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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little delight]]></title>
	<link>http://blog.dreamwiz.com/abalon33</link>
	<description><![CDATA[  ]]></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Sun, 08 Nov 2009 05:22: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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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little deligh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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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내 인생은 지금 몇장째 쯤일까? ]]></title>
					<link>http://blog.dreamwiz.com/abalon33/11758792</link>
					<author><![CDATA[nogong]]></author>
					<description><![CDATA[<table><tr><td><img src='http://blog.dreamwiz.com/thumbnail/a/b/abalon33/37/thbn_abalon33_20091028205455_11758792_1.jpg'  height=120 border=0 align='left'>며칠 동안 마무리되어지지 않는 작업을 붙잡고 전전긍긍하고 있다.앞으로 2, 3 주 더&nbsp;신경에 날 세우는 이런 나날을 보낸 다음이라면, 어느 정도 방향이 잡히겠지만&nbsp;이런 '산고'를 겪은 적이 없었던지라 더 길어지면 신경이 폭발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nbsp;&nbsp;있는 것&nbsp;골라 내서 순서 세우기도 이렇게 힘들거늘,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뭔가를 만들어 내야 하는&nbsp;예술가들의 그 작업 과정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그런 주제에 언젠가 작곡을&nbsp;하겠다는&nbsp;어처구니 없는 꿈을 꾸는 이율배반은 뭐람?)&nbsp;&nbsp;&nbsp;시간에&nbsp;쫓기면서도 작업 중 도망갈 길이 없는 집 안에서는&nbsp;우루후루즈의 음악을 마약처럼 찾게 된다.&nbsp;유튜브에서 그들의 예전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nbsp;역시 짧은&nbsp;순간, 마약 노릇을 충분히 해 낸다.&nbsp;&nbsp;마침내 끝났다는 토타스 마츠모토의 솔로 공연.&n... <a href=' '>more...</a><!--며칠 동안 마무리되어지지 않는 작업을 붙잡고 전전긍긍하고 있다.앞으로 2, 3 주 더&nbsp;신경에 날 세우는 이런 나날을 보낸 다음이라면, 어느 정도 방향이 잡히겠지만&nbsp;이런 '산고'를 겪은 적이 없었던지라 더 길어지면 신경이 폭발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nbsp;&nbsp;있는 것&nbsp;골라 내서 순서 세우기도 이렇게 힘들거늘,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뭔가를 만들어 내야 하는&nbsp;예술가들의 그 작업 과정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그런 주제에 언젠가 작곡을&nbsp;하겠다는&nbsp;어처구니 없는 꿈을 꾸는 이율배반은 뭐람?)&nbsp;&nbsp;&nbsp;시간에&nbsp;쫓기면서도 작업 중 도망갈 길이 없는 집 안에서는&nbsp;우루후루즈의 음악을 마약처럼 찾게 된다.&nbsp;유튜브에서 그들의 예전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nbsp;역시 짧은&nbsp;순간, 마약 노릇을 충분히 해 낸다.&nbsp;&nbsp;마침내 끝났다는 토타스 마츠모토의 솔로 공연.&nbsp;술도 잘 못 마신다는 사람이 공연 멤버들과 새벽 6시까지 있다가 집에 들어와서 잠자리에 들면서 '조금' 울었단다.&nbsp;언제나 '남자다움''사나이다움'을 내세우고 자기 자신에게 최면 걸듯 힘내자고 말하는 사람이지만&nbsp;'눈물''울다' 같은 단어는 노래&nbsp;가사에 자주 등장하고,&nbsp;울었다는 에피소드도 자주 거론되는 것을 보면 일본에서는 '우는 것'으로 사나이다움을 측정하지는 않는 모양이다.&nbsp;그들 노래에 '눈물'이 등장한 곡은 거의 다 좋았다.&nbsp;그동안은 우루후루즈 내지는 토타스 마츠모토만 찾았는데 공동작업을 한 경우도 꽤 많아서 앞으로 그런 기록들을 뒤지는 재미가 또 기다리고 있다.&nbsp;그런 것에&nbsp;미처 생각이 못 돌아가서 놓쳤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아래의&nbsp;장면!http://www.youtube.com/watch?v=0i02Dr-vuP8롤링 스톤즈의 라이브를 마틴 스콜세지가 찍은 &lt;샤인 어 라잇&gt;의 일본 개봉을 앞두고 급거 런던으로 파견된 토타스가 그와 함께 인터뷰한&nbsp;장면이다. 일본에서 판매된 DVD에 바로 이 장면이 있다고 한다.&nbsp;화면상에서는 6분 조금 넘는 시간이지만&nbsp;아마 한시간 정도 인터뷰하지 않았을까 싶다.&nbsp;롤링 스톤즈에게는 일본이라는 시장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큰 시장이기 때문에 이런 특별 기획이 나왔겠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토타스 마츠모토가 인터뷰어라는 것은&nbsp;일본 록팬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그 선정은 누가 했을까?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록 시장의&nbsp;정확한 통계는 모르겠으나&nbsp;인구 대비로 보자면 영미에 이어 세계 세번째 정도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고, 비영어권 국가로 치자면 최대의 시장일 것이다. 록 수용 역사나 즐기는 태도로 봐서는 음악적인 측면은 확실히 월드 클래스급이지만 아쉬운 것은 일본 록 가수들의 취향이다. 언어의 문제를 떠나서 영미 오리지널 록에 가까운 음색을 가진 이들이 없어 록 시장의 크기에도 불구하고 '본토인'들에게 들이밀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결국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자국 시장 안에만 머무는 것 같다. 이른바 일본식 록, 가요 록이 현재 일본 록의 현주소라고 보여지고, 지난 10년&nbsp;동안 거의 매출 10 안에 들었던 30대 후반-40대 중반 위주인&nbsp;3대 록 밴드 비즈, 스피츠, 미스터 칠드런 등은 예외 없이 이런 일본식 록을 하는 이들이다.&nbsp;그래서 일본 록에 대해서 항상 아쉬운 심경이었는데 어쨌든 이런&nbsp;나를 '한방'에 보내 버리고 알면 알수록&nbsp;더욱 경탄을 하게 만드는 밴드가 바로 우루후루즈.&nbsp;이제는 웬만한 영미 밴드보다 더 좋아한다고&nbsp;말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nbsp;오리지널 록&nbsp;사운드를 구사하면서도 영미 밴드의 서정으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가사를 창조해 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인터뷰에서 토타스는 정성스레 준비해 온 영어 질문을 또박또박 믹에게 던진다.&nbsp;"공연할 때, 관객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입니까?"&nbsp;"오랜 기간 동안 공연은 밴드에게 어느 정도 중요했습니까?""당신의 에너지는 놀랍습니다만, 무대에 오르기 전 특별히 하는 거라도&nbsp;있습니까?"영어는 아니지만 동경하던 대상을 만났기 때문에 혼잣말로 중얼중얼,"꼭 먹는 거라도 있는지 물어 볼까나?"(공연 전 우동을&nbsp;징크스처럼 먹는 그로서는 궁금할 만도...^^)결국 알아낸 답은 믹 재거는 공연 5시간 전부터 아무 것도 안 먹는다는 것."예전 필름들을 보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앞으로 롤링 스톤즈의 계획은&nbsp;뭡니까?"아아, 이 다섯 가지의 질문을 토타스는 또박또박 '일본스러운' 발음으로 정성스레 물어봤다. 존경하던 뮤지션을 만났으니 당연히 긴장되고 조심스럽기도 했겠지만 의외로 여유만만해 보이고, 심지어는&nbsp;23살이나 연상인 대선배&nbsp;믹을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지켜보는 데서 나도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lt;트래블러&gt; 앨범에서 약간 영어 발음이 어색하긴 했지만 워낙 '명창'인데다 평생을 불러 왔을 노래들을 불러 그의 영어 수준이 어땠는가&nbsp;전혀 짐작도 못했건만 이 인터뷰를 보니 아무래도 영어는 그냥 중학생 수준인듯.... ^^ 칠순을 바라보는 믹 재거는 사실 너무 쪼글쪼글해져서 '영원한 악동'이라고 불러 주기도 슬펐다.&nbsp;50대 정도까지의 모습도 여전히 내 마음을 설레게 할 만큼 멋있었는데 이젠 진짜&nbsp;할아버지가 되어 버렸다.저 나이에&nbsp;아직도 젊은 여성 꽁무니 쫓아 다닐까 하는 개인적인 궁금증은 나뿐만 아니라 토타스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최근 마마스 앤 파파스의 멤버 존 필립스의 딸인&nbsp;매킨지 필립스가 아버지와의 근친상간 관계를 밝혀 미국에서 떠들썩했는데&nbsp;인터뷰를 보니&nbsp;그녀 역시 믹 재거와 잤다고 밝혔다.사실 믹 재거의 여성 편력은&nbsp;아마 웬만한 록 팬이라면 거의 다 연대기를 꿰고 있을 것이다. 그가&nbsp;만든 음악, 무대 위에서의 그의 카리스마를 좋아하고,&nbsp;'나쁜 남자'인 것을 알면서 어쩔 수 없이 매료가 되어 버리지만&nbsp;현실에서&nbsp;'당한다면' 틀림없이 '쳐 죽일 놈'과임은&nbsp;분명하다.&nbsp;&nbsp;어릴 때부터 록에 열광하면서도 록 뮤지션들과&nbsp;개인적으로 가까와지지 않은 것은 믹 재거의 이런 사생활이 내게 가르쳐 준 반면교사일지도 모르겠다. 무대 위에서의 그들과 무대 밑에서의 그들은 완전히 다른 인격체라는 것을 그를 통해 알게 된 게 나름 소득이라면 소득인가? ^^매킨지 필립스의 말을 어느 정도로&nbsp;믿어야 할지는 의문이지만 믹 재거라면 놀랍지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nbsp;70년대에는 캐나다의 트뤼도&nbsp;수상 부부를 이혼시키고, 현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의 부인인 카를라 브루니와도 사귄 것은 그냥 작은 에피소드일 뿐,&nbsp;전 세계를 누비며 그가 친 '사고'는 아마 본인도 기억 못할 것이다. ^^그래서 영화 &lt;알피&gt;의 주제가인 &lt;All habits die hard&gt;의 주제가를 들으며 "아, 이 인간이 이게 자기 인생이라는 것을 느꼈을까?"라고 생각했다. 역설적으로 그가 부른 노래 중에서 이 곡이 가장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의 팬임을 자처하는 것을 보면 믹 재거라는 인물이 가진 자력이 그만큼 강한 것일지도..&nbsp;&nbsp;어쨌든&nbsp;내 마음 속에서 비슷한 반열에 올라 있는&nbsp;이 두 사람이&nbsp;나란히 있는,&nbsp;믿을 수 없는 장면에서 나는 믹 재거의 대답은 거의 신경을 안 썼다. 그로서는 40년도 넘게 해온 뻔해 빠진 대답일 것이고, 기획한 측에서도&nbsp;오로지 '일본팬을 위해 따로&nbsp;만나 줬다'라는 게 더 의미있었을 테니&nbsp;말이다. 오히려 토타스&nbsp;쪽의 표정이나 반응이 나로서는 더&nbsp;인상적이었다. 영화가 공개되기 전까지는&nbsp;분명 비밀에 붙였을 이 때의 기록이 예전 그의 블로그에 남아 있다.&nbsp;나도 맘 먹으면&nbsp;네티즌 CSI 요원이 될&nbsp;수 있는&nbsp;모양이다. 2008년 11월 4일에 이렇게 런던에 도착했다는 '보고'만 간단히 알려&nbsp;주고 있다.&nbsp;&nbsp; 이게 본인이 남긴 인증샷. 나처럼&nbsp;양쪽 뮤지션의 팬인 사람이라면&nbsp;사후에 짐작을 했겠지만 어쨌든 블로그 어디에도 무엇 때문에 갔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인터뷰 속의 복장인데, 아마 인터뷰 장소였을 호텔의 욕실에서 찍은 셀카(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어찌나 셀카를 좋아하는지... ^^)이 사진을 찍은 오후 4시에 '일'이 끝났다고 되어 있는 것을 보니 아마 11월 6일 오후에 짧게 인터뷰했던 것 같다.'떠벌이'라서 분명 입이 근질근질했을 텐데 블로그에는 일체의 정보가 없다. 다만 그 날 밤 그의 복잡한 소감이 아래와 같이 길게 길게 적혀 있다. 그 당시에 이 글을 읽었다면 단순히 유명&nbsp;뮤지션의 지난날 소감 정도로 생각했겠지만 이제 와서 보니 실은 믹 재거를 만난 그날 밤,&nbsp;복잡미묘했을 그의&nbsp;심경이 짐작된다.&nbsp;&nbsp;**********&nbsp;&nbsp;이런 침대에 자고 있으면&nbsp;시차 때문에&nbsp;멍한 것도&nbsp;조만간 끝난다.&nbsp;런던. 계산 차이는 있지만 전에 런던에 온 것은 1995년의 1월이었기 때문에 벌써 14년만이다. 그것이 나의 첫 해외 여행이었다. 그 때는, 「철저하게 하자! 」「순산 마마」「그게 뭐 어때서」「오사카 스트럿」의 믹스 다운을 위해 왔지만... 도쿄에서「철저하게~」의 가사가 잘 되지 않고, 노래를 녹음한 것에 대해 불평이 나와&nbsp;어쩔 수 없이 무리하게 런던에서 녹음하기로&nbsp;되었지만&nbsp;가사는 쓰지 못하고, "인자 마, 음악 같은 거는 다 때려 치아불까" 라면서 열 받아서&nbsp;이 거리를&nbsp;일없이 돌아 다녔다.&nbsp;&nbsp;결국 아무튼 어떻게든 되어, 무사하게 노래는&nbsp;녹음했지만&nbsp;17일 새벽, 한신 아와지 대지진(고베 대지진)이 일어나고, 터무니없이 밝은「오사카 스트럿」의 릴리즈를 자숙하게 되어, 갈수록 태산…. 정말로 여러가지 의미로 추억 깊은 첫 런던. 그 당시의 나에게는, 명성도 지위도 명예도 돈도 없었다. 물론 그런 것, 아무래도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런던에서의 일은, 14년전의 자신에게는 상상, 아니 공상마저 할 수 없었던 것 같은, 그것은&nbsp;명예로운 것이었다. 그 때, 관 두지&nbsp;않고 계속 하고 있어 정말로 잘 됐다.**************************** 이 때의 일은 존 B 촛파의 책에도 등장한다. 프로듀서와 함께 혼자 런던으로 간 토타스는 나리타 공항에 돌아오자 마자 "내는 그만 할란다!"고 하소연한다. 그때 그만 두었더라면 나는 오늘날의 위안을 받지 못했을 것이고, 일본 록은 여전히 내게 '일본풍' 록으로만 기억되고 있을&nbsp;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과 영향을 주고 받고 교류가 있는 다른 일본 뮤지션들도&nbsp;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한채 그만 묻혀 버렸을 것이다.이게 혹시&nbsp;그 무렵쯤의 사진이려나? 95년에&nbsp;그를 좌절시켰던 런던이&nbsp;그렇게 믹&nbsp;재거를 만나는 장소가 되었을 줄이야....뭐든지 쉽게쉽게 그만 두고 싶을 때마다 이런 에피소드&nbsp;꼭 상기해 봐야 될&nbsp;것 같다.&nbsp;그만&nbsp;둔다면 남들이 땅을 치고 슬퍼 할 그런&nbsp;재능이 내게는 없다는 게 슬프지만...ㅠ.ㅠ&nbsp;&nbsp;활동 정지 전&nbsp;공식적인 마지막 앨범이 된 2007년의 &lt;Keep on, Move on&gt;의 완성된 자켓을 들고... 별로 많이 팔리지 않아 섭섭하다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앨범 수록곡 하나하나&nbsp;기가 막힌 작품이라 생각하고,&nbsp;활동 기간이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아 고마울 뿐이다.&nbsp; 일생을 여자와 여자들 사이에서 부유하는 삶을 즐겨온 믹 재거가 자신의&nbsp;인생을 어떻게 회고할까?&nbsp;스무살 무렵에 이미 한 여자에게 정착해서 살아온 토타스는 그런 그의 라이프 스타일이 부러웠을까? 아님 딱했을까? 어쨌든 일본 록 뮤지션들은&nbsp;그런 성실함조차도 꽤나 '일본적'이다.그런 그가 요즘 내게 던져준&nbsp;또다른 화두....역시 영미의 록 뮤직에서 찾아볼 수 없는 가사.... 이 노래를 다른&nbsp;뮤지션이 불렀을 때는 그렇게 일본스럽더니 토타스의 목소리를&nbsp;빌리면 이렇게 또 달라진다.&lt;내 인생은 지금 몇장째 쯤일까? &gt;좋든 나쁘든 어쨌든&nbsp;말하고 싶은 것을 전부 말한다&nbsp;좋은 기분으로 내 영혼에 거들먹댄다&nbsp;지금은 어디쯤일까?어디까지 온 것일까?내 인생의 지금은 몇장째 쯤일까?&nbsp; 어리석은 농담을 하고&nbsp;눈물을 흘리며 웃는다 시시껍절한&nbsp;노래를 크게 불러&nbsp;본다 지금은 어디쯤일까?어디까지 온 것일까?내 인생의 지금은 몇장째 쯤일까?&nbsp; 아침이, 낮이, 밤이, 매일이&nbsp;모두 사랑스럽다 네가, 그가, 저 녀석이, 누군가가&nbsp;전부 사랑스럽다 아무렇지도 않은 그 웃는 얼굴을, 믿음직한 녀석의 목소리를,변하지 않는 이 마음을,한없는&nbsp;그 눈물을. 잊고 싶은 옛날 일양보할 수 없는 첫사랑알 수 없는 그런 일들하찮았던&nbsp;어제의 일 외치고 싶어, 큰 목소리로잡고 싶어, 있는 힘을 다해놀고 싶어, 밤이 다 새도록잠들고 싶어, 너의 옆에서언제까지나&nbsp;넉살좋게 어디까지나 내일은 계속된다. Lalala…lalala…http://www.youtube.com/watch?v=tVGNUMoutDA--></td></tr></table>]]></description>
					<pubDate>Wed, 28 Oct 2009 20:40:41 +0900</pubDate>
					<category><![CDATA[日本,도데쇼?]]></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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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오늘.... ]]></title>
					<link>http://blog.dreamwiz.com/abalon33/11722570</link>
					<author><![CDATA[nogong]]></author>
					<description><![CDATA[<table><tr><td><img src='http://blog.dreamwiz.com/thumbnail/a/b/abalon33/23/thbn_abalon33_20091026213626_11722570_1.jpg'  width=160 border=0 align='left'>10월 26일이다. 1909년 오늘, 서른살 된 청년 안중근은 초대 조선 통감을 지냈던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역에서 암살한다. 1979년 오늘, 대한민국 중앙정보부 부장이던 김재규는 18년 동안&nbsp;정권을 잡았던 독재자 대통령 박정희를 암살한다. &nbsp;&nbsp;후자의 오늘,&nbsp;그날&nbsp;저녁&nbsp;뉴스에서 대규모 방조제 사업에 참석한 그 독재자의 화려했던 마지막 행사를 기억한다. 대학생들 데모로 중간고사도 못 치렀던 그 당시,&nbsp;다음날 아침 라디오 뉴스를 통해 정체를 알 수 없는 그의&nbsp;'유고'는 반복되어 흘러 나왔다. 슬픈지는&nbsp;몰랐고 무서웠다. 어른들은 '또 북이 쳐내려 올 거다!'라고 겁을&nbsp;주었으니까...'국부'가 돌아 가셨으니 펑펑 울어야 정상인 것 같은데&nbsp;다들 북한 타령만 하지, 그의 죽음에&nbsp;대성통곡을 하는 이가 보이지 않았으니&nbsp;어린 나도 어떡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남들이 울면 군중심... <a href='http://blog.dreamwiz.com/abalon33/11758792 '>more...</a><!--10월 26일이다. 1909년 오늘, 서른살 된 청년 안중근은 초대 조선 통감을 지냈던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역에서 암살한다. 1979년 오늘, 대한민국 중앙정보부 부장이던 김재규는 18년 동안&nbsp;정권을 잡았던 독재자 대통령 박정희를 암살한다. &nbsp;&nbsp;후자의 오늘,&nbsp;그날&nbsp;저녁&nbsp;뉴스에서 대규모 방조제 사업에 참석한 그 독재자의 화려했던 마지막 행사를 기억한다. 대학생들 데모로 중간고사도 못 치렀던 그 당시,&nbsp;다음날 아침 라디오 뉴스를 통해 정체를 알 수 없는 그의&nbsp;'유고'는 반복되어 흘러 나왔다. 슬픈지는&nbsp;몰랐고 무서웠다. 어른들은 '또 북이 쳐내려 올 거다!'라고 겁을&nbsp;주었으니까...'국부'가 돌아 가셨으니 펑펑 울어야 정상인 것 같은데&nbsp;다들 북한 타령만 하지, 그의 죽음에&nbsp;대성통곡을 하는 이가 보이지 않았으니&nbsp;어린 나도 어떡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남들이 울면 군중심리로라도 따라 펑펑 울었을 텐데 그는 '존경해야 할 대상'이었지, 내가 혈육을 잃은 것만큼 슬퍼해야 할 대상이었는지 그때는 전혀 몸과 마음이 느낄 수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서,&nbsp;그리고&nbsp;내가 '상식을 가진 어른'이 되어 간다고 생각하면서 그를 떠올리면 불쾌하고 괘씸하고 억울하고 그래서 착잡해진다. 그에 대한 재평가 운운하면서 기계적 중립성으로 자신의 균형 감각을 내세우려는 이들을 보면&nbsp;결국은 모자란 통찰력과&nbsp;인간에 대한&nbsp;예의가 없는&nbsp;것임을&nbsp;적나라하게&nbsp;내보이는 것 같아 그만 쓴웃음이 비져 나온다....애매하게 그를 감싸는 이들이&nbsp;그르고, 내가 옳다고는 절대 말하지 못한다. 다만 그들은 나와 다르다. 남은 내 인생 동안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굳이 통하는 구석이 있나 싶어 진단하고 노력하는 일,&nbsp;이젠 별로 하지&nbsp;않을 것 같다.&nbsp;하필이면 오늘, 오랜 만에 지인이 연락을 해&nbsp;왔다. 얼굴 맞대하기 전, 전화기를 통해서는&nbsp;용케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nbsp;안부를 묻다 그만 덜컥 울음이 터져 나왔다.오늘따라 이&nbsp;분이 너무 보고 싶다. 꿈이라도 좋으니까....&nbsp;&nbsp;&nbsp;&nbsp;매일 심장을 쪼여 먹히는 시지프스가 이렇게 아팠을까....그렇게 아픈데도 내 심장은 어디로 도망가지 않고 그저 같은 고통만 되풀이된다.....--></td></tr></table>]]></description>
					<pubDate>Mon, 26 Oct 2009 21:22:11 +0900</pubDate>
					<category><![CDATA[잡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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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나의 길이란 무엇이었을까 - 우루후루즈 2 -]]></title>
					<link>http://blog.dreamwiz.com/abalon33/11704125</link>
					<author><![CDATA[nogong]]></author>
					<description><![CDATA[<table><tr><td><img src='http://blog.dreamwiz.com/thumbnail/a/b/abalon33/37/thbn_abalon33_20091024163931_11704125_1.jpg'  width=160 border=0 align='left'>1988년 결성, 오사카의 쥬소(十三인데 오사카에서는 이렇게 발음한다) 고가 아래 있던 싸구려 스튜디오에서 연습, 라이브 하우스에 출연하다가 메이저 데뷔를 계기로 도쿄로 상경. 잘 나가든, 아니든 밴드는 쉴 틈 없이 끊임없이 활동해 왔다. 그러나 나는 4년 동안 탈퇴한 적이 있다. 그 사이 마음 한 구석에는 항상 밴드를 생각하고 있었다. 2003년 복귀했다. 그리고 지금 밴드는 '활동정지' 상태다. 여러가지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츠모토군은 "해산은 하지 않아!"라고 말하고 있다.말하자면 '요령없는' 밴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루후루즈에 매료된&nbsp;것도 있고, 그 반면 피곤하기도 했다. 지금은 후자 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존&nbsp;B&nbsp;촛파가 우루후루즈의 21년을 정리한&nbsp;책, 첫 부분이다.&nbsp;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별로 내키지도 않는&nbsp;전산 전문학교에 입학한 19세 소년 구로다 도시히로는 아르바이트감을 찾아 우메다 역을 헤맨다. 처음... <a href='http://blog.dreamwiz.com/abalon33/11722570 '>more...</a><!--1988년 결성, 오사카의 쥬소(十三인데 오사카에서는 이렇게 발음한다) 고가 아래 있던 싸구려 스튜디오에서 연습, 라이브 하우스에 출연하다가 메이저 데뷔를 계기로 도쿄로 상경. 잘 나가든, 아니든 밴드는 쉴 틈 없이 끊임없이 활동해 왔다. 그러나 나는 4년 동안 탈퇴한 적이 있다. 그 사이 마음 한 구석에는 항상 밴드를 생각하고 있었다. 2003년 복귀했다. 그리고 지금 밴드는 '활동정지' 상태다. 여러가지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츠모토군은 "해산은 하지 않아!"라고 말하고 있다.말하자면 '요령없는' 밴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루후루즈에 매료된&nbsp;것도 있고, 그 반면 피곤하기도 했다. 지금은 후자 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존&nbsp;B&nbsp;촛파가 우루후루즈의 21년을 정리한&nbsp;책, 첫 부분이다.&nbsp;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별로 내키지도 않는&nbsp;전산 전문학교에 입학한 19세 소년 구로다 도시히로는 아르바이트감을 찾아 우메다 역을 헤맨다. 처음 가려고 했던 집이 겉에서 보기만 해도 맘에 들지 않아&nbsp;돌아 나오다 우연히 발견한 구인 광고, '칸테 지 마루비루점 오픈, 아르바이트 모집'&nbsp;구로다에게는 3살 위인 형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그의 방에 들어가서&nbsp;그가 즐기는 음악, 책, 잡지, 만화책, 심지어는&nbsp;성인용 책까지 훔쳐 보며 동경하던 예술대학생 형이 친구들과 약속 잡을 때 자주 등장했던 이름이 바로 칸테 지였고,&nbsp;등록만 하고 다니지도 않는 학교 대신 빠찡코에서나 시간을&nbsp;보내던 그에게 그 이름은 어쩐지 형의 세계에 편입될 수 있는 느낌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nbsp;시급 350엔(지금은 800-1000엔 정도가 이런 곳의 시급이다)을 받고 칸테 지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인도풍의 찻집이라는 컨셉의 이 집은 오사카 여기저기 분점이 있고 지금도 여전히 유명한 장소라고 한다. 무척 비싼 브랜드지만 겉으로 봐선 싸구려 옷을 휘감고 다니는 듯한&nbsp;이 집&nbsp;경영자는 별안간 구로다에게 노래를&nbsp;불러 보라는 엉뚱한&nbsp;요구를 할 정도로 별난 감각의 소유자.&nbsp;아르바이트생들도 밴드맨, 극단 단원, 카메라맨, 건축가 지망생 등 투성이였고 그 중 한 사람은 지금은 일본 최고의 코미디 콤비 다운타운의 대본을 써 주는 방송작가&nbsp;다카스였다고 한다.&nbsp;코미디 작가답게 그때도 사람 휘어잡는 실력이 대단해서 일이 끝나면 항상 동료들을 모아 놓고 잘 놀았단다. &nbsp;&nbsp;&nbsp;어느날 주방에서 드럼 좀 친다는 가도모리와 오사카의 인디 밴드 중에서는 제법 좀 알려졌다는 이와모토 게이스케가 밴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아무 생각없이 지나던 그는 그만 '코가 꿰였다'예술대학생인 형은 온갖 잡다한 취미를 갖고 있었고 밴드&nbsp;활동도 그 중 하나였는데 그 사실을 알고 있던&nbsp;게이스케는 "집에 베이스가 있으니까 너도 밴드 할래?"라고 물어 봤고, 그런 '유명한' 사람이 물어 봐 준 것에 감격한 그는 그만 "좋아요"라고 아무 생각없이 대답하고 만다.&nbsp;&nbsp;별명 미스터 스마일맨 이와모토 게이스케. 예명은 우루후루 게이스케로 밴드를 만들고 공식적으로 리더인데다&nbsp;나이도 제일 연장자다. 40대 중반인데도 록 밴드에 몸 담고 있다 보니 별로 아저씨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nbsp;밴드를 만들자고 한 며칠 후 우메다의 어느 연습 스튜디오에서 도통 알 수 없는 감각으로 베이스를 두들기고 있던 그의 앞에 사이키델릭 그림이 그려진 헬멧을 손에 들고, 기타 케이스를 둘러 맨 장발의 사나이가 숨차 하면서 나타나게 된다. "처음 뵙겠습니다. 마츠모토라고 합니다!"칸테 지의 나카즈 본점에서 일하는 그는 아르바이트생들 사이에 소문이 제법 알려진 별난 친구. 사람 뽑지도 않는데 카페에 일자리 없냐고 뻔뻔하게 졸라댔다고 한다. 복식 전문학교에 다니던 그로서는 음악 활동을 할 수 없는 학교가 재미없었고, 칸테 지에 가면 아르바이트생들 중 밴드 관계자가 많다는 얘길 듣고 일부러 그 쪽으로 간 것이라고 한다.어쨌든 이 연습실에서 그들의 운명이 결정되어 버렸다. "마츠모토 군, 기타는 내가 칠 테니까 노래를 좀 해 보시지!"게이스케 본인은 아무 의미없이 그런 말을 했다는데 인디 밴드에서 이름이 알려진 게이스케의 의견을&nbsp;무시할 만한 분위기는 당연히 아니었을 것이다. 기타를 치기 때문에 처음부터 노래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마츠모토는 벨벳 언더그라운드,&nbsp;잼, 롤링스톤즈의 노래를 몇곡 불렀고(이 시기에 이들은&nbsp;이런&nbsp;곡을 부르고 연주했었다!! 일본이니 가능했을 거다...) 베이스 초심자인 구로다는 지판 위에 A나&nbsp;C를 붙여놓은 장소를 찾아 연주했었단다. 나중 인터뷰에서&nbsp;마츠모토는 게이스케보다 더 잘 친다는 자신을 갖고 있었다고 '뻔뻔하게' 얘기한다. ^^ 다만 짬밥 수에서 밀린 셈이었나? 결과적으로 그래 주지 않았더라면&nbsp;엄청난 보석이 그만 파&nbsp;묻힐 뻔했다. &nbsp;&nbsp;&nbsp;온 몸을 크게 흔들며 리듬을&nbsp;실어 노래하는 마츠모토, 그 옆에서&nbsp;디스토션을 걸고 연주하는 게이스케, 이&nbsp;두 사람의 모습이 바로 우루후루즈의 원형이었다고 구로다는 묘사하고 있다. &nbsp;&nbsp;그리고 가라오케에서 열린 다카스를 위한 연말의 송별회에서 마츠모토는 &lt;소우에몬초 블루스&gt;를 불렀다. 소우에몬초라면 오사카의 도톤보리 쪽 온갖 풍속업소가 다 몰린 그쪽인데 제목만 들어도 벌써 어떤 내용일지 감이 온다. 유튜브를 뒤져 봤더니 이런 노래. http://www.youtube.com/watch?v=z5xENxuIPwc트로트쪽에선 클래식으로 분류될 만하겠다.&nbsp;마츠모토의&nbsp;목소리가&nbsp;의외로 트로트에&nbsp;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한 바 있건만 이런 노래를 소울 풍으로 불렀다면 끝내 줬겠다. 어릴 때부터 역시 트로트의 명곡인 &lt;나가사키는 오늘도 비&gt;를 불렀다니 그 감각은 몸에 익었을 것이고. 어쨌든 이 노래를 듣고 게이스케는 이들과 함께 심각하게 새 밴드를 시작하기로 마음 먹는다.&nbsp;음악을 잘 알지도&nbsp;못하는 구로다였지만&nbsp;게이스케의 기타 소리, 마츠모토의 노래가 이상하게 몸 속을 감고 돌아&nbsp;노이즈투성이로 녹음된 테이프를 반복해 들으며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탈퇴했다 복귀한 지금도 토타스 마츠모토라는 압도적인 존재 옆에서 베이스를 튕기는 자신을 보며, "어떻게 이런 남자 옆에서 연주하고 있지?"라는 순간이 있을 정도지만 처음에는 그런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1988년 정식으로 결성을 결정하고 난 이후, 목욕탕도 없던 6조짜리 마츠모토의 아파트에 자주 놀러가 블루스와 소울 음반을 듣거나 베이스 주법을 배웠다고 한다. 그러나 도통 음악적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그를 지켜 보던 마츠모토는 무척 답답했었나 보다. 연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위의 사진에 나오는 오사카 요도가와의 제방에서 마츠모토는 이렇게 말한다."너 껑충거릴&nbsp;줄은 알지? 리듬은 신체로 느껴야만 돼. 비약하는 리듬 중에 그런 게 있다고..." 그러면서 자기 주변에서&nbsp;껑충껑충 뛰어다녔다고.&nbsp;거기에서 처음으로 스킵을 익혔다는, 자기 자신이 한심했던 늦깎이&nbsp;구로다의&nbsp;심경이 새삼 느껴진다. 이렇게 리듬감이며 음악적 감각이 없었던 구로다를 껴안고 갔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무래도 팀 웍을 위해서는 그처럼 온유한 성격의 베이시스트가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구로다의 리듬감을 지적하면서 드러머가 여럿 바뀌었지만 그들이 필요했던 것은 '音'보다 '人'이었을 것이라고 구로다는 분석한다. 자비를 털어서 데모 테잎을 만들고 1988년 12월 30일 마침내 그들은 오사카의 판당고란 곳에서 처음으로 라이브 데뷔를 하게 된다. 우루후루즈란 이름은 이때 만들어져 있었고, 보컬로 소개를 받은 마츠모토가&nbsp;황당하고 기괴한 분장을 하고&nbsp;등장해 버린다. 나름 기묘했지만 관중들의 반응은 시원찮았다고. 다만 연말 분위기를 타고 꽤 즐겁게 연주하고 관중들도 즐겼다고 한다. 이 날 처음으로 그들의 예명이 등장한다. "기타 치는 우루후루 게이스케입니다!!"처음 들어보는 예명에 구로다는 깜짝 놀랐는데 마츠모토까지, "토타스 마츠모토입니다!!" 같은 황당한 이름을 들이댔다는 것이다.&nbsp;예전부터 하던 블루스 밴드에서 쓰던 이름이라나? 예명 따위 생각도 해 본 적 없는 구로다는 그냥 구로다로 밀고 나갈 수밖에....드러머는 또 바뀌고, 구로다의 리듬감을 지적하며 감정 대립이 점점 심해진 어느날 심약한 구로다는 선언한다."나, 그만 둘래요."&nbsp;--></td></tr></table>]]></description>
					<pubDate>Sat, 24 Oct 2009 16:15:45 +0900</pubDate>
					<category><![CDATA[日本,도데쇼?]]></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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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청춘이라고 하면 - 우루후루즈 스토리 1 개괄편 -]]></title>
					<link>http://blog.dreamwiz.com/abalon33/11700169</link>
					<author><![CDATA[nogong]]></author>
					<description><![CDATA[<table><tr><td><img src='http://blog.dreamwiz.com/thumbnail/a/b/abalon33/37/thbn_abalon33_20091023235658_11700169_1.jpg'  height=120 border=0 align='left'>내 인생에 2009년이란 절대 잊을 수 없는 해가 될 것 같다.&nbsp;'비극'이란 단어 외에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는 노무현 대통령의 예상치 못한 죽음 앞에 살아 있는 나는, 그 이전의 모든 가치관이 경도되는 엄청난 충격을 통과해야만 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아마 앞으로 남은 인생도 이 상처를 계속 안고 갈 것임은 변함없을 것 같다. 그런데 지난 5개월간 이 지독한 아픔이 그나마&nbsp;조금씩&nbsp;덜해 간 것은 전적으로 일본의 록 밴드 우루후루즈 덕분이다.&nbsp;상처의 치유라면 세상에 널린 프로그램이&nbsp;얼마든지 있는데 왜 하필 그들이 나를&nbsp;치료하고 있는 것일까?&nbsp;그건 그들도 모를 테고, 나 역시 알 수 없다.&nbsp;그들의 음악이 그렇게&nbsp;치유용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데 이런 용도로 쓰인 것을 알게 되면 그들은 웃을지, 어이없어 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현재의 결과는 그렇다.&nbsp;얼마 알지도 못하는 일본 뮤지션들 중 가장 좋... <a href='http://blog.dreamwiz.com/abalon33/11704125 '>more...</a><!--내 인생에 2009년이란 절대 잊을 수 없는 해가 될 것 같다.&nbsp;'비극'이란 단어 외에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는 노무현 대통령의 예상치 못한 죽음 앞에 살아 있는 나는, 그 이전의 모든 가치관이 경도되는 엄청난 충격을 통과해야만 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아마 앞으로 남은 인생도 이 상처를 계속 안고 갈 것임은 변함없을 것 같다. 그런데 지난 5개월간 이 지독한 아픔이 그나마&nbsp;조금씩&nbsp;덜해 간 것은 전적으로 일본의 록 밴드 우루후루즈 덕분이다.&nbsp;상처의 치유라면 세상에 널린 프로그램이&nbsp;얼마든지 있는데 왜 하필 그들이 나를&nbsp;치료하고 있는 것일까?&nbsp;그건 그들도 모를 테고, 나 역시 알 수 없다.&nbsp;그들의 음악이 그렇게&nbsp;치유용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데 이런 용도로 쓰인 것을 알게 되면 그들은 웃을지, 어이없어 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현재의 결과는 그렇다.&nbsp;얼마 알지도 못하는 일본 뮤지션들 중 가장 좋아하는&nbsp;이들이라고 몇년 전부터 늘 말하고 있었지만 대통령이&nbsp;돌아가시고&nbsp;매일같이 가슴이 무너지도록&nbsp;울던 시기, 텔레비전도 신문도 인터넷도&nbsp;아무 것도 제 정신으로 볼 수 없던 그 때, 도망치듯 머물러 있던 일본어의 정보 속에서&nbsp;재음미해 본 그들의 노래 가사가 나에게 조그만 위안이&nbsp;되기 시작했었다.&nbsp;그리고&nbsp;그들의 해산과 보컬리스트이자 팀의 핵심인&nbsp;토타스의 솔로 활동에 대한 뉴스가 하필 내가 일본에 머물러 있던 시기에 겹쳐서 발표되기 시작했다. 이별 후의 또다른 이별, 제대로 알지도 못하던 이 또래 뮤지션들의 지난 음악과 새 음악을 곱씹고 곱씹으면서 그들을 전혀 모르고 지났던 지난 20여년이 너무 안타까왔다.&nbsp;그들을 계기로 손을 뗐던 음악에 다시 눈과 마음과 손이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런 과정 속에서 완전히 죽어 버렸다고 생각했던 정열에 그래도 불씨가 남아 있다는 것을 감지했고, 이런&nbsp;일들이 그나마&nbsp;그 지독한 슬픔을&nbsp;시시때때로 잊게 해 준다는&nbsp;것을 알게 됐다. 어쩌면 그들&nbsp;덕에 나는 다시 인생의 물꼬를 바꿀지도 모른다는&nbsp;생각이 든다. 내 또래인 그들을 보며 쉽게 포기하고, 쉽게 좌절하고, 쉽게 툴툴거리면서 인생을 만만하게 봐 왔던 건방진 과거에 대해&nbsp;새삼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nbsp;&nbsp;&nbsp;1년간 같은 도쿄 하늘 아래에 살면서도 전혀 그들에 대해 심층 연구해 볼 생각을 못했건만 큰 상처가 할퀴고 간 이후, 지난 몇달 간 우루후루즈는 내게 가장 고마운 존재가 되어 버렸다.&nbsp;비틀즈가 내게는&nbsp;화석처럼 우상화되어 버린 구름 위의 존재라면 우루후루즈는&nbsp;말 한마디 나눠 본 적도 없으면서 어느새 **친구라고 착각할 만한 또래 친구 같은 느낌이다. 가슴을 찌릿찌릿, 시큰시큰하게 만들어 버리는 가사가 그렇고, 멤버 전원이 블로그에서 알려 주는 일상의 기록과 음악적 열정이&nbsp;그런 착각을 하게 만드는 모양이다.&nbsp;그건 아마 무엇보다&nbsp;좋아하는 스타일의 음악이 비슷한 또래 세대여서&nbsp;그런지도 모르겠다.&nbsp;나라와 언어가&nbsp;달라도&nbsp;영어로 된 서양의 음악을 듣고 자란 내 또래들과&nbsp;느끼는&nbsp;공감대는 세계 어디를 가도 비슷했었다.&nbsp;&nbsp;어쨌든 같은 문화권에 살지 못했던지라 그들의 지난 세월을 복습하자면 시간이&nbsp;엄청 걸린다. 절판된 음반까지 포함해서 그들의 모든 음반을 구입하고(비틀즈의 음반조차도 몽땅 다 가지고 있지 못하거늘!!)&nbsp;가능하면 예전의 기사도 열심히 뒤지고 있다. 생긴 것처럼 열정적이고 말 많은(!) 토타스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블로그에 이것저것 올려 대고 있으니 대충 짐작이 되지만&nbsp;나머지 세명의 사나이는&nbsp;마치 그림자 인간 같다. 그런데 그 중 가장 그림자 같은 베이시스트 존 B 촛파가 그들의 지난 세월에 대해 마침내 책을 냈다. &nbsp;&nbsp;&lt;소설 우루후루즈 청춘이라고 하면&gt;.소설이라는 토를 달기는 했지만 이걸 읽고 나서 소설이라고 생각할 이들이 몇이나 있을까? 커버에 두른 띠를 보면 : 베이스 초심자라는&nbsp;컴플렉스토타스 마츠모토라는 압도적인 존재, 탈퇴 그리고 복귀인생의 벽에서 고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소"울풀한 청춘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우루후루즈는 영어로 Ulfuls로 표기하는데 사전에는 그런 단어가 없다. 왜냐하면 KC 앤 선샤인 밴드의 음반에서 노래 제목을 읽다&nbsp;soulful이라는 단어의 so가 줄 바꾸기를 하는 바람에 꽁무니만 남은 그 단어가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지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밴드 이름이 의미하듯 이들의 음악적 뿌리는 바로 미국 소울 음악.&nbsp;많은 오리지날 소울 음악을 들었어도&nbsp;그냥 좋아한다 정도였지, 내 영혼(소울)을 위로해 준 적은 없었는데 이렇게 본토와는 떨어진&nbsp;일본에서 변종 소울 뮤지션으로부터&nbsp;영혼이 위로받았다는 것은 무슨 재미있는 결과인지....&nbsp;&nbsp; &nbsp;저자인 존 B는 표지 설명대로 한번 탈퇴했다 4년 만에 다시 복귀한 사람이다. 전통적으로 베이스 주자들이란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들이 많은데 이 사람은 그 전형이라 봐도 무난할 것이다. &nbsp;&nbsp;본명은 구로다 도시히로로 모두 예명을 쓰는 멤버들 중 가장 늦게 이런 이상한 예명을 취한 사람이다. 그런 탓인지&nbsp;아직도 구로다라고 불리는 일이 더 잦은 모양. 그나마&nbsp;처음 고른 예명은&nbsp;성을 영어와 한자로 분리한 블랙다 욘필이라는&nbsp;이상한 이름. 욘필은 어처구니없지만 고른 이유인즉슨 그 당시 연말 NHK 홍백&nbsp;가합전을 보는데 한국 가수 조용필이 나오더란다.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그냥 욘필을 예명으로 썼다는,&nbsp;은근슬쩍 장난끼가 묻어 나온 작명법이다. 그런데 장난끼 그 자체일 것 같은 우루후루즈 중 가장 겉도는 이가 바로 그였다. 얼굴만 봐도 알겠지만....소설 표지에 나온&nbsp;그 곳에서 찍은 존 B. 예상대로 오사카의 요도가와 제방이었다. &lt;에에넨&gt;의 뮤직 비디오도 그 곳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는데 한번 찾아봐야겠다.그나마 머리를 길러서 표정을 좀 가리고 있는데 샌님 스타일에 뮤직 비디오에서도 어색한 연기는 컨셉이 아니라 원래 그런 모양이다. 토타스는 이 책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는데 전혀 모르는 나도 읽고 눈물이 날 지경이니&nbsp;책의 주인공인 자기들은 오죽했을까?&nbsp;책 속에는 토타스는 주요 전기 때마다&nbsp;펑펑 우는 울보로 나오는데 토타스 본인의 책에도 연애하면서 펑펑 우는 얘기가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는 원래 울보인 모양이다.&nbsp;&nbsp;일본&nbsp;록 뮤지션의 이야기를&nbsp;책으로 읽는 것은 처음이라서 이들의&nbsp;지나온 이야기가 다른 뮤지션들과 어느 정도 공통점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덕택에 인디 록계를 비롯해 메이저 음악계의 지난 20년을 두루두루 훑어볼 수 있었다. 존 B의 경우는 20살이 될 때까지 음악을 해 본 적이 없는 이였다. 베이스가 비록 '만만한' 악기라고는 하나&nbsp;현재의 위치 정도에 도달한&nbsp;뮤지션치고 그의 경력은 너무나 특이해서 읽으면서 계속 마음이 아팠다. 1967년생인 그는 토타스보다는 한살 어리고, 기타리스트인 우루후루 게이스케보다 두 살 어리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존대어로 대화를 할 정도라고 한다. 오사카의 '괴물'들이 모여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lt;칸테 그란데&gt; 카페에서 일을 하면서&nbsp;열아홉 그의 인생은 완전히 새로운 길로 들어 서게 되었다.&nbsp;이들 세 사람은 이 카페의 아르바이트를 통해 알게 된 사이였는데 오로지 그의 형이 베이스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게이스케는 그에게 "밴드에서&nbsp;베이스 한번 쳐볼래?"라고 말을 걸었고, 갓 입학한 전문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않던 '무기력'하고 '왕소심' 했던 청년 존 B는 아무 생각 없이 "하겠습니다"라고 답하게 된다. 인생이란 그렇게 아무 생각 없는 대답 때문에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음악에 대한 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상태에서 어영부영 합류한 '정체불명'의 밴드에서 결국 그는 인생의&nbsp;최고 정점에 올랐다가 스스로 선택해서 그만 둬 버리는데 그 모든 것의 배경에는&nbsp;첫 만남부터 지각한 장발의 카리스마 토타스 마츠모토가 있었다.&nbsp;A가 뭔지, C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베이스를 잡고 이렇게 오래 버텨낸 존 B의 경우는 참으로 독특한 케이스라 하겠다. 베이스와 파트너가 되는 드러머가 그의 '후진 실력'을 견딜 수 없어 자그마치 세명씩이나 자기 성질 못 이기고 그만 둘 정도였으니 말이다. 강한 게 오래 가는 게 아니라&nbsp;역시 오래 가는 게 강한 모양이다.존 B의 경력도 특이하지만 나를 진짜로 놀래킨 것은&nbsp;바로 토타스의 노래 경력.&nbsp;타고 난 걸출한 목소리와 가창력에다 어릴 때부터 마이크를 잡으면 결코 놓지 않았을 것이라고&nbsp;생각했는데 잡지에 실린 인터뷰에서도 중학교&nbsp;때 밴드 내에서 노래할 사람이 없어서 잠시 불렀던 것 외에는 고등학교 때는 노래를 한 적이&nbsp;없었다고 한다.&nbsp;어디까지나 기타리스트를 할&nbsp;생각이었기 때문에 노래는 하지 않았고,&nbsp;이 밴드에서도 기타 칠 목적으로 왔건만 인디 밴드에서 제법 이름을 알린 게이스케가 이미 존재하고 있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노래를 하게 되었다는 것. ^^ 게이스케도 그의 노래 실력을 알고 시킨 것이 아니지만 자기보단 낫겠다 싶었고 기타 주도권은 자기가 잡아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그리 된 것이라고 한다. 그 때 안 시켰다면 저 타고 난 '영혼을 흔드는 목소리'는 영원히 못 들어볼 뻔 했다. 자기가 얼마나 노래를 잘 하는지,&nbsp;그 목소리로 얼마나 많은 사람 가슴을 흔들어 놓는지 몰랐다니&nbsp;그게 아마추어의 운명인가 보다.&nbsp;선배의 송별회가 열린 가라오케에서 노래하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게이스케는 그가 이전에 하던 밴드를 완전히 해체할&nbsp;마음을&nbsp;먹었다고 한다.그 당시의 토타스의 '꼬락서니'는 본인의 설명과 이 책 속의 묘사, 그리고 몇장 없는 사진 등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한마디로 가관이었던 것 같다. 80년대 말에 70년대 풍의 장발에 판탈롱 같은 히피풍 복장을 하고 복식 전문학교에 다녔다니 분명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그래도 자신은 인기가 많았다며 자기 책에서는 잘난 척(!)을 하고 있고, 부인도 거기서 만난 인연이니&nbsp;아무리 모양새가 그래도&nbsp;역시 '사나이다움'은 어딜 가나 통하는 모양이다. 교토에서 가진 첫 라이브에서의 토타스의 복장은 장발에 허연 분칠, 뿔달린 미치코 런던 후드에 보라색 쫄타이즈에 트럼프 무늬가 들어간 반바지(라기보다 복싱선수 팬츠 수준 아니었을까?)라는 모습인데&nbsp;이런 걸 일일히 기록해 놓은 것을 보면 확실히&nbsp;일본인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꼼꼼한 기질의 존 B가 '돈 없어도, 빽 없어도 울랄라 신나기만 해!'라는 품성의 이 세 사람들 사이에서 얼마나 겉돌았는지&nbsp;인상만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다.&nbsp;음악을 아예 모르는 채 묻어 가듯이 데뷔하고 어느새 '성공까지' 해 버린 우루후루즈에서 존 B는&nbsp;내내 고민했던 것 같다. 첫 앨범 작업 때는 걸핏하면 화장실 가서 울어 버렸다는데 그러고도 그만 두지 않았던&nbsp;것은 그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선택한 일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나는 그 부분에서&nbsp;제일 찔끔했었다.&nbsp;그가 그렇게&nbsp;스튜디오 화장실에서 찔끔거리고 울던 그 시절, 나는 기고만장해 하면서 뭐든지 쉽게 쉽게 때려치우지 않았던가?&nbsp;그런 고민의&nbsp;고비마다 정면으로 부딪히고 통과해 나왔더라면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어쩌면 음악계에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그러나 '굼뜬' 베이시스트 존 B는&nbsp;음악 작업을 계속하면 할수록 천재적 기질이 드러나는 토타스 마츠모토라는&nbsp;'압도적' 존재를 견뎌낼 수 없게 된다. 원래부터 뮤지션이 되고 싶다거나 히트곡을 내고 스타가 되겠다거나 하는 생각이 전혀 없었던 그로서는 능력도 별로 없는데 어느 순간 편승한 듯이 유명한 스타가 되어 버린 자신이 너무 싫었던 모양이다. 여기에다 음악적인 면에서건, 엔터테이너적인 면에서건 이미 그 '천재성'이 활짝 만개해 버린 토타스는 자연스레 밴드의 중심이 되어 버렸고,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존 B가 그에게 자꾸 지적을 당하는 것은 자연스런&nbsp;결과였을 것이다. 존 B는 결국 우울증 치료를 받게 되고, 음반 작업에서 빠지는 일이 잦아지면서 공식적으로 탈퇴를 선언해 버렸다. 1999년부터 2003년 동안 그는 음악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기타도 팔고, 도쿄를 벗어나 이사를 가 버린다. 이사 간 동네가 하필이면 지인이 사는 치가사키라니!!! 지금도 그 곳에서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원래부터 친구 관계가 아니었던 다른 멤버들 중에서도&nbsp;토타스와는 단 한번도 연락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 당시는 자기가 토타스에게서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했지만&nbsp;나중에 돌이켜 보니 오히려 토타스가&nbsp;자신보다 더 상처를&nbsp;입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하긴 겉으로 씩씩해 보이는 사람의 상처는 훨씬 더 깊고, 자신이 직접적으로 입히지도 않은 상처에 대해&nbsp;껴안아 하는 부담감이 항상 응어리져 있을 수밖에 없다. &nbsp;&nbsp;4년간&nbsp;부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일감으로 살아 가다 아장아장 걷고 있는&nbsp;둘째 딸의 모습을 보고 어느날 토타스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완전히 손 떼고 있던 음악을 다시 하고 말고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고 오로지 그와 얘기를 하고 싶었다는데 그와의 대화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다시 복귀하게 된다.&nbsp;그의 복귀를 위로하고 축하하기 위해 토타스가 만든 곡이 바로 내가 그들에게 '꽂히는' 이유가 된 곡, &lt;에에넨&gt;. 말하자면 내게는 그들을 향한 첫사랑 같은 곡이다. 일본어를 잘 모르던 시절, 언어와 상관없이 그 언어의&nbsp;리듬과 스트레이트한 초기 록큰롤 스타일에&nbsp;감탄하면서 듣는 그 순간&nbsp;확 반해 버렸었다. 가사를 다루는 토타스의 천재성을 그때는 알 턱이 없었다. 설사 일본어를 안다고 해도 오사카 사투리로 점철된 이 노래의 번역조차 불가능했으니까...&nbsp;&lt;에에넨&gt; (오사카 사투리로 '괜찮아' '문제 없어' '됐어!' 등 다양하게 번역될&nbsp;수 있다. 굳이 경상도 사투리로 하자면 '마, 개안타' 정도일까나?)암말 안해도&nbsp;개안타&nbsp;암짓 안해도 개안타웃어&nbsp;넘기면&nbsp;개안타맘대로 해도 개안타느끼기만 해도 개안타기분 좋으면&nbsp;된다 아이가그러니까 개안타그러니까&nbsp;개안타카이후회해도&nbsp;개안타 또 시작하면&nbsp;문제없다실패해도&nbsp;개안타 한번 더&nbsp;해 보면&nbsp;개안타앞을 바라보면&nbsp;개안타 가슴 쭉 펴면&nbsp;개안타 그러니까 개안타그러니까&nbsp;개안타카이나는&nbsp;니가 개안타&nbsp;좋아해 주면&nbsp;된다 아이가&nbsp;같은 꿈을 꾼다면&nbsp;마 개안타그렇게 멋진&nbsp;둘이&nbsp;좋다 아이가걱정 안 해도&nbsp;개안타 내를&nbsp;보면 개안타 그러니까 개안타그것만이면 됐다아이디어 따위&nbsp;개안타 별로 없으면 뭐 어떻노&nbsp;폼만 잡아도&nbsp;개안타발돋움해도&nbsp;개안타 벌컥 화내도&nbsp;개안타 좋게 끝난다면&nbsp;개안타그러니까 개안타그러니까&nbsp;개안타카이버티다&nbsp;냅다 달리고&nbsp;구르다 자빠져 돌다 가끔은 두근두근하는&nbsp; 그런 자신이 좋다면&nbsp;개안타그런 맨날이&nbsp;좋다면&nbsp;개안타 한심해도&nbsp;개안타 소리쳐 봐도&nbsp;개안타 씁쓸한 눈물도&nbsp;개안타&nbsp;또로록 떨어져도 개안타&nbsp;좀 쉬어 봐도&nbsp;개안타&nbsp;갑자기 웃어봐도&nbsp;개안타 그러니까 개안타그러니까&nbsp;개안타카이암것도&nbsp;없어도 개안타 믿고 있으면&nbsp;문제없다의미가 없어도 개안타&nbsp; 뭔가를&nbsp;느낀다면 개안타&nbsp;&nbsp;그 밖에&nbsp;뭐가 필요하겠노 그 밖에&nbsp;뭐가 필요하겠냐고 그러니까 개안타그러니까&nbsp;개안타카이 에에넨!!!!이들이 병아리 밴드로 라이브 활동을 시작하던 무렵, 나는 직장 초년병이었고, 그들이 데뷔 앨범을 내고 도쿄로 이사왔을 때는&nbsp;나는&nbsp;여기저기&nbsp;딴따라계에서&nbsp;알만한 얼굴들과 제법 교분이 생겨가던 무렵이었다.&nbsp;&nbsp;. 그 일을 만일 내가&nbsp;일본에서&nbsp;했었더라면 분명 나는 이들과 조우하고 말았을 것이다. 어쩌면 전담 인터뷰어가 되어서&nbsp;그들의 음악적 성장과 변화를 계속 지켜&nbsp;봤을 것이다.&nbsp;한 가지 재주밖에&nbsp;없는&nbsp;&lt;One trick pony&gt;가 되는 것도&nbsp;시간이 지나고 보면 썩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우루후루즈 이야기는 아무래도 시리즈로 해야겠다. 그들을 통한 지난 20년 동안의 일본 록계도 자연스럽게 흐름이 잡힐 것 같다.....--></td></tr></table>]]></description>
					<pubDate>Fri, 23 Oct 2009 23:33:12 +0900</pubDate>
					<category><![CDATA[日本,도데쇼?]]></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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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60;도쿄&#62; 공항 도시락]]></title>
					<link>http://blog.dreamwiz.com/abalon33/11677086</link>
					<author><![CDATA[nogong]]></author>
					<description><![CDATA[<table><tr><td><img src='http://blog.dreamwiz.com/thumbnail/a/b/abalon33/8/thbn_abalon33_20091022133351_11677086_1.jpg'  width=160 border=0 align='left'>기차역&nbsp;매점에서 파는 도시락을&nbsp;에키벤(驛弁)이라고 하고, 이는 일본인들에게 엄청 중요한 도락 중의 하나로 자리잡은지 오래 됐다. 세계 최고의 철도망을 자랑하는 일본인들이니만큼 남자들은 웬만하면 절반쯤은 철도 매니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한데 그런 인구들이 기차에서 벤또까지 까 먹으니 그 시장 또한&nbsp;외식 산업에서 결코 무시 못할 비중일 것이다. 최근 몇년 동안은 이런 에키벤을 흉내내 공항에서 파는 도시락 시장도 커지는 추세라고 한다. 이른바 소라벤(空弁). 번역하자면 공항 도시락 정도가 아닐까? 하네다처럼 국내선이 주로 뜨는 공항에서는 훨씬 더 규모가 큰 소라벤 가게가 있다지만 하네다에서 국내선을 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스쳐 지나 가기만 해 봤다. 나리타는 국제선인데다 기내식이 나오고, 때로는 비행기 타기 전 공항 내 식당에서 간단히 먹고 가기도 하는 만큼 소라벤을 살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하필 눈에 뜨이는 바람에 한번 사 봤다. 도... <a href='http://blog.dreamwiz.com/abalon33/11700169 '>more...</a><!--기차역&nbsp;매점에서 파는 도시락을&nbsp;에키벤(驛弁)이라고 하고, 이는 일본인들에게 엄청 중요한 도락 중의 하나로 자리잡은지 오래 됐다. 세계 최고의 철도망을 자랑하는 일본인들이니만큼 남자들은 웬만하면 절반쯤은 철도 매니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한데 그런 인구들이 기차에서 벤또까지 까 먹으니 그 시장 또한&nbsp;외식 산업에서 결코 무시 못할 비중일 것이다. 최근 몇년 동안은 이런 에키벤을 흉내내 공항에서 파는 도시락 시장도 커지는 추세라고 한다. 이른바 소라벤(空弁). 번역하자면 공항 도시락 정도가 아닐까? 하네다처럼 국내선이 주로 뜨는 공항에서는 훨씬 더 규모가 큰 소라벤 가게가 있다지만 하네다에서 국내선을 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스쳐 지나 가기만 해 봤다. 나리타는 국제선인데다 기내식이 나오고, 때로는 비행기 타기 전 공항 내 식당에서 간단히 먹고 가기도 하는 만큼 소라벤을 살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하필 눈에 뜨이는 바람에 한번 사 봤다. 도시락은 산 그 당일 먹어줘야 하지만 그럴 배가 없어서 다음날로 넘어간 벤또들. 보기엔 제일 그럴싸 해 보이는 오른쪽 위 네모난 도시락은 제일 비싼 주제에 제일 맛이 없었다. 고기가 들어가면 비싸 지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지만&nbsp;고기 누린내를 죽이고 요리하는&nbsp;재주가 현저히 떨어져서인지&nbsp;지금껏&nbsp;성공했다 싶은&nbsp;고기 중심 도시락은&nbsp;없었다.&nbsp;고기를 별로 즐기지&nbsp;않는데다&nbsp;도시락처럼 차게 먹어서&nbsp;고기가 맛있을 턱이 없다.&nbsp;&nbsp;&nbsp;&nbsp;&nbsp;값은 800엔이었지만 제일 맛있었던 도시락. 가리비밥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평범한 마쿠노우치. 그래도 도시락은 역시 마쿠노우치가 제일 무난하다.--></td></tr></table>]]></description>
					<pubDate>Thu, 22 Oct 2009 13:10:5 +0900</pubDate>
					<category><![CDATA[외국 음식]]></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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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60;도쿄&#62; 우에노 회석요리점 벤케이 ]]></title>
					<link>http://blog.dreamwiz.com/abalon33/11676483</link>
					<author><![CDATA[nogong]]></author>
					<description><![CDATA[<table><tr><td><img src='http://blog.dreamwiz.com/thumbnail/a/b/abalon33/32/thbn_abalon33_20091022124448_11676483_1.jpg'  width=160 border=0 align='left'>나리타 공항에서 비행기를 탈 때면 우에노를 필히 거쳐 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여행의 마지막은 대부분 아메요코 시장에서 어슬렁거리게 된다.일본에서 살 때도&nbsp;쇼핑은&nbsp;우에노에서 많이 했기 때문에 이 동네에만 오면 어쨌든 즐겁다.온갖 식당이 다 섞여 있는 이 동네에서 그래도 제법 비싼 곳인 벤케이.내 돈 내고는 아까와서 당연히 못 오고, 스폰서(!)가 있을 때 졸레졸레 따라간다. 딱히 맛있어서라기보다는 아메요코 한 가운데 있는 곳이라 발견하기가 쉽다는 이유 때문인지만...가게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장어구이가 전문이다. 그런데 우에노 근처에는 장어구이 로 유명한 명가가 제법 많은지라 이 집 정도로는 명함도 못 내밀 것이다. 비싸기만 하고 한 그릇만 덜렁 나오는 장어구이는 언제나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이 집에 오면 주로 이런 회석 요리를 시키게 된다. 이건 쇼카도 벤또라는 이름이 붙은 요리. 2단짜리로 등장하지만 테이블에 펼쳐 놓으면 이렇다. 쇼카도 벤또는 ... <a href='http://blog.dreamwiz.com/abalon33/11677086 '>more...</a><!--나리타 공항에서 비행기를 탈 때면 우에노를 필히 거쳐 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여행의 마지막은 대부분 아메요코 시장에서 어슬렁거리게 된다.일본에서 살 때도&nbsp;쇼핑은&nbsp;우에노에서 많이 했기 때문에 이 동네에만 오면 어쨌든 즐겁다.온갖 식당이 다 섞여 있는 이 동네에서 그래도 제법 비싼 곳인 벤케이.내 돈 내고는 아까와서 당연히 못 오고, 스폰서(!)가 있을 때 졸레졸레 따라간다. 딱히 맛있어서라기보다는 아메요코 한 가운데 있는 곳이라 발견하기가 쉽다는 이유 때문인지만...가게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장어구이가 전문이다. 그런데 우에노 근처에는 장어구이 로 유명한 명가가 제법 많은지라 이 집 정도로는 명함도 못 내밀 것이다. 비싸기만 하고 한 그릇만 덜렁 나오는 장어구이는 언제나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이 집에 오면 주로 이런 회석 요리를 시키게 된다. 이건 쇼카도 벤또라는 이름이 붙은 요리. 2단짜리로 등장하지만 테이블에 펼쳐 놓으면 이렇다. 쇼카도 벤또는 원래는 벼루에다 내놓은 고급 음식이라고 하지만 도대체 쇼카도란 이름만 붙으면 내용물에 관계없이 비싸지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nbsp;&nbsp;요새는 보기에 너무 예뻐서 젓가락을 못 대는 경지는 벗어났다.^^어쨌든 그렇게 예쁘게 내는 집은 결국 비싼 집이라는&nbsp;얘기이므로 그 정도로&nbsp;비싼데 굳이 갈 이유가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nbsp;서민들이 가는 곳은 이러나저러나 투박한 모양새에&nbsp;양으로 승부하는 곳이니까...&nbsp;&nbsp;얼마 전 한국의 어느 일식집에서 참 맛없는 밥을 먹고 다시 한번 놀랐다. 내가 집에서 묵은 쌀로 밥을 지어도 그것보단 낫겠더구만.... 압력밥솥에 밥을 하면 밥맛이 없기도 어려울 텐데 그렇게 예전 정부미 같은 밥 짓는&nbsp;것도 일종의 실력일까나? ^^&nbsp;&nbsp;이건 벤케이와 관련이 있다는 어느 지역의 이름을 딴 회석 코스. &nbsp;초밥집 등에서&nbsp;비닐에다 맛들인 것 같은 큼직하고 탱글탱글한 이쿠라만 먹다가 뭔지 공기가 빠진 듯한 이 집 이쿠라를 먹으니 그 맛이 또 색달랐다. 아무래도 이게 더 오리지날이거나 일본에서 잡은 연어알이겠지? &nbsp;&nbsp;&nbsp;깨두부.&nbsp;들인 정성과 가격을 생각하면&nbsp;맛있게 느껴져야 하건만 개인적으로 두부는 그냥 순수한 두부인 게 좋다. 깨두부, 땅콩두부 등 변종 두부는 별로....&nbsp;&nbsp;&nbsp;공항 가는 게이세이 스카이라이너 안. 콜라 이름이 넥스이므로 기차도 나리타 익스프레스, 줄여서 넥스를 타면 좋았겠건만....올해 일본에서는 저 콜라 모델 중 한 사람이 바로 토타스 마츠모토였기 때문에 취향에 안 맞아도 열심히 마셔 주고 있다. ^^&nbsp;&nbsp;모델로 썼으면 이런 캔 용기에도 모델 얼굴 하나쯤은 넣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nbsp;&nbsp;워낙 초상권에 엄격한 나라라서 계약시 그런 조항이 빠졌을 것이라고 짐작은 되지만 20대 아이돌도 아닌 40대 중년 록 뮤지션을 썼다면 회사 측에서도 뭔가 노리는 게 있었을 거 아닌가? 일본인들 중에서도 잘 알아 보지도 못하는 '나이 들고 못 생긴' 가수 썼다는 반응이 있긴 하더라만....악플이야 세계 공통이라 무시하면 되지만 '못 생겼다'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노래도 못한다'는 악플에는 당사자도 아닌 내가 화가 날 지경이었다.&nbsp;이번 주말이면 마침내 솔로 공연의 종지부를 찍는데 마치고 난 이후 소감을 얼마나 길게&nbsp;기술할지 기대된다. 비록 그의 공연은 못 보더라도, 그리고&nbsp;음악적으로 전혀 연관은 없지만&nbsp;'직업 안정법' 위반 운운&nbsp;같은 개소리를&nbsp;들어가며 정부로부터 명백한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다음 기획 소속의 가수 정태춘, 박은옥 공연을 보기 위해 예약을 시도 해 봤다.&nbsp;그런데 애진작에 다 팔렸단다. 다행이다 싶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그런 것밖에&nbsp;없는데 표가 매진되었다니.... 강산애건, 김C건, 윤도현이건, 김제동이건&nbsp;'직업 안정 위반'을 저지른 소속사&nbsp;연예인들이 나오는 곳이라면&nbsp;할인 받지&nbsp;않고, 제 가격 내고 가 줄 예정이다.&nbsp;&nbsp;&nbsp;&nbsp;&nbsp;&nbsp;나리타 공항 KAL 라운지.&nbsp;한일간은 단거리지만 미국&nbsp;갈 때도 스탑오버하는 곳 치고는 너무 규모가 작다. 후쿠오카 라운지보다는 당연히 훨씬 국제적이지만....&nbsp;--></td></tr></table>]]></description>
					<pubDate>Thu, 22 Oct 2009 12:21:9 +0900</pubDate>
					<category><![CDATA[외국 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60;도쿄&#62; 신주쿠의 숨은 술집들 ]]></title>
					<link>http://blog.dreamwiz.com/abalon33/11671179</link>
					<author><![CDATA[nogong]]></author>
					<description><![CDATA[<table><tr><td><img src='http://blog.dreamwiz.com/thumbnail/a/b/abalon33/32/thbn_abalon33_20091022003037_11671179_1.jpg'  height=120 border=0 align='left'>제목은 '숨은 술집들'이라고 했지만 내 눈에 안 띄었다 뿐, 장사하는 집들이 숨는 것을&nbsp;목표로 삼을 리는 없다. ^^이세탄 백화점 옆구리 건너편, 신주쿠&nbsp;교엔 가는 길에 있는 스에히로초는 지난 여름에도 한번 들렀던 적이 있다. 은근슬쩍 식당 개체수가 많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그 길은 사실&nbsp;작년 일본어 학교 다닐 때 거의 매일 지나다시피 하던 길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침에는 문 닫고&nbsp;눈 새초롬이 내려 깐듯 조용한 그 동네 분위기가&nbsp;밤만 되면 그렇게 바뀐다는 것은 이번 여름에야&nbsp;알았다.&nbsp;길 건너 가부키초가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인간들로 북적대는 반면,&nbsp;같은 신주쿠지만&nbsp;이 동네는 어쩐지 아는 사람만 온다는 느낌.&nbsp;&nbsp;구석구석 록 음악을 들려주는 카페도 꽤 산재해 있는 듯했다. 라이브 하우스보다는 사실 이런 곳이 내게 더 익숙한 곳인데.....사진 속의 저 기타리스트는 누구인가? 요절해 버린 랜... <a href='http://blog.dreamwiz.com/abalon33/11676483 '>more...</a><!--제목은 '숨은 술집들'이라고 했지만 내 눈에 안 띄었다 뿐, 장사하는 집들이 숨는 것을&nbsp;목표로 삼을 리는 없다. ^^이세탄 백화점 옆구리 건너편, 신주쿠&nbsp;교엔 가는 길에 있는 스에히로초는 지난 여름에도 한번 들렀던 적이 있다. 은근슬쩍 식당 개체수가 많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그 길은 사실&nbsp;작년 일본어 학교 다닐 때 거의 매일 지나다시피 하던 길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침에는 문 닫고&nbsp;눈 새초롬이 내려 깐듯 조용한 그 동네 분위기가&nbsp;밤만 되면 그렇게 바뀐다는 것은 이번 여름에야&nbsp;알았다.&nbsp;길 건너 가부키초가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인간들로 북적대는 반면,&nbsp;같은 신주쿠지만&nbsp;이 동네는 어쩐지 아는 사람만 온다는 느낌.&nbsp;&nbsp;구석구석 록 음악을 들려주는 카페도 꽤 산재해 있는 듯했다. 라이브 하우스보다는 사실 이런 곳이 내게 더 익숙한 곳인데.....사진 속의 저 기타리스트는 누구인가? 요절해 버린 랜디 로즈였나? 이젠 사진만 봐서는 누가 누군지 전혀 모르겠다. 물론 그 외의 것을 들이대도 모른다는 레벨은 비슷할 것 같다...ㅠ.ㅠ&nbsp;건물의 정체를 모르겠다. 겉모습만 봐서는 딱 스나쿠나 쿠라부 같은데 이런 록 카페가 주인 자리를 꿰차고 있으니...&nbsp;Lovers&nbsp;록 카페는 또 무슨 장소인지? 일본에서 나와 비슷한 취향의 록을 듣는 이들은 아마 50대나 60대일 텐데 그런 분들 취향에 맞는 장소이려나?&nbsp;한국에서는&nbsp;또래 중에서 내 음악적 취향과 비슷한 이들이 별로 없어 일본에서는 언젠가 만나게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토타스 마츠모토는 분명 그런 이들 중의 하나란&nbsp;것을 알겠지만 만날 기회가 있을런지... 설사 만난다고 한들 음악적 취향이 비슷한 또래들의 대화가 아니라 스타와 팬을 자처하는 '평민', 그것도 일본어를 더듬더듬하는 이 수준으로 무슨 대단한&nbsp;담화가&nbsp;가능할지.... 이런 록 카페 운영자들 중 내 또래가 있다면&nbsp;분명 단골이 될 것 같다. 스에히로초는 아사쿠사, 우에노 등지와 더불어 라쿠고 공연장이 있는 곳. 공연 시간이 되면 길게 사람들이 줄을 선다. 각 대학에도 라쿠고 동호회가 있을 정도로&nbsp;젊은 층에게도 인기가 좋은데&nbsp;의미없는 말장난만 하는 현대판 코미디보다는 라쿠고를 알아 듣고 싶다. 라쿠코가들은 연기력까지 좋아서 말은 못 알아 들어도 그들 코 밑에서&nbsp;얼굴 표정을 보고 있으면&nbsp;일단 연기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뭐든지 경지에 이른 사람들을 바라 보노라면 그저 경이롭기만 하다.&nbsp;&nbsp;그런 공연장 옆의 와인바, 마루고 그란데.&nbsp;&nbsp;와인 리스트 중&nbsp;14번에 불가리아 와인이 있었다. 불가리아 와인은 한번도 마셔본 적이 없어 주문해 봤다. &nbsp;&nbsp;지하에 내려가기 싫어 앉았더니 하필 와인 셀러 앞. 이게 불가리아 와인. 약간 단맛이 강했다. 거슬릴 정도는 당연히 아니고, 충분히 마실 만한 맛. 그래서 중간에 이태리 와인으로 갈아 탔다.&nbsp;지중해식 올리브.&nbsp;&nbsp; &nbsp;치즈 모둠. 3종, 5종 등으로 각각 취향에&nbsp;따라&nbsp;요청할 수 있다.&nbsp; &nbsp;이태리식 요리 메뉴도 다양하다. 가격도 적당하고 음식도 맛있고 분위기도 좋다. 퇴근하면서 혼자 온 듯한 여성이 가볍게&nbsp;한잔 훌쩍 마시고 떠나는&nbsp;모습을 보니 부러웠다. 나는 만약 혼자 마시게 되면 그렇게&nbsp;한잔만 마시기 위해서는 절대 이런 곳에 오질 않는다.&nbsp;^^집이든 이런 술집이든 술이란 간에 기별이 올 정도로는 마셔줘야 한다는 게 내 철칙이라서... ~~&nbsp;&nbsp; &nbsp;&nbsp;아침과 낮에는 그렇게 고즈넉하더니 밤이 되면 이런 거리로 탈바꿈할 줄이야.... 가부키초는 워낙 관광지라서&nbsp;혼자 돌아다녀도 전혀 혼자라는 느낌이 안 들지만&nbsp;이 동네는&nbsp;누군가와 함께가 아니라면 꽤나 겉도는 기분일 것 같다.&nbsp;다음번에는&nbsp;플러스 원과 함께 이 동네의 숨은&nbsp;록 카페를 필히 순례하고 싶다. 게이나 트랜스젠더들을 중심으로 한 바도 꽤&nbsp;많다고 하는데 게이 전문 상점이 있는 것을 보니 대충 그럴 것 같았다.&nbsp;&nbsp;외관이 특이한 건물. 아마 장사는 접은 집 같다. &nbsp;계속해서 차수 변경에 주종도 변경했다. 호텔 근처의 평범해 보이는 맥주 전문 바로 갔다. 이날 일본과 스코틀랜드의 축구 시합이 있어 TV가 있는 맥주집들은 모두 빈자리가 없었다. 다행히 이 집은 그나마 여유가 있었다. &nbsp;&nbsp;그런데 자리잡자 마자 체크 무늬 스커트를 두른 스코틀랜드들이 떼거리로 들이닥쳤다.그 날 아침부터 그런 복장으로 신주쿠 일대를 휩쓸더라니....도쿄에 그렇게 스코틀랜드인들이 많은지 처음으로 알았다. 진짜 스코틀랜드에서 온 사람들인지, 그냥 혈통이 그쪽이라고 자기 정체성을 규정지은 사람들이 합류를 한 건지는 모르겠다만 그날 하루 보았던 체크 무늬 스커트 남정네들이 약 백여명은 됐을 것이다.&nbsp;&nbsp;&nbsp;시키다 보니 안주 메뉴가 와인바와 동일하다. 맛은 물론 와인바 쪽이 훨씬 낫지만....우리나라도 맥주집 같은 곳은 무조건 양 많이 해서 질리게 할 게 아니라 그런 메뉴는 그렇게 놔 두고, 주먹만큼 내 놓는 미니 메뉴도 함께 구비하면 서로가 이기는 게임일 것 같은데....&nbsp;이 날도 나는 가라오케에 가서 목이 터져라 열창했다. 어쩌면 나는 조만간에 허스키 보이스가 될지도 모르겠다. 노래할 때는 좋은데 일상 생활 목소리가 탁음이 되면 이건 좀 곤란하다....토타스는 인터뷰 목소리도 노래 목소리와 똑같다. 한마디로 걸걸한 막걸리 목소리....&nbsp;타고난 목소리가 그런 이를 흉내 내려다 주화입마에 빠지게 생겼다. 역시 생긴대로 살아야지...--></td></tr></table>]]></description>
					<pubDate>Thu, 22 Oct 2009 00:06:54 +0900</pubDate>
					<category><![CDATA[외국 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60;도쿄&#62; 야키니쿠 체인점 안라쿠테이]]></title>
					<link>http://blog.dreamwiz.com/abalon33/11670294</link>
					<author><![CDATA[nogong]]></author>
					<description><![CDATA[<table><tr><td><img src='http://blog.dreamwiz.com/thumbnail/a/b/abalon33/32/thbn_abalon33_20091021225630_11670294_1.jpg'  width=160 border=0 align='left'>라이브 하우스에서 실족(!)할 만큼 열정적인 시간을 보내고 난 다음 다시 숙소가 있는 신주쿠로 돌아 왔다.숙소 바로 옆에 즐비한 무수한 고기집들 중 체인점&nbsp;야키니쿠인 안라쿠테이를 골라 들어갔다. 이 집은 보통 갈비는 없고, 상(上) 갈비와 특상(特上) 갈비밖에 없다. 이건 나카오치 갈빗살.곱창.없으면 섭섭할 김치 모둠. 모두 다 제각각 가격.싸구려 체인점들도 숯불 풍로를 쓰는데 그런 집들보다 약간 더 비싼 이 집은 가스 화로를 사용한다. 1인당 대여섯점이 고작이지만&nbsp;고기질이 기본 이상은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정체 모를 쇠고기를 불안감에 떨며 먹는 기분과는 다르다.&nbsp;일본 드라마 사상 최대의 히트작이었다는 &lt;히어로&gt;의 한 에피소드 중 이&nbsp;체인점에서 무단 취식을 하다가&nbsp;결국 범인 잡는데 일조하는 한 남자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lt;히어로&gt;와 거의 차이 없는 캐릭터로 기무라 타쿠야가 등장한 올해의 &lt;미스터 브레인&gt;에... <a href='http://blog.dreamwiz.com/abalon33/11671179 '>more...</a><!--라이브 하우스에서 실족(!)할 만큼 열정적인 시간을 보내고 난 다음 다시 숙소가 있는 신주쿠로 돌아 왔다.숙소 바로 옆에 즐비한 무수한 고기집들 중 체인점&nbsp;야키니쿠인 안라쿠테이를 골라 들어갔다. 이 집은 보통 갈비는 없고, 상(上) 갈비와 특상(特上) 갈비밖에 없다. 이건 나카오치 갈빗살.곱창.없으면 섭섭할 김치 모둠. 모두 다 제각각 가격.싸구려 체인점들도 숯불 풍로를 쓰는데 그런 집들보다 약간 더 비싼 이 집은 가스 화로를 사용한다. 1인당 대여섯점이 고작이지만&nbsp;고기질이 기본 이상은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정체 모를 쇠고기를 불안감에 떨며 먹는 기분과는 다르다.&nbsp;일본 드라마 사상 최대의 히트작이었다는 &lt;히어로&gt;의 한 에피소드 중 이&nbsp;체인점에서 무단 취식을 하다가&nbsp;결국 범인 잡는데 일조하는 한 남자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lt;히어로&gt;와 거의 차이 없는 캐릭터로 기무라 타쿠야가 등장한 올해의 &lt;미스터 브레인&gt;에서는 주인공 기무타쿠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CSI 팀장(!)으로 등장한 큰 바위 얼굴 토타스 마츠모토와 형사반장 가가와&nbsp;데루유키만 보느라고 정신이&nbsp;없었다. ^^&nbsp;작년부터 신주쿠 서쪽의 풍경을 바꿔 버린 누에고치 빌딩, 모드 학원 건물. &nbsp;&nbsp;&nbsp;가는 날이 장날, 주말 신주쿠 마츠리를 한답시고 동네가 시끄러웠다. &nbsp;밀라노 극장 앞. 맞은편의 코마 극장은 마침내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데 여기도 언제 그런 운명을 밟을지 모르겠다. &nbsp;동네 마츠리에는 어딜 가나 이렇게 엔카 가수들이 주로 초청받는 모양이다. &nbsp;일본에서는 우리처럼 엔카 가수들이 주로 활동하는 '밤무대'라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이런 행사장을 뛰는 것이 더 일반적이라서 그럴까? 이즈츠 가즈유키 감독의 &lt;전국 노래자랑&gt;에는 이런 곳을 전전하는 3류 엔카 가수의 비애가 물씬물씬 묻어 나왔다. 그래도 신주쿠 상가 마츠리라면 시골 온천 마을 마츠리와는 차원이 다를 테지...&nbsp;사흘 연휴 기간이지만 젊은이의 거리 신주쿠 가부키초 제일 한가운데는 이렇게 어르신들만 잔뜩 몰려 들었다. &nbsp;밀라노 극장을 보면 요즘 일본에서 잘 나가는 영화들을 알 수 있다.&nbsp;&nbsp;스트리킹 사건 이후로&nbsp;복귀한 초난강이 미리 찍어 두었던 영화 &lt;발라드&gt;는 흥행도 잘 되고 있는 모양이다. &nbsp;&nbsp;&nbsp;--></td></tr></table>]]></description>
					<pubDate>Wed, 21 Oct 2009 22:42:16 +0900</pubDate>
					<category><![CDATA[외국 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사요나라, 가토씨...]]></title>
					<link>http://blog.dreamwiz.com/abalon33/11655267</link>
					<author><![CDATA[nogong]]></author>
					<description><![CDATA[<table><tr><td><img src='http://blog.dreamwiz.com/thumbnail/a/b/abalon33/32/thbn_abalon33_20091020215942_11655267_1.jpg'  height=120 border=0 align='left'>일요일 아침, 언제나처럼 펼쳐본&nbsp; 일본 뉴스란에는 익숙한 이름이 떴다.가토 가즈히코....그러나 기사의 내용은 '목 매달아 자살!'기사를 믿을 수 없어 내용을 아무리 훑어봐도 가루이자와의 호텔방에서 목 매달아 자살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재일동포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가장 큰 계기를 마련해 준 영화 &lt;박치기&gt;, 그 영화에서 계속 흘러나오던 &lt;임진강&gt;은 바로 이 가토가 몸 담고 있던 포크 그룹 포크 크루세다즈의 노래였다. 원래는 이북의 노래지만 60년대 세계가 변혁의 시기 한 가운데 있을 무렵,&nbsp;원곡에 흥미를 느낀 청년 가토가 편곡을&nbsp;해서 세상에 내놓았던 이 노래는 북은 북대로, 남은 남대로 시비를 걸었고, 이를 곤란하다고 생각한 일본 정부는 결국 이 노래 발매를 금지시켜 버렸다. 아마도 오랜 세월 동안 애호가들 사이에&nbsp;숨어서 돌아 다녔을 이 노래가 다시 한번 세상에 화려하게 재등장한 계기는 역시 영화 &lt;박치기&gt; 때문이... <a href='http://blog.dreamwiz.com/abalon33/11670294 '>more...</a><!--일요일 아침, 언제나처럼 펼쳐본&nbsp; 일본 뉴스란에는 익숙한 이름이 떴다.가토 가즈히코....그러나 기사의 내용은 '목 매달아 자살!'기사를 믿을 수 없어 내용을 아무리 훑어봐도 가루이자와의 호텔방에서 목 매달아 자살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재일동포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가장 큰 계기를 마련해 준 영화 &lt;박치기&gt;, 그 영화에서 계속 흘러나오던 &lt;임진강&gt;은 바로 이 가토가 몸 담고 있던 포크 그룹 포크 크루세다즈의 노래였다. 원래는 이북의 노래지만 60년대 세계가 변혁의 시기 한 가운데 있을 무렵,&nbsp;원곡에 흥미를 느낀 청년 가토가 편곡을&nbsp;해서 세상에 내놓았던 이 노래는 북은 북대로, 남은 남대로 시비를 걸었고, 이를 곤란하다고 생각한 일본 정부는 결국 이 노래 발매를 금지시켜 버렸다. 아마도 오랜 세월 동안 애호가들 사이에&nbsp;숨어서 돌아 다녔을 이 노래가 다시 한번 세상에 화려하게 재등장한 계기는 역시 영화 &lt;박치기&gt;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 사운드 트랙의 음악도 그가 전부 담당하고 있다.물론 나도 이 영화를 통해 이 노래를 처음 알게 되었고, 여러 가지 사연과 더불어 노래 자체의 매력 덕에 일본 노래방에 가면 빠지지 않고 부르는 노래 목록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북의 원곡보다는 포크 크루세다즈의&nbsp;노래를 훨씬 좋아하기도 한다. 그렇게 내겐 의미 깊은 이 노래를 불러준 그가&nbsp;나이&nbsp;예순둘에, 아직도&nbsp;'젊고', 할 일 많았을 그가 이렇게 허무하게 떠났다.&nbsp;만 나이&nbsp;예순둘,&nbsp;노무현 대통령도 딱 그랬었다....&nbsp;그들이 각기 짊어진 무게와&nbsp;봐 온 세상은 달랐을지 몰라도 아직 가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nbsp;그렇게&nbsp;총총히 떠나 버렸다.....&nbsp;&nbsp;&nbsp;대통령이 돌아 가셨던 그 날 내가 가장 먼저 떠올렸던 노래는 가토가 만들었던 &lt;슬퍼서 견딜 수 없다&gt;였다....&nbsp;&nbsp;&lt;박치기&gt; 속 포크 크루세다즈는 주인공 소년에게는 영웅이었다. 이&nbsp;넓은 우주 어디에도 부를 수 없는 노래는 없고, 부르지 못할&nbsp;노래는 없건만 그들의 노래는&nbsp;임진강 한가운데 주인없는 쪽배처럼&nbsp;오랜 세월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nbsp;건너가지&nbsp;못한&nbsp;채 멈춰 서 있었다. &nbsp;&nbsp;자살의 이유는 모른다.&nbsp;우울증도 있고, 예술가로서의 창작의 한계 등에 부딪혔다 등 짐작 가능한&nbsp;여러 추측이 있다. 창작자로서의 한계란, 도대체 무엇일까? 언제까지가 그 한계일까? 현역 은퇴를 하고 맘 편하게 살아가는&nbsp;이들이 있는가 하면, 히트곡을 내든 못 내든 끝까지 그 한계에 부딪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히트곡이 없어서 좌절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히트곡을 냈더라도 연속되지 않는 히트에 불안한 이들도 허다할 것이다. 그가 본 삶의 끝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과연 창작의 벽에 부딪힌 것이 진짜 결정타였을까? 혹은 어느날 갑자기 모든 게 징글징글해졌던 것일까?&nbsp;&nbsp;&nbsp;&nbsp;&nbsp;&nbsp;&nbsp;올해 무대화되기로 예정되었다던 &lt;박치기&gt;의 음악도 담당하기로 했었고, 그의 얼굴은 언제나 이렇게 온화했었다.&nbsp;개인사적으로는 여러번의 이별을 겪으며&nbsp;가족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뮤지션들에게는 '건강한 가족 관계'가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이런 개인 환경도 혹시 이번 죽음의 한 원인일지도 모른다.&nbsp;&nbsp;&nbsp;젊은 시절 가토의 모습. 나이 든 모습은 온화하고 젊은 시절은 눈이 맑다. &lt;임진강&gt;은 말할 것도 없지만 여타의 곡에서도 60년대 말이라는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를 담고 있던 '반골청년' 치고는 모습이 너무 차분해 오히려 의아스러울 정도.영국 뮤지션 도노반과 친분이 있어 일본에서는 도노반으로 불리기도 한다고 한다. 앨범 재킷 모습도 도노반과 비슷한 헤어 스타일에 분위기도 그렇다. 요즘 도노반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nbsp;젊어서 임진강을 부를 때는 아래 유튜브의 얼굴이었다. http://www.youtube.com/watch?gl=JP&amp;hl=ja&amp;v=M6I7byV5Zu8&amp;feature=related자료 화면을 찾지는 못했지만 다른 &lt;임진강&gt; 공연에서는 이 노래가 가진 역사에 대해 아주 심각하고 엄숙하게 설명하는 모습도 있다. 그의 사망 이후 긴급 편성한 프로그램에 등장한 그의 최근의 모습, 아코디언 연주자는 &lt;임진강&gt;을 프랑스어로도 불렀다. &nbsp;http://www.youtube.com/watch?gl=JP&amp;hl=ja&amp;v=P-IXpPv3UBM개인으로서의 가토는 잘 모르지만 그가 관여한 &lt;임진강&gt; 덕에&nbsp;내게는 지난 몇년 여러번 중요한&nbsp;전환점이 있었다.&nbsp;고맙다고 꼭 한번 얘기해 주고 싶은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그만&nbsp;떠나 보냈다. 올해는&nbsp;내게&nbsp;예상치도 못한 죽음들이&nbsp;츠나미처럼 전해졌다. 어떤 죽음보다 내 인생을 흔들어 버린 한 사람&nbsp;때문에 이제는 다른 죽음 앞에 오히려 담담해져 버렸지만&nbsp;가토씨의&nbsp;선택은 다시 한번 나를 울린다. 사요나라, 가토씨.....당신에게도 큰 의미가 있을 임진강 피안에서&nbsp;이제는 편히&nbsp;쉬십시오.--></td></tr></table>]]></description>
					<pubDate>Tue, 20 Oct 2009 21:45:27 +0900</pubDate>
					<category><![CDATA[日本,도데쇼?]]></category>
				</item>

				<item>
					<title><![CDATA[&#60;도쿄&#62;시모키타자와 라이브하우스, 야네우라  ]]></title>
					<link>http://blog.dreamwiz.com/abalon33/11562338</link>
					<author><![CDATA[nogong]]></author>
					<description><![CDATA[<table><tr><td><img src='http://blog.dreamwiz.com/thumbnail/a/b/abalon33/32/thbn_abalon33_20091013222939_11562338_1.jpg'  height=120 border=0 align='left'>이번 도쿄행은 어차피 너무나 즉석으로 결정한 것이다. 10월 25일, 26일의 토타스 마츠모토 도쿄&nbsp;공연을 못 볼 것이냐, 안 볼 것이냐, 또는 보고 싶으면서도 보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한 백만가지 이유에 대해 꾸준히 경청해 오던 우리집 사람이 날짜는 못 맞춰 주지만 일단 라이브 하우스라도 따라 가겠다는 결정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nbsp;시모기타의 이 집 저 집 돌아다녀봐도 아무래도 최고의 각인 효과가&nbsp;있는&nbsp;야네우라. &lt;묘조&gt; 뮤직 비디오에 나오고 우루후루즈가 도쿄로 이사온 이후, 라이브를 했던 집이라서 내게는&nbsp;역사 유적지에 다름 아니다.&nbsp;잘 나간다는 이&nbsp;동네의 다른&nbsp;집 다 제껴두고 결국 발걸음은 이 곳으로 향했다. 입장료 1,800엔, 드링크 600엔.&nbsp;&nbsp; &nbsp;이 날의 출연진들. 라이브 주제는 '셍큐 포 뮤직'(Thank you for music)뭔가 문법에 어긋나는 것 ... <a href='http://blog.dreamwiz.com/abalon33/11655267 '>more...</a><!--이번 도쿄행은 어차피 너무나 즉석으로 결정한 것이다. 10월 25일, 26일의 토타스 마츠모토 도쿄&nbsp;공연을 못 볼 것이냐, 안 볼 것이냐, 또는 보고 싶으면서도 보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한 백만가지 이유에 대해 꾸준히 경청해 오던 우리집 사람이 날짜는 못 맞춰 주지만 일단 라이브 하우스라도 따라 가겠다는 결정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nbsp;시모기타의 이 집 저 집 돌아다녀봐도 아무래도 최고의 각인 효과가&nbsp;있는&nbsp;야네우라. &lt;묘조&gt; 뮤직 비디오에 나오고 우루후루즈가 도쿄로 이사온 이후, 라이브를 했던 집이라서 내게는&nbsp;역사 유적지에 다름 아니다.&nbsp;잘 나간다는 이&nbsp;동네의 다른&nbsp;집 다 제껴두고 결국 발걸음은 이 곳으로 향했다. 입장료 1,800엔, 드링크 600엔.&nbsp;&nbsp; &nbsp;이 날의 출연진들. 라이브 주제는 '셍큐 포 뮤직'(Thank you for music)뭔가 문법에 어긋나는 것 같지만 즐기면 그만이지 무슨 상관? 게다가 우루후루즈 노래 제목과도 같지 않냐고. 그런데 왜 이날 타이틀이 그랬는가 하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그날은 10월 9일, 일본어로는 텡큐, 영어 발음 텡큐(말하자면... ^^)와 가까우므로...&nbsp;&nbsp;&nbsp;들어선 실내는 상상보다 너무 좁았다. 30명이 적정 수용 인원일 것 같고, 50명만 넘어도 어깨 걸고 있어야 되지 않나 싶은 정도. 야네우라라는 저 글자는 &lt;묘조&gt; 뮤직 비디오에서 봤건만 이렇게 좁은 곳일 줄 몰랐다. 20여년 전, 우루후루즈는 이 좁아터진 무대에서 그 '천재적'(어디까지나 내 생각)인 무대 기질을 발휘했단 말인가? 좁은데다 심지어 실내에는 계단차까지 있어서 부츠 신고&nbsp;들어선 나는 그대로 헛다리&nbsp;짚었다. ㅠ.ㅠ복숭아뼈가 와지끈!다행히 한국 돌아와서 찍은 엑스레이에서는 단순한 근육 부상.그런 와중에서도 있는대로 흔들고 놀았으니 에고, 나도 제 정신은 아니었다. 이 날 공연 팀 중 제일 마음에 들었던 코크진즈. 진작 알았다면 입장할 때 이들의 이름을 말하는 건데 미안하게 됐다.&nbsp;내가 원하는 밴드 이름을 대면 입장료의 일정 수입이 그들에게 돌아가는데 누가 누군지 도통 모르는 상태라서...밴드 이름 Cokejeans는 흑인 음악에 기본을 두고 있어 그런 뉴 올리언즈 스타일로 골랐단다. 이름이 일본어로 써져 있어서 전혀 의미를 몰랐지만 무대에서 그들은 분명 신나는 블루스와 소울 스타일로 연주하고 노래했다.괜히 우루후루즈가 생각나서 울컥.아직 어려서 목소리는 얇지만(아무래도 이건 천부적이어야만...ㅠ.ㅠ) 스타일은 신나는 흑인 음악이라는 점에서 우루후루즈와 살짝 닮기도...공연 끝나고 화장실 앞에서 마주친 그들에게 "잘 들었다"고 했더니 어찌나 좋아하는지....실은 어디 후진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게 분명한 그들의 CD도 사 버렸다. 어떤 장르의 음악을 추구하냐고 물었더니 '소울과 블루스'란다.으으, 더 들을 필요도 없이 내 마음은 넘어 갔다. CD 팔면서 300엔짜리 타올도 파는 그들이 너무 예뻐 보여서&nbsp;다 사 버렸다. 타올에는 '기개는 배스 타올'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저 '기개'라는 표현이야말로 우루후루즈의 슬로건 아니던가? &nbsp;이 친구들, 나중에 내게 이메일까지 보내줬다. 앞날이 어떨지는 몰라도,&nbsp;그리고 토타스의 목소리에 전혀 비할 바는 못 되어도 저런 스타일로 노력한다면 나는 계속 지켜 볼 것 같다.&nbsp;&nbsp;그 다음 밴드 피스톤즈. 사실 입구에서 좋아하는 밴드 이름 묻길래 발음하기 쉬워서 얘들 이름 댔는데 알고 보니 이날의 주역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메이저 음반사 데뷔를 하고 매니저까지 달고 온 상태였다. 내 옆에 분명 나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여성이 있었는데 그녀는 이들의 매니저. 그 옆에는 이 멤버의 여자 친구도 있었다.&nbsp;옷 가게에서 지겹도록 흘러나오는&nbsp;스타일의 펑크를 하던 친구들이었는데 현장에선 분명 재미있게&nbsp;만들어 주는 재주가 있었다.&nbsp;그런데 나처럼 듣는 음악을 더 즐기는 사람에게는 아, 그 정도면 됐어&nbsp;수준....&nbsp;&nbsp;&nbsp;&nbsp;그 다음, 이 친구들도 쉬지 않고 펑크....나중에는 골이 띠잉해졌다. 한때 어줍잖은 밴드 생활이나마 했던 우리집 사람은 "왜 전부 따로따로 지 잘난 척만 하지?"라며 이들의&nbsp;실력에 불만을 표했건만 그것도 펑크인&nbsp;것을 어쩌랴?문제는&nbsp;펑크로 시작하면 얼마나 오래 음악 생활을 할 수 있을까인데 그건 인디를 자처하는 이들에게 물어볼 얘기는 아닌 것 같다.&nbsp;최근 70-80년대 펑크의 본산, 영국 펑크 밴드 중 전설이라 할 만한 클래쉬의&nbsp;보컬리스트였던 죠&nbsp;스트러머의&nbsp;다큐가 만들어졌다는데 섹스 피스톨즈처럼 지독한 신화를 남기고 산화해간 밴드는 아니라고 해도,&nbsp;실제로는 더&nbsp;훌륭한 밴드로 손꼽히는 그들의 지난 세월이 궁금해졌다.펑크 밴드는 더군다나 한국처럼 독재 국가에 알려질 수 있는 밴드가 아니었기에 더욱&nbsp;그들이 궁금하다....&nbsp;&nbsp;&nbsp;&nbsp;시모키타자와....혹시 일본에서 또다시 살게 되면 정말 여기를 일순위로 둬야 할지도 모른다는 즐거운 고민이 생겨나기도 한다. 어슬렁대기만 해도 도쿄의 시타마치와는 다른 삶의 활력이 불끈불끈 솟아 오를 지경이다.--></td></tr></table>]]></description>
					<pubDate>Tue, 13 Oct 2009 22:15:23 +0900</pubDate>
					<category><![CDATA[日本,도데쇼?]]></category>
				</item>

				<item>
					<title><![CDATA[&#60;도쿄&#62; 시모키타자와 야채 전문 요리점 자코야]]></title>
					<link>http://blog.dreamwiz.com/abalon33/11525716</link>
					<author><![CDATA[nogong]]></author>
					<description><![CDATA[<table><tr><td><img src='http://blog.dreamwiz.com/thumbnail/a/b/abalon33/32/thbn_abalon33_20091012121351_11525716_1.jpg'  width=160 border=0 align='left'>떠나기 전 오만 계획 다&nbsp;세우고 완벽한 준비를 한 다음에 떠나는 여행이 있는가 하면,&nbsp;생각도 않았는데 후다닥 집을 나서야 하는 경우도&nbsp;있다. 주로 전자 쪽에 해당하지만 지난 주 어느날 저녁을&nbsp;먹다가 주말 도쿄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10월&nbsp;네째 주에 떠나고 싶건만 데려다 주겠다는 사람의 출장&nbsp;스케줄에 따라야 하는데다 그 주에 간다고 한들 토타스 마츠모토의 콘서트&nbsp;티켓을 구한다는 보장이 없고(티켓 할인점 가면 분명히 있다고 믿지만...), 무엇보다 현장에서 보게 되면&nbsp;'충격'을&nbsp;받을 것 같아서(^^) 결국 엇갈리는 날짜에 도쿄로 가게 됐다.&nbsp;호텔에 짐 풀자 마자&nbsp;나 혼자서 냅다 호텔&nbsp;옆의 가라오케로 달려갔다. 이틀에 걸쳐 자그마치 세번이나 노래방에 가서 목이 터지라고 열창(!)의 독무대를 펼쳐 봤다. 기계에 수록된 우루후루즈 노래는 자그마치 185곡, 그 중에서 따... <a href='http://blog.dreamwiz.com/abalon33/11562338 '>more...</a><!--떠나기 전 오만 계획 다&nbsp;세우고 완벽한 준비를 한 다음에 떠나는 여행이 있는가 하면,&nbsp;생각도 않았는데 후다닥 집을 나서야 하는 경우도&nbsp;있다. 주로 전자 쪽에 해당하지만 지난 주 어느날 저녁을&nbsp;먹다가 주말 도쿄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10월&nbsp;네째 주에 떠나고 싶건만 데려다 주겠다는 사람의 출장&nbsp;스케줄에 따라야 하는데다 그 주에 간다고 한들 토타스 마츠모토의 콘서트&nbsp;티켓을 구한다는 보장이 없고(티켓 할인점 가면 분명히 있다고 믿지만...), 무엇보다 현장에서 보게 되면&nbsp;'충격'을&nbsp;받을 것 같아서(^^) 결국 엇갈리는 날짜에 도쿄로 가게 됐다.&nbsp;호텔에 짐 풀자 마자&nbsp;나 혼자서 냅다 호텔&nbsp;옆의 가라오케로 달려갔다. 이틀에 걸쳐 자그마치 세번이나 노래방에 가서 목이 터지라고 열창(!)의 독무대를 펼쳐 봤다. 기계에 수록된 우루후루즈 노래는 자그마치 185곡, 그 중에서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이 스무곡 정도나 되나? 어쨌든 한국에서는 그 꼬리도 구경할 수 없는 그들의 곡을&nbsp;맘껏 불러 봤다. 그 결과는 자연스런 허스키 보이스의&nbsp;습득. 이게 득음인가? ^^문제는 그래도 노래 실력은 조금도 늘지 않았다는 사실....&nbsp;천부적 재능을 가진 사람의&nbsp;흉내는&nbsp;감히 시도하는 게 아니라는&nbsp;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가라오케행 다음에는 이번 여행에서 '나만의 주목적'인 라이브 하우스에 가기 위해 시모기타자와로 갔다. 라이브 시작하기까지는&nbsp;시간이 좀 있었으므로 동네를 어슬렁어슬렁...그러면서 &lt;묘조&gt;의 뮤직 비디오에 나온 디스크 유니온 시모키타점에 다시 가 봤다. 여전히 일본 인디 밴드는 정체를 모르겠고, 미국에서도 희귀 음반이라 할 예전&nbsp;록 LP들을 보면서 그동안 내가 그런 데 들인 돈을 계산해 봤다. 물론 나 정도로 음반 사 들인 것을 한 재산 썼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nbsp;지금도 붙어 있는 CD 자켓의 가격표를 보니&nbsp;돈도 없던&nbsp;시절치고는 제법 무리했던 것 같다. 그것도 이제는&nbsp;남 다 줘 버리고 관리도 하고 있지&nbsp;않지만&nbsp;따지고 보면 하나하나 다 소중한 추억이 남아 있는 물건들인 것이다.&nbsp;&nbsp;&nbsp;&nbsp;디스크 유니온 외벽에 붙어 있는 영화 광고. &nbsp;&lt;색즉 제너레이션&gt;이라는 영화로&nbsp;올 여름에 개봉했던 모양.&nbsp;지난번에 갔을 때는 본 기억이 없는데 관심이 없어서였는지 이 영화에 대해 몰라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얼마 전 일본에서 산 잡지를 정리하다가 이 영화 제작을 둘러 싸고 관련 인사 세 사람의 대담 기사를&nbsp;본 것이 바로 며칠 전이라서 이 포스터를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일본의 '58년 개띠'생인 원작자가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이던 1974년을&nbsp;배경으로 만든&nbsp;영화. 벌써 거기서부터 내 흥미를 끌어 당기는 요소가 시작됐다. 배경 장소는 교토. 68년 세대 이후에 등장한 일본의 유약한 청년 문화가 나온다. 어쩌면 &lt;박치기&gt; 다음 세대 이야기일 것도 같다. 포스터 속에 등장한 오른쪽 두번째 남자는 일본 열도를 울렸다는 &lt;도쿄 타워&gt;의 원작자 릴리 프랭키.&nbsp;1974년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주인공을 연기한 신인 배우. 요즘은 '초식계' 남자라는 말이 대세지만 이 당시에는 '문화계' 남자가 대충 그런 의미였던 것 같다. '육식계'는 '체육회계'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지만 인터넷 뒤져봐도 그렇게 유행 지난 말은 나오질 않으니 확신은 없다. 어쨌든&nbsp;문화계 남학생인 주제에 성적 호기심은 왕성한 나이라서(그럼 문화계가 아닌 거 아닌가?^^) 그 당시 '프리섹스'를 즐길 수 있었다는 어느 유스 호스텔에 기타 하나 덜렁 메고 놀러간다는 내용이라고 한다.&nbsp;그런 주인공 옆에는 꼭 이렇게 생겨 주신 정체 불명의 괴물급 조연이 있어야 말이 되고, &nbsp;게다가 인생 달관한 듯한 이런 선배도 있어야 모든 게 완성된다. 한국에 수입될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원작의 내용만 봐도 벌써 이건 내 취향이라는 냄새가 풀풀 난다. 원작자, 감독, 배우의 대담 내용을 보면 영화에서 성적 호기심이 왕성했던&nbsp;등장 인물들과는 달리 자신들은 오히려 그런 게 무서웠었다고 한다. 또래들은 벌써 어느 정도 '진도가 나갔는가' 자랑하는 판국에 영원히 소년으로만 머물 것 같은 자신에게는 평생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아서 과연 연애는 할 수 있을까, 결혼은 할 수 있을까,&nbsp;남자로서 제 기능은 가능할까 등등 소심한 걱정을 했었다는데&nbsp;그것도 '문화계' 남성들의 특징 아닌가 싶다. 실제로 감독은 50이 넘은 나이에 초혼을 했다는데 본인 말로는 '개호 결혼'(^^)이란다.&nbsp;셸터라는 유명 라이브 하우스 앞을 지나다 그날 출연하는 밴드 명단을 보고 있었는데 계단에서 서성거리던 어느 청년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청년 : "흥미가 있으세요?" (아니, 흥미가 없는데 그 앞에 왜 있겠어?)나 :"있긴 한데...."청년:"그럼 보러 오세요." (보러&nbsp;가긴 하겠지만 어느 집 갈지 아직 결정을 못한 상태라...)나:"이 동네 라이브 하우스에 대해 정보가 전혀 없어서 아직 결정 못했어요."청년:"우리가 오늘 두번째 밴드인데요, 꼭&nbsp;보러 오세요." (에고, 미리 손님 삐끼질...)나: "아, 그래요? 그런데 음악 스타일은 어떤데요?"(장르에 따라 내 마음이 결정되니까!)청년:"굳이 장르라고 하면 가레지(얘들은 garage를 이렇게 발음한다) 록입니다."(음, 됐다. 그런 스타일은 예전도, 지금도&nbsp;별로라서...)내 얼굴에서 드러나는 연식이 벌써 그런&nbsp;음악에 관심없다는&nbsp;것을 &nbsp;눈치 채야지, 이 청년 참 끈질기게 요청했다. 공연 전 연습 중이니까 잠시 내려와서 연습이라도 보고서 결정하시라는데&nbsp;시간이 빡빡해서 미안하게 됐다. 그 청년의 얌전한 분위기 봐서는 혹시 베이스&nbsp;담당이 아닌가 싶었는데 미처 물어보지는 못했다. &nbsp;&nbsp;&nbsp;&nbsp;어쨌든 공연 가기 전&nbsp;일단 간단히 배를 채우자 싶어서 들어간 곳은 바로 여기.&nbsp;&nbsp;옛날 막걸리집처럼 유리 여닫이 문이 있어 안이 잘 보이는데다&nbsp;주방 카운터에&nbsp;그날의 요리를 놓고 덜어서 파는 집이어서 한번 가 보고 싶었다. &nbsp;&nbsp;먼저 맥주 한잔. 가을부터 계절 한정으로 등장하는 에비스 호박이 있었다. 수퍼에서도 흔하게 보이지 않는데 술집에서 마시기는 처음이다. 가격은 일반 맥주의 두배!&nbsp;오토시로 등장한 긴삐라. 다른 집처럼 일인당 한 종지(딱 그 사이즈다)씩 주는 게 아니라&nbsp;이렇게 대범하게 한 그릇에 모아 준다.&nbsp;주방 카운터에 놓인 그날의 요리들. 맘 같아선 하나씩 다 먹어보고 싶었지만 외국인 둘이 와서&nbsp;미련하게&nbsp;많이 먹고 간다고 뒷소리 들을까 봐 몇개만 먹었다. ㅠ.ㅠ&nbsp;&nbsp;일본인들이 그렇게 사랑해 주시는 가지 조림. 한국에서 평생 먹었던 양보다 작년 1년 일본에서 먹었던 가지의 양이 더 많았던 것 같다. &nbsp;분위기 봐서는 주방의 총 진두 지휘자. 이 좁은&nbsp;주방 쪽에 자그마치 세명의 요리사가 복닥복닥댔다. 요리가 원래 전공인 사람인지, 아님 이 동네 성격답게 음악 쪽 일을 하다 요리가 취향에 맞아서 그 쪽으로 전환한 사람인지 알 수는 없으나 실내에서 나오는 음악으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 계통에 발 걸친 사람인듯....자기들끼리 "지금 오아시스의 음악을 틀어놔서 좀 시끄러워" 어쩌고 해 대는 것으로 봐서는 그런 느낌 물씬. 그리고 실내 곳곳에는 음악 관계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nbsp;기름 찰찰 흐르는 꽁치 회. 구이가 최고지만 이건 한국에선 먹어 볼 수 없는 것이라서 시켰다. 혹시 먹을 수 있는 데가 있으려나? &nbsp;대만식 물만두라는 게 있어서 시켰더니 이렇게 볶은 채소를 얹어서 내 왔다. 그냥 만두만 주면 더 좋았겠는데....&nbsp;정식 요리 이름은 모르겠으나 오징어와 무우 조림. &nbsp;그리고 토란 조림. 토란 크기가 엄청나다. 한국에서 밤톨만한 토란에만 익숙해져 있다 이것을 보고 토란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 것 같다. &nbsp;우리가 신기해 하자 주방 청년이 일본에서도 보기 드문 거라며 자랑스러워 했다. 그런데 너무 크니까 그렇지 않아도 텁텁한 토란의 그 맛이 더욱 강조된 듯. 이건 마치 단 맛은 하나도 없는 고구마를 먹는 기분. 어쨌든 흔한 스타일의 식당은 아니어서 다음에도 또 가게 될 것 같다.--></td></tr></table>]]></description>
					<pubDate>Mon, 12 Oct 2009 11:59:36 +0900</pubDate>
					<category><![CDATA[외국 음식]]></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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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라이브 콘서트가 보고 싶어~~]]></title>
					<link>http://blog.dreamwiz.com/abalon33/11500642</link>
					<author><![CDATA[nogong]]></author>
					<description><![CDATA[<table><tr><td><img src='http://blog.dreamwiz.com/thumbnail/a/b/abalon33/37/thbn_abalon33_20091008233043_11500642_1.jpg'  height=120 border=0 align='left'>몇년 전부터 '로맨스 그레이'급 아저씨들이 밴드를 만든다는 소식이 여기저기 들리는데 중년의 헛헛한 마음을 그런 식으로 메꿀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교내 밴드에서 보컬리스트를 뽑는다는 벽보를 보고 "내가 가면 아예 받아 주지 않겠지?"라고 했더니 듣고 있던 후배가 낄낄 웃었다. 워낙 팝송을 듣지 않는 세대라서, 그리고 이른바 클래식 록은 비틀즈 정도나 알고 있는 세대다 보니 가수와 노래가 전혀 매치되지 않는 곡을 들먹이며 그 노래를 잘하던 애가 지난번 보컬리스트였다며 알려 주었다. 대학 신입생 때 이 밴드 오디션 볼까 말까 고민 따위 하지 않고 저질러 버렸다면 나도 지금쯤 OB 멤버 정도 되어 있을지 모르겠다. ^^재수만 하지 않았다면, 데모로만 점철된 시절이 아니었다면&nbsp;분명 떨어져도 오디션 정도는 봤을 거 같은데&nbsp;이런 가상의 시나리오는 지금 말해 봤자 전혀 의미가 없고&nbsp;현재를 만든 과거는&nbsp;그대로 또 나쁘지 않았었다. 누군가는 음악에 미쳐 일... <a href='http://blog.dreamwiz.com/abalon33/11525716 '>more...</a><!--몇년 전부터 '로맨스 그레이'급 아저씨들이 밴드를 만든다는 소식이 여기저기 들리는데 중년의 헛헛한 마음을 그런 식으로 메꿀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교내 밴드에서 보컬리스트를 뽑는다는 벽보를 보고 "내가 가면 아예 받아 주지 않겠지?"라고 했더니 듣고 있던 후배가 낄낄 웃었다. 워낙 팝송을 듣지 않는 세대라서, 그리고 이른바 클래식 록은 비틀즈 정도나 알고 있는 세대다 보니 가수와 노래가 전혀 매치되지 않는 곡을 들먹이며 그 노래를 잘하던 애가 지난번 보컬리스트였다며 알려 주었다. 대학 신입생 때 이 밴드 오디션 볼까 말까 고민 따위 하지 않고 저질러 버렸다면 나도 지금쯤 OB 멤버 정도 되어 있을지 모르겠다. ^^재수만 하지 않았다면, 데모로만 점철된 시절이 아니었다면&nbsp;분명 떨어져도 오디션 정도는 봤을 거 같은데&nbsp;이런 가상의 시나리오는 지금 말해 봤자 전혀 의미가 없고&nbsp;현재를 만든 과거는&nbsp;그대로 또 나쁘지 않았었다. 누군가는 음악에 미쳐 일로매진하던 시기에 나는 내 앞가림하기 위한&nbsp;직장 생활도 했고, 외국을 전전(?)하면서 이런저런 경험도 했으니 거꾸로 그들이 날 부러워할 수도 있겠지, 뭐...(라고 말은 하지만 내 나이가 되도록 아직 그 바닥에 있는 '무명 인사'들은 가난해도&nbsp; 행복해 한다. 그야말로 외길 인생의 행복이 저런 건가 싶다...)요즘 아침, 점심, 저녁 3번도 모자라서 하루종일 귀에 달고 있는 이 사람 목소리!살이 빠지거나 돈을 많이 벌게 해 주지는 않지만 웃음이 저절로 나오고 행복해 지는 기분이니 허경영보다 당연히 더 나은 존재다.(가만, 듣기만 하고, 이름을 세번 안 불러 줘서 그런가?)&nbsp;현재 전국 순회 공연 다니는&nbsp;과정을 블로그에 열심히 올리는데 아무리 블로그상에서 미끼질(?)을 해도 몇몇 도시에서는 꽤 빈 좌석이 많았던 모양이다.(내가 가능한 공연은 몽땅 매진이고, 제대로 찾아갈 수도 없는 공연은 텅텅 비고... 인연이 그것밖에 안 돼 그런&nbsp;게지)&nbsp;우루후루즈 시절,&nbsp;공연했다 하면&nbsp;확실히 표가 팔리는&nbsp;밴드라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nbsp;그런 상황이 꽤 불안한 모양이다. 아예 좀더 젊었을 때부터 솔로로 나섰다면 모르지만 이제 40대 중반이 되어 가는 나이, 안 불안하면 인간이 아닐 거다.&nbsp;노래 가사나 인터뷰,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무지 낙천적이고 건전한 인생관을 가진 사람이긴 한데 본인은 인터뷰에서 '자신 같은 직업을 가진 이들은 우울증이 올 가능성이 높아 관련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고 했다. 그래 봤자 사고 뭉치&nbsp;서양의 록 밴드 멤버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하다는 사실을 본인은 알고 있을까?&nbsp;록은 겉멋에 살고, 겉멋에 죽는 면이 있긴 하지만 자기 목숨을 거는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오가는 이들, 그러다 결국 그 선 넘어 가 버린 이들을 보면 가슴이 무지 아픈데 다행히도 이 남자는 그런 쪽의 사고는 전혀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록커치고는 너무나 상식적이고&nbsp;정상적인 생활인에 가깝게 여겨져 '이것도 일본식인가?'하는 생각이 든다.&nbsp;일본인답지 않은 가창력과 필링이 아니라면 그냥 보통 일본 샐러리맨과 별 다를 바가 없을 것 같다.계속 궁금해 하던 부인과의 결혼 스토리는 10년 전 출판했던 책에 아주 자세하게 실려 있었다. 음악 전문지에서도 사생활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피하고(팬들을 생각해서 그런다나? 그게 왜 팬 서비스인지???), 블로그에서도&nbsp;사생활 얘기는 너무 없어&nbsp;지극히 가정적이라는 얘기와는 달리&nbsp;뭔가 비밀이 있나&nbsp;싶었는데 비록 10년 전 얘기이기는 하지만&nbsp;수많은 여성들에게 필히 '추천해 주고 싶은 남성상'으로 꼽을 만하다. 록 뮤지션이란, 아니 음악하는 이들에게는 원래 이성의 유혹이 엄청난 법이고(아무리 못 생긴 이들이라도 그루피는 우글거린다!), 무명 시절이 길다 하루아침에 성공하면 고무신 바꿔신기 일쑤인데 이 '혼을 흔드는 사나이'(이건 일본인들의 표현이다!)는 성공하자 마자 당장&nbsp;오랜 애인과 결혼부터 한 모양이다.오사카의 복장 전문학교 다니다 20살 때 만난&nbsp;동급생 여학생과 연애를 했고(그 '주제'에 그 당시 양다리였단다^^), 마음이 바다처럼 넓은 이 여학생은&nbsp;자기가 뭘 해도 이해를 해 주었다고 한다. 무명밴드인 주제에 용감하게 이 여자 친구까지 데리고 상경해서 살림을 차리고 자기는 집에서 백수 노릇(내용은 음악 활동),&nbsp;여자 친구는 돈 벌러&nbsp;나갔다고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nbsp;고작 20대 초반이었던 그들의 그 용기가 부러울&nbsp;지경이다. 일단 나라면 20대 초반의 남자들 절대로 못 믿겠고(^^), 여기에 덜컥 살림까지 차리지도 못했을 뿐더러 아무리 재능이 있다 해도 그 상태의 백수였으면 애진작에 정나미가 떨어졌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nbsp;뮤지션을 파트너로&nbsp;두고 싶은 마음은 절대절대 없다.&nbsp;아마 가까운 데서 지켜 보다 보니 신비감도 전혀 없고, 음악과 인간성이&nbsp;결코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nbsp;알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nbsp;음악 뿐 아니라 예술하는 사람들과는&nbsp;결코 파트너로 맺어질 수 없는 성격임을 내 스스로 잘 알고 있다.&nbsp;&nbsp;&nbsp;아무리 토타스 마츠모토씨의 노래가 훌륭하고, 가창력이 뛰어나서 '영혼을 울리는 사나이'이고, 그 재능을 내가 100% 칭찬해 준다고&nbsp;해도 현실&nbsp;생활에서&nbsp;음악하는 이들과&nbsp;파트너를 맺을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만치도 없다.(지금은 하고 싶다고 해도&nbsp;못하는 처지지만.. ^^)&nbsp;뜨기 시작하면서 서른 전에 겨우 웨딩&nbsp;드레스를 입혀 줬다고 하는데 아마 그때 나온 노래가 &lt;만세,&nbsp;사랑해서 다행이야!&gt;인 것 같다. 이 책을 쓴 32살&nbsp;때 그의&nbsp;철학은 '세상 남자들이여, 연애하면 망설이지 말고 무조건 결혼에 돌입하라!'인데 글쎄,&nbsp;어린 나이에 이미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이고,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던 그였으니 그런 결정이 가능했겠지만 지금처럼 초식계 남성들이 바글거리는 상황에서&nbsp;그런 주장이 씨알머리가 먹힐 리가 없다. 나부터도 연애 = 결혼이라면 망설이는 초식계인 것 같은데 말이다.&nbsp;&nbsp;외국의 록 뮤지션들은 록을 시작하게 된 동기를 주로 '여자 건지기'와 '집세 내기'라는 두가지 정형화된 틀 속에서 설명하는데(농담 반, 진담 반이다)&nbsp;일본에는 록&nbsp;뮤지션조차 이렇게&nbsp;일상&nbsp;생활은 반듯한 모범생들 투성이다. 다른 록 밴드는 관심이 없어 모르겠지만 우루후르즈는 전원 다 기혼자에다&nbsp;눈치를 보아 하니 자녀들에게도 엄청 자상한 아빠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nbsp;신기한 것은&nbsp;작사, 작곡은&nbsp;전부 토타스의 몫인데 연애 시절까지 합쳐 20년도&nbsp;넘게 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도 노래 가사를 보면 마치 갓 연애에 빠진 사람 같은 느낌이 드는 가사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닭살 돋을 만큼&nbsp;느끼하거나 말랑말랑한 느낌은 당연히 아니고, 직선적이면서도 섬세한 가사들인데&nbsp;저 나이에, 저 상황에서도 이런 가사가&nbsp;탄생하는구나&nbsp;싶어 놀랐다.&nbsp;젊었을 때부터 사랑 타령을 징글징글해 한 나는, 지금은 그런&nbsp;풍의 노래를 더욱 견딜 수 없다. 그런데 우루후루즈의 사랑 노래는 가사의 차원이 다르니 사랑해 주지 않을 수가 없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그의 인터뷰 책이나 DVD는 한꺼번에 먹기에 아까운 과자 같아서 한입 베어먹고, 잠시 시간 뒀다 또 그 다음 부분을 먹고 하는 식으로 감상 중이다. 무대에서의 에너지가 워낙 폭발적이어서 다섯 곡 이상 연달아 보면 실제 공연을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nbsp;방 안에서만 봐도 저절로 어깨가 들썩여 지는데 저 사람이 객석을 완전히&nbsp;압도해 버리는 현장에&nbsp;가면 얼마나 신이 날지 상상이 되질 않는다. 그러나 그의 카리스마가 아무리 압도적이라도 네명이 모인 우루후루즈의 무대만큼 되지 못할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씁쓸해진다. 공식적으로는 해산이 아닌 활동 정지라고는 하지만 결국 그 뒷 배경에는 금전 분배라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어 언제 다시 그들이 뭉칠지는 모르는 일이다. 설사 모인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힘있는 무대가 가능할지도 알 수 없고....위의 사진은 데뷔 15주년 기념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들이&nbsp;결성한 88년 기준인지, 데뷔 음반을 낸 92년 기준인지 모르겠다. 만일 전자라면 사진은 2003년, 후자라면 2007년이 된다. 어쨌든 이 때만 해도 아직 팽팽해 보인다. 2008년 부도칸 공연 때 모습. 공연 실황을 보면 예전처럼 엉덩이 노출증(?)이 안 보일 뿐더러 주름도 늘고, 살도 많이 쳐졌다.(남 이야기가 아니라 또래인 내 모습도 그런 상황이지만...)제일 중요한 목소리에도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는 사실....&nbsp;너무 늦게 알게 된 인연으로 그들이 한참 힘 좋던 시절, 라이브를 직접 보지 못했다는&nbsp;애통절통함이 새삼 사무친다....&nbsp;누군가 우루후루즈는 한국으로 치자면 어떤 밴드에 비교할 수 있냐고 물어 봤는데 일단 비교할 팀이 없다. 일본에서는 20년 정도 지속된&nbsp;록 밴드는 제법 있는데 그건 그 나라가 그런&nbsp;시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계를 상대로 한 시장이라 할, 영미&nbsp;음악계&nbsp;다음이라면 일본이 아마 독자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 중 한 곳 아닐까 싶다. &nbsp;&nbsp;한국에서는 저 정도로 팔리고, 힛트곡을 내고, 표가 매진되는 대규모 공연을 벌일 수 있는 장수 밴드가 없으니 비교 불가. 그리고&nbsp;록을 하되, 미국식의 블루스나 소울을 접목시키고, 여기에 장난스럽고 대중적인 멜로디 위주로&nbsp;다양한 장르를 섭렵해 내는 이들의 음악 스타일과&nbsp;닮은 밴드도 없으므로 역시 비교 불가. 토타스와 또래로 비교적&nbsp;일반인에게 알려진 이들이라면 고작 생각나는게 이승철과 김종서 정도인데 이승철은 밴드를 탈퇴한&nbsp;이후, 록을&nbsp;한 게 아니라서&nbsp;소거, 김종서는 밴드로 성공한 게 아니라 솔로로 알려진 케이스이므로 비교하기 애매.&nbsp;발라드로 재미는 봤지만 록에서는 손을 놓지 않았으니 록 뮤지션이 분명해도 토타스의 목소리와는 스타일이 다르므로 역시 비교 대상으로는 무리. 김종서와 함께 무명 시절을 보낸 이들은 김종서에 대해 비아냥거리지만 나는 그의&nbsp;독특한 목소리도 무지 좋아한다.&nbsp;토타스도 이름 못 얻는 인디&nbsp;밴드보다는 대중적으로 알려지기를 원한다고 했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몇명의 팬클럽 멤버 모아놓고, 그 안에서만 살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면 일단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고, 팔리는 음반을 만드는 것은 상업 음악이 기본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바일 것이다.&nbsp;팔리는 것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별&nbsp;쓰레기 같은 음악들에는 기본적으로 귀가 돌아가질&nbsp;않으니 그게 천만장이 팔렸더라도 나는 관심이 없다.그나저나 개인적으로 전혀 팬은 아니지만 신해철의 건강 상태가 나쁘다는 뉴스에 걱정이 된다. 특히 간 수치가 나빠졌다는 말은 남 일 같지가 않다. 지난 여름 머리 빡빡 밀고, 무대에 올라 눈물 뚝뚝 흘린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더욱 가슴이 아프다....실은 대한민국의 그런 어지러운 모습에서 도피하다 만난 피난처가 우루후루즈였는데....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지만, 그리고 이제는 이미 그만 두었다지만 그가 일주에 한번 정도 출연했던 라디오 프로그램 중 &lt;오 마이 라디오&gt;란 게 있었던 모양이다.&nbsp; 거기에서 직접 라이브를 했던 모양인데 이렇게 사제 CD로 만든 것 같다.&nbsp;이 라이브에 수록된&nbsp;곡들 중 팝송만 봐도 딱 내 취향이다. 혹시&nbsp;&lt;Traveller&gt; 2를 제작한다면 이번에는 목소리가 비슷한 뮤지션들의 록 명곡만 추려서 불러줬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5시간짜리 공연도 하고,&nbsp;공연 때마다&nbsp;발표한 싱글곡을 거의 다 부르기도 할 정도로 무대 위에서의 힘이 좋은 팀으로 알려져 있는데 다른 멤버들이&nbsp;연주만 하는 반면 이 사람은 연주와 함께 혼자 노래를 다 불러야 한다. 게다가 사회도 보지, 중간중간 퍼포먼스도 펼치지, 비쩍 마른 몸매와 달리 공연 무대에만 올라가면 힘이 철철 넘치는 모양이다.&nbsp;안타까운 것은 무대에서의 그 절대적인 카리스마와 달리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왜 그렇게 존재감이 없는지....초일류 인기 스타들이 총출동한 &lt;미스터 브레인&gt;에서는 기무라&nbsp;다쿠야와 맞짱 뜰 정도로 역의 비중이 컸지만 어울리지 않는 CSI(?)&nbsp;팀 반장하느라고&nbsp;참 고생했다. 보는 내가 마음이 불안할 정도로 어색한 연기였으니.... ^^그거&nbsp;재미있다고 본 사람들도 펩시 콜라 모델과&nbsp;그&nbsp;연구소의 생물학 팀장이 같은 사람인 것을 전혀 못&nbsp;알아 볼 정도로 가라앉은 존재...&nbsp;보아하니 시리즈 2도 나올 것 같은데 그때도 그런 연기라면&nbsp;카리스마 만빵 가수 토타스의&nbsp;팬으로선 참 걱정...그런데 돈벌이를 해야 하는 '생계형 록 뮤지션'이라서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어차피 그 나이에, 그 인물에(^^) 주연은 못할 것이고(그래도 주연했던&nbsp;적 있다!), 힘도 빠지는데 무대보다는 드라마 스튜디오가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는데 더 유익하다면 팬으로서는 좀&nbsp;못마땅해도 그냥 지켜봐 주는 게 예의 아니겠는가?&nbsp;&nbsp;&nbsp;최근 그의&nbsp;생계에 또다른 도움이 될 재료. 그가 만든 우루후루즈의 마스코트(?) 와이모군. 이 와이모군과 그 친구들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음악 전문 채널에서 며칠 전부터 방송을 시작했단다. 연기처럼, 그의 그림 쪽도 별로 내 취향이 아니긴 한데 그래도 애니가 만들어졌다니&nbsp;궁금하기도 하다.&nbsp;타고 난 저 목소리만도 충분히 하늘의 축복을 받은 것이거늘,&nbsp;기타는 대가급 수준에&nbsp;웬만한 악기는 다 다루고,&nbsp;내 영혼을 울린 작사 작곡 실력에,&nbsp;&nbsp;연기, 그림,&nbsp;저작 활동, &nbsp;게다가 모난데 없는 성격에&nbsp;가정 생활까지&nbsp;행복 충만! (글에서 마구마구 느껴진다!) 아아, 공연 보고 싶어라!--></td></tr></table>]]></description>
					<pubDate>Thu, 08 Oct 2009 23:16:25 +0900</pubDate>
					<category><![CDATA[日本,도데쇼?]]></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빈대떡 신사는 어떤 빈대떡을 먹었을까? ]]></title>
					<link>http://blog.dreamwiz.com/abalon33/11450123</link>
					<author><![CDATA[nogong]]></author>
					<description><![CDATA[<table><tr><td><img src='http://blog.dreamwiz.com/thumbnail/a/b/abalon33/32/thbn_abalon33_20091005210721_11450123_1.jpg'  width=160 border=0 align='left'>&nbsp;몇년 전 목동에서 빈대떡집(체인점 따위 말고)을 찾다 우연히 알게 된 개성집. 비 오던 어느날 찾아간 이후로 한번도 가 본 적이 없었는데&nbsp;여름이 끝나가던 어느 날 문득 생각나서 가 보았다. 옛날 맛은 전혀 기억에 입력되어&nbsp;있지 않고, 장소 또한 바뀌어서 잠시 긴가민가했다.&nbsp;요즘은 미맹이 되어 가는지 맛이 있는지 없는지 전혀 평가를 못 내리겠다. 그저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 입맛에 맞으면 맛있을 뿐.... 이 날도 비가 와서 기분은 그럴싸했는데 빈대떡 맛은 밍숭맹숭했다.&nbsp;&nbsp;여름이어서 이런 김치만 등장, 배추김치는 보쌈에만 준다는 이상한 시스템...일본에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 김치를 돈 내고 먹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실은 감지덕지였다. &nbsp;얼마 전 수안보 온천에 갔을 때는 매끼니마다 종류별로 다른 막걸리 내지는 동동주를 반주로 곁들였었다. 그 덕에 같이 간 일본인들은 환호작약을 했었다. 오랜 세월 막걸리를 좋아했던 나... <a href='http://blog.dreamwiz.com/abalon33/11500642 '>more...</a><!--&nbsp;몇년 전 목동에서 빈대떡집(체인점 따위 말고)을 찾다 우연히 알게 된 개성집. 비 오던 어느날 찾아간 이후로 한번도 가 본 적이 없었는데&nbsp;여름이 끝나가던 어느 날 문득 생각나서 가 보았다. 옛날 맛은 전혀 기억에 입력되어&nbsp;있지 않고, 장소 또한 바뀌어서 잠시 긴가민가했다.&nbsp;요즘은 미맹이 되어 가는지 맛이 있는지 없는지 전혀 평가를 못 내리겠다. 그저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 입맛에 맞으면 맛있을 뿐.... 이 날도 비가 와서 기분은 그럴싸했는데 빈대떡 맛은 밍숭맹숭했다.&nbsp;&nbsp;여름이어서 이런 김치만 등장, 배추김치는 보쌈에만 준다는 이상한 시스템...일본에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 김치를 돈 내고 먹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실은 감지덕지였다. &nbsp;얼마 전 수안보 온천에 갔을 때는 매끼니마다 종류별로 다른 막걸리 내지는 동동주를 반주로 곁들였었다. 그 덕에 같이 간 일본인들은 환호작약을 했었다. 오랜 세월 막걸리를 좋아했던 나로서는 막걸리의 스타 등극이 반갑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그렇다. &nbsp;역시 기억이 가물가물한 만두국.&nbsp;여름이라 그랬는지 안의 재료들이 좀 마뜩찮다. 고기가 적게 들어간 것은 좋아하지만 너무 야채가 많으면 만두 특유의 맛이 좀 덜하지 않은가? 채소 대신 두부의 비중을 더 높여 줬더라면 좋았겠지만....다시 찾아갈지 어떨지는 이 날 먹었던 맛으로는 안 간다 쪽에 가까울 것 같다. 몇년 전 염창동 우체국 앞에 문을 연 빈대떡 체인점은 저렴한 가격 때문에 몇번 테이크 아웃을 해 가기도 했는데 요즘은 미어 터지는 지경이 되어서&nbsp;저녁 때만 되면 그 앞에 장사진 서 있는 광경이 장관이 되어 버렸다.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라던 노래 가사를 들을 때마다&nbsp;예전에도 '빈대떡은 결코 서민 음식이 아닌데...'라고 생각했었다. 돈 없던 학생 시절에는 상대적으로 빈대떡이 비싼 것 같이 느껴졌는데 요즘은 워낙 비싼 것들이 많으니 그렇게 비싸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다만 양이 적은 집 갔을 때 일행 중 눈치없이 안주만 파 대는 이가 있다면 당연히 비싸게 느껴질 수도... ^^&nbsp;서울에서 피맛골은 이제 완전히 사라진 것 같다. 교보 문고 옆 골목에는 아직도 보상금 타협이 끝나지 않은&nbsp;건물이 있어서 이렇게 열차집이 남아 있게 되었다고 한다.&nbsp;&nbsp;&nbsp;열차집은 빈대떡이 맛있어서 가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60-70년대의&nbsp;맛을 내가 알 턱도 없지만 들락날락대던 80년대에도&nbsp;인상적일 만큼 대단한 맛은 아니었던 것 같다.&nbsp;서민적인 가게의 분위기와는 달리&nbsp;장소가 장소니만큼&nbsp;가격은 예나 지금이나 싸지 않다.그리고 좋은 것은 반찬으로 나오는 어리굴젓(조개젓이었나?). 느끼한 맛을 지우는 데는 좋지만 짜기 때문에 먹고 나면 물 잔뜩 들이켜야 하는 아쉬움이...&nbsp;녹두의 함량은 주인이 밝히지 않는 이상, 내 입이 대장금이 아닌 이상 어차피 모르는 것이고, 맛은 언제나 느끼하다고 생각한다. 진짜 빈대떡일수록 돼지기름에 지져내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 집은 아마 식용유를 쓰는 거 아닐까? &nbsp;아마 지져내는 기름보다는 안의 내용물이 느끼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nbsp;가격대는 이런 수준.&nbsp;피맛골이 멀쩡할 때는 열차집보다는 그 옆에 있는 다른 집들에 더 많이 갔었다. 안주 선택에서도 훨씬 경우의 수가 많았던 그런 집들은 이제 다 사라지고 열차집만이 남아 있다. 주인에게 물어 봤더니 건물주의 사정이 그래서 못해도 몇년 정도는 더 영업할 수 있다고 한다.&nbsp;찌그러진 냄비 덕에&nbsp;그나마 맛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주는 조개탕...조개탕에 후추가루가 난무하고, 청양 고추, 마늘이 듬뿍 입수해 있다면 나는 그냥 숟가락 놓고 만다. 여기에 조미료 맛까지 난다면 금상첨화!!(설상가상이란 말을&nbsp;써야 하지만&nbsp;예의상 이래 준다....) 맑고 담백한 맛에 먹어도 되는 것들은 제발 좀 그렇게 해 줬으면 좋겠다. &nbsp;그리고 시킬 때마다 후회하면서 시키게 되는 이&nbsp;집 파전. 빈대떡도 느끼한데 계속 그 메뉴로만 먹기 그럴 때 어쩔 수 없이 시킨다. 학교 앞 학생 주점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파전이라서 결국은 반도 못 먹고 만다. &nbsp;그런데 이 집은 맛으로만 오는 집이 아니라서 막걸리 몇병 마시고 나면 대충 그 따위 맛은 잊어 버리기도 한다. 이 날 내 술 맛을 돋구던 이 집의 낙서....&nbsp;어떤 손님들이 해 놓은 낙서인지 몰라도 나는 그저 사진만 찍었을 뿐이다. 열차집은&nbsp;박정희가 청와대에서도 이 집&nbsp;빈대떡을 시켜다 먹었을 정도였다고 해서 유명해졌던 집일 것이다. 원래 주인이 박정희에게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알 수 없으나 박정희의 허접한 입맛(입맛만 허접했겠는가?) 따위에 동조하기 위해 이런 집을 들락날락거리는 '국민'은 몇 없을 것이다.&nbsp;현재의 주인장이 저 낙서를 지웠는지 어떤지는 지금은 알지 못한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라고 목숨 걸고 써갈기던 시절이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간 지금, 저런 악플성 낙서가 과연 어느 정도의 신념을 담보하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몇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런 것조차&nbsp;우리 사회의 '세련된 모습'일 것이라고 애써 자기 최면을 걸곤 했었다.그러나 이 문구를 보고 나는 마시던 막걸리 잔에 그대로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nbsp;실은 이&nbsp;며칠 전,&nbsp;시청 앞에서&nbsp;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 보다 탈진한 채로 훠이훠이 돌아왔었다.개똥밭 같은 이승에서,&nbsp;개발의 손톱이 핏물 뚝뚝 흘리고 있는 피맛골&nbsp;한 구석에서,&nbsp;살아 있었다면&nbsp;언젠가 그로부터 한잔 얻어 마시고 싶었던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하얀 벽을 쳐다 보고&nbsp;소리없이&nbsp;꺽꺽 울고 말았다.&nbsp;꽃이&nbsp;져도 당신을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nbsp;--></td></tr></table>]]></description>
					<pubDate>Mon, 05 Oct 2009 20:53:3 +0900</pubDate>
					<category><![CDATA[한국 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운전하고 싶은 날...]]></title>
					<link>http://blog.dreamwiz.com/abalon33/11312375</link>
					<author><![CDATA[nogong]]></author>
					<description><![CDATA[<table><tr><td><img src='http://blog.dreamwiz.com/thumbnail/a/b/abalon33/32/thbn_abalon33_20090925143804_11312375_1.jpg'  width=160 border=0 align='left'>한국에서는 운전하는 것이 스트레스다.큰길에서도 그렇고, 뒷골목에서도 그렇고, 어정쩡한 주차 공간을 만나도 그렇고, 지난 십몇년간 한국에서 운전하는 것이 즐거웠던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nbsp;늦은 밤,&nbsp;보름달이 뜬&nbsp;산길을 넘어 아무도 없는 프리웨이를 지나 내 등짝에 귀신이라도&nbsp;업은 것 같은 기분으로 주 경계선을 넘어갔던&nbsp;딱 이맘 때 무렵의 예전 어느 가을날이 생각날 때면&nbsp;운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nbsp;생겨나기도 하지만 어딜 가도 적막함과는 거리가 먼 한국에서는 그렇게&nbsp;동기 부여가 되지&nbsp;않으니 운전하려고 맘 먹으면&nbsp;짜증만 난다.일본에서 뒷골목 걷는 것이 왜 그리 즐거웠나 생각해 봤더니 결국 자동차의 문제였다. 우선 대도시라면&nbsp;주택가에서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만날 확률이 그다지 높지 않고, 그러다 보니 뒷골목에서도 미친듯이 달려대는, 또는 보행자를 '개무시'하며 운전하는 이들 만날 일도 별로... <a href='http://blog.dreamwiz.com/abalon33/11450123 '>more...</a><!--한국에서는 운전하는 것이 스트레스다.큰길에서도 그렇고, 뒷골목에서도 그렇고, 어정쩡한 주차 공간을 만나도 그렇고, 지난 십몇년간 한국에서 운전하는 것이 즐거웠던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nbsp;늦은 밤,&nbsp;보름달이 뜬&nbsp;산길을 넘어 아무도 없는 프리웨이를 지나 내 등짝에 귀신이라도&nbsp;업은 것 같은 기분으로 주 경계선을 넘어갔던&nbsp;딱 이맘 때 무렵의 예전 어느 가을날이 생각날 때면&nbsp;운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nbsp;생겨나기도 하지만 어딜 가도 적막함과는 거리가 먼 한국에서는 그렇게&nbsp;동기 부여가 되지&nbsp;않으니 운전하려고 맘 먹으면&nbsp;짜증만 난다.일본에서 뒷골목 걷는 것이 왜 그리 즐거웠나 생각해 봤더니 결국 자동차의 문제였다. 우선 대도시라면&nbsp;주택가에서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만날 확률이 그다지 높지 않고, 그러다 보니 뒷골목에서도 미친듯이 달려대는, 또는 보행자를 '개무시'하며 운전하는 이들 만날 일도 별로 없고 해서 아무리&nbsp;귀에 이어폰을 꽂았더라도 맘 편하게 길 한가운데를 걸어 다닐 수 있었던 것 같다. 산책이 산책 같아서 즐거웠던 반면, 한국에서는 한적한 주택가 뒷골목도 첩첩 주차와 어느 각도에서 어떻게 튀어 나올지 모르는 흉기인 자동차들 때문에 오히려 큰길보다 뒷길 산책이 더 무서운 판이다. 걷는 것도, 운전하는 것도 어쨌든&nbsp;서울에서는 즐겁지 않은 것이 현실인 것을 어쩌랴. 그냥 집 근처 한강이나 한바퀴 돌아다니는 게 내 산책의 전부다. 그리고 올해 들어서는 운전대를 한번도 잡은 적이&nbsp;없다. 성능은 좋으나 주인 잘못 만나&nbsp;달리는 일보다 서 있는 일이 더 많던 내 차는 결국 우리 집사람이 무지 혹사해 주는 것으로 자기 임무를 다 하고 있는 것 같다.&nbsp;&nbsp;그런데 먼지 쌓이도록 쳐박아 놨던 CD들을 꺼내 다시 들으니 운전대가 잡고 싶어졌다. 별 이유는 아니고&nbsp;차 안에서 음악 듣는 게 공간상 더 좋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꽉 막힌 공간이라서&nbsp;차 안에서&nbsp;고래고래 악을 질러도 아무도 못 들으니 이&nbsp;또한 즐겁고...우루후루즈 때문에 촉발된 지름신이 이젠&nbsp;자동차에까지 미치게 생겼다. ^^선물 받은 자동차 모형을 보니 어쩐지 이 녀석이 갖고 싶어지기도 한다.&nbsp;&nbsp;&nbsp;색깔은&nbsp;전혀 내 취향이 아니지만....그런데 몇달 후면 또 어떻게 맘 변할지 모르겠다. 스트레스 풀자고 운전대 잡았다가 집 나서자 마자 스트레스 받으면 아마 다시 맘 접을지도.&nbsp;물욕이란 게 사실 손에 들어오고 나면&nbsp;후르륵 날아가 버리는 가벼운 연기 같은 거라서...--></td></tr></table>]]></description>
					<pubDate>Fri, 25 Sep 2009 14:23:45 +0900</pubDate>
					<category><![CDATA[잡설]]></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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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사람 괜찮네, 김씨!]]></title>
					<link>http://blog.dreamwiz.com/abalon33/11311328</link>
					<author><![CDATA[nogong]]></author>
					<description><![CDATA[<table><tr><td>내가 왜 '딴따라계'를 떠났나, 아니 왜 자연스레 멀어졌는가 생각해 봤더니 나의 '편식성향' 때문이었다. 싫은 것에도 숟가락 들이밀고 꾸역꾸역 먹어 치우고,&nbsp;소화를 시킨 다음 그 결과물을 돈과 바꿔야 하는 작업이 아마 너무 지겨웠던 것 같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게다가 나는 직접 퍼포먼스를 하는 딴따라가 아닌,&nbsp;논두렁 깡패 같은 기생 세력이어서 더욱 그런 생활에 회의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nbsp;게다가 지금은 우뇌의 존재는 사라진, 좌뇌만 남아 버린 것 같은 일상이어서 때론 잠자고 있는 우뇌를 흔들어 깨우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다시 움직일 기미를 보이는 우뇌 쪽에 안테나를&nbsp;올리고 있다. 그 중에 만난 기사 하나. &nbsp;TV 오락&nbsp;프로그램을 전혀 보질 않아서 김C가 그런데&nbsp;나온다는 것을 몰랐는데 최근 인터뷰를 보니 꽤나 옹골찬 사람인 것 같다. 나이 들면 젊었을 때 대단하게 느꼈던 가치를 왜 그리 숭앙했던가 싶을 때가 있는... <a href='http://blog.dreamwiz.com/abalon33/11312375 '>more...</a><!--내가 왜 '딴따라계'를 떠났나, 아니 왜 자연스레 멀어졌는가 생각해 봤더니 나의 '편식성향' 때문이었다. 싫은 것에도 숟가락 들이밀고 꾸역꾸역 먹어 치우고,&nbsp;소화를 시킨 다음 그 결과물을 돈과 바꿔야 하는 작업이 아마 너무 지겨웠던 것 같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게다가 나는 직접 퍼포먼스를 하는 딴따라가 아닌,&nbsp;논두렁 깡패 같은 기생 세력이어서 더욱 그런 생활에 회의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nbsp;게다가 지금은 우뇌의 존재는 사라진, 좌뇌만 남아 버린 것 같은 일상이어서 때론 잠자고 있는 우뇌를 흔들어 깨우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다시 움직일 기미를 보이는 우뇌 쪽에 안테나를&nbsp;올리고 있다. 그 중에 만난 기사 하나. &nbsp;TV 오락&nbsp;프로그램을 전혀 보질 않아서 김C가 그런데&nbsp;나온다는 것을 몰랐는데 최근 인터뷰를 보니 꽤나 옹골찬 사람인 것 같다. 나이 들면 젊었을 때 대단하게 느꼈던 가치를 왜 그리 숭앙했던가 싶을 때가 있는데 요즘 들어 더욱&nbsp;그 의미가 퇴색되어 버린&nbsp;것은 바로 '학력'이다. 재능이라곤 별로 없는 내가 이른바 명문이 아닌&nbsp;대학을&nbsp;나왔다면&nbsp;그나마 자존심을 내세울 곳이 없었기 때문에&nbsp;나 자신에게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노대통령의 '고졸'을 둘러싼 대한민국 '학벌 마피아'들의 그 집요한 '추태'를 보고 '학력'과 '학벌'에 대한 내 생각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nbsp;어쩌다 공부하는 요령이 좋아서&nbsp;'성공'한, '학벌'&nbsp;만이 지상 최대의 가치인&nbsp;모자란 이들의&nbsp;모습을 지난 몇년간 지켜보며 참으로 인생 공부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일단 들어서기만 하면, 크게 실수하지만 않으면 탄탄대로를 밟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인데 모 국립대학의 총장으로 국무총리 후보에까지 오른 분의 이면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 별 차이가 없는 모습이어서 '실망했다'는 둥, '그럴 줄&nbsp;몰랐다'는 이들의 탄식이 오히려 의아하다.&nbsp;&nbsp;&nbsp;&nbsp;살아 오면서&nbsp;열심히 하지 않고, 해보고 싶은 것을 못해서 후회한 적은 있어도 아직, 그리고 앞으로도 저렇게 꼴 사나운 '배운 인간'은 되지 않을 것 같다.&nbsp;내 기질상 그러라고 해도&nbsp;못 그러겠지만...그들의 이해할 수 없는 자기 합리화보다&nbsp;별로 배운 게 없다는 김C의 진솔한 인터뷰가&nbsp;훨씬 맘에 든다. 자기 말마따나 이제 변화구가 가능한 나이라서 그런 건가?&nbsp; 그나저나 김씨, 미안.... 이 기사 미리 읽었다면 공연 가 보는 건데.....&nbsp;&nbsp;&nbsp;-‘인권을 음악으로 말한다.’ 이번 콘서트의 주제다. 무슨 뜻인가. = 잘 살기 위해 누릴 수 있는, 누려야 하는 당연한 권리가 인권이다. 지금 이렇게 돈 내고 차를 마시는 데 어떤 방해도 받지 않을 권리 역시 인권이다. 약자들이 그 권리를 잘 누리지 못했다. 음악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심각하고 무겁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이런 콘서트를 하면 (인권도) 가볍고 쉬워질 것 같다. - 인권 탄압을 당한 적이 있나. = 2000년 무렵, 좌석버스를 타고 다녔다. 버스운전사가 난폭하게 곡예하듯이 운전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우리는 요금을 냈고, (안전하게 타고 갈) 권리가 있다. 버스운전사에게 항의했더니 오히려 나를 가리키며 “이 사람 때문에 빨리 못 간다”면서 승객에게 “빨리 가고 싶으면 버스에서 내려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고는 보란 듯이 느리게 운전했다. 버스 승객이 우르르 버스에서 내렸다. 사람들이 (난폭 운행에) 길들여진 거지. 나는 개인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자신이 누릴 권리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 가수로 데뷔하기 전인가. = 그렇다. ‘루저’(loser) 시절에는 그런 모순에 집중하게 된다. 루저는 시간이 되게 많다. 처음에는 ‘난 왜 이러지’ 불만을 품다가, 그렇게 된 이유를 외부에서 찾게 된다. 그러다 모순을 발견하고, 그걸 이야기한다. 그런 루저들 때문에 세상이 많이 변한다. 인터넷에 세상에 대한 불만도 쏟아내고…. 정신없이 바쁜 사람들은 그렇게 못한다. - 지금보다 덜 유명했던 2004년 &lt;한겨레21&gt;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뮤지션은 대중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전달할 줄 알아야 한다. 뮤지션이나 다른 예술가들이 하는 말은 파급력이 크다. 그래서 뮤지션은 똑똑해야 한다.”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변함이 없다. 자기 메시지를 전달하는 뮤지션이라면 자기 주장이 있어야 한다. 무책임하게 던지는 말보다는 좋은 가치관을 이야기해야 한다. -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나. = 학문을 공부한 적은 없으니, 그런 방면에서 똑똑할 리는 없다. 그러나 내가 어떤 주장을 할 때, 왜 그런 말을 하는지는 알고 있다. &nbsp;≫ ‘인권 콘서트 HUMAN’- 최근 어느 보수 논객이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영화배우 김민선씨의 글을 보고 “자기 의견을 개진할 지적 수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 아, 그 사람은 혼자서 이슈나 상황을 못 만든다. 어떤 이슈를 숙주 삼아 거기에 붙어서 자라는 것 같다. 지적 수준이 안 되면 말할 권리가 없다는 이야기를 했던데, 참 위험한 사람이다. (변희재를 가리킴. 이러다 김씨도 변씨에게 소송당할지도 모르겠다^^)그러면 서울대 나온 사람들만 세상에 대한 발언권이 있다는 건가. 참 오만한 태도다. 도대체 서울대가 뭔가. 그냥 대학이다. 서울대를 나왔다고 내 문제를 모두 아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김민선씨의 그 표현은 언론과 인터뷰한 것도 아니고, 사적 공간인 미니홈피에 일기처럼 적은 것이다. 그런 공간에서 자신의 주장을 펴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권리를 뺏는 일이다. - 지난 6월21일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콘서트에 참가했다. 그런 행동을 정치적으로 비틀어 보는 눈이 걱정되지 않았나. = 별로 그런 생각 안 했는데. 예를 들어 넬슨 만델라 추모 공연에 뮤지션이 참가했다면, 그것 참 영광스런 일 아닌가. 노 전 대통령이 아니라 누구라도 돌아가신 분의 마지막 가는 길에 노래를 부르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평범하고 작은 일 가운데 하나다. 나는 ‘폴리테이너’(정치 성향이 강한 연예인)가 아니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을 주저하거나 못하지는 않는다. 내 행동을 정치적으로 왜곡해서 본다면 슬퍼질 것 같긴 하다. 그런데 결국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내 행동을 굳이 비틀어 보겠다면, 그건 그 사람의 몫이다. 슬프긴 한데 어떻게 하겠는가. 내 의도가 그게 아닌데…. - 그런 일 때문에 방송 출연을 못한다면. = 힘들겠지. 그래도 아마 멋진 음악은 나올 것이다. 아티스트에게 가난은 하나의 덕목이다. - 예전에는 방송 오락프로 출연에 대해 “(앨범) 홍보를 위해 억지로 한다”고 했다. 요즘은 어떤가. = 재밌는 시간도 있긴 한데, 참 힘들다. 나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코드나 타이밍을 모른다. 다만 내 옆에 정말 대단한 전문가들이 있다. 나는 거기서 일종의 ‘시민 대표’로 그냥 서 있다. 그걸 편집으로 잘 받쳐주고…. 방송 활동은 부인할 수 없을 정도의 경제적 도움이 된다. 내가 4집 앨범까지 냈는데, 단 10원도 인세를 못 받았다. 기획사 처지에서는 내가 음악을 하지 않는 게 이득일 것이다. 앨범을 내려면 돈이 들어가니까. 그러나 음악을 하지 않는다면 나한테 다른 활동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음악만 하면서도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부럽다. 나는 왜 음악만 하지 못할까 생각하다가, 결국 우리 음악이 후졌나 보다 하면서 자괴한다. 그렇다고 음악을 안 할 수는 없다. (나도 슬프다. 당신의 음악이 후진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후지게 되어 버린 것이다. 시장만 커졌다고 음악 수준이 함께 올라간 것이 아니다. 인도 영화가 그렇게 큰 내수 시장을 갖고 있어도 예술적 평가에서 갸우뚱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일본 록만 들어도 이렇게 속이 상하는 판에&nbsp;좋은 자질을 충분히 가진 우리나라가 찌그러져 있는 게 너무 가슴 아프다)- ‘뜨거운 감자’의 음악을 들어보면 1집에서는 비통한 사랑, 4집에서는 안온한 사랑을 노래하는 것 같다. (‘뜨거운 감자’는 2000년 1집, 2003년 2집, 2006년 3집, 그리고 지난해 9월 4집을 냈다.) = 내가 1집을 냈을 때가 서른 살이다. 그 가사는 대부분 20대 때 썼다. 그때는 ‘나한테 시속 150km의 직구가 있으니, 어디 칠 테면 쳐봐’ 하는 심정이었다. 변화구 던지는 법을 몰랐고, 던져야 할 이유도 몰랐다. ‘루킹삼진’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 루킹삼진? = 타자가 멀쩡히 서서 공만 쳐다보다 삼진을 당하는 거다. - 지금은 다른가. = 이제 내 어깨로는 시속 150km의 공을 던질 수 없다. 그리고 변화구를 던져 헛스윙하게 만들어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묘미를 알게 됐다. 조금 부드러워지는 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겠다.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 김C- 감독·배우·작가 등 여러 일을 해왔는데, 변화구마저 못 던지는 50대가 되면 어떻게 될까. (그는 2004년 단편영화 &lt;만남&gt;을 연출했고, 2006년 &lt;날아다니는 김C의 휴지통 비우기&gt;라는 에세이집을 냈으며, 2007년 영화 &lt;별빛 속으로&gt;에 조연으로 출연했고,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 &lt;오이시맨&gt;의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 앞으로의 일을 장담하고 싶지 않다. 고랑이 생기는 건 안 좋다. 땅바닥에 고랑이 파여 있으면, 비가 왔을 때 어디로 흘러갈지 뻔해진다. 너무 재미없다. 내 인생에 고랑을 파기가 싫다. 다만 내 안의 창작 기관 가운데 음악이 가장 발달돼 있다. - 4집에 실린 &lt;생각&gt;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그런 가사가 나왔나. = 간통죄나 국가보안법 같은 것은 정신을 가두는 법이다. 생각을 가두는 건 옳지 않다. 내가 누구를 좋아할 권리를 박탈하는 건 옳지 않다. 내 생각을 가로막는 법은 없었으면 좋겠다. &lt;생각&gt;을 들으면서 국가보안법을 떠올리는 사람은 없었겠지만. (웃음) - 그럼, 조금 더 직설적으로 가사를 쓰지 그랬나. = 그런 화법은 재미가 없다. ‘뜨거운 감자’ 노래 가운데 섹슈얼리티가 많이 들어간 것도 제법 있다. 그런데 심의위원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숨겨둔다. 그 섹슈얼리티 요소를 나만 알고 있는 거지. 그런 가사가 자연스럽게 심의를 통과되는 일이 재밌다. 일종의 희화, 풍자랄까. 직설적인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재미가 없다. - 같은 기획사 소속의 정태춘은 80년대, 강산에는 90년대라는 시대를 노래했으면서도 그 ‘화법’을 달리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 예전에 학교를 졸업하고 막걸릿집에서 일할 때, 정태춘 노래를 늘 틀어놓고 있었다. 이분은 어디에 가서 만들기에 이런 노래와 가사가 나올까 생각했다. 지난해 태춘이 형이 직접 노래 부르는 걸 접했다. 와, 그 울림의 덩어리가 보통이 아니었다. (손을 쫙 벌리며) 이만한 덩어리가 빵, 하고 오더라. (49재 봉하 공연에서&nbsp;나를 가장 많이 울린 사람이기도 하다. 청승맞아서 20대 때 그렇게 듣기 싫던 &lt;떠나가는 배&gt;를 그 곳에서 듣고 난 이후는 그 노래만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강산에 형은 오랫동안 같이 있어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의 노래들을 봐라. 희희낙락하는 가사가 별로 없다. 자기 성찰적이고 시대적이다. 그 가운데서도 &lt;태극기&gt; 가사는 슬라이더다. (1996년 발표된 &lt;태극기&gt; 가사는 이렇다. ‘이 비가 오는대야 어쩔 수 없겠지만/ 절대로 태우(太雨)는 또 오지 않았으면….’) 직구는 아니지만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1차적 은유, 그래서 슬라이더다. 예를 들어 펑크 가수들은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누구 싫어, 누구 개×× 하면서 노래한다. 그건 150km 직구 가진 애들이 하는 것이다. 스트라이크가 아니라 볼을 던져서 타자를 스윙삼진시키는 게 더 통쾌한 사람들의 표현법은 따로 있다. - 예전에 “세상이 엿 같다”는 발언도 했다. 지금은 그런 생각 안 하나. = 왜 없겠나. 예를 들어 2PM의 그 친구 참 안됐다. 사적인 인터넷 공간에 4년 전에 쓴 글을 이유로 그 친구를 추방시킨 꼴이 됐다. 이게 그래야 하는 문제인가. 그냥 그런 생각을 가진 친구라고 바라보면 안 되나. 그 친구는 많이 어리다. 그 글을 썼던 4년 전이면 얼마나 더 어리겠나. 기자님도 돌이켜봐라. 그 나이에는 무슨 짓이건 할 수 있다. 심지어 나는 1~2년 전만 돌아봐도 한심했다. 앞으로 1년이 지나면 오늘의 나조차 한심해 보일 것이다. 4년 전 어린아이의 이야기에 그 정도의 관대함도 보여줄 수 없나. - 언론에 대한 불만도 있겠다. = (기자의 명함을 보며) 예를 들어 내가 ‘수찬씨’ 하면 기자님이 기분 나빠질까?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려는 사람들한테만 호칭이 붙어다닌다. 안 기자, 안 PD, 안 검사…. 그런데 ‘안 청소부’ ‘안 경비’라는 말 들어본 적 있나.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해 그런 호칭을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왜 그런 걸 드러내려 할까 궁금하다. - 그래서 김C인가(그의 본명은 김대원이다). =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이름이다. 다만 김씨 성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 기분 나빠할까봐 영어를 붙였다. - 존경하는 사람이나 역할 모델이 있나. = (한참 생각하다) 되게 어려운 문제네. 누구처럼 되고 싶다면 백남준 아저씨. 일흔이 되어도 창작을 멈추지 않는 건 멋지다. 그의 최신 앨범인 4집에 실린 &lt;생각&gt;의 가사는 이렇다. “만질 수 없다고 해도 보는 건 어때요/ 가질 수 없다고 해도 생각만 하는 건 좀 어때요/ 날지 못한다고 나는 생각마저 하지 말란 법 없죠/ 이길 수 없다고 이길 생각마저 하지 말란 법 없죠/ 날기를 포기한 순간 날개를 잃어버리는 거죠/ 끝이 어딨냐고 끝을 모른다고 시작 안 할 순 없죠….” 이 노래를 듣고, 기자는 ‘1박2일’의 김C 대신 ‘뜨거운 감자’의 김C를 더 좋아하게 됐다. 그의 더 많은 노래를 듣는 방법은 02-323-3704로 문의하면 된다. 글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lt;하니 TV에서 전부 인용&gt;--></td></tr></table>]]></description>
					<pubDate>Fri, 25 Sep 2009 13:16:56 +0900</pubDate>
					<category><![CDATA[잡설]]></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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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홍대 이자카야 남산, 그리고 속 쓰려...]]></title>
					<link>http://blog.dreamwiz.com/abalon33/11299936</link>
					<author><![CDATA[nogong]]></author>
					<description><![CDATA[<table><tr><td><img src='http://blog.dreamwiz.com/thumbnail/a/b/abalon33/37/thbn_abalon33_20090924132738_11299936_1.jpg'  width=160 border=0 align='left'>홍대 앞에는 최근 그나마 일본식에 가까운 이자카야가 꽤 많이 생겨났는데 아무래도 '현지화'의 문제 때문인지 딱히 맘에 드는 데는 없다. 좀 유명해졌다 싶은 장소는 너무 바글거리는 바람에 먹어도 보기 전에 이미 별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맛은 일본식의 흉내에 그치면서 가격은 일본과 맞먹으려 드는 것도 별로 예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고...어쨌든 그런 집들 중,&nbsp;홍대 뒷골목에서 우연히 발견한 남산(南汕). 산이라는 한자는&nbsp;처음 보는데 오구라는 물고기 그물이라고 한다.&nbsp;뒷골목에다 아직은 별로 입소문이 안 나서 언제나 한적. 특별히 맛있다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무늬만 이자카야인 앞쪽의 요란한 집들보다는 차라리 내 취향에 맞다. 문제는 지금까지 그런 집들은 오래 버텨주지 않았다는 사실. 나는 뭘해도 마이너 리그 취향인 것 같아서&nbsp;씁쓸하다. 다만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무모한 모험을 해서&nbsp;여럿 망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랄... <a href='http://blog.dreamwiz.com/abalon33/11311328 '>more...</a><!--홍대 앞에는 최근 그나마 일본식에 가까운 이자카야가 꽤 많이 생겨났는데 아무래도 '현지화'의 문제 때문인지 딱히 맘에 드는 데는 없다. 좀 유명해졌다 싶은 장소는 너무 바글거리는 바람에 먹어도 보기 전에 이미 별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맛은 일본식의 흉내에 그치면서 가격은 일본과 맞먹으려 드는 것도 별로 예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고...어쨌든 그런 집들 중,&nbsp;홍대 뒷골목에서 우연히 발견한 남산(南汕). 산이라는 한자는&nbsp;처음 보는데 오구라는 물고기 그물이라고 한다.&nbsp;뒷골목에다 아직은 별로 입소문이 안 나서 언제나 한적. 특별히 맛있다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무늬만 이자카야인 앞쪽의 요란한 집들보다는 차라리 내 취향에 맞다. 문제는 지금까지 그런 집들은 오래 버텨주지 않았다는 사실. 나는 뭘해도 마이너 리그 취향인 것 같아서&nbsp;씁쓸하다. 다만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무모한 모험을 해서&nbsp;여럿 망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랄까?&nbsp;^^&nbsp;일본식 이자카야를 표방하는 집들의 문제는 이렇게 일본 맥주만 내 놓는다는 것. 마진폭이 얼마나 큰지 모르겠지만 술 파는 집이라면 국산 맥주와 소주를 내 놓아도 전혀 문제가 없을 텐데 이상한 데서 '정통'을 주장하고 싶은 모양이다. 고노와다에 버무린 마. 이것만 있어도 맥주 몇잔은 문제 없다.^^일본 이자카야에 고노와다 같은 비싼 메뉴가 있었는지 기억에는 없지만...&nbsp;사시미는 올 때마다&nbsp;구성이 달라져서&nbsp;어울리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다는 것에서 좀 왔다갔다. 문어, 연어 이런 게 모둠에 들어가면 무척 싫다...&nbsp;직접 숯불에 구워내는 야키도리. 모둠이 무난하지만 내가 좋아하지 않는 구성도 있고 해서 이렇게 각각 시켰다. &nbsp;&nbsp;거의 미니 햄버거만한 츠쿠네가 상당히 맛있는 편. 이 동네 이자카야는 야키도리 낼 때 양배추를 깔아주는 집이 몇 있던데 그게 이 곳 유행인가? 양배추를 무료로 주는 것은 고마운데 저렇게 쿠션으로 내지 말고 다른 접시에 내 주면 더 고맙고,&nbsp;더&nbsp;정통스러울 것 같다.&nbsp;그리고 한국에서는 소금만으로 간한 야키도리는 아무래도 먹기 힘드려나? 청담동의 어처구니없이 비싼 곳 정도가 아니면 일반적으로는 무조건 타레를 뿌려서 내주는 모양이다. &nbsp;&nbsp;&nbsp;&nbsp;&nbsp;튀긴 두부에 가츠오부시를 듬뿍. 이 가츠오부시는 집에서 국물 낼 때 쓰는 것인데 뭐 한국에서 더 비싼 가츠오&nbsp;바라면 내가 도둑이다.^^일본 가서 김치 맛없다고 투덜대는 것과 똑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이 집에서 마시고 나면 그 다음은&nbsp;30미터 정도 앞에 있는 팜이라는 라이브 재즈 클럽에 가는 것이 어느샌가 습관이 되었다.&nbsp;재즈보다는 블루스나 소울을 듣고 싶지만 한국에서는 꿈도 꾸지 말아야.... 차라리 내가 지금부터 블루스를 배워서라도...(꿈도 야무지지만!)&nbsp;가능하면 술도 안 마시고 이번 학기는 무조건 한 가지에만 집중하기로 마음 먹었었다. 어제서야 겨우 확정된 일정이 나왔는데 의외로 너무나 여유있는 스케줄이어서 사기 당했다는 기분....무엇보다도 토타스의 콘서트를 볼 수 없다는 게 제일&nbsp;분하다.&nbsp;이번 주말 후쿠오카 공연은 아직도 표가 남았다는데 내 일정이 이제서야 나와서&nbsp;그저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물론 미친 짓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주말에라도 날아갈 수 있다.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을 건너서라도 가는 사람도 있는 판에 까짓 현해탄쯤이야!그런데&nbsp;포기했던 것을 이렇게 급작스럽게 보게 되면 감정의 소화불량에 걸릴까 봐 걱정이 돼서 꾹꾹 눌러 참고 있다. 그나마&nbsp;10월에는 조금 심적 여유가 생기는데도&nbsp;오사카 추가 공연, 다 팔렸단다.....10월말 도쿄 공연,&nbsp;애진작에 다 팔렸었다....아아, 속 쓰리고 속 상한다. 만약 저 티켓 매진 아니었다면 분명히 지금쯤 비행기 예약하고 있었을 것이다. 일본 암표 시장의 현황을 알지 못해서 혹시 살 수 있는지 알 수도 없다. 미국이라면 분명히 신문 광고에 나오는데....DVD를 살 때는 공연 못 보는 대신 이거로라도 만족하자 싶었는데 어찌 된 것이 DVD를 보고 나니 더욱 라이브가 보고 싶어지는 기가 막힌 사태가 발생했다. ㅠ.ㅠ그 뿐이랴,&nbsp;작년에 아쉬워하면서 쓰지도 않는 턴테이블을 버리는 것으로 이젠&nbsp;음악은 컴퓨터로만 듣는 것이 되어 버렸는데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죽었던 음악 세포가 와장창 되살아나서 새로 미니 오디오를 하나 장만하고, 여기에 서브 우퍼까지 달아 버렸다.그리고 DVD 감상을 더욱 효과적으로 하기&nbsp;위해 대형 TV까지 예약해 버렸다....남은 것은 블루스 기타 레슨... ^^&nbsp;&nbsp;&nbsp;&nbsp;&nbsp;최근 토타스의 예전 인터뷰를&nbsp;읽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속이 꽉 찬 뮤지션이라는 생각이 든다.&nbsp;아이돌이 아니라서 자신을 굳이 포장할 필요도 없고, 해 봤자 자기가 자기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못할 것 같다고 한 것이 이미 10년 전인데 지금은 더욱더 그렇지 않을까 싶다.초창기 인터뷰에서는 무대 위에 올라가면 '스위치가 켜진다'는 표현을 썼다. 노래할 때 스위치가 켜지는 순간, 켜지지 않는 순간이 있는데 라이브 무대는 확실히 그 스위치가 켜진다고 한다. 그 반면&nbsp;TV 녹화나 결혼식 축가 등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하는데 '신 들린 뮤지션'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nbsp;있을 것 같다. 가는 일이&nbsp;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 가라오케에서도 그 스위치는 켜지지 않을 것 같다. &lt;20세기 소년&gt;의 주인공이 가라오케에서 노래하던 심경처럼 말이다. 그런데 가라오케 외에서는 스위치를 켜 본 적도, 켜 볼 일도 없었던 나 같은 사람은 어떤 일에 스위치가 켜지는 것일까? 언제나 절전모드로 살고 있는데다 공부란 게 더욱더 곰의 겨울 동면과 비슷해서 과연 스위치 올릴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다.누구에게나 켤 수 있는 스위치는 있겠지만 언제 어떻게 켜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nbsp;그 대리만족을 위해 이렇게 비슷한 방향성을 지닌 그 누군가에게 열광하기도 하는 모양이다.&nbsp;&nbsp;10대 때 맹목적으로 동경했던 머나먼 바다 건너&nbsp;구름 위 존재 같던&nbsp;수퍼 스타가 아닌, 뒤늦은 나이에 겨우 말귀나마 알아듣는 일본의 재능있는 또래 뮤지션에게 그런 위안을 받게 돼서 참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뮤직 비디오에서 저&nbsp;'추리닝'을 입고&nbsp;'루저' 역할을 하던 그들은, &nbsp;'아직도 젊은 내게는 내일이 있고,&nbsp;꿈이 있다'고&nbsp;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nbsp;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했었다. 그들이 노래하는 세상과 실제의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들이 노래하는 '바보, 바보 파워'에&nbsp;나도 못 이기는 척 따라가 보는 수밖에....어쨌든 그들은 답답하고 기가 막힌 현실을&nbsp;통과하게 해 주는 보호막 노릇을 해 주고 있으니까....--></td></tr></table>]]></description>
					<pubDate>Thu, 24 Sep 2009 13:13:19 +0900</pubDate>
					<category><![CDATA[외국 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헛 것이 보이기 시작하다...]]></title>
					<link>http://blog.dreamwiz.com/abalon33/11247994</link>
					<author><![CDATA[nogong]]></author>
					<description><![CDATA[<table><tr><td><img src='http://blog.dreamwiz.com/thumbnail/a/b/abalon33/32/thbn_abalon33_20090922133613_11247994_1.jpg'  width=160 border=0 align='left'>밤낮을 쪼개 가며 옛날 자료를 보고 있는데 어제 본 1927년의 기사에 이런 제목이 나왔다!&nbsp;&lt;토타스(ト-タス) 세출인위(世出人偉)&gt;. 공부 지나치게 하다 보면 책상 위에 장난꾸러기 요정이라도 나타나는 영화처럼 순간, 눈을 몇번 끔벅거리다 고개를 좌우로&nbsp;흔들어 봤다.&nbsp;아니,&nbsp;이&nbsp;이름이 이 시절에 사용되었다고?라고 갸우뚱대다가 깨달았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하는 것을 나는 거꾸로 읽었고, 요즘 '토타스 귀신(산 사람에게 죄송!!)'이&nbsp;붙은&nbsp;탓에&nbsp;저걸 그렇게 읽어 버린 것이다. 원래는 &lt;위인출세(偉人出世)의 스타트(スタ-ト)&gt;인데 뭔가에 사로잡혀 있으면 저렇게도 보이는&nbsp;모양이다. ^^그나저나&nbsp;일본어로 토타스를 거꾸로 읽으면 스타트.... 본인은 알고 있으려나? 지난 주말 막 콘서트가 스타트한 모양인데 40대 중반에 솔로로 스타트한지라 아마 무척 고민이 많았던 모양이다. ... <a href='http://blog.dreamwiz.com/abalon33/11299936 '>more...</a><!--밤낮을 쪼개 가며 옛날 자료를 보고 있는데 어제 본 1927년의 기사에 이런 제목이 나왔다!&nbsp;&lt;토타스(ト-タス) 세출인위(世出人偉)&gt;. 공부 지나치게 하다 보면 책상 위에 장난꾸러기 요정이라도 나타나는 영화처럼 순간, 눈을 몇번 끔벅거리다 고개를 좌우로&nbsp;흔들어 봤다.&nbsp;아니,&nbsp;이&nbsp;이름이 이 시절에 사용되었다고?라고 갸우뚱대다가 깨달았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하는 것을 나는 거꾸로 읽었고, 요즘 '토타스 귀신(산 사람에게 죄송!!)'이&nbsp;붙은&nbsp;탓에&nbsp;저걸 그렇게 읽어 버린 것이다. 원래는 &lt;위인출세(偉人出世)의 스타트(スタ-ト)&gt;인데 뭔가에 사로잡혀 있으면 저렇게도 보이는&nbsp;모양이다. ^^그나저나&nbsp;일본어로 토타스를 거꾸로 읽으면 스타트.... 본인은 알고 있으려나? 지난 주말 막 콘서트가 스타트한 모양인데 40대 중반에 솔로로 스타트한지라 아마 무척 고민이 많았던 모양이다. 내가 뒤져본 대도시 콘서트는 표가 다 매진되었지만 지방 도시는 아직 표가 남았는지 팔리지 않은 콘서트에 대해 본인은 꽤나 안타까와 하는 느낌. 첫날 공연 전날, 불안하고 잠을 못 잤다는 얘기를 블로그에서 하고 있다.(촬영이 많은 날은 변비도 있었다는 우스꽝스런 얘기도&nbsp;예전에&nbsp;했었는데...^^)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노래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는, 행복해 할 줄 아는 거북이씨의 공연을 언젠가 꼭 봤으면 좋겠다.&nbsp;&nbsp;&nbsp;&nbsp;&nbsp;&nbsp;&lt;또다른 토타스&gt;라는 '저질'스럽고 '유치'한 잡동사니 낙서장 같은 책의 표지를 보다 보니 역시 이런 황당한 문장이 있다. '그냥 갖고만 있어도 뭔가가 달라지는 &lt;또다른 토타스&gt;'보나마나 이것도 '장난질'의 일환인데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이 사람의 추천사는, '엄청 읽기도 쉽고, 선물로 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에게 꼭 선물로 줄까 생각 중인데...' - 이 책 어머니에게 선물했다간 우리 아들 '변태'라고 어머니&nbsp;밤잠 못 자게 만들 가능성이 무척 크다. ^^&nbsp;그런데 사진 속 이 남자, 이 출판사에 근무하는 직원인 것 같은 느낌이... 뮤직 비디오에 등장했던 그 사람 아닌가 모르겠다.&nbsp;&nbsp;&nbsp;&nbsp;&nbsp;눈을 반쯤 감은 상태에서 찍힌 듯한 이 사진 속&nbsp;남자 역시 가상의 인물인 듯 싶다.&nbsp;&nbsp;허경영의 &lt;콜 미&gt;는 바로 이 사람의 추천사를 베낀 게 아닌가 싶을 정도. ^^'이 책을 입수하고 나서 10킬로가 빠졌습니다. 헤어진 여자친구로부터 연락이 와서 "다시 사귀자"라고 해서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이 책을 사는 것이 정답입니다' - 내 눈을 바라보고, 아침, 점심, 저녁 '쉐번' 이름을 불러보는 짓을 하지&nbsp;않아도,&nbsp;이 책을 사면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는 모양이다^^-&nbsp;&nbsp;어쨌든 "너를 좋아해서 정말 다행이야. 이대로, 이대로 죽을 때까지 해피~~ 만세!!"&nbsp;의 또다른 표현이려나?--></td></tr></table>]]></description>
					<pubDate>Tue, 22 Sep 2009 13:12:26 +0900</pubDate>
					<category><![CDATA[日本,도데쇼?]]></category>
				</item>

				<item>
					<title><![CDATA[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title>
					<link>http://blog.dreamwiz.com/abalon33/11239990</link>
					<author><![CDATA[nogong]]></author>
					<description><![CDATA[<table><tr><td><img src='http://blog.dreamwiz.com/thumbnail/a/b/abalon33/32/thbn_abalon33_20090921124409_11239990_1.jpg'  height=120 border=0 align='left'>실연한 후배 달래주느라고 내가 술을 더 많이 마셔 버렸던 어느날(^^), 헤롱헤롱, 건들건들대며 홍대 앞을 걸어 오다 발견한 조그만 영화 포스터. 퀸의 공연 실황을 대형 스크린으로 볼 수 있단다. 아마도 DVD를 대형 프로젝터로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갔건만 입장료가 보통 극장의 거의 두배쯤 되는 가격이었다. DVD 주제에 왜 이렇게 비싼가 하고 툴툴댔지만 '내&nbsp;청춘의 비타민제'이자 '인생 진로 설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그들을&nbsp;'크게' 볼 수 있다니 그 정도쯤이야....아마 몇달 전까지만 해도&nbsp;옛사랑은 옛사랑일 뿐, 이 나이에 새삼 뭘 다시 보겠냐고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루후루즈 덕에&nbsp;사화산이라고 생각했던 정열이 휴화산임을 알게 됐고, 여기저기 폭발 중이라 어디부터 막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야말로 &lt;情熱 A Go-&nbsp;Go&gt;!&nbsp;&nbsp;&nbsp;&nbsp;막상 들어간 극장은 스크린을 갖춘 '진짜 극장'이었... <a href='http://blog.dreamwiz.com/abalon33/11247994 '>more...</a><!--실연한 후배 달래주느라고 내가 술을 더 많이 마셔 버렸던 어느날(^^), 헤롱헤롱, 건들건들대며 홍대 앞을 걸어 오다 발견한 조그만 영화 포스터. 퀸의 공연 실황을 대형 스크린으로 볼 수 있단다. 아마도 DVD를 대형 프로젝터로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갔건만 입장료가 보통 극장의 거의 두배쯤 되는 가격이었다. DVD 주제에 왜 이렇게 비싼가 하고 툴툴댔지만 '내&nbsp;청춘의 비타민제'이자 '인생 진로 설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그들을&nbsp;'크게' 볼 수 있다니 그 정도쯤이야....아마 몇달 전까지만 해도&nbsp;옛사랑은 옛사랑일 뿐, 이 나이에 새삼 뭘 다시 보겠냐고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루후루즈 덕에&nbsp;사화산이라고 생각했던 정열이 휴화산임을 알게 됐고, 여기저기 폭발 중이라 어디부터 막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야말로 &lt;情熱 A Go-&nbsp;Go&gt;!&nbsp;&nbsp;&nbsp;&nbsp;막상 들어간 극장은 스크린을 갖춘 '진짜 극장'이었다. 몇십년 만에&nbsp; 첫사랑 만나는 기분으로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있는 판에 이런 화면이 튀어 나왔다.&nbsp;히히힛! 다행히 극장 관람 인원수는 10여명 남짓이고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던지라 이 지시 사항을 충분히 준수할 수 있었다. 그런데&nbsp;어두운 극장에서 얌전히 앉아서 저런 '행위'를 한다는 것은 참 계면쩍은 일이다. 서서 같이 소리 지르고 흔들어 대지 않으면 록 공연 보는 재미란 게 있으려나?&nbsp;&nbsp;내 10대 시절을&nbsp;'보람있게' 보내도록 해 준 네 남자. 아니, 이제는 어르신들. 한분은 지금 내 나이쯤에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저 이름만 봐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팝송을 몰랐다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면&nbsp;내 10대 시절은 어땠을까 생각해 보면 답이 잘 나오질 않는다. 성적은 조금 더 좋았을지 몰라도&nbsp;별 호기심도 없고, 무미건조한 그 이후 인생이 아니었을까? 사실은 팝송 덕에 공부도 좀더 열심히 했던&nbsp;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해 본다.&nbsp;'원어민 영어'를&nbsp;접할 일이라고는 팝송 밖에 없던 시절, 그나마 리스닝 실력이 이 정도 가능했던 것은 다 팝송 덕이라고 생각하고, 외국 생활에서&nbsp;공통의 화제로&nbsp;그럭저럭 외국인들과 대화가 가능했던 것 역시 팝송 덕이었던데다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그 덕에 밥벌이도 했으니&nbsp;팝송 문화란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지배했던&nbsp;키워드임은 분명하다. 버리고 떠났다&nbsp;돌아갔다 다시 완전히 떠났다고 생각했으면서도 계기만 있으면 이렇게&nbsp;혈관 속 피 돌아가는 속도가&nbsp;느껴질 정도로 흥분하곤 하니 도대체 좌표 설정을 못하겠다.&nbsp;취향에 맞지도 않는 것도 쓴약 삼키듯 소화해야 하고, 유행하는 속도에 적응하지도 못한&nbsp;채 직업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이 싫어서 떠난 것이긴 한데&nbsp;원초적인 애정은 버릴 수 없어서 먼발치서 지켜 보는 내 마음이 이렇게 서글픈 것인지도 모르겠다.&nbsp;&nbsp;내 정체성을 묻어 버리는 언어와 멜로디에&nbsp;이미 어린 시절부터 길들여져 있어 이를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나를 모르게 되어 버리니 차라리 포기하고 죽을 때까지 즐겨 버리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nbsp;어쨌든 퀸은 그런 나에게&nbsp;절대 사라지지 않는 최고의 별이었다. 과거형을 쓰긴 했지만 현재에 얼마나 긴 꼬리표를 달고 있는지 나도 잘 가늠이 되질 않아서이다.&nbsp;&nbsp;&nbsp;공연은 1981년 몬트리얼 실황을 디지털로 복원해 낸 것이라고 했다. &lt;The Game&gt; 발매하고 한참 인기가 높을 때였고,&nbsp;고등학생이던&nbsp;나는 공부할 때도 팝송만 끼고 있을 정도로&nbsp;귀가 극도로 열려 있던 때이기도 했다. 그런데 81년이면 그들이 고작 30대 중반이던 시절, 내게는 분명 '아저씨'였기 때문에 이 젊은 시절 모습을 봐도 여전히 아저씨처럼 느껴진다.&nbsp;기타리스트인 브라이언 메이를 어찌나 좋아했는지 꿈에서도 그의 얼굴이 왔다갔다 했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에서 모든 정보 입수 가능하고, 음반이며, 사진집이며, 악보가 다 내 손 안에 들어올 수 있는 꿈같은 세상이 펼쳐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하던 시절, 내가 고작 아는 것이라고는 일본 음악 잡지를 그대로 번역해 놓은 한국식&nbsp;팝송 잡지에서 본 그의 생년월일과 '찬란한' 학벌 정도였다.&nbsp;&nbsp;&nbsp;&nbsp;그 당시의 내 이상형은&nbsp;빌리 조엘과 브라이언 메이 두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마음이 돌아선 계기'는 그가 '유부남'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고 나서... ㅠ.ㅠ순진한 고등학생이 '유부남'을 마음 속으로 좋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여겨져서(^^) 차곡차곡 마음 접느라 시험 점수도 내려간 적이 있었다.(그 당시는 웃을 일이 아니었는데...)90년대 중반쯤, 어느 신문기사에서 그가 이혼했다는 기사를 읽고 왜 괜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지금은 재혼한 것 같다.&nbsp;그를 미치도록 좋아했던 것은 내가 기타 사운드에 귀가 밝아서가 아니라 도무지 록 뮤지션처럼 생기지 않은 샌님형 인상에다 천문학자라는 사실에 눈이 가서 그랬던 것 같다. 오히려 지금 들으면 그의 기타 사운드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쪽에 가깝지만 그땐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좋아보이던 시절이니 그런 구분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게다가 그는 2007년 리버풀의 한 이공대학의 총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음악을 하면서도&nbsp;천문학&nbsp;쪽&nbsp;연구도 계속 해 왔던&nbsp;모양이다.&nbsp;18세기&nbsp;독일 수학자 같은 인상을 하고 있는 그도 어느새 62세... 그런데도 내&nbsp;눈에는 여전히 멋있어 보이는 것은 10대 때&nbsp;씌여진 콩깍지가 벗겨지지도 않았고, 그 역시 이에 호응하느라(!) 곱게 늙어준 때문인 것 같다.&nbsp;문과쪽보다 이공대 쪽 남성을 선호하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인 것 같은데&nbsp;특히 물리학 전공자라면 넋이 나가는 수준이다. 슬프게도 물리학 전공자와는 한번도 연애를 해 본 적이 없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nbsp;에휴, 그리고 내 가슴에 긴 칼자국 남기고 떠난 이 남자. 1991년 11월 24일, 이 세상에서는 영원히 사라져 간 남자. 인터넷이 없던 시절, 내가 그 소식을 알게 된 것은&nbsp;25일이거나 26일이었을 것이다. 죽기 사흘 전인가 에이즈에 걸렸음을 시인하는 바람에 내 가슴을 덜컹하게 만들더니 며칠 되지 않아서 그렇게 길고 긴 유성별로 내 가슴에 무한궤도를 남기고 가 버렸다. &nbsp;&nbsp;퀸의 음악을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이 남자 좋아하는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우선&nbsp;생긴 것부터가 도무지 친근감이 안 가는데다 옷 입은 '꼬라지'는 거의 시각적 테러 수준이어서&nbsp;노래 들을 때는 가능하면 그의 얼굴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다. 그때는 뮤직 비디오는 고사하고 비디오 플레이어도 제대로 없던&nbsp;시절이니 다행히 비주얼은 어쩌다 보는 음악 잡지의&nbsp;끔찍한 화보 정도가 고작이었다.&nbsp;&nbsp;우루후루즈도 10대 때 알았다면 비슷한 감정이었을 것 같다. 토타스의 어쩐지 '이 세상 사람답지 않은' 외모에다 공연 때 입고 나오는 '흉칙한 복장'은 아무리 음악이 좋아도 10대 소녀가 '우엑'하는 감정 없이 보고 넘기기는 힘들기 때문이다.&nbsp;&nbsp;그런 비주얼을 압도해 버리는 오디오가 있었기에 뮤지션으로서의 그들을 사랑하게 된 것이고, 나이 들어서 보니 '엔터테이너'란 결국 남을 즐겁게 해 주는 사람들이라서 '광대'로서의 자기 역할에 충실했던 그들에게 더욱 박수를 보내게 된다.&nbsp;&nbsp;동성애자나 에이즈 환자를 벌레 보듯이 하는 풍조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역시 그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nbsp;그가&nbsp;죽었던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카밍아웃은 역시 힘든 일이었고, 그는 자신이 동성애자란 사실을 숨기기 위해 가상의 여자친구를 계속 내세웠었다. 피아노 치는 록 싱어는 그리 흔하지 않아서 후레디 머큐리는 유달리 눈에 띈다.공연 중에 맥주도 마셔가며 노래했던 모양. 하긴 약 먹고도 공연하는 뮤지션이 즐비했던 판에...지금 생각해 보면 메이의 기타만큼이나 머큐리의 음색도 내가&nbsp;좋아하는 풍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때는 뭐든지 무조건 좋았고, 귀도 그만큼 열려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좋아하면 절대자의 경지가 되어 버리는 수준이었는데 나중에 영어로 가사를 이해하게 되고, 훨씬 더 많은 음악을 접하다 보니 가사는 유치하기도, 음탕하기도 한 것들이 꽤 많았고, 음악도 의외로 평범하다 싶기도 했다. 어쩌면 그래서 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자연스레 팬의 자리에서 멀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솔로 앨범을 냈다는 것도 뒷북으로 알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내 청춘의 수많은 페이지를 장식한 퀸이기 때문에 냉정한 평가는 평가대로 두고, 그들의 존재는 내게 있어서 어쨌든 특별하다. 피아노 치는 록 싱어는 여전히 빌리 조엘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nbsp;공연 실황에서 다른 멤버들이 얌전하게 찍힌 것이 없다.&nbsp;리더싱어는 후레디지만 브라이언도 그 코맹맹이 소리로 부른 곡들이 제법 된다.&nbsp;한국 노래방에는 없지만 일본 가라오케에 가면 있는 &lt;39&gt;&nbsp;같은 노래는 아주 그의 목소리와 궁합이 잘 맞는다. 그러고 보니 우루후루즈의 노래 중에도 &lt;39&gt;가 있다. 의미는 전혀 다르지만 말이다.퀸의 노래는 39년이란&nbsp;년도 표시, 우루후루즈는 thank you의 일본식 발음인 '상큐'를 같은 발음인 일본어 숫자 읽기로 지은 제목이긴&nbsp;하지만... 암튼 별 거에다 다 공통점을 발견하려려 든다.&nbsp;한 사람의 어느 시기를 완전히 지배해 버린 뮤지션들이니&nbsp;공통점이 어떻게든 있을 거 아니겠냐고...&nbsp;모르긴 해도 우루후루즈도 나름 퀸의 영향을 받았으리라고 생각한다. 특히 무대&nbsp;의상 면에서는...^^&nbsp;멤버들 중에서 사실은 가장 록커의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nbsp;젊었을 때는 동화 속 왕자님처럼 생긴 드러머 로저 테일러. 후레디의 가는 고음과 달리, 이 사람은 그 미소년 얼굴에 엄청난 파워를 가지고 있다. 장사는 잘 안 됐지만 후에 솔로 앨범을 내기도 했고, 퀸 시절에도&nbsp;자기가 부른 곡이 몇개 있다.&nbsp;&nbsp;&nbsp;환갑 지난 모습의 브라이언 메이.&nbsp;좀 처진 얼굴만 빼면 내 눈에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진중해 보이는, 과학도 록 뮤지션. &nbsp;독일 수학자 같아 보이는 머리 스타일도 여전하고. ^^언젠가 저런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다는 소식을 접할 텐데 그때도 나는 1991년 11월 어느 아침처럼 슬프게 울어 버릴까?&nbsp;내 마음에 품었던 이들이 세상을 등진다는 소식, 앞으로는 점점 더 많이 접하게 될 텐데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의 일부분이 얼마만큼 허물어질지, 이미 호된 훈련을 치뤘음에도 불구하고 미리 마음이 아파진다.  꽃미남 로저 테일러도 환갑 나이에 고군분투.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 보기에 참 좋다. 안타까운 것은 베이시스트 존 디콘의 소식을 잘 알 수 없다는 것. 이미 10년 전 현역 은퇴를 해 버리고, 남은 멤버들과의 교류도 없는 듯.....밴드란 것을 해 보지 않아서 이 나이 든 수퍼 스타들의 심경이 어떤지는 모르겠다. 이젠 그들이 하는 음악보다 그들의 삶에 더 관심이 많아지고 있으니 참 오지랖도 넓은 거 아니겠냐고.... 실질적으로 쇄국이었던 문화 후진국 대한민국에 살았고, 그래서 모든&nbsp;것이&nbsp;미치도록 아쉽기만&nbsp;하던 10대 시절에 비하면 돈과 시간에 여유가 생기고 이 세상&nbsp;환경도 바뀐 지금, 마음 먹으면 영국에라도 가서 퀸의 공연을 볼 수가 있건만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그러나 눈 앞에서&nbsp;퀸의 라이브 백번을 본 것보다 더 짙은 기억으로 내게 그 시절은&nbsp;각인되어 있으니 언젠가, 하늘에서 후레디 머큐리를 만나더라도 인사말은 무척 길어질 것 같다. 그런 날을 대비해서&nbsp;영어도 열심히 한 것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도 가끔 든다.. ^^--></td></tr></table>]]></description>
					<pubDate>Mon, 21 Sep 2009 12:29:51 +0900</pubDate>
					<category><![CDATA[잡설]]></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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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60;스위스&#62; 바젤 대학과 뒷골목]]></title>
					<link>http://blog.dreamwiz.com/abalon33/11205028</link>
					<author><![CDATA[nogong]]></author>
					<description><![CDATA[<table><tr><td><img src='http://blog.dreamwiz.com/thumbnail/a/b/abalon33/32/thbn_abalon33_20090918001439_11205028_1.jpg'  height=120 border=0 align='left'>&nbsp;유럽에서 이런 곳이 보이면&nbsp;여기를 경계로 성 안팎이 나뉘어진다고 보면 된다. 부르조아라는 말의 어원은 이런 성곽을 중심으로 한 도시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었다. 일본도 그런 면에서 구조가 비슷한데 성 안에서 사는 것은 물론 영주였던 다이묘였지만 성이 통치하는 마을 안에서 사는 이들의 구성은 서양에서 말하는 부르조아들과 대체로 일치한다.&nbsp;그게 정확하게&nbsp;일치하느냐 아니냐, 그리고 서양식 용어를 어떤 식으로 받아 들일 것이냐에 대해서 오래 전 일본 학자들끼리 많은&nbsp;논쟁이 있었다. 일본 관련 문제를 전공으로&nbsp;삼아도 까면 깔수록 더 모르겠고, 내가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어느 정도일까 자신이 없는데 어찌나 일본에 대해 잘 안다고 나대는 이들이 많은지...수박 겉핥기도 아닌, 베껴쓰기까지&nbsp;한 어줍잖은 쓰레기책을&nbsp;베스트셀러로 만들어 주고, 저자를 부자로 만들어 준 것도 모자라 국회에까지 밀어 넣어준&nbsp;이 나라는... <a href='http://blog.dreamwiz.com/abalon33/11239990 '>more...</a><!--&nbsp;유럽에서 이런 곳이 보이면&nbsp;여기를 경계로 성 안팎이 나뉘어진다고 보면 된다. 부르조아라는 말의 어원은 이런 성곽을 중심으로 한 도시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었다. 일본도 그런 면에서 구조가 비슷한데 성 안에서 사는 것은 물론 영주였던 다이묘였지만 성이 통치하는 마을 안에서 사는 이들의 구성은 서양에서 말하는 부르조아들과 대체로 일치한다.&nbsp;그게 정확하게&nbsp;일치하느냐 아니냐, 그리고 서양식 용어를 어떤 식으로 받아 들일 것이냐에 대해서 오래 전 일본 학자들끼리 많은&nbsp;논쟁이 있었다. 일본 관련 문제를 전공으로&nbsp;삼아도 까면 깔수록 더 모르겠고, 내가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어느 정도일까 자신이 없는데 어찌나 일본에 대해 잘 안다고 나대는 이들이 많은지...수박 겉핥기도 아닌, 베껴쓰기까지&nbsp;한 어줍잖은 쓰레기책을&nbsp;베스트셀러로 만들어 주고, 저자를 부자로 만들어 준 것도 모자라 국회에까지 밀어 넣어준&nbsp;이 나라는&nbsp;사실 일본보다 더 모르겠지만 말이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식당 이름이 빌헬름 텔.&nbsp;사과 하나 들고 들어 가면 할인 좀 해 주려나?&nbsp;^^&nbsp;&nbsp; 백여년 전 바젤 시가지 모습. 성을 경계로 해서 저렇게 성격이 나뉜다. 성 안쪽은 후에 부르조아가 된&nbsp;상공업자들 지역, 성 밖은&nbsp;농경지역. 근데 그림 참 잘 그렸다. 시작만 해 놓고 진도도 못 나간 그림 공부는 언제 다시 시작하게 될지.... 나는 거창한 그림보다 그냥 이런 그림들에 눈길이 간다. &nbsp;&nbsp;성 밖에서 본 성 안쪽. 통금 시간 되면 무시무시한 죠스 이빨 같은 성문이 콰광하고&nbsp;콱 내려 박힐 것 같다. &nbsp;&nbsp; &nbsp;성 안 쪽에 있는 바젤 대학교.&nbsp;스위스에서 가장&nbsp;역사가 오래 된 대학. 그러나 전혀&nbsp;외관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nbsp; &nbsp;방학 중이라서 수업을 하는 곳은 없는 듯했지만 학생 카페테리아가 있는 건물은 개방되어 있었다. 이건 너무 모던해서 원....로비에 설치된 컴퓨터는 학생 번호를 넣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nbsp;&nbsp;이런 정원에서 식사하면 이건 학생 식당이 아니라 근사한 야외 카페 분위기일듯. 게다가 야외에서 소시지도 직접 구워준다. &nbsp;스위스는 유로가 쓰이지 않는 곳이라서(가게에 따라 받아주는 곳도 있긴 하지만 환율을 1:1로 해서&nbsp;완전 손해보게 되어 있다)&nbsp;환전하기 귀찮다고 안 했더니&nbsp;자판기 음료도 사 먹기 힘들었다. 다행히 15년 전 안 쓰고 남은 스위스 프랑이 몇개 있어서 겨우 사용해&nbsp;봤다. ^^&nbsp; &nbsp;학생 식당 메뉴에는 베저테리안 메뉴도 있다. 같은 메뉴라도 외부인과 학생은 가격을 달리 해서 받는 모양이다. 그래도 바깥보다는 거의 절반 내지는 3분의 1 가격. &nbsp;스위스의 물가가 호되게 비싸다는 것은 이 학생 식당의 물가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런 정식 세트(?)가 학생은 7프랑 50, 일반인은 10 프랑.&nbsp;일반인 기준으로 하자면 1만 3천원 정도. 그나마 학교니까 이&nbsp;정도지, 바깥이라면 20프랑이 미니멈 아닐까 싶다.&nbsp;빅맥&nbsp;세트가 11프랑이라는, 미국 달러로 치면 11달러라는 기가 막힌&nbsp;빅맥 지수를 자랑하는(!) 스위스니까 말이다.&nbsp;&nbsp; &nbsp;학교 옆 골목 길, 거리의 파운틴. 역시 마실 수 있다. &nbsp;학교 옆 골목길을 타박타박 걸어 내려오다 보면,&nbsp;이런 뒷골목 상가를 만날 수 있다. 그 중 내 눈에 확 들어온 곳은,&nbsp;이 책 가게. 헌책, 새책 섞어서 파는 곳인데 아시아 쪽 전문점인 모양이다. 거기에 당당히 코리아가 아시아 넘버 4로 올라가 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예전에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학생들에게는 자국 중심적인 민족주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자고 말하면서도 이런 거 보면 괜히 감동받는 것을 보면 이성과 감성은 확실히&nbsp;따로국밥일 때가 많다.&nbsp;민족주의, 이런 거보다는 가난하고 서럽게 자란 처지였다 이제 좀 인정받나 보다 같은 자기 존재 확인이 투영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데 들어가 봐도 한국 섹션은 따로 없었다. 한글책이 없는 것은 물론, 독일어나 영어로 된 책 중에서도 한국 관련 책은 아예 없었다. 다른 나라들은 아예 서가 분류를 따로 해 놨더구만.... 그럼, 가게 앞에 써 붙여 놓은 저 낚시질은 도대체 뭐란 말인지???&nbsp;&nbsp;같은 건물에는 이렇게 일본 다타미, 이부자리 등을 파는 가게도 함께 있었다. 아직도 젠 스타일이 유행인지는 모르겠다만.&nbsp;그 골목길 끝에 있는 그라피티. 왼쪽부터&nbsp;우리 재니스 조플린 언니!!이 언니도 서른 전에 이미 요절해 버렸는데 그놈의 약 때문에....&nbsp;내게는 아무리&nbsp;생각해도 가장 훌륭한 블루스 소울 록 가수. 만약 신이 내게 가지고 싶은 목소리를&nbsp;선택할 기회를 준다면 두번도 생각하지 않고 그녀를 고를 것이다. 내가 만일 남자라도 그녀의 목소리를 가지고 싶을 것이다. 내가 요즘 홀라당 빠져 있는 토타스 마츠모토도 백인스러운(흑인처럼 묵직하고 둔탁하지는 않기 때문에...)&nbsp;블루스적 소울 필링을 가졌지만 역시 그녀와는 비교할 수&nbsp;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노래는 토타스 쪽이 훨씬 좋지만... 그녀는 오로지 노래만으로 승부했지, 토타스처럼 오만 게 다 능통한 재주꾼이 아니었기 때문에...그리고 역시 약 때문에 요절하신 또 다른 J들, 지미 헨드릭스와 짐 모리슨.... 찍은지 시간이 오래 돼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누군지 기억이 안 난다. 얼핏 보니 역시 약이 원흉인&nbsp;커트 코베인도 보이고, 수염 기른 이는 조지 해리슨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사진으로 보니 잘 모르겠다. 그치만 역시 뭐니뭐니해도 한 가운데의 롤링 스톤즈.&nbsp;키이스 리처드가 믹 재거보다 크게 그려져 있는 게 눈에 띈다. 아마 이 화가는 믹보다 키이스 쪽이 훨씬 좋았나 보다.&nbsp;하긴 나도 키이스가 그렇게 장수(!)하는 게 신기하긴 하다.&nbsp;지금은 약을 끊었는지&nbsp;모르겠지만&nbsp;그렇게 약에 쩔어 사는(또는 그런 이미지) 뮤지션이 환갑도 넘기고, 칠순을 바라 본다는 게 기적 같기도 하다.&nbsp;&nbsp;&nbsp;그런데&nbsp;이런&nbsp;사람들 이후로 이렇게 추앙받을 만한 록 뮤지션은 앞으로도 계속 탄생 가능할 것인가? 어차피 나는 새로운 음악에는 귀를 내주지 않는 주제라서 감히 평가할&nbsp;수는 없지만&nbsp;록에 있어서 절대적 수퍼 스타의 시대는 끝난 것 같다. 이제 오래&nbsp;살아 남는 게 '장땡'인, 후줄그레한 록도 존경받는 시대가 되지 않을까?&nbsp;'겉멋'도 사실은 록의 일부분이지만 클래식 록을 좋아하고 향유할 수 있는 세대들이 나처럼, 또는 나보다 더 나이가 먹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언제까지 그 '겉멋'만으로 장사할 수 있을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아마 우루후루즈 같은 '성실한' 일본 밴드에 눈과&nbsp;귀가 돌아갔는지 모르겠다. 물론&nbsp;어디까지나&nbsp;내게 있어서만 말이다.&nbsp;&nbsp;&nbsp;독일로 돌아오는 기차간. 예약 시간 바꾸는 바람에&nbsp;엄청난 추가 요금을 물어야 했지만 그 덕에 또 하나 배웠다. 인터넷으로 일단 예약하고 결제까지 한 기차표는 사후 변경할 경우, 거의 그 티켓값만큼 치뤄야 한다는 사실을....그나저나 저 맥주는 너무 맛있어서 지금 보는 이 순간도 침을 꿀꺽...며칠 동안 금주라는 결심이 흔들리는 이 순간....&nbsp; &nbsp;소시지는 맥주만큼 나를 유혹하지 못한다. 게다가 기차 식당 소시지는 그냥 그런 맛.&nbsp;물론 그래도 독일 소시지인만큼 맥주와 눈물나는 찰떡 궁합이지만.....(그보다는 야키도리가.. ㅠ.ㅠ)여기도 와인 밭이었던가? 6월,&nbsp;한국에서 악몽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던 내게 이런 유러피안 드림은 너무나 드림 같기만 했었다.--></td></tr></table>]]></description>
					<pubDate>Thu, 17 Sep 2009 23:55:13 +0900</pubDate>
					<category><![CDATA[독일/프랑스/스위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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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60;스위스&#62; 바젤, 도심 속 물의 거리  ]]></title>
					<link>http://blog.dreamwiz.com/abalon33/11204453</link>
					<author><![CDATA[nogong]]></author>
					<description><![CDATA[<table><tr><td><img src='http://blog.dreamwiz.com/thumbnail/a/b/abalon33/32/thbn_abalon33_20090917233637_11204453_1.jpg'  height=120 border=0 align='left'>&nbsp;바젤의 뮌스터 성당.&nbsp;&nbsp;유럽 교회들은 낡았기 때문에 항상 뭔가 공사 중이다. 이 교회는 다른 유명 도시의 이름 모르는 교회보다 더 작아 보인다. 서양사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종교사와 함께 거론되는데 스위스는 나라의 사이즈에 비해 의외로 종교적으로 꽤&nbsp;영향이 컸던 나라였던 것 같다. &nbsp;교회에서 바라본 라인강 건너편. 혼자 삐죽 솟아 있는 곳이 라마다 호텔. 성당&nbsp;쪽 시내에는 유럽답게 납작하고 비싼 호텔들이 몇 군데 있다고&nbsp;했다. 그런 호텔들이 투숙객 이름을&nbsp;거론할 때면&nbsp;왕족보다 먼저 나오는&nbsp;롤링 스톤즈!그런데&nbsp;영미 쪽의 록 뮤지션들은 호텔에서 사고 치고&nbsp;돌아다니는 것으로 유명해서 그닥 그런 호텔에 굳이 성지순례하듯 가 보고 싶지는 않다.&nbsp;팬으로서 그들 음악에 열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음악은 음악일 뿐, 인격적으로는&nbsp;미성숙자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라... <a href='http://blog.dreamwiz.com/abalon33/11205028 '>more...</a><!--&nbsp;바젤의 뮌스터 성당.&nbsp;&nbsp;유럽 교회들은 낡았기 때문에 항상 뭔가 공사 중이다. 이 교회는 다른 유명 도시의 이름 모르는 교회보다 더 작아 보인다. 서양사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종교사와 함께 거론되는데 스위스는 나라의 사이즈에 비해 의외로 종교적으로 꽤&nbsp;영향이 컸던 나라였던 것 같다. &nbsp;교회에서 바라본 라인강 건너편. 혼자 삐죽 솟아 있는 곳이 라마다 호텔. 성당&nbsp;쪽 시내에는 유럽답게 납작하고 비싼 호텔들이 몇 군데 있다고&nbsp;했다. 그런 호텔들이 투숙객 이름을&nbsp;거론할 때면&nbsp;왕족보다 먼저 나오는&nbsp;롤링 스톤즈!그런데&nbsp;영미 쪽의 록 뮤지션들은 호텔에서 사고 치고&nbsp;돌아다니는 것으로 유명해서 그닥 그런 호텔에 굳이 성지순례하듯 가 보고 싶지는 않다.&nbsp;팬으로서 그들 음악에 열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음악은 음악일 뿐, 인격적으로는&nbsp;미성숙자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라서... ^^록팬을&nbsp;자처하면서도 한번도 그루피 짓을 해 보지 않은 것은 내가 생각해도 가끔 이상하긴 하다.&nbsp;아마 나는 방구석&nbsp;안에서만 록팬이고,&nbsp;그루피가 되는 것은 '쪽 팔린다'고 생각해서 그랬을 것이다.&nbsp;&nbsp;&nbsp;&nbsp;&nbsp;&nbsp;교회 앞 뜰에는 이런 모임이 있었다. 파라솔 쓰고 있는 여성은 인상파 그림에서라도 튀어나온 것 같다.&nbsp;결혼식은 아닌 것 같고, 약혼식이었나?&nbsp;&nbsp; &nbsp;앗, 이런 데서 꼭 저렇게 신체 자랑하시는 분 있다. 하긴 세계에서 제일 공기 맑은 곳 중의 한 곳일 터이고, 라인강변 따라 길게 이어진 강변로는 조깅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곳이니 저런 모습 이상하지는 않겠다. 그런데 그 햇살 아래 뛰고 나면 나라면&nbsp;반쯤 기절할지도 모르겠다. &nbsp;&nbsp;외부 벽돌은 아무래도 세월의 흔적이 덜 느껴진다. 끊임없이 덧댄 것 같다. &nbsp;&nbsp; 이 해마처럼 생긴 모양은 아마 바젤의 시 엠블렘인듯. &nbsp;&nbsp;시내 한가운데의 분수.&nbsp;거의 물대포 수준으로 물살을 돌려대며 쏴 댄다. &nbsp; &nbsp;그 유명한 스위스 은행 중 한 곳에서는 이렇게 고흐 전시회와 발 맞춘 카드를 발매하는 모양이다. 이런 카드라면 나도 한장 가지고 싶다. 모 카드 회사는&nbsp;예술이 들어간 카드, 어쩌고 하면서 광고하던데 카드 디자인 보고 카드 회사 바꾸는&nbsp;사람들이 몇명이나 될까? 나라면 늘 쓰던 카드 회사가 아니라면&nbsp;굳이 디자인 때문에 회사를 바꿀 의향은 없다. &nbsp;&nbsp;바젤이 별로 크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고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장소가 없어서 그렇기도 한데다&nbsp;유럽 어디에나 흔한 박물관, 교회&nbsp;같은&nbsp;곳에 가는 것은 이제는 별로 흥미가 없다. 어디 갈&nbsp;데 없나 안내 책자를 뒤지다 발견한 곳. 쟝크트 알반 탈 스트라세. 마을 사이로 조그만 수로가 흐르는 곳이라고 했다. 라인강은 별개로 하고 수로가 있다면 어떤 곳일까&nbsp;호기심이 무럭무럭 솟아 올랐다.&nbsp;노면&nbsp;트램을 몇번 갈아타고 대충 지도 보고 눈치로 도착했다.&nbsp;지도만&nbsp;있다면 도심 속에서 길 찾는 일은 이제 세계 어디를 가도 별로 걱정이 되질 않는다.&nbsp;&nbsp;&nbsp;이 동네의 옛 모습인가 보다. 독일어로 되어 있으니&nbsp;이것 역시 눈치로만 샤샤삭...&nbsp;&nbsp;이 집은 몇층짜리라고 생각해야 하나? 모양새는 다르지만 일본 주택가 뒷골목처럼 한적하고 느긋한 여름 어느날.... &nbsp; &nbsp;&nbsp;수로가 있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던&nbsp;곳은&nbsp;이런 수로를 끼고 카페도 몇개 있고, 사람들이 개 데리고 산책이라도 어슬렁어슬렁 할 번한 곳이었는데 이건&nbsp;복개하기 전 동네 개천 수준이다. 그리고 그냥 보통 동네 주택가였을 뿐이다. 이런 곳을 관광 안내 책자에 올려 놓을 정도면 도대체 바젤은 얼마나 평범한 동네???이 개천을 보면서 일주일 후에 만나게 될 도쿄의 간다가와를 생각했었다.&nbsp;간다가와는 이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크고 길지만&nbsp;내게는 항상 한적하고&nbsp;명상이 가능한 산책길이었었다. 70년대의 간다가와에는 가난한 연인들의 보금자리가 즐비한 아파트가 많았던 모양으로 그런 영화와 노래가 있었다고 한다.&nbsp;물론&nbsp;지금의 간다가와 연변에는 고층의&nbsp;비싼 맨션들이 즐비하지만 그 동네를 모르는 일본인들에게는&nbsp;간다가와는 딱 70년대 이미지일지 모르겠다. &nbsp;&nbsp;&nbsp;아무래도 나는 스위스의&nbsp;쾌적한 이 동네보다 적당한 낭만과 적당한&nbsp;빈곤과 적당한&nbsp;고독함이&nbsp;묘하게 버무려진 간다가와 쪽이 더 취향에 맞나 보다.&nbsp;&nbsp;&nbsp;이건 성벽이라고 만들어 놓은 건지, 아님 동네 사람들이 장난(?)으로 쳐 놓은 장벽인지는 모르겠지만 장대뛰기 몇번 하면 월경에 성공할 만큼 높이가 낮다. ^^&nbsp;이 수로에 살고 있다는 각종 생명체들. 이것도 간다가와를 연상시켜서 뜬금없이 스위스에서 도쿄 뒷골목을 그리워하는 묘한 상념에 잠겼다.이&nbsp;무렵의 나는 한국의 현실이&nbsp;너무나 징글징글 끔찍해서 꿈에서라도 생각하기 싫었던 때였다. 지금이라고&nbsp;별로 바뀌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뉴스를 틀어놓을 정도로는 발전했다.&nbsp;흘리는 눈물의 총량은 줄었지만&nbsp;누선이 약해져서&nbsp;나 혼자 슬프다고 느껴지면 정말로 뜬금없이 금세 눈이 벌개진다. 아마 이러다간 떨어지는 낙엽 보고도 질질 울어댈 것 같다.&nbsp;이 문장을 쓰고 있는 지금도&nbsp;벌써 눈물이 비져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nbsp;&nbsp;&nbsp;--></td></tr></table>]]></description>
					<pubDate>Thu, 17 Sep 2009 23:17:11 +0900</pubDate>
					<category><![CDATA[독일/프랑스/스위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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