다옴에는 좋은 아내로서 - 억눌러 온 열정과 분노를 활성화시킬
수도 있다.
  남편과의 사별로 결혼 생활이 끝난 이후 시기는 디오니소스 남성이 자주 여
성의 삶에 등장하는 또 다른 과도기이다. 여기서 그는 다시금 전수자, 곧 그녀
의 성애적 경향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관능적인 남성이다. 그는 그녀에게 흥
분제나 타악기 음악이나 황홀경의 명상을 전수할 수도 있다. 아니면 디오니소
스 연인이 결혼 생활을 벗어난 후의 삶의 장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디오니소스 남신이 여성들을 자가와 운명을 함께 하는, 크게 화난 마이나데
스로 변형시켜, 갈기갈기 찢기고 손발이 잘리거나 참혹하게 박해받게 했던 일
을 생각해 보라. 디오니소스 남성에 연루될 가장 암울한 가능성이다. 저승으로
납치되어 갈지도 모르는 -우울증과 현실의 상실을 은유하는 것 -페르세포네
같은 여성들은 가장 약한 이들이다. 또한 권력자의 카멜레온처럼 달라붙는 특성
때문에 불만에 찬, 찰스 맨슨의 추종자들이 되거나 납치당하여 욕을 본 패티
허스트처럼 범죄자 디오니소스의 지배 하에 있게 될 수 있다. 더욱이
디오니소스가 여성들을 소리쳐 부르는 남신이었다고는 하지만 원형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살아 있으며 응답하는 이들은 어느 한 성일 수도, 양성일 수도
동성일 수도 있다.
 
성장라는 길
 
디오니소스 남성(또는 여성)이 성장하기 위해 심리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남들
보다 좀더 복잡하다. 그 이유는 그 원형이 좀더 복잡하기 때문이다. 주의 깊고
수용적인 자아를 필요로 한다. 덜 편향적이게 되는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생존
을 위해 다른 원형들을 활성화시켜야 할 것이다. 두 가지 주요 작업에 착수해
야 할 것이다. 무의식과 기존의 연루된 관계에 과감하게 대면하는 일이다 -
그가 보통 사람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일상적인 삶을
살기 위한 일이다.
 
주의 깊고 수용적인 자아를 활성화시키기
 
  만일 마음 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이미지가 무엇이든지간에, 몸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무엇이든지간에 아무런 판단이나 수치심 없이 밀어닥치는
열정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좇아 행동해야만 하는, 강하고도 주의 깊은 자아의
소유자라면, 그는 이러한 원형을 억누르거나 미쳐 버리거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보통 사람들의 배척을 받지 않고도 이러한 원형을 속에 갖고 있을 수 있다.
디오니소스가 여러분 속에서 힘을 발휘하는 원형이라면 여러분은 단지 이것이
얻으려고 애쓰는 태도라는 것을 알기만 해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특히 어린 시절에 박대를 당하고 늘 평가를 받았을 경우 정신과 치료는
자아를 개발하거나 강화하고 자기를 수용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 된다.
 
협력자 활성화시키기 : 제우스, 헤르메스, 아폴론
 
  디오니소스에 관한 신화를 보면 몇몇 남신들이 그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그의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제우스, 헤르메스, 아폴론은 디오니소스
남성이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는 원형들이다.
  제우스는 디오니소스의 생명을 두 번이나 구해 주었다. 처음에는 그를 죽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꺼내어 자기 허벅지에다 넣고 꿰매 붙였고, 두번째는 헤라
가 그의 양부모를 미치게 하였을 때 또다시 그를 구출해 냈다. 긍정적인 아버
지 원형 -자식을 돌보면서도 강한 제우스로 인격화하였던 -은 결정적으로
디오니소스 남성이 자기 동료들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게 된 상태를
받아들이도록 도을 수 있고 비합리적인 사고나 격렬한 감정을 갖고서도
그것들을 좇아 행동하지 않고 자기 부정적이지 않으면서도 살아가도록 도울 수
있다. 실제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고 받아들일 경우 디오니소스 남성은 긍정적인
아버지 제우스 원형을 자기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활성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활성화는 아버지 모습을 한 스승이나 임상 의사와 긍정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길러질 수도 있다.
  헤르메스는 디오니소스의 출생을 지켜본 산파 또는 디오니소스를 수양
부모에게 데려다 주었던 남신이었다. 전령의 남신 헤르메스는 저승, 이숭,
올림포스 산꼭대기 사이를 오르내렸다. 디오니소스는 지하와 천상을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디오니소스 남성은 그에게 유일한
실재인 현재에 살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가 <지옥으로>내려가 침울해 있다면
그것이 그에게는 끝이 없는 영원한 것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절망은 <유일한
탈출구>로 자살을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헤르메스는 그가 있는 곳이
어디든지간에 일시적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헤르메스는 전달자의 수호신이기도 했다. 자기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배우고 그러한 감정을 남들과 나눔으로써 디오니소스 남성은 헤르메스의 이러한
면을 활성화시킨다. 그렇다면 남들도 종종 그에게 도움이 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얻도록 도울 수 있다.
  합리적인 아폴론은 디오니소스 남성이 활성화시켜야 할 세번째 협력자이다.
그를 기념하는 의례에서 디오니소스는 아폴론과 델피 신전을 공유하였다. 두
남신들은 델피에서 숭배를 받았는데 겨울 석 달간은 디오니소스가, 한 해의
나머지 기간 동안에는 아폴론이 숭배되었다 이 두 남신은 전통적으로 정반대
성격의 남신들이다. 아폴론은 합리적이고 직선적인 사고의 소유자로 명료한
것에 가치를 두었고 태양의 남신으로 만사를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볼 줄
알았다. 그는 왼쪽 뇌의 기능의 화신이다. 디오니소스는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면을 드러내는 남신으로 그 속에는 대립과 모순이
병존한다. 그는 오른쪽 뇌의 기능의 화신이다. 둘 다 남성의 마음 속에 있을
필요가 있다. 좋은 교육이라는 것은 대개 디오니소스 남성이 아폴론 원형이
지닌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개발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영웅의 임무 :저승으로의 여행
 
  디오니소스 남성이 심리적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자신을 신동과 영원한
사춘기 소년으로 동일시하지 말고 신인이 되어야 한다. 심리학자 에릭 노이만은
남성 의식의 기원과 성장에 관한 그의 고전적 저술에서 신인이 되려는
자웅동체의 아들-애인의 욕구에 대해 쓰고 있다. 노이만은 이 책에서 자신이
어둠, 무, 공허, 지옥, 저승, 위대한 어머니의 최초의 자궁이라고 할만한
무의식과 비아에 일부러 몸을 드러내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곳에서 그의 자아가
무의식 상태에 빠져 비합리적인 두려움 - 무의식 세계의 괴물과 악마들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게 될 수 있다. 신인은 저승의 위험을 견며 내고 완전한 자아
싸움으로 단련된 자아와 더불어 그 모습을 나타내야 하는 것이다.
  신화에서 디오니소스가 올림포스에서 자기 자리를 잘기 전에 해낸 마지막
일은 이러한 신인의 임무였다. 그는 죽어 지금 저승에 있는, 인간 어머니
세멜레를 구출하기로 마음 먹었다. 저승 가는 한 가지 방법은 레르네라는
습지에 있는 헤아릴 수 없이 깊은 연못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디오니소스는 연못에 뛰어들었고 머지 않아 하데스가 다스리는 어둠의 집에
이르렀다. ,거기서 어머니를 구해 내어 이승을 거쳐 올림포스 산으로 데리고
갔다.
  심리적으로 디오니소스는 자기의 인간 어머니를 위대한 어머니와 구별하였
다. 위대한 어머니는 무의식 세계에 대한 공포와 여성적인 것에 빠져 드는 것
에 대한 남성 자아가 갖고 있는 두려움을 이겨 냈다. 남성이 자기 어머니를 사
랑할 수 있고 (다른 어떤 여성만큼이나)그녀를 자기에게 무시무시한 힘을 행사
하지 않는 (그를 거세할 수 얼는) 인간 여성으로 대할 수 있을 때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인간 어머니를 위대한 어머니에게서
구해 내었다. 그의 사춘기적 자아는 신인 자아가 되었다. 그는 성장하였던
것이다.
 
인간적인 사랑 나누기 : 아리아드네를 찾기
 
  디오니소스는 여행 중에 낙소스라는 섬에서 아리아드네를 우연히 발견했다.
그녀를 그곳에다 버리고 간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크레타 섬을
빠져 나오도록 자기를 도와준 그녀를 이용하였던 사람이다. 아테네로 돌아가는
길에 테세우스는 그녀가 혼자 해안가에 잠들어 있는 때를 틈타 남겨 두고 섬을
떠났는데 디오니소스가 그녀를 거기에서 발견하였던 것이다. 디오니소스는
그녀를 사랑하고 존중하였다. 디오니소스를 위해 제우스는 그녀에게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젊음을 주어 죽지 않도록 해주었다
  디오니소스 남성에게 있어서 연애 관계는 격렬하고 무아경에 빠지기 쉽다.
그가 기꺼이 심신을 새롭게 하는 합일감은 그와 그의 상대자 둘 다를 극도로
가깝다는 느낌이 들게 하지만 인간적인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디오니소스 남신이 버림받고 배신당한 아리아드네를 발견했을 때 느꼈던 것처럼
그가 특별한 여성을 불쌍히 여기고 동정하는 자신을 발견하기까지 그가 한
경험이란 비인격적이거나 초인격적(디오니소스가 마이나데스들과 많은 관계를
가진 것처럼)이다. 그가 성관계를 맺고 있지 않는 경우에도 사랑하는 사람과
인연을 맺을 때라야 디오니소스 남성은 원형적 애인 상태를 넘어서서 인격적
관계로 옮아간다
 

IV
우리 자신을 기억해 내기

우리가 남신들이 누구인지를 알 때 우리 자신에 관해 좀더 많은 것을 알 수 있
다. 그들 가운데 몇몇에서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다. 그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원형들이 지닌 위세, 의미, 한계들을 반영하고 있다 다른 남신들이
우리의 기억을 잡아당겨 우리가 전에 그들을 알았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또
다른 남신들에서 우리가 거부했던 남신들의 얼굴, 받아들이기 두려워했던
원형을 볼 수도 있다.
  여러분은 남신들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들 가운데 누가 여러분의
개성을 가장 많이 규정하고 있다고 보았는가? 이제 여러분이 출세하기 쉬웠던
이유가 무엇인지, 또 어떤 대가를 치르었는지 또는 왜 그령게 출세하기
어려운지 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아테네로 가는 도중에 여행자들 -은유적으로 자기의 목표를 성공으로 세운
남성(과 여성)들, 권력, 사업, 또는 지적인 성취감을 맛보는 분야의 핵심에
있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은 프로크루스테스에게 잡혀서 그의 침대에 눕혀져
침대 크기에 맞게 잡아 늘여지거나 아니면 크기에 맞도록 잘려졌다.
<프로크루스테스적>이라는 말은 임의적으로 때로는 마구잡이로 개인의 차이들을
무시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순응성은 현대판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라고 할
만하다. 남자라면 이러이러해야 된다는 표준 남성상이 남성들의 마음에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성은 맞지 않는 자신의 일부분들을 자르게
되거나 간격을 메울 수 있도록 맞는 부분을 잡아늘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은 남성들이 가부장제에 의해 독불장군이 되도록
틀지워지고 있는 곳이다. 남성들은 어머니 곁을 떠나야 하고 조금이라도 그들과
닮은 점이 있어서는 안된다. 아버지들은 냉랭하며 스스로 억누르고 있다.
남성들은 다른 남성들과 경쟁하며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되며,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것을 거절하며 끊임엄이 능력이 못한 동료들과는 헤어지는 식으로 살아
간다.
  남성(과 여성)들이 살아가면서 벗어나도록 되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집착뿐
만 아니라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에 맞지 않는 원형들이 잘려 나갈 때 심리적인
해체가 일어난다. 더욱이 감정에 대한 통제가 표준 남성상의 일부이기 때문에
남성은 자기만의 감정을 가져서도 안된다.
  다음 장 (우리의 신화 찾기 -자신을 기억해 내기)는 우리의 몸에서 잘려
나갔던 것을 다시 연결하고 귀로를 찾는 것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귀향은 자신을 진정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전체로 품어안는 것과
관계된 것이다.
  <행방불명된 남신>은 이 책의 마지막 장이다. 그는 제우스를 대신하여
남신들과 남성들을 다스리기로 예언된 아들이다. 이것은 남성의 정신 세계 속의
지배 원리가 될 수 있는 원형이며 만일 많은 남성들 안에 이 남신이 자리잡았더
라면 우리 문화도 바뀌었을 것이다.
제11장
우리의 신화 찾기
자신을 기억해 내기
 
남성들에게 인생은 어머니로부터 시작하여 어머니와 분리되고 탈동일시화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어머니를 떠나야만 하며 그녀를 닮아서도
안된다. 울어서는 안되는 남자 아이들은 유치원에 들어가게 되면 해를
거듭할수록 대처해야 하는 두 개의 문화를 갖게 된다. 교실 안에서 세상 -특히
처음에 -은 여성적인 것의 지배를 받는 곳이다 교사는 협력과 깔끔함, 질서,
학업 성적에 상을 주는 여성이다
  학창 시절에 몸집이 좀 큰 소년들은 골목대장이 되어 남자 또래 집단에서
받아들여지는 게 필수적이다. 격리된 소년은 또래 집단에서 찍히거나
희생양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집단 규범에 자신을 맞추어 가는 것이 학창 시절
생존에 필수적이며 공격자와 자기를 동일시하는 힘이 그곳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소년은 학교와 운동장이라는 두 세갸에 양 다리를 걸치고 있어야
하며 그는 어느 하나 또는 둘 다에서 실패할 수도 있다. 뛰어난 소년 운동
선수라면 두 세계 모두에서 대체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것이 보통인데
운동 자질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존중의 원천이다.
  나는 몇몇 남성들로부터 소년 시절과 사춘기가 인생의 황금기라는 얘기를
듣는다. 그 시절은 그들이 자기를 의식하지 않고 다른 소년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시기다. 내가 받은 인상은 이들 소년들이 운이 좋았다는 것, 곧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소년들은 틈만 나면 함께 시간을 보냈던
사춘기 이전 또는 사춘기 시절 친구들을 가졌으며 중산층 출신 아이들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것에 비하면 여가 시간을 맘껏 보내는
행운을 가졌다. 또는 그들은 기숙사 학교에서 가까워진 소년들이었다. 서로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이 황금기에만 싹텄다. 그 후 남성들에게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처럼 이별의 시기가 닥쳤다. 남성들이 좇으리라고 가정되는
전통적인 행로의 매 단계에는 양을 염소떼로부터 떼어놓거나 소년들을 남성들과
떼어 놓거나 성공한 이들을 성공하지 못한 이들로부터 떼어 놓는 것과 같은
여러 변화가 있다. 출세한 남성들은 그렇지 못한 또래들과 이별해야 한다.
  가부장제 세계가 남성들에게 계속적인 격리를 요구할 때 각각의 단절 방식은
두 가지로 나뉜다. 어머니와 떨어진 소년은 감정적으로도 그녀와 분리되며
그녀와 가까왔던 자신의 내부로부터도 스스로를 단절시킨다. 학교에 들어가
자기의 순수함이나 무지를 보여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 그것은 그를 웃음
거리로 만들기 때문이다 -소년은 허용되는 태도를 모방함으로써 적응을 해
나간다. 그와 함께 상승 이동을 할 수 없던 가장 절친한 친구를 가진 소년은
자기 우정을 단절시킬 뿐만 아니라 친구와의 헤어짐을 슬퍼하는 자신의
일부와도 단절한다. 슬플 때 울 수 있지만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우는
소년은 자기 감정으로부터 스스로에게 벽을 쌓음으로써 눈물을 거둔다. 또한
(소년에서 남성)으로 넘어가는 시기가 있는데 남성들의 서열에 끼기 위해 아직
청년에게 남아 있는 부드러운 요소를 희생하는 때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 보상이 가치를 결정하는, 제우스가 다스리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대부분의 성공한 남성들은 머리를 쓰는 기술을 가지고 사무직에서 일한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자신들의 전문 영역인 이러한 환경에서 성공을 거둔다. 많은
남성들은 그렇지 못하다. 농사를 짓거나 손으로 물건을 만들거나 음악을 만들거
나 어린아이들을 가르치저나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남성들이
있는가 하면 일을 전혀 하지 않는 남성들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과는 담을 쌓아 버리는 경우다.
  중년에 접어들어 절망감에 휩싸여 슬픔, 외로움, 무의미하다는 느낌이 들 때
까지 실패를 거듭한다.
 
기억해 내기
 
내가 정신과 치료를 하면서 보는 남성들은 삶이 고달프고 공허하거나 무미 건
조하고 따분할 때 부득이하게 대안을 찼게 된다-중년이 될 때까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들은 그들에게 맞는 것을 찾으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자기 생의 의미를 발견하려 애쓴다. 그들은 경쟁적인 세상에서 자리를 잡았으며
자기 삶의 많은 부분을 관리할 줄 아는 남성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절망, 분노,
궤양, 고 혈압, 심장 마비, 악몽, 또는 대인 관계의 위기는 무언가 크게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다. 과거에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 지금
그들 속에 엉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보도록 자기를 발견하는 여행을
하게 만든다. 각각의 남성에게 그 과정은 묻어 둔 감정들을 찾아내고 내면
세계를 발견하고 점차로 침잠하는 것이 된다. 그 가운데 그는 자기 개인사의 실 
타래를 잡을 수 있다. 이 이야기는 늘 어린 시절에서 시작되는데 그 당시 그는
누구였는지 무엇이 그에게 기쁨을 주었는지? 무엇이 그를 즐겁게 했는지? 어떤
일을 하는 데 몰입될 수 있었는지? 누가 그를 사랑했는지? 또 반대로 누가
그에게 창피를 주었는지? 그나 그의 가족이 남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은
무엇인지? 그는 무엇이 되려고 했는지? 누구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려고
했는지?그는 어떻게 취급받았는지 또 어떤 사람에 의해 그랬는지?
  그가 묻어 두고 의식적 깨달음에서 떼어 내었으며 과거 속에 남겨 둔 이가
(누구든지간에) - 어린 시절의 자기, 실제보다 더 큰 모습을 한 자기 부모, 돌
아 준 사람, 애완 동물, 형제 자매 , 그가 사랑했거나 두려워했던 사람들
-여전히 내부에 살아 있다. 묻어 둔 것이 (무엇이든지간에) -천진 난만함,
배반, 공포, 기쁨, 죄의식, 수치심, 사랑 그가 부정했던 원형들 모두가 그의
일부로 -그의 내부에 여전히 존재한다. 사춘기 또 성년기에도 해체가 일어난다.
그가 잘라내 버린 사랑과 우정,멕어버린 아이,거부한 동성 연애
친구,한국`일본`월남에 두고 온 아시아인 (아내), 그가 결혼할 수 없었던, 그의
삶을 사랑한 여성이 (잘 맞지) 않아 그에게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며 또
그에 상응하는 자신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억압 때문에 해체되고 매장된 것은 무엇이든간에 (산 채로 매장당한) 것이
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드러나게 되면 과거와 마찬가지로 존재하게 된다. 이 
 러한 사실은 흔히 있는 것처럼 매장되었던 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슬픔이 
 었을 때 특히 극적이다. 일단 그것을 꺼내게 되면 마치 10년 전이나 작년이 아 
닌 바로 어제 일어났던 일처럼 느끼게 된다 쌓인 화는 훨씬 더 영향을 받기  
쉽다. 몇몇 남성들에게 있는 슬픔처럼 깊숙히 억제되어 있을지라도 흙이 덮힌
불구덩이 속에 달구어진 석탄처럼 분노는 아마도 많은, 대부분의 남성들 마음
속에 있으리라.
  또한 폭로하는 감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산매장)당한 (누군가)를 다시
세상에 나오게 하는 것(또는 기억해 내는 것)이다. 받아들여질 수 없거나
바라지 않거나 학대받거나 수줍어한다고 해서 감금당한 어린아이,놀림을 당하여
그 다음부터는 사람 눈에 띄지 않게 된 영감에 찬 사춘기 소년,외관상 불구인
사람,이제는 자신의 삶에 생기를 회복시킬 수 있는 부정된 원형들이 바로 그들
이다.
  무슨 일이 왜 일어났는지를 아는 일은 현재에도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
리 각자는 가족이 맡긴 역할과 여러 성격을 가진 배역을 갖춘 개인사를 갖고
있다. 밑바탕에 깔려 있는 줄거리와 부차적 줄거리를 깨닫게 될 때까지 남들로
하여금 익숙한 역할들을 하도록 충원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살아나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여러분이 어떤 인물이 되려고 했는가 그리고 남들에게 어떻게 보였는가 하는
것은 자신의 원형들, 따라서 여러분 자신의 신화와 전혀 다를 수도 있다.
 
자기 신화 찾기
 
남신들이 원형들이라는 것을 앓으로써 여러분은 자신과 남들을 좀더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여러분이 누구를 빼어 닮았는지도 확인할 수 있으며 여러분이 되
려고 애쓴 원형이 누구일지, 그들 가운데 어느 원형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신화적 차원의 지식이 여러분의 것이 될 때 각자가 서 있는
위치와 각자에게 맞는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 여러분의
모습을 반영하고 인생을 의미있게 만들어 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분이 (아하! 하고 느끼는 순간 여러분의 지성과 감성이
개인적으로 알게 되는 직관적인 진리로 함께 다가왔다고 할 수 있다. 여러분의
가슴 또는 몸은 여러분의 머리가 배우는 것을 확인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남신들에 관해 안다는 것이 지적으로 파악될 뿐이라면 또 신화가 단지 옛날
이야기일 뿐이라면 여러분은 여전히 이 책이 말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진정으로
골추 못하는 것이며 그것을 놓쳐 버리고 있는 것이다. 남신들에 관해 안다는
것은 진정한 자기가 될 수 있는 수단일 뿐이며 (바로 내 문제로구나!) 하고
말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게 해주는 데 그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역설적으로 여러분의 신화를 찾는 것은 여전히 필요한 일이다. 여러분이 그
것들에 판해 전부 들은 후 개인적으로 그들 중 아무것과도 상관언다고 해도 말
이다. 여러분의 신화가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대로 살
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다음의 대화에서 신화학자죠셉 캠벨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사람이 어떻게 자기 신화를 찾지요?"하고 강의를 듣던 젊은이가 캠벨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그는 을음과 같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의 질문을 맞받아쳤
다. "당신의 가장 깊은 조화와 행복감은 어디에 있지요?"
  "잘 모르겠습니다. 확실하지 않아요" 하고 그는 대답했다.
  "찾으세요. 그리고 그것을 따르십시오" 하고 캠벨은 노래하듯이 답했다.
 
조화와 행복 찾기
 
조화란 올바른 길에 있는 상태, 하나가 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 몰입할 수
있고 여러분 각자의 가치들과 일치를 이루는, 살아 있는 노동을 하는 것,
여러분이 갖고 있는 재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조화는 특정 도시나 시골 또는
장소에서 상대, 또는 동료들과 같이 있거나 흔자 있는 상태, 동물 또는 자연과
같이 있으면서 거기에 진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는 상태이다.
조화는 깊은 상실감에 대응하는 깊은 아픔을 경험하는 것이다. 조화는
금방이라도 웃을 수 있고 눈물을 쏟을 수 있는, 억제되지 않은, 무의식의
자발성이다. 행동과 신념이 하나가 될 때,내부의 원형적 삶과 외부의 삶이
서로의 표현들일 때 있는 그대로의 우리가 될 때 조화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고 다음과 같은 것을 알고 있다. "난 여기가
편안합니다." "난 이 일에 빠져 있답니다" "그 일은 내게 기쁨을 줄니다." "난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것이 행복이지요."
  행복과 기쁨은 우리가 지고한 진실대로 살아가는 순간들 - 우리가 하는 일이
원형적 깊이와 일치하는 순간에 온다 가장 자기에게 충실할 때,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간에 -아주 평범할 수도 있다 - 역시 성스럽게 느낄 때가 바로 그
순간이다. 우리 속에 있는,모든 곳에 있는 신성을 느끼는 순간인 것이다
 
행동할 용기
 
진정으로 여러분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 여러분이 누구이며 마음
속 깊이 만족을 가져다 주고 원형적으로 진짜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는 것
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여러분은 또한 행동할 용기를 가져야만 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영어의 (용기 courag쓰는 불어의 (마음coeur)에서 나온 말이다.
용기는 누가 옆에서 뭐라고 하든지 개의치 않고 할 수만 있다면, 마음으로부터
행동하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르는 자발적인 태도다.
  모든 길에는 중대한 길목과 발을 헛딛을 수도 있는 곳들이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국외자에 대한 동정이 집단 소속감과 마찰을 일으킬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는가?남성에게 집단에 대한 복종은 강력한 힘이다. 집단에 반항하는
대가는 집단에서 쫓겨나는 것을 무릅쓰는 것이다. 아마도 나중에는 집단의
적대감이 여러분에게 향해지거나 비껴가거나 또는 집단이 인정하지 않는 사람과
연결될 수도 있다.
  이런 벌이 내려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집단이 여러분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나 원칙에 반할 때 집단과 잘 지낼 수 있을 것인가? 어쨌거나 대가를
치르어야 한다. 많은 남성들은 자신이 과거에 속한 집단에서 함께 저지른 일에
대해 오늘날까지 죄의식을 느긴다. 그는 더러운 비밀로 그것을 지킬 수도 있고
마음에서부터 그것을 억압하거나 망상에 시달리게 될 수도 있고 또는 그 경험이
다음 번에는 다르게 행동할 용기를 줄 수도 있다. 어떤 남성이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난손가락을 까닥하지도 않았고 단지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난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겁니다."
  자기의 원칙대로 마음에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집단에 거역하기로 작정하는
남성은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벌이가 좋은 직장을
떠나는 것도 마찬가지의 위험인 것이다. 꿈을 실현하려는 것도 그렇고, 사랑을
위해 새삽의 안전한 곳을 포기하는 것도 그렇다. 이런 상황들에서 그는 갈래길
중 하나를 택하며 자기만의 신화를 살기 위해 타른 사람이 여행한 넓은 길을
마다하는 것이다. 마음으로부터 행동하고 자신에게 진실된 것을 하면서 그는
아마 적어도 처음에는 외부의 동료들 없이도 여행을 할 것이나 그렇다고 혼자
있다고 느끼지도 않을 것이다 -자아와 원형들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신들)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한 남성(또는 여성)이 행복을 추구할 때 -또 자기 마음과 진정한 자기로부터
우러나와 행퐁할 때 이루어지는 참여는 이번에는 세상에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듯하다. 나는 책꽃이를 고정시키는 카드를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는 내 자신이
여러 번 경험한 것으로 남들에게도 맞는 것처럼 보이는 괴테의 말이 적혀 있다.
 
  모든 솔선 수범하는 행동(그리고 창조 행위)을 실행하기 전에는 망설임, 물러 
  날 기회, 무효화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실행을 결단하는 순간, 신도
움직인다.    사건의 전 흐름은 결단에서 나온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꿈꿀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시작할 수 있다.
대담함 속에는 수호신,    힘,마력이 있다.
 
여행 지리학
 
남신들에 관한 각 장들에서 심리적인 문제점들과 성장하는 길에 관한 항목은
특정 남신 또는 원형들과 연관된 어려운 심리적 지대에 관해 특별한 정보를
제공한다. 심리적인 문제점들은 특층 원형이 갖고 있는 어두운 부분들이다.
우리가 원형이 지닌 어두운 부분을 극복한다면 그것을 구별해 내어 그것의
손아귀에 얽매이지 않도록 싸을 때까지 그것이 우리를사로잡을 것이다.
  남들이 우리를 도을 수도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지닌 부정적인 쵸과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도 있고 심지어는 일련의 대결을 통해 이것이 밝혀질 때까지
이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는 우리 자신의 일부로 인정할
필요가 있는 원형을가진 사람의 행동이나 태도로 인해 전적으로 비판을 받거나
그것에 사로잡혀 있을 수도 있다.
  (융주의자들이 정의한 것처럼)어두운 곳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거나 아직 우
리 안에 있는 것으로 의식되지 않은 것들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의식적인 태
도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여 계속 숨기고 있는 것(정신 분석학에서
말하는 이드 Id와 같은 것)뿐만 아니라 낮에는 보이지 않는,원형의 긍정적인
잠재력을 포함하고 있다.
 
행방 불명된 여성의 존재
 
그리스 남신들 이야기에서 어머니와 아내들이 무력하거나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적인 신화나 신학에서는 확실히 권력을 가진
여신들은 나오지 않는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버지 신은 지고하며 아버지들과
아들들의 다툼이 중요한 갈등이다. 이 책의 주제는 아니더라도 실제 어머니들은
인간 남성들의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여성들은 그들의 삶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더 보이지 않고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남성의
아니마가 지닌 영향력이다. 그것은 응이 언급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남성이 갖고
있는 아주 무의식적인 여성적 측면으로 그의 기분, 그가 여성들을 파악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을 읽은 심리적으로 지각력이
있는 남성들은 자기 속에 있는 여신들을 보았다. 그들은 여성의 원형이
자신들속에 있는 여성적인 부분과 맞닿아 있거나 또는 특정 여신의 이미지가
그들이 여성 안에서 찾던 (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신들과 그들의 영향력은
개별 남성들의 마음 속에 있는 그림자로 크게 자리잡고 있는데 그들은
신화에서처럼 문화에서도 최소화되거나 그 진가를 별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여행길의 안내자 : 헤르메스
 
고대 그리스에서 여행자들은 전령의 신,헤르메스가 동반해 주기를 기도했다.
교제, 빠른 사고, 발명, 붙임성, 심지어는 약간의 나쁜 손버릇까지도
여행자들을 돕는다. 문자 그대로 직업상 그러한 채능들을 필요로 하는 현대
남성(과 여성)들은 원형이 갖고 있는 이러한 부분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을 영적인 여행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혜르메스는 영혼의 인도자로
알려져 있다.
  영혼의 안내자 헤르메스는 죠셉 캠벨의 말을 통해 (행복을 좇으라)고
우리에게 충고한다. 이 헤르메스는 영화 (별들의 전쟁)에 나오는 요다다 그는
루크스카이워커로 하여금 자신의 공포를 다스리고 환상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도왔던, 현명하고 점잖은 노인이다. 이 헤르메스는 집단 무의식에 관한 글을
쓰는 융이기도 한데 그는 내면 세계를 지적 자각으로 이끌었다. 헤르메스는
자기의 이해력으로 세상 도처에 놓여진 간격을 메우고 영흔의 세계를 말할 수
있게 해준다. 그는 영혼이 사후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저승과
천상 사이를 여행하며 그 사이에 있는 지역을 잘 알고 있다. 헤르메스는
수은이란 물질이 값비산 금속들만을 접착시키는 것처럼 경험의 순수성을 식별할
줄도 안다. 그는 진정한 자기 모습을 알도록 도와주며 우리가 지닌 잠재력이
성장하고 온전해지도록 지원하는 개체화되는 길에 있는 인도자다. 우리가
이러한 헤르메스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 진실을 인정하게 된다.
  영혼의 인도자 헤르메스가 한 원형이므로, 헤르메스는 우리 각자, 모든 이들
에게 잠재하고 있는 원형으로, 우리가 여행중에 사색에 잠겨 자신을 돌아다볼
때 특히 그러하다. 헤르메스는 여러 이름들로 불리운다. 영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헤르메스를 (내면의 인도자)또는 (내면의 목소리)라고도 부른다.
다중 인격에 관한 정신과 치료서를 보면 헤르메스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방대한
선구적인 작업을 해온 정신과 전문의 랄프 앨리슨이 (내부의 자기 조력자)라고
부르는 것의 또 다른 이름이다.
  다중 인격은 C.H. 디그펜의 <이브의 세 얼굴>과 플로라 슈레이버의
<시빌>에서 대중화되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다중 인격자는 모든 성과
연령이 갖고 있는 별개의 인격들을 한 몸 속에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러한 인격들은 서로 단절되어 있고 대개는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르거나 제한되 어 있다. 그것은 각각이 견딜 수 없는 학대와 고통을 잊고
그것으로부터 달아 나기 위한 수단으로 발전되었기 때문에 놀랄 만한 일도
못된다 반대로 앨리슨 이 (내부의 자기 조력자)라고 기술한 인격은 모든
인격들을 알았으며 각각에 관한 정보와 환자의 생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려 줄 수 있었다. 그는 이런 내부의 자기 조력자는 자웅 동체이며 사랑파
호의만을 느낄 뿐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 자체를 남신과 가까운 감정으로
묘사하였다. 정신과 치료에서는 내부의 자기 조력자의 도움으로 많은 조각난
인격들이 다른 인격들의 존재를 깨닫게 되어 자발적으로 하나의 인격으로
통합될 수 있게 된다.
  좀 덜한 정도이기는 하지만 당한 손해가 덜하기 때문에 (그러나 합리적으로
잘 적응된 사람이 지닌 다중 인격과 연결짓는 연속선상에서) 개별적인 여행이
시작될 때마다, 대개는 중년기에 아주 유사한 과제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과제란 별개의 인격들을 함께 엮는 것이 아니고 단절된 우리 자신의 여러
부분들을 다시 연결시키는 것이다. 심리적인 (해체)가 대부분의 남성들의
인생의 초반에 일어나는데 남성들은 프로크루스테스가 아테네로 가는 도중에
있는 남성들에 게 행한 것 -맞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잘라 버리는 -을
스스로에게 한다. 치유하고 온전하게 만드는 일은 곧 (기억해 내는)일이다.
이령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조각들을 찾아서 그것들이 밝은 세상으로 나을 수
있도록 침잠해야 한다. 이것이 헤르메스의 일이다.
  페르세포네를 저숭에서 데려온 이는 바로 헤르메스였다 해체된 남신이었던
어린 디오니소스를 구해 낸 것도 그였으며 우리들 각자 속에 있는 억압된
여성성 또는 신동을 의식에 데려올 수 있는 것도 바로 우리 속에 있는 이
원형이다. 그러므로 그의 일은 개인에게 억압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는 일일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매장되어 온 원형들을 부활시키는 일이다.
  헤르메스 남신과 화로의 수호신 헤스티아 여신은 가정이란 조직의 일부분으
로서 함께 짝을 이루었다. 헤르메스를 나타내는 헤르마 또는 돌기둥이 모든 집
의 문간에 서 있고 집안과 집 한가운데에는 헤스티아의 화로가 있다. 이들 두
신들은, 하나는 안내자, 인도자로서, 다른 하나는 따뜻함과 빛의 원천으로서 자
아 원형의 여러 측면들을 상징화하고 있다.
 
헤스티아 - 남신들의 신전에서 불타는 성화
 
고대에 여행자는 여행중에 신전 옆을 지나게 되면 신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존
경을 표하기 위해 특정 남신이나 여신을 모시는 신전을 방문했다. 생애에서 우
리는 여행중에 여러 길목에 신들을 모시는 신전들을 들르기도 하는 이들 여행
자들과 같다 인생의 부침은 원형적인 여러 상황들을 별자리처럼 수놓아 우리는
여행 길에 특정 남신이나 원형을 만나게 되고 다른 곳에서 또 다른 남신의
신전을 방문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어떤 신을 모시는 신전 안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면 거기에
보이지 않는 여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여신은 올림포스 신들
가운  데 가장 연장자인 헤스티아였다. 그녀는 모든 다른 신들의 신전에 살고
있다. 그녀는 등근 화로의 가운데서 불타고 있는 불길 -응이 인격의
중심,의미와 총체성의 원형으로 여겼던,자아 원형의 상징인 삼차원의 만다라
-이었다. 헤스티아의 존재는 집과 사원을 성지로 만들었다. 신부는 자기 집
화로의 불을 새집으로 가져갔고 그런 후에야 그 집이 성스러워졌다. 집안에
있는 신전에 서 새 신전으로 옮겨진 불씨는 새 건물을 성스럽게 만들었다.
헤스티아의 불은 그렇게 중심지이자 연결 고리였다.
  헤스티아는 자신이 페르소나를 갖지 않았고 특징적인 외향적 풍모를 갖지
않았던 익명의 여신이었다. 그렇기에 그녀에 대한 그림이나 조각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녀는 처녀 여신이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그자체로 완전한)자질을
지녔다는 것을 의미했다. 곧 그녀는 완전함을 느끼기 위해 어느 누구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신인 그녀는 여성들 속에 있는 원형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기 마음
속에중심이 잡혀 있음을 느끼기 위해서는 소란과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운,신체적
정돈이 필요한 많은 남성들의 마음 속에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흔자 있는 것이
필요하고 혼자 있는 것을 즐기는 남성들은 스스로에게 있는 다른 측면들에
에너지를 준다는 것을 알며 온전함과 완전함을 갖고 있는 남성들이다.
  헤스티아는 각 신전에 있는 등근 화로 가운데에서 타오르는 불길,각 원형의
성스런 차원에 대응하는 이미지였다. 여러분이 하는 일이 진정한 자기 모습과
속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를 준다면 그 일과,자아 모두에 특별히 관련된
어떤 원형이 여러분 안에서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작업실이나 일터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데 완전히 몰두해 있는 남성(또는 여성)은 혜파이스토스의
신전에 있는 것과 일치하는 심리적 공간 안에 있다. 황흘경의 속성이 성교에
들어가 일종의 합일감을 느끼게 될 때 사랑은 디오니소스 신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운동장에 있는 한 운동 선수가 초시간적인 때를 만나 마치 자신이
언제든지, 상대편 선수들이 그를 공격하고 있을 때라도 패스를 할 수 있다고
느낄 때 그는 동시적으로 자기 내면의 정점 -아레스 신전 안에 있는 화로의
중심에 타오르는 불길로 상징된다 - 과 가까이 하고 있는 아레스를 행동의
중심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인간들이 신전 밖에서 신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더 이상 헤스티아의 화로의
영역 안에 있지 않았다. 그 다음에 신과의 만남은 원형들과의 만남과 마찬가지
로 도움이 되는 게 당연하지만 부정적이거나 파괴적인 가능성을 지녀 위험할
수도 있다. 남신들은 종종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고 짓눌렀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지를 인간들에게 행사하거나 부추기거나 납치하거나 벌하였다. 그와
대응하여 원형은 한 남성(또는 여성)을 납치할 수도 있고 짓누를 수도 있다.
이러한 일이 심리적으로 일어날 때 그 사람은 이제 .자신 속에 자리잡고 있는
특정한 남신과 자기를 동일시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제우스 원형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업가는 지위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온몸을 던진다. 그에게 사생찰이란
없으며 어느 누구도 별 의미가 없다. 어느 한 남신의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기질과 동일시하는 것은 한 원형의 중요성을 부풀리는 것이다. 한 남신과의
동일시는 여러분들로 하여금 그 일을 중_a.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이러한
개인직 과장은 매력적인 남신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반대로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나 특별한 사람과 같이 있거나 혼자
있는 것을 즐길 때 오는 조화와 행복의 경험들에 감사한 느낌이 들 때 여러분
인생에 깊이와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의식과 감사한 마음이 비슷하다는
것은 인간들로 하여금 그들이 모시는 신들의 신전으로 향하도록 한다.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의식하면서 제발로 신전에 들어갔다
신전 안에서 그는 조상, 대개 신상을 만깠다. 그는 특정 신의 존재나 에너지를
느꼈다. 피가 들어간 신전이 모시고 있는 신에 집중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불
속에 그리고 깨끗하게 청소된 신전 안에는 헤스티아도 현존하였다. 이것은
진정한 자기 삶을 사는 남성(또는 여성)에 대한 은유이다 그는 하나 이상의
활성화된 원형들과 의식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원형들을 통하여 자기가중심을 잡고 있다고 느끼게 되며 그의 생에 성스런
차원이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귀향
 
여행자는 여행을 하는 동안 여러 남신 또는 여신들을 모시는 신전에 들를 수도
있고, 그들을 모두 지나쳐 버릴 수도 있다. 아니면 한특정 신만을 모시는 신전
에서 걸음을 멈출 수도 있을 것이다. 헤르메스가 안내자로서 그를 동행하고 안
내해 준다면 사실 그대로 스스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제아무
리 여행길이 멀다 하더라도 여행객들은 결국에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헤르메스는 여행자를 헤르마 또는 돌기둥이 서 있는 문까지 동반할 수 있다
그 후 여행자는 문지방을 가로질러 집으로 들어간다. 가정은 등근 화로의 중심
에 있는 불 속에 살아 있는 헤스티아의 존재로 인해 성스러워졌다. 화로는 돌
아오는 가족들이나 새로 태어난 아이를 환영하였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새로 태어난 아이는 다섯 살이 되면 의례를 통해 가족의
성원이 되었다. 이 의례에서 아버지는 아이를 화로 주변으로 데려가 헤스티아
와 그의 가족에게 소개를 시켰다. 이러한 인정파 환영 - 귀향 -의례는 의식적로
새로운 생명을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하였다.
  으로 돌아가는 일은 가능하다.
  (집)은 마치 고대 그리스에서 혜스티아가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귀향의 성지 
였던 것처럼 영적인 중심에 이어져 있는 심리적 종착지다. 자아의 상징 또는   
인격의 중심으로서 우리 자신의 (혜스티아)를 전체적인 의미와 연관된 내부의
정점으로 경험한다. 우리는 신전에 들어가 우리를 맞아들이는 화로를 볼 때마다
헤스티아를 발견한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집이 될 수도 있고 고적하고
평화로운 곳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사랸의 품 안이 될 수도 있고 놀이터가 될
수도 있고 일터가 될 수도 있고 작업장 안이 될 수도 있고 신전 안이 될 수도
있고 자연 안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편안)해 하는 곳마다,또 편안해 할 때
우리는 조 화와 행복을 발견하며 우리 나름의 신화를 살게 되는 것이다
 
 
제12장
행방불명된 남신
 
올림포스 신들 가운데 행방 불명된 남신이 하나 있다. 그는 메티스와 제우스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 제우스를 밀어내고 사랑으로 세상을 다스릴 운명이었다.
그가 만일 태어났다면 메티스,곧 여성의 지혜가 서구 문화와 우리 의식에 다시
한번 그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메티스와 제우스의 아들은 그리스
신화에서 예외적인 부부를 부모로 두었을 것이다. 여러 방면에서 위대한 여신이
어머니 신이었을 시절 아버지 노룻은 중요하지 않았고 모르긴 몰라도 인정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늘 아버지 신들이 가부장제를 확립하면서 세력의 판도가
달라졌다. 여신들과 여성들은 피지배자가 되었고 이것이 지금에 이르는 수천 년
동안 역사와 신학에서 필수 요건이 되어 왔다. 남신들이 통치권을 장악해 버려
유대 기독교 전통의 그리스 신화에는 여러 신들이 등장하지만 그 누구도
강건하핀 현명한 어머니와 강하면서도 사랑에 넘치는 아버지를 가져 보지
못했다. 그 점에서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제우스 : 과도기의 아버지 원형
 
신화에서 하늘 아버지 제우스는 변화를 겪었다. 그는 태어날 아들이 자기를 무
너뜨리고 자리를 차지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아들을 낙태시키기 위해
메티스를 삼켜 버린 험악한 아버지였다. (그의 아버지 크로노스가 자식이
무서워 삼켜버렸고 또 최초의 아버지로 알려진, 크로노스의 아버지 우라노스가
자식을 땅에 묻어 버린 것처럼 말이다.)그 후 제우스는 여러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는데 그 중에는 올림포스의 신도 있었고, 완벽하지 않은 신, 또 반신
반인도 있었다. 그는 여러 자식 가운데 어떤 자식들은 인정하고 어떤 자식들은
받아들이지 않은 채 가끔 멀찌감치서 지켜만 보았던, 거리감 느껴지는
아버지였다. 그런 까닭에 그는, 부성적 감정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도 없고
자식을 원하지도 않았던 자기 아버지,할아버지와는 사뭇 달랐다. 그런데
올림포스의 막내 신이며 자신이 구해 내 기른 아들 디오니소스와 같이 지내면서
제우스는 또 다른 변화를 겪었다.
  하늘 남신의 계보(우라노스,크로노스,제우스)는 성서와도 궤를 같이 하는 아
버지 원형의 변모를 반영한다. 구약의 하느님은 질투심 많고 복수심에 불타는
신이었는데 신약에서는 사랑이 넘치고 관대한 하느님으로 발전하였다.
디오니소스는 예수처럼 인간 어머니를 둔 유일한 올림포스 신이었다. 둘 다
박해를 받았고 희생을 당했으며 다시 태어나거나 부활하였다. 신성을 지닌
아이라는 디오니소스의 이미지는 때때로 아기 예수로 오인되었다. 몬세라의
흑인 성모 마리아가 안고 있는 어린아이는 솔방을 또는 거꾸로 놓인
파인애플처럼 생긴 것을 손에 들고 있는데 그것은 디오니소스를 상징하는
지팡이인 것이다.
  아버지 원형이 변화하고 좀더 많은 남성들이 이런 방향으로 바뀌어 감에 따
라 새로운 아버지 원형이 우리 문화에 출현하게 되었다. 새로운 세대의 남성들
이 아버지가 되면서 그들은 20세기 말엽에 여성의 출산 과정에 참여해 온 또
다른 이들과 만난다. 이들 납성들은 대개 자기 어린애를 업고 다니며,흔히
냉혹하거나 감정이 통하지 않는 하늘의 아버지와는 다른 아버지다. 그들은 냉혹
하기 짝이 없는 하늘의 남신에서-자기 허벅지에 매달린 아들을 위해 자궁이라는
공간을 만든 남신이 된 제우스의 발달 과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 일을
해낸 하늘의 아버지 제우스는 현대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대지의 면모를 보였다.
그리고 어떤 남성들은 아예 대지의 아버지들이 되고 있기도 하다.
  아서 콜만과 리비 콜만은 <아버지,그 산화와 변화하는 역할>에서 대지의
아버지를 일상 생촬에서 가족 성원과 긴밀한 유대를 갖는 남성으로 묘사한다.
대 지의 아버지에게는 가족이 첫째로 중요하다. 그는 집밖에 있을 때도 아이들
생 각을 한다. 집안에서 그는 가족 내에서 관계들을 돈독히 하는 자상한 부모
노 릇에 주안점을 두고 아이들을 키운다. 콜만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이런 류의

이 지니는 가치와 아버지 노릇이 갖는 중요성,또 이 일을 하는 데 따르는 어 
려움 등을 강조한다.
 
  갖가지 부모상 가운데 대지의 아버지 상은 미국에서 자라나는 소년들에게 심 
  어져 있는 가치와 야망과는 가장 거리가 멀다. 남성이 참으로 갖기 어려운 이 
  미지 일는지도 모른다. 그렇긴 하지만 부모라고 한다면 기본적으로 도달해야 
  할 수준이 아닐까. 대지의 아버지는 영웅, 엄격한 사람, 바깥 세상을 잇는 다 
  리, 정복될 권력 이기보다는 자식에게 기본적인 신뢰감과 내적 안정감을
주어,    자식이 성장해서 가족으로부터 벗어나 독립심과 독자적인 자기
정체감을 가질    수 있게 한다.
 
  내가 돌본 환자 중에 제우스처럼 정상의 자리에 있는 전문직 남성들에게서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지냈으면 하고 바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들이 아이들을 목욕시키거나 잠자리에 든 아이에게 이야기책을 읽어 주는
것을 즐긴다는 애기를 듣는다. 이러한 아버지들은 어린 소년들을 귀찮아하지
않고 그들을 끔찍이나 위한다. 자식들을 매일 보지 못하게 될까봐 불행한
결혼을 청산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이렇듯 오늘날의 미국 남성들의 아버지 원형은 변화하고 있다. 가부장적인
하늘의 아버지가 여전히 지배를 하고 있긴 하지만 서서히 개별 남성들은
변화하고 있다. 어쩌면 이와 유사한 변화 과정을 반영이라도 하듯 서구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이 과거에 가졌던 권위를 더 이상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절대 무류의 존재로 인정되지 않으며 젊은 남성들에게 목숨을 걸고 전쟁에
임하라는 명령을 내리기가 전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성격적으로도 제우스를 덜 닮았다.
 
 메티스 : 새로 등잘한 현명한 어머니 원형
 
그리스 신화에는 메티스에 관한 자료가 거의 멀다. 이령게 그녀에 관해 아무런
자료가 없는 것은 가히 예상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속임수에 걸
려 들어 몸집이 작아져서 먹혀 버렸기에 그녀가 과거에 어떤 존재였든지간에
알려졌다고 해도 최소한도에 그쳤을 것이다. 우리는 메티스가 제우스를 도와
크로노스가 삼켜 버린 그의 형제 자매들을 구해 내도록 하였다는 얘기를 들을
뿐이다. 그들을 구할 수 있는 방도를 알고 있고 구토제를 주었던 이가 바로
그녀였다. 메티스는 지혜의 여신으로 제우스와 올림포스 신들 이전에 오랫동안
추앙받던 신이었다. 우리는 제우스의 첫번째 아내였던 그녀가 두 명의 아이를
갖게 되리라는 예언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남성과 똑같이 용기와 명석한
두뇌를 가진 딸과 "모든 이를 사로잡는 마음을 가진 소년으로 남신들과
남성들의 왕이 될"')아들이 바로 그 예언의 아이들이다. 그래서 메티스가
임신을 하자 제우스는 그녀가 몸에 배고 있는 아이가 자기 자리를 빼앗으리라고
예언된 아이일까봐 두려워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속임수를 써서 메티스를 작게
만든 다음 삼켜 버린 이유였다.
  공교롭게도 그녀가몸 속에 배고 있던 아이는 아들이 아니고 딸 아테나였다.
그녀는 황금 갑옷을 입은 성인의 몸으로 제우스의 머리에서 나온 여신이었다.
그런 탓인지 아테나는 자기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으며 제우스를 유일
한 부모로 알았다.
  성스럽고 여성다운 지혜의 신 메티스는 사실상 가부장제에 의해 삼켜져 서구
세계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신화는 역사적 사건(아마도 기원 전 4500년에서
기원 전 2400년 사이)을 반영하고 있다. 무사 남신들과 부계 신학들로 무장한
인도 유럽어 족의 계속된 침투 물결이 25,000년 동안 모계 중섬의 종교를 믿고
계급이 없이 평등하게 농사를 지으며 살던,평화롭고 문화적으로 선진된 문명을
발전시켜 온 구 유럽 대륙 사람들을 정복하였다. 그들의 도시는 요새가 없고 늘
열려 있었고 군사 기술도 없었기 때문에,패한 민족에게 가부장제 문화와 종교를
강제하였던, 말을 타고 하늘 신을 숭배하는 침략자들에게 정복당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다른 이름으로 알려진)여신은 침략자 남신들의 비굴한 배우자가
되면서그녀가 지녔던 속성과 힘이 일개 남신의 지배 하에 들어가 버렸다.
여성과 여 신들의 고유 영역이던 아이를 낳는 힘조차도 공동의 것이 되어버렸고
이제 하 늘의 남신들은 그들의 말과 의지로 생명을 창조하거나 머리로 아이를
출산하게 되었다.
  여성들은 그녀를 잊어버림으로써,다 자란 여성으로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나
어머니 메티스에 관한 기억을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은 아테나를 닮게 되었다.
아테나처럼 대부분의 여성들은 가부장제의 딸로 하느님 아버지를 유일 신으로
인정하여 왔다. 여성들은 최근까지도 (신이 여성이었던 때)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들은 하느님 어머니,여신,여성의 얼굴을 한 하느님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십 년 동안 (메티스)는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고 기억되고 있다. 현대 여성지 7힘있는 여성)에서 이러한 부흥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여성이 예전에 지녔던 영혼의 목소리가 이제 기나긴 세월 동안 숨겨진 지혜를
말하고 있으며 우리 세계에 의식의 혁명을 가져올 활력이 되고 있다 ‥‥‥
이렇게 새로이 등장한 목소리는 모든 생명이 상호 연관을 맺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곧 모든 것이 의식을 가지고 있고 성스러운 존재라고 깨닫고,우리의
자아를 성스러운 존재로 다시 기억하며,우리의 영혼과 몸과 감정을 사랑하고,
여성과 모든 억눌린 이들에게 힘을 주며,세계 평화 ·사회 정의 ·환경의
조화를 이루고,정신력과 마음의 힘을 살려 내며,여성의 신성을 존중하고,지구를
존중하고 계짙과 주기,우리의 생명의 주기를 기념하자는 것이다
 
  여성의 영성은 우리 문화에서 여성 운동의 한 차원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으
며 이러한 부활은 연대기적으로는 역사적인 모권 시대의 증거를 보이는 중요한
새 고고학적 발견물들과 일치를 이루고 있다. 역사에서 이령게 길고도 평화롭던
여신 숭배 시기에 대해서는 마리자 짐부타스가 쓴 <고대 유럽의 여신들과
남신들>, 멀린 스톤의 <신이 여성이었던 때>, 라이안 에이슬러의 잔과 칼날에
잘 나타나 있다. 그노시스파 복음서로 더 널리 알려진 넥 하마디 두루마리
-엘렌느 파젤이 이 제목으로 책을 쓰기도 했다 -는 그노시스파 교도들에게는
소피아 또는 하느님의 여성적인 면이 잘 알려져 있었고 그들의 숭배를 받았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春방 정교도들은 소피아를 숭배하였다. 그녀를 모셨던 가장
큰 사원인 하지아 소피아(성 소피아 거룩한 여성의 지혜 교회)는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에 세워졌다. 로마 기독교도들은 후애 그것이
어린 처녀 순교자에게 바쳐졌다고 주장했다. 유대 신비주의에서는 소피아를
쉐카이나라고 불렀다. 메티스,소피아,쉐카이나는 한때 신으로 모셔졌던 잊혀진
여성의 지혜를 부르는 여러 이름들이다.
  수세기 동안 여성의 지혜는 어느 이름으로든간에 보이지 않게 되었고
잊혀졌다. 보인다고 해도 지혜로 규정되지 않았다. 한 예로 윤리적 선택을 해야
할 때 여성들은 남성보다 덜 윤리적인 존재로 규정되곤 했다. 캐를 길리간은
자신이 쓴 <다른 목소리>에서 대부분의 여성은,추상적 원리에 근거하여 인간과
관계들의 가치를 평가하는 대부분의 남성들과는 다르게 윤리적 상황을 인식할
가능성이 있으며,이러한 선택은 열등한 윤리관이 아러라 다른 가치관을 반영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관계라는 가치 기준이 원리와 똑같이 고려될 때야
연민과 정의가 공존할 수 있고 이 둘은 서로에 의해 완전해지는 것이다. 용기
있고 총명한 캐를 길리건은 이 책을 통해 학문적인 싸움터에서 메티스의 지위에
대해 목소리를 드높였다 -그녀는 메티스를 기억해 낸 현대의 아테나였다.
  우리는 여성들이 학문 세계와 일터에서처럼 자신의 사적 생활에서 줄곧
자신의 인식과 가치관을 드러내 놓고 말하는 것을 본다. 처음엔 모르긴 해도
강하고 현명한 어머니가 되는 것은 단체에 속한 여성들 - 언제나 예외적인
개인도 있지만 - 이나 가능한 일이리라 피들은 자신의 존재라는 것은 온데간데
없고 남편에게 삼켜져 버려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 놓지 못하나 필요하다면
달겨들어 자기 아들 딸을 간섭하고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새 원형, 메티스 아들
 
사랑이 넘치는 마음을 가진 아들 유형이 서양의 예수,동양의 크리쉬나로 나타
났긴 하지만 문화에서 그들의 출현이 가부장제라는 근본적인 권력 구조를
바꾸지는 못했다. 며락을 가진 산꼭대기의 제우스가 계속해서 푼화의 통치 원리
였고 완력비나 성능 좋은 무기가 우리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여기는 한, 그리고
남들로부터의 고립을 가능한 일이며 또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하는 한
그러할것이다.
  오랫동안 제우스의 자리는 논리적으로 난공불락인 듯 보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레닌그라드 근처 체르노빌에서 일어난 원전 사고로부터 나온 방사선
물질들이 어텅게 하여 네덜란드의 우유를 오염시켰는지,브라질의 열대 우림
락괴가 어텅게 지구의 기후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지,핵전쟁이 어텅게 지구에
핵겨울을 가져을 수 있는지를 보고 있다 우리는 점차로 서로 의존하고
있음을,어떻게 지구의 운명을 공유하고 있는지를 깨닫고 있다. 제우스는 여전히
지배 권력의 원리이다. 그러나 제우스의 벼락이 지상의 생명을 파괴하지
않고서는 이용될 수 없다는 것을 의식하는 날에는 제우스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전지구적인 의식,환경적 관심,생태학,여성의 영성,핵무장 해제 등은 우리
모두가 서로서로,그리고 어머니 원형과 연결되어 있는 지혜에 대한 일종의
은유로서의 메티스의 재출현을 나타내는 표현들인 것이다. 지금은 문화적
이행기다. 현대 남성들에게서 보이는 것처럼 아버지 원형이 변화하고 있는 것과
때를 맞추어 여성의 지혜, 어머니 자연,대지의 신성함,또는 하느님 어머니의
신성, 메티스가 우리 문화 속으로 되돌아오는 시기다.
 
새 원형들자 형태장 이론
 
이론 생물학자인 루퍼트 엘드레이크는 <새로운 생명 과학,형성 인과
가설>(1981)에서 생명체가 어떻게 하여 새로운 형태들을 알게 되고 취해
가는가에 대해 급진적인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였다. 그의 이론은 어떻게 새로운
원형들 이 출현하는가,또 그에 따라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설명도 하고 있다.
  쉘드래이크의 가설은 이령다. 한 행동이 자꾸 반복될 때 그것은 (형태 발생적
인 (또는 모양을 갖추는) 장)을 형성한다. 겔드레 이크가 (형태 morphic라고
부르는,이러한 장은 과거 (생물)종들에 일어났던 것에 기초한,일종의 축적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종의 모든 성원들은 (살아 있는 유기체뿐만 아니라 단백질
분자,결정,심지어는 원자들에 이르기까지)그들 나름의 특수한 형태장과 조화를
맞추는데 형태장은 (형태 공명 morphic resonanc)이라 불리우는 과정을 통 해
공간과 시간을 넘나든다.
  예를 들면 결정체의 영역에서 이 이론은,결정체가 취하는 형태나 구조는 그
나름의 특징적인 활동 범위에 달려 있다고 한다. 더욱이 새로운 조합은 처음에
는 결정화가 어려우나 그 다음부터는 각각 이전의 결정화의쳔태장(또는 '기억'
)의 영향으로 결정화가 점차 쉬워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화학자들
사이에 아주 잘 알려져 있다고 쉘드레이크는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 있어 껜드레이크의 이론은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근본적인(또는
원형상의)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설명해 준다. 처음에 태도나 행동의 변
화가 어렵지만 개인들이 변화를 하게 되면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는 것이
점차로 쉬워지는데 그것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서도 가능하다.
쉘드레이크에 따르면 사람들은 형태 공명을 통해 형태장 내에서 새로운 유형에
자신을 맞추며 그것의 영향을 받는데 이것은 어떻게 해서 변화가 점진적으로
쉽게 일 어나는가를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이 되면 일대 국면 전환에
필요한 개인들의 수가 채워지게 되는데 그때가 되면 집단 무의식 속에는 새
원형이 자 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쉘드레이크 자신은 다음의 두 가지 생각을 같다고 여겼다.
 
"내가 내놓은 접근은 융의 집단 무의식 개텀과 아주 유사하다. 주요한
차이점이라면 융의 생각이 일차적으로 인간의 경험과 인간의 집단적 기억에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주 비슷한 원리가 인간
사회에서만이 아니라 전 우주를 통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
 
  백번쩨 원숭이, 현대의 신화

  백번째 원숭이는 새로운 신화의 이름이다. 그것은 지난20년 동안 생겨나고
반복되고 쓰여진 이야기다. 가장 근래에 생긴 것이지만 트로이 전쟁 이야기가
나오는 그리스 신화와 마찬가지로 사실이 어디에서 끝나고 은유가 어디에
시작되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이 이야기는 일본에 있는 원숭이 무리에 대한
과학적 관찰에 기초를 둔 것이다. 켄 케이즈 2세가 쓴 이야기가 가장 널리 읽혀
졌는데 그것을 압축하여 쉽게 풀어 쓰면 다음과 같다.
  과학자들이 일본 해안가에서 30년 넘게,여러 외딴 섬들에 살고 있는 원숭이
무리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들은 원숭이들을 놓치지 않으려 원숭이들이 먹을
수있도록 해안가에 고구마를.떨어뜨려 놓았다. 원숭이들은 고구마를 먹으려
나무에서 내려와서는 관찰하기 좋게 평지에 있게 되었다. 어느 날 이모라고
불리우는, 18개월 된 암놈 원숭이 한 마리가 고구마를 먹기 전에 바닷물에 씻기
시작챘다. 우리는 모래가 없어서 더 맛있을 것이고 아마도 약간은 짬짤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이모는 놀이 친구들과 어미 원숭이에게 어떻게
하는지를 보여 주었고 그 친구들은 그것을 자기 어미 원숭이에게 보여 주어
점차로 많은 원숭이들이 모래가 묻은 고구마를 그냥 먹지 않고 씻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기 새끼들을 모방한 어른 원숭이들이 배우게 되고 점차로 다른
원숭이들 도 그렇게 하게 되었다. 어느 날 관찰자들은 그 특정 섬에 사는 모든
원숭이들이 고구마를 썬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 사실이 제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더욱 재미있는 일은 이러한 변화가 일
어났을 때 다른 섬에 사는 원숭이들의 행동 또한 변하였다는 것이다. 원숭이들
은 이제 모두 고구마를 썬어서 먹게 되었다. 다른 섬에 사는 원숭이 무리가 서
로 아무런 직접적인 접촉을 갖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여기에 형태장 이론의 타당성이 있다. 이제껏 일어난 일들을 설명할 수
있게된 것이다. 문화적으로 한쪽을 우세하게 한 (백번째 원숭이)는 가설상의
익명의 원숭이였다. 그 원숭이 행동상의 변화는 상당수의 원숭이가 변화했음을
알려 주었다. 그 후 모든 섬의 모든 원숭이들이 고구마를 썬게 되었던 것이다.
  백번째 원숭이는,자신을 변화시키고 지구를 구하려 애쓰면서도 개인들의
노력이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할까봐 걱정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새
시대의 우화다. 백번째 원숭이 신화는 그 효과가 오랫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지구를 핵전쟁으로부터 구해 내는 일과 같이 어떤 일에
착수해야 함을 확인해 주는 이야기다. 백번째 원숭이가 될 수 있다고 한다면
인간도 이모나 그의 동료 원숭이들과 같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가 27번째,
81번째, 99번째 원숭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쉘드레이크의 가설은 종의 변화가 한번에 하나씩 뭔가 새로운 일톨 하는
개인들의 행동을 통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만일
메티스의 아들이 우리 문화에서 제우스를 대신한다면 그러한 변화는 상당수의
개별 남성(과 여성)들이 권력보다는 사랑을 신뢰하며 이러한 원리에 근거하여
행동한 후라야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쉘드레이크의 가설에 따르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면,일이 순조롭게 풀려,어느 날부터는
누군가가 익명의 백번째 원숭이가 되고야 말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성과 여성들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에 매달릴 필요도
신념도 느끼지 않는다. 그런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백번째 원승이로부터 용기를
얻는다. 그 이유는 그들이 어쨌거나 하려고 애쓰고 있른 상황을 묘싸하고 있는
것이 바로 신화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신화 속에서 우리 자신을 인정할
때마다 그것에서 힘을 얻는다 (아하!)하고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신화라면
우리를 깊게 움직이는 것, 곧 우리의 진정한 자아에 충실하도록 도와준다.
  내적으로 외부 세계와 차이를 두려고 하는 이들은 말할 것도 얼고 백번째
원숭이도 개인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은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내면 세계에서 하는 것은 곧 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여러 시간에 걸쳐 어떤
태도나 원리가 유발시키는 행동을 반복한다면 결국에 가서는 우리는 하고 있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원형, 메티스의 아들
 
영화 (별들의 전쟁)에서 루크 스카이워커는 자기 마음에 알거나 바라는 것 다쓰
베이더 속에는 사랑하는 아버지가 있다는 것에 매달린다. 그는 아들인 자신이
가능성을 포기하고 그들과 한패가 될 것 같은 암담함과 두려움에 사로 잡혀서는
안된다는 것을 안다 생과 사를 다투는 다쓰 베이더와의 싸움에서 루크는
사랑하는 아버지가 이 러한 어두운 인물 속에 존재할 수 있으리라는 직관을
믿고 그러 한 믿음을 바탕으로 행동함으로써 그를 끄집 어냈다. 현대의 신화적
인물인 황제와 다쓰 베 이더는 자기 아들에게 화를 내거나 두려워한 적개심에
불탄 아버지들인 우라노스와 크로노스의 최신판이다. 루크는 사랑하는 사람을
구해 내기 위해 부정적인 아버지를 쳐부순, 사랑이 넘치는 마음을 가진
아들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예외적인 성공작, 영화 (이티)는 자기 마음을 믿는 어떤
소년에 관한 또 하나의 현대 신화다. 다시금 권력을 쥔 남성들이 그 상황에
책임을 지는데 이때 그들은 합리적인 과학자들로 치장을 하고 순진한 외계인
이티는 우주인 포로가 된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람의 손길을 느껴 보지 못한
유아들이 그런 것처럼 고독으로 죽어 가는 그를 소년의 사랑이 살려 낸다.
  또한 소년 영웅 프로도는 J,R,R.톨키엔의 3부작 <반지의 우정>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프로도는 호뎃이다. 호뎃은 뽀송뽀송한 틸이 난 발과 성실과 믿음,
연약함 같은 귀여운 특징들을 가진, 사춘기 전의 소년들의 무리를 가리키는 말
이다. 프로도와 그의 친구들이 착수한 - 성공적으로 완수한 - 업무는 만만찮은
것이다. 권력이란 반지를 과괴하는 것이지 반대로 그것을 사용하도록 부추김을
받는 것이 아니다.
  이들 영화와 책에서 주인공들은 내면의 진리나 신념의 순간에 이르게 되는데
보통 이야기의 결말이 이것에 의존하고 있다. 가부장제 사회에 살고 있는 개개
남성과 여성들은 똑같은 선택을 한다. 우리는 다쓰 베이더가 상징하였던
공격자와 행동을 같이 할 것인가? 서로를 친구라고 믿는가 아니면 링의 권력의
부추김을 받을 것인가? 우리 마음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전문가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어떤 일이나 어떤 사람이 희망이 없다고 하는 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우리 자신만을 찾을 것인가 차니면 동료들과의 약속을 지킬 것인가?
  그리스 신화에서처럼 오늘날의 신화에서 메티스 -여성의 지혜 -는 부재
하지만,다른 사람들과의 협력,지구와 모든 생명체들과의 연결을 강조하는
(그녀의) 가치들이 출현하고 있다. 또한 많은 여성들이 현재 하고 있는 것처럼
남성(과 여성)들이 여성의 지혜와 재결합할 때,우리는 행방 불명된 부모와 다시
결합하며 우리 속에 있는 행방 불명된 남신을 찾게 된다
  우리 모두는 사랑을 원하는 어린아이로 태어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리가
사랑을 얻을 수 없다면 권력에서 만족을 구한다. 메티스를 생각해 낼 때 우리가
내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 사랑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내는 것이다.
  개별적 차원에서 일단 권력이 남성(또는 여성)의 마음 속의 지배 원형이 되면
개인의 선택은 지위를 획득하고 권력을 유지하고 유능해 보이고 관리를 하기
위해 이루어진다. .권력의 선택은 사랑 -사랑 그 자체,사랑을 행하는 기쁨,
누군가 또는 어떤 것에 대한 사랑, 또는 저절로 생겨난 사랑(또는 선) -을
지향하지 않는다. 우리의 선택이 어떤 원칙에 근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우리 자신이 좋아하는 것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거나 참다운 것 - 쪽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삶은 계속해서 결정의 순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가 권력을 증진시킬
대안을 알면서도 그것을 마다하고 의식적으로 사랑과 지혜에 근거를 둔 선택을
할 때 첫 용단을 내리기가 가장 힘들다. 일단 그 다음부터는 점차 쉬워져
어려운 선택이 자연소러운 것이 되는 순간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 다음은
사랑이 우리 속의 통치 원리가 되어버린다.
 
  마지막 문단은 책의 끝이 되어야 하는데 초고를 식자로 치기 전에 나는
어떻게 끝을 맺을까를 고심하다가T 5. 엘리옷의 (사중주)의 몇 구절을 마음에
떠올렸다. 나는 그 구절들을 읽을 때마다 편안함과 아는 것이 진리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용기를 얻는다. 여러분도 그럴 것이다.
 
"우리가 시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종종 끝이 아니던가.
끝맺는다는 것은 곧 시작하는 것이다.
종말은 우리가 시작하는 바로 그 시점이다."
 
                               여러분들에게 사랑을 보내며.


가이아 : 대지의 신이다. 우라노스(하늘)의 어머니이자 아내, 티탄 족의 어머니
이자 제7세대 올림포스 신들의 할머니다.

데매테르 : 로마인에게는 케레스로 알려졌다. 데메테르는 곡식의 신이자
페르세포네의 어머니로, 하데스가 그녀의 딸 페르세포네를 지하 세계로 납치해
갔다.

디오니소스 : 술과 황홀경의 신으로, 로마인들에게는 바코스로 알려졌다. 그는
제우스와 세멜레의 아들이었으며 제우스는 그를 자기 허벅지에 넣어 키웠다.
그의 원형적 역할은 황홀경 상태의 연인, 방랑자, 신비주의자다.

레아 : 가이아와 우라노스의 딸이며 크로노스의 누이이자 아내, 헤스티아, 데메
테르,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 제우스의 어머니.

아레스 : 로마인에게는 마르스로 불려졌다. 그는 전쟁의 신이자 원형상
무사`연인 춤꾼이었다. 그는 제우스와 헤라의 아들로, 전쟁욕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멸시를 받았다. 그는 아프로디테의 연인이었으며 그녀와의 사이에
딸 하르모니아와 아들 둘을 두었다 - 아들 데이모스(공포)와 포보스(낭패)는
그를 도와 전쟁을 수행하였다.

아르테미스 : 로마인에게 디아나로 불렸던 그녀는 사냥과 달의 신이었다. 그녀
는 제우스와 레토의 딸로, 태양의 신 아폴론의 쌍둥이 누이였다.

아테나 : 로마인에게는 미네르바로 알려졌으며, 지혜와 수공예의 신으로 그녀의
이름을 딴 도시 아테네의 수호자이며 수많은 영웅들의 보호자다. 보통 무장을
한 모습으로 그려졌으며 전쟁터에서는 가장 뛰어난 전략가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제우스를 유일한 부모로 알았으나 제우스의 첫 아내로 그가 삼켜
버렸던, 현명한 메티스의 딸이기도 했다.
 
아폴론 :로마인들도 아폴론이라고 불렀는데 잘생긴 태양의 신으로,
입법자`궁수`예술의 후견인, 제우스와 레토의 아들, 아르테미스의 쌍둥이
형제다. 때때로 헬리오스로도 알려져 있다.
 
아프로디테 :사랑과 미의 신으로 로마인에게는 베누스로 알려져 있다.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의 부정한 아내였던 그녀는 여러 남신들 및 인간들과 연애
행각을 벌였다. 전쟁의 남신 아레스와의 연애가 가장 유명하다.
 
우라노스 : 최초의 하늘 남신으로 가이아의 아들이자 남편. 티틴 족의
아버지였던 그는 막내 아들 크로노스에게 내쫓기고 권력을 빼앗겼다.
 
제우스 : 로마인들에게 유피테르, 요브로 불렸다. 올림포스의 최고 신으로 번개
와 천둥의 신이며 레아와 크로노스의 막내 아들. 그는 티탄들을 물리치고 세계
의 통치자들로서 올림포스 신들의 주권을 확립하였다. 헤라의 바람둥이 남편이
었던 그는 그녀 이전에도 여러 아내를 두었고 여러 연애 사건을 일으켰으며 이
들과의 관계에서 여러 자식들 - 어떤 이들은 제2세대 올림포스 신들이었고 또
어떤 이들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들을 낳았다.
 
크로노스 :로마 이름 사투르누스. 티탄이며, 가이아와 우라노스의 막내 아들로,
아버지를 내쫓고 최고신이 되었다. 레아의 남편이자 여섯 올림포스
신들(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 제우스)의 아버지로, 처음
다섯 아이들을 태어나자마자 삼켜 버렸다. 그 역시 막내 아들 제우스에 의해
권력을 빼앗겼다.
 
페르세포네 : 그리스인들에게는 코레 또는 처녀로 알려져 있으며 로마인들에
게는 프로세르피나로 불려지기도 한다. 데메테르의 납치된 딸 페르세포네는
저승의 여왕이 되었다.
 
포세이돈 : 바다의 신, 대지를 흔드는 자로, 로마 이름 넵투누스로 좀더 알려져
있는 올림포스 신이다. 그는 아테네를 얻으려 아테나와 겨루었다가 지고 말았
다. 제우스와 하데스의 형제로 아버지 원형의 세 가지 모습 가운데 하나다.
 
하데스 : 로마에서는 플루토. 저승의 통치자이자 레아와 크로노스의 아들, 페르
세포네의 유괴자-남편이었다. 제우스와 포세이돈의 형제로 아버지 원형의
세가지 모습 가운데 하나다. 그는 영혼의 세계, 집단 무의식의 세계를
다스렸다.
 
헤라 :로마인에게는 유노로도 알려져 있으며 결혼의 신이었다. 바람둥이
제우스와 결혼했던 그녀는 질투심 많고 복수심에 불타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헤르메스 : 로마 이름 메르쿠리우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신들의
전령`무역`전달자`여행자`도둑의 신이다. 그는 영혼들을 저승으로 인도하였으며
디오니소스를 구해 냈고, 페르세포네를 지하 세계에서 데려왔다. 그는
아프로디테와 연애를 벌여, 헤르마프로디토스의 아버지가 되었다.
 
헤스티아 : 로마인에게 베스타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화로와 신전의 신으로
가장 덜 알려진 올림포스 신이다. 그녀의 불은 집과 사원을 성스럽게 만들었다.
자아의 원형을 상징한다.
 
헤파이스토스 : 로마인들에게는 불카누스로 알려졌다. 대장간의 신으로 절름발
이였으며 올림포스 신들 가운데 유일하게 일을 한 신이었다. 그는 뚜정한 아내
아프로디테의 남편이였으며 그의 유일한 부모였던 헤라의 박대를 받은 아들이
었으며 이름뿐인 아버지 제우스로부터도 박대를 당했다. 원형적 역할은
기술자`장인`절름발이`외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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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의 여신들  조회 : 2860
세상사들 > 여왕벌과 일벌들 | 2008-11-02 (Sun) 23:11 http://blog.dreamwiz.com/jha007/8629047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여신들, 여신들의 여왕 헤라, 아름다운 여신 아프로디테, 정의의 여신 아테나, 불꽃의 착한 여신 헤스티아.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 이런 여신들부터 더 나아가면 헤베, 에리스, 네메시스나 이리스 같은 여신들도 나오겠지요? 또는 여신들의 계보도 적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들


* 포세이돈의 딸들, 바다의 처녀-네레이드
* 출산의 여신 루키나
* 전쟁의 여신 벨로나
* 테미스의 딸, 미풍양속을 지키는 여신-에우노미아
* 테미스의 딸, 평화의 여신-에이레네
* 가장 아름다운 신녀-꽃피우는 여신 호라이 자매(가르포, 탈로)
* 정의를 관장하는 신녀-디케
* 술에 깃들인 여신-뤼사
* 제우스의 아내, 3천명의 물의여신 중 하나-에우뤼노메

 

 

11. 운명의 세 여신 모이라이-클로토, 라케시스, 아트로포스

 

종신(從神)들 중 상당히 유명한 운명의 세 여신 모이라이는 어둠의 신 에레보스와 밤의 여신 닉스 사이에서 태어난 여러 자식들 중 하나이다.
모이라이는 이름 그대로('모이라이'는 운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이들은 인간의 운명을 관장하고 있다.
세 자매의 이름은 각각 맏이인 클로토는 '베를 짜는 여신', 둘째인 라케시스는 '나누어 주는 여신', 막내인 아트로포스는 '거역할 수 없는 여신'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제우스와 헤라의 딸이자 해산의 여신인 에일레이티아와 같이 오는데, 먼저 클로토는 베를 짜며 '내가 너의 운명을 짜리라.'라고 말하고 라케시스는 '은혜를 나누어 주리라'라고 말하면, 막내인 아트로포스는 가위를 보여주며 '내가 어느 달 어느 날에 너의 운명을 거두어 갈 것인즉, 네가 결코 거역하지 못하리라'라고 말한 후 떠나간다.

이들의 권한은 상당히 강력해서, 세 여신이 짠 운명은 어떤 신, 심지어는 신들의 왕인 제우스조차도 바꿀 수 없다.

 

 

12. 마법사 여신 키르케

 



키르케는 마법사 여신으로, 메데이아의 이모입니다.
키르케라는 이름은 독수리를 의미합니다.
마법의 섬 아이아이에에 살고 있습니다.
마법사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혹독한 여신이지요.
오디세우스는 항해 중 그녀를 만났습니다. 다른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은 아이아이에 섬에 가서 키르케를 만나, 배고픈 참이었는데
아름다운 키르케가 잔을 권하자 그들은 의심 없이 그 잔을 마셨습니다.
하지만 키르케의 음식과 물을 마신 부하들은 모두 돼지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만은 헤르메스(전령신)에게 얻은 약을 먹어,
키르케가 준 음식을 먹었어도 돼지가 되지 않고 키르케에게 돼지가 된
부하들도 모두 구해내죠.


또한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바다의 신 글라우코스가
홀딱 반한 아름다운 스킬라를 저주하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목욕하는 물에 약을 뿌리자 스킬라는 순식간에
괴물로 변해버렸죠.
검고 무서운 마법사 키르케의 진면모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13. 수많은 여신들과 족보

 

일단 어째서 그리스 - 로마 신화에 이리 여신이 많은 지 부터 언급하죠.

그리스는 다른 지역들처럼 많은 민족들의 각축장이었죠. 그 과정에서 많은 부족들이 통폐합됩니다. 농경민족들은 대지모신(大地母神)을, 유목민족들은 하늘의 신을 최고신으로 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이아, 헤라, 레토, 데메테르, 레아 심지어 메두사나 칼리스토 등도 모두 원래는 각 부족들의 최고 여신이었다고 하죠. 그러나 이들 부족들이 유목민족에게 정치력을 잃었고 그 과정에서 유목민족들의 남자 신과 결혼 관계가 맺어지는 식으로 신화가 재편되게 된 것으로 현대 학자들은 추정합니다. 헤라처럼 높은 지위를 얻는 여신은 유목민족과 좋은 관계를 맺은 농경부족이 믿고 있었던 것이고, 메두사처럼 괴물로 전락한 여신은 말살당한 농경부족이 믿고 있었겠죠.

뉙스(밤의 여신, 태초의 5신 중 하나)

가이아(티탄 신족의 어머니, 땅의 여신, 태초의 5신 중 하나)

레아(제우스의 엄마, 가이아의 딸, 땅의 여신).

테미스(법의 여신, 가이아의 딸, 제우스의 숙모이자 두번째 아내).

므네므쉬네(기억의 여신, 가이아의 딸, 제우스의 숙모이자 세번째 아내).

에리뉘에스 3여신(복수의 여신들, 우라노스의 생식기에 생긴 상처에서 나온 피로 가이아가 임신해서 나온 딸들).

이리스(무지개의 여신으로 신들의 전령으로 활약함(헤르메스와는 달리 주로 여신들의 심부름을 맡음), 가이아의 아들인 폰토스가 가이아와 결혼하여 낳은 타우마스가 오케아노스(가이아의 아들인 우라노스가 가이아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의 딸인 엘렉트라와 결혼해서 낳은 딸)

모이라이 3여신(클로토, 라케시스, 아트로포스. 뉙스의 딸들, 제우스와 테미스의 딸들이라는 설도 있음).

테튀스(물의 여신, 가이아의 딸, 오케아노스의 아내이자 누이).

스튁스(지옥에 흐르는 강의 여신, 신들이 맹세할 때 사용함, 테튀스의 딸).

메티스(지혜의 여신, 테튀스의 딸, 제우스의 첫번째 아내로 아테네의 엄마, 제우스가 뱃 속에 넣어 버렸음).

테이아(공중의 여신, 가이아의 딸, 휘페리온의 아내이자 누이).

셀레네(달의 여신, 테이아의 딸, 헬리오스의 아내이자 누이).

에오스(새벽의 여신, 셀레네의 누이).

포이베(가이아의 딸, 코이오스의 아내이자 누이).

레토(포이베의 딸, 제우스의 첩,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엄마).

호오라이 3여신(계절과 질서의 여신들, 제우스와 테미스의 딸들)

니케(정의와 승리의 여신, 테미스와 제우스의 딸)

에이레네(평화의 여신, 테미스와 제우스의 딸)

뮤즈 9여신(예술의 여신들, 제우스와 므네므쉬네의 딸들)

데메테르(대지와 농업의 여신, 레아의 딸, 제우스의 아내이자 누이)

헤스티아(가정과 화덕의 여신, 레아의 딸)

페르세포네(저승의 여왕, 하데스의 아내이자 조카딸, 제우스와 데메테르의 딸)

에우뤼노메(오케아노스와 테튀스 사이에서 태어난 3000명의 물의 여신들 중 한 명으로 제우스의 아내)

카리테스 3여신(우아미의 여신들, 에우뤼노메의 딸들)

헤라(가정의 여신, 제우스의 네번째 아내이자 정실부인이자 누이)

아테나(전쟁과 기예의 여신, 메티스의 딸)

아르테미스(사냥과 달의 여신, 레토의 딸)

아프로디테(사랑과 미와 풍요의 여신, 제우스와 디오네의 딸이라는 설과 우라노스의 잘린 생식기가 바다에 빠져 거품으로 변한 뒤 그곳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음)

헤베(청춘의 여신, 헤라의 딸)

암피트리테(포세이돈의 아내로 바다의 여신, 테튀스의 딸)

헤카테(저승에 사는 마법의 여신, 레토의 여동생)

 

14. 꽃을 두른 소녀로 묘사되는 여신, 플로라.

 



플로라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꽃과 풍요의 여신입니다.
모든 꽃의 여왕이기도 합니다.
꽃을 들거나 꽃을 온몸의 두른 아름다운 소녀로 묘사됩니다.
클리리스 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꽃과 꿀, 꽃의 씨앗은 모두 플로라가 인간에게 준 선물이며,
그녀는 제우스의 요청으로 서풍의 신 제피로스와 결혼하였으며.
이를 가상히 여긴 제우스는 그녀에게 꽃을 지배하는 힘을 내렸습니다.
flower(꽃) 같은 이름은 모두 플로라 여신에게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를 추양하는 나체 여인들의 플로랄리아 축제는
로마 당국에서 금지하기까지 3세기까지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꽃의 여왕인 그녀가 지금은
음탕한 창부로 생각되기도 한다니 참 묘한 일은 듯합니다 ^^;;

 

 

15. 크로노스의 아내, 레아

 


가이아와 우라노스의 뒤를 계승한 크로노스,
그의 아내는 모든 티탄신들의 여왕(헤라와 비슷한 위치)
"레아"였습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오프스라 불립니다.

레아는 풍요의 여신으로 시간의 신 크로노스의 아내지요.
(또한 크로노스의 누이이기도 하고...)
또한 천공신 우라노스와 대지의 여진 가이아의 딸입니다.

레아는 제우스, 포세이돈, 하이데스등의 어머니로,
그녀가 낳은 자식들은 모두 크로노스가 삼켜 버리는 불운을 겪습니다.
(물론 제우스는 제외하고) 그러나 제우스는 그녀가
크레타 섬에 숨겨 두는 따뜻한 모성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녀가 메티스에게 술을 받아 크로노스에게 먹임으로
티탄신족들의 멸망을 불러오게 됩니다.

그녀의 상징은 사자입니다.(헤라가 공작이듯이..)
레아라는 단어의 뜻은 암소를 뜻한다고 하네요.

 

 

16.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술(魔術)·주문의 여신

 

헤카테 [Hekate]


요약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술(魔術)·주문의 여신. 페르세우스와 아스테리아 사이에 태어난 딸로 달의 여신, 대지의 여신, 지하의 여신 등 3여신이 한 몸이 된 여신이다. 천상·지상·바다에서 힘을 발휘한다. 달의 여신으로 아르테미스와 동일시되며 지하의 여신으로서 명계(冥界)·밤 등 어둠과도 관계가 있어 죽은 이의 넋을 인도한다고 하며 길이 마주치는 삼거리에 지옥의 개를 데리고 나타난다고 한다.

내용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술(魔術)·주문의 여신. 페르세우스와 아스테리아 사이에 태어난 딸로 달의 여신, 대지의 여신, 지하의 여신 등 3여신이 한 몸이 된 여신이다. 천상·지상·바다에서 힘을 발휘한다. 달의 여신으로 아르테미스와 동일시되며 지하의 여신으로서 명계(冥界)·밤 등 어둠과도 관계가 있어 죽은 이의 넋을 인도한다고 하며 길이 마주치는 삼거리에 지옥의 개를 데리고 나타난다고 한다. 그녀는 등을 맞댄 세 몸을 가진 형상으로 삼거리에 세워지는데 악령을 쫓는다고 믿어졌다. 자기에게 귀의하는 인간에게는 부와 웅변·승리·어획·축산·육아 등의 은혜를 베풀었다고 한다.

 

17. 티탄 달의 여신, 셀레네

 


셀레네는 티탄의 여신으로, 루나라고도 불립니다.
아르테미스 이전의 달의 여신입니다.
셀레네는 그리스어로 "달"을 의미합니다.
새벽의 여신 에오스와 태양신 헬리오스의 남매입니다.
보통은 이마에 초승달을 이고 있는 갸냘프고
창백하다 못해 새파란 은빛의 여인으로 묘사됩니다.
흰 옷을 입은 그녀는 달밤마다 뿔달린 흰 암소를 타고
달빛따라 세상을 둘러봅니다.

그녀도 역시 제우스의 여인들 중 하나입니다,(두 자녀를 낳음)

그녀와 엔디미온의 이야기는 가장 유명합니다.
엔디미온은 양치기 미소년이었는데, 어느 날 세상을 둘러보던
셀레네는 엔디미온을 보게 되고 그의 아름다움에 이끌립니다.
그녀는 엔디미온에게 키스하고 그를 영원히 잠들게 합니다.
그의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게 하고서 말입니다....
그녀는 엔디미온과의 사이에서 50명의 딸을 낳았다고 합니다.

 

18. 과수원을 가꾸는 여신, 포모나

 


포모나는 과수원을 가꾸는 여신입니다.
(나무의 님프, 드라이어드 중 하나로 알려져 있기도 하더군요)
그녀는 정원 가꾸는 일과 꽃의 재배와 과일 재배를 주관하는 여신입니다.

여러 남자들이 그녀에게 사랑을 구하였으나
관심사는 오직 과수원과 포도원뿐인 그녀는 모두 거절하고
오로지 꽃과 과일을 가꾸는데만 전념합니다.
(과연 과수원의 여신답죠?)
하지만 그녀의 고혹적힌 자태에 이끌린 베르툼누스는
구애를 했으나 역시 거절당합니다.

하지만 그는 어느 날 노파의 모습으로 변신해
그녀의 과수원으로 찾아가 말합니다.
"아가씨, 구혼자들을 거절하지 말아요 사랑의 신 아프로디테님께서
벌을 내리실지 몰라요."
착한 여신이었던 포모나는 그 말에 마음이 이끌립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고야 말죠.
그리고 노파는 다시 베르툼누스의 모습으로 돌아와서
포모나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 둘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19. 정의의 여신 아스테리아.

 



아스테리아는 아스트리이아라는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코이모스와 포이베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레토의 자매입니다.
또한 헤카테의 어머니라고도 전해집니다.
이 티탄 여신의 이름은 "별자리"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녀는 정의의 여신으로, 황도 12궁 중 하나인
천칭자리의 모델격입니다. 정의와 공평을 상징하는 천칭을 들고 있죠.

신들이 인간세계에 살던 시절, 많은 신들은
점차 포악해져가고 이기적이 되어가는 인간에게
싫증을 느껴 하나둘씩 떠나버립니다.
그러나 인간을 가장 사랑하여 마지막까지 인간들과
같이 있어주고, 인간들을 교화시키려 노력한 여신이 바로
정의의 여신 아스테리아입니다
그녀도 마침내 더 참지 못해 인간 세상을 떠났는데,
자신의 천칭을 인간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로
하늘에 매달아두고 가는데, 이것이 천칭자리입니다.

 

20. 코이모스의 남매, 티탄 12신족-포이베

 

코이모스의 남애이자 아내-포이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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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포이베 여신이라고 보아주세요 ;;;

포이베는 코이모스와 휘페리온 등의 의 남매이며,
티탄 12신족 중에 속합니다.
코이모스의 아내이기도 하지요.
"포이베"는 그리스어로 "밝다"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녀는 셀레네와 아르테미스와 동일시되기도 하였습니다.
레토와 아스테리아의 어머니이며,같은 티탄 신족인
테튀스, 므세모시네 등과 자매이며, 마찬가지로
크로노스와 레아의 딸입니다.

그녀는 대지의 신 가이아와 계율과 이치의 여신
테미스 다음으로 델포이 신전의 주인이 되기도 합니다.
후에 다시 아폴론에게 델포이 신전을 넘겨주기도 합니다.

"포이베"는 토성의 주위를 돌고 있는 위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참, 레다의 딸도 포이베니 헷갈리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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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림 완전 알짜정보네요 | 2009-09-14 (Mon)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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